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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Love at first sight! 이즘 필자가 사랑하는 데뷔 앨범

누구에게나, 무슨 일에나 ‘처음’은 존재한다. 그리고 소중하다.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한두 개의 앨범을 남기고 사라져간 원 히트 원더든 꾸준한 커리어를 기록한 아티스트든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이 가지는 아우라는 분명 남다르다. 설익은 어색함과 미숙함, 가슴을 가득 채운 열정과 풋풋함, 그리하여 신인만의 패기! 데뷔작만이 지닌 특별한 가치다.

이번 특집에서는 IZM 필자들이 사랑하는 데뷔 앨범을 골랐다. 선정작은 EP나 싱글 대신 보다 온전한 ‘작품 단위’로의 격을 갖춘 정규 음반으로 한정했다. 역사가 인정하는 명반과 개인적인 추억 가운데 무게추는 각 필자의 마음에 맡겼다.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세 번의 시작 기회(양력/음력 1월 1일, 3월 2일 신학기) 모두 지나 2023년 달력을 반 가까이 넘겼으나, 이번 특집을 통해 잊고 있던 음반과 재회하거나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면서 ‘처음’의 싱그러움을 되찾길 소망한다.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 < The Stone Roses > (1989)

내 얕은 역사 지식과 로큰롤 편애 성향을 결부했을 때 1989년의 유럽은 두 가지 사건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공산주의 체제의 종말을 알린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며, 둘째는 매드체스터의 기수 스톤 로지스의 등장이다. 그만큼 숭배를 갈망하며(‘I wanna be adored’) 세상에 나온 네 청년은 꽤 충격이었다. 영국 전통 기타 팝에 미국에서 건너온 애시드 하우스를 융합한 ‘She bangs the drums’, ‘Waterfall’, ‘Fools gold’는 잠들어 있던 댄스 DNA를 자극했고 존 스콰이어의 카멜레온 기타 연주와 탄탄한 리듬 파트, 그리고 이안 브라운의 무미건조한 보컬이 오차 없이 맞물린 ‘This is the one’, ‘I am a resurrection’은 불붙은 록 스피릿에 기름을 부었다. 록과 댄스의 공존을 모색해 기존 관행을 격파한 진짜 ‘저항 음악가’의 데뷔 앨범. 그렇게 < The Stone Roses >는 시대를 초월한 댄스록 교본으로 맨체스터에 가본 적도 없는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김성욱)

리버틴스(The Libertines) < Up The Bracket > (2002)

2001년, 런던은 뉴욕의 스트록스가 < Is This It >으로 가한 일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에 NME 웹진을 비롯한 영국 언론은 술과 마약에 빠진 젊은이들 리버틴스를 대항마로 세운다. < Up The Bracket >은 스트록스의 허세 섞인 뉴욕식 허무주의와 달랐다. 클래시의 과격함과 스미스의 문학성, 킹크스의 간결함 등을 한데 모으고 강렬한 기타 리프와 우아한 멜로디, 단편소설과도 같은 가사로 무장한 채 맹렬하게 질주한다. ‘Time for heroes’는 계급에 의한 절망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Death on the stairs’는 삶의 무료함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절규한다. 앨범의 끝은 ‘나는 잘하고 있다’라며 되뇌는 ‘I get along’이 멋지게 장식한다. 모든 것은 영화 <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의 에릭 아이들처럼 시궁창 속에서도 밝은 면을 보려는 영국의 정서 그 자체였다. 그들의 전성기는 언론의 과도한 부풀리기와 마약중독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빠르게 막을 내렸지만, < Up The Bracket >은 개러지 록의 고전이자 길 잃은 청춘들의 친구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시절, 멘토라기보다는 옆에서 같이 푸념하고 욕해주던 동네 형처럼 다가온 소중한 작품이다. (김태훈)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 Brian McKnight > (1992)

노래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알앤비 과목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One last cry’가 수록된 데뷔 앨범 < Brian McKnight >에서 그는 거의 모든 트랙에 직접 작곡으로 참여하며 음악적 역량을 자랑한다. 데뷔 때부터 이미 완벽에 가까운 실력으로 음악 세계를 정립하였기에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앨범을 낼 때마다 자신의 데뷔작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가창의 측면에서도, 작법의 측면에서도 그건 힘든 일이었다. 그의 다른 음반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첫 작품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김호현)

잭 아벨(Zak Abel) < Only When We’re Naked > (2017)

데뷔와 첫 내한이 함께. 영국 현지에서도 이제 막 반응이 오기 시작했던, 먼 나라에서 혼자 품으리라 다짐하며 보고 싶단 마음조차 체념했던 젊은 뮤지션을 한국에서 그렇게 빨리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잭 아벨의 실물 라이브를 보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몸에 체화된 그루브가 짧고 강하게 튕기는 탁구공 리듬과 같았다는 것. 유소년 탁구 챔피언 출신인 이 청년에겐 몸으로 한계를 넘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열정과 자신감이 가득했고, 그 기세는 알몸일 때에야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패기 어린 앨범 < Only When We’re Naked >로 표출됐다. 소울에서 영감을 받고 자란 힘찬 건반과 허스키한 목소리가 청춘의 불안과 의구심을 넘어 존재의 자각과 삶의 긍정을 차례대로 외치고 있었다. 숱하게 리플레이했던 트랙이 화자의 신체에서 형상화되는 걸 목격했던 순간. 작품이 완성되고 무대에서 피어나는 걸 지켜봤으니 이토록 강렬한 추억이 또 있을까. (박태임)

넉살 < 작은 것들의 신 > (2016)

한창 힙합에 심취해 있을 때는 동경하는 아티스트의 노랫말을 삶의 지침서로 삼으며 여러 번 곱씹어 보곤 했다. 그럴만한 가사를 발견하지 못해서인지 혹은 머리가 조금 차가워져서인지는 몰라도 그때의 음악을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더 잦은 요즘이지만 넉살의 < 작은 것들의 신 >은 여전히 나에게 강력한 울림을 준다. 2016년 하루 종일 학교 안에 갇혀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던 시기에 ‘팔지 않아’는 얕지만 강고한 신념을 심어주었고 ‘밥값’은 위로와 함께 묘한 열정을 주입했다. 이제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듣던 추억까지 안겨준 앨범. 공식적으로 VMC는 해체했지만 딥플로우의 < 양화 >와 함께 그들의 황금기를 열었던 넉살의 데뷔앨범은 아직 내 플레이리스트 안에 살아 숨 쉰다. (백종권)

자우림 < Purple Heart > (1997)

이 음반에 세월의 흔적은 없다. 먼지 쌓일 틈 없이 그만큼 오랜 시간 널리 사랑받은 히트곡이 가득하다. 수많은 뮤지션이 리메이크한 청춘 발랄 명곡 ‘일탈’부터 자우림 특유의 비애감이 넘실대는 ‘파애’, ‘안녕 미미’ 그리고 실험적 사운드로 점철된 끝 곡 ‘Violent violet’까지. 앨범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자우림 음악이 놓여 있던 것 마냥 시작부터 내 음악을 맛나게 완성해 낸다. 김윤아 솔로 커리어에 빠져 자우림 흔적을 다시 좇았던 사람으로서 이 데뷔 음반이 가져다준 신선한 즐거움을 잊지 못한다. 데뷔 때부터 밴드 음악색을 정확히, 제대로 내뿜은 작품. 산울림 1집 < 아니 벌써 >처럼 이 앨범엔 세월이 지나도 늙지 않을 근사한 젊은 노래들이 놓여 있다. (박수진)

보스톤(Boston) < Boston > (1976)

싱글 히트곡 ‘More than a feeling’과 ‘Peace of mind’, ‘Foreplay/Long time’, 세 곡만으로도 내 구매력을 자극했다. 고등학교 때 산 보스톤의 데뷔앨범에는 이상하게도 낯선 노래가 하나도 없었다. 이유는 AFKN 라디오에서 들어왔던 노래들이 모두 이 한 장에 있는 수록곡이었기 때문이었다. 브래드 델프의 시원하면서 불안하지 않은 고음, 과하지 않은 탐 슐츠의 그루브한 리듬 기타,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프로그레시브의 접근법까지 이 첫 음반은 1970년대 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 Boston >은 이들의 데뷔음반이자 베스트 모음집이다. (소승근)

유엠씨(UMC) < XSLP > (2005)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듣던, 흔히 잡식성이라 불리는 취향을 자부했던 어린 작가 지망생에게 유독 힙합만큼은 외면하고 싶은 메뉴였다. 거친 이미지는 물론이며 보다 선율에 귀를 기울인 그때의 감상법에 리듬 중심으로 구성된 랩이 두터운 편견의 벽을 뚫고 안착하긴 무리였으니까. 철저히 주류에서 벗어난 문제작 < XSLP >가 마음을 허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라임 없이 플로우로 메시지에 집중한 이야기꾼 유엠씨가 절대적이었다. ‘Shubidubidubdub’과 ‘Media doll part. 2’ 같은 사회 비판도 서슴없지만 ‘가난한 사랑 노래’, ’91’학번 등 청춘을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폐부를 찔렀다. 장르란 한정적 분류를 떠나 핵심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것을 증명한 앨범을 접했을 때, 내 인생 또한 명확하게 변곡의 순간을 맞이했다. (손기호)

재지팩트(Jazzyfact) < Lifes Like > (2010)

북악산 자락을 낀 종로의 한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출발한 힙합 그룹 재지팩트는 동년배보다 한발 빠르게 인생을 논했다. 랩으로 장난을 일삼던 동네 학생들은 ‘각자의 새벽’이나 ‘Smoking dreams’를 들으며 동향 선배들의 멋에 감화되었고 철없이 이를 모방하곤 했다. 조용히 삶의 지침을 수정했던 학창 시절의 소중한 경험을 반추하며 이 데뷔작을 재차 뜯어봐도 매력은 여전하다.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가 ‘Moody’s mood for love’를 비롯해 여러 재즈곡을 샘플링해 꾸민 비트엔 세련미가 넘치고, 그 위에 수놓은 빈지노의 날카로운 언어는 동시대의 청춘에 색채감과 기대감을 부여한다. 젊음을 사용할 줄도 모르던 아이의 취향이 정착할 적당한 공간이었다. (손민현)

웬디 왈드먼(Wendy Waldman) < Love Has Got Me > (1973)

1970년 앤드류 골드, 칼라 보노프(Karla Bonoff)와 함께 포크록 밴드 브린들(Bryndle)의 멤버였던 웬디 왈드먼(Wendy Waldman)은 1973년 < Love Has Got Me >를 통해 솔로로 데뷔했다. 당시 < 롤링 스톤 >지가 ‘올해의 싱어송라이터 데뷔’로 그를 선정한 것은 당연했다. < Love Has Got Me >는 삶에 대한 긍정으로 빛나는 포크 앨범이다. 아침 기차와 해적선이 등장하는 모험이 곡마다 낭만적이며 멕시코 전통음악을 차용한 ‘Gringo en Mexico’, 조지 거쉰 스타일로 빗소리를 청각화한 ‘Waiting for the rain’ 등은 데뷔 앨범 특유의 결의로 찬란하다. 세상이 그를 합당한 환영으로 맞지 않았다는 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안타깝다. 순수를 기억하고 싶을 때, 좌절된 여행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 나는 이 앨범을 꺼내든다. (신하영)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 Appetite For Destruction > (1987)

‘Sweet child o’ mine’과 호주 밴드 오스트레일리안 크롤(Australian Crawl)의 ‘Unpublished critic’ 사이 유사점, ‘Rocket queen’ 속 과한 신음 등 퇴색한 감도 없지 않지만 처음 준 충격파는 못 떨쳐낸다. 검은 탑 햇에 깁슨 레스폴을 애무하는 슬래시와 부담스러운 짧은 바지에 뱀춤 추는 액슬 로즈가 그땐 멋져 보였다. 결정적으로 곡이 좋았다. ‘첫 감상에 세 곡 이상 꽂히면 취향 저격’이란 개인적 규칙은 ‘Mr. Brownstone’과 ‘My Michelle’, ‘Think about you’로 한도 초과했다. 가끔 < Appetite For Destruction >같은 음반을 두세 장 더 발매했으면 록 역사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을까 봐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본다. 시대는 너바나와 얼터너티브를 원했지만 건즈 앤 로지스가 피운 아메리칸 하드록의 마지막 불꽃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염동교)

제이클레프(Jclef) < Flaw, Flaw > (2018)

시종일관 흠(flaw)을 탐구하지만 흠잡을 여지가 없다. 벌컥 쏟아내다가도 여유롭게 흘려내는 랩과 보컬, 자극적인 기계음으로 귀를 간지럽히면서도 프로듀싱에는 일말의 느슨함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정형화된 형식을 유연하게 벗어나는 운율 구조와 그 시니컬함 속 짙은 연민까지, 수사마저 짜릿한 충격의 연속이다. 제이클레프(Jclef)와 < Flaw, Flaw >의 이 압도적인 등장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물론,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재능이 주는 경외감,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했다는 학구적 희열마저 선사했다. 미지의 신대륙에 첫발을 딛는 개척자의 이 설렘, 수많은 음악 팬들이 새로운 얼굴을 그토록 열망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승원)

칸예 웨스트(Kanye West) < The College Dropout > (2004)

좋은 글을 읽으면 글쓴이가 궁금해지곤 한다. 단순히 ‘글 잘 쓴다’라는 일차원적인 감상을 넘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인간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는 글이 좋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로 칸예 웨스트와 사랑에 빠진 나는 < The College Dropout >으로 그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을 느꼈다. 그리고 그 대답까지. 평범하지만 날카롭고, 허세 없이 솔직한 비판, 자기 서사의 메시지가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말하며 그와 나를 연결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간에게 오랜 친구 같은 기분을 느꼈다. 기적처럼. 뛰어난 완성도, 혁신적인 문법, 후대에 끼친 영향력 등 이 앨범이 가지는 가치는 많지만 그런 것들은 나에게 부차적이다. 그저 ‘Through the wire’를 들으며 생각할 뿐이다. 나는 이 인간을 사랑해, 그리고 영원히 그렇겠지. (이홍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 Rage Against The Machine > (1992)

첫 음반의 첫 곡 제목이 ‘Bombtrack’이라니, 반할 수밖에. 불에 타들어 가는 도화선 도입부를 지나면 사운드는 정말로 폭발한다. 앨범 내내, 활동 내내 밴드는 그저 폭발한다. 음악 외에도 이들은 신념, 저항,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었지만, 미성년의 아이는 음악밖에 들리지 않았다. 기타, 베이스, 드럼의 단출한 구성에 반복적인 리프와 직관적이면서 뒤틀리는 리듬이 이들의 개성이자, 모든 것. ‘기계’처럼 각 잡힌 완성도가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을 뽐낸다. < 록, 그 폭발하는 젊음의 미학 >에 제대로 걸맞다! 메탈과 랩이 완벽하게 융합한 퓨전의 이상향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이 앨범과 함께 탄생했지만, 나는 이 앨범과 함께 죽을 것을 다짐한다. (임동엽)

저스티스(Justice) < Cross > (2007)

온몸이 압도되는 경험을 한 적 있는가. 일렉트로 하우스의 영원한 바이블, 저스티스의 < Cross >는 마치 천명을 따라 마굿간을 찾아온 동방박사처럼, 그리고 심장을 직격한 제우스의 천벌처럼 불현듯 다가와 자연스레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의 음악 취향과 사고 체계가 이 앨범 한 장에 귀속되어 있다 한들 과언이 아니다. ‘Genesis’가 쏘아 올린 웅장하고도 지저분한 전율이 ‘Let there be light’의 불길한 창조 신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한줄기 빛이 내렸고, ‘D.A.N.C.E’와 ‘DVNO’가 MTV와 댄스 플로어 시대의 광채를 완벽히 복원하는 순간 충성을 맹세했다. 지금 당장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면, 이 앨범을 듣는 족족 그때의 그 소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장준환)

티아라(T-ara) < Absolute First Album > (2009)

본격적인 앨범 단위 청취를 넘어 실물 소유에 대한 욕구까지 주입한 티아라의 유일무이한 정규작. 그간 구매의 영역까지 발 들인 이를 만나지 못해 내심 아쉬움을 안고 살던 중 세상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IZM에서 동지 몇몇을 조우했다. 분명 뜻밖이긴 했지만 귀여운 의성어를 앞세운 ‘Bo peep bo peep’의 파급력만 돌이켜 보면 당연한 접점이었다. 개인적으론 ‘처음처럼’, ‘Tic tic toc’, ‘Apple is a’처럼 흥겨움 속에 묘한 아련함을 스며 넣은 트랙에 훨씬 귀가 쏠렸다. 데뷔곡 ‘거짓말’을 만든 조영수의 알앤비와 트로트 질감부터 김도훈, 방시혁의 발라드 감성, 나아가 트렌디한 흥행을 이끈 신사동 호랭이의 펑키(Funky)함까지. 유수 작곡진의 분야별 강점을 ‘댄스’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어낸 덕분에 티아라는 다각적이면서도 독보적인 걸그룹 이미지를 취할 수 있었다. 취향을 잡아가던 청소년기에 꽂힌 결정타 한 방이 시대와 나 모두를 뒤흔들었다. (정다열)

브루노 마스(Bruno Mars) < Doo-Wops & Hooligans > (2010)

MP3와 스트리밍에서 다시 먼 시간을 돌아가 LP로 회귀하기까지, 어디에도 어울리고 찾게 되는 앨범이다. ‘Talking to the moon’, ‘Just the way you are’ 등 개별 트랙도 유명하지만 제목 전면에 내세운 두왑(Doo-Wop) 사운드를 바탕으로 알앤비, 소울 등의 흑인 음악을 조화롭게 빚어내어 전체적으로도 부드럽고 유려하다. 멜로디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허스키한 보컬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 Unorthodox Jukebox >나 < 24K Magic > 등 강렬한 인상의 차기작보다 꾸준히 손길이 가는 이유다. 이 편안함이 < Doo-Wops & Hooligans >를 가끔 추억에서 꺼내보는 음반이 아닌 현재의 음악으로 만든다. (정수민)

위저(Weezer) < Weezer > (1994)

삶이 피곤하면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비우고 싶다. 쉬운 음악이 필요한 순간, 그럴 때 위저의 데뷔 앨범 < Weezer >를 종종 찾게 된다. 멜로디는 직선적으로 착착 감기고, 파워코드 위주의 흥겨운 기타 연주는 다리를 수시로 들썩이게 만든다. 언제 들어도 귀여운 리드 보컬 리버스 쿼모(Rivers Cuomo)의 목소리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No one else’, ‘Buddy Holly’, ‘Holiday’ 류의 명랑한 트랙을 보좌하는 ‘Undone – the sweater song’, ‘Say it ain’t so’, ‘Only in dreams’ 등 살짝 무거운 곡의 존재감도 든든하다. 파란색 배경 앞에 어정쩡한 자세로 선 네 멤버의 모습처럼 음반은 쿨한 록스타보다는 쉽고 친근한 동네 친구에 가깝다. 그래서 정겹고, 사랑스럽다. 객관적으로도 좋은 앨범이지만, 충동적으로 동네 중고 서점을 찾아가 CD를 구매한 날이 알고 보니 발매 25주년이었던 사실은 여기에 각별함을 한 스푼 더한다. (한성현)

정리: 한성현
이미지 편집: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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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클레프(Jclef) ‘O, Pruned’ (2023)

평가: 2.5/5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는 음악들과 못내 악보를 접는 아티스트들에 비하면 제이클레프의 기다림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싱글 ‘multiply’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한 믹스테잎 < Canyon >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정규 1집 < Flaw, Flaw >를 그 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완성하며 공고한 팬층을 쌓아 올렸다. 

앨범 단위의 작업은 약 5년 만이다. 염세적인 태도로 세상의 흠집을 흥얼거렸던 지난 음반에 비해 < O, Pruned >는 가까운 것들이 남기고 떠난 온기에 집중한다. 연인이나 친구 혹은 신을 떠난 동료 뮤지션, 과거의 자신 등을 대상으로 한 노랫말은 어느 쪽으로 읽어도 지나친 현학없이 울림을 전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변화는 노랫말에 힘을 싣는다. 얼터너티브 사운드로 트렌드의 발을 맞췄던 전작과 달리 잔잔한 기타 선율로만 곡을 전개하는 ‘Jonn’s guitar (take1)’ 등의 트랙은 앨범의  명확한 지향을 드러낸다. 덕분에 앨범은 일체감을 형성하며 약 20분간의 러닝타임동안 옆자리에 앉아 직접 연주를 듣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콘셉트와 구성이 잘 맞아떨어져 분명히 매력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미처 지우지 못한 레퍼런스의 향기가 짙게 남아 감흥을 줄인다. 담백한 제이클레프의 목소리 덕에 흐릿하게나마 개성을 유지하지만 소리의 질감을 의도적으로 뭉개는 피비 알앤비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 운용방식마저 프랭크 오션 < Blonde >와의 무시하기 힘든 교집합으로 독창성을 떨어뜨린다.

긴 시간만의 복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수의 이름을 가져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박수가 멈칫거린다. 단순한 비교를 피하기 위해선 참조 영역에 정당한 설명을 덧붙여야 하지만 프랭크 오션 음악에 비해 조금 더 따뜻함이 묻어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차별성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쉽지만 5년 전 충격적인 등장에 비하면 설익은 복귀이다. 

– 수록곡 –
1. O, pruned
2. O, pruned, part ii (Feat. Hoody)
3. Johnny’s sofa
4. Jonny’s guitar (take 1)
5 Derbyshire
6.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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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언(eAeon) ‘Fragile’ (2021)

평가: 3.5/5

이이언은 시간의 흐름에 솔직했다. 밴드 못(Mot)의 8년 공백을 깬 복귀작 < 재의 기술 >이 5인 체제의 확장된 편성으로 새로운 단상을 기획했듯, 그리고 < Guilt-Free >와 < Realize >가 각각 차가운 일렉트로닉과 따뜻한 어쿠스틱의 온도차를 가져왔듯 맹목적인 스타일 고수보다는 시대에 적격인 방식으로 여유롭게 형상을 바꿔오곤 했다. 물론 용기(容器)가 다르다고 본질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 Non-Linear >에서 정교하게 제시한 우울과 공허의 세계관은 앨범과 앨범 사이를 잇는 주축을 수행하며 오늘날까지도 정체성의 기반으로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9년 만의 솔로 앨범인 정규 2집 < Fragile > 역시 이전과 동일하게 ‘죄책감’을 다룬 1집에 이어 비슷한 인간의 고질적 약점인 ‘연약함’을 소환하고 특유의 부연 잔향으로 분절된 악기 사이의 여백을 채운다. 다만 차이 면에서는 긴 공백만큼이나 간극이 드러난다. 우선 주된 어법은 트렌드를 적극 위시한 대중적 터치다. 이러한 선택은 최근 여러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의 세례를 받은 언니네이발관 출신 이능룡과의 2인조 그룹 나이트오프 활동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모던 록이나 트립 합, 일렉트로니카 등 당시 관심사에 따라 여러 작법을 오가던 유동적인 행보를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참여한 첫 트랙 ‘그러지 마’는 그 양상을 집약한다. 무한히 늘어지는 전자음과 보컬 아래 격한 몰입을 유도하던 ‘Bulletproof’와는 달리 일반적인 팝의 문법이라 보아도 손색없는 보편적인 멜로디와 느릿하고도 익숙한 트랩 리듬, 그리고 한결 담백해진 창법이 자리를 대체한다. 음산한 피아노 도입부의 ‘Null’과 동화 속 기괴한 판타지아를 호출하는 ‘Mad tea party’는 비주류적 요소를 피력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 취하던 섬뜩한 전달법에 비하면 충분히 용인될 수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성공적인 편입이다. 타 아티스트와 활발한 교류를 거친 이 세 곡은 우수한 합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앞으로의 시장 가능성을 해금한다는 의의를 가져온다.

다만 사운드 샘플 자체의 강도를 낮추고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대중성 지향의 일환 가운데 그를 상징하던 자기 침잠의 정서는 그저 나른한 무게감 정도로 순화된다. 여기서 장단점이 극명히 나뉜다. 최면을 거는 듯한 몽롱한 신시사이저 중심의 ‘어쩌면’과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는 기존 팬층이 환호하던 모던 록 특유의 키치하고도 암울한 감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유약한 보컬과의 탁월한 시너지로 드림 팝의 푹신한 심상을 제공한다. 간단한 스타카토 발성의 ‘그냥’과 ‘세상이 끝나려고해’의 훅을 오마주한 간결한 라임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바이바이 나의 아이’는 독특한 박자감의 ‘5 in 4’나 ’11 over 8’에서 나타나던 실험적 태도와 거리가 멀지만 복잡한 카타르시스보다 쉽고 캐치한 각인을 유도한다.

점층적 멜로디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변칙성이 낳는 쾌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 Guilt-Free >에 비해 < Fragile >에 사용된 탐구 정신은 분명 덜하다. 다만 개개 트랙이 지닌 수려한 완성도는 물론, 사운드스케이프와 소재의 안락한 일체감은 비록 정체성 약화라는 명확한 핸디캡을 수반하더라도 팝적 작법을 택한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앨범은 지금껏 다져온 세계관이 또 한 번 현 시류의 알고리즘과 영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이자 대답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이언은 그저 솔직하다는 것이다.

– 수록곡 –
1. 그러지 마(Feat. RM)
2. 그냥 
3. 바이바이 나의 아이
4. Null (Feat. Jclef) 
5. 많은 밤을 지나
6. 어쩌면
7. Btfl mind
8. 왜일까
9. Mad tea party (Feat. Swervy) 
10.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11. 언제까지나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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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스윔래빗 인터뷰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윔래빗(swimrabbit)은 이제 첫 EP < POND >를 발표한 신예 프로듀서다. 그러나 그가 지향하는 세계와 서사, 사운드에선 풋내가 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일렉트로닉과 하우스를 기반으로 하나 이번 앨범에선 차분한 앰비언트(Ambient), IDM(Intelligent Dance Music)을 지향하며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큰 그림을 그려나갔다. 언뜻 어려울 수 있는 장르지만 대중적 감각을 놓치지 않아 거부감도 최소화한다. 

오래도록 꿈꿔온 자신의 작은 유토피아를 숲 속 자그마한 ‘연못’으로 내놓은 스윔래빗과의 인터뷰 내내 푸른 숲 속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순수, 평화, 자연, 기도 등 새하얀 언어로 써내려 간 자기소개는 유연하면서도 견고했다. 

IZM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레이블 크래프트앤준(CRAFT AND JUN)의 스윔래빗입니다.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9년 인터뷰한 제이클레프(Jclef), 프로듀서 콕재즈(CokeJazz)와 함께 크래프트앤준에 합류했다. 

김백준 대표님과 미팅을 거쳐 들어왔는데, 딱딱하고 사업적인 회사 이야기 대신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신통방통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장르에 대해 소통하게 되었다. 어려운 고민 없이 합류하게 됐다.

키드 밀리, 김아일 등 힙합 아티스트와도 협업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전자 음악을 추구하고 이번 앨범은 흔치 않은 앰비언트, IDM 스타일을 담았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스스로 입문하게 된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카니예 웨스트 등 힙합 음악을 많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3 때다. 다 똑같이 ‘수능특강’ 펴고 공부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면서 닌자 튠(Ninja Tune), 브레인피더(Brainfeeder) 등 다소 서브컬쳐 스타일 레이블의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됐다. “이거다!” 싶었다. ’보컬이 없는데 멜로디 만으로도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전자 음악에 입문하게 되면서 지금 내 스타일로 굳어진 것 같다.

크래프트앤준은 죠지, 제이클레프 등의 아티스트들로 알려져 있는데, 스윔래빗은 소속사의 첫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다. 부담은 없었나.

스스로 긴장하긴 했다. 걱정도 있었고. 상업적인 성과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으니 말이다. 회사의 많은 분들께서 ‘멋지다’고 격려를 많이 해줬고 스스로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되 팝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첫 EP < POND >를 발표했다. 앨범을 ‘불안정과 환상 사이의 짧은 순간’이라 소개했는데.

음악을 만들 때 찰나의 순간을 좋아한다. 특히 어떤 시기를 담아내는 것, 21살부터 22살까지, 어떤 해부터 몇 년 동안, 이런 식으로. < POND >는 작년 초부터 앨범을 작업하며 굉장히 불안정했던 시기, 그럼에도 안정을 갈망했던 순간의 기록이다. 그때의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평온하고 싶다, 평화롭고 싶다’였는데, 어느 날 친한 친구 한 명이 그 얘기를 듣곤 ‘평화가 뭔데?’하며 되묻더라. “네가 평화롭다 해도 바로 옆에 고통받는 친구가 있다면, 그 상황도 평화로운 걸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평화’라는 큰 담론, ‘환상’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미성숙하단 걸 느꼈다. 그래서 앨범의 시선을 ‘불안정’으로 좁혔다. 그렇게 ‘불안정과 환상 사이’라는 설명을 붙이게 됐다. 

설명을 듣고 나니 7곡, 27분의 앨범이 작게 느껴진다. 처음 작품을 설계할 때의 스케일은 더 크고 깊었을 것 같다.

맞다.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 포 텟(Four Tet) 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염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첫 시도다 보니 기술적인 한계도 있었고, 정규 앨범은 스스로 아직 이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규모를 줄이고, 캐주얼한 느낌을 더했다. 

플로팅 포인츠, 포 텟의 느낌도 있고 보컬이 더해진 곡은 마운트 킴비(Mount Kimbie), 앰비언트 스타일은 니콜라스 자(Nicholas Jaar)가 연상된다. 말이 나온 김에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을 소개해줄 수 있나. 

앨범을 만들 때 많이 들었던 아티스트는 플로팅 포인트, 마운트 킴비, 제이미 XX(Jamie XX),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시리우스모(Siriusmo)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평소 편하게 듣는 음악은 또 다르다. 브로큰 벨스, 테임 임팔라, 비치 하우스 등의 밴드 음악부터 홈쉐이크(Homeshake) 같은 베드룸 팝까지를 많이 듣는다. 지향하는 아티스트로는 플룸(Flume), 디스클로저(Disclosure) 등 대중적인 감각의 뮤지션을 좋아한다.. 

IZM에서 연재 중인 ‘내 인생의 10곡’ 시리즈처럼 ‘인생 아티스트’가 있다면. 

비요크(Bjork). < Debut >은 거의 매일 듣는 작품이다. 

30분 내외의 작품이지만 < POND >에는 명확한 서사가 있다. 앨범을 듣는 독자들에게 순서대로 소개해줄 수 있나.

육하원칙에 맞춰 설명하는 게 좋겠다. 1번 트랙 ‘sync, signal, peace, strong and pure’가 나를 소개하는 인트로 격 트랙이다. 제목 순서대로 ‘자아 일치, 음악을 통해 보내는 신호, 평화, 영향력,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다음 ‘natural bath’는 ‘어디서’다. 숲 속에 덩그러니 있는 새하얀 욕조에 앉아 푸른 자연을 돌아본다고 상상하며 만들었다. 독특한 사운드로 주변 풍경을 그려봤다. 이어지는 3번 ‘shy creatures’가 ‘누가’인데, 나를 포함해서 그 숲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표현하고자 말랑말랑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많이 사용했다. 

흥미로운 배경이다. 나머지 요소들을 마저 소개해달라.

‘length’는 ‘언제’가 되겠다. 사전에서 이 단어를 검색했을 때 ‘시간의 길이’라는 뜻도 있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불안, 감정 기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담고자 했는데, 피아노 연주를 반복하며 여러 악기 소리가 들어왔다 빠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사라졌다 생겼다 하는 감정을 표현한 거다. 나머지 ‘무엇을, 어떻게, 왜’를 집약한 트랙이 ‘hiss’다. 원래는 ‘작은 소리’라는 뜻인데, 내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내는 작은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단어라 생각했다. 앞서 소개한 친구의 말처럼 누군가에겐 내 기도가 불편할 수 있기에, 홀로 작고 조용히 염원하고 싶었다.

‘묵상’의 단계에서 육하원칙이 마무리된다면, 이후 트랙에선 무엇을 이야기 하나. 

‘hiss’까지가 < POND >라는 유토피아 안의 감정이고 ‘half awake’부터는 현실로 돌아온 상태다. 소리도 따라서 어둡고 거칠어진다. 이후 ‘redeem me’로 마무리를 하는데, 아무 고민과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의 내가 커가면서 그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간다는 슬픔, 때문에 그 순수함을 돌려달라는 ‘구원’의 의미를 소리로 담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설명을 듣다 보니 앨범은 가사가 아닌 ’ 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보컬이 있는 곡의 경우 모두 영어 노랫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글을 쓰지 않은 이유가 있나. 

무겁지 않으려 한다. 경배, 기도, 평화, 신호, 순수… 사운드 자체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스타일인데, 메시지도 가볍지 않으면 부담스럽게 들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글이 멋지지 않아서 쓰지 않는다’는 아니다. 내가 뭉클한 감정을 느낀 노랫말은 모두 한국어 가사였다. 이번 앨범에서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 POND >를 통해 스윔래빗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셈이다.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음악, 혹은 포부가 있다면.

흔히 전자음악 하면 EDM을 생각하지만, 다운템포, 칠 아웃 등의 음악도 분명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라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음악이 어떻게 보면 비대중적, 언더그라운드라 묶일 수도 있지만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플룸이 퓨처를 가져와 성공했고 디스클로저가 개러지와 하우스로 인기를 모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인기를 얻다 보면 ‘케이팝’이라 불리는 음악, 팝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 POND >를 듣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작품으로 들어주셨으면 한다. ‘음악 인생의 첫 챕터’, ‘서문’ 정도로. 이 앨범이 스윔래빗을 소개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 스타일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 정말 다양한 걸 많이 하고 싶다. 2020년의 스윔래빗이 어떤 감성을 갖고 있었고, 어떤 걸 하고 싶어 했는지를 담은 EP로 남았으면 한다. < POND >는 나의 자기소개서이자 청사진이다.

인터뷰 : 김도헌, 임동엽, 이홍현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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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제이클레프 인터뷰

제이클레프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무대 위에 산다는 듯 / 어필 없이는 못 살고 /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은 / 실존하지 않는’ 뮤지션들과 거리가 멀었고, ‘생각의 고리는 너무 많이 돌아 / 제자리로만 거듭 다시 돌아와’라는 치열한 고민도 깊었다. 인간 허영진의 독백은 비록 어둡고 날이 서 있었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고자 투쟁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불안한 청춘에게 건네는 가장 진실한 위로의 메시지기도 했다. 독자적인 행보로 2018년 힙합 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래퍼, 제이클레프를 4월 2일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속사 얘기부터 해보자. 콕재즈, 스윔래빗과 함께 크래프트앤준(Craft And Jun)에 합류했다.
크래프트앤준은 회사 미팅을 하면서 유일하게 먼저 들어가고 싶다고 얘기했던 회사였다. 꽤 오랫동안 회사를 찾지 않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라 아무 기반 없이 우주를 표류하는 것보다는 우주선을 하나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크래프트앤준에 합류하게 됐다.

회사 합류 외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나.
새로운 곡에 대한 추상적인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가장 최근의 활동으로는 3월 28일 네이버 < 온스테이지 >를 통해 새로운 라이브 콘텐츠를 공개했다.

작년 10월 클럽 소프(Soap)에서의 무대부터 12월의 단독 콘서트, 네이버 < 온스테이지 >까지 다채로운 라이브를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실황과 녹음은 확실히 다를 텐데.
단독 콘서트를 통해선 편곡 면에서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고 전체적 곡의 전개를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곡의 예를 들자면 우선 나에게 가장 극적인, 그러니까 영화 같은 곡이라 할 수 있는 ‘Dive in island’가 있다.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경우도 ‘지구 멸망 1시간 전에 정말 초연할 수 있을까?’ 했던 감정,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광경을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지켜보는 감정, 그런 감정을 라이브로 전달하고 싶었다. 곡을 만들 때의 느낌 대신 완성된 곡을 듣고 받았던 새로운 느낌도 전달하고 싶었고.

그 새로운 감성의 전달은 12월 콘서트 때 구체화된 것인가.
맞다. 크게 결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앨범을 만들 때는 나 자신이 수동적인 주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트랙을 받고, 편곡을 하고,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제작 과정 전체를 주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밴드 세션과 함께 공연하면서 다이나믹에 대해 더 신경도 쓰게 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악기로 채우는 것 또한 좋았다. 2016년에도 일찍이 밴드 세션으로 공연한 바 있어 낯설지 않았다.

향후에도 밴드 사운드를 많이 활용할 예정인지?
조금 더 연구를 하고 ‘무르익었을 때'(웃음) 한 번 해보고 싶다. 밴드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근 많이 들은 밴드 음악이 있나.
예전에 테임 임팔라를 좋아했어서 다시 많이 듣는다.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인터넷(The Internet)은 항상 좋아했고.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 Malibu >와 킹 제임스(King James)도 즐겨 듣는다. 재지한 쪽으로는 에이프릴 + 비스타(April + Vista)와 배드 배드 낫 굿(Bad Bad Not Good)도 추천한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즘 공식 질문인 ‘인생의 음악’을 질문해도 될까.
20대 초에는 프랭크 오션의 < Channel Orange >, 더 어렸을 때는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의 첫 앨범 < Aijuswanaseing >이었다. 인터넷의 < Ego Death >, 앤더슨 팩의 < Malibu >도 인상적이다. 프랭크 오션의 < Endless >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 Blonde >보다 더 쉽게 들었다.

제이클레프라는 이름을 처음 봤을 땐 푸지스의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을 떠올렸다.
와이클레프 장은 전혀 아니다. 그냥 내 이름이 영진이라서 영진의 제이(J), 음계의 클레프(clef)를 합쳐서 제이클레프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결사반대와 여러 상황이 있어 대학교 입학 후에 시작했다. 학내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래퍼는 가사를 써야 하고, 보컬은 커버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보컬로 들어갔지만 래퍼의 길을 걷게 됐다.

공대생이라고 들었다. 음악 하는 데 있어 공대생의 이점이 있다면.
하나도 없다. 방해된다.(웃음) 사람들이 되게 신기해하니 그 반응을 보면 즐겁긴 하다. 아무래도 판에 박힌 그런 삶을 탈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데 그렇게까지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전공을 질문한 이유가 있다. 구조적이고 철학적인, 문학적 표현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인문 쪽을 굉장히 존경한다. 나랑 관련 없고 ‘나는 절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분야였다. 사실 철학적인 내용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랜 기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그런 내용이 음악에 녹아 나온 것 같다.

본인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선이 흔한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써야만 하는 표현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많이 배제했고, 트랩 계열 비트도 많이 받지 않았다.

제이클레프의 첫 정규 앨범은 ‘흠(flaw)’과 ‘화’로 부터 출발한다. 근간을 이루는 감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만들면서 생각한 건 아닌데, 최근 앨범을 들어보면서 ‘동행자’의 마지막 구절 ‘누구나 다치는 걸 원치 않아 / 상처 입을 자신을 감싸며’가 꽤 날카로운 지점이라 느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모습,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춘 모습을 바라는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그 흠을 만들게 하는, 그 균열을 결함이라 느끼게 하는 여러 구조나 감정에 대해 일종의 회의적인 시선, 화를 내비친 앨범이다. 그런 걸 흠이라고 한다면, 대체 흠 없는 건 어떤 건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 결함과 분노는 현재 본인의 상태인가, 아니면 음반 만들던 당시의 본인인가.
어느 시점부터는 제 모습 중 하나가 됐다고 생각한다. 23세 24세 이후로는 항상 바탕에 깔려있는 감정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감정을 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이나 작가가 있다면.
신형철 문학 평론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소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었다. 갖다 붙인 말이다 하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고 ‘뭐가 그렇게 명확하지?’하는 의심도 있었다. 신형철의 책을 읽고 많이 변했다. 내가 익히 겪은 감정을 글로 멋지게 표현한다는 점이 멋졌다.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No one sees me like you’를 보면 감정은 아니지만, 자신의 영감(inspiration)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곡은 믹스테잎 < Canyon >에도 수록되어있던 오래된 곡이다. 영감은 신기하다. 마치 사고가 나듯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떠오르고, 그 순간에 대해 집착을 해서 노래가 나오고 글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지 않나.

영감은 붙잡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나. 이 앨범도 어떻게 보면 제이클레프 영감의 기록인데.
같은 믹스테잎의 수록곡 ‘Canyon’의 배경도 그렇다.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 가서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당시 너무 자존감이 낮았고 좋지 않은 일도 겹쳐 있었기에 그 절경이 배신당하고 꺾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다. 정규 앨범도 나중에 들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나의 신기함, 나의 영감,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No one sees me like you’의 ‘you’ 역시 영감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경외감으로 읽을 수도 있다.

믹스테이프의 감정처럼 < flaw, flaw >의 제이클레프는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기존 현실에 갇혀있다는 우울, 갑갑한 심정을 토로한다.
인간은 반복되는 무언가가 지속되면 거기에 질려버리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동물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도 분명 무슨 고민이 있을 거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순 없다. 단어 그대로 ‘이상향’이니까. 하지만 반복되는 현실과 부대끼는 건 또 어렵고. 그런 감정이 들어갔다.

현실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는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 치유받기도 또는 실망하기도 하는 서사를 보면 훨씬 단단해진 모습도 볼 수 있다.
트랙 순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사운드적인 흐름도 신경 썼지만, 제일 많이 신경 쓴 건 서사적인 부분이다.

‘주스 온 더 락’ 가사를 보면 그 여행의 과정이 마냥 괴롭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주스 온 더 락’도 비판적인 면모가 있다. 겉으로는 칵테일 한 잔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허나 난 뭔가에 취해 생기는 연에 매인 적 없지’에 뜻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술에 취하든 돈에 취하든, 그런 외적인 요소 없이 진지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바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곡 작업도 술 한 잔 못하는 오하이오래빗과 함께 했다. 정말 술 한 잔 못하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었다.

언급한 김에 오하이오래빗을 소개해준다면.
오하이오래빗은 나와 비슷한데 더 슬프다. 많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러 감정을 설명할 때 애써서, 덧붙여서 다시 말할 때가 있지 않나. 오하이오래빗은 그럴 필요 없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다.

제이클레프의 태도는 ‘동행자’에서 다시 한번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 곡의 ‘너’는 동행자보다 제이클레프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노래를 만들 때 항상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에 대해 중점을 둔다. ‘동행자’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자기표현이다. 동행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물론 그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부터 따왔지만 서술 방식은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간접적으로는 세상을 비판하고 싶기도 했고.

워낙 앨범이 사회 비판을 많이 한다(웃음).
깔 게 많다. (웃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강조된다. ‘나는 말하기를 강요받아왔어’, ‘이런 건 대화라 불리면 안 될까’ 같은 표현들.
나는 큰 미래를 그리지 않는 성격이다. 연속적인 삶의 결과를 신경 쓰지 큰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숲을 잘 보는 사람은 계획을 잘 세우고 나무를 보는 사람은 섬세하다지 않나(웃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이런 느낌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저런 코스를 밟아서 이렇게 저렇게 성공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부분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고 지금도 좀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이를테면 ‘뭐가 될 거냐’, ‘너가 모르면 누가 아느냐’ 같은 질문들.

‘Dive in Island’는 래퍼 최엘비가 발매한 ‘Dive Island’를 편곡하여 만든 곡이다.
원래 그 곡의 1절에 내가 참여를 하는 계획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무산이 되어 아예 새로 만들었다. 프로듀서 낸시 보이(Nancy Boy)가 곡의 뒷부분을 영화처럼 만들어줬고 나를 잘 반영한 스토리를 위에 얹었다. 앨범 발매 후 더 많이 듣는 노래인데, 많은 여운이 남고 짠한 느낌이 온다. ‘쿵’하고 내려앉는 부분이 있다.

최엘비는 실제로 < 오리엔테이션 > 앨범을 통해 대학 생활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도 했다. 제이클레프가 보는 최엘비는 어떤 사람인가.
최엘비는 너무 순수하다. 동갑이지만 애기인 친구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실제 나이와 인상이 다르지 않나. 사람은 훨씬 어른스러울 수 있는데, 굉장히 순수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을 갖고 있다. 싫은 말을 하는 걸 무서워하는 느낌이랄까. 곡 쓰고 가사 쓰는 것도 신경 써서 보고 있다. 티 없이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이런 결함에 대한 고민과 분노는 결국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재난과 묵시록으로 마무리가 된다.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누구를 깎아내리고 비난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지 않나. 서로가 서로의 상황으로 살아볼 수도 없는 거고. 그걸 다 터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 우주로부터 운석이 날아오는 극단적인 순간을 빌려서라도. 그 순간에서 지배적인 허무한 감정, ‘사랑만을 두고 떠나지’ 같은 표현처럼 허무한 감정 등을 그려봤다. 2절의 가사는 모든 걸 끝내버리기 전에 세상에 대한 냉소와 일갈을 다 풀어내는 거고. 귀여운 비트와 함께(웃음).

하지만 이어지는 ‘프리-퀄’은 나름 자전적이고 긍정적인 매조지 아닌가.
시간 순서대로 가자면 ‘프리-퀄’은 1번 트랙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Flaw, flaw’가 완벽한 1번 트랙이라고 생각했기에, 역설적으로 마지막 트랙에 ‘프리-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톱 트랙은 아니지만 서사적으로는 맨 처음에 있는 곡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20대 초반 느꼈던 낯선 감정들 – 대학생이 되고, 취업을 준비하는 그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던 시기의 느낌을 담고 있는 곡.

요약하자면 앨범은 ‘결함을 의식하면서 불완전의 미학을 깨달아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엄청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 자신이 그 불완전함을 다 예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크지. 편견 없이 무언가를 보고 노력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 Flaw, Flaw >는 나의 취향 혹은 나의 선호를 갖게 해 줬던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향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싫어하는 것도 알게 되는 과정. 결국 ‘나’에 대해 알아가는 앨범이었다.

< flaw, flaw >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음악을 계속해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이니까 오기를 갖고 열심히 만든 앨범이었고, 많은 분들이 인정해주시고 상도 주셔서 감사했다. 음악을 더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앞으로의 음악 계획이 있다면?
잘 모르겠다. 지금 말하기엔 다 시기상조 같다. 생각은 계속하는 단계다.

앨범 속의 제이클레프는 불안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였고 그 불안정성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렀다. < flaw, flaw >를 만들면서 본인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나.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됐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으로 만든 앨범이었는데 만들고 나니까 ‘뭐 어때?’ 하게 되더라. 평소 ‘왜 살지?’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음악을 만들 때도 이게 세상에 가치가 있나,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을 항상 했는데 그 고민에 대한 답이 사랑으로 되돌아왔다. 연애, 사랑, 팬, 인터뷰, 모든 관심이 나에게는 사랑이다.

< flaw, flaw >를 이렇게 많이 들어주실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가받지 못하고 인기가 없었더라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 소중한 작품이다. 중간에 발매일이 미뤄지기도 했고 슬럼프도 있었지만 발매하고 나니 굉장히 후련했다.

인터뷰 : 김도헌
사진 : 박설희
정리 : 김도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