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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지 어언 2년. 맘 편히 얼굴을 맞대지 못했던 만큼 마음의 거리도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고, 벌어진 틈을 충실히 채웠다. 혼란스러웠던 2021년, 이즘 에디터의 공허함을 달래준 노래는 무엇일까. 개인의 취향을 눌러 담아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이즘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벗삼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장준환’s Choice

인저리 리저브(Injury Reserve) ‘Knees’
실연과 실험으로 뒤엉킨 성장통, R.I.P. Jordan Groggs.

스프레이, 블라세(Spray, Blase) ‘City (Feat. SUMIN)’
훗날 코로나 종식을 기원하며,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모임 별(Byul.org) < 영화 십개월의 미래 OST >
OST의 탈을 쓴 정교한 플런더포닉스.

턴스타일(Turnstile) < Glow On >
< Sunbather >의 찬란한 메카 위로 흩뿌려진 펑크 클라우드.

리차드 도슨 & 서클(Richard Dawson & Circle) < Henki >
디오라마의 좁은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레퀴엠.

정다열’s Choice

랭페라트리스(L’Imperatrice) < Tako Tsubo >
디스코로 수놓은 영롱한 파리의 밤거리. 감각적인 연주에 몸을 흔들며 다프트 펑크 해체의 아쉬움을 날려보자. (프랑스 밴드지만 한국인 멤버도 속해 있다.)

에스에프나인(SF9) ‘Tear drop’
‘질렀어’에 떨어뜨린 눈물 한 방울. 아련함과 섹시함이 황금비를 이루는 K팝 퍼포먼스의 정점.

맨 아이 트러스트(Men I Trust) < Untourable Album >
코로나라는 폐쇄적 상황이 낳은 발상의 전환. 안개처럼 자욱이 드리운 베이스는 답답할 수 밖에 없었던 2021년의 요약이다.

우주소녀 더 블랙(WJSN THE BLACK) ‘Easy’
절제할 줄 아는 블랙의 시크한 도발. 그래, 팬들이 원하는 유닛 활동은 이런 거지!

슝구조(Shungudzo) < I’m Not A Mother, But I Have Children >
평화적이면서도 격렬한 저항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체조 선수가 음악 위를 날아오르는 순간, 차별로 얼룩진 시스템이 희망차게 무너진다.

염동교’s Choice

닉 케이브 & 워런 엘리스(Nick Cave & Warren Ellis) ‘Hand of god’
그토록 섹시했던 목소리가 세월을 머금어 신성함을 드리운다.

음두 목타르(Mdou Moctar) ‘Afrique victime’
서방세계와 아프리카를 대륙 횡단하는 7분간의 기타 서사시.

아이스에이지(Iceage) < Seek Shelter >
과거의 자양분을 담뿍 흡수하고도 결코 고루하지 않다. 강력한 펑크(Punk) 기타와 절규에 빙벽이 쩍하고 갈라진다. 

아루지 아프탑(Arooj Aftab) < Vulture Prince >
포크와 재즈, 파키스탄의 에스닉까지 모두 합쳐 아루지 아프탑! 사막에 홀로 누워 검은 하늘을 바라보자 별이 우수수 떨어졌다.

스파크스(Sparks) < Annette (Cannes Edition – Selections From The Motion Picture Soundtrack) >
스파크스와 레오 카락스, 두 괴짜가 공유한 환상계. 처절하게 아름답다.

손기호’s Choice

마크 호미(Mach-Hommy) < Pray For Haiti >
‘자유의 나무는 다시 살아나 땅속 깊이 수많은 뿌리를 내리다.’ 아이티계 미국인 힙합 아티스트가 다시금 가꾸어낸 붐뱁이란 고목(槁木).

제이호 < Locals Only >
복잡한 일상 속 우연히 발견한 자연으로의 초대장. 호스트 제이호가 차린 느슨한 푸른색 휴식.

윤하 < Younha 6th Album ‘End Theory’ >
여행을 마친 혜성의 조각이 천체 곳곳에 찬란하게 새겨지다. 그동안의 고민이 헛되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 증명한 아티스트의 우주가 다시금 팽창한다. 

하트코어(HEARTCORE) < Heartcore >
훗날 국내 힙합의 심장 박동이 무뎌졌을 때 필요한 가장 힙한 심폐소생술.

디피알 이안(DPR IAN) < Moodswings In This Order >
타인의 온기를 받아들이자 그제야 드러난 깊은 상처. 세련된 ‘불안’이 이곳에 피어나다.

정수민’s Choice

엔시티 드림(NCT DREAM) ‘고래 (Dive into you)’
유니즌 코러스를 타고 청량함의 바다 속으로 풍덩!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 Fearless (Taylor’s Version) >
10대 시절을 오롯이 소유하기 위한 용기.

그리프(Griff) <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 >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정교한 프로덕션.

위클리(Weeekly) < We Play >
그립고도 환상적인 틴에이지 판타지.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 < Scaled And Icy >
파스텔 톤으로 덧칠한 팬데믹의 불안과 외로움.

김성욱’s Choice

웨더 스테이션(The Weather Station) < Ignorance >
이별이라는 고요한 숲 속에 흩뿌려진 포크 앙상블. 그곳의 날씨는 흐림.

오마이걸(OH MY GIRL) ‘Dun dun dance’
넥스트 레벨, 에이쎕, 그리고 던 던 댄스. 2021년에도 ‘또 물보라를 일으켜.’

블랙 키스(The Black Keys) < Delta Kream >
‘응답하라 힐 컨트리 블루스.’ 21세기를 대표하는 아메리칸 블루스 듀오의 뿌리를 찾아서.

워 온 드럭스(The War On Drugs) < I Don’t Live Here Anymore >
영혼을 파고드는 사운드스케이프. 사색의 결과로 연결한 하트랜드 록의 찬란한 계보.

불고기디스코(BULGOGIDISCO) < Discovid >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춤이 들어간다! 제발 숨 좀 쉬고 삽시다.

임동엽’s Choice

엘튼 존(Elton John) < The Lockdown Sessions >
엘튼 존 경(卿)을 존경하는 이유.

모네스킨(Måneskin) ‘Beggin”
고전을 들어야하는 이유.

창모(CHANGMO) ‘태지’
‘Meteor’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위켄드(Swedish House Mafia, The Weeknd) ‘Moth to a flame’
몰입. 음악에 빠져든 경험이 있는가.

존 바티스트(Jon Batiste) ‘I need you’
천재들은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가.

소승근’s Choice

브레이브걸스 ‘Fever (토요일 밤의 열기)’
‘치맛바람’에 날아간, 날렵하고 섹시한 2021년의 애시드 재즈. 해외 진출은 이 곡으로. 

브레이브걸스 ‘술버릇 (운전만해 그후)’
1980년대 유로 댄스와 프로듀싱 팀 스톡-에이드킨-워터맨 스타일의 댄스팝을 이식한 복고적인 어덜트 컨템포러리. 

얼라이븐 ‘시간을 건너 (Feat. 조하)’
히트곡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몰라도, 유명하지 않아도 듣기 좋은 노래는 늘 있어왔다. 

마시멜로, 조나스 브라더스(Marshmello, Jonas Brothers) ‘Leave before you love me’
위켄드를 많이 참고했어도 이렇게 좋은 노래라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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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이렇게도 조용한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었던가. 연말의 공연 열기로 뜨거워야 할 지금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속에도 이즘은 열의를 다해 2020년의 음악을 기록했다. 대망의 마지막 조각을 공개한다. 이즘 에디터의 취향이 담긴 에디터스 초이스. 주관적이지만, 그렇기에 솔직한 멤버들의 개성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나보자.

김도헌’s Choice

에비뉴 비트(Avenue Beat)
‘F2020 Remix’ (Feat. Jessie Reyez) 
바이럴, 틱톡, 스포티파이, 그리고 코로나. Lowkey Fuck 2020.

저드(Jerd) ‘문제아’
정제되지 않은 불온함. 더 많은 문제아들의 등장을 바라며.

코나(KONA) ‘눈치가 없다 (Snail) (Feat. Youra)’
좌우를 굼뜨게 살피는 달팽이 한 마리. 신속히 상하로 요동하는 분노. 자주 보게 될 이름. 

이브 튜머(Yves Tumor)
< Heaven to a Tortured Mind >
얼터너티브 블랙 뮤직. 모타운, 소울, 펑크(Funk), 재즈에 익스페리멘탈 버무린 ‘새 시대를 위한 가스펠(Gospel For A New Century)’.

수(Sault) < Untitled (Black Is) >
2020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한 편의 뮤직 다큐멘터리. 블랙의 정체성을 묻고 블랙을 고양하며 블랙을 어루만지는 현대의 성스러운 부족 의식.

박수진’s Choice

김제형 < 사치 >
내 가치관과 닮은 음반. 유쾌하고 진지하고 쉽고도 확실하다. 포크, 재즈, 뉴잭스윙 등을 신나게 오가는 앨범으로 어떤 곡을 들어도 다 제맛이 살아있다. 올해의 발견, 올해의 수확. 김제형을 찾아라 프로젝트의 선봉장에 서봅니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 ‘Underdog’
청량한 멜로디에 진한 위로가 담긴 가사. 넌 할 수 있다는 힘찬 메시지가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기대고 싶은 노래 기대고 싶은 목소리.

키디비 ‘오히려’
멋지다. 강하다. 키디비! 고난의 끝에서 이 갈지 않고 힘 빼며 풀어낸 자기 고백의 서사. 곡해 없이 알맹이만 봐도 전해지는 마음. 높고 자유롭게 날아올라라 키디비!

김일두 < 꿈 속 꿈 >
20살, 홍대의 한 라이브 클럽에서 흰색 반팔 차림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며 노래하던 그를 기억한다. 그땐 다가갈 수 없는 무섭기만 한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무뚝뚝한 김일두의 목소리에는 관조가 아닌 우직함이 있다. 인생이 묻어 있어 자꾸 찾게 되는 거친 맛. ‘뜨거운 불’ 추천합니다.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
< Soft Storm >
나른함과 여유. 재촉하지 않는 선율. 은근히 서려 있는 멜랑꼴리함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외로움. 밀어낼 수 없는 고독함이랄까. 아 취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음미하게 되는 선셋 롤러코스터만의 무드. 다가와 다가와 줘 베이비.

신현태’s Choice

로라 말링(Laura Marling)
< Song For Our Daughter >
단출한 구성과 멜로디, 노래를 부를 때 특유의 딕션과 호흡. 목소리 톤은 다르지만, 로라 말링은 우리가 사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여왕’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많이 닮아있다. ‘뉴 조니 미첼’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  

레몬 트윅스(The Lemon Twigs)
< Songs For The General Public > 
슈퍼트램프(Supertramp), 윙스(Wings)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다리오 형제는 근사한 팝을 써낼 줄 아는 듀오다. 앨범의 수록곡인 ‘Live in favor of tomorrow’는 개인적으로 뽑는 올해 최고의 싱글이다. 과거만(?)을 좇는 대디록 마니아들에게 몰표를 받을만하며, 평단의 찬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없다. 

테임 임팔라(Tame Impala) < The Slow Rush > 
견고함과 치밀함을 놓친 적이 없다. 등장과 현재까지 이토록 다양한 장르를 접목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다시금 출현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하지만 이 시대 록 패밀리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마저 들어 마음이 짠해진다. 

두아 리파(Dua Lipa)
< Club Future Nostaligia >  
나는 평생 록에 수절해온 해드뱅어다. 하지만 두아 리파는 상상속의 댄스 플로어에 올라가 디스코를 추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 Future Nostalgia >와 < Club Future Nostalgia >라는 이 연타로 록에 대한 지조를 지킬 수가 없게 한 것이다. 록 음악은 망했다.

데프톤스(Deftones) < Ohms >  
세기말 함께 트랜드를 함께 이끌던 동료 밴드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 다 망해서 이젠 없다. 어렵사리 목숨 부지하고 있더라도 대부분 산송장과도 같은 신세다. 모두가 데프톤스 같았다면 어땠을까. 꾸준하게 잘하는 것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숭고한 과업인지 보여주는 베테랑.  

임동엽’s Choice

브루스 혼스비(Bruce Hornsby)
< Non-Secure Connection >
몽환적이고 두터운 본 이베어식 터치와 브루스 혼스비의 간결한 사운드에 2020년을 구원받았다.

머쉬베놈 ‘보자보자’
시작은 밈(Meme)이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오방신과 ‘허송세월말어라’
앨범 커버부터 악기들의 톤, 보컬까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지만 이 맛깔나는 개성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하 ‘Dream of you (With R3HAB)’
듣는 순간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인트로부터 각 절을 지나 후렴에 다다를 때까지 매력으로 똘똘 뭉쳤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 Ordinary Man >
록은 죽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임선희’s Choice

5 세컨즈 오브 썸머(5 Seconds of Summer)
< Calm >
‘Youngblood’에 차분함 한 스푼 추가. 틴 에이지 감성에서 벗어나 살짝 내보이던 노련함이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올 한 해 내 플레이리스트를 점령한 앨범.

뉴 호프 클럽(New Hope Club) < New Hope Club >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산뜻한 멜로디와 발칙한 가사.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Willow’
두툼한 카디건의 온기가 버드나무 잎을 타고 잔잔하게 흐른다. 바람에 따라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 기둥 안에는 ‘But I come back stronger than a ‘90s trend(난 어떤 유행보다 더 강렬하게 돌아왔지)’와 같은 포부가 단단하게 서려 있다.

엔시티 드림(NCT Dream)
‘무대로 (Déjà Vu; 舞代路)’
반짝이는 에너지 가득한 청춘! 그리고 7드림이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최유리 < 동그라미 >
‘모질고 거친’ 사람의 마음을 매끈하게 다듬어 줄 노래. 때로는 건조한 위로가 더 마음을 일렁이게 하니까.

장준환’s Choice

이권형 < 터무니없는 스텝 >
여러 현의 물감으로 자욱하게 풀어낸 초현실의 세계.

그림자 공동체 < 동요 / 할시온의 관 >
서정성의 풀을 얇게 펴 바른 찬연하고도 덧없는 숨결.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 Magic Oneohtrix Point Never >
라디오 속 뿌연 주파수 너머, 시간의 패러독스를 포착하다.

댄 디콘(Dan Deacon) < Mystic Familiar >
13년 전, LCD 사운드시스템에게서 받은 감동의 재림! 총명한 빛을 내며 밀려오는 전자음의 파도.

100 겍스(100 gecs)
‘hand crushed by a mallet (Remix) (Feat. Fall Out Boy & Craig Owens & Nicole Dollanganger)’
온갖 기행과 우스갯소리로 뒤범벅된 기성 팝에 대한 종말 선언.

황선업’s Choice

옥상달빛 ‘어른처럼 생겼네’
유난히 힘들었던 2020년. 꾹꾹 담아뒀던 내 속마음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노래.

에이비티비(ABTB) ‘nightmare’
연주, 노래, 구성 등 어느 하나 나무데 것 없는 7분 49초의 완벽한 하드록 대서사시. ‘이런 곡을 만들어 낸 삶은 그래도 나름 성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비타(DeVita) < CRÈME >
과거의 것도 지금의 것도 이 둘을 섞은 것도 전부 잘한다. 단연 올해의 신인. 근데 왜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거야.

스트록스(The Strokes)
‘Brooklyn Bridge to Chorus’
이토록 섹시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키보드 위에 기타가 얹혀지는 순간 소름이 쫙.

미레이(milet) < eyes >
일본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작품. 일본음악 얕보지 마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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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현시대 트로트 열풍의 중심, 송가인을 이야기하다

< 프로듀스 101 >, < 쇼미 더 머니 > 등 오디션 예능이 연신 화제를 낳으며 방송 업계를 주도하는 가운데, 한 프로그램이 그 흐름에 탑승하며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2월 TV조선에서 방영된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 내일은 미스트롯>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다들 고개를 저었다. 주류 음악 시장에서 소외된 트로트를 다룬다는 점과 초호화 출연진에도 저조한 시청률로 마감한 엠넷의 < 트로트 엑스 > 선례를 보면 이들의 시도는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미스트롯은 최고 시청률 18.1%이라는 기록과 전국적 흥행을 일궈내며 TV조선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당당히 거듭나게 된다. 놀랍게도 이 모든 선입견과 판도를 뒤집은 건 단 한 명의 출연자에서 비롯되었다.

송가인, 어쩌면 그가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등장한 순간 트롯퀸의 운명은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간드러진 음색과 에너지를 넓게 피력하는 시원시원한 성량. 그의 노래에는 7~80년대의 트로트 시장을 회상시키는 기교와 직선적이고 담백한 목소리가 들어 있었으니, 다시 말해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귀에 감기는’ 옛 정서를 가진, 그리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촌스럽지 않은’ 디바가 나타난 것이다.

빼어난 실력을 갖춘 타 참가자 중에서 송가인이 단연 돋보인 이유는 아리랑으로 유명한 진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국악을 배웠다는 점이다. 기교와 고음 아래 단단히 자리하고 있는 진한 판소리의 향, 이것이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그가 얻는 폭발적인 인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恨)을 내포한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호소력과 애절한 울림, 사람들은 송가인의 노래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는다.

송가인이 발을 디디는 곳마다 전국 각지의 팬들이 그의 방문을 반기고, 심지어 그가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리모컨을 꺼내는 불편함을 감수한다. 게다가 지금껏 기술 발전에 뒤처진다 평가받던 중장년층을 두려움의 산물인 스마트폰으로 직접 스트리밍 군단을 만들게 하고, 아이돌 세력 못지않은 ‘어게인(Again)’이라는 대형 팬덤을 순식간에 형성시켰다. 사회적 신드롬이라 칭할 정도의 놀라운 영향력이다.

송가인을 기점으로 트로트 시장에는 거대한 파란이 일었다. 실제로 < 내일은 미스트롯>의 직계 후속작인 <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첫 방송부터 미스트롯의 기록인 5%를 훌쩍 넘은 12.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MBC의 < 놀면 뭐하니? >에서는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데뷔 과정을 그려낸 코너 ‘뽕포유’를 신설했다. 이미 업계는 트로트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발 빠르게 투자하고 있다. 바야흐로 트로트의 재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로트는 이렇게 높은 잠재력을 머금고 있음에도 왜 송가인 등장 전까지 힘을 쓰지 못했을까. 2000년대 초반을 돌아보자. 장윤정이 히트곡 ‘어머나’로 음악 차트에서 당당히 1위에 입성하며 당대 최고의 트로트 여가수로 등극했던 일이나, 길거리에서 초등학생들이 박현빈의 ‘샤방샤방’을 따라 부르던 일은 그 당시에는 당연한, 정말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분명 트로트는 뚜렷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혹자는 음악을 소비하는 주 세대가 교체되면서 트로트가 자연스럽게 사장되었다 보기도 한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론이다. 이는 최근 차트 추이를 봐도 짐작이 가능한데, 케이팝과 힙합이 큰 지분을 메꾸고 발라드나 록 음악이 곳곳에 배치된 양상이다.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의 장르가 시류에 맞게 형태를 바꾸거나 진화하며 생존을 유지한 반면, 트로트는 따라가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론 명맥을 이어 나가려는 사례는 있었다. 유명 스타 홍진영의 등장과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유행이 그 예시다. 다만 이 둘은 5~60대가 소비하던 흐름과 비교되는 대개 ‘흥’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기존 트로트 스타일인 심오한 가사와 느린 템포로 서서히 감정을 돋우는 방식과는 거리가 먼, 1990년대 이후 테크노와 댄스를 기점으로 변한 현대식 트로트의 접근법이다. 이러한 적용법은 다양한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어도 정통 트로트로서의 의의나 몰입도 면에서는 심히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기에, 완벽한 부활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퇴색되어 가던 트로트 시장에 불씨를 들고 나타난 송가인은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정통 트로트를 완벽히 계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구수한 사투리 입담을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적임자였다. 작금의 그는 스타를 넘어선 사회적 ‘상징’에 가깝다. 송가인은 5~60대에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주고, 식어버린 열정에 에너지를 공급해줄 원동력이다. 존재만으로도 힘을 잃어가던 중장년층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변자이자, 더는 숨지 않고 거리로 나올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는 인도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만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며 독보적 위치에 올라온 송가인도 그 생명력을 얼마나 유지할지 단언하기는 힘들다. 결국 그가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따낸 인정은 개인의 커리어가 아닌 가창으로 대중의 갈증을 해갈했다는 점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의 경우가 그렇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10연속 왕위 유지로 밴드는 창립 이래 엄청난 호황기를 누렸지만, 쇼가 끝난 뒤의 대중은 하현우의 실력에 대해서만 회자할 뿐, 뒤에 가려진 밴드의 수많은 곡은 기억하지 않는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송가인 또한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지금이 중요하다. 전 국민이 이름을 알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자 발판인 셈이다. 여느 아티스트보다 비옥한 토지 위에서 든든한 지지 세력을 업고 2019년 11월에 본인의 정규 1집 < 가인(佳人) >을 발매하며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다지기 시작한 송가인, 그가 후대에 길이 남을 거장이 될지, 혹은 그저 전국을 일주하는 행사 요정으로만 남을지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려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