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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2. 팝 9곡

역주행은 차량이 달리는 방향과 반대로 달리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음악에서 역주행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가수나 노래가 뒤늦게 인기를 얻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음악계의 역주행은 기분 좋고 안전하다. 그런데 이런 은혜로운 상황이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도 꽤 많은 노래들이 다행히 부활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역주행 리스트의 기준은 처음 발표했을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노래이기 때문에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나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Unchained melody’, 로이 오비슨의 ‘Oh! pretty woman’처럼 처음 공개했을 때 더 높은 인기를 누렸던 곡들은 과감하게 제외했다.

홀 앤 오츠(Hall And Oates) ‘She’s gone'(1973)
1980년대에 ‘Kiss on my list’, ‘Maneater’, ‘Private eyes’, ‘I can’t got for that’ 같은 명곡을 배출한 대릴 홀과 존 오츠의 첫 번째 히트 싱글이다. 백인임에도 묵직한 소울 발라드를 구사한 이 듀엣은 1973년 말에 ‘She’s gone’을 발표해서 이듬해에 빌보드 싱글차트 60위를 기록했다.

이후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RCA로 이적한 홀 & 오츠가 발표한 ‘Sara smile’이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오르자 배가 아팠던 애틀랜틱은 ‘She’s gone’을 다시 싱글로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7위 곡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재활용의 좋은 예. 이후 ‘Rich girl’로 빌보드 정상을 밟은 홀 & 오츠는 그 여세를 몰아 19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듀오로 입지를 다졌다. 이 모든 성공의 출발점은 바로 ‘She’s gone’이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 ‘Dream on'(1973)
1973년에 공개한 데뷔앨범의 첫 싱글로 당시에는 빌보드 싱글차트 59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향인 보스턴의 지역 라디오는 ‘Dream on’을 줄기차게 틀어댔다. 덕분에 에어로스미스는 고향 보스턴과 매사추세츠 주에서만큼은 ‘떠오르는 스타’가 아니라 이미 ‘떠오른 스타’였다.

2년 후인 1975년에 공개한 3집 < Toys In The Attic >은 모든 걸 바꿨다. 이 앨범에서 ‘Walk this way’와 ‘Sweet emotion’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음반사인 컬럼비아 레코드는 재빨리 데뷔곡 ‘Dream on’을 다시 싱글로 발매해 빌보드 싱글차트 6위를 기록했다. 이후 보컬리스트 스티븐 타일러와 기타리스트 조 페리의 불화로 부대낌을 겪은 에어로스미스는 1987년에 발표한 < Permanent Vacation >으로 부활해 현재까지 아메리칸 록을 상징하는 밴드로 생존해 있다. 심지어 에미넴이 ‘Sing for a moment’에서 ‘Dream on’을 샘플링하기도 했으니까.

샬린(Charlene) ‘I’ve never been to me'(1977)
이 곡도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처럼 라디오의 지원사격을 받아 역주행에 성공했다. 1977년에 빌보드 97위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곧바로 사라진 ‘I’ve never been to me’를 좋아했던 전직 모타운 직원 출신으로 지역 방송국 디제이였던 스코트 섀넌은 샬린이 모타운과 재계약을 하도록 도움을 줬고 이 곡은 1982년에 재발매 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3위까지 진격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곡 분위기와 달리 노래 내용은 한때 화려하고 허세에 찌든 삶을 살았던 중년의 여자가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닮은 여인에게 충고해 주는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다.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 ‘Solitary man'(1966)
자기 얼굴을 앨범커버로 대문짝만하게 내건 대표적인 가수는 필 콜린스와 닐 다이아몬드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외모. 1970년대 가장 성공한 싱어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를 상징하는 ‘Solitary man’은 196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55위를 기록한 그의 첫 번째 차트 진입곡이다.

당시엔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이후 ‘Cherry cherry’, ‘Girl you’ll be a woman soon’, ‘Holly holy’, ‘Sweet Caroline’이 성공을 거두자 음반사는 1970년에 ‘Solitary man’을 다시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21위까지 올랐다. 이후 이 노래는 히트곡이 많은 닐 다이아몬드의 시그니처 송으로 영국 박제됐다.

포인터 시스터스(Pointer Sisters) ‘I’m so excited'(1982)
영국 걸그룹 걸스 얼라우드가 리메이크 했던 ‘Jump (For my love)’의 주인공인 친자매 트리오 포인터 시스터스가 1982년에 발표한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30위를 찍고 하락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4년에 ‘Jump (For my love)’와 은지원이 커버했던 ‘Automatic’이 연속으로 히트하자 아쉬움이 남았던 ‘I’m so excited’를 살짝 리믹스해서 부활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상승해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룬 ‘I’m so excited’는 ‘Jump’, ‘Automatic’과 함께 그해 그래미에서 포인터 시스터스에게 최우수 팝 보컬 그룹 트로피를 수상하는데 힘을 보탰다.

빌리 베라 & 더 비터스(Billy Vera & The Beaters) ‘At this moment'(1981)
1987년 초에 음악 관계자들에게도 낮선 가수의 노래가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것도 라이브 실황이. 어리둥절했지만 그 의문은 곧바로 해소됐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마이클 제이 폭스가 출연하던 시트콤 < 패밀리 타이즈 >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이었던 1962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한 빌리 베라는 1981년에 ‘At this moment’를 발표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79위를 정점으로 금방 하락했다. 컨트리 팝과 뉴웨이브가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던 1980년대 초반에 약간은 청승맞은 알앤비와 재즈, 카바레 음악 스타일이 혼용된 ‘At this moment’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비좁았다. 결국 시트콤의 지원사격으로 발표 6년 만에 빌보드 넘버원을 찍었지만 더 이상의 후속곡이 없는 빌리 베라 & 더 비터스는 원히트원더 가수로 남았다.

제임스 인그램 & 패티 오스틴(James Ingram & Patti Austin) ‘Baby come to me'(1981)
알앤비 가수 패티 오스틴이 1981년에 발표한 앨범 < Every Home Should Have One > 수록곡으로 1982년 4월에 싱글로 커트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7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묻힐 수 있었던 이 곡 역시 텔레비전 드라마 < 제네럴 호스피털 >에 등장하면서 역류를 시작해 1983년 2월에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랐다.

영국의 펑크(Funk) 밴드 히트웨이브의 리더 출신으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Off the wall’, ‘Rock with you’, 조지 벤슨의 ‘Give me the night’ 같은 명곡을 작곡한 로드 템퍼튼이 만든 ‘Baby come to me’는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를 반영한 어반 알앤비를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로 다양한 가수들이 커버해 곡의 완성도를 인정하고 추앙했다. 이 중에는 박진영도 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What a wonderful world'(1967)
1967년에 녹음한 ‘What a wonderful world’는 영국 차트 정상을 포함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싱글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미국에서 잊혀질 뻔한 이 노래를 살린 인물은 영화감독 배리 레빈슨. 그가 1987년에 만든 영화 < 굿모닝 베트남 >에 ‘What a wonderful world’를 삽입하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방송국에서 일하던 디제이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린 이 작품은 주연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었고 16년 전인 1971년에 세상을 떠난 ‘사치모(루이 암스트롱의 별명)’를 소환했다. 전장의 비극을 묘사한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거장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찬가는 극명하게 대비되며 짙은 인상을 남겼다. 어찌나 강렬했는지 몇 년 후 우리나라 맥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루이 암스트롱의 대표곡으로 안착했다.

퀸(Queen) ‘Bohemian rhapsody'(1975)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노래다. 1975년에 발표돼서 빌보드 싱글차트 8위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1990년대 초반에 그 족쇄에서 풀렸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Bohemian rhapsody’는 금단(禁斷)의 노래였다.

1991년 11월 24일에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고 미국에서는 1992년에 다나 카비와 마이크 마이어스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 < 웨인스 월드 >에 ‘Bohemian rhapsody’가 삽입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영화 < 웨인스 월드 >에서 얼간이 5명이 자동차 안에서 헤드뱅잉을 하는 그 유명한 장면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소재로 활용됐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설득했던 음반사 사장 역을 맡은 배우가 마이크 마이어스가 이런 대사를 읊는다. “차 안에서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면서 머리를 흔드는 사람은 없어!”.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의 성공으로 이 노래는 2018년에 세 번째로 빌보드 싱글차트에 올라 33위를 기록했다. ‘Bohemian rhapsody’는 불멸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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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1. 가요 10곡

역주행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방송, SNS 등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밈(Meme), 추억, 감성 등 그 의미 또한 가지각색인 이 현상에 음원 시장과 유행이 급변한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가 과거만 맴돌며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씁쓸한 실정이지만, 기억 속으로 사라질 뮤지션에게 생명을 불어넣거나 몰랐던 노래의 진가를 발견한다는 장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옛 노래가 굽이치는 물결을 타고 지금 우리의 곁으로 몰려온다. < 슈퍼스타 K >, < 나는 가수다 >, < 복면 가왕 >,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찾아서 >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음악과 추억을 되새김질했지만,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돌아온 곡은 인터넷을 떠도는 ‘작은 영상 하나’에서 비롯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MZ세대가 만든 디지털 문화가 그 중심에 있음을 뜻한다.

2021년 상반기만 해도 벌써 브레이브 걸스와 SG워너비 두 팀이 어떤 연어보다 힘차게 차트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왔다. 매년 찾아오는 연금과 시즌 송처럼 연례행사에 가까운 이 현상을 이즘에서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차선을 반대로 달리는 노래가 다시 나오기 전에 이즘 필자들이 대표곡 10개를 선정했다.

EXID ‘위아래'(2014)
아이돌 역주행의 역사를 새로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등장하기 이전, 전국을 위아래로 들썩이게 했던 원조 역주행 걸그룹이 있다. 팬 한 명이 촬영한 직캠의 파급력은 놀라웠다. ‘위아래’는 2년의 공백을 가진 무명 걸그룹이 존폐를 논의하던 시점에 사활을 내걸었던 곡이다. 활동 당시의 반응은 미진했으나 발매 3개월이 지난 후 SNS를 통해 멤버 하니의 안무 직캠이 입소문을 타면서 뒤늦게 대중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의 역주행 열차는 쾌속으로 질주하며 그해 연말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연히 영상 하나에서 시작된 이 드라마는 해체 위기의 걸그룹을 완연한 대세로 탈바꿈해 주었다.

포화한 아이돌 시장에서 대중에게 각인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일찍이 기회를 잡지 못한 팀들에게 성공의 벽은 높기만 하다. 3년이 꼬박 걸렸던 EXID의 역전은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들의 역주행 공식에는 방송 출연도, 유명인의 홍보도 없다. 오로지 팬이 만든 2차 창작물의 힘으로 일어섰다. 이는 아이돌 그룹이 주목받을 수 있는 제 3의 경로가 되었으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후배 그룹들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아이돌 최초의 역주행을 이뤄낸 EXID의 발자취는 새로운 역주행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닿고 있다. (김성엽)

볼빨간사춘기 ‘우주를 줄게'(2016)
‘하늘만큼 땅만큼’은 사랑의 척도에서 가장 유구한 관용어지만 볼빨간사춘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우주를 안겨줬다. ‘난 그대 품에 별빛을 쏟아 내리고 / 은하수를 만들어 어디든 날아가게 할 거야’라는 귀여운 고백은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고막 여친’ 안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대학 축제를 비롯한 많은 공연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출연을 계기로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1개월 만에 10위권에 진입한 ‘우주를 줄게’ 뿐만 아니라 이 곡이 수록된 < Red Planet >의 전곡이 한 해 동안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사춘기의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면에 주목한 ‘나만 안되는 연애’나 ‘X Song’은 폭넓은 감정선을 드러냈다. 볼빨간사춘기는 역주행의 수혜를 받은 원 히트 원더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썸 탈꺼야’, ‘여행’으로 20대 청춘의 찰나를 포착하고 있다. (정수민)

신현희와김루트 ‘오빠야'(2015)
시작은 인터넷 방송가다. ‘오빠야’를 배경음으로 차용한 한 리액션 영상이 우연히 화제를 끌어 각종 SNS의 파고에 탑승하고, 이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젊은 층을 상대로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이 열풍의 시초다. 전파 과정만 본다면 다른 이유가 컸을지 모르지만 영상에 대한 관심은 곧 음악으로 이어지기 마련. 결국 그 기세는 영상의 업로드 일자 기준 16일 만에 차트 정상이라는 가시적인 기록으로 환산되었다.

반등의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찾아오지만 정작 제대로 거머쥐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야’의 성공 요인은 단박에 꽂히는 강렬한 인트로다. 한번 들으면 도통 잊기 힘든 신현희의 이 한 마디는 영상 너머 노래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고, 뒤이어 등장하는 ‘썸’의 관계를 재치 있는 랩으로 풀어낸 코러스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노래방 애창곡 파트로 부상하며 상승 곡선에 박차를 가했다. ‘오빠야’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까지 걸린 시간, 인트로의 첫 2초였다. (장준환)

마크툽, 구윤회 ‘Marry me'(2014)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차 안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바로 옆에서 불러 주는 듯 가공하지 않은 음원, 이게 승부수였다. 이 영상이 페이스북의 인기 페이지 <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에 올라왔고 일명 ‘신호대기남’이 큰 관심을 일으키며 영상 속의 곡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노래의 인기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은 결혼식장 안이었다. 음원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을 당시 예식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곡 가수의 음원보다 말 그대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축가 타이밍엔 어김없이 ‘Marry me’가 흘러나왔고 한동근의 ‘그대라는 사치’와 함께 결혼식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프러포즈 대표곡으로 안착한 노래는 역주행시점 음원 시장에서 일위를 달성한 베스트셀러였고 결혼 시장에서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그때나 지금에나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김도연)

김연자 ‘아모르 파티'(2013)
수 없이 겪어낸 고난에도 김연자는 제 운명을 사랑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재조명된 윤일상표 EDM으로 기존의 트로트 작법을 과감히 탈피한 이 ‘인생 찬가’는 실로 위력적이었다. ‘연애는 필수 / 결혼은 선택’이 형성한 공감의 힘은 가벼운 세대 통합을 일궈냈고 대학가 축제에 출연한 최초의 트로트 가수라는 이변을 낳았다. BTS, 엑소, 트와이스 등 최정상 위치의 글로벌 케이팝 스타들이 백댄서를 자처한 2018년 KBS가요대축제 엔딩 무대는 이 곡의 위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젊은 감성과 화려한 후렴구 멜로디는 역주행의 존재감을 높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진가는 시대를 꿰뚫은 노랫말에 담겨있다. ‘작사의 신’ 이건우의 역작으로 가사 한 줄, 한 마디가 우리의 근원적 스트레스에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 모든 걸 잘할 순 없어’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나이는 숫자 / 마음이 진짜 /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는 용기를 북돋으며 스스로 실현한 김연자식 명언에 방점을 찍는다. 찰나의 반짝임으로 끝나지 않을 주옥같은 격언들이 시대를 대변한다. 어쩌면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은 당연한 절차였다.(김성욱)

윤종신 ‘좋니'(2017)
역주행 신화를 쓰기 가장 유리한 장르는 역시 발라드일 것이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범대중적인 장르인 데다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좋으며, SNS에 올라오는 보컬 실력자들의 커버 영상을 통해서도 인기가 쉽게 번지기 때문이다. 2017년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음악 플랫폼 ‘리슨'(LISTEN)을 통해 발매된 ‘좋니’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부를 노래가 없다’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공략한 아티스트는 유튜브 음악채널 ‘딩고 뮤직’의 ‘세로라이브’로 신세대와 교류를 형성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라이브 영상이 성공을 판가름하며 노래는 가장 많이 들리고,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이 됐다. ‘애청’과 ‘애창’의 동시 포획이었다.

차이는 ‘깊이’였다. 꼭 모은 두 손,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열창하는 베테랑 가수의 라이브는 대중의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고, 이별한 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현실적인 노랫말은 결정적이었다. 원곡을 리메이크한 민서의 ‘좋아’로 차트 정상을 다시 꿰차며 발라드계 ‘답가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음악인으로서 그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각인한 제2의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이홍현)

비 ‘깡 (GANG)'(2017)
허세와 거리가 멀다면서도 ‘백 달러 지폐(Hundred dollar bills)’, ’30 sexy 오빠’를 흥얼대며 여전히 9년 전 ‘레이니즘(Rainism)’에 도취되어 있었다. 향수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2000년대 슈퍼스타는 이후 영화 < 자전차왕 엄복동 >까지 혹평을 받으며 ‘비’급 연예인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미지 타격에 쐐기를 박았던 이 실패작이 컬트적인 역행을 일으킨 ‘나.비 효과’였다.

작품이 별로일 수 있다는 주연의 취중진담과 그를 뒷받침하는 누적 관객 수. 성적은 처참했지만 놀림거리로 이만한 흥행도 없었다. 망작에서 비롯한 각종 패러디는 과거를 들추기에 이르렀고 발매 당시에도 잡음이 많았던 ‘깡’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비록 조롱이 만들어낸 관심이지만 본인도 밈의 인기를 즐겼고 오히려 광대를 자처하며 열풍에 불을 지폈다. 비주류의 인터넷 유행을 대중의 영역으로 견인한 40대 꾸러기의 깡다구는 급변한 콘텐츠 시장을 대변하는 희귀한 역주행 사례다. (정다열)

블루 ‘Downtown baby'(2017)
음과 음 사이의 작은 낙차로 덤덤하게 흐르다가도 ‘너는 나의 다운타운 베이비야’란 훅을 던지는 모습은 과장보다 쿨함을 견지하는 Z세대의 사랑법과 닮아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감미로운 소리는 연인과의 추억을 환기하고 ‘너의 눈은 밤하늘에 별이야’란 구절은 라라랜드(로스앤젤레스)의 푸른 밤을 형상화하며 낭만성을 확보한다.

린다G(이효리)가 < 놀면 뭐하니? >에서 불러 스트리밍 차트 정상까지 도달한 ‘다운타운 베이비’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래퍼 블루가 2017년 말에 발매한 곡으로 2년 6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효리의 허스키한 저음은 멜로디의 좁은 폭을 구원하고 기교보다 감각으로 노래하는 가창이 곡에 잘 달라붙는다. “결국 뜰 곡은 뜬다.”는 운명론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실은 대중을 아는 이효리의 감과 공중파 프로그램의 위력이 작용한 결과다. (염동교)

브레이브걸스 ‘롤린 (Rollin’)'(2017)
역주행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 곡. 수익이 거의 없음에도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군부대 공연을 보낸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부터 “음악을 떠나 평범하게 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던 유정의 인터뷰처럼 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멤버들까지 해체를 앞두고 터진 대박 뒤에는 감동 실화가 숨어있다. 2021년을 뒤집은 이 흥행의 시작은 유튜브 알고리즘이었지만, 실질적 원인은 전심으로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며 군통령, 군인픽, 밀보드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군인들’에게 있었다. 힘든 군 생활 중의 위문에 대한 보답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이들의 성공 형태에서는 특이하게도 영상을 통한 현시대의 홍보 방식과 소자본 인디 뮤지션의 활동 양식이 함께 보인다. 무명의 독립 뮤지션이 길거리와 홍대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하는 모습이 군부대를 도는 브레이브 걸스의 모습과 닮았다. 이는 대형 미디어도, 유명인의 언급도 없이 멤버들 스스로가 일궈낸 노력의 결과임을 증명한다. 이엑스아이디가 팬들에 의한 2차 창작물의 중요성을 알렸다면 브레이브 걸스는 무대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일깨운, 사실상 역주행이 아닌 ‘정주행’인 셈이다. (임동엽)

SG워너비 ‘Timeless'(2004)
역시 < 놀면 뭐하니? >는 강력했다. 프로그램에서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또 다수 음원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SG워너비가 출연한 이번 방송은 영향력이 더 셌다. ‘Timeless’, ‘내사람: Partner for life’, ‘라라라’, ‘살다가’ 등 여러 곡이 동시에 차트를 휩쓸었다. 톱스타 아이유, 대세 걸 그룹으로 등극한 브레이브걸스도 MBC 예능 < 놀면 뭐하니? >의 정기를 받은 노래들 앞에서 추풍낙엽이 됐다. 특히 ‘Timeless’는 SBS < 인기가요 > 1위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 놀면 뭐하니? >는 십수 년 전 나온 노래에 새 생명을 안겨 줬다.

전적으로 방송에 의해 다시 히트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차트에 들어선 노래들은 모두 발매 당시에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를 경험하고,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로서는 SG워너비와 그들의 노래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보컬 그룹이 요즘 얼마 없는 현실도 SG워너비를 돋보이게끔 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맞춰 가며 하모니를 만드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근사하고 살갑게 다가갔다. 인기 미디어, 과거를 향한 대중의 향수, 희소한 체제, 번듯한 가창이 합쳐진 힘이 ‘Timeless’를 비롯한 노래들을 한 번 더 유행의 궤도에 들여놨다. (한동윤)

정리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