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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미국’] 1. BLM이 음악에서 중요한 이유

Anderson .Paak - Lockdown - YouTube

2020년 미국을 관통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흑인 차별 반대 (Black Lives Matter, BLM)다.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 (George Floyd)의 살해는 미국 전역을 뒤흔든 시위로 이어졌고, 제도적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는 음악계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비욘세, 앤더슨 팩 (Anderson. Paak)을 비롯한 흑인 가수들이 저마다 시위를 지지하는 싱글을 냈고, 음악산업 종사자들은 소셜미디어 해시태그를 통해 블랙아웃 튜스데이 캠페인 (#blackouttuesday)을 진행하며, 6월 2일 하루 동안의 침묵을 통해 BLM의 메시지와 자원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동시에 대중음악 속 흑인음악의 영향력은 전에 없는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2019년에는 리조 (Lizzo)와 릴 나스 엑스 (Lil Nas X), 올 해에는 도자 캣 (Doja Cat), 메간 더 스탈리온 (Megan Thee Stallion), 로디 리치 (Roddy Ricch)등이 차트를 뒤흔들었다. 힙합과 알앤비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핵심 장르로 자리 잡아, ‘레트로 열풍’을 위시한 뉴 잭 스윙의 소비가 재점화된 지 오래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적인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대중음악을 점령하기 시작한 흑인음악의 영향력. 이 두 흐름은 무관하지 않다.

사회에서 비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겪게 되는 상황 중 하나가 바로 ‘지워짐’이다. 주류가 비주류의 문화를 차용하면 원래의 맥락이 지워지고 새로운 맥락이 생겨난다. 음악계의 BLM운동이 주목하는 지점이 여기다. 흑인들의 음악을 사랑한다면 흑인들도 사랑하는 사회가 되어야지, 음악만 남긴 채 흑인들을 지워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6월 말, BLM을 테마로 온라인에서 개최된 흑인 엔터테이너들의 축제 BET 어워즈는 “우리 문화는 없는 셈 치기엔 너무 크다(Our culture is too big to be cancelled)“는 오프닝 멘트로 그 에토스를 담아냈다. 피부색을 기반으로 한 차별과 억압도, 이에 대한 저항정신이 담긴 음악도 2020년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다.

런 더 쥬얼스 (Run The Jewels)는 이번 BLM 시위를 지지하며 신보 < RTJ4 >를 예정보다 일찍, 무료로 배포하며 백인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를 ‘눈 속을 걷고 있’ 는듯한 기분에 빗대어 노래했지만, 5년 전 2015년에 켄드릭 라마가 < To Pimp A Butterfly >로 먼저 ‘우린 모두 괜찮을 것’이라며 공권력의 부당한 위력 행사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위로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흑인 음악계 저항의 역사는 1980년대에 ‘Fuck tha police’라며 분노를 폭발시킨 N.W.A를 지나서도 계속된다.

흑인은 범죄자일 확률이 높다는 편견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타자성과 합쳐져 불공평한 검문과 과잉진압으로 이어지고, 흑인 음악과 문화에는 그 설움이 묻어난다. 파고 들어가 보면 제도적인 인종 차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례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레드 라이닝 (Red Lining), 즉, 특정 구역에는 흑인이 부동산을 구매하거나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태가 합법적으로 행해졌다. 돈이 있어도 흑인이라면 백인들과 함께 살 수 없고, 교육을 포함한 지역 예산 배분 및 집행이 백인들의 동네 위주로 돌아가면서 흑인들이 사는 동네는 점점 낙후되어 가난의 악순환에 갇힌다. 갱스타 랩의 성지 콤프턴도, 이사 오는 흑인들을 피한 백인들의 교외 이주 (White Flight)에서 탄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런 더 쥬얼스의 활동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래퍼 킬러 마이크 (Killer Mike)는 구조적인 차원에서 흑인 사회의 재기를 위해 노력해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애틀란타에서 낙오된 구직자들에게 커리어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미용실을 운영 중이고, 갱 단원들의 갱생을 돕고자 이들의 이름을 딴 콜라 (Crip-a-Cola, Blood Pop)를 출시해 판매했다. 자본과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방지해 근본적으로 폭력을 근절하려는 노력이다. < RTJ4 >의 가격을 자율 지불로 설정해 배포하고, 모든 수익을 BLM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건 이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Run The Jewels – 'Run The Jewels 4' review
Kendrick Lamar – “Alright” Video - Stereogum

켄드릭 라마의 음악 역시 구조적인 소외의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 묘사했기 때문에 강력하다. 콤프턴에서 자라면서 목격한 동네의 경제적 소외와 만연한 폭력,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고향에 대한 애증의 감정들은 백인들 듣기 좋으라고 노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처지의 흑인들에게 그들의 경험과 감정이 정당하다는, 공감을 통한 위로를 건넨다.

그 증거로 BLM 시위대들은 ‘Alright’의 가사를 외치며 행진하고, 흑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공론화될 때마다 이 곡의 스트리밍수가 폭등한다. 대대적인 BLM 시위가 벌어질 때면 ‘켄드릭은 어디 있냐’고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와 그의 음악은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은 비단 킬러 마이크와 켄드릭 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차일디쉬 갬비노 (Childish Gambino)가 노래했듯, ‘이게 미국이다.’. 바다 건너에서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남의 음악을 들으려면 남의 일을 알아야 한다. BLM이 이야기하는 억압과 차별은 흑인 뮤지션들도 예외 없이 겪어온 현실이다. 저항과 연대의 정서가 2020년에만 반짝 떴다가 질 유행이 아닌 이유다.

This Is America': Breaking down Childish Gambino's powerful 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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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와 Black Society

I hope you come back, and learn from your mistakes.
꼭 돌아와서, 네가 저지를 실수로부터 배웠으면 한다.


Come back a man,

tell your story to these black and brown kids in Compton.
남자가 되어 돌아와서, 컴튼의 흑인 아이들에게 네 이야기를 해주렴.


Let ’em know you was just like them,

but you still rose from that dark place of violence,
becoming a positive person.
너도 그들과 똑같았지만,

이 폭력의 도시에서 자라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But when you do make it, give back,

with your words of encouragement,
and that’s the best way to give back, to your city.
네가 정말 성공했을 때, 격려의 말들과 함께 이곳에 돌아와.

이것이 네가 이 도시에게 보답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야.


‘Real (Feat. Anna Wise)’

돈, 여자 그리고 마약을 쫓는 무의미한 가사를 남발하는 다른 래퍼들과는 다르게 켄드릭 라마는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는 래퍼이다. 그는 아직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은 흑인에 대한 억압과 편견을 고발하고자 하는 소신이 있으며 이를 곡으로 구현해내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저 랩을 잘하는 래퍼이기 이전에, 자신의 고향인 빈민촌 컴튼 구역의 처절한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깨어있는’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시된 메이저 2집 < To Pimp A Butterfly >의 핵심은 가사에 있다. 물론 높은 수준에 도달한 프로듀싱과 랩 퍼포먼스가 당연히 빛을 발하지만, 그가 정성스레 빚어낸 가사야 말로 앨범의 뛰어난 성취이다. 흑인에 대한 역사적 사건과 여러 문학들을 근거로 한 서사와 성찰의 텍스트는 그저 안이하게 그러나 주눅 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날리는 뼈아픈 일침이다.


– 1 –

Sneak me through the back window,
I’m a good field nigga.
날 뒤 창문으로 몰래 들여보내줘,

나는 좋은 노예야.
I made a flower for you outta cotton just to chill with you
너랑 놀러 목화로 꽃을 만들어 왔잖아.
Brown skinned, but your blue eyes

tell me your mama can’t run
검은 피부에 파란색 눈을 가졌다는 것은

너의 엄마가 도망치지 못했단 뜻이겠지.

‘Complexion(A Zulu love) (Feat. Rapsody)’


What you want you? A house or a car?
원하는 게 뭐야? 집? 차?
Forty acres and a mule, a piano, a guitar?
40 에이커의 땅과 노새, 피아노, 기타?


‘Wesley’s Theory (Feat. George Clinton)’

Amazon.com: Watch 12 Years a Slave | Prime Video

신대륙 아메리카의 발견과 함께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유럽의 국가들은 16세기부터 그 곳을 식민지를 만들었다. 팽창하는 자본주의의 성질에 의해 아메리카의 원주민(인디언)들로는 일손을 채우지 못했고, 수많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노예로서 끌려왔다. 주로 사탕수수나 목화 재배의 목적으로 이용된 흑인들은 백인들의 수하에 억압받고 겁탈당했으며, 고통당했다.

흑인들의 고단한 생활은 1863년 16대 대통령 링컨의 < 노예 해방 선언 >으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1865년 윌리암 셔먼 장군은 < 특별 야전 명령 15호 >에서 흑인들에게 40에이커 넓이의 경작 가능한 땅과 노새를 주겠다고 발표했고, 여기에 많은 흑인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이 약속은 새 대통령 앤드류 존슨과 다수의 정치인들로 인해 취소되고 만다. 이로써 흑인의 꿈은 무너지고, 그들은 다시 소작농의 생활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의 탈출구는 바로 피아노, 기타가 대표하는 음악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후에 탄생한 재즈와 블루스의 기원이 된다.

– 2 –

So why did I weep
when Trayvon Martin was in the street?
그래서 나는 왜

트레이번 마틴이 거리에 있었을 때 울었을까?

When gang banging make me

kill a nigga blacker than me?
내가 한 것들이 나보다 더 검은 흑인들을 죽이는데


‘The blacker than berry’

Florida Teen Trayvon Martin Shot and Killed - HISTORY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이 동네를 순찰하던 도중, 후드티를 입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그는 그 소년을 아무 근거 없이 마약에 관련되었다고 판단하고 소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소년은 도망가기 시작했고, 결국 짐머만은 권총을 꺼내 발사했고, 그렇게, 17살 트레이번 마틴은 그저 편의점에서 스키틀즈 한 봉지와 아이스티를 사고 집으로 귀가하던 길 위에서 사망했다. 대학생 마이클 브라운은 백인 경찰과 몸싸움 도중 6발의 총알을 맞아 사망했다. 그의 유가족은 총격사유와 당시 경찰의 신원공개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침묵했다.

이 두 소년은 모두 흑인이다.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트레이번 마틴이 범죄자로 의심 받았던 이유엔 드러나지 않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편견에 많은 흑인들이 분노했고 항의했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은 2015년 4월 8일, 또 한 차례의 비극이 발생한다. 바로 백인 경관 마이클 슬레이저가 비무장한 흑인 월터 스콧에게 8발의 총격을 가한 것. 마이클은 스콧과 실랑이 중 빼앗긴 전기충격기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증언했지만 시민이 제보한 동영상에 의해 모두 거짓임이 밝혀졌다.

– 3 –

But remember, anybody can get it.
The hard part is keeping it.
기억해둬, 누구나 여기까지 올 순 있어.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그걸 계속 유지하는 거야.
My name is Uncle Sam on your dollar.
나는 너의 지폐 위에 그려진 엉클 샘이야.

Pay me later, wear those gators
돈은 나중에 내고, 이 악어 가죽을 입어봐.
Two coupes, two chains, two c-notes.
두 대의 자동차, 두 개의 목걸이, 100달러 두 장.
And everything you buy, taxes with deny.
그리고 네가 그 모든 것을 산 댓가인 세금을 내기 거부한다면,
I’ll Wesley Snipe your ass before thirty-five.
난 네가 35살이 되기 전에 널 웨슬리 스나이프로 쏴버릴 테니까.


‘Wesley’s theory (Feat. George Clinson)’

wesley snipes mugshot - Google Search | Mug shots, Wesley snipes ...

2008년, 영화배우 웨슬리 스나입스는 플로리다 법원으로부터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의 소득 3억 8천만 달러에 대해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세와 소득신고 누락 등의 혐의로 유죄를 판결 받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국가의 부당한 조세법에 대해 불만을 가지며 탈세를 저지르는 ‘납세 거부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켄드릭 라마는 ‘Whesley’s theory’란 곡을 통해 힘겹게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은 흑인들을 몰락시키는 국가를 엉클 샘(Uncle Sam)에 비유하며 부당 한 사회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국 대통령 링컨이 < 노예 해방 선언 >을 선포한지 약 15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 세상이 피부색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편견은 존재하며 차별은 현재진행중이다.

So I’mma say somethin’
that’s vital and critical for survival Of mankind,
그러니 내가 한마디 할게,

인류의 생존를 위한 중요하고 필수적인 한마디.

if he lyin’, color should never rival
피부색으로 적이 될 수 없어.


‘Complexion(A Zulu love) (Feat. Rapsody)’

(2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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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2015)

< good kid, m.A.A.d city >의 큰 성공과 ‘컨트롤 대란’의 시발점으로 유명한 벌스, ‘나는 뉴욕의 왕이다’는 켄드릭 라마를 한순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모든 세간의 이목은 그에게 집중되었고, 선 공개된 싱글 ‘i’와 ‘The blacker than berry’는 그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발매일보다 일주일 먼저 깜짝 공개된 < To Pimp a Butterfly >는 이러한 기대를 보란 듯이 넘어섰다. 여러 평단의 찬사는 이미 전작의 것을 넘어섰다.

스펙트럼이 달라졌다. 앨범을 아우르는 사운드는 이전과 동떨어진 펑크(Funk), 재즈, 블루스, 알앤비의 것인 데다 ‘Swimming Pool’과 ‘m.A.A.d city’만큼의 강렬한 임팩트도 없다. 그럼에도,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당연히 곡이 함축하고 있는 메시지와 독보적인 그의 래핑, 그리고 이들을 재단한 수준 높은 프로듀싱이다. 전작부터 함께한 프로듀서진과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와 퍼렐 윌리엄스 등 유명 뮤지션과의 호흡은 각각의 곡들에 개성을 불어넣었다.

하퍼 리(Harper Lee)의 소설 <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에서 따온 앨범의 제목과 보리스 가디너의 ‘Every nigga is a star’를 샘플링한 첫 트랙의 도입부에서 주제는 명확히 제시된다. 앨범엔 흑인의 고된 삶에 대한 서술과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고발, 비난의 메타포로 가득하다. 또한, 우수로 가득 찬 자아의 성찰과 흑인 엠씨로서의 입장과 막중한 책임감에 대한 그의 사색은 비판적이고 계몽적인 메시지를 내포한다.

고민의 흔적이 여러 트랙에서 나타난다. 힘겹게 높은 지위와 부를 얻은 흑인들을 몰락시키는 사회제도를 고발하는 ‘Wesley’s Theory’를 시작으로, 이들을 핍박하고 제도화하는 부의 속성을 비판하는 ‘Institutionalized’, 내러티브의 형식으로 빈민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How much a dollar cost’를 지나 ‘Complexion’은 피부색이 가져다주는 편견의 무의미함을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비판적인 태도는 여전하다. ‘u’에서는 그의 출신지 컴튼(Compton)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을 잊고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 ‘The blacker than berry’에선 자신을 위선자라고 깎아내리며 흑인사회에서의 존중의 중요성을 강요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과 파급력에 대해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내비치며 곡이 주는 메시지의 설득력을 배가한다.

텍스트를 펼쳐내는 래핑 또한 탁월하다. 다채로운 플로우와 라임을 유지하면서도 주제의식을 벗어나지 않는 단어의 선택은 전작에 이은 작사가로서 뛰어난 재량을 보여주고, 톤을 자유분방하게 변경하며 여러 화자를 오가는 래핑은 마치 그가 곡 안에서 ‘연기’를 하는듯한 착각에 들게 한다.

가사를 곱씹어봐야 진가를 발휘하는, 결코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앨범이다. 시대를 성실히 성찰하고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흑인의, 흑인에 의한, 그러나 모두를 위한’ 메시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근래 흑인 인권을 위해 이렇게 광대한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있었을까. 감히, 마틴 루터 킹의 환생이다.

– 수록곡 –
1. Wesley’s theory (Feat. George Clinton & Thundercat) 
2. For free? (Interlude)
3. King kunta 
4. Institutionalized (Feat. Bilal, Anna Wise & Snoop Dogg)
5. These walls (Feat. Bilal, Anna Wise & Thundercat) 
6. u
7. Alright
8. For sale? (Interlude)
9. Momma
10. Hood politics
11. How much a dollar cost (Feat. James Fauntleroy & Ronald Isley)
12. Complexion (A Zulu love) (Feat. Rapsody)
13. The blacker the berry 
14. You ain’t gotta lie (Momma said)
15. i
16. Mortal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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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살 권리를 노래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자유와 평등의 국가, 미국의 이면에는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멸시의 역사가 존재한다. 강제 이주 및 노예제로 건국 초기부터 고통을 받았던 흑인들은 노예제가 철폐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 백인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전설적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1939년 ‘Strange fruit’에서 적나라한 비유를 통해 참혹한 현실을 드러냈다. 노예제 폐지는 명목상의 해방이었을뿐, 실질적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짐 크로우 법’을 두고 각층의 목소리가 충돌하고,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등장했던 격동의 1960년대 전후, 혼란스러운 흑인들을 위로한 것은 음악이었다. 샘 쿡은 ‘A change is gonna come’으로 따뜻한 격려를 건넸고, 제임스 브라운의 ‘Say it loud – I’m Black and I’m Proud’는 흥겨운 펑크(funk)로 사람들을 독려했다. 

밥 말리의 ‘Redemption song’퀸시 존스가 주도한 1980년대 인기 가수들의 대형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는 더 넓은 메시지를 함의했지만, 흑인들에게는 연대의 송가와도 같았다. 1990년대에 들어 마이클 잭슨은 ‘Black or white’로 흑백의 화합을 노래했고, 1993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는 대규모 카드 섹션으로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Strange fruit’으로부터 70년이 흐른 지난 2009년, 미국은 건국 이래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맞이했다. 척 베리와 리틀 리차드, 마빈 게이와 제임스 브라운을 거쳐 1980년대 마이클 잭슨에 이르자 음악계 최전선에 서는 흑인 아티스트들도 다수 등장했다. 1990년대를 전후로 힙합과 뉴잭스윙, 알앤비 등 흑인 음악이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고, 어셔와 비욘세, 알리시아 키스 등 걸출한 팝스타들이 연속으로 등장하며 블랙 뮤직은 최전성기를 맞았다. 불과 150여년 전만 해도 ‘민스트럴시'(우스꽝스러운 흑인 분장을 한 백인들의 엔터테인먼트 쇼)가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며 천지개벽이다.

많은 부분에서 인종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미국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흑백 갈등이다. 트레이본 마틴 살인 사건 등 2012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미국 내 잔존하는 흑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고, 흑인 사회는 ‘흑인도 살 권리가 있다'(‘Black lives matter’)며 외치기 시작했다. 음악인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50여년 전 샘 쿡이 그랬듯, 오늘 날을 살아가는 뮤지션들은 음악으로 흑인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인종간 반목을 없애기 위한 노래를 내놓았다.

2013년 말 개봉한 영화 < 노예 12년 >은 비인간적 인종 차별이 얼마나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일깨움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4년 8월,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 총에 숨지는 사태가 일어나자 흑인 사회의 집단 움직임은 뚜렷해졌다. 연말까지 평화 집회와 폭력이 수반된 소요가 계속되며 좀처럼 진정되지 않던 분위기에 커먼(Common)과 존 레전드의 ‘Glory’는 새로운 앤썸(anthem)이 됐다.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을 조명한 영화 < 셀마 >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노래는 성가를 연상케하는 진행과 현실을 녹여낸 가사로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비슷한 시기에 디안젤로가 14년 만에 ‘검은 구세주’라는 뜻의 < Black Messiah >를 발표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거창한 음반 제목과 달리 수록곡 다수가 보편적 사랑 노래로 채워졌지만, ‘우린 그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고 읊조리는 ‘The charade’와 인트로부터 1분 30초간을 1960, 70년대의 급진, 과격주의 흑인 운동조직 ‘흑표당’의 유명 연설들로 채운 ‘1000 deaths’가 흑인 사회를 결집시켰다. 팝의 요소를 차용해 수용 범위를 넓힌 피비알앤비(PBR&B) 등이 주류로 부상한 것과 관계없이 정통의 흑인 음악에 충실하는 완강한 스탠스를 보인 것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듬해인 2015년 3월 발매된 켄드릭 라마의 < To Pimp A Butterfly >는 이 모든 것의 정점이었다. 블루스와 재즈, 펑크(funk)와 알앤비 등 흑인 음악을 총 망라해 자양분 삼고, 거대한 스토리텔링 안에 흑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고통을 녹여낸 걸작에 흑인 사회는 뜨겁게 응답했다. 그는 돈과 섹스, 마약에 몰두하는 여타 랩퍼와는 확연히 달랐다. ‘피부색으로 적이 될 수 없다’고 일갈하는 ‘Complexion(A Zulu Love)’, 뼈 아픈 노예의 역사와 상술한 트레이본 마틴 살인 사건을 각각 언급한 ‘Wesley’s theory’‘The blacker than berry’ 등 앨범의 모든 곡이 가려운 곳을 긁어냈다. ‘마틴 루터 킹의 환생’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 To Pimp A Butterfly >의 충격파가 한창이던 2015년 4월, 백인 경관에 의해 흑인 청년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주일 사이에 2회 연속으로 벌어지자 흑인 사회는 분노에 휩싸였다. 사건이 벌어진 곳 중 하나인 볼티모어에서는 대규모 폭력 시위가 벌어졌고, 비욘세와 아이스 큐브(Ice Cube) 등 많은 흑인 아티스트가 경찰을 규탄하고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인종과 무관하게 지치고 상처입은 볼티모어를 음악으로 위로한 것은 록 레전드 프린스였다. 평소 저작권에 엄격해 유튜브에 동영상 게시도 꺼리던 그는 ‘모두 총을 치워버리고 서로 사랑하자’는 인류애적 메시지를 담은 흥겨운 펑크(funk)곡 ‘Baltimore’를 무료로 공개하며 평화와 화합을 노래했다.

“정의가 없는 곳에는 평화도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또 다시 피 흘리는 날을 겪어야 하나요?
우는 것도, 사람들이 죽는 것에도 지쳤습니다.
모두 총을 치워버립시다.”
– ‘Baltimore’, 프린스(Prince)

지난 2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50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콜드플레이의 몫이었으나, 정작 언론과 SNS를 달군 것은 단 3분간 무대에 오른 비욘세였다. 주체적 여성상을 강조하던 기존 기조에 흑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더한 신곡 ‘Formation’을 슈퍼볼 하루 전에 기습 발매하며 관심을 독차지한 그는, 음원 공개 이튿날 하프타임 쇼에서 선보인 신곡 무대로 단숨에 논란의 중심이 됐다.

검은 제복과 베레모 차림을 한 댄서들의 의상과, 주먹을 쥔 채 하늘로 팔을 뻗는 등의 안무가 1960년대 ‘흑표당’을 떠오르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비롯, 비욘세를 향한 보수세력의 맹공이 이어졌고 급기야 SNS에서는 반(反)비욘세 시위를 도모하는 움직임까지 생겨났다. 노래는 특정 음원 서비스 업체(TIDAL)에서만 판매되었고 뮤직비디오 역시 링크가 없으면 감상이 불가능했지만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했다.

자유와 평등의 국가 미국은 정작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게 온전한 자유, 평등을 허용하지 않았다. 버스의 좌석 구분은 없어졌지만 고질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멸시와 기저에 깔린 백인 우월주의는 아직 남아있다. 빠르게 바뀐 세상에 비하면 지독하게 오래 지속된 갈등이다.

70년 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로 위안을 얻었을 세대의 손자, 손녀들이 이제는 켄드릭 라마와 비욘세의 격려를 받는다. ‘Black lives matter’ 슬로건이 한창 펄럭이는 지금, 미국은 가던 길과 새로운 길, 그 기로에 서있다.

(20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