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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판다(Khundi Panda) ‘Modm : Original Saga’ (2021)

평가: 3.5/5

쿤디판다는 최근 힙합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행보를 보이는 래퍼다. 1997년생 젊은 뮤지션임에도 몇 년 사이 집적한 확고한 커리어로 슈퍼 루키 이상의 존재가 됐다. 올해 시상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 역시 정규 앨범 < 가로사옥 >으로 호평받은 그의 차지였다.

매년 믹스테이프와 컴필레이션 작품을 발매하는, < 쇼미더머니 9 > 출연 직후에도 서리의 < The Frost On Your Kids >에 참여하는 성실함도 성실함이지만, 지지를 사는 이유는 무엇보다 실력에 있다. 그의 확실한 개성과 탄탄한 기본기에 리스너들은 반응한다.

첫 EP < Modm : Original Saga >는 전작만큼의 깊이를 배제한 한결 경량화된 작품이다. 흥미로운 콘셉트에서부터 ‘오락용 음악’이라는 아티스트의 첨언을 이해한다. ‘게임’을 주제로 가상 캐릭터 ‘소모즈(Somozu)’를 낳아 자신을 투영했고, 비디오 게임 해설을 연상하게 하는 피치 업 보컬과 조밀한 효과음으로 전자오락의 현장감을 소환했다.

프로듀서 야간캠프와 디제이 웨건(DJ Wegun) 등을 주축으로 주조된 프로덕션 역시 큰 부피를 그리기보다 자글거리는 샘플과 전자음을 가깝게 들리도록 배치해 직관성에 뜻을 두고, ‘원시의 힘’에서 드러나는 돌출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그의 지향점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촘촘하게 쪼개진 래핑은 자신의 역량을 강조하는 데에 강수를 둔다. 그의 레이블 데자부 그룹이 소개한 대로 과연 ‘랩 도장 깨기’다. 특유의 곤두선 하이 톤을 몰아치는 강성의 플로우와 타격감 있는 발음, 안정적인 라이밍이 작정하고 단어들을 귀에 내리꽂는다. 두 곡을 이어놓은 듯 전위적인 ‘Somozu combat’의 한 구절 ‘정공법은 안 통해 / 내가 다 갖고 있거든 클래식함도’가 납득되는 이유다.

듣는 맛 이상의 팀워크를 다지는 정상급 래퍼들의 가세도 막강 캐릭터들이 뭉친 파티다. ‘Yucked up clan!’에서 버무린 버벌진트와 최엘비, 퍼프대희의 한국 힙합 크루 양상에 대한 조소적인 시선에 베이고 나면 ‘원시의 힘’의 화나와 개코에게서 세 래퍼 색깔이 균형적으로 섞이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팀원의 맹활약 속에서도 자기 맞춤형 비트 덕에 쿤디판다의 주객 양보는 없다. 그레이와 넉살이 각각 참여한 ‘메인풀’과 ‘Rarebreed’에서도 백미는 쿤디판다의 고감도 훅(Hook)이다.

소위 말하는 ‘빡센 랩’을 밀어붙이는 음반이지만 그 감상은 부담스럽지 않다. 자칫하면 청취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긴박하고 자극적인 스타일에도 랩 실력 너머의 신선한 콘셉트와 흐트러짐 없는 견인력으로 탈출구를 고안했다. 근면한 행보만큼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난 당당한 퀘스트 클리어다.

– 수록곡 –
1. Modm intro
2. Somozu combat 
3. 메인풀 (Feat. GRAY) 
4. 트럼프쥬스
5. Yucked up clan! (Feat. 최엘비, Puff Daehee, 버벌진트)
6. Gacha Lord : 운칠기삼 (Feat. Summer Soul)
7. Rarebreed (Feat. 넉살) 
8. 원시의 힘 (Feat. 화나 & 개코) 
9. 토끼공주 빈데어 (Feat. DJ Wegun)
10. Beta for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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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사라지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여느 해보다 많은 앨범 단위 결과물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쏟아지는 작품 속에는 치열한 젊음의 고민과 베테랑의 조용한 귀환, 글로벌 단위의 논의가 돋보인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 < Tailor >

미디어의 도움 없이 음악 자체로 자생하기 힘든 시기에 만능 뮤지션 윤석철은 좋은 대중가요를 고민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 없이도, 굵직한 퍼포먼스 없이도,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오래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의 팝을 지향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더 블랭크 숍이라는 새 페르소나를 만들어 좋은 가요 프로듀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급 맞춤 정장처럼 참여 가수들에게 딱 들어맞는 < Tailor >는 만능의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블루스, 록, 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치밀한 재봉술을 거쳐 금방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뽑혀 나온다. 일상 속 단편을 흥미롭게 관찰하여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기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산업과 기술의 시선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우리는 엔터테이너보다 이런 외골수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도헌)


추다혜차지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신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신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며, 산 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도 망자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무속음악 무가(巫樂). 굿판에서 벌어지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 담겼음에도 참으로 기괴하고 소름 돋는다. 적어도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기 전까지는. 굿판을 벌이는 장소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한 ‘당산나무’ 아래서 무가는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놀랍게도 재료는 펑크(Funk)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가 오히려 반(反)대중적이라 느껴질 만큼 국악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가히 2020년 음악계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릴 만 한다. 국악, 그것도 무속음악을 들으면서 ‘얼씨구‘와 같은 몸짓이 아닌 힙합에서 나올 법한 그루브를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감상의 끝에 남는 건 애절한 꺾기의 향연,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한국의 정서다.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양적이며, 동시에 철저히 한국적이다. 앨범 전반을 매끄럽게 주도하는 파격적인 장르의 혼합, 무가의 재해석. 국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조지현)


진보(Jinbo) < Don’t Think Too Much >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킹한 기타와 현란한 드럼, 그리고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가 그루비한 작법 아래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진다. 풍부한 성분과 영양을 갖춘 사운드 위로는 화려한 피처링진이 각자의 감칠맛을 발휘하며 곡에 녹아든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활짝 열린 귀 뿐, 이후로는 그저 트랙에 몸을 맡기면 된다.

탄력적인 프로듀싱의 < Afterwork >와 자기만의 색채로 히트곡을 버무린 선집 < KRNB >, 그리고 몽롱한 사랑의 언어 < Fantasy >의 걸출한 커리어를 거쳐, 진보(Jinbo)는 또 한 번 아이디어의 창고 아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발전한 < Don’t Think Too Much >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이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고막 위 펼쳐지는 힙합 퍼레이드. 음악계 풍운아가 만든 감각의 제국.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 MAP OF THE SOUL : 7 >

케이팝 보이 밴드가 아닌, 팝 뮤지션이자 BTS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가 담겼다. 일곱 명의 7년이 담긴 < MAP OF THE SOUL : 7 >은 멤버 개개인의 자아를 녹여내면서도 그룹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내 대중음악의 틀을 바꾸고, 세계 팝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로 이어지는 서사적 앨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의 밝음과 ‘Black swan’의 어둠이 상반된 힘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Respect’처럼 힙합을 보여주다가도 ‘Filter’처럼 라틴을 내비친다. 자신들에게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며 다양함으로 거대해지는 사운드가 BTS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한다. 음악부터 비즈니스까지 이젠 그들이 기준이고, 케이팝이다. (임동엽)


NCT < NCT Resonance Pt.1 >

< NCT Resonance Pt. 1 >은 새 시대를 여는 SM의 야심이다. 개방과 확장이라는 두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회전해온 NCT는 두 새 멤버가 더해진 23인의 NCT 2020으로 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감행했다. 기존 그룹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 면모를 한데 모으되 그것을 더욱 성장한 음악으로 재편한 음반은 팀의 색채를 짙게 하는 랩 트랙과 광폭한 전자음의 댄스,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린 곡과 다국적의 특색을 살린 언어 혼용까지 가공할만한 완성도로 담아냈다. 단연 올해 가장 빛나는 아이돌 앨범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팀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같은 이 스케일에서 SM이 제시한 신개념 플랫폼의 긍정성을 봤다. 문법 선택이 자유롭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이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음악 역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기획에 발맞추어 하나의 콘셉트를 수행하는 가수의 활약, 특히 랩 멤버의 강한 에너지로 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은 덤이다. 그들이 꿈꿔온 이상에 비로소 한 발 더 다가서는 걸음이었다. (이홍현)


정밀아 < 청파소나타 >

포크 씬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잔잔한 일상, 곁을 풀어낸 음반들이 유난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정밀아의 < 청파소나타 >는 그중에서도 우뚝 선다. ‘그럼으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다’(‘서시’) 나긋하게 선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에서 출발’에는 위트 있게 현재와 과거를 돌아본다.

잘 닦은 10개의 돌멩이가 반짝이듯, 매끈한 수록곡들을 지녔다. 도시에서의 삶을 겪으며 느낀 텁텁함과 답답함부터 언젠가 그리워질 시절을 아름다운 단어로 그린 음반은 지독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이다. 일상의 언어로 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작은 기타 반주를 넘어서 울리는 또렷한 오늘의 목소리. 웃고 우는 희로애락이 여기에 담겨있다. (박수진)


딥플로우(Deepflow) < FOUNDER >

한 래퍼의 커리어가 파노라마로 흐른다. 딥플로우는 < FOUNDER >에서 힙합에 빠지고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레이블 대표로서 고군분투하던 모습,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간 때 등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각 상황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나타낸 가사로 노래들은 한껏 사실감을 뽐낸다. 딥플로우가 설립한 레이블에 속한 래퍼들의 찬조도 앨범이 현실성을 또렷하게 발하는 데 힘을 싣는다.

볼품없었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래퍼로 성장한 모습을 알차게 담은 사항 때문에 앨범은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1970년대에 나왔을 법한 투박한 솔뮤직, 펑크 반주는 딥플로우의 역정을 한층 묵직하게 가공해 준다. 또한 일련의 음악적 보조를 통해 < FOUNDER >는 음반 커버로 암시하듯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향을 진하게 풍긴다. 내용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이룬 근사한 작품이다. (한동윤)


쿤디판다(Khundi Panda) < 가로사옥 >

밑그림을 펼쳐 놓은 < 쾌락설계도 >와 뼈대를 조립하는 과정의 < 재건축 > 속 자재가 이뤄낸 것은 < 가로사옥 >이다. 완공의 결과는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일련의 직선 형태로, 깊숙한 공간 안에 나열된 화자의 스토리텔링이다. 그 안에 침투한 질투(‘자벌레’), 자격지심(‘네버코마니’)과 회피(‘겟어웨어’)같이 진솔함을 넘어 독살스럽기까지한 감정의 파편들은 꽤 빽빽하고 날카롭다.

그럼에도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고 점차 파고 들게 만드는 것은 종횡무진 달리는 래핑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휘두르는 듯 더 치밀하고 더 악독하게 랩 퍼포먼스를 채워 넣었고, 피로감을 덜어낸 사운드로 친절함을 살짝 내비치곤 한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 가로사옥 >이 방대한 결말이 아닌 ‘그저 그의 여정 안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쿤디판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임선희)


김석준 < 20세기 소년 >

수려한 디자인과 포장, 마케팅, 시대 감수성, 상품 가치, 언론의 선동적 개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이라는 말에 어른거리는 윽박지름과 현재적 ‘힙’이 요구하는 초조함이 없다. 압박도 느끼지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타협도 없다. 타협한 게 있다면 그의 취향이 머물고 있는 20세기 음악뿐이다. 1993년 유재하가요제의 금상 수상 경력,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선사한 음원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 김석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제’ 정리에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앨범을 내는 지각 행위는 필시 과거에 얽매일 소지가 높다는 선입견에 웃으며 맞서려면 반드시 현재적 감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직접 노래한 다섯 곡 수록 앨범 < 나의 이름은 >에 이어 곧바로 내놓은 < 20세기 소년 >은 게스트 보컬과 밴드의 협조하에 작곡자로서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고 고저, 장단, 강약을 넘나드는 반(反) 고집의 실천이다. ‘나는 나일 뿐’, ‘버퍼링’, ‘함경도 혜숙이’는 이 판에서 ‘특히 근래’ 듣기 어려운 무적, 무소속 음악이다. 메시지가 있다면 결국 휴머니즘이다. 소박, 순결, 진심이 주는 공감이 따로 없다. 20세기 소년은 이런 사소 하나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담아 21세를 포옹한다. ‘난 달라질 거야/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아야지..’ 김석준은 기본의 우대가 뉴 노멀(음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임진모)


스월비(Swervy) < Undercover Angel >

익지 않은 슬픔을 저며낸 젊은 아티스트의 자화상. 대중이 보내는 관심의 뒷면엔 가혹한 잣대와 시선이 숨어 있었고 날카롭게 가공된 언어의 칼날이 되어 그를 해체했다. 태양에 다가간 대가로 추락하게 된 스월비는 온갖 상처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쩌면 감추고 싶던 일면이 흐트러진 바닥 위.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희미한 사랑을 발견했고, 보답이란 투박한 이유로 붉게 물든 날개를 감싸 안고 지상에 머물길 선택한다.

자기 고백이란 주제 아래 늘어놓은 일지(日誌)가 어둡고 차갑다. 낮게 깔린 비트를 기반으로 읊조리는 랩은 마주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기에 감정선은 높낮이를 그리지 않고 일정하다. 철저한 사실주의. 낡은 VHS 위로 덮어진 다양한 형태의 스월비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아티스트의 성장기에 대중은 분명한 감응을 느꼈다. 이제 첫 정규 앨범. 결국 자유를 찾아 희망으로 귀결된 < Undercover Angel >의 서사처럼 모든 걸 딛고 일어선 스월비의 자리가 이곳에 굳게 새겨졌다. (손기호)


2020 올해의 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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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판다(Khundi Panda) ‘가로사옥’ (2020)

평가: 3.5/5

포부부터 거대하다. < 쾌락설계도 >를 따라 < 재건축 >을 거쳐 < 가로사옥 >으로 연결되는 ‘건축 삼부작’ 대형 프로젝트를 현실화했다는 점, 앨범이 취할 수 있는 여러 예술적 장치를 야심 차게 배치했다는 점에서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욕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준수한 커리어를 이어온 쿤디판다지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 가로사옥 >은 그중에서도 완성을 향해 지독한 검열과 고뇌를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3년 동안 앨범의 농도는 더 짙고 조밀해졌다. 앞선 두 앨범이 도면을 그리고 공사하는 과정이었다면 < 가로사옥 >은 완공의 결과물이다. 큰 돌과 굵은 자갈을 대략적인 용기에 먼저 담았다면 이번에는 빈 곳을 모래로 채울 차례라는 듯, 꽉꽉 눌러 담은 열 곡이 그의 깊고 어두운 내면을 파고들어 쌓인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쇼미더머니 5를 탈락한 직후의 스무 살부터 가중된 욕심의 무게를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침전에서 비롯된 앨범의 자기 고백적 성격을 뒷받침한다.

부유선, 주인공, 개미 등 전작부터 언급하던 주요 키워드를 속속히 등장시키며 연작의 특징을 암시하고, 열등감(네버코마니)과 피해 의식(자벌레), 가식(양심트리거)과 체념(겟어웨어) 같은 껄끄러운 소재를 가감 없이 호출하여 삼키고 소화한다.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언급하며 처절하고 진솔하게 밑바닥까지 훑는 전개에는 일종의 고해와 같은 숭고함이 묻어난다. 중간중간 ‘향바코’와 ‘어덜트금고’의 건전한 고찰을 섞으며 염세주의적 단면을 유연하게 타파하기도 한다.

눈여겨볼 점은 서사를 풀어나가는 속도와 몰입감과 그 압도적인 기세다.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Never catch me’가 떠오르는 ‘블랙박스’의 포문에서 서정적인 마지막 트랙 ‘집’까지, 라임과 언어유희로 점철된 래핑이 일말의 환기 없이 빼곡히 채워지고 치닫는다. 수록곡들의 제목이 두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형식을 택한 것처럼 < 가로사옥 >은 십자말풀이로 이뤄진 큐브를 빠르게 맞추는 듯한 언어적 쾌감을 선사한다. 가벼운 시를 표방하는 최근 힙합 신의 노랫말에 비해, 그의 음악은 장단의 문장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장편소설에 가깝다.

통기성이 부족한 탓에 앨범은 필연적인 피로도를 동반한다. 다루는 내용과 범위가 국소적이고 빽빽하기에 가벼운 감상으로는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놓치기 쉽고, 청자에게 그만한 집중과 반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게다가 랩과 비앙(Viann)의 개성 넘치는 사운드가 교차하며 수많은 킬링 트랙을 낳은 < 재건축 >과 비교해 본다면, 유기성을 강조하며 가사의 분위기와 강약에 철저히 맞춰진 본작의 프로듀싱은 래핑의 화려한 독주를 돕는 조력자 역할에 가깝다. 개개의 만듦새는 우수하지만, 멜로디 라인이 순간 랩을 치고 나오는 ‘킥아웃코드’와 같이 사운드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의 빈도가 낮다.

그럼에도 < 가로사옥 >은 앨범 단위의 작품성을 끈질기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복잡한 타임라인과 풍부한 분석 요소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롭게 제시되어 리스너들의 순수하고도 다양한 해석의 장을 활성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쿤디판다는 본인의 치부가 가득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사옥(舍屋)이라는 개념과 연관 짓고, 힙합 신에 쾌락을 넘어선 토론, 사유의 필요성을 촉구한다. < The Anecdote >의 반향을 이어갈 또 다른 ‘옥중앨범’이다.

– 수록곡 –
1. 블랙박스
2. 네버코마니 
3. 카모플라주 (Feat. 형선)
4. 양심트리거
5. 향바코 (Feat. Noogi, Don Sign) 
6. 겟어웨어
7. 어덜트금고 (Feat. Jinbo)
8. 낙찰 전 / 용기의 합창단 (Feat. DAMYE)
9. 킥아웃코드 
10. 집 (With 히피는 집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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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Viann) ‘The Baker’ (2019)

평가: 4/5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 Los Angeles >가, 혹은 썬더캣(Thundercat)의 < Where The Giants Roam >이 떠오른다. 부드럽게 조율된 피아노와 현악기의 선율 사이로 날카로운 소음, 땅을 기는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부피와 탄성을 지닌 웡키(Wonky) 사운드가 조립되는 선과 악의 공존. 비앙(Viann)은 보편적인 일상의 기본 물질과 죄악을 지닌 비주류의 원소를 한 데 모아 해체, 분석, 그리고 재배열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연옥을 설계한다. 그야말로 신의 신성한 과업, 창조주가 펼치는 ‘베이킹’이다.

개인의 능력을 감추기 보다, 오히려 최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여러 재료를 능란하게 다뤄온 본인 실력에 대한 믿음과 작품의 주체를 자신으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이는 작중 솔로 파트로 입증되는데, ‘Color me bed’의 변칙적인 트랩 비트에서 ‘시가렛’으로 이어지는 워프 레코즈(Warp Records) 풍의 베이스 사운드, 위협적인 전자음이 날뛰는 ‘Hub’와 ‘막내’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렉트로니카와 재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현란함은 같은 계열의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을 지향하는 아티스트 ‘XXX’의 날카로운 청적 쾌감보다는 조금 다른 결인, 미묘하고도 아늑한 안정감이다.

피처링 선택 또한 매우 탁월하다. 아티스트 특성에 맞게 변모하는 비트 메이킹이 작품 전반에 드러날뿐더러, 그의 위대한 천지창조 과정에 기꺼이 참여한 인물들 또한 날렵한 솜씨로 비트와 시너지를 이루는 모습이다. 진보의 그루비한 감각을 부각하는 ‘Got it all’, 후디의 차분한 기조를 따라가는 ‘0과 1 사이’, 그리고 수민의 몽환적인 음색을 팝 사운드로 구현한 ‘4ㄹ5’는 색채를 대상에 일치시킴과 동시에 몰입도를 깨트리지 않고 이어 나간 사례다. 랩의 영역 또한 건재하다. 이현준의 격한 래핑을 온전히 담는 ‘시가렛’과 쿤디 판다의 박자감을 스타가토 형식으로 돋보인 ‘Menace’, 특히 비와이의 화려한 랩 기술이 드러난 ‘Golden Fleece’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비트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트랙이 거듭함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법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실로 놀라운 현장이다.

비앙은 앨범에 ‘매슬로(Maslow) 5대 위계질서’ 이론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부터 자아실현에 이르는 단계까지, 트랙을 나아갈수록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태도와 거친 표면을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서사가 그렇다. 이는 마치 진정한 예술가로 승화하려는, 숭고한 포부이자 음악적 욕구 해소다. 게다가 다소 거창한 주제임에도 접근성 좋은 재즈 요소와 앨범을 하나로 관통하는 메시지로 기반을 다진 덕일까, 내용물이 화려함에도 난잡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만 쉬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쿤디판다와 합을 맞춘 < 재건축 >에서 동양적이면서도 신묘한 프로듀싱으로 이름을 알린 비앙, 그는 < The Baker >로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내로라하는 국내 프로듀서 반열에 쐐기를 박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록곡 –
1. Color me bad
2. Cigarette (Feat. 이현준)
3. Got it all (Feat. JINBO The SuperFreak)
4. Menace (Feat. Khundi Panda)
5. 차원 (Feat. HYNGSN)
6. 우리 집
7. 4ㄹ5 (Feat. SUMIN & Khundi Panda)
8. HUB
9. Jealousy (Feat. HYNGSN)
10. Golden Fleece (Feat. BewhY)
11. 막내 (Feat. NOT EASY)
12. TEST. (With. Eden Highway)
13. 말 한마디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 Your Truth (Feat. Noogi)
14. 0과 1 사이 (Feat. Hoody)  
15. 돈 (With. FR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