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헤어짐을 의미하는 작별의 ‘안녕’이지만, 오랜 팬들에게는 반가운 ‘안녕’일지도 모르겠다. 왕성한 활동 가운데 조금씩 신메뉴를 선보이던 그가 오랜만에 확실한 정공법을 꺼내들었기 때문. 계절의 감성과 키워드를 강조한 ‘별 (Dear)’이나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덧입힌 바로 직전의 싱글 ‘연대기’와는 다르게 오롯이 고유의 목소리만을 승부처로 내걸었다.
대표곡인 정통 발라드 ‘이 바보야’나 ‘너였다면’과는 다르게 악기 수를 대폭 줄이고 성량을 드러내는 구간을 조금 앞당겨 형식에 변화를 줬다. 간단한 터치로 비슷한 운용과 기승전결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한국 발라드의 그림자를 벗어난 셈. 명확한 멜로디의 부재가 결국 곡을 흐리게 만든 요인이 되었지만, 단편적인 구성 속 순도 높은 가창과 완급 능력이 감지되는 곡이다.
목소리 하나로 촉촉한 감성을 빚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특장점을 잘 알고 있는지 정승환은 2016년부터 ‘그 겨울’부터 작년의 ‘어김없이 이 거리에’ 등으로 겨울 감성을 타겟팅으로 삼는 작품에 힘을 실었다. 신곡 역시 같은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정통 발라드 구조를 따른다.
다시 말해 매우 익숙하다. 잔잔하게 깔린 피아노가 필두에 서고, 후반부는 기타, 드럼, 스트링 등 여러 사운드가 극강으로 몰아붙인다. 뒤로 갈수록 겹겹이 쌓이는 악기들은 오히려 보컬을 잡아먹었기에 오히려 올해의 < 다섯 마디 >가 부른 잔잔함의 울림이 더 컸다. 별처럼 반짝하고 빛나는 구간은 없다.
‘발라드 세손(世孫)’ 정승환이 초심으로 돌아왔다. 데뷔 앨범 < 목소리 >를 시작으로 줄곧 한 장르만을 고수해 왔지만 대표곡 ‘이 바보야’, ‘너였다면’ 같은 정통의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2019년에 발매된 앨범 < 안녕, 나의 우주 >는 동화적인 분위기의 말랑말랑한 곡들 위주였고 최근에 공개했던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십이월 이십오일의 고백’은 각각 여름과 겨울을 겨냥한 곡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이어오던 정승환은 < 다섯 마디 >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음악으로 돌아와 그가 가진 목소리의 강점을 발휘한다.
정승환 특유의 말하듯 자연스러운 가창에 집중하며 음악적으로 큰 특색 없이 담백한 구성의 앨범을 완성했다. 타이틀곡 ‘친구, 그 오랜 시간’은 풋풋한 짝사랑의 고백을 표현한 가사와 꾸밈없는 보컬이 만나 스트링 선율과 건반 연주만으로 서사의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세공한다. 곡에 영감을 준 드라마 < 응답하라 1988 >의 러브 스토리와 소심한 고백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유희열의 작사, 그리고 한층 성숙해진 정승환의 애절한 음성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사랑 노래다.
이중에서 아이유가 선물한 ‘러브레터’는 수록곡 중 단연 눈에 띈다. 아이유가 < 유희열의 스케치북 >에서 제목도 없이 불렀던 미공개 자작곡은 곽진언의 기타 연주와 정승환의 따뜻한 음색으로 전하는 어쿠스틱 곡으로 재탄생했다. 분명 화제가 되는 조합이지만 정승환의 보컬이 가진 강점보다 아이유의 감성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기대감은 식는다. 한국형 발라드의 정석을 들려준 ‘그런 사람’과 자작곡 ‘그대가 있다면’에서의 색깔이 상대적으로 더 뚜렷하다.
한국 발라드는 감정을 쥐어짜고 슬픔을 강요하는 클리셰로 인기를 끌었지만 서정적인 연가의 백미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진한 여운을 주는 데 있다. 정승환의 노래에는 뚜렷한 기승전결도, 전율을 일으키는 고음과 화려한 테크닉도 없지만 가슴을 울리는 먹먹함이 있다. 초심으로 돌아간 그의 음악이 당장의 강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쌓아 올린 역량만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증명한다.
– 수록곡 – 1. 봄을 지나며 2. 친구, 그 오랜시간 3. 그런 사람 4. 그대가 있다면 5. 러브레터
시린 계절의 옷을 자주 입었던 그가 청량함을 머금은 여름 기운과 함께 돌아왔다. 기교가 없어 편안한 톤은 안정감을 주고 이전보다 밀도가 더 높아졌다. 무게감이 생긴 보컬은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며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정승환의 노래가 아니라 김동률의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 문제. 피아노 선율 위 스트링이 더해지고 보컬에 살을 붙여 나가는 구성과 점차 쌓아 올리다가 코러스로 터뜨려 웅장함을 선사하는 멜로디에는 정승환이 없다. 방향키를 돌린 것은 좋은 시도이나 의외의 요소로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