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매한 이들의 EP < Kill My Doubt >의 타이틀 곡이다. 데뷔 이래 줄곧 내세워 왔던 ‘달라달라’, ‘Wananabe’, ‘Sneakers’ 등의 당당함,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이번 활동까지 무난히 이어진다. “케이크를 왕하고 베어 먹으며 세상일을 쉽게 해치워 버리자”는 경쾌한 외침 사이 통통 튀는 브라스 세션, 귀를 잡아끄는 ‘케이크’라는 단어가 반복되며 노래의 강렬한 한방을 남기려 한다.
담백한 구조로 핵심 메시지를 전하려는 와중, 서로 다른 질감을 맞붙인 멜로디가 어딘가 성긴 빈틈을 만든다. 트와이스 활동 궤적에 큰 공을 세운 블랙아이드필승이 곡의 진두지휘를 맡았으나 되려 엔믹스의 ‘Love me like this’, ‘O.O’와 같은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은 살아 있으나 다가가는 재료인 음악이 심심하다. 케이크란 비유에 덧댄 가사보다 노래의 힘이 더 강했어야 한다.
올여름 나왔던 < Checkmate > EP에 이어 운율을 맞춰 나온 새 미니 앨범 < Cheshire >의 타이틀 곡이다. 멜로디를 각인시키는 도입부와 시원하게 내지르며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후렴구가 곡의 진행을 선도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혼자 앞서 나간다는 의미에 가깝다. 인트로의 선율은 쉽게 다가오지 않고, 힘이 잔뜩 들어간 코러스는 둔탁한 리듬과 고음만을 강조한다.
관심 있게 들어야 할 부분은 보컬이다. 기존에는 리듬 뒤에서 가벼운 음색으로 음악을 보조했다면 여기서는 진득하고 단단한 톤의 목소리가 노래를 주도한다. 앞서 언급한 후렴의 고음이 양날의 검처럼 작용한 이유다. 있지만의 음악을 듣는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변화지만,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멜로디가 없다는 데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든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를 딛고 일어난 국내 문화계가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동시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되고 삶은 흘러가니까.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스플래시와 함께 2022년 가요계를 돌아본다.
배신 또는 오해, 표절 논란 시작은 유희열이었다. ‘생활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관련 의혹이 빠른 속도로 불거졌다. 그가 작곡한 성시경의 ‘Happy birthday to you’, < 무한도전 > 가요제 프로젝트 곡인 ‘Please don’t go my girl’ 등도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무진 등 여러 뮤지션에게 표절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2022년 상반기는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레퍼런스’나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반론도 곳곳에서 등장했고, 논란을 조회수 삼으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 다소 억지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도 나타났다. 예술의 특성상 문제를 깔끔하게 종결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표절’이라는 키워드가 모두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돌아온 페스티벌과 공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공연 문화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택트 공연 등 대체 수단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서울 재즈 페스티벌부터 인천 펜타포트, 부산 록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고, 빌리 아일리시와 잭 화이트를 비롯해 여러 굵직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졌다. 풀리지 않은 규제로 마스크의 답답함은 있었으나 열정과 사랑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예열과 시동 단계일 테지만, 억눌렀던 마음만큼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렌드의 중심이 된 1990년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19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펑크(Funk) 열풍은 2020년대 본격적인 폭발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팝 펑크(Pop Punk)다. 2021년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를 주축으로 영미권의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이끈 장르의 재부흥을 K팝 또한 재빠르게 수용했다.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와 최예나의 ‘Smiley’, 우즈(WOODZ)의 ‘난 너 없이’ 등이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이모(Emo) 감성을 일부 벤치마킹한 비주얼을 내세웠다. 정점은 단연 (여자)아이들의 ‘Tomboy’. 앨라니스 모리셋 등 록 여성 뮤지션의 정신을 받아들여 매혹적인 팝 선율, 거침없는 펑크(Punk)의 태도를 모두 끌어안았다. 음원에는 삭제된 욕설까지 함께 소리치던 대학 축제 풍경은 화끈함의 극치였다.
가지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나갔다. 아이브의 ‘After like’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 리듬을 기반 삼았고, 뉴진스의 ‘Attention’과 ‘Cookie’는 비슷한 시기의 힙합과 알앤비 장르를 채택했다. 큰 유행이 된 Y2K 콘셉트를 여러 팀이 전격 채택한 것은 덤. 윤하의 ‘사건이 지평선’이 역주행한 원인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2000년대 초 TV 만화 채널을 추억하는 젊은 층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1990년대생의 문화가 차츰 향수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는 현상을 음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인드 셋, 거장의 귀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음악에서는 그렇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돌아오면서 오랜 세월 쌓은 관록만큼이나 식지 않은 에너지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먼저 꾸준한 바이닐과 시티팝 유행에 힘입어 5월에는 빛과 소금이 2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 Here We Go >를 발표했다. ‘공유’의 시대를 거슬러 음악을 ‘소유’하려는 자연적인 수요와 맞닿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송골매 또한 ‘열망’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며 기성세대 못지않게 젊은 세대까지 관객석으로 초대했다. 7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인천 공연까지 성행하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업계에서도 컴백은 이어졌다. KBS의 < 불후의 명곡 >이 2012년 은퇴 선언을 했던 패티김을 초청해 3부에 걸쳐 특집을 꾸렸고, 그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 또한 TV조선의 러브콜을 받아 데뷔 63주년 기념 특별 공연을 개최했고, MBN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심수봉을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가왕’은 ‘가왕’. 조용필이 스무 번째 정규 앨범의 예고편으로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선보인 데에 이어 KSPO 돔에서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혀 늙지 않은 음악으로 돌아온 그, ‘영원한 오빠’ 수식어는 2020년대에도 공고했다. ‘물리적 나이보다 마인드 셋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느껴본다. 어찌 보면 키워드는 ‘귀환’이 아니라 ‘소통’이다.
여성 아이돌 르네상스 엠넷 < 프로듀스 > 시리즈의 성공 이후 여러 그룹이 팀 단위보다는 개별 멤버 위주의 팬덤 구축과 세계화에 힘을 서서히 쏟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세계관’과 가끔 난해하기도 한 콘셉트에 여성 아이돌이 예전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돌아온 2022년 걸그룹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Love dive’와 ‘After like’를 연속 히트시킨 아이브가 선두 주자로 올라선 가운데 같은 아이즈원 파생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초 여러 논란을 딛고 ‘Antifragile’을 흥행에 성공시키며 재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남다른 방식으로 첫선을 보인 뉴진스 또한 ‘Attention’과 ‘Hype boy’로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세 자리를 놓고 전투를 벌였다. 스테이씨의 ‘Run 2 u’, 있지의 ‘Sneakers’,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Nxde’ 등 신세대 걸그룹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바쁜 1년이었다.
선배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으로 클래식 샘플링 트렌드를 이끌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한편 블랙핑크는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모두 올라 글로벌 시장 점령을 이어 나갔다. 트와이스의 나연은 숏폼 플랫폼에서 안무 챌린지를 적극 활용해 첫 솔로 싱글 ‘Pop!’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Forever 1’으로 15주년을 풍성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와 7년 만에 다시 모인 카라까지, 신예들과 익숙한 이름의 공존에 2022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에 반해 타겟층이 일반 대중에서 구매력이 높은 팬덤으로 많이 기울어진 남성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싱글 차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소비자층이 세분화됨에 따라 ‘국민가수’나 ‘국민가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애초에 보이그룹의 목표가 공연이나 음반으로 옮겨간 지도 오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보이그룹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꺾이지 않는 장기 지배, 힙합 정권 40년 얼마 전, 요즘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한다면 남학생들은 지코의 ‘새삥’ 챌린지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힙합이 이제 하나의 별종이 아니라 굳건한 주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올해 무려 열한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 쇼미더머니 >와 여러 밴드가 나선 경연 프로그램 <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의 시청률 차이만 봐도 명확하다. 해외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도권은 힙합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타고 본격 유입을 겪은 힙합/알앤비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넓히며 세력을 키웠다. 비오의 ‘Love me’,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 그리고 크러쉬의 ‘Rush hour’ 등 차트에는 아직도 여러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록 페스티벌의 부활 사이 함께 돌아온 대구 힙합 페스티벌까지, 어느덧 익숙해진 힙합 강국의 면모다.
BTS 병역 논란 엄밀히 말하면 ‘가요’계 사건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가 올 한 해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다. 국위선양의 공로를 높게 사 병역 면제를 논하는 입장과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며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유승준과 MC몽 등 남성 뮤지션의 입대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른 문제였다.
사안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끝을 맺었다. 맏형인 진이 12월 13일 최전방인 연천 지역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 같은 날 솔로곡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던 멤버 슈가는 어깨 수술을 근거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멤버들의 계획은 아직 미정이나 그룹 활동의 중단 이후 여러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개인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른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와 엮이며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까지 나왔던 주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성별과 세대 갈등까지 연결되는 두 글자, ‘군대’. 그러나 병역이 아직까지 ‘의무’인 국가에서 이를 일종의 ‘형벌’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 100분 토론 >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에게서 기억되고,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특혜’ 아닐까.
사각지대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티스트 착취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뉴스에서 떠오른 헤드라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11인조 보이그룹 오메가엑스의 갑질 피해 소식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멤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이 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온갖 피해 내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코로나19 감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무대를 섰다는 사실, 온갖 폭언과 협박 내역이 밝혀졌다.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한때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승기 또한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에게서 음원 수익을 전혀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언론에 드러났다. ‘적자 가수’라는 비하 발언을 했던 대표는 현재 수익 횡령 의혹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창 여러 방송에서 활약 중인 가수 츄가 소속 그룹 이달의 소녀에서 강제로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중립적인 언어로 계약 해지 사실을 밝혔던 여러 선례에 비하면 ‘제명’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 블록베리 엔터테인먼트의 글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반박되며 나머지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계약 해지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퍼진 사이, 1월로 예정된 그룹의 컴백 소식이 갑작스레 공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
한때 범람했던 가요계 계약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음악과 뮤지션이 돈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착잡함을 안긴다. 정녕 음악이 순수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을까, 바란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조금 더 깨끗하고 공정한 음악 산업 소식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현재 K팝 씬에서 두각을 보이는 신진 그룹들은 모든 멤버가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 아이돌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신세대 아이돌은 숏폼 콘텐츠와 메타버스, 스토리텔링으로 꽉 찬 노랫말을 활용해 더 다양하게 K팝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전략과 정체성으로 Z세대의 지지를 받는 8팀을 소개한다. 이들을 통해서 아이돌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에 국한되지 않는 변칙적인 K팝의 미래를 아래 그룹들을 통해 그려보자. 아이돌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신세대의 시대정신과 대중음악의 흐름을 모두 담은 이 기민함에 있다.
에스파 (æspa) SM에서 6년 만에 내놓은 신인 걸그룹의 화제성 위에 메타버스 세계관이 기름을 부었다. 에스파는 멤버들의 이름 앞에 아이(ae)를 붙인 4명의 아바타를 포함한 8인조 그룹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를 증명하듯 데뷔 직전 공개한 ‘MY, KARINA’ 영상에서 멤버 카리나는 아이-카리나와 대칭으로 앉아 대화하며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어려운 세계관은 노랫말에 녹아들어 대중에게 주입한다. 데뷔곡 ‘Black mamba’의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라는 가사는 온라인에서 두 자아를 대비하는 밈(Meme)으로 유명해져 그룹의 이름을 알렸다.
에스파는 세계관이 가진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과 춤의 무게를 덜었다. 영화 < 분노의 질주 : 홉스 & 쇼 >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Next Level’은 ‘I’m on the next level’이라는 가사를 쫀득하게 발음하여 듣는 재미를 더했고 디귿 춤 같은 독특한 포인트 안무가 쇼트폼 콘텐츠에서 돌풍을 일으켜 음원차트를 역주행해 1위에 올랐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에스파는 더욱 공격적인 기세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메타버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그룹은 최근 발매한 ‘Savage’을 통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트와이스의 ‘Cheer up’, ‘TT’ 등을 만든 프로듀서 블랙 아이드 필승이 6인조 걸그룹 스테이씨를 기획했다. 히트메이커가 만든 팀이라는 타이틀과 가수 박남정의 딸이자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박시은이 속했다는 사실로 데뷔 전부터 이목을 모았으나 확실한 임팩트를 남긴 것은 두 번째 싱글 ‘ASAP’이다. ‘ASAP 내 반쪽 아니 완전 카피’라는 중독적인 후렴구와 귀여운 ‘꾹꾹이 춤’이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챌린지로 급부상하며 뒷심을 발휘한 덕분.
최근 발매한 ‘색안경‘의 ‘난 좀 다른 여자인데 / 겉은 화려해도 아직 두려운 걸’과 같은 가사는 수동적인 소녀상을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강한 10대를 지향하는 팀은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요’라며 거침없는 자기표현으로 답습을 거부한다. 꾸밈없는 모습은 오히려 소녀의 생기발랄함으로 충만하다. 어떤 틀에도 끼워 맞출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Z세대가 스테이씨의 ‘틴 프레시’에 열광하는 이유다.
– 추천곡: ‘ASAP’, ‘색안경’, ‘So bad’, ‘Slow down’
위클리 (Weeekly)
학창 시절의 향수는 그 어떤 추억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K팝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 역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때에 대한 그리움과 맞닿아 있지만 2020년에 데뷔한 7인조 걸그룹 위클리는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되풀이되는 교복 컨셉트와 거리가 멀다. ‘언니’를 외치며 성인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내는 이들은 교복 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은 Z세대 여학생이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서 특정인을 부르거나 언급할 때 사용하는 태그(@) 기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Tag me’, 2000년대 초반 하이틴 록을 따르는 ‘Zig zag’와 ‘After school’ 등 활기 가득한 음악은 기존 걸그룹의 이미지를 빗겨나간다. 책걸상, 큐브, 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댄스컬 역시 교실 마냥 왁자지껄하다. 올해 초 발매한 ‘After school’은 쇼트폼 콘텐츠에서 10대에게 인기를 얻으며 스트리밍 플랫폼의 바이럴 차트 1위에 올랐다. ‘틴 크러시‘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대신 ’위드 틴‘을 지향하는 위클리는 윗세대의 향수와 또래의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세대를 이어준다.
– 추천곡: ‘‘After school’, ‘Zig zag’, ‘나비 동화’, ‘언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XT)
시작부터 특별했다. 방탄소년단의 동생 그룹으로 주목받은 다섯 소년은 신스팝, 뉴잭스윙 등 복고적인 음악과 청량한 기조를 내세우며 선배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대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하위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어린 연령의 팬덤과 북미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판타지 소설 < 해리 포터 >를 활용한 두 번째 타이틀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의 컨셉트와 가사, 장르 소설 스타일의 긴 제목은 K팝에 관심 없는 이들도 기억할 만큼 독특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격동기를 담은 세계관은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음악적 변화의 정당성까지 확립한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그린 < 꿈이 장 > 시리즈에서 밝은 분위기를 이어오던 이들은 올해 발매한 < 혼란의 장 > 시리즈에서 록 사운드로 비일상적인 세계를 깨고 나와 현실과 마주한 소년의 혼란을 표현했다. 빈틈없는 기획으로 짜인 밑그림을 따라 움직이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선배와 다른 방식으로 같은 미래를 좇고 있다.
– 추천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0X1=Lovesong’, ‘Blue orangeade’, ‘Angel or devil’
에이티즈 (Ateez)
연습생 시절 케이큐 펠라즈(KQ Fellaz)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콘텐츠를 선보였던 에이티즈를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빌보드의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이 ‘포스트 BTS’로 꼽은 8인조 그룹은 웅장한 퍼포먼스로 팬층을 형성했다. 또 블락비, 비에이피, 방탄소년단 등을 따라 힙합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은 팀이 가진 역동성마저도 담고 있다.
비투비의 ‘아름답고도 아프구나’를 쓴 이든이 팀의 프로듀싱을 전담하고 있으며 멤버들의 적극적인 작업 참여도 음악과 퍼포먼스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 일조한다. 더해서 음반의 상호유기적인 구성과 ‘해적왕’, ‘Wave‘, ‘Neverland‘ 등 해적 컨셉트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이들의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실력과 확실한 음악색으로 밀고 나가는 에이티즈의 기세는 어떤 외부적인 힘에도 기대지 않기에 더 강력하다.
– 추천곡: ‘Deja vu’, ‘Wave’, ‘Neverland’, ‘Answer’
있지 (ITZY)
있지는 ‘예쁘기만 한 애들과는 달라’라고 어필하며 데뷔했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다른 그룹과 다르지 않은 댄스곡, 걸크러시 컨셉트로 성공한 이들이 어딘가 남다르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후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입증하는 과정 역시 순탄했다. 쿨한 매력의 ‘Icy’, 자존감을 고취하는 ‘Wannabe’, 당돌한 사랑을 담은 ‘Not shy’까지 이들은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스타성을 강조하는 JYP 걸그룹 전통에 ‘힙’을 더해 여성들의 워너비를 자처했다.
차별성을 전면에 내세운 팀이 팬 위주의 K팝 씬에서 여전히 대중성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음악은 힙합, 하우스, 뭄바톤 등 대중적인 장르를 혼합했으며 ‘마.피.아. In the morning‘의 캣우먼 이미지는 기성 걸그룹을 따른다. 그런데도 특유의 에너지와 파급력이 있지라는 이름을 내세울 만한 근거를 형성한다. 뻔뻔함과 당당함이 매력적인 이들은 남들과 다르고 싶지만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도 않은 Z세대의 이중적인 면을 닮았다.
– 추천곡: ‘Loco’, ‘달라달라’, ‘Not shy’, ‘Nobody like you’
스트레이 키즈 (Stray Kids)
동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JYP 7인조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초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국내 K팝 팬들조차 데뷔곡 ‘Hellevator’의 반항기 어린 심오함과 ‘부작용’에서 계속 되뇌는 ‘머리 아프다’라는 직관적인 가사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 심상치 않은 해외 인기 지표를 보이던 이들은 일명 ‘마라맛 K팝’이라고 불리는 ‘神메뉴’를 발매하며 국내 입지를 넓혔다. 파워풀한 EDM 사운드와 음악을 신의 요리에 비유한 가사가 그룹의 유쾌한 매력을 성공적으로 어필한 결과다.
이 독특한 정체성은 팀 내 프로듀싱 그룹 쓰리라차(3RACHA)로부터 나왔다. 힙합과 EDM을 좋아하는 세 멤버는 연습생 때부터 함께 작업하며 그룹의 음악적 기둥으로 성장해 올해 엠넷에서 방영된 < 킹덤 : 레전더리 워 >의 우승까지 견인했다. 스트레이 키즈는 최근 발매한 ‘소리꾼’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며 K팝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퉤 퉤 퉤’하는 ‘소리꾼‘의 가사가 대중에게 개성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 이들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 추천곡: ‘소리꾼’, ‘神메뉴’, ‘Back door’, ‘청사진’
더보이즈 (THE BOYZ)
2017년 데뷔 이후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더보이즈는 작년 엠넷에서 방영된 < 로드 투 킹덤 > 출연으로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밀도 있는 기획을 바탕으로 360도 스테이지를 활용한 이들의 무대는 카메라의 시선이지만 맨눈으로 보는 듯 깊은 몰입을 유도했다. 그 결과 11인조 그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1위를 거머쥐며 무관중 퍼포먼스의 본보기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룹 이름에는 그 어떤 수식어도 없다. 더보이즈는 그저 소년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소화하며 팀의 신선함을 유지한다. < 로드 투 킹덤 >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태민의 ‘괴도’ 커버 무대를 벤치마킹한 ‘The stealer’의 퍼포먼스는 감탄을 자아내고 최근 발매한 ‘Thrill ride는 끌리는 멜로디의 청량감으로 가볍게 접근한다. 매번 새로운 전략과 이미지를 선보이는 더보이즈의 성장기는 소년만화 한 편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달라달라’로 쾌조의 출발을 알렸던 있지의 여정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난해한 사운드로 글로벌 시장을 노렸던 ‘Not shy’부터 조금씩 경로를 이탈하더니 주체적이고 당당한 ‘나’에서 ‘마피아’라는 특정 타자로 분했던 < Guess Who >에서는 방향의 좌표마저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룹을 지탱해 온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혼돈의 시기에 내놓는 첫 정규앨범은 정체된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이는 결과물이다.
전작의 혹평을 만회하기 위한 정공법으로 초심을 택했다. 그룹의 대표곡 ‘달라달라’와 ‘Wannabe’를 탄생시킨 별들의 전쟁과 다시 손을 잡고 힙합, 라틴, 뭄바톤이 합쳐진 화려한 사운드로 성공 공식을 또 한 번 따르고자 한다. 타이틀곡 ‘Loco’는 히트곡의 형태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뽕끼 어린 멜로디가 후렴구에 등장하며 몰입을 떨어뜨린다. 한껏 미쳐야 하는 곡이지만 튀는 구간 없이 안전하게 흘러가는 구성을 취해 저돌적인 메시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
타이틀곡이 끊은 불안정한 시작은 무던한 수록곡들의 전개를 통해 여유를 되찾는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떠오르는 기분 좋은 멜로디의 틴 팝 ‘Sooo lucky’는 있지를 상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며 벅차오르는 리듬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효과까지 살린다. 몽환적인 건반 연주에 호소력 짙은 보컬을 조명한 ‘Love is’, 이매진 드래곤스의 ‘Thunder’를 연상시키는 톡톡 튀는 박자감의 ‘Chillin’ chillin’’ 등 산뜻한 기운을 지닌 곡들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밝은 팝 장르에서의 소화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남에도 전작에 이어 여전히 힙합에 포커스를 둔다. 미국 여성 래퍼 사위티(Saweetie)의 ‘Best friend’와 비슷한 ‘Swipe’는 틱톡에서 인기를 끌 법한 사운드의 전형에 가깝고 ‘#Twenty’는 빠른 템포의 트랩 비트와 래핑이 엉성한 조화를 이룬다. 한마디로 전문 래퍼가 아닌 멤버들의 어색한 랩과 곡이 부조화를 일으킨다. Z세대 다운 솔직한 가사로 위트를 더했지만 소재의 재미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남들보다 일찍 맞이한 성공은 이른 성장통이 되어 돌아왔다. 당당한 틴프레시 이미지를 기반으로 발랄한 댄스 음악을 넘어 스펙트럼의 확장을 시도했으나 그룹에게 맞아떨어지는 해답은 여전히 탐색 상태에 놓여있다. 향후 안정적인 포지셔닝을 위해 강박적으로 콘셉트와 장르 변화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정한 틀에 이들을 끼워 맞추려는 행보는 오히려 그룹의 색깔을 가리고 있다. 그룹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난 나야’가 자연스럽게 돋보일 때, 있지는 진정으로 미칠 수 있다.
– 수록곡 – 1. Loco 2. Swipe 3. Sooo lucky 4. #Twenty 5. B[oo]m-boxx 6. Gas me up 7. Love is 8. Chillin’ chillin’ 9. Mirror 10. Loco (English ver.) 11. 달라달라 (Inst.) 12. Icy (Inst.) 13. Wannabe (Inst.) 14. Not shy (Inst.) 15. 마.피.아. In the morning (Inst.) 16. Loco (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