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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영화수다 Feature

공생의 덕목을 새삼 일깨워 준 ‘위대한’ 스타, 장국영을 다시 추억하며

“공생의 덕목을 일깨워준 배우다. 우리는 연기를 잘한다고 하면 홀로 압도적 연기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장국영은 어떻게 주변과 잘 어울리는가, 자기도 살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연기의 패턴을 보여준 특별한 배우였다. 장국영은 시대의 무게 중심이 여성성으로 가는 상황에서 마초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이미지의 선구자적 존재였다. 그가 맡은 캐릭터의 애틋함이 맞물리며 진정성 있는 팬들을 많이 확보하게 됐다. 진정한 팬들의 바탕에는 ‘생명력’이 있기에 세월과 함께 가는 것”이니까….

홍콩 출신의 최고 스타-배우이자 가수였던 (고)장국영(張國榮, Zhang Guorong, Leslie Cheung) 17주기를 맞이해, < 주간경향 > 2020년 4월 1372호에 보냈던 필자의 코멘트다. 올해로 사망 19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건만, 아직도 그를 추억하는 건 어찌 된 영문일까? (부끄러운 고백이나) 부친의 기일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거늘 말이다.

그 계기는 이 사이트 < 이즘 >의 운영자 임진모 선배의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다. 일찍이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한 원고―예고했던 두 번째 탄을 아직도 쓰지 않고 있다―를 청했듯, 장국영에 대해 써달라는 게 아닌가. 주지하다시피 그는 배우 이전에 가수였으며,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나인에서 특별전을 한다면서….

‘의문의 자살’로 저세상으로 떠난 2003년 4월 1일 이후 줄곧, 고인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기에 당장이라도 쓸 수 있었겠으나, 내 특유의 게으름 내지 여유를 부리며 일주일가량을 끌었다. 그러면서 장국영 그를 다시금 진지하게 소환‧추억했다. 유작 < 이도공간 >(異度空間/Inner Senses; 감독 나지량, 2002)도 넷플릭스에서 다시 한번 관람했다. 처음 볼 때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어쩌면 이 영화의 영향‧후유증(?)이 자살의 한 요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언뜻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 짐은, 사실 중학교 적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처 가득한 캐릭터인바, 실제의 장국영과 적잖이 겹치기에 내려보는, 조심스러운 진단이다. 결국 그에게는, 애초엔 짐의 환자로 등장하나 그의 애정 어린 치료에 힘입어 완치된 후 짐을 문제의 트라우마에서 구원하는 얀(임가흔 분) 같은 ‘진정한 연인’이 부재했기에,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다. < 영웅본색 >(오우삼, 1986)의 ‘당년정’ 외에는 진중하게 음미한 적 없었던 장국영의 노래들도 찾아 들었다. 지금도 들으면서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중이다. < 영웅본색2 >(오우삼, 1987)의 ‘분향미래일자’, < 천녀유혼 >(정소동, 1987)의 ‘노수인망망’, < 첨밀밀 >(진가신, 1996)의 ‘월량대표아적심’, < 금지옥엽 >(진가신, 1994)의 ‘추’, < 백발마녀전 >(우인태, 1993)의 ‘홍안백발’, < 야반가성 >(우인태, 1994)의 ‘야반가성’ 등 그의 매혹적 노래들만이 아니다. 내친김에 여타 다른 홍콩영화들의 OST도 들었다. 결국 19년여의 세월에도 아랑곳없이 장국영 그는 내게 현재형의 존재로서,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내 첫 번째 영화 단행본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작가, 2008) 2부 「영화 인물 탐구」 장국영 편 “공생의 덕목을 새삼 일깨워 준 ‘위대한’ 스타”에 상술했듯, 나는 문제의 그 날에야 비로소 장국영에 대해 크고 깊은 관심을 갖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당시 연재 중이던 < 인천일보 > 4월 11일 자에 다음과 같은 소회를 피력했다. 다소 긴 감이 있으나, 일부 수정을 해가며 그 전문을 옮겨보자. 더 이상 잘 쓸 자신은 없으니….

이 시점에서 장국영을 추억하는 칼럼을 쓰는 건 다분히 때늦은 짓이다. 이렇게 쓸 거라면 지난주에 썼어야 했다. 그가 투신자살로 47년 가까운 생을 마감했던 지난 1일 밤 그 비보를 접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안타까움을 넘어 일말의 슬픔까지도 느꼈으니까.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까닭은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지구를 지켜라! >를 강추하고픈 욕구가 워낙 컸기 때문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 이후 난 서서히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분명히 알았다. 비록 의식하고 있진 않았지만 난 그를 퍽 사랑하고 흠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연기 세계의 깊숙이 매료되어 있었다는 걸….

< 영웅본색 >(1986)에서 출발해 < 색정남녀 >(1999)에 이르는 열 편의 대표작들을 다시금 되돌아보면서, 그만의 매혹적 연기 세계에 취하는 건 따라서 당연했다. 그때부터 줄곧 난 장국영과 ‘더불어’ 지내고 있다. 강의에서든 사석에서든 늘 그를 말했다. 그러니 어찌 여기서 그를 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거나 기억하며 새삼 발견한 사실은, 장국영 그는 여느 출중한 스타·배우들과는 달리 작품 속에서 함께 연기한 동료 연기자들을 압도하는 연기를 펼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출세작이라고는 하지만 < 영웅본색 >에서는 주윤발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 천녀유혼 >과 ‘연지구'(88)에서는 왕조현과 매염방의 황홀한 매력에 가려 빛이 바랜다. < 동사서독 >(1994)에서도 양가휘, 장만옥, 양조위, 임청하 등 화려한 출연진의 열연은 물론 감독 왕가위의 ‘튀는’ 스타일에 가린다. 심지어는 흔히 최고의 연기를 구현했다고 간주되는 < 패왕별희 >(1993)서도 갈우와 공리를, < 해피 투게더 >(1997)에서는 왕조위를 압도하진 못한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장만옥을 비롯해 류덕화·장학우·류가령 등 여타 주연 배우들의 연기 총합을 능가하는 < 아비정전 >(1990) 정도랄까,

그렇다면 그의 연기가 시원치 않다는 의미? 천만의 말씀, 그 정반대다. 단언컨대 그는 거의 항상 최고 수준의 연기를 선사한다. 여전히 빛을 발한다. 평범한 배역일 때조차도. 그 빛은 그러나 여느 훌륭한 배우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되는 강렬한 빛이 아니라 동료 배우들과 완벽하게 공존하는 은은한 조화의 빛이다. 그건 뜨겁지 않고 온화하다. 나른하고 편하다. 행복하기조차 하다. 그럼으로써 영화를 한층 더 풍성하게 하고 더욱 볼만한 것으로 승화시킨다.

세상의 숱한 좋은 배우들 중 과연 그런 이가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 이름을 자신 있게 떠올리질 못하겠다. 이건 그야말로 연기의, 배우의 발견이다. 물론 과장이 섞였겠지만, 향후 영화 연기 역사는 이렇게 나뉠지도 모른다. ‘장국영 이전’과 ‘장국영 이후’로.

이젠 찾아볼 순 없어도, < 이즘 >에도 비슷한 취지의 원고를 보낸 바 있다. 추모성 원고를 청탁해온 모 주간지에는, 장국영의 출연작 베스트 10을 연대기 순으로 선정해 간략하게 리뷰를 곁들이기도 했다. (5점 만점 기준) 평점을 겸해 참고삼아 밝히면 그 10편은, < 영웅본색 >(3점)을 필두로 < 천년유혼 >(3.5점), < 연지구 >(관금붕, 5점), < 아비정전 >(왕가위, 5점), < 백발마녀전 >(3.5점), < 패왕별희 >(첸 카이거, 4.5점), < 금지옥엽 >(3.5점), < 동사서독 >(왕가위, 4점), < 해피 투게더 >(왕가위, 4.5점), < 색정남녀 >(이동승, 3점)이다. 이 목록은 다시 선정한다 해도 거의 변할 게 없다. 딱 한 편 < 색정남녀 >를 다시 본 < 이도공간 >으로 바꾸는 정도랄까. 이미 말했듯 유작으로서 그 함의가 한층 더 각별하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19년이 흐른 현재, 장국영에 대한 내 진단‧평가는 변한 게 전혀 없다. 최근 넷플릭스 OTT 6부작 드라마 < 지옥 >(연상호)의 유아인 연기를 설명할 언어를 못 찾겠다고 했고, 여전히 그 당혹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도, 그렇다. 고로 장국영을 향한 내 사랑은, “1999년도에 개설 이래 꾸준히 장국영을 기억하고 그리는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국내 대표 팬클럽”으로, “홍콩, 중국 팬클럽과의 교류를 통해 매년 홍콩 현지 추모 행사에 참여 중이며, 국내 장국영 관련 방송, 신문, 영화제, 전시회 등의 행사에 참여하는 등 장국영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활동 중”인 ‘장국영사랑’의 팬들 못잖을 거라고 감히 자부한다, 한들 핀잔을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장국영 열혈 팬들이 상기 주간지에 실렸던 내 원고를 1주기를 기념해 맞춰 출간한 the One and Only……Leslie Cheung에 영문으로 번역(A Great Actor Makes Me Realize the Virtue of Symbiosis)해 실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렇다면 장국영 그는, 죽었으되 사라지지 않고 팬들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 그 팬 가운데 나 역시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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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 마이 카 >에서 < 자산어보 >까지… 2021년의 영화 베스트 10(2편)

삼십 수년간 영화 관련 글을 써오며 지금껏, 한해의 베스트 영화 10편을 뽑는 데 이번처럼 공을 들인 적은 없다. 몇 개월에 걸쳐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영화 (제작) 100주년이었던 2019년 ‘한국 영화 100선’을, 다음 해 ‘세계 영화 100선’을 선정했을 때 못잖다. 그만큼 2021년에 국내에서 선보인 일련의 영화들, 특히 외국영화들에 실린 무게감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애초에는 가볍게, 한 번에 다 소개하려던 10편의 영화들을 두 차례, 나아가 세 차례로 나눠 제시하는 것은 그래서다.

3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들리 스콧 

리들리 스콧이 왜 거장인지를 새삼 증거하는 ‘압도적 역작’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들만 아니라면 별다른 주저 없이 2021년의 베스트 1로 선정했을 터. 실은 막판까지 정상 자리를 놓고 고심에 고심했음을 고백한다. <해피 아워>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드라이브 마이 카> 아닌 이 걸작을 1위로 선택했으나, <해피 아워>를 보고 나니 <드라이브 마이 카>가 한층 더 유의미하고 매혹적으로 다가서 끝내 그 순위를 바꿨다.

<라스트 듀얼>은 100년 전쟁 중인 14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무대로, 유서 깊은 카루주 가문의 장군‧기사 장 드 카루즈(맷 데이먼 분)와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 자크 르그리(아담 드라이버), 그리고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코모), 세 중심인물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역사 대작이다. 일찍이 이 지면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인물들의 성격화(Characterization)부터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 특히 전체적 ‘톤 앤드 매너’에서 다분히 마초적으로 비치는 영화를 주목할 만한 여성 영화로 비상시키는 조디 코모의 치명적 매력(Fatal Attraction), 장과 자크의 한판 승부를 그리는, 마지막 20분간의 숨 막히는 화룡점정적 결투 시퀀스, 그리고 동일한 사건을 세 주인공의 시선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비주류적 화법으로 예상치 못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플롯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최상의 경지를 뽐낸다.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1941)이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 등 세계 영화사의 대표적 걸작들의 비통속적 탈-할리우드 내러티브와 친숙한 주류 영화적 스타일로 세계영화의 지형도를 새로 그렸다, 는 것이 내 총평이다.

4위. 퍼스트 카우, 켈리 라이카트(Kelly Reichardt)

<초원의 강>(1994), <웬디와 루시>(2008), <믹의 지름길>(2010) 등을 통해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으로 부상한 켈리 라이카트가 빚어낸 문제적 걸작이다. 1820년대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 오리건주,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백인과 도망자 신세였던 중국인 이민자 두 남자를 축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너무나도 아름다운 성찰과 감동의 휴먼 드라마다. 인종의 차이에도 아랑곳없이 서서히 형성돼 지속하다 죽음에 직면해서도 배신하지 않는 두 주인공의 변치 않는 우정을 지켜보는 맛이, 여간 강렬한 게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절이 등장하는데, 우정의 최상급 극적 형상화로 손색없다. 여느 서부극의 총격전 대신 요리를, 총 아닌 빵을 선택한 감독의 방향‧지향성에서 영화는 서부극을 완전히 해체시킨 셈인바, 그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작 웨스턴 ‘<용서받지 못한 자>(1992) 그 이후’로 일컬어질 만하다. 수시로 편협하기도 하고, 자국 영화를 향한 애정에서는 종종 맹목적으로 치닫기도 하는, 프랑스 유명 영화 월간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 역작을 2021년의 ‘톱 텐 영화상’(Top 10 Film Award) 정상에 등극시켰다. 레오스 카락스의 <아네트>(2위)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모리아>(3위), <드라이브 마이 카>(4위)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뒤고 하고….

5위.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화제의 논쟁작이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던 한 여성(아가트 루셀 분)이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어느 날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던 아버지(뱅상 랭동)와 조우하게 되면서는 그들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포성 휴먼 스릴러다. 극적 설정도 그렇거니와 시청각적 묘사에서도 더 이상 자극적일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전혀 선정적이지 않으며 묘한 페이소스까지 안겨주는데, 다름 아닌 그 미덕이 칸 심사위원들을 움직였지 않았을까 싶다.

일찍이 다른 지면에서도 말했듯, 국내 선두 OTT 업체인 왓챠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 <아네트>와 함께 지난해 26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인기작 중 하나였다. 일반 관객 표는 일찌감치 매진됐고, 하루 전 구할 수 있는 프레스 및 게스트 표 또한 작심하고 발권 30분 전인 오전 7시부터 대기 줄에 서 기다린 뒤 신청했건만, 허탕을 칠 정도였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를 빌려보자. “호러, SF, 스릴러, 범상치 않은 러브스토리…<티탄>은 분명 유례없는 영화다. 시나리오보다 더 놀라운 점은 강철과 피, 그리고 불꽃의 오페라라고 해야 마땅한 쥘리아 뒤쿠르노의 유니크한 영상 스타일이다. ‘괴물성은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이다. 괴물들을 받아들여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한다.’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인 (중략) 수상 소감이다. 이 다재다능한 젊은 여성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다소 아카데믹한 프랑스 영화의 관습을 송두리째 흔들 것이다.”

<티탄>의 쾌거가 과연 “프랑스 영화의 관습을 프랑스 영화의 관습을 송두리째 흔들 것”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칸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라고 평할 수 있을 그 선택이 단발성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영화제 최고상을 안았건만 영화는 오는 27일(일) 열릴 94회 아카데미상에서 5편의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조차 들지 못했다. 비용의 영화인 봉준호의 <기생충>에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해 영예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4관왕을 몰아준 아카데미가 예의 보수성으로 회귀한 것일까?

1983년생인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는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단편 <주니어>가 2011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선정되며 큰 눈길을 끌었다. 가족 모두가 채식주의자인 주인공이 식인 욕망으로 치닫는 드라마를 극화한 충격의 장편 데뷔작 <로우>(2016)로 2016 칸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상을 받으며,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뒤쿠르노 감독은 1993년 제인 캠피온이 <피아노>로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와 공동 수상한 이후 사상 두 번째로 칸을 정복한 두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단독으로는 최초다.

6위.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피아노>(1993)만으로도 세계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여걸 제인 캠피온이, 2009년 〈브라이트 스타〉 이후 12년 만에 선보인 화제의 수작이다. 영화는 1925년 광활한 미국의 몬태나 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로맨스 곁들인 미스터리물이자 서부극이다.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영화는 ‘마마보이’임이 분명한 주인공 소년의 흔치 않은 성장담이자 엄마를 위한 복수극으로도,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주인공 필의 성장담으로도,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야만 하는, 기구한 처지의 여인의 생존담으로도, 돈 때문에 자신과 결혼을 한 여자를 향한 조지의 순애보로도 읽힐 수 있다. 영화는 그만큼 해석에 열려 있으며, 그네들은 우리네 인생의 축약도적 캐릭터들일 수도 있다. 연기들이 매혹적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 없을 테다. 네 중심인물이 죄다 올 아카데미상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어인 일인지 던스트는 여우 조연상에 올랐으며, 제시와 코디는 공동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파워 오브 도그>는 (3월 21 기준으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과 올해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영화 부문 감독상 등을 포함해 249개 상을 차지했으며, 오스카상 11개 부문 12개 등 무려 313개 상에 노미네이션돼 있다. <기생충>엔 다소 못 미쳐도, 그 못잖은 놀라운 성취다.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따라서, 작품상 수상이 확실시되는 이 화제작이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가져갈 거냐 여부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네 개 부문 중 몇 개를 차지할 것인지 여부와 더불어. <파워 오브 도그>는 최근 미국 감독조합이 수여 하는 감독상과, 영국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등을 확보했다.

여담 하나. 한데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 영화를 베스트 10 안에 진입시키지조차 않았다. 영화 보기 및 평가에서 취향이 제아무리 중요하다고는 하나, 그 악명(?) 높은 잡지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흥미롭지 않은가. (계속)

7위. 램, 발디마르 요한손

8위. 듄, 드니 빌뇌브

9위. 모가디슈, 류승완

10위. 자산어보, 이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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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 마이 카 >에서 < 자산어보 >까지… 2021년의 영화 베스트 10(1편)

입춘(2월 4일)을 지나며 진짜 ‘검은 호랑이 해’(壬寅年)가 밝은지 한 달이 돼간다. 너무 때늦은 감은 있으나, 참고‧재미 삼아 이제라도 ‘2021년의 영화 베스트 10’을 엄선‧소개해보면 어떨까. 영화 보기 50여 년에 영화 스터디 40년 차, 영화 글쓰기 삼십 수년의 영화 비평가에게 그 어느 해보다 한층 더 크고 깊은 감흥‧자극을 안겨주고, 나아가 열광‧감탄시키기도 한 수‧걸작 10편을.

그간은 으레 한국과 외국 영화를 분리했으나, 이번에는 종합적으로 뽑았다. 최종적으로 2편 대 8편이다. 외국 영화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졌다. 균형‧배분 차원에서 주목에 값하는 문제작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이태겸 감독)를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끝내 선택하질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외국 영화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서였다. 안소니 홉킨스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긴 <더 파더>(플로리안 젤러)나 비르지니 에프라, 다프네 파타키아, 샬롯 램플링 세 여걸들의 활약상이 단연 돋보였던 칸 경쟁작 <베네데타>(폴 버호벤), 지난해 서서히 빠져든 멕시코 태생 명장 미셸 프랑코의 2020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뉴 오더> 등이 그 몇몇 예들이다. 1위작도 그렇거니와 10편을 꼽는 데 이렇게 고심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기억하건대 없다.

일찍이 동료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치료 전문가인 심영섭의 유튜브 방송 ‘심교수의 15분’(https://www.youtube.com/watch?v=FBRYif75R9Y&t=6s)에서 영화계 결산을 하며 베스트 10을 밝혔었는데, 순위도 그렇거니와 그 목록과 다소 차이가 난다. 그때의 녹화 이후 일련의 영화들을 더 챙겨보고, 그들 중 2편을 새로 선정해서다. < 해피 아워 >와 < 램 >이 그들이다.

공동 1위 : < 드라이브 마이 카 > & < 해피 아워 >(2015), 하마구치 류스케

2021년은 내게, 상기 미셸 프랑코와 더불어 일본이 낳은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이 두 감독은 1978년생으로 동갑내기다―에 푹 빠진 한해로 기록될 게 틀림없다. 작심하고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관람한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작 < 우연과 상상 >과, 칸 각본상 수상작 < 드라이브 마이 카 >가 그 결정적 계기였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 어느 가족 >이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2018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첫선을 보인 < 아사코 >를 볼 때만 해도 사실, 이 ‘젊은 거장’에게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았었다. 칸에서 무관에 그쳐서는 아니었다. 이창동 감독의 문제적 걸작 < 버닝 >도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보다는 전작(前作)을 본 적이 없는 데다 감독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 터라, 그저 ‘별난 러브스토리’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아사코 역 카라타 에리카―tvN 18부작 드라마 < 아사달 연대기 >(2019)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했던―의 치명적 매혹(Fatal Attraction)에 혹하긴 했어도…

이 포스트-고레에다에게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그가 봉준호의 < 기생충 >(2019)에 대해 쓴 어떤 글의 일부를 읽고나서였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 인생은 그 걸작을 기점으로 나뉘며, 봉준호와 홍상수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한국영화가 부럽다는 게 아닌가! 한-일 간의 고질적 갈등을 감안할 때, 전통 영화 강국 일본의 전도유망한 ‘미래의 거장’의 발언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그의 파격적 개방성‧수용성은 강렬한 인상을 넘어 일대 충격으로 다가섰다. 봉 감독과의 심층 인터뷰에서, 그의 견해를 굳이 전한 것도 그래서였다.

작년 3월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 스파이의 아내 >(2020)를 보고는 하마구치를 향한 내 관심은 한층 더 깊어졌다. 영화미학‧예술적 수준은 말한 것 없고 무엇보다 여타 일본 감독에게서는 (거의) 목격한 적 없었던 그 세계시민적(Cosmopolitan)적 시각(Perspective)이 감탄스러웠다. 기요시 감독의 출세작 < 큐어 >(1997)를 비롯해 < 카리스마 >(1999), < 밝은 미래 >(2003), < 산책하는 침략자 >(2017) 등 이전 영화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범세계적 무권력주의(Anarchism)적 아우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그 답은 각본에 하마구치가 참여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영화의 메인 작가는 하마구치 류스케였던 셈이다. 판단컨대 하마구치는 코스모폴리탄적 아나키스트임이 분명하다. 그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하마구치 월드’에 근접하기 위한 최우선적 첩경이(라는 것이 내 총평적 해석이)다.

< 천국은 아직 멀어(天国はまだ遠い) >(2016)는 하마구치를 향한 내 관심을 애정으로, 나아가 열광으로 비상시켰다. 2019년 제2회 짧고 굵은 아시아영화제에서 선보였던 그 단편을 보며 감독의 기발한, 너무나도 기발한 천재적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제 소갯글을 빌려보자.

AV 영화 모자이크 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유조는 어느 날, 한 여인에게서 인터뷰 제안을 받는다. 그는 17세에 죽은 동급생 유령과 기이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의뢰자는 다름 아닌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죽은 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유조에게 언니가 빙의되었다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유조의 증언을 믿지 않지만, 그에게 빙의된 언니의 말에 반응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천국과의 거리’는 유령과 신체에의 빙의,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스크린에 비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만질 수 없는 접촉 불가, 증언의 불확실성의 테마를 보여준다.

그 외연에서는 적잖이 다르나 내포적 의미에서 < 천국은 아직 멀어 >는, 그 전후의 두 장편 < 해피 아워 >와 < 드라이브 마이 카 >를 잇는 가교로 손색없다. < 해피 아워 >는 모든 것을 공유하며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왔으나 실은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지니고 있는, 30대 후반의 네 동창생을 축으로 펼쳐지는 여성 드라마다. 영화는 제 68회 로카르노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놀랍게도 연기 워크숍에서 만난 비직업적 초짜 배우 넷이 공동 수상을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영화의 상영시간이, 단일 영화로는 일본영화 사상 가장 긴 5시간 28분이라는 것이다. 대체 그렇게까지 길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그에 대해 감독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지금도 캐스팅이 가장 어려워요. 비직업 배우와 전문 배우와의 작업은 각각의 장점과 어려움이 있는데요…물론 제가 일부러 길게 찍으려고 한 건 절대 아닙니다. (웃음) < 해피 아워 > 찍을 때까지만 해도 재밌는 걸 찍으려고 하면 길게 찍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8개월간 촬영했고 시나리오 수정 작업도 꽤 여러 차례 진행했어요. 기본적으로 비직업 배우들과의 작업이다 보니 대본을 누가 읽더라도 쉽게 이해되게끔 계속 수정해야 했죠. 초고로는 2시간 30분 분량의 영화였는데 대본 수정을 거듭할수록 내용을 하나씩 풀어쓰다 보니 분량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네 명의 캐릭터가 일상에서 어떤지를 자세히 묘사했어요…길어진 대본 분량을 그대로 다 찍었어요. 2시간 정도로 편집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다 만들어놓고 보니 5시간 36분―왓챠에서 볼 수 있는 국내 개봉은 5시간 28분―이 되더라고요. 근데 그걸 보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출연한 분들이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 자신들의 캐릭터를 이해했던 것이잖아요. 관객도 이 시간 동안 영화 속 캐릭터를 마주하다 보면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http://reversemedia.co.kr/article/189)

감독이 역설한 ‘재미’는 빈말이 아니다.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는바, 5시간 반에 가까운 그 긴 시간이 마치 1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수긍이 갈까. 그 느낌은 < 드라이브 마이 카 >에도 해당된다. 여느 영화치고는 결코 짧지 않은 3시간이 훌쩍 흘러가는 ‘경이의 영화!’ 2014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 여자 없는 남자들 》  에 실려 있는 7편 중 하나인 동명 단편을 영화화했다. < 버닝 >이 그랬듯 하루키 원작은 그러나 일종의 맥거핀(MacGuffin), 즉 속임수 내지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도 말하듯, “마음 한구석에 꾹 눌러둔 어둠과 외로움을 간직한 주인공을 그린다는 점에서 하루키 소설의 핵심을 담고 있으면서”도 하마구치 그가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그만의 내러티브‧연출 스타일로 압도적이면서도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이뤄진다. 전체 3시간 가운데 몇십 분이 채 안 되는 전반부는 언뜻 남부러울 것 없는 멋진(Cool) 부부 사이의 사건‧사연이다. 인기 배우이자 연출가인 가후쿠와, 역시 인기 있는 TV 드라마 작가 오토다. 여자는 남편과 섹스를 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는 버릇이 있는데, 그 이야기로 대본을 만들어 작가로서 성공을 일궈내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어느 날 우연찮게 아내의 외도를, 그것도 자신의 집에서 목격하나 그 자리를 회피한다. 그것도 모자라 끝내 그 이유를 묻지 않고, 그런 상태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아내가 죽은 지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연극제에 초청돼 안톤 체호프의 희곡 < 바냐 아저씨 >를 올릴 준비를 한다. 그곳에서 그에게는 주최 측의 강권으로 마지못해,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와 함께 하게 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두 번째 파트는 또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 바냐 아저씨 >의 공연에 이르는 과정과, 가후쿠-미사키 간에 서서히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그 두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음은 물론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최종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한 < 바냐 아저씨 > 공연 연습을 통해 가후쿠는 자기 내면의 심연을 성찰할 기회를 맞는다. 일본어를 비롯해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심지어 침묵의 언어인 수화 등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며,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해가는 연기자들을 통해 삶의 비밀에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고 할까. 그 과정에서 묵묵히 운전에만 열중하는 미사키와, 습관적으로 죽은 아내가 녹음한 < 바냐 아저씨 >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 연습을 하는 가후쿠 사이에 소통의 기회가 찾아오고, 마침내 둘 다 공히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계맺음이 이뤄진다.

< 드라이브 마이 카 >는 2월 말 기준, 전 세계 영화제 및 영화상에서 62개 수상에 100개 부문에 후보지명돼 있다. 그 중 4개는 오는 3월 27일(일) 개최되는 제 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션이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이다. 미국의 로컬 영화상에서 영어가 아닌 영화로 작품상과 감독상 등에 후보로 지명되다니, < 기생충 >에 이은 일대 파란이라 평하지 않을 길 없다. 올 아카데미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 드라이브 마이 카 > 와, 11개 부문 12개 후보에 오른 < 파워 오브 도그>가 과연 어떤 상을 가져가냐 일 테며, 세 부문에서는 양파전이 될 공신이 크다. 수상 결과에 상관없이 < 드라이브 마이 카 >는 이미 ‘포스트-기생충’으로 일컬어질 만하다.

이렇듯 하마구치 영화들에서 중시되는 것은, 캐릭터와 캐릭터를 이어주는 어떤 ‘사이’요, 그 사이의 채움을 통해 드러나는 개별 캐릭터들의 어떤 존재감들이다. 캐릭터가 인간 자체로 바뀌어도 무방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장, 단편 불문 그의 영화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비교의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제고시켜준다. 그에게 영화는 철저히 우리네 인류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여느 영화광들처럼 그 반대가 아니라…

그 점에서 하마구치는 천상 휴머니스트다. 어느 모로는 작금의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시대, 달리 말해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적 고전주의자랄까. 그렇지 않다면, 스승 구로사와 기요시도 그렇거니와 프랑스 누벨바그의 돌연변이적 주자 에릭 로메르나 심심치 않게 그와 비교되곤 하는 홍상수, 그리고 선배 봉준호를 향해 어찌 그렇게 대놓고 크고 작은 오마주를 바칠 수 있겠는가. 난 정말이지 하마구치의 그 겸손한 자신감과, 자신감 어린 겸허함을 사랑한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별다른 액션도 없이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사가 얼마나 역동적일 수 있는지 감탄하곤 한다. 그 어떤 액션 영화도 그렇게 다이나믹하지 않다. 뿐만 아니다. 그의 영화들은 소위 ‘예술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야 마땅하나, 여느 예술영화들과는 달리 난해하긴커녕 접근 불가한 요소들이 거의 없다. 그 지점에서 그는 장 뤽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 서구의 대표적 작가 감독들은 물론이거니와 여로모로 비교될 법한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과도 판이하게 다른 자기만의 독자적 영화 세계를 구축해내는 데 성공했다. 고작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나는 확신한다. 머잖아 세계 영화사는 하마루치 류스케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될 거라고. 헛소리라고? 과장이라고? 그렇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나부터 그 작업을 향해 나아갈 참이다.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말이다. < 드라이브 마이 카 >와 < 해피 아워 >, 이 두 역사적 걸작은 비단 2021년만이 아니라, 21세기 나아가 올해로 127년을 맞이한 공식 세계 영화역사의 손꼽히는 으뜸 문제작들로 평가돼 마땅하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 우연과 상상 >도 마찬가지고…

이어질 3위부터 10위작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계속)

3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들리 스콧

4위. 퍼스트 카우, 켈리 라이카트

5위.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6위. 파워 오브 더 도그, 제인 캠피온

7위. 램, 발디마르 요한손

8위. 듄, 드니 빌뇌브

9위. 모가디슈, 류승완

10위. 자산어보, 이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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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전찬일의 영화수다 – 왜 < 미나리 >인가!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윌 패튼 등 주·조연에 40대 초반의 재미교포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이 연출한 네 번째 장편극영화 < 미나리 >는, 오는 26일(한국시간 기준) 개최될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거머쥘까?

1980년대 초반, 희망·구원을 찾아 이민을 간 미국 캘리포니아를 10년 만에 떠나 시골 마을 아칸소로 막 이주한 한국 가족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가족 드라마. 한국적 정서·감성 가득한 이 미국 영화는 총 6개 부문에 후보 지명돼 있다. 영예의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이다. 노미네이션으로만 치자면 봉준호의 < 기생충 >을 압도한다. 그 역사적 걸작은 미술상, 편집상까지 역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쥐었으나, 연기상으로는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여정의 수상 및 노미네이션 퍼레이드는 특히 눈이 부실 정도다. 그 여걸은 11일(현지 시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상 여우조연상을 안으며 37번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로써 오스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후보만으로도 역사적 쾌거였는데, 이제는 상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이변’으로 회자될 상황이다. 7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대세 배우’가 된 것. 당사자도 말했듯,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대체 왜 < 미나리 >일까?

곧 유튜브에 업로드돼 첫 방송될 ‘전찬일 이덕일의 종횡무진: 영화와 역사를 탐하다’ 등에서도 적시했듯, < 미나리 >의 주목할 만한 덕목‧화제성은 크게 서너 가지다. 우선은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안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연출력으로 자유롭게 극화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적 사건을 이민 가족으로 으레 겪을 수밖에 없을, 인종차별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가족 내 캐릭터―다름 아닌 윤여정이 분한 극 중 할머니 순자다!―의 불가항력적 선의의 실수로 구현‧처리한 선택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영화의 으뜸 미덕이다. 어느 모로는 의외이면서도 영화에 남다른 신선함‧수준을 안겨주기 모자람 없다고 할까.

정이삭 감독은 사실, 첫 장편 < 문유랑가보 >로 단연 주목할 만한 데뷔전을 치른 바 있다.  비록 수상은 못 했어도, 서른을 바라보던 지난 2007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 공식 섹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고, 데뷔작인지라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 상 후보에 올라 일찌감치 큰 화제 몰이를 했던 것. 당시 칸을 찾았던 필자는, 영화의 화제성도 그렇거니와 그 속내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전 와중에 있던 아프리카 르완다 두 소년의 이야기를 르완다인들의 협조를 받아 가며 르완다 어로 찍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성취는 사상 최초였다. 두 영화 사이에는 13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놓여있긴 해도, < 미나리 >의 ‘영광’은 그때 이미 예고됐던 셈이다. 다소 성급한 진단일 수도 있어도, 그에게서 ‘포스트-봉준호’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다.

두 번째 화제성은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연기에서 연유한다. 윤여정을 필두로, 봉준호의 < 옥자 >(2017)와 이창동의 < 버닝 >(2018) 등을 통해 그 연기력을 공인받은 스티븐 연, 오스카 후보지명엔 실패했어도 인생 일대의 연기를 선보인 한예리,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건만 우리말 연기도 곧잘 해낸 앨런 김과 노엘 조 등이 구현한 앙상블 연기는 < 기생충 >에 비견되기 부족함 없다.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국배우조합(SAG)상에서는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아론 소킨)에 영화 부문 앙상블상이 안기긴 했어도….

< 미나리 >가 누리고 있는 작금의 연기를 향한 상찬들은 물론, 연기도 연기거니와 성격화(Characterization)에 기인한다. 당장 할머니이면서도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쳐 함께 치고, 상소리들이 두루 섞인 거친 입담을 과시하며,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못한다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엉뚱(?)하게 미나리의 질긴 근성을 설파하는 등의 순자부터가 얼마나 ‘별난’ 캐릭터인가. 그야말로 역대급 캐릭터의 완승이다.

흥미로운 점은 < 미나리 >가 자신의 연기 최고작이 아니라는 것을 윤여정 본인이 잊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녀는 영화 데뷔작 < 화녀 >(김기영, 1971)―그 ‘청불 영화’를 필자는 초등학교 4년 적 청량리에 있었던 동일 극장에서 관람했다!―에서부터 이미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으며, < 꽃피는 봄이 오면 >(유장하, 2004),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등을 통해 최상의 연기력을 선보인 ‘연기의 달인’ 아닌가. 그럴 법한데도 전혀 우쭐대지 않고 늘 겸허한 수상 소감을 피력하는 윤여정의 모습이야말로, 연기를 넘어 후배 배우들이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할 진정한 그 무엇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상기 덕목들보다 더 아름다운 < 미나리 >의 (영화) 역사적 의의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압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네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현실, 다시 말해 무려 750만에 달한다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는 데서 나는 찾고 있다. 영화적 수준에서는 다소 못 미칠지언정, < 미나리 >의 영화사적 의미가 < 기생충 >을 능가한다고 평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일전에 다른 지면에서 밝혔던 내 진단을 여기에 옮기며, 이 글을 마치련다.

“나는 < 미나리 >의 가장 큰 의의를 다른 지점에서 찾는다. 영화는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문제를 전격적으로 소환·환기·각인시키는데 전환점(Turning Point)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위성에서는 그래선 안 되나, 조국 대한민국조차도 거의 잊다시피 주변부화시켜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주요 현실 중 하나….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배창호와 이장호, 김호선, 조정래 등이 각각 < 깊고 푸른 밤 >(1985)과 < 명자 아끼꼬 쏘냐 >(1992), < 애니깽 >(Henequen; 1996), < 귀향 >(2016) 등을 통해 일찍이 다룬 바 있는 주요 이슈다.

< 미나리 >는 문화예술과 오락이 얼마나 밀접하게 (현실) 정치와 연관돼 있는가를, 영화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문화 콘텐츠·스토리텔링으로 극화시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를 새삼 증거한다. < 기생충 >이 가족 희비극을 통해 이 세상의 비정한 신자유주의를 향해 통렬한 화살을 날렸듯. 그럼으로써 < 미나리 >는, 비평가로서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온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 얼마나 위대한 성취들인가!”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