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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환상의 나라’ (2021)

평가: 4/5

잔나비의 시작을 알린 < Monkey Hotel >(2016)은 청춘들의 씁쓸한 현실과 복잡한 감정을 익살과 함께 풀어낸 ‘놀이터’와도 같았다. 레트로 음악의 아날로그적 정취를 품으며 1970-1980년대 전설들의 음악을 레퍼런스 삼았던 소포모어 < 전설 >(2019)은 매니아틱한 그룹사운드에게 대중적인 히트곡을 만들어주었고 몇 번의 성공을 통한 안정감을 기반으로 이들은 그동안 꿈꾸었던 장대하고 화려한 형태의 음악 세계, < 환상의 나라 >로 향했다. 야심이 깃든 기획에 따라 재기발랄하게 뛰어놀던 시작을 지나 장엄한 관현악 연주와 판타지적 장치, 시적인 가사를 통해 다이내믹하고 세밀한 짜임새를 가진 시공간으로 규모를 확장한다.

도입부와 피날레를 명확히 구분했던 데뷔작과 같이 이번 음반 또한 여러 장의 막으로 이뤄진 한 편의 뮤지컬을 떠올리게 하는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한다. 1분 남짓의 인트로 곡 ‘환상의 나라’는 동화 같은 분위기의 현악기 연주와 함께 서막을 열며 지저귀는 새소리와 산뜻한 컨트리 풍의 멜로디로 흐름을 이어가는 ‘용맹한 발걸음이여’가 앨범의 주제의식을 내포한 내레이션과 함께 본격적인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잔나비가 꿈꾸었던 거대한 세계는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던 이들의 초심으로 돌아가 완성된다. ‘지오르보 대장과 구닥다리 영웅들’라는 부제를 덧붙이며 가상의 세계를 설정한 것은 1967년 비틀즈가 발매한 명작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를 떠오르게 하며 전설의 이름들을 외친 수록곡 ‘비틀 파워!’는 그들에 의한 영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재지한 멜로디의 연주를 이어가다 후반부에 빨리 감기의 형태로 템포를 극단적으로 전환하는 ‘로맨스의 왕’은 비슷한 구조를 가진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와 닮아 있다.

‘환상의 나라’라는 주제에 걸맞게 변화무쌍한 사운드와 톡톡 튀는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는 힘찬 드럼 연주가 이끄는 행진곡의 멜로디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용감한 발걸음이여’의 내레이션을 왜곡한 중반부, 그리고 경건한 송가의 형태로 마무리되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택한다. 왈츠풍의 단조로운 멜로디 위에 웅장한 마칭 밴드의 연주가 겹겹이 쌓이며 무게감을 더하는 ‘고백극장’은 외로움이라는 주제의 본질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내며 재미를 더한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악기들과 개성 넘치는 곡들의 변주가 혼을 쏙 빼놓지만 < 전설 >로 확립했던 잔나비의 대중적인 색깔 또한 놓치지 않는다. 타이틀곡 ‘외딴섬 로맨틱’은 대중이 가장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 가사의 청량한 발라드 곡이며 강한 여운을 가진 최정훈의 보컬을 통해 촌스럽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청춘의 사랑, 꿈을 향한 아름다운 열정과 같은 앨범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한 밴드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쉽게 실현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장중한 서사를 가진 콘셉트 앨범을 기획하며 한 걸음 도약을 위한 발판을 멋스럽게 구축한다. 특정 싱글에 임팩트를 부여하기보다는 내러티브의 유기적인 흐름을 견고하게 형성하며 싱글 단위로 곡을 소비하는 스트리밍의 시대에 한숨에 즐길 수 있는 앨범 단위의 청취를 제안했다. 요새 음악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낯선 문법을 취하면서도 아티스트와 함께 교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대중친화적인 음들의 향연도 놓치지 않으며 잔나비가 지휘하는 쇼의 무대로 대중을 끌어들인다.

– 수록곡 –
1. 환상의 나라
2. 용맹한 발걸음이여
3. 비틀 파워!
4. 고백극장
5. 로맨스의 왕
6.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
7. 소년 클레이 피전
8. 누구를 위한 노래였던가
9. 밤의 공원
10. 외딴섬 로맨틱
11. 블루버드, 스프레드 유어 윙스!
12. 굿바이 환상의 나라
13. 컴백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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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전설'(2019)

평가: 3/5

< 전설 >은 스트리밍 시대의 라디오 골든 팝이다. ‘세련된 촌스러움’이란 수식처럼 더 잔잔하고 부드러우며 영롱한 감성의 복원이다. 아날로그의 가장 마지막 세대인 1992년생 잔나비가 닮고 싶은 ‘전설’은 과거 FM 라디오 속, 아련한 시그널과 정겨운 디제이가 안내하던 197-80년대의 대중음악이다. ‘레트로’를 1980년대 힙합과 뉴웨이브, 시티팝으로 인식하는 최근 경향에서 여전히 흔한 시도는 아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디지털 세대에게 호응하는 것은 낯선 매력 덕이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이영훈과 이문세, 유재하의 문법으로 여리게 세공한 이 곡은 < 응답하라 1988 >, 아이유의 < 꽃갈피 >로만 알고 있던 1980년대 발라드를 친절히 소개한다. 가사를 인용하자면, 세련된 코드워크와 예쁜 멜로디가 ‘스윽 훑고’ 가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그 시절 좋은 노래다. 디지털 시대에 생소하고도 새로운, 오래된 감성의 힘을 발휘했다.

작품 전체로도 계승, 특히 1970년대 사색의 시대를 재해석하는 개념이 짙다. 차분한 건반의 주도 아래 후렴부로 감정을 고조하는 ‘나의 기쁨 나의 노래’에선 사이먼 앤 가펑클과 랜디 뉴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깔끔한 밴드 사운드와 스트링 세션을 거쳐 신비로운 코러스를 전개하는 ‘투게더!’ 역시 1970년대 소프트 록 플레이리스트의 잔향으로 가득하다. ‘우리 애는요’의 천진한 리듬은 엘튼 존과 워렌 제번의 이름 아래 있고 잔잔한 어쿠스틱 트랙 ‘신나는 잠’은 제임스 테일러를 닮았다.

여러 전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잔나비의 이름은 흐릿하다. 일관된 구성을 갖되 개별 곡의 밀도 역시 놓지 않았던 < Monkey Hotel >에 비해 메시지는 모호하고 선율의 감도도 낮다. 전체 앨범의 결은 돋보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지 않고 정적인 아우라만 부유한다. 결정력의 부재는 밴드보다 밴드가 닮고 싶어 하는 뮤지션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투게더!’는 더 치고 나가야 할 부분에서 팔세토(가성) 보컬이 나서고 ‘조이풀 조이풀’은 인상적인 도입부를 받치는 장치로 핵심 선율 대신 스트링 세션과 풍성한 코러스를 택한다. 차분한 기타 리프와 보컬 라인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그치는 ‘거울’, 밀도 있는 연주를 만들어두고 ‘넋두리’라 표현한 가벼운 보컬과 메시지를 배치한 ‘나쁜 꿈’도 단점을 공유한다. 추구하는 음악이 팀의 음악보다 앞서면서 개성이 약해졌다.

다행히 밴드는 좋은 곡을 쓸 수 있는 팀이다. 레퍼런스에 갇힌 여러 노래에 비해 장치 없이 멜로디와 메시지에 집중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꿈과 책과 힘과 벽’은 잔나비의 이름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껏 부풀린 사운드 위 선 굵은 연주와 보컬을 각인하는 ‘전설’도 모범적이다.

앨범은 본인들을 음악의 길로 이끈 올드팝, 대중음악에 바치는 헌사다. 고전에 대한 존경과 레트로 마니아의 바람직한 자세가 어우러져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즘 음악의 지위를 확보했다. 빈티지의 가치는 충분히 확인했으니, 전설의 그림자에 가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전설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질 때다.

-수록곡 –

  1. 나의 기쁨 나의 노래 (Intro)
  2. 투게더!
  3. 조이풀 조이풀
  4. 거울
  5. 우리 애는요
  6. Dolmaro
  7. 전설
  8.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9. 신나는 잠
  10. 나쁜 꿈
  11. 새 어둠 새 눈
  12. 꿈과 책과 힘과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