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M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폭넓게 사랑받았던 2009년부터 2015년을 전후로 신과 밀접하게 닿아있던 디제이들 가운데, 적절한 난이도와 독자적인 개성으로 사람들의 열띤 환호를 받았고, 더 나아가 모든 ‘전자음악’ 자체에 본질적인 관심을 끌어낼 만한 아티스트 10인을 간추린다. 또한 이들의 무수히 많은 커리어에서 입문에 용이한 추천작을 성실히 골랐다.

5.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2011년, ‘Feels so close’가 처음 차트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이들은 스타의 탄생을 직감했다. 1980년대 디스코를 장난스럽게 복각한 < I Created Disco >(2007)로 음악계에 발을 내딛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괴짜 디제이, 캘빈 해리스는 복고 지향성을 잠시 접어두고 팝 시장을 향한 슬로건으로 ‘간결함’을 내걸었다. 가공을 거친 세련된 선율과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곡 전개는 마치 데이비드 게타의 형형색색 글리터와 아울 시티의 유려한 드림 팝을 더한 결과물과 같았다.
그에게 기폭제를 가져다준 결정적 기점은 리한나와 함께 작업한 ‘We found love’다. 사랑을 찾는다는 신묘한 캐치프레이즈 아래 정석적인 빌드업과 드롭 기법을 입힌 싱글컷은 무려 십 주 연속 빌보드 정상을 독점하며 ‘I gotta feeling’과 함께 역대 가장 성공한 EDM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캘빈 해리스는 다양한 보컬과의 협업을 펼쳤고, ‘Let’s go’, ‘Sweet nothig’, ‘I need your love’ 등 후속곡을 연타석 성공시키며 입지를 단단히 다져나간다.
18개월간의 발매곡을 모았다는 의미의 포트폴리오 < 18 Months >(2012)는 < Nothing But The Beat >의 맥을 잇는 옴니버스 구조의 매끈한 일렉트로닉 팝 앨범이다. 통통 튀는 질감의 ‘Bounce’부터 ‘Awooga’까지 이어지는 50분의 대장정이 유행 첨단에 위치한 팝 스타일을 집약한다. 다만 안정적인 타이틀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복고 돌입이라는 도전을 강행, 해리스는 그간의 경험과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완성도를 높인 < Funk Wav Bounces Vol.1 >(2017)으로 평단의 인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현존하는 유명 디제이 가운데 개성 넘치는 행보를 가졌지만 실력 면에서 별다른 굴곡이나 탈선 없는 안정적인 지표를 자랑한다. 리한나와의 재회 ‘This is what you came for'(2016)와 두아 리파의 감각적인 파형을 포착한 ‘One kiss'(2018) 등 캐치한 작업물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변화와 완성도에 의지를 보이면서도 동향 파악에 뒤쳐지지 않는 수집력이 장점인 아티스트다.
추천)
< 18 Months > (2012)
< Motion > (2014) 中 ‘Summer’
< Funk Wav Bounces Vol.1 > (2017) 中 ‘Slide’
‘This is what you came for'(2016) / ‘One kiss'(2018)

6.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는 스웨덴 출신 디제이 인그로소와, 악스웰, 안젤로로 이뤄진 3인조 프로듀싱 팀이다. EDM이 포털 사이트의 뜨거운 검색어로 등극한 해인 2010년에 혜성처럼 등장해 놀라운 속도로 세계를 제패하고, 모두의 환호 가운데 과감히 해체를 선언하며 깔끔하게 행보를 종결지었다. 박수칠 때 떠난 뮤지션은 무수히 많지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들만큼 강력한 상승세와 임팩트를 보인 팀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팀명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이들의 주무기는 정통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와 솔로 디제잉에서 느끼기 힘든 강력한 볼륨감이다. 간단한 리프로 시작해 점차 세력을 키우며 집단을 형성하는 ‘One (your name)’과 ‘오늘 밤 누가 세상을 구하지?’의 포효를 울부짖는 ‘Save the world’조차 일견 전자음악 신을 구원하기 위해 ‘마피아’가 직접 강림하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펜듈럼의 후예로 나타나 페스티벌 지분의 상위권을 다투던 나이프 파티와 펼친 이벤트 매치 ‘Antidote’는 당시 클럽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적은 작업량에 비해 높은 타율로 유명하다. 도입부 맛집이라 불리는 마틴 개릭스 ‘Animals’의 전신 격인 ‘Greyhound’나, 벅찬 감동과 고양을 강조한 최대 히트곡 ‘Don’t you worry child’ 등 개별 곡이 EDM의 기본 소양을 우수하게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활동곡을 전부 모은 일련의 셋리스트 < Until Now >(2012)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4위로 데뷔하며 미국의 철옹성을 관통하고,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댄스 음반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해체 이후에도 그 여파는 여실히 이어졌는데, 이들은 솔로 활동으로도 3인조 시절 못지 않은 화제와 인기를 누렸으며 악스웰과 인그로소는 새로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으로 또 한 번의 그래미 수상의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팬들의 지속적인 성원 끝에 2018년도 복귀를 선언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는 최근 위켄드, 스팅과의 작업물을 발표하며 재도약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
추천)
< Until Now > (2012)

7. 제드(Zedd)
불과 3년만에 EDM이 영감의 부재와 지독한 자가복제를 앓으며 ‘M(뮤직)’의 의의를 잃어가던 순간 좋은 음악으로 승부를 내건 아티스트가 있었다. 22살 나이의 어린 제드가 조심스레 매대에 올려 놓은 출사표, 청명한 사운드스케이프와 명료한 강약의 일렉트로 하우스 < Clarity >(2012)가 그렇다. 커버처럼 투명한 실이 신경망처럼 얽힌듯 복잡다단하지만 품위와 신념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작품은 완성형 신인에 목말라 있던 EDM 마니아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느 때보다 반향은 빠르게 나타났다. 시원한 보컬 소유자 폭시스와 찢어질 듯한 전자음, 그리고 가스펠스러운 코러스 샘플이 서로 묵직하게 충돌하는 동명의 싱글 ‘Clarity’의 대성공으로 제드는 일약 화두에 올랐고, 이듬해 제드는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댄스 레코딩 수상의 타이틀을 따내기에 이른다. 크게 참신한 구성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주인공으로 추대 받은 이유는 탄탄한 연출력과 다채로운 재질 응용 등 충실한 기본기가 핵심이었다.
특히 타인과의 협업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피처링으로 투입되어 아리아나 그란데와의 찬란한 조화를 이룬 ‘Break free'(2014)는 물론, 알레시아 카라가 참여한 ‘Stay'(2017)와 매런 모리스와의 ‘The middle'(2018) 세 곡 모두가 빌보드 10위권에 무사히 안착했다. 여전히 회자되는 1집의 수록곡 ‘Spectrum’은 말할 것도 없다. 중심이 되어야 하는 페스티벌 친화적 작법뿐 아니라 참여자의 역량을 끌어내는 프로듀서로서 거둔 가시적인 성과다.
단편적인 연출에 그친 후속작 < True Colors >(2015)는 비록 전작에서의 자신감과 기개를 고루 드러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Beautiful now’나 ‘Papercut’ 같은 분명한 킬링 트랙을 남기며 수확을 거두기도 했다. 자칫 평범할 수 있는 공식을 말끔히 흡수한 뒤 자신만의 도구로 귀에 걸리는 지점을 환산하는 능력이 특출난 디제이다. 여전히 여러 무대와 사람의 러브콜을 받으며 돌출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추천)
< Clarity > (2012)
< True Colors > (2015) 中’Beautiful now’ (2015)
‘Stay the night’ (2014)

8. 아비치(Avicii)
2013년 3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전자음악 축제 ‘울트라 페스티벌’. 번쩍이는 거대 LED 섬광이 켜지자 헤드 라이너로 초청된 아비치가 손을 번쩍 들고, 모여든 관객석에서 환호가 연신 터져 나온다. 허나 무대 가득 울려 퍼지는 것은 컨트리 음악이다. 더군다나 군중이 통기타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드는 다소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만약 비난과 야유가 존재하지 않는 평행 세계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자기타를 들고 나타난 밥 딜런을 마주한 듯한 광경과도 같았다.
스크릴렉스가 EDM의 판도를 바꾼 게임 체인저였다면, 스웨덴 출신의 아비치는 그 틀을 부신 룰 브레이커였다. 정돈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트랙 ‘Fade into darkness'(2011)로 자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간단하고도 중독적인 리프의 ‘Levels'(2011)로 당당히 빌보드의 발판을 밟으며 점차 인지도의 반경을 늘렸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비치의 출현은 단순히 하우스를 이을 후임 적격자가 아닌 비범한 개척자의 등장에 가까웠다.
일렉트로니카에 컨트리라는 조각을 조합한 퍼즐 < True >(2013)는 패러다임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본 이베어 같은 실험적인 아티스트가 주도할 법한 장르인 ‘포크트로니카’는 그의 손에서 완벽한 대중음악의 수단으로 부상하게 된다. 타이틀곡인 ‘Wake me up’은 10개국 메인 차트에서 정상을 거머쥠과 동시에 차트 4위라는 놀라운 순위를 갱신했으며, 이후 차례로 등장한 싱글컷 ‘You make me’와 ‘Hey brother’는 전자음악이 생소한 일반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비결은 스킬풀한 믹싱 능력과 탁월한 멜로디 창출이다. ‘Waiting for love’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일렉트로니카는 형식과 뼈대만 남겨둔 뒤 감각적인 컨트리 옷감을 주 소재로 덧입히고, 필요에 따라서 의복을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또한 선율의 부각은 과거 아바에서 로빈으로 내려오고, 에릭 프리즈와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로도 이어지는 명징한 ‘스웨디시 팝’ 사운드를 당당히 계승하며 스웨덴이 분명한 댄스음악 명가임을 입증한다.
주목도와 영향력, 그리고 성과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정점을 구가하며 최상의 인기를 누렸던 아비치지만,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투어에서 하차하는 등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보였고 2014년 결국 안타깝게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항간에는 “아비치의 죽음이 EDM의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이 문장이 우연의 일치인지, 혹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건 아마도, 그가 모든 음악을 동등하게 존중하며 자신의 팔레트를 순수하게 꾸려나간 박애주의자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
< True > (2013)
< Stories > (2015) 中 ‘Waiting for love’
‘Levels’ (2011) / ‘X you’ (2013) / ‘The nights’ (2014)

9. 디스클로저(Disclosure)
개러지라는 용어는 대중음악의 오랜 총아다. 비틀즈와 함께 영국의 록이 미국에 상륙한 1964년, 성공의 희망을 품은 젊은 밴드들이 ‘차고’에서 아마추어리즘과 DIY 정신으로 탄생시킨 개러지 록은 펑크의 전신을 이룩했고 십 년 단위로 리바이벌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977년 개장한 뉴욕의 클럽 ‘파라다이스 개러지’에서 유행한 전자음악의 분파 개러지 역시 동일한 이름만큼이나 시간이 지나도 다시금 회귀하려는 에토스를 공유하고 있다.
UK 개러지는 1990년대 말 유럽에서 부흥한 투-스텝 기반의 비교적 깔끔한 댄스 음악을 칭한다. 정글과 드럼 앤 베이스의 산하에서 태어났기에 밀고 당기는 기묘한 박자감을 특징으로 갖는다. 다소 생경스러운 디스클로저의 첫 정규작 < Settle >(2013)이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UK 개러지의 소환에 있었다. 정공법으로 차트를 추격한 제드나 공식의 변형으로 고정관념을 타파한 아비치의 동시대 성공 신화와는 달리, 디스클로저의 흥행 비결은 온고지신의 자세와 성공적인 각색이었다.
첨예한 비트가 목사의 열띤 설교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When a fire starts to burn’부터 결코 범상치 않다. 별다른 기폭 장치나 필터가 없을뿐더러 기존 EDM 문법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지만, 분명 춤추기 좋고, 감각적이며, 트렌디하다. 치밀한 박자 감각은 꿈틀대는 본능을 재건하고, 특유의 먹먹한 공간감과 방울처럼 응집된 신시사이저 소스는 몽롱한 환락 분위기를 창출하며 클럽 신의 경향성을 제시했다. 플룸의 획기적인 리믹스로 인기를 얻으며 ‘퓨처 베이스’ 시대의 개막을 연 ‘You & me (Flume remix)’도 이 음반에 속한다.
이들의 히트곡 ‘Latch’는 빌보드 7위에 오르며 당시 긴 무명 생활의 고초를 겪고 있던 샘 스미스를 단숨에 팝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공신의 역할을 했다. 또한 그들의 영향은 K팝에서도 간혹 나타나는데, 몽환적인 딥 하우스의 도입으로 화제를 이끈 에프엑스의 ‘4 walls’가 UK 개러지의 색채가 깊게 드러난 곡이다. 만약 느린 속도감과 실험 요소가 다분한 < Settle >이 다소 심심한 이들에게는 팝적 영합을 꿈꾼 무도회 < Caracal >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추천)
< Settle > (2013)
< Caracal > (2015) 中 ‘Omen’
< Energy > (2020) 中 ‘Tondo’, ‘Talk’
‘Ultimatum’ / ‘Moonlight’

10.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
메이저 레이저는 국내에서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프로듀서 디플로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한창 EDM이 세계 진출의 발판을 다질 무렵인 2009년, 당시에는 생소했던 레게톤 기반의 댄스 음악인 뭄바톤을 주무기로 밀어붙이며 유행 탑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캐릭터를 강조했다. 흥겨운 이국 리듬과 그르렁거리는 베이스 위로 수많은 자메이카 댄스홀 음악가를 초청한 첫 번째 작품 < Guns Don’t Kill People… Lazers Do >로 정체성과 방향키를 잡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뭄바톤이 국가를 불문하고 팝의 주류 기법으로 자리 잡는 데 이바지한 것은 아무래도 메이저 레이저의 공이 크다. 물론 그 배후에는 ‘Get low'(2014)를 흥행시킨 디제이 스네이크와 딜런 프랜시스의 공을 빼놓을 수 없지만, 메가 히트를 기록한 이들의 ‘Lean on'(2015)이 오늘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교과서로 군림하는 이유다. 커버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캐릭터 ‘레이저 소령’과 함께 끈기 있게 파고든 6년의 세월은 품에 다 안지 못할 만큼의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정수라 할 수 있는 3집 < Peace Is The Mission >(2015)이 지니는 가치는 다각적이다. 정형화된 EDM이 짧은 역사를 뒤로 한 채 저물기 시작할 무렵, 메이저 레이저는 디스클로저나 플룸과 같은 신선함으로 무장한 채 등장한 굵직한 게릴라 분파 중 뭄바톤의 각성을 전적으로 담당하여 향후 라틴 팝의 재유행과 K팝 전반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비교적 마이너 노선을 자청하던 이전작과 달리 키치함을 덜어내고 대중적인 지점을 마련하며 돌파구와 바이블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오늘날 뭄바톤은 이미 블랙핑크의 ‘불장난’과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로 익숙한 양식이 되었지만, 지금의 인식과 형태가 있기까지 나름의 오랜 변천사와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음악 역사를 통틀어도 외골수가 실패한 적은 없었듯이 메이저 레이저의 지고지순한 물방울이 세계의 돌을 뚫은 것은 이미 예견된 사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추천)
< Free The Universe > (2013) 中 ‘Get free’, ‘Watch out for this (bumaye)’
< Peace Is The Mission > (2015)
‘Cold water’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