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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 ‘Don’t go yet'(2021)

평가: 3/5

정규 3집 < Familia >를 위한 전조 ‘Don’t go yet’은 기존 어느 곡보다도 라틴 팝 요소를 충실히 반영한다. 전주를 치고 나오는 플라멩코 기타부터 자연스레 합류하는 리드믹한 퍼커션과 브라스, 이에 격렬한 분위기를 북돋는 합창단의 등장까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간결한 리듬 배치로 침착하게 유혹하는 ‘Havana’와 가성의 첨가로 역량 피력에 초점을 둔 ‘Never be the same’이 ‘Despacito’가 가져온 라틴 팝 유행에 탑승하며 이러한 소재를 이용하는 단계였다면, 이번 리드 싱글은 본격적인 라틴 팝의 유일 총아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 Romance >의 의도에 가깝다.

‘아직 떠나지 마’라는 노랫말은 간절하게 상대의 잔류를 갈구하지만, 정열적인 분위기 아래 펼쳐지는 것은 이 순간에 도취하기 위한 율동적 파티 사운드다. 중간에는 어눌한 어투의 랩 구간이 짧게나마 등장하며 예상치 못한 환기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동적 요소의 과포화 조합은 조금 산만하게 다가올지라도 아무래도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카밀라 카베요에게는 상황을 타개할 한 방이 필요하고, 특색을 정확하게 포착한 ‘Don’t go yet’의 탄생은 목적을 명확히 증명하기 때문. 비교적 애매한 노선에 머무르던 전작보다 더욱 강력하게, 그리고 확실한 방식으로 정체성 확립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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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3. 라틴 음악이 가진, 스페인어 이상의 깊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연초에 2020년을 정복할 듯 포문을 열었던 건 라틴 음악이었다. 2월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1990년대 라틴 팝 열풍의 주역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가 헤드라인 하며 ‘라틴 프라이드’를 내세웠다. 함께 등장한 가수 제이 발빈(J Balvin)과 래퍼 배드 버니(Bad bunny)역시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레게톤의 선풍적인 유행을 이끈 인물들이다. 라틴계는 미국 유색인종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라틴 음악은 이미 한국의 대중음악에도 깊숙이 침투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럴수록 그 맥락과 저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남서부 영토의 대부분은 멕시코에게서 갈취했고, 샤키라의 출생지 푸에르토리코는 지금까지도 미국의 식민지로 남아있다. 애초에 미국에서 영어 다음으로 사용자가 많은 언어가 스페인어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자본주의는 수많은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어 넣어,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을 맡겼다. 이들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않는 이중성이다.

라틴 음악은 이런 태도와는 별개로 대중에게 사랑받아왔다. 쿠바 이민자 출신 글로리아 에스테판 &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Gloria Estefan & Miami Sound Machine)이 ‘Conga’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에 올랐던 1986년은 미국이 공산국가 쿠바와 대립하던 냉전 시절이다. 리키 마틴과 산타나가 인기를 끌고, 라틴 그래미까지 따로 개최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미 정부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벌였다.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나,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Despacito’가 대히트를 친 2010년대 후반은 트럼프가 당선돼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고 그 일환으로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라틴’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은 이 애증과 뿌리를 공유한다. 막상 ‘라틴 음악’ 하면 스페인어와 더불어 어딘지 모르게 고혹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그 이상으로 일관적인 설명을 덧붙이기 힘들다. ‘라틴’이 아우르는 지역과 역사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라틴 음악’은 악기나 곡의 구성 같은 음악적 특성 대신 창작 주체의 국적이나 가사의 언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케이팝’만큼이나 두리뭉실한 단어다.

스패니시 기타를 앞세운 정열적인 발라드도, 멕시코의 민요에 현악기와 브라스가 추가된 흥겨운 마리아치도, 피아노를 타악기 쓰듯 사용하는 빠른 리듬의 아프로-라틴 재즈도, 강렬한 비트가 특징인 푸에르토리코의 레게톤도 모두 ‘라틴’이다. 이 음악들이 고리타분한 주류에 대한 ‘대안 음악’으로서 받게 된 사랑의 이면에는 디테일들을 뭉뚱그려 ‘이국의 것’으로 취급하는 일반화의 시선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중남미, 혹은 이베리아반도 출신이라고 해서 한가지 인종의 사람들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식민활동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물론이고, 19세기 무렵부터는 많은 아시아 출신 막노동꾼들도 정착해 ‘쿨리'(coolie)로 경멸받으며 살기 시작했으니, 비교적 피부가 하얀 편인 제니퍼 로페즈나 샤키라가 아무리 ‘라틴 프라이드’를 외쳐봤자 얼마나 대표성이 있느냐는 논리다.

게다가 흑인 차별 반대를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 시간에 무릎을 꿇으며 시위했던 선수 콜린 케이퍼닉(Colin Kaepernick)을 리그에서 퇴출하다시피 한 NFL의 행태 때문에,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연해 이들의 수익 창출을 도운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는 아프로-라티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렇듯 ‘라틴’이 뭔지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라틴계 사람들이 미국에 살면서 공유하는 경험이나 정서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 중 자신의 뿌리를 사랑하지만 그곳의 붕괴하는 정치, 사회, 또는 경제를 보며 갖게 되는 감정이나, 미국 경제의 최하층으로 편입된 이민자의 입장을 간접적으로나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에서 마냥 정열과 흥, ‘이국적인 분위기’만 읽어내기엔 그 이면에 너무 많은 맥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