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2022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조금이나마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왔듯 음악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희로애락으로 가득 찼던 2022년, 이즘 에디터의 일상을 파고든 노래는 무엇일까. 각자 취향을 녹여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소소한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정다열’s Choice

릴 나스 엑스(Lil Nas X) ‘Star walkin”
깜빡일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별들의 서사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50(이오공) ‘춤을 추어요’
세월에 익어 물든 기타 연주와 목소리를 벗 삼아.

언텔(Untell) < Human, The Album >
인간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근본적인 물음에 날을 부딪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향연.

신해경 ‘리얼러브 (Feat. 청하)’
양극단의 아티스트를 이어준 오작교 위의 황홀경.

그웬노(Gwenno) < Tresor >
익숙한 듯 낯선 미지 세계 속 보물. 위로라는 감정에 언어 장벽이 무슨 소용인가.

장준환’s Choice

MJ 렌더맨(MJ Lenderman) < Boat Songs >
마이크(The Microphones)를 든 채 인도(Pavement) 위 나타난 현대판 ‘마티 맥플라이’.

길라 밴드(Gilla Band) ‘Post Ryan’
어느 날 자택으로 배달된 택배. 그리고 이 불길한 난수 암호에 빠져들게 된 당신.

선과영 < 밤과낮 >
실이 바쁘게 오가듯, 미소가 배시시 오가듯. 그 소박함이 넘실넘실.

펜타곤 ‘관람차 (Sparkling Night)’
빠져들기까지 10초, 벗어나기까지 10개월. 키노 감성의 무서운 마력이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 Chloë And The Next 20th Century >
세기를 연결하는 낭만의 무도회장. 미스터 틸먼, 나와 함께 춤을 추겠어?

염동교’s Choice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 Ice, Death, Planets, Lungs, Mushrooms And Lava >
1970년대의 잼(Jam)이 그립다면.

톰 제(Tom Zé) < Língua Brasileira >
MPB와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의 거목, 건재함을 과시하다.

FKA 트위그스(FKA Twigs) < Caprisongs >
스멀스멀 중독성 있는 앨범. 자꾸 손이 간다.

메가데스(Megadeth) <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 >
역시 메탈리카보다는 메가데스! 여전히 날카롭고 신랄하다.

뷰 파르카 투레, 크루앙빈(Vieux Farka Touré, Khruangbin) < Ali >
나른한 아프로 사이키(Psyche). 결은 다르지만 진저 베이커와 펠라 쿠티의 협연이 떠오른다.

김성욱’s Choice

프로미스나인(fromis_9) ‘Dm’
머리 아픈 콘셉트들 사이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눈을 못 피하게, 말도 못 돌리게’ 만들었다.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 Memphis Special One Take Live >
멤피스가 주목한 ‘우리들의 블루스’. 2022 올해의 발견.

야드 액트(Yard Act) < The Overload >
갱 오브 포와 카이저 치프스 그사이 어딘가. 신랄하고 유쾌한 브렉시트 시대의 포스트 펑크.

비치 하우스(Beach House) < Once Twice Melody >
비치 하우스의 모든 앨범을 사랑한다. 이 앨범도 그렇다.

씨에이치에스(CHS) ‘Highway’
‘여름’하면 떠오를 노래가 하나 추가됐다. 8월 휴가철, 꽉 막힌 서울양양고속도로 위에서 들어보자.

임동엽’s Choice

텐투포(10 to 4) < 말하기 듣기 쓰기 >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 < Hypnosis Therapy >
정말로 최면에 걸린 줄 알았다.

이권형 < 창작자의 방 >
그저 음악을 할 뿐.

Various Artists < Elvi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위대한 유산.

원슈타인 ‘존재만으로’
막힘없이 편안하다.

김호현’s Choice

해파 < 죽은 척하기 >
불안은 이렇게 사랑을 끌어안고 기어이 잠깐의 휴식을 만들어 낸다.

이수정 & 강재훈 < Stellive Vol.56 | Duology: Live At Stellive >
한국 재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의 근사한 조합.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 ‘Never gonna be alone (Feat. Lizzy McAlpine, John Mayer)’
천재 마케팅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 Black Radio III >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최첨단 흑인음악 실험실.

도미 앤 제이디 백(DOMi & JD BECK) < Not Tight >
재즈 역사를 이끈 거인들의 어깨 위에 새로운 세대가 올라서다.

손민현’s Choice

글렌체크(Glen Check) < Bleach >
아직 어른이 되긴 이르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이찬혁 < Error >
어떤 예술가의 기행은 시대를 여유롭게 스쳐가기도 한다, 파노라마처럼.

9와 숫자들 < 토털리 블루 >
코로나에 무뎌진 현대인들을 위한, 시기적절한 푸른 위로 한 가닥.

에이비티비(ABTB) < ⅲ >
더 거세게, 더 열정적으로, 더 록스럽게! 새 연료를 주입한 ABTB의 질주.

키스 에이프(Keith Ape) < Ape Into Space >
해묵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Mull’.

한성현’s Choice

자브 이스…(JARV IS…) < This Is Going To Hurt (Original Soundtrack) >
자비스 코커만의 방식으로 보듬는 ‘따끔’한 세상살이.

1975(The 1975) <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 >
괜히 머리 싸매지 말고 쉽게 쉽게 삽시다.

미츠키(Mitski) ‘Glide (cover)’
인간과 로봇,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기억. 에테르는 실존할지도 몰라.

트리플에스(tripleS) ‘Generation’
유닛 시스템, Z세대의 시대정신? 다 떠나서 그냥 즐겁게 랄랄라.

유아 ‘Lay low’
유혹 대신 냉소를 품은 세이렌의 노래지만 홀리는 건 마찬가지.

백종권’s Choice

일삼공공(1300) ‘Rocksta’
시드니에서도 한국 힙합. 음악으로 맺은 FTA.

잭슨(Jackson Wang) < Magic Man >
꾸준한 탈피의 결과물. 장난기 넘치던 악동이 제대로 마이크를 쥐었을 때.

엑스지(XG) ‘Tippy toes’
한국식 제조 과정으로 구현한 미국의 맛. – (Made in Japan)

버둥 < 너에게만 보여 >
올 한 해 발버둥이 석연치 않았다 해도. 나, 너, 우리를 위한 ‘응원’ 소곡집.

사커 마미(Soccer Mommy) < Sometimes, Forever >
웰메이드 얼터너티브 록이 선사하는 평온한 꿈의 체험. 옥에 티는 풋볼 마미가 아니라는 점.

소승근’s Choice

우아!(woo!ah!) ‘별 따러 가자’
이 노래는 우아!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가설을 확인시켜준다.

우연, 민서 ‘Make u move’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 이후 최고의 시티팝.

트라이비(TRI.BE) ‘In the air (777)’
말이 필요 없다. 이게 대중음악이다. 최고의 야구 응원가.

뉴진스(NewJeans) ‘Hype boy’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요 멜로디와 쉬운 안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채연 < Hush Rush >
수록곡이 적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정리 및 이미지 편집: 정다열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청하, 크리스토퍼 ‘When I get old’ (2022)

평가: 2/5

2년 전과 달리 석연치 않은 조화다. 2020년 ‘Bad boy’로 처음 만난 청하와 크리스토퍼의 우정은 내한 공연 무대와 ‘When I get old’까지 이어졌다. 간결한 사운드에 두 사람의 매력적인 음색으로 이끄는 구성은 이전과 비슷하나 두 번째 듀엣은 단조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Fly me to the moon’이 연상되는 후렴구의 멜로디는 친숙하고 권태롭다. 끝난 사랑을 노래하는 ‘Bad boy’와 달리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할 뿐 색다른 재미를 주지 못하는 곡은 첫 번째 협업의 단순한 연장처럼 느껴진다. 청량한 댄스곡에서 강점을 보이는 청하와 거칠게 목을 긁어내리는 ‘Bad’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크리스토퍼의 강점 역시 부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다시 호흡을 맞춘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Categories
Album KPOP Album

청하 ‘Bare&Rare Pt.1’ (2022)

평가: 2.5/5

‘Sparkling’은 의심의 여지 없이 지금의 청하에게 필요했던 싱글이다. 시원하게 울리는 신시사이저와 상쾌한 휘파람이 내뿜는 청량한 에너지로 가득 채운 곡은 올라운더로서의 역량 증명에 힘쓰느라 한동안 놓치고 있었던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되살린다. ‘Why don’t you know’와 ‘Rollercoaster’ 시절로의 회귀를 뜻하나 답습의 우려보다는 반가움이 앞서는 이유다. 마치 침체기 이후 ‘Never really over’를 들고 나왔던 2019년의 케이티 페리를 보는 기분이다.

하나 < Bare&Rare Pt.1 >이 좋은 음반이냐 묻는다면 이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개별 곡 단위로 보면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춘 가사와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 등 여러 장점이 보이지만, 거시적인 구성력이 부족해 좋은 재료로 시너지를 일궈내는 대신 제로섬 상태를 야기한다. 순서가 잘못 정해진 값비싼 코스 요리, 장면은 잘 찍었지만 편집이 구심점 없이 어지러운 영화와도 같다.

무겁고 음산한 첫 트랙 ‘Xxxx’에서 ‘Sparkling’으로의 톡 쏘는 반전은 분명 상쾌하다. 통통 튀는 ‘Louder’까지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끈적한 ‘Crazy like you’로 되돌아가는 양상은 타이틀곡의 매력이 앨범 전체로 전파될 여지를 차단한다. 차라리 일차원적이라도 < Querencia >처럼 영역을 세부적으로 나눴다면 가수도 듣는 이도 소화가 더 쉽지 않았을까 싶다. 서로 엇갈린 트랙들이 무분별하게 섞여 있으니 중간지대를 이어줄 수 있는 ‘California dream’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건조하게만 들린다.

퍼포머의 차원을 넘어 진솔한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청하의 의지는 확실하나, 그러면서도 끝내 기존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포기하지 못해 균열이 발생한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녹여낸 ‘Goodnight my princess’의 감동이 뒤를 잇는 팝 트랙에 의해 금세 흐릿해지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 지점이다. 다재다능함이 곧 캐릭터이자 무기였기에 이를 내려놓기가 쉽지는 않겠으나, 기꺼이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다면 움직임은 굼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야심찬 프로젝트였지만 부작용으로 극심한 이미지 소비를 초래한 < Querencia >가 촉발했을 내적 성장과 상업성 사이의 고민, 아쉽게도 결론이 썩 명쾌하지는 않다. 두 번째 파트는 소위 ‘매운맛’을 담은 ‘Rare’가 될 예정이라 일찌감치 밝혔는데, 진정한 ‘Bare(헐벗은)’의 의미 실현을 위해 이번에는 대중성을 양보하더라도 깊이에만 몰두하는 식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Sparkling’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청하를 보는 일도 물론 즐겁지만, 이제 그 너머의 기획력까지 갖출 때가 왔다.

-수록곡 –
1.Xxxx
2. Sparkling
3. Louder
4. Crazy like you (Feat. 비비)
5. California dream
6. Goodnight my princess
7. Louder
8. Nuh-uh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청하 ‘Killing me’ (2021)

평가: 3.5/5

아이돌 경연 방송 < 프로듀스 101 >의 아이오아이를 거쳐 발라드 스타일의 ‘월화수목금토일’로 솔로 데뷔한 청하는 ‘Roller coaster’, ‘벌써 12시’에 이어 올해 초 21곡의 대작 < Querencia >를 발매하며 보컬, 댄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 밖에도 ‘Meteor’의 창모, ‘Bad’의 크리스토퍼 등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여러 뮤지션과 협업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활동 5년 만에 첫 정규 앨범을 내놓은 2021년을 특별하고도 기억에 남을 한해로 마무리 짓기 위해 그가 꺼낸 카드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보컬은 곡의 중심이 청하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물 흐르듯 흘러 단숨에 도착한 후렴에서는 매끄럽고 유려한 반주와 멜로디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매력도를 높이고, 되풀이되는 일상을 긴 터널에 비유해 그 끝이 밝을 것이라 노래하는 가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족을 줄여 창자(唱者)의 의도와 청자의 감상을 통일시킨 청하의 ‘희망’ 전하기가 성공적이다.

Categories
Album KPOP Album

청하 ‘Querencia’ (2021)

평가: 2.5/5

스물 한 곡 규모가 순간 놀랍지만 환호가 오래가지 못한다. 퍼포먼스, 댄스, 실험, 인간미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구성은 2017년부터 전개한 솔로 커리어의 집대성이며 청하의 ‘멀티 페르소나’ 면모를 각인하고자 하는 의도다. 정작 광활한 캔버스 위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흐릿하다. 웬만한 완성도가 아니고서야 과욕으로 잊히고 마는 대작(大作)의 운명이다.  

모든 분야를 고르게 잘 해내는 청하의 강점은 넓기만 한 신보에서 무난하나 특색이 없다는 단점으로 퇴색된다. ‘Bicycle’이 문제를 집약한다. 강렬한 기타 리프로 출발하며 아티스트의 첫 정규작을 상징하는 해방의 송가가 되어야 할 곡이지만, 인상적인 멜로디도 없고 중반부 영어 랩은 어떤 매력적인 구절이나 당위가 없어 진부한 주제 의식에 머무른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강해야 할 추임새와 팔세토 보컬로 구성된 후렴부의 힘이 가장 약하다. 무대 없이 노래 자체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곡이다.

깊은 탐구의 결과도 아니고 주체적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두리뭉실한 이미지, 자주 언급되는 고정관념에 뮤지션을 고정하여 여러 재료를 나열한 작품처럼 들린다. 출발점 ‘Noble’ 사이드가 가장 치명적으로, ‘Masquerade’와 ‘Flying on faith’, ‘Luce sicut stellae’ 모두 무난한 완성도의 곡이지만 특별하지도 않고 곡의 주도권을 청하가 확실히 잡고 있지 않다. 아티스트의 것으로 체화되기 전의 해외 케이팝 데모곡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다. 

앨범을 지탱하는 부분은 청하와 오래 함께한 프로듀서 빈센초(VINCENZO)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는 사이드 B와 사이드 C다. 타이틀곡의 정체성이 애매하긴 하나 빈센초는 ‘고귀한 야만인’과 조이 디비전의 명작을 쪼갠 각 사이드 인트로와 주요 곡에 참여하며 형식을 잡는 인물이다. 선공개 싱글이 대거 포진된 이 파트에서 청하는 애매한 팝스타나 케이팝 아이돌을 넘어 댄스 디바로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확보한다. 

‘Stay tonight’이나 리햅(R3HAB)의 ‘Dream of you’ 같은 곡들에 개별 싱글보다 앨범 단위 감상에서 더 좋은 평을 내릴 수 있는 이유다. 어두운 댄스 플로어로 향하는 듯한 사이드 B ‘Savage’와 연결되는 노래들에서 청하는 확실한 보컬 플레이 없이도 유행과 힙의 중간지대에서 균형을 잡으며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수민과 슬롬이 참여한 ‘짜증 나게 만들어’와 콜드의 ‘Lemon’, 백예린과 구름의 ‘All night long’처럼 새로운 매력을 더하며 ‘만인의 뮤즈’ 포지션을 입증해 보이기도 한다. 

마마무의 ‘너나 해’ 이후 흥미로운 라틴 풍 케이팝 트랙으로 기억될 ‘Play’에 이어 스페인어 가사와 푸에르토리코 래퍼 과이나(Guaynaa)와 함께한 ‘Demente’를 통해 또 다른 세계에 손을 건네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작품은 마지막까지 모던한 질감을 이어나가는 대신 팬송 ‘별하랑’과 발라드 ‘솔직히 지친다’ 등으로 끝까지 통일보다 확장을 의도한다. ‘X (걸어온 길에 꽃밭 따윈 없었죠)’라는 흥미로운 서사가 존재하는 마지막 ‘Pleasure’ 사이드가 ‘Comes n goes’ 같은 매력적인 댄스 팝에도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이유다.

결정적 순간을 기대하나 결과는 베스트 음반이다. 아티스트의 다재다능한 면모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프로덕션은 번뜩이는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주어진 곡을 성실히 수행하는 청하 역시 열정적인 댄스 퍼포먼스와 반대로 노래에서는 수준급 이상을 넘보지 않는다. 정직하게 나열된 콘셉트와 많은 수록곡이 어느 순간부터 피로하게 다가오며, 압축과 선별 과정의 부재는 ‘양보다 질’을 언급하게 만든다.

무던함에 대해 청하도 할 말은 있다. < W >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을 본인의 ‘케렌시아’라 언급하며 도전보다는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꿈을 향해 고난을 딛고 10대 시절을 모두 바친 그가 붉은 피와 망토의 투우 경기장 같은 케이팝 시장에서 유일한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뜻은 이해된다. 하지만 과연 < Querencia >가 상처 입은 자아를 쉬게 할 안정적인 피난처인지는 의문이다. 아직 최후의 순간 급소에 칼을 꽃아 넣는 투우사 마타도르(Matador)도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자신을 틀에 가두는 것은 아닌지. 

– 수록곡 –
1. SIDE A {NOBLE}
2. Bicycle
3. Masquerade
4. Flying on faith
5. Luce sicut stellae
6. SIDE B {SAVAGE}
7. Stay tonight
8. Dream of you (with R3HAB)
9. 짜증 나게 만들어
10. Chill해
11. SIDE C {UNKNOWN}
12. Play (feat. 창모)
13. Demente (Feat. Guaynaa)
14. Lemon (Feat. Colde)
15. 별하랑 (160504 + 170607)
16. SIDE D {PLEASURES}
17. X (걸어온 길에 꽃밭 따윈 없었죠)
18. All night long
19. 솔직히 지친다
20. Comes n goes
21. Querencia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