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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CIRCLE’ (2021)

평가: 3.5/5

대중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피제이와 진보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덕분에 현재는 많은 뮤지션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뮤지션의 뮤지션’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 11년 전 첫 번째 앨범 <The Combination>으로 합을 맞춘 이들은 농익은 음악성으로 하고픈 걸 맘껏 펼쳐 보이면서 수준도 높은 앨범의 사례를 제시한다.

피제이가 창조하는 비트는 이미 궤도에 올라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균등하게 맛깔나다. 한 마디에 킥이 두 번 나오며 독특한 리듬을 형성하는 투스텝은 2000년대 초반에 크레이그 데이비드나 베이얼에 의해 유행한 스타일. ‘Waterfalls’는 투스텝 리듬으로 생경한 매력을 형성하고 트럼펫과 신스 베이스, 하우스와 힙합 리듬같이 다른 성질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엮은 두 주인공의 장기는 조화롭다.

퍼지 톤의 신시사이저 음색이 잔향을 남기는 네오 소울 곡 ‘Show me’는 변화가 많지 않은 비교적 선형적인 구조 안에서 감각적인 보컬과 대중적인 코드 진행으로 지루함을 상쇄한다. 드럼 앤 베이스가 연상되는 도입부의 ‘Swiss gold’는 힙합과 재즈가 결합해 1940년대의 스윙 시대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시간 여행하는 진귀한 경험을 제공한다. 힙합과 알앤비, 소울 등 흑인 음악의 우산 아래 다양한 스타일을 체득한 진보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노랫말에도 취향이 확고하다. ‘Singularity’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 특이점이 온다 >에서 따온  ‘Singularity is coming’을 주문 외듯 반복하고 삶의 다채로움과 행복을 담은 ‘Multiverse’의 라이브 결을 살린 드럼 연주와 기타 리프, 오토튠 조합은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을 무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중우주론과 닮았다. 앨범 전체의 소리를 경유하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조우는 어린 시절의 영향과 현재의 관심사, 미래의 예견을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타임라인을 생성한다.

15년 역사가 축적된 음악에 대한 신념과 서로를 향한 믿음은 11년 전 원의 중점에 함께 섰던 그들의 곡선과는 차이가 있지만 다시 한번 원을 그리며 사람들의 손을 맞잡는다.

– 수록곡 –
1. Singularity
2. Multiverse
3. Waterfalls
4. Can you understand
5. Interlude
6. Show me
7. Swiss gold
8. Purpl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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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사라지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여느 해보다 많은 앨범 단위 결과물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쏟아지는 작품 속에는 치열한 젊음의 고민과 베테랑의 조용한 귀환, 글로벌 단위의 논의가 돋보인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 < Tailor >

미디어의 도움 없이 음악 자체로 자생하기 힘든 시기에 만능 뮤지션 윤석철은 좋은 대중가요를 고민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 없이도, 굵직한 퍼포먼스 없이도,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오래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의 팝을 지향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더 블랭크 숍이라는 새 페르소나를 만들어 좋은 가요 프로듀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급 맞춤 정장처럼 참여 가수들에게 딱 들어맞는 < Tailor >는 만능의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블루스, 록, 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치밀한 재봉술을 거쳐 금방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뽑혀 나온다. 일상 속 단편을 흥미롭게 관찰하여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기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산업과 기술의 시선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우리는 엔터테이너보다 이런 외골수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도헌)


추다혜차지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신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신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며, 산 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도 망자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무속음악 무가(巫樂). 굿판에서 벌어지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 담겼음에도 참으로 기괴하고 소름 돋는다. 적어도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기 전까지는. 굿판을 벌이는 장소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한 ‘당산나무’ 아래서 무가는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놀랍게도 재료는 펑크(Funk)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가 오히려 반(反)대중적이라 느껴질 만큼 국악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가히 2020년 음악계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릴 만 한다. 국악, 그것도 무속음악을 들으면서 ‘얼씨구‘와 같은 몸짓이 아닌 힙합에서 나올 법한 그루브를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감상의 끝에 남는 건 애절한 꺾기의 향연,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한국의 정서다.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양적이며, 동시에 철저히 한국적이다. 앨범 전반을 매끄럽게 주도하는 파격적인 장르의 혼합, 무가의 재해석. 국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조지현)


진보(Jinbo) < Don’t Think Too Much >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킹한 기타와 현란한 드럼, 그리고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가 그루비한 작법 아래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진다. 풍부한 성분과 영양을 갖춘 사운드 위로는 화려한 피처링진이 각자의 감칠맛을 발휘하며 곡에 녹아든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활짝 열린 귀 뿐, 이후로는 그저 트랙에 몸을 맡기면 된다.

탄력적인 프로듀싱의 < Afterwork >와 자기만의 색채로 히트곡을 버무린 선집 < KRNB >, 그리고 몽롱한 사랑의 언어 < Fantasy >의 걸출한 커리어를 거쳐, 진보(Jinbo)는 또 한 번 아이디어의 창고 아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발전한 < Don’t Think Too Much >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이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고막 위 펼쳐지는 힙합 퍼레이드. 음악계 풍운아가 만든 감각의 제국.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 MAP OF THE SOUL : 7 >

케이팝 보이 밴드가 아닌, 팝 뮤지션이자 BTS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가 담겼다. 일곱 명의 7년이 담긴 < MAP OF THE SOUL : 7 >은 멤버 개개인의 자아를 녹여내면서도 그룹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내 대중음악의 틀을 바꾸고, 세계 팝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로 이어지는 서사적 앨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의 밝음과 ‘Black swan’의 어둠이 상반된 힘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Respect’처럼 힙합을 보여주다가도 ‘Filter’처럼 라틴을 내비친다. 자신들에게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며 다양함으로 거대해지는 사운드가 BTS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한다. 음악부터 비즈니스까지 이젠 그들이 기준이고, 케이팝이다. (임동엽)


NCT < NCT Resonance Pt.1 >

< NCT Resonance Pt. 1 >은 새 시대를 여는 SM의 야심이다. 개방과 확장이라는 두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회전해온 NCT는 두 새 멤버가 더해진 23인의 NCT 2020으로 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감행했다. 기존 그룹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 면모를 한데 모으되 그것을 더욱 성장한 음악으로 재편한 음반은 팀의 색채를 짙게 하는 랩 트랙과 광폭한 전자음의 댄스,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린 곡과 다국적의 특색을 살린 언어 혼용까지 가공할만한 완성도로 담아냈다. 단연 올해 가장 빛나는 아이돌 앨범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팀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같은 이 스케일에서 SM이 제시한 신개념 플랫폼의 긍정성을 봤다. 문법 선택이 자유롭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이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음악 역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기획에 발맞추어 하나의 콘셉트를 수행하는 가수의 활약, 특히 랩 멤버의 강한 에너지로 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은 덤이다. 그들이 꿈꿔온 이상에 비로소 한 발 더 다가서는 걸음이었다. (이홍현)


정밀아 < 청파소나타 >

포크 씬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잔잔한 일상, 곁을 풀어낸 음반들이 유난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정밀아의 < 청파소나타 >는 그중에서도 우뚝 선다. ‘그럼으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다’(‘서시’) 나긋하게 선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에서 출발’에는 위트 있게 현재와 과거를 돌아본다.

잘 닦은 10개의 돌멩이가 반짝이듯, 매끈한 수록곡들을 지녔다. 도시에서의 삶을 겪으며 느낀 텁텁함과 답답함부터 언젠가 그리워질 시절을 아름다운 단어로 그린 음반은 지독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이다. 일상의 언어로 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작은 기타 반주를 넘어서 울리는 또렷한 오늘의 목소리. 웃고 우는 희로애락이 여기에 담겨있다. (박수진)


딥플로우(Deepflow) < FOUNDER >

한 래퍼의 커리어가 파노라마로 흐른다. 딥플로우는 < FOUNDER >에서 힙합에 빠지고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레이블 대표로서 고군분투하던 모습,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간 때 등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각 상황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나타낸 가사로 노래들은 한껏 사실감을 뽐낸다. 딥플로우가 설립한 레이블에 속한 래퍼들의 찬조도 앨범이 현실성을 또렷하게 발하는 데 힘을 싣는다.

볼품없었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래퍼로 성장한 모습을 알차게 담은 사항 때문에 앨범은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1970년대에 나왔을 법한 투박한 솔뮤직, 펑크 반주는 딥플로우의 역정을 한층 묵직하게 가공해 준다. 또한 일련의 음악적 보조를 통해 < FOUNDER >는 음반 커버로 암시하듯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향을 진하게 풍긴다. 내용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이룬 근사한 작품이다. (한동윤)


쿤디판다(Khundi Panda) < 가로사옥 >

밑그림을 펼쳐 놓은 < 쾌락설계도 >와 뼈대를 조립하는 과정의 < 재건축 > 속 자재가 이뤄낸 것은 < 가로사옥 >이다. 완공의 결과는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일련의 직선 형태로, 깊숙한 공간 안에 나열된 화자의 스토리텔링이다. 그 안에 침투한 질투(‘자벌레’), 자격지심(‘네버코마니’)과 회피(‘겟어웨어’)같이 진솔함을 넘어 독살스럽기까지한 감정의 파편들은 꽤 빽빽하고 날카롭다.

그럼에도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고 점차 파고 들게 만드는 것은 종횡무진 달리는 래핑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휘두르는 듯 더 치밀하고 더 악독하게 랩 퍼포먼스를 채워 넣었고, 피로감을 덜어낸 사운드로 친절함을 살짝 내비치곤 한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 가로사옥 >이 방대한 결말이 아닌 ‘그저 그의 여정 안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쿤디판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임선희)


김석준 < 20세기 소년 >

수려한 디자인과 포장, 마케팅, 시대 감수성, 상품 가치, 언론의 선동적 개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이라는 말에 어른거리는 윽박지름과 현재적 ‘힙’이 요구하는 초조함이 없다. 압박도 느끼지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타협도 없다. 타협한 게 있다면 그의 취향이 머물고 있는 20세기 음악뿐이다. 1993년 유재하가요제의 금상 수상 경력,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선사한 음원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 김석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제’ 정리에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앨범을 내는 지각 행위는 필시 과거에 얽매일 소지가 높다는 선입견에 웃으며 맞서려면 반드시 현재적 감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직접 노래한 다섯 곡 수록 앨범 < 나의 이름은 >에 이어 곧바로 내놓은 < 20세기 소년 >은 게스트 보컬과 밴드의 협조하에 작곡자로서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고 고저, 장단, 강약을 넘나드는 반(反) 고집의 실천이다. ‘나는 나일 뿐’, ‘버퍼링’, ‘함경도 혜숙이’는 이 판에서 ‘특히 근래’ 듣기 어려운 무적, 무소속 음악이다. 메시지가 있다면 결국 휴머니즘이다. 소박, 순결, 진심이 주는 공감이 따로 없다. 20세기 소년은 이런 사소 하나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담아 21세를 포옹한다. ‘난 달라질 거야/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아야지..’ 김석준은 기본의 우대가 뉴 노멀(음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임진모)


스월비(Swervy) < Undercover Angel >

익지 않은 슬픔을 저며낸 젊은 아티스트의 자화상. 대중이 보내는 관심의 뒷면엔 가혹한 잣대와 시선이 숨어 있었고 날카롭게 가공된 언어의 칼날이 되어 그를 해체했다. 태양에 다가간 대가로 추락하게 된 스월비는 온갖 상처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쩌면 감추고 싶던 일면이 흐트러진 바닥 위.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희미한 사랑을 발견했고, 보답이란 투박한 이유로 붉게 물든 날개를 감싸 안고 지상에 머물길 선택한다.

자기 고백이란 주제 아래 늘어놓은 일지(日誌)가 어둡고 차갑다. 낮게 깔린 비트를 기반으로 읊조리는 랩은 마주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기에 감정선은 높낮이를 그리지 않고 일정하다. 철저한 사실주의. 낡은 VHS 위로 덮어진 다양한 형태의 스월비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아티스트의 성장기에 대중은 분명한 감응을 느꼈다. 이제 첫 정규 앨범. 결국 자유를 찾아 희망으로 귀결된 < Undercover Angel >의 서사처럼 모든 걸 딛고 일어선 스월비의 자리가 이곳에 굳게 새겨졌다. (손기호)


2020 올해의 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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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Viann) ‘The Baker’ (2019)

평가: 4/5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 Los Angeles >가, 혹은 썬더캣(Thundercat)의 < Where The Giants Roam >이 떠오른다. 부드럽게 조율된 피아노와 현악기의 선율 사이로 날카로운 소음, 땅을 기는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부피와 탄성을 지닌 웡키(Wonky) 사운드가 조립되는 선과 악의 공존. 비앙(Viann)은 보편적인 일상의 기본 물질과 죄악을 지닌 비주류의 원소를 한 데 모아 해체, 분석, 그리고 재배열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연옥을 설계한다. 그야말로 신의 신성한 과업, 창조주가 펼치는 ‘베이킹’이다.

개인의 능력을 감추기 보다, 오히려 최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여러 재료를 능란하게 다뤄온 본인 실력에 대한 믿음과 작품의 주체를 자신으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이는 작중 솔로 파트로 입증되는데, ‘Color me bed’의 변칙적인 트랩 비트에서 ‘시가렛’으로 이어지는 워프 레코즈(Warp Records) 풍의 베이스 사운드, 위협적인 전자음이 날뛰는 ‘Hub’와 ‘막내’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렉트로니카와 재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현란함은 같은 계열의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을 지향하는 아티스트 ‘XXX’의 날카로운 청적 쾌감보다는 조금 다른 결인, 미묘하고도 아늑한 안정감이다.

피처링 선택 또한 매우 탁월하다. 아티스트 특성에 맞게 변모하는 비트 메이킹이 작품 전반에 드러날뿐더러, 그의 위대한 천지창조 과정에 기꺼이 참여한 인물들 또한 날렵한 솜씨로 비트와 시너지를 이루는 모습이다. 진보의 그루비한 감각을 부각하는 ‘Got it all’, 후디의 차분한 기조를 따라가는 ‘0과 1 사이’, 그리고 수민의 몽환적인 음색을 팝 사운드로 구현한 ‘4ㄹ5’는 색채를 대상에 일치시킴과 동시에 몰입도를 깨트리지 않고 이어 나간 사례다. 랩의 영역 또한 건재하다. 이현준의 격한 래핑을 온전히 담는 ‘시가렛’과 쿤디 판다의 박자감을 스타가토 형식으로 돋보인 ‘Menace’, 특히 비와이의 화려한 랩 기술이 드러난 ‘Golden Fleece’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비트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트랙이 거듭함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법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실로 놀라운 현장이다.

비앙은 앨범에 ‘매슬로(Maslow) 5대 위계질서’ 이론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부터 자아실현에 이르는 단계까지, 트랙을 나아갈수록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태도와 거친 표면을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서사가 그렇다. 이는 마치 진정한 예술가로 승화하려는, 숭고한 포부이자 음악적 욕구 해소다. 게다가 다소 거창한 주제임에도 접근성 좋은 재즈 요소와 앨범을 하나로 관통하는 메시지로 기반을 다진 덕일까, 내용물이 화려함에도 난잡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만 쉬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쿤디판다와 합을 맞춘 < 재건축 >에서 동양적이면서도 신묘한 프로듀싱으로 이름을 알린 비앙, 그는 < The Baker >로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내로라하는 국내 프로듀서 반열에 쐐기를 박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록곡 –
1. Color me bad
2. Cigarette (Feat. 이현준)
3. Got it all (Feat. JINBO The SuperFreak)
4. Menace (Feat. Khundi Panda)
5. 차원 (Feat. HYNGSN)
6. 우리 집
7. 4ㄹ5 (Feat. SUMIN & Khundi Panda)
8. HUB
9. Jealousy (Feat. HYNGSN)
10. Golden Fleece (Feat. BewhY)
11. 막내 (Feat. NOT EASY)
12. TEST. (With. Eden Highway)
13. 말 한마디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 Your Truth (Feat. Noogi)
14. 0과 1 사이 (Feat. Hoody)  
15. 돈 (With. FR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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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진보 인터뷰

지난 12월, 6년 만의 정규 앨범 < Don’t Think Too Much >를 발표한 진보는 갓 맞이한 2020년의 시작을 바삐 보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신보를 소개하는 방법으로 성수동의 뿐또 블루(Punto Blue)에서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대중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으레 하는 공연이나 쇼케이스 대신 예술 작품과 쇼케이스, 설명회를 통해 충실한 앨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전시회를 감상하며, 긴 공백기 동안 오래 축적된 아티스트의 표현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전시회 이후 21일 진보의 한남동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넓은 스튜디오에는 닥스킴(Docskim)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이 작업을 위해 분주히 오가는 중이었다. 치열하고도 여유로운, 묘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피처링, 콜라보레이션, 작곡가 크레디트의 진보 대신 인간 한주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13년 < Fantasy > 이후 6년 만에 앨범을 발매했다. 공백기가 길었다.
심리적 문제가 컸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과욕이 됐다. 하루는 고민하다 뮤직비디오를 같이 찍던 박재범에게 대놓고 이렇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잘돼요?”. 그러니 이렇게 대답하더라. “좀, 담백하게 내야 할 거 같아요. 너무 힘을 줘서 내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한 방을 노리는 게 아니라 잽 날리듯 가볍게, 부담 없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인가. 
(자세를 취하며) 너무 이렇게, 힘주고 있었던 거다(웃음). 3년에 한 번쯤 도끼(Dok2)를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도 박재범과 비슷한 조언을 해줬다. 

도끼와 박재범 모두 진보보다 어린 뮤지션이다. 개방적인 성격이 인상적이다. 
본성이 그런 게 8이라면 일하다 보니 생긴 성격이 2다. 퀸시 존스, 퍼렐 윌리엄스 등 내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그들은 꾸준히 자신을 물갈이하며 롱런의 초석을 닦는다. 항상 새로운 인물과 친분을 쌓으며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것은 잃지 않는다. 나에겐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꾸준한 신진대사 활동과 같다.

여러 조언에도 불구하고 < Don’t Think Too Much > 발표가 늦어진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KRNB > 두 번째 파트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원래는 앨범 한 장으로 발표하고자 했는데, 싱글로 나눠 발표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실제로 단일 앨범으로 발표됐던 2012년 < KRNB >와 달리, 이번 두 번째 시리즈는 싱글 단위로 공개 중이다. 한 작품이 진행되는 가운데 새 단독작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 Don’t Think Too Much >를 믹스테이프로 기획했다. 10월쯤에는 앨범의 90%가 완성된 상황이었다. 과거 만들어 둔 곡이 많다. ‘Don’t think too much’는 2012년에 스케치를 마쳤고, ‘Coolest fire ever’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곡이다. OST를 염두로 만든 곡, 시대를 앞서간 곡, 기획사에 보냈던 곡 등… ‘갈 곳 없는 친구들이 모인 앨범’이다(웃음). 

< Don’t Think Too Much >의 핵심은 무엇인가. 
음악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 ‘너무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하자. 그냥 해! 실패해도 돼. 안 좋아도 뭐 어때.’다. 오늘 입고 온 나이키처럼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다(웃음). 

지난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타인을 너무 많이 의식해왔다. 후배 뮤지션 누구는 이렇게 잘하는데, 존경받는 선배라면 더 멋진 걸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떨쳐내자는 의지가 앨범의 주제다. 전시회에서 전시한 ‘숙변’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기억이 난다. 이 앨범은 나에게 ‘숙변’ 같았다. 그 묵은 변을 시원하게 ‘플러쉬(Flush)’한 작품이다.  

방금 언급한 대로 1월 17일과 18일, 성수동에서 전시회 형태로 앨범을 소개했다.
보다 많은 분들께 내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앨범을 소개하는 매거진 형식의 설명서도 만들었고, 정규 앨범 트랙리스트를 살짝 바꾼 음반도 수록했다.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전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진보는 힙합 알앤비 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침과 동시에 2012년 소녀시대의 ‘Gee’를 리메이크한 ‘Damn’을 시작으로 SM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협업해왔다. 소속사를 대표하는 샤이니, 에프엑스, 레드벨벳의 노래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방탄소년단의 ‘Pied piper’, ‘Anpanman’은 물론 멤버 제이홉의 ‘Chicken noodle soup’ 역시 진보의 작품이다. 당시 메이저 시장과의 교류가 드물던 언더그라운드에서 진보의 콜라보레이션은 분명 독특한 행보였다. 현재도 그는 청담과 홍대, 이태원을 바삐 오가며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를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다.

진보는 “처음 대형 기획사와의 협업할 땐 나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 ‘나는 안 바뀌는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후배 뮤지션들에게 메이저 시장으로의 접점을 넓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센스의 < The Anecdote >를 프로듀싱한 덴마크 프로듀서 오비(Daniel Obi Klein)의 격려를 소개하면서, “수익원을 다각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이 신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 강조했다.

다양한 스타일이 종합된 < Don’t Think Too Much >에서 가장 새로웠던 도전이 있다면? 
발라드 곡 ‘눈을 감아도’다. 한국 사람들에게 노래방에서, 대학가에서, 술집에서 익숙하게 들려오는 멜로디, 정서 아닌가(웃음).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그 느낌을 피하려 노력해왔는데, 이번 앨범에서 ‘힘을 빼자’는 마음을 가지며 새로운 시도를 더해보고자 했다. 평소 음악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타리스트 김승현이 곡을 만들고 많이 격려해줬다. 전시회에 방문하신 어머니께서도 ‘눈을 감아도’에 대해 코멘트를 더해주셨다.

평가는 어땠나. 
‘아쉽다’였다. “더 풍부한 해석과 감성을 담아야 한다.”라고 뼈 있는 조언을 해주셨다. 칭찬 좀 해주시지…(웃음)  

지금까지 진보는 < KRNB > 시리즈를 통해 과거 한국 가요에서의 ‘한국 정서’를 자신의 스타일로 정제해왔다. ‘눈을 감아도’는 본인의 스타일로 한국 정서를 담고자 노력한, 반대 지점에 있는 곡이다.
과거 ‘내가 덜 한국적이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기에 ‘눈을 감아도’를 마주하기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많은 발라드 가수들과 비교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훨씬 여유도 생겼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무서웠던 걸 해낼 때의 뿌듯함이 있다.

유부남에 대한 찬가 ‘Baby’에서도 한결 여유로워진 진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Baby’는 < 쇼미 더 머니 > 시즌 4 우승자 베이식(Basick)의 의뢰로 만든 곡이다. 베이식도 유부남이다. 이후 일본의 그룹 에그자일(EXILE)에게 노래를 보내는 과정에서 뼈대에 살을 붙였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곡을 완성했다. 이런 얘기를 ‘유부 Flow’ 팔로알토에게 들려주며 ‘유부남의 사랑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유로운 트랙이 변화를 상징한다면 ‘Coolest fire ever’는 젊은 힙합 팬들에게 화제다. 스윙스, 저스디스, 쿤디 판다 등 다양한 래퍼들의 단체곡이다. 
LA에 유학할 때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 Fantasy > 앨범에 참여한 래퍼 젯투(Jet2), 그리고 또 한 명은 션 ‘스파이더맨’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쿨’했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만든 곡이 바로 ‘Coolest fire ever’다. 스케이트보드 바퀴 소리를 비트로 삼았고, 2000년대 힙합의 바이브를 의도했다. 젬(GEM), 심바 제이(Symba J)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도 소개하고 싶었다. 

언급한 것처럼 최근 2020년대를 맞아 2000년대 초 스타일이 상당 부분 돌아오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모 코어, 엔이알디(N.E.R.D.)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이 다시 유행으로 자리하는 모습인데. 
다양한 부분에서 유행이 돌고 돈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 이펙트를 예로 들자면, 한동안은 리버브 강한 웻(Wet)한 느낌이 강세였으나 최근엔 드라이(Dry)한 사운드로 가는 추세다. 멜로디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아주 단순한 진행의 선율이 대세였으나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우울했던 곡 분위기 역시 달리지고 있다. 여러 단서를 통해 2000년대의 유행을 체감한다.

얼터너티브 록이 힙합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랑꾼’에서도 그 무드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랑꾼’은 2014년 경 밴드 워크맨십(WRKMS)의 프로젝트로부터 출발했다. 당시 워크맨십이 “모스 데프(Mos Def)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형이 필요해”라며 피처링을 부탁한 곡인데,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내가 갖고 있던 곡이다.

< Don’t Think Too Much >에는 국내 아티스트들은 물론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간 타 아티스트 작품에 참여한 경력은 많지만, 진보가 자신의 작품에 타 아티스트들과 이처럼 많은 협력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진보는 앨범에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며 “이 친구들은 나에게 단순한 피처링 가수들이 아니라, 정말로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는 이와 같은 행보가 자신이 설립한 슈퍼프릭레코드(Superfreak Records)의 국제적인 지향점과 일치함을 강조했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공조를 이루고 싶다”는 계획은 상세하고도 구체적이었다.

슈퍼프릭레코드 설립 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처음 제작사를 설립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슈퍼프릭레코드의 핵심 가치가 있다. 첫째는 진보적인 스탠스다.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일리(Sailli), 다울(Daul), 비앙(Viann) 등이 2010년대 꽤 성과를 낸 영역이다. 두 번째는 국제주의다. 그간 도달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 지난해 찰리 태프트(Charli Taft)가 함께한 다울의 < In Touch > 앨범과 이번 < Don’t Think Too Much >로 청사진을 제시했다. 세 번째는 낭만주의다. 음악을 할 때 차가운 무드, 실리주의적인 모습보단 따뜻한 성격의 음악을 추구한다.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가 음악으로 이런 온기를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앨범으로 ‘인터내셔널’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작품에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해달라. 
‘Bed shaker’에 참여한 런던 출신 피닉스 트로이(Phoenix Troy)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보다도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 2009년 경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통해 만난 친구인데, 그가 추천해주는 노래는 정확히 내 취향을 겨냥한다. 지난 10년 동안 ‘무드 뮤직 프릭스(Mood Music Freaks)’라는 유닛을 계획하며 협업을 의논해왔는데 이제야 함께하게 됐다. 

‘해주면 돼’의 파리 출신 누누 패리스(Nounou Paris)는 한국 알앤비와 가요에 관심이 많다. 돈을 모아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고, 한국에서 프로듀서로 성공하고자 분주히 노력하는 아티스트다. 피닉스 트로이와 함께 나의 ‘소울 프렌드’다. 

‘갈매기’에 함께한 LA 출신 디지털 대브(Digital Dav)는 ‘3년 안에 무조건 뜬다(Im’ma blow up in 3 years)’는 자신만의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미국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꼭 이 한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미국적인 정서, 한국적인 정서 모두 잘 맞는 친구다.

‘잊어버려’의 킨타로(Kintaro)는 더 인터넷(The Internet)의 전 멤버다. 형이 썬더캣(Thundercat)이고 아버지도 유명한 재즈 뮤지션인 천재 집안이다. 이 친구와는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평범한 진행을 싫어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다. 킨타로의 ‘이상한’ 음악을 듣다 보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화려하고 대담하지만 진지하다.

진보는 일찍이 고교 재학 중 자신의 아티스트 이름을 정했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괴짜(Freak)로 혁신을 만들어왔다. “2005년 데뷔할 때 사람들은 ‘한국말로 알앤비를 할 수 없어’라 말했다. 2012년 < KRNB >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 가요는 세련되지 않아’라 여겼다.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는 섞일 수 없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협업을 진행했다.”. 다사다난했던 커리어에 대한 진보의 회고다.

“앞으로 10년은 음악보다 더 큰 표현을 하는 사람, 자유로운 존재를 지향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보는 뮤지션인 줄 알았는데, 진보가 표현하고자 하는 영역은 훨씬 깊고 넓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고 싶다.”. 진보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고 또한 여유로웠다. 새삼 영화 < 기생충 >의 명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가 절로 흘러나왔다.

진보가 최근 즐겨 들었던 음악, 관심 있는 장르는?
친한 친구가 소개해준 정보에 의하면 최근 뉴욕의 트렌드는 하우스 음악, 그중에서도 백인이 아닌 흑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하우스 음악이라 한다. 최근 UFC 선수 코너 맥그레거가 올린 영상을 보면 그가 직접 고용한 디제이들이 트는 음악이 모두 그런 블랙 하우스 음악이다. 관심 있게 듣고 있고, 탐구할 생각에 설렌다. 또 인상 깊게 들은 아티스트는 영국 싱어송라이트 라브린느(Labrinth)다. 음악에 대한 레벨을 한 단계 높였다. 요즘 아프리카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 비욘세의 < The Lion King : The Gift > 앨범에 참여한 버나 보이(Burna Boy)를 중심으로 찾아 듣고 있다.

튼튼하고도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며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아 올린 진보다. 끝으로 < Don’t Think Too Much >의 새 출발을 통해, 진보의 세계를 가요계에 어떻게 각인하고 싶나.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는 말 그대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뒤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퇴보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전진하고 발전하며 나아가고 싶다. ‘진보’라는 단어를 상징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 진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고 싶다. “너 진보? 나 보수”하는 진보가 아니라(웃음).

둘째로는 표현주의자로 새겨지고 싶다. 아티스트, 뮤지션 등 다양한 직함이 있지만 그 이름에 나를 다 담을 수 없다고 본다. 내가 존경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커리어 초기엔 자신을 작곡가로 인식했다. 끊임없이 의문하고 시도하며 부수는 사람, 그것을 전시회, 앨범 등으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한다. 정력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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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생각의 빈자리를 감각이 채운다. 그 감각은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 재야의 고수 직함을 넘어 주체할 수 없는 끼와 재능을 자신의 이름으로 아로새기고자 하는 열망이다. 확실한 개성과 성공을 거머쥔 프로듀서와 실력을 검증받은 뮤지션 아래, 인간 한주현의 삶과 가치관을 소개하고자 하는 당찬 자아의 포효다. 즐거운 진보(Jinbo)의 세상은 건강한 야망으로 역동적이다.

물 오른 자신감과 열정은 다채로운 장르 활용과 진솔한 화법으로 구현된다. AOMG 소속 밴드 워크맨쉽(WRKMS)의 블루스 트랙 ‘사랑꾼’부터 재미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불멸의 재능을 손에 넣었다는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일화를 15살의 본인에게 감히 투영해 현재 서울 곳곳에서 인정받는 뮤지션의 서사를 완성한다. 이 여유로운 무드를 곧바로 빽빽한 드럼 앤 베이스 트랙 ‘Don’t think too much’로 변환하여 앨범의 주제 의식을 다시 한번 각인하는 영민함도 범상치 않다.

앨범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2000년대를 풍미한 퍼렐 윌리엄스와 엔이알디(N.E.R.D), 넵튠스 사운드의 진한 흔적 위 타이트한 구성이다. 힙합 단체곡 ‘Coolest fire ever’의 요동치는 신스와 건조한 드럼에서 ‘Drop like it’s hot’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드럼 앤 베이스 ‘Don’t think too much’와 요동치는 신스 리프와 싱코페이션으로 날갯짓을 소리로 옮긴 ‘갈매기’에서도 엔이알디의 구성을 확인한다. 이 작법으로 통통 튀는 개성과 차분한 외관 속 뜨거운 내면이 정확히 전달되며 앨범은 단단한 일관성을 확보한다.

여기에 진보는 유수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랩과 보컬을 오가는 훌륭한 퍼포먼스로 기시감을 피하며 작품을 풍부하게 꾸민다. 호림과 함께한 싱글 ‘Groove’와 궤를 같이 하는 감각적인 ‘Baby’, 파리 출신 누누 패리스(Nounou Paris)의 피비알앤비 ‘해주면 돼’ 같은 관능적인 트랙과 차분한 알앤비 ‘눈을 감아도’가 공존하는 모습이 놀랍다. 런던 출신 피닉스 트로이(Phoenix Troy)의 낮은 톤 랩과 함께 부드러운 보컬을 조화롭게 소화하는 ‘Bed shaker’와 동시에, ‘Houston’과 수퍼프릭 레코즈의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의 ‘비싸 / 백년지기’에선 차분하고 단단한 랩을 선보인다.

그중 ‘잊어버려’처럼 모범과 혁신의 꽃을 피워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더 인터넷(The Internet)의 전 멤버였던 킨타로(Kintaro)와 함께한 이 곡은 < Afterwork >의 몽롱한 소리에 재즈 힙합 밴드 쿠마파크(Kumapark)의 쿠마가 색소폰을 더해,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사이키델릭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앨범 제목과 연결된 인생관을 덤덤히 읊어가는 진보의 메시지가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계시처럼 들린다.

아티스트 이름을 하나의 스타일로 확립한 아티스트의 자신감 넘치는 작품이다. 성실한 태도, 검증된 재능이 있기에 많은 생각은 필요치 않다. 언더그라운드와 케이팝을 분주히 오가며 씬의 진보를 이끈 진보는 솔직한 본인의 이야기 < Don’t Think Too Much >로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이런 ‘착한 열망’은 악마 입장에서도 흐뭇할 법하다. ‘네가 내게 주면 나는 배로 갚아’라는 다짐을 이토록 성실히 지키니 말이다.

– 수록곡 –
1. 사랑꾼
2. Don’t think too much
3. Baby (Feat. Paloalto)
4. Bed shaker (Feat. Phoenix Troy)
5. Houston
6. Coolest fire ever (Feat. Gem, Justhis, Horim, Khundi Panda, Symba J, 스윙스)
7. 해주면 돼
8. 눈을 감아도
9. 갈매기 (Feat. Digital Dav)
10. 비싸 / 백년지기
11. 잊어버려
12. Miss t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