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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추다혜차지스 인터뷰

지난해 IZM을 비롯, 다양한 매체와 평단의 연말 결산 선정 과정에 이견이 없었던 단 하나의 작품이 있다. 2017년 NPR 타이니 데스크 라이브(Tiny Desk Live)에 출연한 밴드 씽씽의 일원, 소리꾼 추다혜가 꾸린 밴드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다.

대중음악계, 국악계, 인디 음악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는 담대하게도 무가(巫歌)와 블랙 뮤직을 혼합해 ‘코리안 펑키 샤머니즘 뮤직’이라는 야심 찬 출사표를 내놓았다. 노선택과 소울소스에서 기타를 친 이시문, 까데호의 베이스와 드럼을 맡은 김재호, 김다빈과 함께 사이키델릭, 힙합, 레게, 소울, 펑크(Funk), 재즈가 온통 뒤섞인 오색천을 하늘하늘 내려가며 가락을 탄다. 

만남 전 예상과 달리 추다혜차지스와의 인터뷰는 빈틈없이 즐겁고 해맑았다. 하지만 발랄함 속 본인의 의지를 피력하는 부분에서는 네 멤버 모두 눈이 반짝였다. 오래도록 금기시되어왔으며 교육 과정에도 배제된 무속 신앙과 굿판을, 누구의 투자나 도움 없이 스스로 탐구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을 즐겁게 풀어내며 소개해갔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광기의 복원’! 그것이 추다혜차지스에게 내려온 영험한 기운이다.

과거 세대는 무속 음악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기억한다. 씽씽으로 성공적인 활동을 펼쳤던 추다혜가 무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다혜 : 2016년 한불상호교류의 해 행사 일환으로 개최된 ‘제 27회 파리 여름축제’ 한국포커스 <We Are Korean, Honey!> 행사에서 굿을 처음 접했다. 무대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굿, 무당, 무가라 하면 매체를 통해 접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머릿속에 주를 이루고 있었다. 공연을 보니 무섭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이후 무대에 올랐던 무당을 찾아가 그의 법당에서 전통 굿을 재차 관람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거부, 부정한 것에 대한 인식이 모두 씻겨 내려가고 예술가의 면모가 보이더라. 

굿에는 상업적인 굿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굿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추다혜 : 내가 본 무당은 강신무(降神巫)였다. 신이 내리지 않은 무당은 세습무(世襲巫)라 하여 세습도 가능하고 워크숍 등지를 통해 교육도 가능하다. 반면 강신무는 신이 몸에 직접 실리기에 처음 보면 충격적인 요소들이 많다. 작두를 타거나 하는 굿이 강신무라 보면 된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당이 걸어왔던 험로와 인생역정이 너무도 깊게 와 닿으며 인간적인 감화의 경험을 가졌다. 동시에 그들은 예술의 형태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 지점에서 내가 무언가를 끌어오고 싶었고, 영적인 존재를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고 치유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추다혜씨 외 타 멤버들은 어떻게 추다혜차지스에 합류하게 됐나. 

김재호 : 윈디시티 시절부터 이 음악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과거 재즈 그룹 레드선과 함께했던 김덕수와도 함께한 경험이 있었다. 블랙 뮤직을 주로 연주해온 입장에서 무가와 굿 장르와의 공통점도 많이 발견했다. 윈디시티 시절 이 장르에 대한 실험도 해봤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이시문 : 노선택과 소울소스 활동 시절 김율희 명창과 함께 판소리와 밴드 음악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던 중 씽씽의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아 추다혜와 교류하게 되었다. 추다혜와 함께 제주도를 방문해 굿 한 판을 보고 나니 그간 갖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당의 지휘에 따라 시작과 끝이 자유로이 맺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다빈 : 초등학교 때 사물놀이를 잠깐 배운 적은 있었지만 국악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이후 가요 세션, 록 밴드 등 다양한 음악을 해왔지만 국악, 무가의 경우는 내게 아주 새로운 장르였다. 꾸준히 음악을 듣다 보니 흥미가 생겼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는 2020년 IZM 선정 올해의 가요 앨범에 올랐다. 이외에도 많은 평단 및 매체들이 앨범에 대해 만장일치 호평을 내리고 있다.

추다혜 :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매체들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이시문이 그 글들을 보여줬을 때 ‘우리 음악이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시문 : 어느 정도 호평을 예상하긴 했다. 처음 믹스를 들은 순간부터 느낌이 왔다 (웃음).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었다. 

김재호 : 비슷한 의견이다. 소재도 신선했고, 처음 믹스와 비교했을 때 엔지니어 우치다 나오유키의 최종 믹스 후 작업물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김다빈 : 앨범 발매 후 나도 이 앨범을 많이 들었지만 많이 기대하진 않았다. 예상보다 큰 관심에 감사한다. 

앨범 해외 유통은 동양표준음향사가, 국내 유통은 포크라노스가 맡고 있는데 제작은 추다혜가 도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추다혜 : ‘나를 기리는 작품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웃음). 제작비 펀딩도 없고,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이 음악을 누가 들을지, 어떤 소비층에게 어필할지는 사실 고려한 지점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음악은 국악계나 대중음악계 모두 낯선 음악이었다. 걱정은 있었지만 잘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두려움 반, 용기 반이었다.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추다혜와 이시문이 각 무가로부터 멜로디를 가져온 것으로 안다.

이시문 : 기존 가락을 변주한 것은 사실이나 ‘작곡이 아니다’라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공을 들였다. 가사와 코드를 우선 정리한 상태로 작업을 시작했고, 그다음 변주를 더하는 방식으로 곡을 완성해갔다. 

추다혜 : 원하는 무가를 먼저 정한 다음 뼈대를 갖춰놓고 즉흥 연주를 통해 틀을 잡아갔던 것 같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가 무가를 재해석하는 데 주로 활용하는 장르는 블랙 뮤직이다. 음악적으로 어떤 형식을 통해 무가를 표현하고자 했나. 

추다혜 : 곰곰이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펑키(Funky)함이었다. 무가는 신나고 재미있는, 댄서블 한 음악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 고민이 많았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가의 ‘공수’다. 공수는 연주 없이 말로만 풀어나가는, 신이 인간을 향해 말을 거는 형식으로, 듣는 이들에게 즉흥적인 느낌이 나도록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었다. ‘비나수+’ 뒤 쪽 ‘오늘은 말이야~’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노래가 아닌 공수 부분에 멜로디와 음가를 채우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김재호 : 그 지점이 우리에겐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다. 틀을 정해서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멤버 한 명 한 명이 공수에 맞춰 유기적으로 멜로디와 리프, 키를 만들어 추다혜의 목소리와 흐름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블랙 뮤직과 더불어 레게, 사이키델릭, 덥 등 다양한 장르들이 앨범에 녹아있다.

이시문 : 아무래도 우리 팀 멤버들이 레게를 연주하던 사람들이라 그런 곡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비나수+’, ‘에허리쑹거야’ 같은 트랙이 그렇다. 그 외에는 구성을 했다기보다는 그때 그때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는 음악을 수정해나갔던 것 같다. 매체에서 묘사하는 다양한 장르들이 우리의 기본 요소가 되었을 테고. 우치다 나오유키의 터치가 덥의 요소를 더해줬고. 

상술한 것처럼 앨범은 초반에는 ‘공수’ 등 사이키델릭하고 차분한 흐름을 이어가나 ‘리츄얼댄스’를 기점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추다혜 : 굿의 형식에 따른 전개다. 일반적으로 굿을 할 땐 굿을 하기 전 이력을 읊고 신을 청한 다음, 정화와 치유의 과정을 거쳐 화합하고 명복을 빌며 신나게 노는 흐름을 갖춘다. ‘공수’로 시작해 ‘축원’으로 마무리되는 스토리텔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시문 : 앨범 구성은 추다혜가 잘 준비해왔다. 

형식과 더불어 앨범에는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 굿 3곡을 순서대로 배치했다. 선정의 이유가 있나.

추다혜 : 유명한 굿으로는 서울 지역 굿과 동해안별신굿이 있다. 접하기도 비교적 쉽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남들이 하지 않는 음악을 먼저 가져오고 싶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웃음). 대중성이 많이 없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일단 평안도 및 황해도 굿은 이북 지역의 굿이다. 황해도는 그나마 전수되는 내용이 많은데 평안도는 거의 없다. 없다고 보면 된다. 제주도 굿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미 했던 건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새로운 것, 흔히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빨리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찌 보면 그 지점이 국악 인사였던 추다혜를 인디 신에 빠르게 적응토록 한 고유의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김재호 : (가리키며) 얘는 국악보다 여기가 맞다 (웃음).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곡을 꼽아본다면.

김재호 : ‘오늘날에야’. 뻔하지 않은 리듬, 신선한 그루브, 좋은 전개와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시문 : ‘Undo’를 꼽겠다. 앨범을 시작하는 데 적합한 곡이다. 작업 과정에서 2016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그래미 어워즈 퍼포먼스를 많이 참조했다.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이 앨범을 힙합 앨범이라 생각하고 있다. 펑크(Funk)라는 카테고리가 없어 실제로 음원 사이트에서도 이 앨범이 ‘랩/힙합’ 카테고리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김다빈 : ‘에허리쑹거야’가 라이브 하며 가장 재미있는 트랙인 것 같다. 코러스도 많이 넣고. 

추다혜 : 사실 코러스를 시키기 미안했던 곡이다. 사운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멤버들에게 특별히 부탁한 지점이었는데, 이제는 멤버들이 마이크를 안 채워주면 섭섭해한다. 
김재호 : 뭐가 미안해. 엄청 시키더니… 

시문의 ‘힙합 앨범’ 이야기를 들으니 이 앨범을 들으며 크루앙빈(Khruangbin), 수(Sault), 도니 트럼펫 앤 소셜 익스피리먼트(Donnie Trumpet & The Social Experiment) 등 다양한 얼터너티브 소울 밴드들부터 더 루츠(The Roots) 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시문 : ‘비나수+’ 역시 아웃트로를 따로 빼놓은 부분이 힙합에서 영역을 받은 지점이다. 한 트랙 안에서 스킷과 같은 효과를 내고 싶었다. 

무가를 성공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국 굿이라 함은 비주얼, 무대, 퍼포먼스가 굉장히 중요한 예술 양식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이 많이 멈춘 지금이 아쉽지는 않나.  

추다혜 : 앨범 제목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처럼 정말 당산나무 아래서 꼭 공연을 해보고 싶었다. 무가를 알려준 무당은 ‘너 거기서 노래하지 마라. 신들리면 큰일 난다. 빗자루만 갖고 있어도… ’라 경고했지만… (웃음) 얼마 전 남해 쪽에서 당산나무를 봤는데 정말 그 밑에서 노래를 하고 싶은 거다. 동네잔치처럼 야외무대를 꾸며보고 싶었다. 실제로 지난 8월 광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에서 당산나무 세트를 지어주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대면 공연이 급하게 취소됐다. 뮤직비디오도 찍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언젠가는 꼭 당산나무와 함께 무대를 꾸려보고 싶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꾸준히 공연을 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김재호 : 그래서 더 아쉽다. 시국이 이렇지 않았으면 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추다혜차지스의 올해 성과에 대해 다시 한번 축하의 메시지를 건넨다. 하지만 밴드 멤버들의 이름을 보고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각자 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프로젝트로 그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우려다. 향후 활동 계획은 어떤가. 

추다혜 : 멤버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자신이 이 작업을 놓을까 봐 걱정이 많다. 어느 순간 갑자기 포기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책임감도 갖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계속 유지해나가며, 정체성은 유지하되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시문 : 최근에는 처음 모였을 때보다 더 흥미롭게 활동에 임하고 있다. 

김다빈 : 동감한다. 앞으로가 더 많이 기대되는 팀이다. 

김재호 : 밴드를 오래 하려면 무조건 편해야 한다. 곡 만들고 무대에 서고 앨범 작업하는 게 편해야 하는데, 추다혜차지스가 그런 팀이다. 안정감과 더불어 새로움에 있어서도 걱정이 없다. 추다혜에게 계속 새 노래를 가져오라고 보채는 편이다. (웃음) 곡만 가져오면, 우리가 알아서 만들어 줄 테니…

김다빈 : 내년에 후지 록 페스티벌도 가야 할 것 아닌가.

이시문 :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꼭 해보고 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힙합이다 (웃음).

끝으로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추다혜 :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건 기분 좋다. 하지만 냉정히 우리 음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어떤 경로로든 이 앨범을 듣게 된다면, 가볍게 많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평단에서 좋아하면 대중적인 음악은 아닌 거네?”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구분 짓지 않고, 재미있게 들어주셨으면 한다.

이시문 : 앨범 단위로 들어주셨으면 한다. 전체적인 흐름과 구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김재호 : 무가, 무당, 굿 등 요소도 크게 인식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국악도 아니고, 인디 밴드의 작품도 아니고, 그냥 ‘좋은 음악으로’, 편안하게 소비해주셨으면 좋겠다. 

김다빈 : 코로나 19 확산세가 잦아들면 더 많이 라이브 무대를 갖고 싶다. 함께 ‘에허리쑹거야’를 부르는 날을 기다린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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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사라지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여느 해보다 많은 앨범 단위 결과물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쏟아지는 작품 속에는 치열한 젊음의 고민과 베테랑의 조용한 귀환, 글로벌 단위의 논의가 돋보인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 < Tailor >

미디어의 도움 없이 음악 자체로 자생하기 힘든 시기에 만능 뮤지션 윤석철은 좋은 대중가요를 고민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 없이도, 굵직한 퍼포먼스 없이도,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오래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의 팝을 지향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더 블랭크 숍이라는 새 페르소나를 만들어 좋은 가요 프로듀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급 맞춤 정장처럼 참여 가수들에게 딱 들어맞는 < Tailor >는 만능의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블루스, 록, 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치밀한 재봉술을 거쳐 금방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뽑혀 나온다. 일상 속 단편을 흥미롭게 관찰하여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기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산업과 기술의 시선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우리는 엔터테이너보다 이런 외골수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도헌)


추다혜차지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신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신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며, 산 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도 망자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무속음악 무가(巫樂). 굿판에서 벌어지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 담겼음에도 참으로 기괴하고 소름 돋는다. 적어도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기 전까지는. 굿판을 벌이는 장소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한 ‘당산나무’ 아래서 무가는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놀랍게도 재료는 펑크(Funk)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가 오히려 반(反)대중적이라 느껴질 만큼 국악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가히 2020년 음악계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릴 만 한다. 국악, 그것도 무속음악을 들으면서 ‘얼씨구‘와 같은 몸짓이 아닌 힙합에서 나올 법한 그루브를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감상의 끝에 남는 건 애절한 꺾기의 향연,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한국의 정서다.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양적이며, 동시에 철저히 한국적이다. 앨범 전반을 매끄럽게 주도하는 파격적인 장르의 혼합, 무가의 재해석. 국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조지현)


진보(Jinbo) < Don’t Think Too Much >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킹한 기타와 현란한 드럼, 그리고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가 그루비한 작법 아래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진다. 풍부한 성분과 영양을 갖춘 사운드 위로는 화려한 피처링진이 각자의 감칠맛을 발휘하며 곡에 녹아든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활짝 열린 귀 뿐, 이후로는 그저 트랙에 몸을 맡기면 된다.

탄력적인 프로듀싱의 < Afterwork >와 자기만의 색채로 히트곡을 버무린 선집 < KRNB >, 그리고 몽롱한 사랑의 언어 < Fantasy >의 걸출한 커리어를 거쳐, 진보(Jinbo)는 또 한 번 아이디어의 창고 아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발전한 < Don’t Think Too Much >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이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고막 위 펼쳐지는 힙합 퍼레이드. 음악계 풍운아가 만든 감각의 제국.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 MAP OF THE SOUL : 7 >

케이팝 보이 밴드가 아닌, 팝 뮤지션이자 BTS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가 담겼다. 일곱 명의 7년이 담긴 < MAP OF THE SOUL : 7 >은 멤버 개개인의 자아를 녹여내면서도 그룹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내 대중음악의 틀을 바꾸고, 세계 팝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로 이어지는 서사적 앨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의 밝음과 ‘Black swan’의 어둠이 상반된 힘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Respect’처럼 힙합을 보여주다가도 ‘Filter’처럼 라틴을 내비친다. 자신들에게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며 다양함으로 거대해지는 사운드가 BTS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한다. 음악부터 비즈니스까지 이젠 그들이 기준이고, 케이팝이다. (임동엽)


NCT < NCT Resonance Pt.1 >

< NCT Resonance Pt. 1 >은 새 시대를 여는 SM의 야심이다. 개방과 확장이라는 두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회전해온 NCT는 두 새 멤버가 더해진 23인의 NCT 2020으로 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감행했다. 기존 그룹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 면모를 한데 모으되 그것을 더욱 성장한 음악으로 재편한 음반은 팀의 색채를 짙게 하는 랩 트랙과 광폭한 전자음의 댄스,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린 곡과 다국적의 특색을 살린 언어 혼용까지 가공할만한 완성도로 담아냈다. 단연 올해 가장 빛나는 아이돌 앨범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팀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같은 이 스케일에서 SM이 제시한 신개념 플랫폼의 긍정성을 봤다. 문법 선택이 자유롭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이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음악 역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기획에 발맞추어 하나의 콘셉트를 수행하는 가수의 활약, 특히 랩 멤버의 강한 에너지로 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은 덤이다. 그들이 꿈꿔온 이상에 비로소 한 발 더 다가서는 걸음이었다. (이홍현)


정밀아 < 청파소나타 >

포크 씬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잔잔한 일상, 곁을 풀어낸 음반들이 유난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정밀아의 < 청파소나타 >는 그중에서도 우뚝 선다. ‘그럼으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다’(‘서시’) 나긋하게 선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에서 출발’에는 위트 있게 현재와 과거를 돌아본다.

잘 닦은 10개의 돌멩이가 반짝이듯, 매끈한 수록곡들을 지녔다. 도시에서의 삶을 겪으며 느낀 텁텁함과 답답함부터 언젠가 그리워질 시절을 아름다운 단어로 그린 음반은 지독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이다. 일상의 언어로 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작은 기타 반주를 넘어서 울리는 또렷한 오늘의 목소리. 웃고 우는 희로애락이 여기에 담겨있다. (박수진)


딥플로우(Deepflow) < FOUNDER >

한 래퍼의 커리어가 파노라마로 흐른다. 딥플로우는 < FOUNDER >에서 힙합에 빠지고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레이블 대표로서 고군분투하던 모습,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간 때 등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각 상황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나타낸 가사로 노래들은 한껏 사실감을 뽐낸다. 딥플로우가 설립한 레이블에 속한 래퍼들의 찬조도 앨범이 현실성을 또렷하게 발하는 데 힘을 싣는다.

볼품없었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래퍼로 성장한 모습을 알차게 담은 사항 때문에 앨범은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1970년대에 나왔을 법한 투박한 솔뮤직, 펑크 반주는 딥플로우의 역정을 한층 묵직하게 가공해 준다. 또한 일련의 음악적 보조를 통해 < FOUNDER >는 음반 커버로 암시하듯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향을 진하게 풍긴다. 내용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이룬 근사한 작품이다. (한동윤)


쿤디판다(Khundi Panda) < 가로사옥 >

밑그림을 펼쳐 놓은 < 쾌락설계도 >와 뼈대를 조립하는 과정의 < 재건축 > 속 자재가 이뤄낸 것은 < 가로사옥 >이다. 완공의 결과는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일련의 직선 형태로, 깊숙한 공간 안에 나열된 화자의 스토리텔링이다. 그 안에 침투한 질투(‘자벌레’), 자격지심(‘네버코마니’)과 회피(‘겟어웨어’)같이 진솔함을 넘어 독살스럽기까지한 감정의 파편들은 꽤 빽빽하고 날카롭다.

그럼에도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고 점차 파고 들게 만드는 것은 종횡무진 달리는 래핑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휘두르는 듯 더 치밀하고 더 악독하게 랩 퍼포먼스를 채워 넣었고, 피로감을 덜어낸 사운드로 친절함을 살짝 내비치곤 한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 가로사옥 >이 방대한 결말이 아닌 ‘그저 그의 여정 안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쿤디판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임선희)


김석준 < 20세기 소년 >

수려한 디자인과 포장, 마케팅, 시대 감수성, 상품 가치, 언론의 선동적 개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이라는 말에 어른거리는 윽박지름과 현재적 ‘힙’이 요구하는 초조함이 없다. 압박도 느끼지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타협도 없다. 타협한 게 있다면 그의 취향이 머물고 있는 20세기 음악뿐이다. 1993년 유재하가요제의 금상 수상 경력,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선사한 음원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 김석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제’ 정리에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앨범을 내는 지각 행위는 필시 과거에 얽매일 소지가 높다는 선입견에 웃으며 맞서려면 반드시 현재적 감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직접 노래한 다섯 곡 수록 앨범 < 나의 이름은 >에 이어 곧바로 내놓은 < 20세기 소년 >은 게스트 보컬과 밴드의 협조하에 작곡자로서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고 고저, 장단, 강약을 넘나드는 반(反) 고집의 실천이다. ‘나는 나일 뿐’, ‘버퍼링’, ‘함경도 혜숙이’는 이 판에서 ‘특히 근래’ 듣기 어려운 무적, 무소속 음악이다. 메시지가 있다면 결국 휴머니즘이다. 소박, 순결, 진심이 주는 공감이 따로 없다. 20세기 소년은 이런 사소 하나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담아 21세를 포옹한다. ‘난 달라질 거야/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아야지..’ 김석준은 기본의 우대가 뉴 노멀(음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임진모)


스월비(Swervy) < Undercover Angel >

익지 않은 슬픔을 저며낸 젊은 아티스트의 자화상. 대중이 보내는 관심의 뒷면엔 가혹한 잣대와 시선이 숨어 있었고 날카롭게 가공된 언어의 칼날이 되어 그를 해체했다. 태양에 다가간 대가로 추락하게 된 스월비는 온갖 상처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쩌면 감추고 싶던 일면이 흐트러진 바닥 위.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희미한 사랑을 발견했고, 보답이란 투박한 이유로 붉게 물든 날개를 감싸 안고 지상에 머물길 선택한다.

자기 고백이란 주제 아래 늘어놓은 일지(日誌)가 어둡고 차갑다. 낮게 깔린 비트를 기반으로 읊조리는 랩은 마주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기에 감정선은 높낮이를 그리지 않고 일정하다. 철저한 사실주의. 낡은 VHS 위로 덮어진 다양한 형태의 스월비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아티스트의 성장기에 대중은 분명한 감응을 느꼈다. 이제 첫 정규 앨범. 결국 자유를 찾아 희망으로 귀결된 < Undercover Angel >의 서사처럼 모든 걸 딛고 일어선 스월비의 자리가 이곳에 굳게 새겨졌다. (손기호)


2020 올해의 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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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

평가: 4/5

국악계에 젊은 바람이 분다. 그것도 여러 방향에서 꽤 굵직한 풍향을 타고 불어온다. 오랜 기간 젊은이들의 취향과 먼 거리에 서 있던 국악에 서양 악조를 가미, 펑키(Funky)하고 로킹한 국악으로 재탄생했다.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동서양 장르 간의 화합은 다시 젊은 사람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유튜브 라이브 채널 < 앤피알 뮤직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Music Tiny Dest Concert) >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그룹 씽씽을 시작으로 오방신과, 한국남자(이희문x프렐류드), 이날치 그리고 추다혜차지스 등이 새로운 ‘힙 사운드’의 제격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중 씽씽 출신 소리꾼 추다혜가 주축이 되어 만든 추다혜차지스의 위치는 특별하다. 팀을 꾸린 지 이 년 만에 발매한 첫 정규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는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던 무가 그러니까 굿 음악을 중심 에센스로 삼고 그 곁을 레게, 재즈, 펑크(Funk), 록으로 감쌌다. 무속 음악이 주는 오싹함을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맞닥트려 시원한 쾌감을 만들고 군데군데 중독적인 펑크 리듬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장착해 무가인 듯 무가 아닌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에 전해져 내려오는 작자 미상의 무가를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가사를 개사한다. ‘비나수+’는 노랫말 사이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란 서사를 넣어 곡에 현재성을 부여하고 ‘차지S차지’의 경우 대부분의 가사를 추다혜가 직접 다시 썼다. 돋보이는 것은 추자혜의 존재감이 비단 앨범의 뒤편에만 놓인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전체 음반에서 주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추자혜의 목소리다. 가사와 가창을 전면에 세우고 악기의 음색은 후면에 배치, 본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정수를 흔들림 없이 밀어붙인다.

이렇게 우리 음악의 정형성이 주가 될 수 있는 건 충실히 바탕을 다지는 악기 덕택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에서 기타를 쳤던 이시문, 윈디시티, 까데호 등에서 활동한 베이시스트 김재호, 김오키뻐킹매드니스에서 드럼을 연주한 김다빈이 덜도 없고 더도 없이 딱 적당한 조미를 가한다. 한마디로 어우러짐의 시너지가 상당하다. 또 한 마디로 어우러짐의 무게중심이 신선하다. 몽환적이고 넘실대는 기타 사운드에 색소폰이 부서질 듯 합류하는 ‘사는새’, 기필코 춤추게 만들겠다는 듯 펑크로 중무장한 ‘리츄얼댄스’를 거쳐 ‘에허리쑹거야’는 레게를 핵심 소스로 삼아 곡을 끌어간다. 마지막 곡 ‘복Dub’에서는 앞선 ‘에허리쑹거야’를 다시 소환해 전자음을 입혀 몽롱한 아웃트로로 탄생시켰다.

거친 록의 질감으로 시작해 포효하듯 날 선 음색이 휘어잡는 첫 곡 ‘Undo’, 작품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무당 방울 소리와 드럼이 마치 북처럼 귓전을 울리다 이내 블루지한 기타가 호흡을 다잡는 ‘비나수+’. 또 비슷한 기타톤으로 ‘비나수+’와 노래 끝의 멜로디를 맞춘 ‘오늘날에야’까지. 음반의 재해석은 생생하고 장르의 교차는 매력적이다. 변주를 통해 신나는 춤판을 만들고 흥겨운 추임새를 강조한 ‘차지S차지’는 또 어떤가. 이건 새 시대 청년들을 움직일 트렌디한 뽕필 댄스 음악이다.

국악을 타장르와 뒤섞은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국악, 그중에서도 무가라는 토속적인 소리를 무너트리지 않고 머리에 둔 채 이토록 젊게 꾸려낸 음반은 많지 않다. 통속성을 격파하고 한국적 질감을 유지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독특하다. 코리안 펑키 샤머니즘 뮤직. 추다혜차지스가 새 문을 열었다.

– 수록곡 –
1. Undo
2. 비나수+
3. 오늘날에야
4. 사는새
5. Unravel
6. 리츄얼댄스
7. 에허리쑹거야
8. 차지S차지
9. 복D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