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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최엘비 인터뷰

‘영혼 없는 힘내라는 말이 더 힘든 걸 알아
또 고작 그거 가지고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냐고’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中)

청춘은 왜 아파야만 하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가. 이해와 공감이 결여된 사회는 많은 사회 초년생들을 점점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빛나는 힙합 스타들의 주변을 맴돌던 래퍼 최엘비 역시 여러 아픔을 겪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하지만 그는 귀를 막고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택했다. 세상의 어떤 말보다 노래 가사 한 줄이 주는 울림을 몸소 깨달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음악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꿈꿨다.

그 염원은 작년 11월 정규 3집 < 독립음악 >으로 결실을 맺었다. 열등감으로 물들어 일그러진 과거는 물론 냉혹한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조연들의 모습을 낱낱이 기록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죽음까지 막는 음악가’의 의지를 이어받은 최엘비는 더 이상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으로 우뚝 서있었다. 2021년의 끝자락, 어느 때보다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있던 최엘비와 함께 그의 마지막 20대를 정리해 봤다.

최근 발매한 정규 3집 < 독립음악 >의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 인기를 실감하는지.

여태까지 냈던 것들과 확실히 다르다. 음원 사이트에 댓글도 많이 달리고 SNS 개인 메시지로 장문의 감상평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녹인 자전적 앨범이지만 세상의 수많은 조연들, 즉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커뮤니티나 평론 사이트에서도 언급을 많이 해줘서 사람들이 내 음악을 자연스럽게 많이 접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변화를 하루빨리 무대 위에서 체감하고 싶을 뿐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요 장치로 극적인 요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적 연출의 배경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독립영화를 생각하고 작업했다. ‘최엘비’라는 배우가 오디션장에서 주인공 배역을 따내려는 장면을 상상했고 그렇게 처음 탄생한 곡이 ‘아는 사람 얘기’다. < 독립음악 >의 시작은 무조건 내가 오디션 보는 걸로, 대본을 읽는 걸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중간중간 감독이 하는 평가는 따로 정해둔 것 없이 프리스타일로 녹음을 했다. 큰 틀만 정해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진행했다.

첫 곡 ‘아는 사람 얘기’부터 < 쇼미더머니 5 > 예선 탈락처럼 가장 초라했던 시절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단정 짓는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야 후련할 것 같았다. 앨범 작업할 때 보통 그 당시의 나를 데리고 와서 다시 꺼내곤 한다. 이번 앨범에 그때의 모습을 기록해야 이 답답한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왕 하는 거 최대한 솔직하게 다 표현했다.

‘최엘비 얘기를 하는 최엘비를 연기하는 최엘비’가 화자로 나선 것도 같은 이유인지.

정확하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때 내 얘기는 아니라면서 대화를 끌어가서 열등감의 밑바닥을 온전히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비꼬아서 들려주면 사람들이 듣기에 몰입감도 있고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거라 판단했다.

열등감과 비교의 중심엔 친구 비와이와 씨잼이 있다. 두 친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고등학교 시절 비와이는 같은 반, 씨잼은 옆반이었다. 그 둘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닌 반면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내가 쉬는 시간에 앉아서 가사를 쓰고 있으면 둘이 옆으로 다가와 서로 랩도 들려주며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학생 때도 그 둘은 잘 했다. 작업량도 상당했지만 무대 위에서의 끼가 장난이 아니었다. 학교 축제 무대에 같이 선 적이 있는데 내가 제스처를 소극적으로 하는데 비해 걔네들은 웃통까지 벗고 난리가 났었다. 얘네는 나중에 진짜 크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으로 그들과 어느 정도 격차를 두었던 것 같다.

가사에도 나오지만 둘과 음악 취향도 달랐다. 크루를 함께 하면서 의견 차이는 없었는지.

애들이 피프티 센트나 릴 웨인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겐 잘 와닿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내가 어떤 음악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타협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냥 랩하는 게 재미있었다. 단체곡을 할 때도 내가 제안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잔잔한 재즈 비트에 내 노래를 따로 만들어 보는 게 전부였다. 사실 섹시 스트릿이란 이름도 맘에는 안 들어서 처음 들어갈 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웃음)

스스로 그들과 거리를 두고 열등감을 느끼긴 했지만 유명한 친구들 덕분에 이름을 알리기 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최엘비를 항상 ‘누구누구 친구’로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는지.

한 번은 행사에 가서 기리보이 형의 백업 더블링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여럿이서 무대에 오르면 언제나 함성이 가득하다. 나는 그 환호를 즐기면서 랩을 하는데 그날 문득 정신 차리고 관객들을 바라보니까 전부 기리 형을 찍느라 바빴다. 내가 랩을 하고 있는 중에도 다른 사람이 집중 받는 상황을 접한 후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변화의 필요를 느끼고 작업을 결심했다.

기리보이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초기 활동명 ‘레이지본즈’에서 지금의 ‘최엘비’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일조를 한 걸로 알고 있다. 기리보이와 크루 우주비행은 어떤 존재인가.

사실 < 쇼미더머니 5 > 예선 탈락 이후 열등감이 극에 달했던 24살 즈음 음악을 관두려고 했었다. 랩은 그만하고 원래 하던 그림을 그리자고 다짐했을 때 우주비행에 래퍼가 아닌 아트 디렉터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리 형이 요즘엔 랩 안 하냐고 물어보면서 피처링 한번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마음은 접어둔 상태였지만 가사 쓰고 서울 가서 같이 녹음도 해보니까 또 재미있었다. 기리 형은 내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은인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기리보이의 열렬한 팬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소박한 감성을 우리나라 힙합 음악에 가장 처음, 그리고 제일 많이 접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까 기리 형도 나처럼 인디밴드를 좋아했다. 심지어 즐겨 듣는 팀까지 많이 겹쳐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음악적 아버지이기도 하다.

인디밴드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예전에 아는 교회 집사님께서 mp3에 노래를 넣어주셨는데 따뜻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인터넷으로 알음알음 검색해 보니까 인디밴드들의 노래에 그런 향취가 묻어있었고 그때부터 유명한 팀들을 하나씩 찾아 들었다. 꼭 인디밴드가 아니더라도 잔잔한 음악들을 많이 들었다. 

주로 어떤 밴드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타이틀곡 ‘도망가!’의 피처링을 맡아주신 브로콜리너마저는 나에게 많은 음악적 영감을 안겨준 밴드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찌질함의 극치와 맞닿아 있는 팀이 십센치다. 1집의 ‘그게 아니고’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캐스커, 한희정, 롤러코스터, 디어클라우드, 요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파고, 못처럼 많은 인디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1년 전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에서도 브로콜리너마저에게 애정을 표한 바 있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건지.

입시 미술을 준비하던 고2 때부터 2년 동안 브로콜리너마저만 계속 들었다. 1집 < 보편적인 노래 >, 특히 ‘속좁은 여학생’이란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내가 여학생이 된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로 음악이 전하는 이야기가 눈앞에 선명하게 묘사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앨범을 들으면 당시 미술 학원의 물감 냄새, 걸레 말리는 냄새까지도 다 떠오른다.

동경하던 밴드를 실제로 만난 건 언제인지.

한 유통사 인터뷰에서 깜짝 이벤트로 덕원 님이랑 전화 연결을 해 주셨고 나중에 콜라보 할 일 있으면 같이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우리 공연하는데 같이 할 수 있겠냐?’라고 연락을 주셔서 인연을 쌓게 되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래퍼가 갑자기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이란 노래를 들고 나와서 찬양하고 있었으니까 혹시나 부담스러워하시면 어쩌나 하고 고민도 했었다. 실제로도 처음에 듣고 살짝 부담스러웠다고 하셨다. (웃음) 그래도 지금은 다 같이 단체 방에서 꾸준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전작과 동일한 위치에 있는 마지막 곡 ‘도망가!’에서 밴드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며 ‘죽음까지 막는 음악가’의 의지를 그들과 함께 실현했다. 같이 작업한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다.

거의 10년 넘게 스피커나 이어폰을 통해 듣던 목소리가 내 눈앞에 실존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직접 만난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작업 의뢰를 드린 이후도 적잖이 놀랬다. 특별히 내가 주문한 게 없었다. 정해진 멘트 없이 곡 내용만 설명해 드렸는데 단번에 의도를 파악하셔서 녹음도 바로 오케이가 났다. 브로콜리너마저로 출발했던 내 음악에 그들이 도착한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선망하는 아티스트임은 틀림없지만 분명 독립이라는 취지에 맞춰 피처링을 완전히 걷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있을지.

원래 전부 혼자 하려고 했었다. 근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누군가가 마지막에 등장해서 ‘하나 둘 셋 하면 도망가’라고 밀어주는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내가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듣고 자랐으니까 내 우상의 격려로 마무리를 지어주는 게 이 앨범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앨범 전반에 부모님을 향한 존경과 애정도 느껴진다.

‘독립음악’의 노랫말에도 쓰여있지만 나는 특이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행동 강박이란 걸 앓았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움직이는 끈을 보고 뱀을 떠올리고, 그 뱀이 똬리를 틀고 있을 때의 포근함까지 연상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애들이 멀리하던 편이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믿고 기다려 주셨다. 내가 혼자 빠져있는 그 세계를 즐기도록 놔뒀고 오히려 그 공상을 발전시켜서 그림 같은 걸로 표현하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때 받은 사랑이 아직까지도 내 음악의 영감이 되고 내 화법으로 자리 잡는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집중력 있는 행동이 곡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상황을 볼 때 멀리서 보는 게 아니고 돋보기로 보는 것처럼 최대한 가까이 관찰하려 한다.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다 보니까 들었을 때 그 장면들이 상상되고 가사, 연주의 색깔과 온도로도 드러난다. 음악을 하게 되면 브로콜리너마저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이런 점들이 고스란히 내 노래에 녹아들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도드라지는 곡을 뽑아보자면.

처음 담배 피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만든 ‘구름구름’이란 노래가 있다. 만화를 그릴 때 속으로 하는 생각을 말풍선에 담곤 하는데 구름처럼 피어나는 담배 연기가 꼭 말풍선 같았다. 그래서 담배 피우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두고 그 말풍선 속에 표현들을 채워나갔다. 다른 곡들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만화처럼 몇 개의 컷으로 구체화하는 편이다.

그림이나 학업에 대한 미련은 없는지.

앨범 커버 작업할 때도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큰 미련은 없지만 요즘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하나하나 내 손을 거쳐서 하나의 아트워크 단편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과거 퍼그 모양의 복면을 눌러쓰고 활동했을 만큼 강아지 ‘율무’도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애완견을 넘어 또 한 명의 가족인 ‘율무’는 어떤 존재인가.

감정이 메말랐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항상 옆에 있길 바라다보니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 되었고 실제로 키우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다. 씨잼과 행사를 뛰면서 5만원씩 벌었고 그렇게 모은 40만원으로 데리고 온 친구가 강아지 율무다.

퍼그는 얼굴에 주름이 져있어서 기분이 좋을 때도 인상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웃고 있지만 슬픈, 웃픈 모습을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고 내 음악도 퍼그와 닮아 있다고 생각해서 데리고 왔다. 처음엔 엄마가 반대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나보다 더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다. 일종의 분신이다.

‘율무’는 물론이고 용궁으로 떠난 물고기 ‘삼칠이’와 현재 키우고 있는 햄스터 ‘콜리’만 봐도 동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키우기 전에 한 다섯 달 정도는 공부를 한다. 나한테 온 친구들은 최고의 환경에서 살게 하자는 생각이 있어서 애착이 좀 남다르긴 하다. 그 동물의 역사까지 찾아보고 하니까. (웃음) 조만간 내가 키운 동물들의 기억을 모아 하나의 얘기, 하나의 앨범으로 제작하려 한다.

< 독립음악 > 이후에 세워둔 계획이 있는지.

당장 대면 행사로 진행하긴 어렵겠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단독 콘서트를 꼭 열고 싶다. < 오리엔테이션 >부터 < CC > 그리고 < 독립음악 >까지 엮어서 하나의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 짧은 연기 사이사이에 랩을 하는 식으로 스토리가 있는 공연을 구성하고 싶고 코로나가 풀리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그럼 이번 앨범으로 대학교 시리즈가 마무리된 것인가.

내가 계획한 건 4부작이다. 아직 < MT >가 남아있다. < 독립음악 >이 혼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면, < MT > 즉 멤버십 트레이닝은 전곡 피처링으로 채워 멤버들과 랩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여태까지의 작업 중에 제일 즐거운 감정으로 임하고 있다. 학교를 다닌 지 하도 오래돼서 나중에 재입학 해서 엠티를 한번 다녀와 볼까도 생각했다. (웃음)

그 전에 앞서 얘기했던 동물들이 커버를 장식하는 앨범을 먼저 발표할 예정이다. 제목은 < 푸른바다38 >이 될 것 같다. 예전에 만들었던 노래들을 상자에 담아 나룻배를 타고 미지의 섬으로 찾아가는 스토리를 기획하고 있는데 결말은 안 정했다. 그걸 두고 올지 아니면 그대로 다시 가지고 나올지는 모르겠다. < 독립음악 >처럼 내 경험을 담아 또 한 편의 서사를 써보려 한다.

최종적으로 < 독립음악 >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그 대상은 누구인가.

빛나는 주연 뒤엔 현실에 맞춰 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당신들이 결코 패배한 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꿈을 향해 나란히 같이 걷고 있는 모두가 결국엔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기 때문에 내 노래를 듣고 스스로를 많이 아껴줬으면 좋겠다.

< 똥파리 >라는 영화가 있는데 극의 주인공은 흔히 우리가 피하고 신경도 안 쓰는 그런 사람이다. 근데 그런 사람도 결국 자기 모습을 조명하는 영화 안에선 주인공이 된 거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는 거고 그래서 나도 조연들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다.

인간 최재성의 20대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 이유는.

최근에 보고 있는 웹툰의 제목이기도 한데 내 20대는 ‘찌질의 역사’다. 패배감에 젖어 있고 연인과의 이별에도 힘들어하며 찌질하게 살았는데 이제 그 역사가 끝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 한다. 그래도 < 독립음악 >을 통해 열등감으로 물들었던 내 과거를 어느 정도 털어낸 기분이 든다. 실제로 씨잼, 비와이는 알지만 나를 몰랐던 분들도 이제 너도 주인공이라고 말을 많이 해주신다. 사람들이 보내주는 글을 보면서 위안을 얻은 만큼 감사한 마음을 담아 꾸준히 곡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눈앞에 다가온 30대, 앞으로의 ‘최엘비 유니버스’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가길 바라는지.

어린 티만 살짝 벗어도 만족이다. < 오리엔테이션 >이든 < CC >든 다 대학생, 젊을 때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도 이제는 좀 어른의 얘기를 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앨범 속에 투영하는 ‘나’도 같이 성장하는 느낌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말이다. 서른이 된 만큼 또 말도 안 되는 거 막 시도하고 만들어 볼 예정이다. (웃음)

재차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그의 한 마디. 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는 걸 창피해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 아껴주자. 아픈 과거를 드러내면서도 인터뷰 내내 수줍게 미소를 머금은 그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청춘의 얼굴이 아닐까.

그때그때 떠오르는 ‘내 얘기’를 음악으로 다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선언한 최엘비. 또 어떤 평범한 이야기로 가장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지 기대하며, 그의 선한 영향력이 널리 퍼지길 기원할 뿐이다.

인터뷰: 정다열, 장준환, 김성욱
촬영: 김성욱
정리: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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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올해의 가요 앨범

2020년대의 추세가 희망차다. 코로나 급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황량한 대지 위에도 여전히 수많은 아티스트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 속에서 태어난 앨범들은 장르와 작법, 하물며 가사의 필압조차 세세히 다르지만, 모두 기세에 꺾이지 않고 본인의 역량을 가감 없이 담아낸 단단한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IZM 선정 2021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엔하이픈(ENHYPEN) < Border : Carnival >

아이랜드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하이브의 곡 스타일 분배와 CJ 이엔엠의 시각적 역동성이라는 우월적 합이다. 그걸 지반으로 몇 개월도 안 된 신인은 단숨에 ‘기득권’자로 폭발성장을 기했다. 팬덤 ‘엔진’의 가속 페달을 밟아 숨 가쁘게 올해의 신인, 음원 밀리언 셀링, 미 NBC 켈리 클락슨 쇼 출연 등을 이어가며 글로벌 팬들의 번식을 꾀한 결과. 이 두 번째 ‘미니’앨범이 초고속 하사된 4세대 아이돌 타이틀을 굳혀준 ‘맥시’펀치다.

음악의 승리라고 해야 한다.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떠들썩한 예술적 소란을 장벽으로 쌓고 중간에 ‘Drunk-dazed’, ‘별안간 (Mixed up)’ 등 대중그룹다운 들을만한 싱글 넷을 가지런히 배치해 제대로 곡 승부를 걸고 있다. 이를 위해 동원한 도구는 폭넓은 장르분산, 바로 다양성이다. 시대적 명령인 아이돌스런 음악패턴을 따르되 시도, 도전, 변화로 에워싸는 음악선동이 가상하다. 아이돌 수다, 그 상투적 어법 타파가 남았다. (임진모)

지올 팍(Zior Park) < Syndromize >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방, 끊임없이 필름을 구동하는 영사기의 소음이 들렸다. 벽에 맺힌 원형의 무대 위로 그림자는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딜 둘러봐도 환영뿐인 작은 공간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섞였고 그렇게 탄생한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장소를 < Syndromez >라고 명명했다. 창조주는 지올 팍. 경쾌하게 삶을 난도질하는 한 예술가의 보금자리였다.

각각의 주제에 맞게 꾸려진 놀이기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랩을 버렸다는 농담 섞인 인터뷰처럼 특정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상상력이 중성적 목소리, 음악, 영상 등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지올 팍’이란 아티스트를 양분 삼아 유일한 형태로 조형된다. 그가 화려하게 꾸며낸 세상은 포장지를 뜯어낼수록 깊은 상처를 드러내지만 선홍빛을 띠는 속살마저 찬란하다. 완벽하게 제작된 극의 폐막이 어느 때보다 쓸쓸하기에, 이 포근한 악몽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손기호)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 Circle >

힙합, 일렉트로니카처럼 비트 중심의 음악이 득세함에 따라 비트메이커들의 가치는 공고해졌다. 다양한 뮤지션의 리듬을 책임지며 베테랑 프로듀서가 된 피제이는 마인드 컴바인드라는 플랫폼에 올라 조금 더 자유롭게 역량을 펼쳤다. 단짝 진보는 피제이의 비트 위를 유영하며 농익은 기량을 선보였다. 11년 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 The Combination >과 마찬가지로 과정의 즐거움이 양질의 결과물로 이어졌다.

그들의 소리엔 과거와 현재, FX와 리얼 밴드가 교묘하게 교차하며, 장기인 소울과 펑크(Funk)부터 록과 하우스 등 다채로운 스타일이 어우러진다. 변화가 잦은 곡조를 버텨내는 건 정교한 리듬 트랙이지만 섬세한 기타가 돋보이는 ‘Can you understand’와 라틴음악의 즉흥성을 포착한 ‘Purple sky’처럼 힙합 비트 이외의 미덕이 가득하다. 소리와 메시지에 지향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Singularity’(특이성)와 ‘Multiverse’(다중우주론)로 마인드 컴바인드의 인장을 단단히 새긴다. (염동교)

이랑 < 늑대가 나타났다 >

한 해를 회고할 때 가장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 요새 흐름에 영합하지 않았고 투명하게 ‘나’의 이야기를 썼다. 중요한 건 그의 시선이 비단 나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투영하고, 나를 지나 사회로 가닿는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와 같은 곡은 이 음반이 얼마나 현재를, 현대를, 지금을 찌르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동시에 과감한 터치가 돋보인다. ‘아는 언니들’이란 합창단과 손을 잡고 기이하고 기괴하게 덧붙인 ‘환란의 세대(Choir ver.)’의 코러스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그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토해낸다. ‘대신’. ‘빵을 먹었어’에선 앞장서서 목청을 높이고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에선 죽음과 삶을 툭툭 말한다. 거침없는 연대와 거리낌 없는 고백으로 올해를 끌어안았다. (박수진)

양진석 < Barn Orchestra >

양진석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지만 작곡 능력과 편곡 실력은 그 미진한 보컬을 채우고도 남는다. 10년 만에 발표한 여섯 번째 에피소드 < Barn Orchestra >가 이 주관적인 가설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각 곡에 맞는 보컬리스트의 초빙과 세미클래식부터 팝, 재즈까지 스며든 도회적인 컨템포러리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 화음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린 아름다운 건물처럼 빛난다. 막대한 시간 투자, 소리에 대한 고집, 음악에 대한 그의 자신감은 이 앨범이 정갈하고 세련되게 태어날 수 있는 탄탄한 지반공사였다.

현대사회의 외로움을 여러 형식으로 변조한 수록곡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면서 건물 구조물에 사용된 유기적인 원자재다. 양진석은 케이팝과 네오 트로트 열풍에 가려져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젊은 세대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21세기 한국형 어덜트 컨템포러리 음악을 완공해냈다. (소승근)

최엘비 < 독립음악 >

힙합 오디션 < 쇼미더머니 5 >에서 비와이와 씨잼이 1,2등 자리에 나란히 설 때, 친구인 최엘비는 예선 탈락 후 TV로 결승 무대를 시청했다. 찬란히 빛나는 두 주연에 비해 음지가 익숙했던 조연은 슬퍼하지 않으려 애써 눈물을 감췄다. 그 반짝임에라도 묻어가야 크레디트 어딘가에 이름이 남는 걸 알았기 때문. 하지만 어느덧 20대의 마지막에 다다른 청년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숨어 살 수 없다. 늘 배경으로 찍히기만 했던 엑스트라는 직접 조명과 카메라를 들여와 시점을 180도 전환시킨다. 주연과 조연의 역전으로 그간 묵혀두었던 응어리를 낱낱이 고백한다.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 깊은 곳을 아리게 찌른다. 스스로를 딸려오는 사은품이나 브랜드 이름을 뗀 무지 티에 비유할 정도로 완전히 내려놨다. 비교와 동정으로 물든 열등감의 서사는 부와 명예를 좇는 작금의 힙합 신과 다름을 인정하고 같아지기를 포기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 독립음악 >의 주인공은 험난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최엘비이며 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세대와의 교감을 넘어 시대와 공명하는 앨범,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대중음악’이다. (정다열)

파란노을(Parannoul)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

신원미상의 음악가 파란노을이 일으킨 파급력은 거셌다. 잠룡의 일렁임을 일찍이 포착한 곳은 국내가 아닌 해외다. 순간이었지만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은 영미권 슈게이즈 팬들의 큰 지지를 얻어 미국의 음악 커뮤니티 레이트 유어 뮤직에서 올해 발매한 앨범 중 평점 1위를 기록했다. 소규모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밴드캠프에서부터 저명한 음악 비평 사이트 피치포크와 스테레오검의 각광을 받기까지 이 드라마틱한 실화는 언어의 장벽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스스로를 낮추며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파란노을의 패배주의 텍스처는 생생하다. 거친 노이즈와 투박한 가상 악기로 연출한 음압은 포스트 록과 이모코어(Emocore)를 난폭하게 품어내고, 열등감으로 뭉그러뜨린 보컬은 타오르는 화자의 내적 분노를 겨우 삼킨다. 우울감과 외로움으로 범벅된 어두운 터널에서도 끝끝내 탈출구를 발견하고자 한 원시적 울부짖음이 격변의 시대를 관통한다. 2021년, ‘흰 천장’만을 바라보던 골방 외톨이가 주도한 ‘청춘 반란’의 실황. 이제는 더 이상 막연한 동경이 아닌 빛나는 ‘꿈의 다음 부분’으로 넘어간 듯하다. (김성욱)

유라(youra) < Gaussian >

유라는 자신이 음악을 하며 지켜온 ‘개똥철학’을 잘라낸 것이 < Gaussian >이라고 했다. 스스로 깎아내리는 듯한 단어로 설명했지만, 그의 세계는 조금씩 덜어내지 못하고 한 번에 잘라내야 할 만큼 견고하다. 데뷔부터 지속해온 내면 탐구는 단단한 결정체로 거듭났고 싱어송라이터는 그것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며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부드럽고 흐리게 표현하는 효과를 뜻하는 앨범의 이름처럼 가사는 은유적이나 선율은 또렷하고 그가 전하는 감각은 선명하다. 간결하게 배치된 악기들은 범람하지 않고 제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며 그 중심의 유라는 전자음을 가미한 듯한 독특한 목소리로 곡을 이끈다. 최소한의 의미만 전달하는 개인적인 음반에서도 헤이즈와 함께한 마지막 넘버 ‘하양’은 대중성을 드러내며 뮤지션의 넓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를 뒤덮은 연대와 위로의 물결 속에서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침잠의 미학이 돋보였던 앨범이다. (정수민)

아이유(IU) < Lilac >

‘젊은 날의 기억’이란 꽃말처럼 < Lilac >은 아이유의 20대 마지막 순간을 장식한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를 거쳐 간 모든 것들이 일련의 꽃잎처럼 곡 사이사이로 책갈피처럼 수놓아진다. 그만큼 앨범에는 유독 다양한 맛과 멋이 자유롭게 존재한다. 마치 대중음악가의 소명을 잠시 접어두고 30대를 앞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염원과 열망을 한데 모아 전부 성취하는 것으로 다음 10년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듯이 말이다.

명확한 선율로 대중성을 고려한 히트 메뉴 ‘라일락’ 사이로, 독특한 영감을 버무린 ‘Coin’이 도발 한 스푼을 첨가한다. 이에 재치 있는 비유를 가미한 ‘Flu’와 ‘어푸’가 각각 가벼운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를, 차분한 발라드 트랙 ‘봄 안녕 봄’과 ‘빈 컵’이 담백한 뒷맛을 담당한다. 아이유의 과거와 미래를 망라한 앨범이다. 오랜 전성기를 구가해온 아티스트가 여전히 과감함과 노련함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 ‘Blueming’이 예고한 푸른 개화는 보랏빛 라일락으로 이제 막 피어난 듯하다. (장준환)

언오피셜보이 & 하이프하이프(unofficialboyy & HAIFHAIF) < 그물,덫,발사대기,포획 >

언오피셜보이는 각성한다. < 쇼미더머니 10 >에서 스스로 밝혔듯 ‘예능캐’로 가벼이 소비되던 과거와 선을 긋고, 진중한 태도로 음악가로서의 인정을 원한다. 그간 익살맞은 리액션이나 화끈한 패션,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스웨그로 더 주목받은 그였기에 솔직히 앨범의 빼어남은 의외였다. 프로듀서 하이프하이프(HAIFHAIF)의 철저한 지원이 빛을 발했고, 그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며, 그 결과 많은 장르 애호가를 자신의 편으로 포획했다.

진가는 다양성과 치밀함에서 비롯한다. 2000년대 힙합의 계승 의지로 낳은 ‘돈내’와 ‘누가왔게’, 화끈한 댄스플로어의 ‘Unofficialboyy pt.2′, 최신 팝 문법의 ‘Mmm’ 등을 한데 엮어내는데 그 흐름은 유려하다. 신예답게 신선하고 동시에 높은 장르적 유연성을 보여준 셈이다. 풋내기 티가 나지 않는 탄탄한 플로우와 중독성 강한 훅(Hook)은 흡인력을 극대화했으며, 재치 있는 입담과 인간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슴 시큰한 메시지는 작가적 성취를 담당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앨범이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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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엘비 ‘독립음악’ (2021)

평가: 4/5

보통 사람들의 ‘대중음악’

청춘 래퍼의 공감은 일상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풋풋했던 < 오리엔테이션 >과 이별 후의 속앓이를 담은 < CC >에 기록한 대학 시절 경험담.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겪을 법한 에피소드는 유쾌하면서도 쓰라린 직설로 대한민국 청년들과 유대를 쌓았다. 그렇게 젊은 날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최엘비도 서른을 앞두고 있다. 싱그러운 20대를 마무리하는 < 독립음악 > 역시 전작들처럼 개인적 회고를 써내려가나 파고드는 내면의 수심은 훨씬 깊다.

고등학교 동창인 비와이와 씨잼 그리고 제2의 음악 인생을 이끌어준 기리보이까지, 그의 곁엔 소위 잘나가는 힙합 스타들이 함께 했다.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의 주변은 어두운 법. 세간이 주목하는 그들의 입지와 달리 그의 역할은 조연에 가까웠다. 자부심과 자괴감을 동시에 떠안은 엑스트라는 감정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직접 메가폰을 잡아 ‘독립’을 감행한다.

진정한 ‘나’를 보여주기 위한 여정은 처음부터 ‘아는 사람 얘기’로 둔갑한다. 털어놓기 쉽지 않은 개인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오디션이란 특수 환경을 설정함으로써 자신과 화자를 분리했다. 세 번의 테이크에 거쳐 뱉는 랩도 또렷한 발음과 라임 구성으로 울컥이는 기타 줄과 건반 위를 휘어잡는다. ‘항상 조연으로 살았던 애’가 묵혀뒀던 응어리를 집약한 곡은 자연스레 뒷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훌륭한 오프닝이다.

단숨에 이목을 잡아끈 배우는 담백한 기악 프레임 안에서 열연을 펼친다. 재즈 피아노에 어우러진 크루 ‘섹시 스트릿’의 일화 ‘섹스’, 피아노와 첼로가 탁하게 터뜨리는 독립의 발단 ‘주인공’, 그리고 몽롱한 신시사이저에 울분을 토해내는 ‘독립음악’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전개. 꾸밈없는 처절한 독백이 십여 년간 건들지 않은 상처를 보듬는 장면은 모노드라마의 주요 순간으로 손꼽힌다.

오랜 단역 생활로 체득한 연출법 또한 극의 몰입을 강화한다. 비와이의 < The Movie Star > 속 ‘주인공’이 실제 모습과 꾸며낸 영화의 배역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했다면, 최엘비가 맡은 ‘주인공’은 오히려 ‘뒤 배경 속에 있는 사람’의 단상을 나열하다 직접 ‘독립음악’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삶의 주체로 서고자 하는 목표는 동일하나 유명한 동료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누구누구 친구’라는 꼬리표를 세차게 끊어낸다.

앨범 제목에 걸맞게 타 아티스트의 참여도 없다. 물론 마지막 트랙 ‘도망가!’에 도움을 준 목소리는 예외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 CC >의 끝에서 손을 잡아주었던 생명의 은인이다. 밴드와 함께하는 도주에 목적지는 없지만 닥쳐오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 뜀박질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 시간을 벌기 위해 현재의 최엘비는 다음 주자인 30대 최엘비에게 바통을 넘기고 우상들과 다시 한번 손을 맞잡으며 모두의 뒤를 맡는다. 꿈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헌신은 매일같이 치여 사는 젊은이들에게 ‘죽음까지 막는 음악가’의 의지를 장렬히 전한다.

휴먼 다큐멘터리의 중심인물 최재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내려놨다. 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우는 걸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탄하며 비관하는 일반적인 열등감의 서사도 아니다. 냉혹한 현실에 수긍하고 살아가야 하는 최엘비의 < 독립음악 >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가장 보통 사람들의 ‘대중음악’이다. 부모님, 강아지, 햄스터 그리고 용궁으로 떠난 물고기까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촬영한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씬. 컷 사인과 동시에 눈물 섞인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 수록곡 –
1. 아는 사람 얘기
2. 마마보이
3. 섹스
4. 주인공
5. 독립음악

6. 살아가야해.
7. WYBH save my life but…
8. 최엘비 유니버스
9. 슈프림
10. 잘먹어/걱정마
11. 도망가! (Feat. 브로콜리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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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엘비 ‘CC’ (2020)

평가: 3.5/5

진득한 소포모어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주제로 청춘의 단면을 재치 있게 풀어낸 < 오리엔테이션 >은 최엘비에 대한 간결한 요약본일 것이다. 투박한 라임과 직관적인 발성, 청자의 기억과 공감대를 살살 자극하며 세밀히 풀어나가는 서사, 무엇보다 그가 속한 우주비행(WYBH) 크루가 가진 특수성과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결과물까지. 추구하는 캐릭터 자체는 힙합 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요소지만, 본인만의 특징이 잘 취합된 작품을 제시하여 설득력을 얻은 경우다.

그 연장선인 2집 < CC >는 전반적인 포맷 자체의 변동은 없다. 물론 이는 새로운 시도나 전략을 따로 취하지 않아도 아직 보여줄 무기가 많이 남아있고, 그만큼 작업물에 자신 있다는 의미로 먼저 다가온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수많은 젊음의 상징물 가운데서도 중심 소재로 ‘사랑’을 택했다는 점. 이 점을 결정적인 공격처로 사용한다. 크루 특유의 몽글몽글한 신스 사운드와 정직한 드럼, 안정적인 퍼포먼스는 전과 동일하지만, 상징물을 연달아 호출하며 공감을 요하던 전작에 비해 감정적인 면에서 깊은 묘사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소재를 가공하는 법을 연습해본 덕일까, 표현법에도 여유가 묻어난다. 중복 노선에서 풍기는 일말의 불안함은 첫 트랙 ‘난 완벽하지 않아요’의 등장과 함께 깨끗이 사라지는데, 일렁이듯 감정을 동요시키는 사운드가 포문을 연 뒤 ‘중요한-건 난 한 번도 완-벽한 첫 장을 완-성해 보지 못했단-걸’과 같은 정석적인 라임 배치가 등장하고, 뒤이어 쉽고 캐치한 훅으로 연결되는 구성은 누구나 이해할 만큼 친절하고 귀를 사로잡는 킬 포인트를 담고 있다.

신시사이저 방울 속 치기 어린 사랑을 논하는 ‘사랑은 위대해!’와 ‘CC(Campus couple)’, 장난스러운 기타에 위트 있는 훅을 섞은 ‘아님말고’, 로파이한 건반 사운드의 ‘비가와 (Interlude)’ 등 장점이 농축되고 안정적인 트랙들이 독창성을 공고화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일각 존재하는데, ‘구름구름’은 빈지노의 래핑이 짙게 드리우고, 공명하는 비트와 쿤디판다의 수려한 피처링이 담긴 ‘미안해’는 개개의 높은 퀄리티를 가졌지만 각자의 개성이 강한 탓에 응집 단계에서 겉도는 양상을 보인다. 라디오 사연을 삽입한 ‘결혼소식’은 야심 찬 장치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다만 이러한 결점이 그저 생채기로 보일 정도로 작품은 높은 몰입감을 자랑한다. 이는 최엘비가 소위 명반이 상징하는 육각형의 기준에 다가가기보다, 앞서 말했듯 본인이 가진 강점을 탐구하고 지표를 뚫는데 온전히 에너지를 집중한 덕이다. 일관된 콘셉트 아래 여전히 생생한 일화가 살아숨쉬는 < CC >는 진지함과 엉뚱함을 겸비한 시트콤의 형태로 손을 뻗는다. ‘완벽하지 않’기에, 친근하고 독보적이다.

– 수록곡 –
1. 난 완벽하지 않아요 
2. 사랑은 위대해! 
3. 7AM (Skit)
4. CC
5. 구름구름
6. 비가와 (Interlude)
7. 기회비용
8.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9. 미안해 (Love pt.2) (Feat. Khundi Panda)
10. 결혼소식
11. 아님말고 (Feat. THAMA) 
12.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