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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생각의 빈자리를 감각이 채운다. 그 감각은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 재야의 고수 직함을 넘어 주체할 수 없는 끼와 재능을 자신의 이름으로 아로새기고자 하는 열망이다. 확실한 개성과 성공을 거머쥔 프로듀서와 실력을 검증받은 뮤지션 아래, 인간 한주현의 삶과 가치관을 소개하고자 하는 당찬 자아의 포효다. 즐거운 진보(Jinbo)의 세상은 건강한 야망으로 역동적이다.

물 오른 자신감과 열정은 다채로운 장르 활용과 진솔한 화법으로 구현된다. AOMG 소속 밴드 워크맨쉽(WRKMS)의 블루스 트랙 ‘사랑꾼’부터 재미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불멸의 재능을 손에 넣었다는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일화를 15살의 본인에게 감히 투영해 현재 서울 곳곳에서 인정받는 뮤지션의 서사를 완성한다. 이 여유로운 무드를 곧바로 빽빽한 드럼 앤 베이스 트랙 ‘Don’t think too much’로 변환하여 앨범의 주제 의식을 다시 한번 각인하는 영민함도 범상치 않다.

앨범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2000년대를 풍미한 퍼렐 윌리엄스와 엔이알디(N.E.R.D), 넵튠스 사운드의 진한 흔적 위 타이트한 구성이다. 힙합 단체곡 ‘Coolest fire ever’의 요동치는 신스와 건조한 드럼에서 ‘Drop like it’s hot’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드럼 앤 베이스 ‘Don’t think too much’와 요동치는 신스 리프와 싱코페이션으로 날갯짓을 소리로 옮긴 ‘갈매기’에서도 엔이알디의 구성을 확인한다. 이 작법으로 통통 튀는 개성과 차분한 외관 속 뜨거운 내면이 정확히 전달되며 앨범은 단단한 일관성을 확보한다.

여기에 진보는 유수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랩과 보컬을 오가는 훌륭한 퍼포먼스로 기시감을 피하며 작품을 풍부하게 꾸민다. 호림과 함께한 싱글 ‘Groove’와 궤를 같이 하는 감각적인 ‘Baby’, 파리 출신 누누 패리스(Nounou Paris)의 피비알앤비 ‘해주면 돼’ 같은 관능적인 트랙과 차분한 알앤비 ‘눈을 감아도’가 공존하는 모습이 놀랍다. 런던 출신 피닉스 트로이(Phoenix Troy)의 낮은 톤 랩과 함께 부드러운 보컬을 조화롭게 소화하는 ‘Bed shaker’와 동시에, ‘Houston’과 수퍼프릭 레코즈의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의 ‘비싸 / 백년지기’에선 차분하고 단단한 랩을 선보인다.

그중 ‘잊어버려’처럼 모범과 혁신의 꽃을 피워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더 인터넷(The Internet)의 전 멤버였던 킨타로(Kintaro)와 함께한 이 곡은 < Afterwork >의 몽롱한 소리에 재즈 힙합 밴드 쿠마파크(Kumapark)의 쿠마가 색소폰을 더해,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사이키델릭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앨범 제목과 연결된 인생관을 덤덤히 읊어가는 진보의 메시지가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계시처럼 들린다.

아티스트 이름을 하나의 스타일로 확립한 아티스트의 자신감 넘치는 작품이다. 성실한 태도, 검증된 재능이 있기에 많은 생각은 필요치 않다. 언더그라운드와 케이팝을 분주히 오가며 씬의 진보를 이끈 진보는 솔직한 본인의 이야기 < Don’t Think Too Much >로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이런 ‘착한 열망’은 악마 입장에서도 흐뭇할 법하다. ‘네가 내게 주면 나는 배로 갚아’라는 다짐을 이토록 성실히 지키니 말이다.

– 수록곡 –
1. 사랑꾼
2. Don’t think too much
3. Baby (Feat. Paloalto)
4. Bed shaker (Feat. Phoenix Troy)
5. Houston
6. Coolest fire ever (Feat. Gem, Justhis, Horim, Khundi Panda, Symba J, 스윙스)
7. 해주면 돼
8. 눈을 감아도
9. 갈매기 (Feat. Digital Dav)
10. 비싸 / 백년지기
11. 잊어버려
12. Miss t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