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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리조(Lizzo) ‘Rumors (Feat. Cardi B)’ (2021)

평가: 3.5/5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리조는 자신의 외모를 멸시하고 비웃은 혐오자와 악플러를 되치기로 받아 넘겼고 임신한 카디 비는 생명을 잉태한 불룩한 배를 드러내며 리조의 당찬 투쟁에 동조했다. 1980년대에 활동했던 뉴웨이브 밴드 로미오 보이드의 보컬리스트 데보라 아이얄이나 인디 록 밴드 가십의 베스 디토와는 달리 노골적인 섹스 담론으로 반대파를 숙청한다.

정직한 드럼 박자에 업비트와 싱커페이션을 활용한 베이스와 타악기의 비트 쪼개기는 곡의 분위기를 흥겹게 끌어올리고 간주에 등장하는 혼섹션은 1970년대의 펑크(Funk)에서 수혈 받았다. 복고적이면서도 트렌드에 앞서가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다. 아이들을 둔 부모가 꺼릴 노래 ‘Rumors’는 2021년 최고의 페미니즘 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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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노르마니(Normani) ‘Wild side (Feat. Cardi B)'(2021)

평가: 2.5/5

소울풀한 보컬과 뛰어난 춤 실력으로 카밀라 카베요와 함께 피프스 하모니의 주축이었던 노르마니는 그룹의 활동 중단 이후 다른 뮤지션과의 협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듀엣으로 참여한 샘 스미스의 ‘Dancing with a stranger’, 칼리드의 ‘Love lies’가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비욘세의 음악을 떠오르게 한 첫 솔로곡 ‘Motivation’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내세워 성공적인 홀로서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년 만에 발매하는 데뷔 앨범의 리드 싱글 ‘Wild side’는 그의 독자적인 경력을 본격적으로 쌓아갈 시작점이다.

2020년을 뜨겁게 달군 카디 비의 ‘WAP’ 뮤직비디오에 특별출연했던 그는 다시 한번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둘의 인연을 이어간다. 쿵쿵거리는 묵직한 드럼 비트가 만든 긴장감과 함께 노르마니의 끈적한 음색 그리고 카디 비의 야성적인 래핑은 부드러운 알앤비 사운드에 관능적인 분위기를 더하지만 수위 높은 노골적인 가사와 강한 임팩트를 남긴 피처링으로 본인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제2의 비욘세’라는 수식어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음악을 통해 그에 부합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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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팝 싱글

코로나 19 범유행은 온 세상을 마비시켰다. 이 혼돈의 와중에도 음악은 충실히 현실을 투영했다. 충격적인 눈 앞을 피해 대대적인 과거 정서로의 이주 릴레이가 벌어졌고, 현재 진행형의 차별과 편 가르기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랜 시간 공고히 자리하던 팝 시장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도 있었다. IZM 선정 올해의 팝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위켄드(The Weeknd) ‘Blinding lights’ 

올해 많은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보다 큰 지지를 얻은 싱글은 없었다. 2020년 최고의 히트 넘버, ‘Blinding lights’!. 히트도 그냥 히트가 아니다. 28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5위 내 진입, 40주간 10위 내 랭크 등 신기록을 경신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이 노래를 모든 부문의 후보에서 제외한 그래미 어워드를 국내외 대중과 각종 매체가 냉담한 반응으로 받아치며 그들의 공신력을 비아냥대는 꼴이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위켄드 본인도 그들을 ’디스’했다.)

곡 전반에 깔린 패드 악기가 공간감을 형성하고 1980년대 신스팝을 재현한 신시사이저 리드가 탄성을 절로 터뜨린다. 히트 작곡가 맥스 마틴(Max Martin)이 제대로 일을 냈다. 그 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퇴폐적인 사랑을 위켄드는 어느 때보다 강렬한 퍼포먼스로 내비치는데, 흡사 영화 < 조커 >가 겹쳐가는 뮤직비디오 속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앤젤레스의 도심을 피 묻은 분장으로 떠도는 그의 모습이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작금의 복고 유행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그것을 멋지게 자기화(自己化)한 싱글. 그가 현세대 가장 걸출한 뮤지션 중 하나라는 것을 무리 없이 입증했다. (이홍현)


도자 캣(Doja Cat) ‘Say so’ 

디스코 열풍과 SNS를 통한 챌린지. 올 한해 팝 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한꺼번에 설명할 때 가장 적확한 곡이 아닐까. 찰랑찰랑 거리는 펑키한 기타 리프를 타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도자 캣의 몽환적인 음색에 보다 감각적인 터치를 더하는 니키 미나즈의 섬세한 래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빚어내는 두 아티스트의 시너지가 여성 래퍼가 득세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주도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이 노래를 통해 니키 미나즈는 그토록 염원하던 빌보드 No.1의 커리어를 거머쥐었으며, 첫 여성 콜라보레이션 HOT 100 1위라는 쾌거까지 그들의 것이 되었다. 밈으로 군림하는 데에 있어 단단한 음악적 내실이 필수적임을 알려준, 올 한 해 팝 트렌드 일등 단타강사. (황선업)


앤더슨 팩(Anderson .Paak) ‘Lockdown’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어.
제재 조치(Lockdown)라더니,
우리에게 총알을 날리더군.”

2년 전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를 소개하며 “2018년의 미국은 누군가에겐 지옥이었다”라 운을 띄운 바 있다. 2020년의 미국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1,340만 명을 감염시키고 26.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백인 경찰관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거리에서 흑인들이 총을 맞아 살해당하고 비밀 경찰이 잠입해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전염병과 공권력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M)’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자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앤더슨 팩은 이 모든 상황을 담담히 관찰하여 정제된 분노의 언어로 ‘Lockdown’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전쟁 같은 일상 속 지쳐버린 가장의 목소리로 “흑인 생명을 휴지쪼가리 취급하는”, “우리가 죽어갈 땐 침묵하다 나중에서야 소리를 내는” 사회에 울분을 토한다. 뮤직비디오 속 제이 록(Jay Rock)이 조목조목 매일 마주하는 공포를 설명해주지만 세상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얼굴을 가리고 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2020년의 미국,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 이상은 멀리 있었고 분노와 응축된 한은 이 노래처럼 가까이 있었다. (김도헌)


다베이비(Dababy) ‘Rockstar’

아마도 훗날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시점을 대표하는 노래로 이 곡을 고를 것 같다. 노래 자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총을 쏴 괴한을 죽인 실제 사건을 묘사해 ‘강한 흑인’을 부각한 데다 바로 터진 조지 플로이드 사태와 BLM 무브먼트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발 빠르게 몇 구절을 추가한 리믹스 버전, 관련 뮤직비디오를 냈다. 하지만 빅 히트는 이러한 사회성보다는 곡의 우수 청취 품질에 기인한다. 

어쿠스틱 기타의 애절하고 잔잔한 선율부터 ‘일단 듣게 만들고’ 프리스타일을 머금은 특유의 중저음 래핑과 기품 있는 플로로 ‘라디오프렌들리’를 주조한다. 무지 멜로딕하다. 3년 전 차트를 장악한 포스트 말론의 곡목도 같은 록스타다. 이미 록스타들을 압도한 랩스타들이 기울어가는 록을 향해 건네는 측은지심인가. 아니면 록을 먹어 치우고 난 후의 악어눈물 레퀴엠? 그러니까 더 록은 슬프다. 정반대 표제어로 거역할 수 없는 힙합 시대를 천명한 2020년 힙합 히트 영순위 넘버. (임진모)


로디 리치(Roddy Ricch) ‘The box’

트랩은 강고하다. 막강한 권세는 탄생지인 미국 남부를 넘어 갱스터 랩의 고장인 서부에도 전해졌다. 단지 확장만 한 것이 아니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높은 성적까지 이루게 했다. 캘리포니아주 콤프턴 출신 래퍼 로디 리치의 ‘The box’는 트랩이 여전히 대중음악의 핵심 장르임을 시사한다.

로디 리치는 갱스터 삶에 대한 찬양으로 ‘The box’를 채운다.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약을 팔고, 예쁜 여자를 곁에 둔 걸 자랑하며, 경찰도 두렵지 않다면서 내내 범죄, 향락, 폭력이 버무려진 허세를 부린다. 시종 배경에 깔리는 “이얼” 애드리브와 훅 일부 문장의 마지막 음절을 끄는 보컬, 이 부분에 추가되는 화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불건전한 내용을 순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식지 않는 트랩의 인기, 청각적 재미를 제공하는 요소에 힘입어 갱스터 랩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순간을 ‘The box’가 기록했다. (한동윤)


카디 비(Cardi B)
‘WAP (Feat. Megan Thee Stallion)’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은 언제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성’에 관한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카디비는 올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아랫도리(Wet Ass Pussy)’를 노래하고,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하며 춤을 춘다. 선정성의 정도는 논할 필요도 없다. ‘카디비 WAP 부모님 반응’ 등의 리액션 비디오가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져갔으니, 단연 2020년의 뜨거운 감자였다.

흑인과 백인, 차별과 인정, 비난과 비판 사이. 카디비는 잠식된 평등 앞에서 ‘WAP’을 외친다. 노래를 장악하는 키워드 ‘섹스’가 세간에서 화두였지만 결국 진짜 메시지는 차별에 대한 대항이다. 흑인이자 여성인 카디비는 성행위를 비롯한 모든 행위의 키를 자신이 쥐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렇듯 대중을 매혹시킨 건 결코 자극적이기만 한 ‘섹스’가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가감 없이 격파한 ‘카디 비’ 그 자체다. (조지현)


퓨처(Future)
‘Life is good (Feat. Drake)’

퓨처가 랩 게임에 남긴 족적은 분명하다. 트랩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싱잉, 멈블 등 다양한 랩 스타일의 초석을 다지며 주류로 이끌어 온 그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꾸준하게 차트에 이름을 새겼고, 2010년대 랩 문법을 빛내는 가장 선명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됐다. 드레이크와 함께한 ‘Life is good’은 그가 쌓은 커리어를 다시 한번 증명해내며, 새롭게 이어질 미래의 밝기를 더한다.

각기 다른 비트의 구성 속 유려한 드레이크의 래핑을 지나 등장하는 퓨처의 실력이 핵심이다. 타이트하게 배치한 가사의 끝에 일정하게 등장하는 ‘우’를 고유한 플로우로 만들어내는 곡 구성 능력은 그가 아직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 결국 빌보드 핫 100 2위에서 8주간 머무르며 1위는 하지 못했지만,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끝없이 상승하며 업로드한 지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13억 회를 넘어섰다. 많은 도전자가 있었지만, 힙합 트렌드의 시작부터 나아갈 방향까지. 그 중심엔 여전히 퓨처가 있다. (손기호)


베니(BENEE)
‘Supalonely (Feat. Gus Dapperton)’

올해도 틱톡(TikTok)의 영향으로 많은 곡들이 재조명을 받았다. 뉴질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베니(BENEE)의 히트 싱글 ’Supalonely’도 그 대표적인 예다. 작년 11월 발매한 후 몇 달이 지난 올해 봄, 명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노래의 후렴구가 틱톡에서 15초 영상 댄스 챌린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9위까지 오르며 그와 피쳐링에 참여한 거스 대퍼튼(Gus Dapperton)에게 첫 미국 시장 성공을 안겨주었다. 막 EP를 내놓은 신예가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의 경쾌한 분위기와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슬픈 정서가 감지된다. 작년 연인과 헤어지고 실연의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Supalonely’는 “내가 망친 거 알아 / 난 그냥 루저일 뿐이야”라며 아티스트의 쓸쓸한 감정을 투덜댄다. 뮤직비디오의 컬러풀한 배경 속 홀로 춤을 추는 그는 꼭 코로나 봉쇄령에 ‘집콕’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 같기도. 감각적인 음악성이 돋보이는, 과연 엘튼 존의 극찬대로 ‘차기 글로벌 스타’의 탄생이다. (이홍현)


방탄소년단(BTS) ‘Dynamite’ 

모든 목표를 이루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과 미국 라디오의 에어플레이 접수, 그래미 후보, 해외의 여러 음악상 수상 그리고 팬더믹 상황으로 무기력해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다는 인류애적 목적도 달성했다. 전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대한민국 노래로는 두 번째로 세계를 정복한 노래 ‘Dynamite’는 그동안 우리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웠다. 

브루노 마스와 마크 론슨의 ‘Uptown funk’처럼 변박이 거의 없는 정박의 뚜렷한 비트, 명징하게 들리는 마룬 파이브 스타일의 16비트 리듬 기타와 리듬감을 배가시키는 단단한 베이스, 중반부터 등장하는 어스 윈드 & 파이어 풍의 혼섹션까지 ‘Dynamite’는 도전과 패기, 실험이 허용된 방탄소년단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1970년대의 소울/펑크(Funk) 음악으로 다양한 연령대와 모든 인종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음악의 진폭을 확대했다. 훗날 2020년을 상징하는 노래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진정한 대중음악이다. (소승근)


레이디 가가(Lady Gaga)
‘Rain On Me (Feat. Ariana Grande)’ 

레이디 가가는 지난 몇 년간 댄스 플로어에 일체 발을 들이지 않았다. < ARTPOP >의 대중적, 음악적 실패에 이어 거듭된 불행한 개인사로 무너진 그는 스탠더드 재즈와 컨트리 팝을 탐미하며 스테파니 조앤 저마노타를 정의하기에 급급했다. 본체를 잃어버린 페르소나는 존재할 수 없기에 누군가는 변절이라고 부를, 편안한 도피처를 찾아야만 했던 레이디 가가. 그토록 자신을 배척한 기성세대의 찬사를 받으면서까지 그가 원했던 건 살아갈 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몇 해를 굽이돌아 무대에 선 그가 이렇게 외친다. “어디 한 번 해봐. 차라리 말라 비틀어지겠어. 적어도 난 살아있으니까”. 그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음악은 발가벗겨진 언플러그드 사운드가 아닌 한껏 왜곡된 전자 기타와 건반, 드럼 루핑으로 포장된 하우스다. 레이디 가가가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가장 먼저 밟은 곳, 바로 이 댄스 플로어에서 그는 그럼에도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같이 맞서줄 동료와 함께. ‘Rain on me’는 그의 삶의 의지의 표명이자 관철이다. (정연경)


2020 IZM 연말 결산 페이지

2020 올해의 가요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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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WAP, 카디 비의 즐거운 역할 바꾸기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래는 래퍼 카디 비(Cardi B)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이 8월 7일 발표한 ‘WAP’다. 발매 첫 주만인 8월 18일, 총 9300만 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44번째 곡이 됐다. 종전 최고 기록인 아리아나 그란데 ‘7 rings’의 첫 주 총 8530만 회 스트리밍 기록을 가뿐히 제쳤다.

하지만 ‘WAP’는 다른 의미에서 훨씬 ‘뜨거운’ 곡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축축이 젖은 아랫도리(Wet-Ass Pussy)’다. 1990년대 DJ 프랭크 스키(Frank Ski)의 노래 일부분을 따온 샘플은 러닝타임 내내 ‘여기 창녀들이 있어(Whores in the house)’를 읊조린다. 제목, 가사, 뮤직비디오까지 파격적인 선정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이 노래는 가사 한 줄 해석하기도 곤란할 정도다. 쉽게 말해, 굉장히 야하다.

거리의 스트리퍼로 출발해 ‘Bodak Yellow’로 빌보드 정상에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카디 비, 올해 비욘세와 함께 ‘Savage’를 히트시킨 메간 더 스탈리온의 자신감이 곡 내내 구체적인 판타지와 성행위 묘사로 드러난다. 카디 비가 원기 왕성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앞세워 선언하면 메간은 기관총처럼 쏘아 붙는 랩으로 에너지를 더한다. 간결한 구성 위 오로지 힘, 권력, 에너지로만 곡 전체를 꽉 채운다. 

때문에 ‘WAP’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노래와 아무 상관없는 슈퍼스타 카일리 제너의 깜짝 출연도 논란이지만 가사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표현에 관대한 미국이라 해도 그 허용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노랫말과 뮤직비디오는 논란의 대상이다.

James Bradley | WAP | Know Your Meme

‘WAP’ 논란을 부채질한 것은 미국의 보수 측 인사들의 발언이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공화당 후보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는 트위터를 통해 ‘카디 비와 메간은 하나님 없이 자란, 강한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들의 전형’이라며 ‘WAP를 듣고 내 귀에 성수를 붓고 싶었다’는 혹평을 퍼부었다.

같은 주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최근 공화당 하원 경선에서 탈락한 디애나 로레인(Dianna Lorane) 역시 “역겨운 ‘WAP’가 여성 인권을 100년 정도 후퇴시켰다.”라 불평하며, 카디 비와 유세를 함께한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2020년 민주당 대선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지지자들을 ‘쓰레기’라 비난했다.

힙합을 ‘쓰레기 음악’이라 평한 바 있는 유명 우파 논객 벤 샤피로(Ben Shapiro)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결과”라며 비꼬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나 인권에 관심 없는 ‘젖은 엉덩이’에 불과하다. 이런 의견을 비판하면 바로 ‘미소지니(mysogyny : 여성 혐오)’로 찍히기 십상”이라 조롱했다. 과연 이들의 발언처럼 ‘WAP’는 그저 천박하고 음탕하게 색만 밝히는 노래인 걸까? 

카디 비의 ‘19금 발언’은 그리 낯설지 않다. ‘WAP’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SNS를 통해 ‘뜨악’할만한 발언, 혹은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 혹은 큰 웃음(?)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음담패설만은 아니었다. 힙합 그룹 미고스(Migos) 멤버이자 남편 오프셋(Offset)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오늘 X 좀 빨리고 싶나 본데?’라 능청스레 감탄하면서도, 신곡 발표 후 여성들에게 그들의 ‘WAP’를 유지하는 방법을 코믹하고 진지하게 설파할 때도 항상 대화 속 성적 주도권은 언제나 카디 비 본인, 즉 여성에게 있었다.

스트리퍼 출신임을 거리낌 없이 강조하는 카디 비는 언제나 과감하게 자신의 욕망과 성적 매력을 표현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첫 1위의 영예를 안긴 ‘Bodak yellow’부터 ‘I like it’까지 그의 서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직접 남자를 고르며 명품에 둘러싸여 있는 삶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진실하고 거리낌 없는 감정 표현이야말로 카디 비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로 만든 핵심 요소다. 

All the hot girl looks to copy in Cardi B and Megan Thee ...

’WAP’ 역시 숨김이 없다. 대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은 음탕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성이 여성을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삼고 성관계를 노래하면 ‘대범하고 멋진’ 것이 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의 욕망은 부정되기 일쑤다. 숱한 힙합 노래들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는 반면, 두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노래하는 ‘WAP’가 남성을 수단화하지 않음에도 몰매를 맞는 데서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17세기 노예 신분으로 미 대륙에 끌려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에 시달려왔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치세 하의 도덕적인 ‘집안의 천사’ 여성상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흑인 여들은 성적 능력이 특히 발달한 음탕한 존재라는 차별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블랙-피메일(Black-Female) 들은 숱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며 거의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으나 욕망의 주도권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Recognizing Racist Stereotypes in U.S. Media | by Suzane Jardim ...

‘WAP’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에서도 이세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래만큼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19금 노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WAP’만큼 화제와 논란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2013년 MTV 비디오 어워즈에서 로빈 시크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혀를 내밀 때도, 아리아나 그란데가 격렬한 하룻밤을 보내고 게다리 걸음을 걷는다는 ‘Side to side’를 부를 때도, 두아 리파가 ‘밤새 몸을 섞자’는 ‘Physical’을 노래할 때도 여론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WAP’를 불편히 여기는 시선에는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있고, 이는 성차별은 물론 인종차별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동시에 이들 대중은 ‘WAP’의 욕망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의 발화에는 무관심하다. 카디 비는 이를 꼬집어 “숱한 여성 래퍼들이 사회를 비판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관심도 없더니, ‘WAP’에는 모두가 떠들썩하다”는 의견을 SNS에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만 해도 랩소디(Rapsody), 노네임(Noname),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사회 및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주목받은 이는 슈퍼스타 비욘세 외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음악의 역사 속 블랙 커뮤니티에게 섹스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졌다. 로큰롤과 재즈부터가 섹스를 뜻하는 속어로부터 출발했다. 일찍이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그 자신을 ‘섹스 머신(Sex machine)’이라 칭한 이래로 수많은 펑크(Funk) 디스코 밴드들이, 프린스(Prince)와 1980년대 댄스 가수들이, 힙합과 알앤비 스타들이 소리 높여 ‘19금’ 노래를 불렀다. 이들에게 섹스는 외설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활력과 생기의 상징이었다. 

‘WAP’ 역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아티스트들의 맥락 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미니카 혈통의 카디 비와 아프로 아메리칸 메간 더 스탈리온은 미국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자랑스레 꺼내는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는 외설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발화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콤플렉스(Complex)>의 평가를 가져오자면 ‘WAP’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독립, 지배’를 노래하는 곡이며 ‘여성 임파워링의 상징’과 같은 곡이다. 미국 NBC 저널리스트 수잔 라미레즈가 ‘즐거운 역할 변경’이라 평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카디 비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과격한 일탈은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그 저의의 음란함이 포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