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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 인터뷰

선우정아의 음악적 역량은 넓다. 그는 감정의 폭을 노래로 정확히 그려내는 보컬리스트이자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자기 것을 진두지휘 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중 가수와의 협업도 많다. 투애니원, 아이유, 토이 등과 함께 작업했고 최근에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 복면가왕 >, < 놀면 뭐하니 >, < 사운드 오브 뮤직 : 음악의 탄생 >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는 결코 대중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다. 음악에 담긴 솔직함 덕택이다. 연일 바쁘게 작업실과 공연장을 오가는 와중 얼마 전 그의 정규 3집 < Serenade >가 발매됐다. 대외적인 성공과 별개로 음반의 속내를 열어보니 짙고 어두운, 때로는 외롭기까지 한 그의 현재가 담겨 있었다. 유난히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17일. 홍대의 이즘 사무실에서 그에게 그 감정들의 원인을 물었다. 답변은 ‘나’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6년 이즘 인터뷰 이후 3년 반 만에 다시 만났다. 바뀐 게 있다면?
방송을 많이 하게 됐고 주류 미디어에 노출도 많이 됐다. (원치 않았는데 생긴 것도 있느냐 물으니) 감사하게도 많지 않은 거 같다. 단순하고 금방 사라진 불만들은 조금 있지만 오래 붙잡아두고 아파할 고민들이 (지금 당장은) 없다. 감사할 일이다.

요즘 활동 궤적만 놓고 보면 완전한 상승세다. 그런데 발매된 음반 < Serenade >는 주저하고 아파하는 선우정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웃음) 나도 내가 왜 이런 걸까 스스로에게 많이 질문한다. 일도 잘 되고 좋은 무대에도 자주 서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고 불안한 걸까? 고민을 곱씹어 보며 내가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계속 꿈꾸고 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여기서 오는 마찰도 종종 느낀다.

그런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정규 2집 < It’s Okay, Dear >의 밝은 분위기와 상당히 대조되기도 하는데.
시쳇말로 이번 작품에 더 꼬여있는 내가 담겨 있다. 원래 앨범 제목도 세레나데가 아니었다. 음반 작업을 시작하면서 내 안에 얽히고설켜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고 그런 쪽의 우울한 모습을 숨김없이 표현하려고 했었다. 그러던 중 ‘Serenade’를 완성했다. 이곡을 다 만들고 가사, 멜로디 등을 보니 오히려 새롭게 환기시킬 지점들이 보이더라. 그래서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조금 더 밝게 끌어왔다. 결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밝고 어두움의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돌입한 시기는 언제인가?
‘쌤쌤’을 쓰면서부터였으니 2019년 1월쯤이다. 그 노래를 만들고 ‘이제 정규 3집을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사실 내게 미발매 곡들이 정말 많다. ‘배신’, ‘생애’ 등은 20대 초, 중반에 적은 노래다. 그렇게 일기장 쓰듯 쌓인 것들이 많았고 아까 말했듯 그 안에는 정말 개인적인 아프고 외로운 소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작품은 ‘나’, ‘선우정아’에서 출발해 결국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으로 향했다. 발매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발매’한 거다.

수록곡이 많은 이유는 뭔가?
이번 음반의 첫 번째 규율은 ‘수록곡을 많이 넣자’ 였다. 내가 내 곡에 대한 집착이 좀 있다. (웃음) 내 노래들을 내가 너무 사랑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활동하는데 있어서 선우정아의 것에 역으로 갇히는 경우도 있고 한계에 젖어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아웃풋이 있어야 새로운 인풋도 생기지 않나. 나의 일부를 털어내고 싶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해소가 필요했다.

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사람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곡을 하나만 뽑는다면?
‘Serenade’다. 음반에서 유일하게 남을 위해 썼다. (웃음) 30대가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비슷한 위치에 있던 친구들과 서 있는 계단, 활동하는 공간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누군가에 비해 빨리 조명을 받은 것도 있고 또 그러다보니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든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사람도 “그냥 모두 다 잘 잤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반대로 완전히 개인적인 곡도 궁금하다.
살면서 아주 가끔씩 빠져나올 수 없게 우울해질 때가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긴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잠도 못자고 마음도 푸석한 게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정말 횡설수설 하다가 끝이 났다. 근데 또 역설적으로 그 인터뷰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차라리 내 꾸며진 모습을 대중이 좋아해줬다면 심적으로 편했을 텐데 나의 꺼내고 싶지 않은 빈틈이 보여 졌을 때 누군가가 열광한다는 게 솔직히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Interview’에 그때 느낀 감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늘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죽어라고 열심히 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려 하려했고 ‘저 다 잘해요’ 하며 칭찬을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갈구했다. (웃음) 특히 20대 때 그런 나쁜 열정이 정점을 찍었는데 그래서 힘든 것도 있었고 또 그래서 성장한 부분도 있었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
나쁘게 표현하면 회피형 인간이다. (웃음) (이유를 묻자) 내가 겁이 많다. ‘To zero’를 들어보면 안다. 살다보면 상처와 잡음들을 우리가 껴안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이고 져야할 때가 있다. 그건 싫은데 그렇다고 만남을 그르칠 수도 없고 그냥 우리 서로의 좋은 점만 기억하며 헤어지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상상하다가 그 노래를 썼다.

콜라보도 회피한 건가? 대중 활동이 많아졌으니 자연스레 한 두곡쯤 피처링을 쓸 줄 알았다.
내가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내가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는 건 견딜 수 없다. 내가 미련한 거다. 하하하. 그래도 꼭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넣었을 꺼다. 다만 이번 음반은 시작점 자체가 내 내면의 깊은 한 구석에 찍혀있어 단독으로 가는 게 나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완전 내 이야기, 해보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실컷 해보자 하며 혼자 꾸렸다.

음악 안에 담긴 자신 만의 이야기. 바로 거기에서 대중들이 열광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내 큰 욕심 중 하나도 이와 비슷하다.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 전하기. 감사하게도 공연을 하면 다양한 나이대의 분들이 현장을 찾아와 준다. 얼마 전에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10대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있었고. 그럴 때면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나 싶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더 진실 되게 노래를 쓰고 부르려 노력 중이다.

작곡가로서의 행보도 놓칠 수 없다. 최근 아이유를 필두로 이문세, 박정현 등 다른 뮤지션들에게 곡을 많이 주고 있는데 내 곡과 타인의 곡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솔직함의 정도 차에 따라 나뉘는 것 같다. 정규 1집 < Masstige >를 발매하고 본격적으로 내 생각들을 곡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언제나 솔직하게, 부끄러움까지 솔직하게 적자는 것이었다. 노래를 완성해보면 ‘아 이건 100% 선우정아의 스토리다’ 혹은 아니다 하는 게 느껴진다. 내 연대기에서 비켜나가는 건 내가 직접 불러도 맛이 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다른 적임자에 양보한다. 때로는 포기의 미덕도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면 데뷔 작 < Masstige >에 가장 선우정아 색이 없다.
1집을 발매했을 때가 21살 22살 즈음이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앨범을 내자고 하니까 일단 시작했고 그러면서 휘뚜루마뚜루 휩쓸린 것도 많았다. 그 앨범을 내고 7년 정도 (웃으며) 수행을 했다. 크고 작은 공연도 많이 하고 다채로운 음악도 많이 시도했다. 어떻게 보면 그 긴 무명의 시간이 오늘 내 음악의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그렇게 이번 정규 3집까지 왔다. 음악적 지향점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나?
앞으로 내가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잘 가고 있는 지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다. 한 가지, 감사한 상황인 건 확실하다. 이번 < Serenade >만 보더라도 작업적인 것에서의 아쉬움이 (당연히) 있다. 언제나 최상의 완벽함은 불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2019년의 선우정아 그 자체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뿌듯하다. 재밌었고 즐거웠고 시원했다. 내가 이 음반으로 받은 위로가 음악을 듣는 여러분들에게도 잘 전해진다면 더 바랄게 없다.

2020년의 선우정아는?
대중 예술은 늘 어렵다. 돈을 받고 음악을 만든다. 혹은 음악을 만들고 돈을 번다는 구조 자체에서 어떤 딜레마를 느낀다. 그래도 내 작품을 통해 선우정아라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흔들리며 살고 있구나 보여주며 위로를 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받아왔으니 주는 방법도 내게 온 것처럼 나갈 수밖에 없다. 재밌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준비 중이다. 녹슬지 않고 자주 찾아 오겠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박수진, 장준환, 손기호
사진 : 김도헌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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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호 인터뷰

2010년대 말 시티팝의 유행은 하나의 큰 성과를 남겼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과거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을 젊은 세대에게 ‘레전드’로 각인한 것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과거의 이름과 곡을 발굴하며 잊힌 전설들을 다시금 무대로 소환했다. 김현철, 윤상, 윤수일의 이름이 십 대와 이십 대 음악 팬들 사이에서 오르내린다.

빛과 소금은 그 흐름 속에서도 단연 인기다. 불세출의 스테디셀러 ‘샴푸의 요정’의 멜로디를 어렴풋이 기억하던 팬들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위 ‘한국 감성이 아닌’ 빛과 소금의 음악에 감탄하며 음악을 찾고 LP 판을 앞다투어 구매하고 있다. < 나는 가수다 >의 자문 위원으로 장기호를 알던 어린 마니아들은 이제 그가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초대 멤버, 1989년 1집을 발표한 빛과 소금의 중추, 솔로 커리어 장기호밴드와 KIO(키오)를 전개한 레전드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안다.

작년 12월 27일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함께 오랜만에 박성식과 빛과 소금의 이름으로 함께한 < Reunion > 앨범 역시 화제였다. 고 전태관의 기일에 맞춰 과거 동지들에게 바치는 음악은 제목 그대로 오랜 음악 팬들에겐 ‘동창회’이자 ‘오래된 친구’,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건넨, 반가운 인사였다. 여느 때보다 더욱 현재의 이름으로 호흡하고 있는 그는 “솔로 활동기엔 장기호의 색채를 짙게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빛과 소금 활동을 통해선 같이 늙어가는, 추억을 먹고사는 세대를 위해 대중적 감각을 더할 계획이다”라 설명했다.

시티팝 유행으로 젊은 음악 팬들의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봄여름가을겨울과의 콜라보레이션도 화제다.
나 혼자보단 나와 박성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더 주목받은 것 같다. 지난해 12월 27일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 사실 놀랐다. 100여 명 넘는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 가요계에선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을 들어보고 빛과 소금의 음악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서로가 주장,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그 원하는 바를 조화롭게 만들지 못했고.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음악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련된 화성과 선율을 강조했다면, 당시의 봄여름가을겨울은 드럼과 기타의 리드미컬한 록 스타일에 가깝다.

물론 음악 말고도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박성식의 학업 문제도 있었고, 김현식이 건강 문제로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자 음악을 그만두려 했던 내 상황도 있었다. 당시 김현식 없는 봄여름가을겨울은 엔진 없는 자동차라 생각했다. 이후 김종진이 봄여름가을겨울 첫 앨범에서 김현식을 대신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현식의 3집을 만들 때 추천 받은 인물이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 그리고 장기호다. 박성식은 초기 멤버가 아닌 것으로 안다.
원래 시작 멤버는 위 멤버가 맞다. 당시 박성식은 군 복무 중이었다. 당시 나와 김종진, 전태관은 김수철의 작은 거인에서 1개월 정도 활동 중이었다. 그때 김현식은 ‘돌개바람’이라는 클럽 밴드와 함께 새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 나와 이야기하면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김종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고한 전태관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30여 년을 함께 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정말 실력 있는 대중음악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아이덴티티 확보에 실패했다면 대중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김종진과 봄여름가을겨울은 정체성 확보에 성공한 밴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33년 만에 함께하여 전태관의 기일에 맞춰 새 앨범을 발표했다. 협업해보니 어떤가.
음악을 만들 때 집중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테크닉 적인 부분에서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다 소용없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 모두의 추억을 위해 의기투합하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음악적 욕심보다 음악을 통한 공감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어덜트 컨템포러리 사운드 창출에 집중했다.

그룹 활동 이후 KIO(키오), 장기호 밴드 활동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때의 활동은 예술 대학 전임 교수로 14년을 재직하며 만든 기록이다. 예술 대학 학생이면 그 또래 중에선 그래도 가장 잘하는 친구들 아닌가.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감을 주어야겠다, 교수로서 “교육적 가치가 담긴 음악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 Chagall Out Of Town > 시리즈에는 당시 수업시간에 가르치던 내용이 집약 되어있다. 학생들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대중 지향적 취향에선 멀어졌다.

빛과 소금으로 함께 했지만 일각에서는 장기호와 박성식의 콜라보레이션 역시 낯설다는 반응이 있다.
박성식도 나도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함께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물리적으로 그 친구는 천안에, 나는 서울에 있었다. 둘째로 시간의 문제다. 교수는 방학이라고 스케줄을 자유로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셋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제한된 상황에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내가 만들던 음악들은 대중 취향 저격용이 아니고 홍보가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보니 투자비용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은 늘 새로운 빛과 소금의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변명이다.

박성식은 불세출의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만든 히트 작곡가다. 그렇다면 장기호의 걸작은 ‘샴푸의 요정’인가.
잘 모르겠다. (웃음)’비처럼 음악처럼’만큼 메가톤 히트를 기록한 건 아니지 않나. 다만 ‘비처럼 음악처럼’이 한번 크게 터졌다면, ‘샴푸의 요정’은 세월에 걸쳐 여러 번 히트했다고 본다.

현재 ‘샴푸의 요정’은 젊은 음악 팬들이 시티팝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곡으로 자리를 굳혔다. 1989년 당시에도 록의 주류 문법과 거리를 두고 있던 세련된 음악이었다. ‘가객’ 김현식과 ‘가왕’ 조용필과도 달랐다. 빛과 소금의 음악에선 한국인의 ‘뽕’, 대중적 멜로디는 물론 세련된 서구의 스타일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별종’이었다.

장기호는 당시 문화부, 연예부 기자들의 질문을 회상하며 “‘빛과 소금의 음악으로 어떻게 대중을 설득할 거냐’는 이야기를 늘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후배 가수들이 ‘샴푸의 요정’을 리메이크했고, 젊은 친구들에 의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라며 곡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샴푸의 요정’을 곧 타임리스(Timeless)한 음악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표현해주니 감사하다. ‘타임리스’ 음악을 위해 갖춰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늘 생각한다. 바로 음악적 정체성과 예술적 완성도다. 팝 음악들 중에는 세대를 거슬러 계속 불려지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라는 음악들이 있다. 그런 곡들은 공통적으로 음악가들의 선명한 정체성과 튼튼한 음악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재즈와 펑크(Funk)의 느낌이 더 들어갔다면 빛과 소금은 한국의 스틸리 댄(Steely Dan)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틸리 댄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팀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주와 편곡, 그야말로 도널드 페이건의 완벽주의를 소리로 듣는 듯하다. 스틸리 댄은 분명 재즈 정신이 깃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인 사운드보다 계산된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나도 같은 맥락의 음악을 추구한다. 물론 그 정도 음악을 만들려면 개인 음악공부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사회, 문화적 배경과 지식, 경험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국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스틸리 댄의 스타일과 감성을 한국에서 처음 구현한 곡이 바로 ‘샴푸의 요정’이다.
대가 중의 대가 스틸리 댄과 빛과 소금의 비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곡의 주 멜로디는 동요와 다를 바가 없다(웃음). 쉬운 멜로디지만 그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적 배경인 어레인지먼트, 프로듀싱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음악 유학을 떠난 것도 그 영역을 더 광범위하게 공부하고 싶어 서였다.

1989년 빛과 소금의 첫 앨범을 다시 들었다. 장기호가 쓴 노래, ‘샴푸의 요정’과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요’, ‘그대 떠난 뒤’ 등을 들으며 문득 ‘왜 장기호는 유재하처럼 되지 못했나’하는 아쉬움이 컸다.
생전 유재하와 밤새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추구하는 음악 방향도, 서로 갖고 있던 CD도 너무 비슷해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대중의 눈높이와 감성 저격에 눈을 늦게 뜬 것 같다. 그러나 해외 관계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 번은 < Chagall Out Of Town > 앨범을 홍보하던 PD가 일본의 한 프로듀서에게 음반을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관계자가 놀라워하며 ‘한국에 이런 아티스트가 있었나.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와 콜라보를 계획하겠다’며 이력서를 받아간 적도 있다.

향후 음악 활동에 대한 계획은.
올해 빛과 소금 30주년이다. 빛과 소금의 새로운 음악이 담긴 미니앨범을 구상 중이다. 그리고 최근 발표한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 의 미니앨범으로 당분간은 김종진과의 3인조 체제로도 갈 것 같다.(대중의 요구가 관건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김종진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사실 나는 그동안 실용음악 교육에 전념하느라 오랜 기간 연주를 하지 않았고’ 다시 무대에 서겠다’는 계획은 거의 접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종진의 미니앨범 제의가 나에게 다시 음악활동을 생각하게 하는 점화가 되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합하면 6명이다. 김현식, 유재하, 나, 박성식, 김종진, 전태관, 그중 세 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하늘나라에 있는 현식 형, 재하, 태관이에게 음악을 통해 우리들의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그게 서로에게 상당한 공감대를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종진이가 제작총괄 역할로 굉장히 애를 썼다. 연습이 완료되면 다양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공연과 방송은 물론 우리의 음악이 필요로 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려 마음먹고 있다.

시티팝에 빠진 음악 팬들은 1980년대 경제 호황기의 낭만과 희망을 그리워한다. 장기호는 그때를 “그래도 뭔가 될 것 같아 보이던 때”라 회상했다. 2020년대를 맞이하는 지금은 위기다. 음악인들의 삶은 ‘비정규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불안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빛과 소금과 같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레전드 아티스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쁘다. 젊은 친구들에겐 존경할만한 선배가 필요하다!”라며 그들의 컴백을 환영했다.

‘존경할만한 선배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맞는 말이다. 나 에게도 존경하는 음악선배들이 있었기에 여기 까지 온 것 같다. 다만 세대가 바뀌면서 음악적 존경의 패러다임이 바뀐 건 아닐까, 이런 우려도 든다. 우리 때 중요하게 여겼던 음악의 요소들이 현재는 크게 관심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완성도의 차원만 놓고 봤을 때 과거 빛과 소금의 음악이 펜티엄 컴퓨터라면, 지금은 오히려 단순한 386세대로 회귀한 기분이 든다.

‘386과 펜티엄’의 비유가 재미있다.
요즘 음악은 복잡한 내용이 별로 없는, 기계로 치면 기능이 단순한 기계로 음악을 찍어내는 것 같다. 면적은 넓어졌지만 깊이는 깊지 않은 느낌이다. 예전에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공부를 해야만 풀 수 있는 퍼즐이 있었다. 토토(Toto) 같은 밴드의 음악을 귀동냥으로, 컴퓨터로 재현할 수 있겠나. 그들의 퀄리티를 어느 정도라도 따라가기 위해선 그들만큼 공부하고 경험하고 각고의 음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을 하나의 언어라 생각하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비유한 것이다.

그럼에도 빛과 소금의 이름을 2020년대 다시 꺼낸 것은 바로 그 젊은 세대 아닌가. ‘좋은 음악’의 기준은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019년 서울 레코드 페어에 빛과 소금의 앨범을 모두 LP로 복각하여 한정 판매를 한 적이 있다. 30년이 지난 오래된 음반을 구입한 대부분은 20대 젊은이였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현재의 젊은 청소년들에게도 30년 전 빛과 소금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는 사실에 그동안 음악 했던 보람을 느낀다. 물론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문화가 바뀌는 상황에서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도 어느 정도 바뀐다고 본다. 그러나 음악 본질적인 차원에서 논한다면 명곡은 언제 어느 시대에도 명곡으로 남는다. 그건 진리다. 지금 레트로 라는 단어가 다가오고 있다. 다시 빛과 소금의 시대가 오면 좋겠다.

‘샴푸의 요정’은 물론 최근 ‘디깅클럽서울’ 등 1980년대 가요 리메이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몇 곡은 들어봤다. 원곡을 능가한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다. 원곡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했다. 지난해 후배 가수들이 ‘샴푸의 요정’을 많이 리메이크하지 않았나. 모두 본인들의 음악적 감각과 개성으로 해석을 잘 해냈지만, 곡의 핵심에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개인적 견해다. 그 중에도 유일하게 나의 의도를 꿰뚫어 본 곡이 하나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시도했던 데이브레이크의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리메이크다.

언급한 대로 젊은 음악가들은 기술적으로는 향상되었으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 나는 가수다 > 자문위원장 시절 많이 언급했던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가수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인데, 가창력이 좋다고 늘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반대로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고 본다. 소위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짜 최고의 가수, 또는 아티스트는 어떤 면에서 타고나는 것 같다. 음악 프로듀서들은 그런 면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장기호에게 빛과 소금의 의미는.
빛과 소금은… 나의 내면이 담긴 음악 세계를 나의 음악 언어로 풀어내는 매개체이며 그열매다. 처음 팀을 결성할 땐 ‘대중음악 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취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만들자는 목표를 삼았다. 비록 대중적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그러나 빛과 소금이 음악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이상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과 임무를 다 해 내리라 믿는다.

‘나의 음악’, 다시 말해 ‘Me’ 음악을 이어나간 것이 결국 빛과 소금의 성공 요인 아닐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떤 특별한 소리에 민감했던 것 같다. 나의 귀를 건드리고 갔던 거의 모든 음악의 공통점이 있었다. 멜로디와 하모니의 오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후기 낭만적 기법에 민감했던 것 같다. 낭만기의 음악들은 대부분 회화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어떤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마력이 내재되어있는 음악이다. 그런 음악적 효과를 대중음악에 함축하려는 나의 시도는 분명하다. 그래서 유학기간 동안 오히려 후기 낭만기와 현대 음악에 더 깊이 관심을 가졌다.

1993년 빛과 소금의 3집에 수록된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에서 박성식이 쇼팽의 프렐류드를 연주한 것도 낭만주의적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학 시절 공부하며 그 낭만주의 음악이론의 계보가 이미 다 정리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이유로 빛과 소금의 음악에선 크로매티시즘(반음계기법) 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반음계적인 기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주요한 기법인 듯하다. 아직도 나는 이 부분에 관련된 음악이나 이론 공부를 하고 있다. 미래의 빛과 소금의 음악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음악 선생님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추천할 음악을 소개해달라.
나는 클래식, 팝 재즈, 현대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편이지만 대중적 관점에서 볼 때에 추천할 만한 음악들은 브라질의 이반 린스(Ivan Lins)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다. 보사노바 재즈의 강렬한 로맨티시즘을 동경했다. 이를 미국적 정서로 담아낸 아티스트가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다. 한국에선 ‘Antonio’s song’으로 유명하지만, < Abandoned garden > 같은 앨범은 꼭 들어봐야 한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세상을 떠난 뒤의 음악세계”를 ‘버려진 정원’으로 비유하다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브레드, 아메리카, 토토, 스티비 원더도 나의 쏭라이팅 관점에서의 연구대상이다.

프로듀싱, 작, 편곡 적 차원에서 비교적 완성도와 창의력이 높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퀸시 존스의 ‘Ai no corrida’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
알 자로의 ‘Breakin away’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After the love has gone’
세르지오 멘데스의 ‘Never gonna let you go’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 etc..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선희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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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YB 인터뷰

작년 10월. YB의 정규 10집이 발매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풍향을 따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밴드로 성장하고 연이어 2003년 정규 6집 < YB Stream >의 수록곡 ‘잊을게’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그들은 이후 17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노래를 쌓았고 음악적 변화를 일궈왔다. 신보 < Twilight State >에는 이러한 이들의 에너지와 세간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은 영특한 장르의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연륜 있는 메시지와 연주가 번뜩였다.

시기는 조금 늦었지만 지난주 화요일 영등포 근처의 한 카페에서 YB의 다섯 멤버 윤도현(보컬), 박태희(베이스), 허준(기타), 김진원(드럼), 스캇 할로웰(기타)를 만났다. 이제 두 자릿수로 접어든 디스코그래피의 소회를 물으니 보컬 윤도현은 멋쩍게 웃으며 “이 음반으로 만든 음악적 성과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앨범을 통해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단 거다. YB의 히스토리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6년에 걸쳐 탄생한 정규 음반의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와 어느덧 데뷔 26주년을 맞이한 그들의 우여곡절을 공개한다.

○정규 10집, “터널을 지나자 길이 보이더라!”

10집 < Twilight State > 발매를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가?
도현 : 10은 의미를 담아야만 하는 숫자 같다. 근데 사실 그걸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놓고 나니까 그제서야 ‘아, 우리가 이렇게 10집을 냈구나’ 싶었다. (웃음)

진원 : 레드 제플린이 음반 라이센스를 9장까지 내고 지미 페이지가 편집 음반으로 10집까지 만들었다. 그러니까 드러머 존 본햄이 살아있을 때를 기준으로 모든 멤버가 함께 한 건 9장이다. 우리도 정규 2집 (YB가 정식 밴드로 구성을 갖춘 건 2집부터였다 -편집자)부터 이제 딱 9장을 낸 거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레드 제플린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들과 같은 기간 동안 음반 활동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만감이 교차한다.

허준 : 나는 지금껏 작품을 만들며 이번이 제일 재밌었다. 그냥 과정 자체가 좋았다. 물론 즐겁지만은 않았겠지만 그 전과 비교해봤을 때 훨씬 즐기며 음악을 만들었다. 그동안 앨범을 만들며 조금씩 배워왔던 것들이 있지 않나. 그것들을 통해 머릿속에 있는 사운드를 실제로 구현해가는 과정을 직접 느꼈다. 너무 즐거웠다.

태희의 소감도 궁금하다.
태희 : 난 우리가 지금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래를 만들고 쌓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터널을 지나고 나니까 수월해지더라.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분명 만족스럽지 않은 지점이 생길 테니까 과감하게 밀어붙이자. 여기가 마지노선이다.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미끄럼틀을 탄 듯 흘러내려 갔다. 

그때가 언제 즈음인가?
태희 : 2019년 1, 2월쯤이었다. 마지막 음반 < Reel Impulse >(2013)을 내고 4, 5년은 정말 힘들었다. 노래는 많은데 잘 뭉쳐지지 않으니까. 그러다 2018년 겨울에 도현이 산에 들어갔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랬기에 이번 앨범을 최종적으로 완성할 수 있던 거 같다.

산에 들어갔다고?
도현 :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겨울이면 많은 밴드들이 한창 투어를 할 때다. 일부러 그 시기를 골라 산으로 갔다. 투어 등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 하면 안 된다 하면서 정말 이를 물고 곡을 쓰고 편곡을 했다. 그때 아마 한 100여 개쯤 노래가 있었는데 정말 열심히 추리고 추려 13개의 수록곡을 골랐다. (웃음)

결과물에는 만족하나? 
태희 : 최선을 다했다. 1, 2개의 타이틀로 앨범 전체의 성격을 보여줄 수 없어 위험한 줄 알면서도 타이틀을 3개로 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후회는 없다. (프로듀서인 윤도현과 마찰은 없었냐는 질문에) 좋게 말하면 좋은 프로듀서였다. 하하하 (일동 웃음)

도현 : 프로듀싱도 프로듀싱이지만 믹싱 하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톤 스튜디오의 김대성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친구는 예전부터 쭉 록을 만지던 사람이다. 그러다 요즘은 먹고 사는 게 그렇듯 가요부터 록까지 일이 들어오는 대로 다 하더라. 사실 대성은 YB 1집부터 어시스트 엔지니어였다. 우리와는 각별한 사이인데 바빠도 너무 바쁘니 이번에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 이런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소주 한잔하면서 얘기했다. 그랬더니 “10집인데 내가 목숨 걸고 하겠다” 하더라. 그렇게 다시 뭉쳤다.

본격적으로 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기존 인기곡이었던 ‘박하사탕’, ‘잊을게’ 등이 넓은 의미에서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았다면 이번 수록곡은 더욱 개인적인 면모가 많이 느껴진다.
도현 :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하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거창한 주제보다는 ‘사람의 감정’에 치중해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감정을 통해 시대를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걸 잘 표현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설명을 조금 더 이어준다면?
도현 : ‘생일’ 이란 수록곡은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전에는 이러한 위로가 어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배경 삼아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나 자신의 감정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적인 가사를 느꼈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생일’의 ‘벗어나지 못하는 이 사막의 중심에서 /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꺼라고 말했다 / 그러자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라는 가사가 참 매력적이다.
도현 : 이응준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내 마음과 같다고 느꼈다.

특히 이번 음반은 YB의 분투가 느껴진다. 앞서 말한 이응준 시인과의 협업은 물론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록 그룹 스매싱 펌킨스의 제프 슈뢰더(Jeff Schroeder)가 기타 연주로 앨범에 참여(‘야간마차’)하기도 했다. 또한 다국적 밴드로 한차례 유명세를 치른 슈퍼올가니즘의 소울 역시 첫 곡 ‘딴짓거리’에 피처링으로 합류했다. 26년이란 관록의 활동 속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려 하는 이들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편집자 

독특하게도 이번 음반에 타이틀이 3개다. 그중 하나는 YB의 히트곡 제조기(‘나는 나비’를 만들었다 -편집자) 태희의 작품인데.
태희 : ‘나는 상수역이 좋다’를 썼다. 앨범에는 6번째 트랙에 위치 하긴 하지만 최종 수록곡으로 묶인 건 맨 마지막이었다. 솔직히 내게 1970년대 아저씨 정서가 있다. 뭐, 내 나이가 있으니까 당연한 거다. 그런 면에서 이 곡이 최종 선발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회사와 멤버들이 잘 봐준 거 같다. (웃음)

멤버들에게 물어보자. 타이틀로 뽑은 이유가 무엇인가?
진원 : 앞서 말했듯, 이번 음반은 한두 곡으로 전체 앨범을 규정할 수 없다. 태희의 곡을 타이틀로 밀어붙인 건 과거 ‘나는 나비’가 그랬듯 이 곡이 가진 편안함과 대중성 때문이었다. 또 다른 대표곡 ‘생일’이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파워풀한 에너지를 건넬 수 있는 노래였다면 슈퍼 올가니즘의 소울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딴짓거리’는 진화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곡이다. 주제를 두고 묶기보다는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려는 마음이 컸다.

그럼 허준이 좋아하는 가장 꽂힌 곡은 무엇인가?
허준 : 워낙 만들 때 공을 많이 들여 그런지 지금은 대부분 다 좋은 거 같다. (그래도 하나만 꼽아 달라고 했더니) 공연했을 때 가장 좋은 건 ‘반딧불 … 그 슬픔에 대한 질문’이다. (웃음) 

○올해의 목표? “공연. 뮤지션과의 생생한 에너지 교감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공연 얘기를 좀 해보자. 이번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 후기가 엄청나다.
도현: 한 번도 음반 안에 있는 전곡을 연주한 적이 없다. 무대에서 완전 처음 선보이는 12개의 곡을 연달아 들려 드렸고 그 사이사이 히트곡도 넣었다. 그래서 더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웃음)

며칠 전 영동대로 공연(2020년 새해 카운트다운 공연으로 YB만 유일한 록 그룹이었다 –편집자)은 또 어땠나. 현장 반응이 정말 좋던데.
도현 : 앞뒤로 다 아이돌, 래퍼여서 그랬는지 현장에서 사람들이 더 반겨준 게 있었다. 록 밴드가 생방송 무대에 선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특히 감사했던 건 히트곡 말고 이번 음반의 수록곡인 ‘Jumping to you’, ‘나는 상수역이 좋다’와 같은 신곡도 함께 따라 즐겨주셨다는 거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통해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또 한 번의 확신을 얻었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를 이어줄 밴드가 바로 YB라고 생각한다. 
도현 : 나도 딸이 있고 애들이 요즘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떻게 음악을 향유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회를 열어주는 것뿐이다. YB를 충분히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도 공연 현장을 왔다 가면 생생한 라이브가 주는 그 에너지에서 느끼는 게 많은 것 같다. 이번 우리 앨범 발매 공연만 보더라도 연령 분포가 20대에서 40대까지 고르게 퍼져있다. 10대도 꽤 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나라 록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나? 
도현 : 록 음악 시장이 어렵다고들 이야기하는데 필드에 있는 입장에서는 (늘 그래 와서 인지) 특히 요즘이 더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든다. 물론 나도 트렌드가 힙합이나 아이돌에 치우쳐 있다는 건 느낀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밴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걸 보면 무조건 덮어두고 침체는 아닌 것 같다. 경제적으로 기울 때가 많고 그런 부분에서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록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까지 부정할 순 없는 것 같다. 당장 YB의 10집만 봐도 매스컴의 주목이 부족했다. 
도현 :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다. 음반을 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우리가 대중음악신과 거리감이 있다는 걸 살갗 근처에서 느꼈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서운함이 있기도 했다. (웃음) 그럼에도 우리 음반을 들어준 한 명, 아니 두 명, 아니 세 명, 네 명의 분들이 이 작품을 정말 집중도 있게 감상하고 내려준 고마운 리뷰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넓은 관심을 받진 못하지만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잘 만들었다, 잘 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는 건 뭘까?
도현 : 공연. 조금 아까도 부사장님과 진지하게 얘기했다. 올해는 작은 곳, 큰 곳 가리지 않고 단독 공연을 많이 할 예정이다. 생각해보니 활동하면서 클럽 투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더라. 그래서 지난 연말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2020년 공연 대관을 다 마쳤다. 지방의 작은 클럽까지 직접 돌아다닐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달라. (웃음)

○26주년, “YB의 히스토리는 계속된다”

YB가 활동한 지 벌써 26주년이 됐다. 가장 자랑스러운 곡을 하나 뽑는다면?
도현 : 범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곡이 아닐까? ‘나는 나비’. 우리를 대표하는 곡이다.

진원 : 지금은 신보의 ‘야간마차’가 제일 좋다. (예전 앨범까지 포함해 골라 달라고 하니) 너무 많아 못 정하겠다. 유명하고 팬들이 좋아해 주는 곡을 대표곡이라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커리어를 통틀어 내 마음에 가장 잘 들어오는 노래는 그런 우열순위를 통해 나눌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지금만 보자. (웃음) 난 ‘야간마차’다.

허준 : ‘박하사탕’. 내가 막 밴드에 들어와 낸 첫 번째 음반 < An Urbanite >(2001)의 수록곡이다. 연주한 지 오래됐는데 연주할 때마다 새롭고 늘 더 공들여 소리 내게 된다.

끝으로 태희와 스캇의 픽은 무엇인가?
태희 : 글쎄… 오늘 무대에서 부를 노래가 가장 좋은 곡인 거 같다. 이번에 10집을 내면서 느낀 건 어제의 노래는 우리한테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무대에서 연주할 곡이 언제나 베스트다.

지금 무대에 선다고 가정하고 고른다면?
태희 : 그건 내가 정할 수 없다. (일동 웃음) 멤버들이랑 함께 정하는 거다. 곡들이 저마다 다 흐름을 타고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비’도 ‘박하사탕’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고, ‘박하사탕’도 1집 < 가을 우체국 앞에서 >(1994)의 ‘임진강’ 같은 내면의 고통에 주목한 노래 없이 탄생할 수 없었을 거다. 아까 진원의 말대로 한 곡만 뽑기는 너무 어렵다. 

스캇 : 나는 밴드 밖에서 곡을 들었을 때와 내가 직접 연주했을 때, 이 2가지로 나눠 곡을 정해 봤다. 한국에서 처음 본 YB 공연에서 ‘잊을게’를 들었다. 그때 그 곡이 연주되는 광경과 멜로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하드록을 좋아하는 록 키드 출신으로 ‘정글의 법칙’이 가진 시원함을 좋아한다. 연주할 때마다 늘 푹 빠진다. 내 선곡은 이 두 개다. ‘잊을게’와 ‘정글의 법칙’.

‘잊을게’는 인기가 많았던 반면 우려도 컸던 싱글로 기억된다.
도현 : 이게 (윤)일상의 곡이다. 그때는 정말 밴드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 강했던 때다. 우리 뿐만 아니라 팬들도 그랬다. 그랬는데 작곡가의 곡을 받는다고?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지. (웃음). 더군다나 당시의 나는 윤일상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커리어를 보니까 댄스 음악부터 대중적인 곡을 많이 썼던데 그러니까 더 반항심이 들고 이질감이 생기더라. 사장님이 곡은 받아왔지 녹음은 해야 하지. 하기 싫은 티 팍팍 내며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렇게 레코딩을 했다.

그래도 반응이 정말 좋았다.
도현 : 음반을 내자마자 그 곡이 터졌다. 거의 이효리의 ’10 minutes’와 맞붙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래서 더 오랜 시간 일상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노래니 자연스레 무대에서 부르기도 많이 불렀는데 그때마다 일상이 떠올랐다.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고맙게도 이해해주더라. 10년 묵은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2002년 ‘오 필승 코리아’로 주류 밴드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원 : 앞서 스캇이 말했던 ‘정글 스토리’의 음반이 1996년 6월에 나왔고 그 전에 도현이 1집이 1994년도에 발매됐다. 이후 < 한국 록 다시 부르기 >로 살짝 주목 받은 게 1999년이니까 오래 걸리긴 했다. (웃음)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정규 10집이다. 음악적 성과가 있다면 뭘까?
도현 : 음악적 성과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만 직시한다. 그래도 굳이 성과를 꼽자면 이 앨범을 통해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단 거다. YB의 히스토리는 계속된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박수진, 임선희, 임동엽 
정리 : 박수진
사진 : 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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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유열 인터뷰

음악부터 영화까지, 2019년의 젊은 세대들에게 복고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패션, 음악, 영상 등 ‘옛 것’을 꺼내고 동시에 재해석한다. 8월 28일 개봉한 영화 < 유열의 음악앨범 >도 그 복고 열풍을 기록하는 대표적인 콘텐츠. 하지만 영화 < 유열의 음악앨범 >이 있기 전에,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이 있었다.

1986년 제10회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유열은 이후 ‘이별이래’, ‘가을비’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확실히 각인한 건 1994년 KBS 라디오 ‘음악앨범’의 DJ가 되면서부터다. 2007년 4월 마이크를 놓기까지, 대중은 재치 있는 언변과 감미로운 목소리로 13년 동안 아침을 열었던 유열의 목소리에 울고 웃었다. 그 목소리의 향수가 < 유열의 음악앨범 >으로 다시 살아났고, 잠들었던 가수 역시 8월 ‘내 하나뿐인 그대’를 발표하며 복귀를 알렸다.

여전한 청춘을 살고있는 그 시절의 DJ, 유열을 만났다. 누구보다 뜨거웠고 투명했던 ‘순수’가 유열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냈다.

< 유열의 음악앨범 >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기분이 어떤가. 
차분하죠. 새로운 시간들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그런지
한동안 쉼의 시간이 넉넉하게 있었고, 그 쉬는 시간 동안 많은 걸 돌아봤습니다. < 유열의 음악밸범 >은 아주 큰 선물이죠. ‘내 하나뿐인 그대’ 녹음이 끝나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가장 크게 깨달은 건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였습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고 힘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과정에서 분명히 배우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유열의 음악앨범 > 영화화 소식은 언제 처음 들었나. 
작년 봄이었습니다. 놀랐죠.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감사했습니다. 동시에 그 시간이 영화로 담긴다는 게 의미 깊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도 < 유열의 음악앨범 > 작가였던 이숙연 작가였던 터라 스토리를 자세히 보기도 전에 믿음부터 갔습니다. 라디오가 배경이 된 영화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시나리오 속 곳곳에 그 요소가 녹아 들어가 있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유열이 생각하는 < 유열의 음악앨범 > 핵심은 무엇인가? 
영화 속 한 장면을 볼까요. 주인공 현우(정해인 분)가 친구와 싸운뒤 은자(김국희 분)의 수제비집을 갑니다. 나중에 미수(김고은 분)은자가 미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혼잣말하듯이 “내가 저를 믿는다고 했었대. 나는 기억도 잘 못 하는데.”라는 대사를 남기죠. 그 장면을 보며 ‘사랑도, 사람도 믿음으로 세워진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사람이 믿어준다는 그 가치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요.

개인적으로 영화 감상평을 남겨본다면. 
여백이 많고 대사가 함축 되어있는 모습이 좋더라구요. 스토리가 중간중간 빠르게 전환되는 데, 어떤 분들께서는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힘을 다 빼고 그 중간 중간 여백을 보고 있자니 참 좋았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많은 것을 찾을 수 있는 영화랄까요. 막 가져다주지는 않는 작품이지요. (웃음)

배우들도 연기를 너무 잘했고, 영화 음악도 효과적으로 잘 배치됐다. 
극에 ‘처음사랑’이 나오는데요, 전혀 의견 준 적이 없었습니다(웃음). 어느 날 영화사에서 저의 곡을 넣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 곡이 ‘처음사랑’이라 너무 기대됐어요.

사실 ‘처음사랑’이 수록된 5집 < 처음 사랑 >은 히트한 앨범이 아닌데. 
맞습니다. 곡은 너무 좋은데, 저의 노래는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발라드임에도 박자를 쪼개서 불러야 하는 곡인데 그게 잘 안돼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노랫말도 좋고 아련한 곡입니다. 영화 속 장면이 마치 ‘처음사랑’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는 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까지 녹음한 곡 중 ‘내 인생의 3곡’을 꼽아줄 수 있나.
역시 데뷔곡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와, 1집의 ‘이별이래’, 마지막으로는 이번에 발매된 ‘내 하나뿐인 그대’입니다. 앞의 두 곡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톤의 유열 노래에요. 너무 감정에 몰입하지 않고 약간은 드라이하게, 그러면서도 절묘하게 감정을 잘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전성기 시절 ‘이별이래’를 부르는 유열의 모습을 TV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대학가요제로 대스타가 되어서 갑자기 주목받고, 1집도 가요 톱텐 1위까지 갔는데 모든 게 너무 놀라운 일들 속에서도 마냥 행복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감정적으로는 몇 년간 만났던 첫사랑을 유학 보낸 이후였기 때문에 완전히 충만한 기쁨은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바빴기 때문에 그 일을 생각을 못 했던 것뿐이지 심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웃음)

영화 마지막 장면에 실제로 등장한다. 너무 늦게 나왔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제목이 < 유열의 음악앨범 >이었고 그 내용도 라디오가 주가 되었잖습니까. 감춰졌다 드러난 느낌이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도 많이 나왔으니 만족합니다. (웃음)

< 유열의 음악앨범 >에서 유열이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은자의 수제비집에서 미수가 오랜만에 은자가 만들어준 빵을 먹으면서 현우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혼자서 미수가 현우와 자취하던 자취방 골목길을 찾아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불 꺼진 골목길 집까지 혼자 걸어가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젊은 날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민 없이 말하고, 그것을 수습하던 시간이 있잖아요. 그런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동안 공백기가 있었고 성대 문제로 고충도 겪었다. 
저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고난이라는 포장에 담긴 축복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됐어요. 가볍게는 일상을 발견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감사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와중에 < 유열의 음악앨범 > 영화 소식도 있고, 앨범도 녹음하게 되면서 매일 매일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일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그것 너머의 일을 생각하게 된 시각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아내에게 영화화 소식이 더욱 남달랐을텐데.
“참 좋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터뷰를 나누던 유열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회상하며 “청춘이란 무슨 말이냐. 연령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 강조했다. “청춘은 내 마음속에 희망,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거를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여전히 청춘이에요. 나이가 어려도 그런 시간을 살고 있지 못하면, 그건 청춘이 아니죠..” 

< 유열의 음악앨범 >을 통해 과거의 흔적이 돌아온다고 느꼈나?
2007년 마지막 방송 때 클로징 멘트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은 우리가 미래를 사는 소중한 빛이 될 거다” 영화 개봉 후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서야 알겠다고.. ‘음악앨범’을 통해 함께 시간을 나눴고,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되었던 거죠.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둔다고 말한 후 한 달 동안 청취자들이 쏟아냈던 말이 있습니다. 너무 기쁘고, 힘이 됐다는 말에 감동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남는 말은 ‘감사’였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흐뭇하게 각 장면을 보며 각자의 삶을 회상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방송에서의 언어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진심이 있는 시간들만 살아있는 시간들’이라는 이야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서로 나누는 마음, 통하는 마음들이 있으면 그 시간은 굉장히 살아있는 시간이 됩니다. 이기적인 시간은 죽은 시간이더라구요.

< 유열의 음악앨범 >이 유열에게 컴백이 아닌, 리뉴얼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향후 계획하고 있는 음악 활동이 있다면.
어느 날 그런 글을 쓰게 됐어요. 삶에 대해 고민할 때도 나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드넓은 자유 속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조금 더 진심으로 나누는 노래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내 하나뿐인 그대’도 그런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저도 제 노래가 사랑스러웠어요. 

앞으로는 가스펠 앨범도 내보고 싶어요. 무대를 대하는 태도, 노래를 부르는 태도와 시선이 달라져 가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내 뒤에 남은 삶의 시간도 어떻게 하면 잘 나눈 삶이 될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방송도 언제쯤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준으로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유열과 유희열을 구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웃음). 제가 언젠가 또 라디오를 하게 된다면, 유희열 아닌 ‘유열’이 하는 라디오는 어떨까 궁금해서라도 반갑게 들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 임진모, 조지현, 손기호
사진 : 김도헌
정리 :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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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인터뷰

누구에게나 내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위로는 쉽게 선을 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이상은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힐링과 치유를 노래했고 우리를 위로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곡들은 지금도 여기, 우리 곁에 살아있다.

‘담다디’의 시원하고 신선했던 등장, ‘언젠가는’으로 전했던 빛바랜 인생의 통찰, ‘삶은 여행’으로 가져온 따뜻한 온기를 거쳐 그는 < 더딘하루 >의 날 것의 로킹함, < 공무도하가 >의 독특한 동양 서사, < 외롭고 웃긴 가게 >의 서늘함을 종횡무진 오갔다. 화려했던 데뷔, 그만큼 치열했던 자기 고민의 시간 속에서 그는 솔직함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솔직함은 여전히 이상은의 위로가 유효할 수 있는 이유다. 5년 만에 6곡의 작은 음반으로 15.5집 < Flow >의 출발을 알린 그를 홍대 부근 빅퍼즐 사무실에서 만났다. 타이틀처럼 그가 흘려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는 이 궁금증을 중심으로 수록곡을 하나씩 조명하며 진행됐다.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 “삶 가까이 행복이 있잖아요, 그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죠”

이상은의 음악에는 늘 가사가 살아있다. 이번에는 뭐랄까? 완전히 자기 얘기 같기도 하고 또 타인에 대한 조언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공허한 메아리는 아니다.
데뷔 이후 이렇게 긴 시간 쉰 건 처음이다. 거의 5년 반 만의 신보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자, 타의로 휴식기를 가졌는데 나에게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부모님 댁과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을 오가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나 할까? (웃음)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자연하고 가까이 살면서 점점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더라. 진짜로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고, 눈치 안 봐도 되고. 내가 어려서부터 일만 해오지 않았나. 살면서 거의 처음 느낀 자유로움이었다.

그런 편안함 덕택인지 노래들이 쉽고 부드럽다.
5년간 멈춰 있으면서 그간 주장해왔던 것을 내려놓게 됐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도 일부러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대중성’이란 단어를 깊게 들여다봤다. ‘도구로 사용되는 대중성’ 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이것들을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고민한 거다. 그때 철학 하는 지인이 “내게 음악은 멀리 떨어진, 거기 있든 말든 상관없는 것” 이었는데 내 음악을 통해 노래가 “자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 이 말이 깊게 새겨졌다. 그동안 내가 종종 어떤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곡들을 만들지 않았나. (웃음)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하고 싶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을 꺼라 생각한다.

첫 곡 ‘Relax’는 그럼 부모님 댁에서 만들어진 건가?
아니다. 아주 먼 곳에서 만들어졌다. (웃음) 런던에 갔다가 지인이 오로라를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 말에 꽂혀 그대로 핀란드 북쪽인 로바니에미로 갔다. 푸른 하늘, 자연이 주는 영감을 기대하며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숙소도 허름하고 오로라는커녕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순록이 끄는 썰매 탔는데 웬걸. 바닥에 누워 타는 썰매에다 속도도 아주 느린 게 상상했던 거랑 정반대였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 순간 ‘뻥’하고 머릿속에 진공 상태가 왔다. 그간의 잡념과 고민이 싹 정리됐다고나 할까?

일상을 잡고 있던 긴장들을 확 풀어졌다고 느껴진다.
말 그대로 생각이 다 날라 갔다. 거기가 영하 20도에 춥기도 엄청 추웠고 가뜩이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다들 연인, 가족끼리 오는데 내가 혼자 달랑 배낭 하나 메고 가서 그런가? 어쨌든 방도 가장 구석에 작은 거로 주고 다들 나를 피하더라. 열 받아서 조식도 몰래 먹고 그랬다. (웃음) 그랬는데 그 고생과 허탈함이 순식간에 ‘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울림으로 다가온 거다. ‘Relax’의 가사에는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소박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는 내 경험이 녹아있다.

오로라를 잃고 순록과 경험을 얻은 셈이다.
제대로 깨달았다. 순록은 크지만 아주 느리다. 하하하.

반면 ‘일상 노마드’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곡 같다.
이번 음반은 개인적으로 내게 도전과도 같았다. 예전에는 작업을 좀 하다가 2주쯤 짬을 내서 일본도 가고 태국도 다녀왔는데 그사이 시대가 바뀌었더라. 빠르고 압축적이다. 오랜만의 컴백이니 욕심이 나기도 해서 몸을 안 아끼고 밤새워 가며 곡만 만들었다. 주구장창 떡볶이만 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쥐어 짜내다가 잠깐 마트나 나가볼까? 하고 집 앞 슈퍼에 갔다. 세상에나. 모든 게 다 너무 아름다웠다.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나. 그 여행지에서 느끼는 환기와 무엇이 다른 건가?
일상을 발견한 거다. 의욕이 없이 쓰러져 있더라도 태도만 긍정적이면, 동네 마실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난 하와이나 미국에 가면 꼭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에 간다. 여기에 가면 물건들이 깨끗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일본 로컬 문화 중에는 카페에서 벼룩시장을 여는 게 있는데 이렇게 동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왜 ‘텐바이텐'(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종합 문구 매장-편집자)에 가면 사람들이 일상을 이렇게 귀엽고 소중하게 꾸미려 하는구나 느껴지지 않나? 삶 가까이에 행복이 있다. 이런 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다. (웃음)

○음악을 통한 위로,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했거든요, 제게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돌려주는 거죠”

트레몰로(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것-편집자) 사운드가 인상적인 ‘가을 수채화’는 딱 이상은 표 노래다.
11집 < 신비체험 >의 ‘비밀의 화원’을 떠올리며 쓴 곡이다. 가사들로 연결 관계를 짓거나 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 했었다. 그 곡이 봄이라면 이건 가을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노래를 많이 들어오셨던 분들이라면 편하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곡이다.

반면, ‘넌 아름다워’는 기타 톤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참 좋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을 꼽자면 이 노래이지 않을까?
기타는 ‘언니네 이발관’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능룡이 연주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운드를 잘 잡아줬다. 다만 그런 것에 비해 뚜렷한 후크(멜로디 라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곡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내 노래들이 그렇다. 글자가 너무 많은 거지.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내 곡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런 메인 선율의 부재 때문일 거다.

이상은에게는 천진난만하지만 강한 목소리와 선명한 메시지가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 목소리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다. 악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목소리만으로 표현되는 ‘감성’ 또한 있다. 내가 어떻게 인식을 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들어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보이스칼라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처음이다. 설명을 조금만 더 해준다면?

한마디로 꾸밈없는 보컬이다. 힘을 풀고 고음을 지를 때 기존 음색과는 다른 지점들이 나타나는데 이게 쾌감을 준다. 나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개방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어떤 틀 지우기가 이상은의 노래를 일상 속으로 끌어당긴다.
(눈이 둥그레지며) 정말 좋은 칭찬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려서부터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 사람은(주인공) 할아버지와도 젊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문장이 너무 좋았다. 사람으로서 내게도 어떤 한계들이 늘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걸 넘어서고 싶었고, 또 넘어서 왔다. 음악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번 음반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곡은 무엇인가?
공교롭게도 방금 이야기 나눈 ‘넌 아름다워’다. 어릴 때는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고 그랬다.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온 거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보니까 기분 조절이 가능해지더라. (웃음) 반복적으로 괴롭다고만 말하면 정말 괴로워진다. 가사를 보면 ‘마음을 따라가 /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아’라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스스로의 기분은 본인이 만들 수 있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음반 명은 < Flow >인데 타이틀은 또 ‘넌 아름다워’다. 수록곡 ‘Flow’가 타이틀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건가?
다 만들고 보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 ‘넌 아름다워’와 ‘Flow’였다. 타이틀로 뽑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 개인적으로 이 곡은 내 상처와 관련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친구와 좋지 않게 끝을 맺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그러면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떠올랐다. 왜 사회는 잘 성장하고 있다는데 자살률 같은 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내 노래로 그것들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들었다.

이 곡에서 명대사가 나온다. ‘ 오늘 , 지금을 살면 잊혀져 ‘(‘Flow’ 가사 중 – 편집자 ) 풀이를 좀 더 부탁한다.
나는 내게 남겨진 상처를 늘 음악으로 치유해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이걸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을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다. 너무 많이 돌아보면 버겁고 불안해지지 않나. 지금을 사는 아이들처럼 다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분절로, “그래도 삶은 흐른다!”

그렇다면 이상은이 말하는 < Flow >는 무엇인가?
흐른다는 건 좋은 거다. 생각해보면 내가 막혀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늘 나를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줬다. 멈춰져 있고 막혀있는 입장에서 무언가가 흘러들어와 준다는 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굳어져 가는 걸 막을 수 있게 내가 그들(대중)에게 일종의 흐름을 전달해주고 싶다.

음반이 발매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상은의 의도대로 반응이 오고 있는지.
작가인 팬이 코멘트를 남겨줬다. ‘내가 겪어본 아픔과 치유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반응들이 내 음악의 힘이다. 한번은 실연을 당해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던 팬이 내 콘서트를 다녀간 후기를 읽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내 공연을 보고 다음 날 < 개그콘서트 >를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는 거다. 음악이 주는 힐링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지막 곡 ‘오아시스의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사들 중 가장 비유가 많은 것 같은데.
가끔은 세상과 분리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분리를 히브리어로 ‘카도시’ 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Holy’다. 즉, 속물 사회와 분리시키는 순간들이 ‘홀리’하다는 거지. (웃음)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오아시스는 무슨 뜻인가?
오아시스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때로는 내가 세상과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여기 있는데 분리되어 있는 건 뭐지? 그렇다면 이건 나쁜 건가, 좋은 건가? 그런 꼬리의 꼬리를 무는 고민을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가끔의 분절이 평범함과 비범한 순간의 경계를 준다는 거였다. 삶 자체가 사막이고 때로는 여기서 의도적으로 분리되어 오아시스를 만나보자. 그래도 괜찮다, ‘괜찮습니다’ 노래한 거다.

왜 사람들이 상은에게 기대는지 알겠다. 힘들어도 괜찮다는 메시지, 나 대신 세상에 맞서 싸워 주는 사람 같다.
하하하. 감사할 뿐이다. ‘담다디’로 한 번에 세상에 알려지고 이후 혼자서 길고 긴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나름의 질곡이 많았다. 이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가 나를 버티게 해준 음악을 이제 다른 사람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 잘 만들고 싶다. 염세주의로만 빠지지 말자. ‘세상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길을 갈 수 있게, 가끔은 예쁜 것도 보고 일상도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 흐른다!

끝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묻고 싶다. 이번 음반이 EP이니까 16집도 비슷한 연장선상으로 기대하면 될까?
(고개를 저으며) 완전 새로운 작품이 나올 거다. (웃음) 이건 내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는 신고식 같은 앨범이다. 오래 쉬었으니 싱글 작업도 하고 노래도 많이 만들어보려한다. 이건 비밀인데 조만간 가사 비디오도 나올거다. 반겨줘서 고맙다.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긴 이 시대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아보자.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손기호
사진 : 손기호
정리 :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