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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현씨밴드 ‘노래나 부를까’ (2023)

평가: 1.5/5

아이돌 그룹 노래처럼 3분대의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봄과 낭만, 여유, 나른함을 만난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나 뜨거운 감자의 ‘봄바람 따라간 여인’처럼 맑은 봄날에 걸으면서 듣기에 나쁘지 않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했던 미국과 영국의 모던록 사운드로 중심을 이동한 것은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팝펑크와의 접점을 염두에 둔 선택이다. 여기에 이전의 다른 곡들과 거리를 두면서 멜로디 감각을 뽐내려고 했지만 선율 감각은 의지에 미치지 못하고 보컬리스트 ‘나상현씨’의 음정은 둘째치고라도 가사 전달력이 약해 노랫말이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생계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사람에게 누가 되는 제목부터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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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센치(10cm) ‘부동의 첫사랑’ (2023)

평가: 3/5

우리가 왜 십센치의 작은 이야기에 감응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어쿠스틱 선율에 솔직한 경험담을 읊는 청춘 보컬의 합작, ‘부동의 첫사랑’은 공감이라는 팀의 근간에 집중했다. 핵심은 단연 담백한 노랫말로, 가장 소중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을 파고드는 낱말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에 호소한 덕분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변하지 않는,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중의적 의미에서 부동(不動)도 맞춤형 수식어다.

절절하거나, 새벽 감성으로 침전하거나, 혹은 개성이 과하든가 하는 최근 인디 신 흐름 속 산뜻한 틈새다. 스쿨 밴드의 연습 장면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반주도 걸리는 부분 없이 깔끔하고, 권정열의 목소리도 늦깎이 봄을 수놓기 충분하다. 발매일에 맞춰 악기를 든 수많은 군중과 꾸린 합주 플래시몹도 이 공감대를 파고들며 곡 자체가 새롭거나 특징이 없어도 이러한 요소들이 4분이 넘는 러닝타임도 선선하게 채운다. 십센치 톤으로, 최근 자취를 감춘 첫사랑에 대해 영리하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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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황금가면’ (2023)

평가: 3.5/5

재치 있고 유쾌하다. 1990년대부터 청춘의 낭만을 책임지던, 오케스트라로 우아한 발라드를 선보이던, 진중한 만큼 과묵했던 김동률이 경쾌하게 생존을 신고한다. “팬데믹의 끝을 이 노래로 닫을 수 있어 기쁘고 후련하다”는 뮤지션의 말처럼 일상의 변화를 동력으로 4년 만에 내놓은 싱글 ‘황금가면’은 재난의 슬픔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북돋는다.

리드미컬한 도입부부터 생명력이 느껴진다. 재즈풍의 건반과 기타, 드럼이 긴장감을 조성하며 곧이어 김동률의 목소리가 힘차게 포문을 연다. 호흡의 여운을 곱씹던 발라드와 달리 빈틈없이 쪼갠 박자가 활력을 돋우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질주는 뮤지컬 넘버를 떠올리게 한다. 이에 가사를 정성스레 지르밟는 특유의 정직한 창법까지 더해져 어린 시절 꿈꿨던 영웅 ‘황금가면’의 만화적 상상력과 연결된다. 과감한 시도라기엔 ‘Jump’와 ‘Melody’ 같은 전작의 확장판에 가깝지만, 김동률식 위로와 정취는 여전히 젊고 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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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 ‘퀸카(Queencard)’ (2023)

평가: 2.5/5

(여자)아이들은 작년 발매된 ‘Tomboy’로 위기에서 빠져나와 뒤이은 ‘Nxde’로 2연타에 성공했다. 두 싱글의 프로듀서이자 리더인 소연의 의도는 명확했으며 대중의 허점을 겨냥하여 통쾌함을 주었다. 7개월 만에 발매된 ‘퀸카(Queencard)’ 역시 앞선 두 곡과 이어진다. ‘Tomboy’를 일렉트로닉한 스타일로 변주하여 다시금 2000년대 음악을 가져왔고, 메시지는 ‘Nxde’의 ‘있는 그대로의 나’와 비슷하게 영화 < 아이 필 프리티 (I Feel Pretty) >의 자기 긍정적인 메시지를 빌려왔다.

그럼에도 전작만큼의 재미를 주진 못한다. 보컬에 덧입혀진 전자음은 멤버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살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던 팀을 획일화하며, 흐릿한 멜로디 라인에 ‘I’m a 퀸카’라는 훅만 공허하게 맴돈다. 바디 포티지브라는 의도 아래 ‘My boob and booty is hot’라고 외치지만 결국 이들은 루키즘을 주도하는 산업의 총아다. 온전히 진심이더라도 총명하게 맹점을 짚어내던 가사에 생기는 균열을 막을 수는 없다. 당장 (여자)아이들의 방향성은 유보지만 공고함은 이미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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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My World’ (2023)

평가: 2.5/5

에스파에게 이번 EP는 특히나 중요하다. 내부에서는 전작 < Girls >의 부진과 소모적인 갓더비트(GOT the beat) 활동에 이수만 프로듀서가 강제했다는 ‘나무 심기’ 가사 논란까지 있었고, 외적으로도 SM 엔터테인먼트의 인수합병 등 불리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악당 블랙맘바와 싸우던 가상 세계 광야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진입한 것은 접근장벽을 낮추고 대중적 입지를 되찾으려는 의지로 읽을 수 있다.

나이비스(nævis)의 피쳐링을 지우면 에스파의 곡이 아니라 해도 믿을 만한 ‘Welcome to my world (Feat. 나이비스)’와 달리 타이틀곡 ‘Spicy’는 절충적이다. 일상적 풍경 속 온갖 이상 현상이 벌어지는 뮤직비디오처럼 복잡한 세계관 가사를 내려놓았으나 자극적인 질감의 외피는 유지하고 있다. 사이버 전사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다른 말로 하면 타협이다. 그룹의 색채와 대중성을 모두 잡으려고 한 탓에 결과적으로 ‘Spicy’는 독창성도 옅고 클리셰적인 맛도 부족하다. 두 번 등장하는 포스트 코러스(‘Don’t stop 겁내지 마’)를 제외하면 답답한 단조 멜로디는 마땅히 해소되지 못하고, 귀 아픈 전자음이나 곡을 가득 채운 랩도 유의미한 구심점으로 기능하는 대신 f(x)의 ‘Hot summer’나 있지(ITZY) 등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쟁점은 특정 사운드가 아니라 태도에 있다. 진한 PC 뮤직 스타일 리듬의 ‘Salty & sweet’이 안일한 훅과 함께 침몰하는 반면, 선율과 음색이라는 기본 재료 위주로 꾸린 ‘Thirsty’와 ‘I’m unhappy’가 오히려 와닿는 대조적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레드벨벳의 잔상이 강하지만 감각적인 후렴과 소셜 미디어에 반감을 표하는 가사 등 곡 자체의 매력은 출중하다. 급진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면 아예 보편성의 측면으로 과감히 파고드는 것도 하나의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미 하반기 또 다른 앨범을 예고했듯이 신보는 그룹에게 드리워진 부정적 이슈를 일차적으로 씻어내려는 전략적인 수다. 당연히 음악적으로도 속 시원한 해답보다는 다음 단계 및 장기적 행보를 둘러싼 고뇌의 과정에 가깝다. 복귀와 함께 이미지 확장이라는 자체 목표 완수에는 성공했으니 이번의 도움닫기를 이어질 도약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 My World >는 영토 점령의 선포보다는 경계를 넘어 관문을 여는 신호다.

-수록곡-
1. Welcome to my world (Feat. 나이비스)
2. Spicy
3. Salty & sweet
4. Thirsty
5. I’m unhappy
6. ‘Til we mee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