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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 ‘HEADACHE.’ (2021)

평가: 3/5

역대 최다 지원자가 몰렸다는 2019년 튠업 20기의 뮤지션으로 선정, 같은 해 < 유희열의 스케치북 >에 출연한 데이먼스 이어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다. 떠오르는 루키라 표현하기에는 나름 데뷔 4년 차 뮤지션이고, ‘Busan’, ‘Josee!’, ‘Yours’로 이미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바 있다. 다수의 공연, 그리고 다수의 싱글에서 서툰 피아노 연주와 목소리만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익숙하던 그가 < HEADACHE. >에서는 밴드 사운드로 돌아왔다. 기념적인 첫 번째 정규앨범답게 자신의 음악적 성장을 기록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가 직접 밝혔듯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오는 두통, 그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긴 서사는 앨범의 결정적 주제로 자리한다.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오는 박탈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만큼이나 핵심 정서는 우울함이다.

첫 가사가 ‘자살’로 시작되는 ‘Scarlett’은 ‘언제 죽어도 될 몸이 됐어’와 같은 가사로 침울한 감상을 선사한다. 잔향이 가득 채워진 보컬, 기교 없이 흘러가는 기타 연주, 잔잔하지만 거센 파도처럼 감정의 파동을 끌어내는 콰이어는 그 요소가 단순해 노랫말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ai’마저도 순수나 아름다움보다는 절망과 애원으로 점철되어있다. 보편적인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낸 가사와 몽롱한 질감의 사운드가 이를 뒷받침한다.

장르에 한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다양한 장르와 소리로 분포된다. ‘아빤 술에 취한 모습으로 소리를 질렀’던 어린 날의 모습을 회상하며,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의 아픈 감정을 이해하게 된 ‘너의 기사’가 그 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순간을 유쾌한 레게리듬으로 그려냈다. 자글자글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Cherry’도 마찬가지. 쉽게 타오르다 꺼져버리는 사랑을 록의 성질을 빌려 거칠게 노래한다. 대조의 작법을 명쾌하게 활용해냈다.

모든 곡이 소구력을 이끌지는 않는다. 저절로 귀가 가는 것이 아닌, 귀를 기울여야만 들리는 곡들도 분명 존재한다. 지나간 사랑을 향기에 비유한 ‘Herb’,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과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온도를 노래한 ‘August’는 멜로디와 편곡 모두 유유하게 흘러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듣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시선을 둔다. ‘나의 도망가는 발걸음마저 사랑이었다고 / 그댄 오늘 나를 지울까요, 남은 것이 그저 상처뿐은 아니기를’(August). 생각을 거쳐야만 이해 되는 노랫말임에도, 낱말 하나하나를 곱씹어보고 삼켜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위안의 품을 내어준다.

데이먼스 이어는 앨범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유년기의 경험과 우울했던 기억이 지금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원천으로 삼은 < HEADACHE. >는 언어의 힘을 십분 살리면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성장을 성취해 낸 안정적인 첫 정규앨범이다. 앨범의 근원이 된 고통이라는 수단이 결코 헛되게 소모되지 않았다.

– 수록곡 –
1. ai
2. 너의 기사
3. 잠이 든 당신곁에 기대어
4. Auburn (Album ver.)
5. Herb
6. Cherry
7. Rainbow
8. Scarlett
9. August
10.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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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이유 있는 목소리 ‘We, Do It Together’

몇 달 전부터 SNS에 심심찮게 공유되는 포스트가 있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연대의 목소리가 그 키워드였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 We, Do It Together >.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앨범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이는 이들이 쏘아 올린 에너지만큼이나 금방 뭉쳐졌다. 진즉에 애초 목표 금액인 4백만 원을 달성했다. 지난 11월 16일, 이들의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216%인 8백 6십여 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만큼 많은 지지가 쏟아졌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12팀의 인디 뮤지션들이 만든 12곡은 록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음악가부터 활동 기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까지 고루 모였다.

인디 씬의 태동부터 선 굵은 이미지를 남긴 ‘황보령’, 국악인 이자람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비롯하여 지난해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한 ‘천미지’, 문소문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카코포니’, 다국적 밴드 ‘티어파크’ 등 다양한 색채의 뮤지션들이 한뜻 아래 손을 잡았다.

GIRLS INDIE] '홍대여신' 거부하는 12팀 록밴드 프로젝트가 온다 > 뉴스 | 라온미디어 - 인디음악 뉴스

시작은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이 가진 의문 덕이었다. ‘일본에는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은데 왜 국내에는 없을까?’ 작은 의문은 이내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들을 만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우후죽순 터진 인디 씬 내의 여러 성 관련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는 “홍대에 탈덕 유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를 더욱 널리 크게 알리자는 목표 또한 겸했다.

빌리 카터의 보컬 김지원을 동반자로, 일렉트릭 뮤직의 대표 김민규를 조력자로 얻었다. 이름하여 ‘WEWEWE 기획단’이 탄생했다. 2018년에는 여성 퀴어 음악가를 위한 기획 시리즈 공연을 두 차례 펼쳤고 2019년에는 여성 음악가, 창작자, 관객이 연대하는 ‘wewewe networking party’를 주관했다. 그렇게 2020년의 끝, 오랜 예열 끝에 < We, Do It Together >가 발매됐다. 앨범 발매 이후 11월 29일에는 ‘WeWeWe festa2020’을 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콘서트 현장에는 40여 명의 한정된 인원만 참석했지만 유튜브 생중계로 그 열기를 전했다. 작지만 강한 움직임이 실행됐고 실현된 순간이었다.

멜로디가 부각되는 이모 팝 밴드 아디오스 오디오의 ‘숨’은 ‘너와 나의 숨을 뱉어 / 두려워 하지마’ 노래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오묘하게 차올라 어딘지 시린 감정을 삼키게 하는 다브다의 곡 ‘무궁화’, ‘잘 했습니다 / 수고 많았습니다 / 괜찮았습니다’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는 ‘Good night’의 아마도 이자람 밴드 등 음반에는 즐길 노래들 또한 많다. 모두가 이 앨범을 위해 직접 노래를 썼다. 불협화음을 부딪치며 기이한 쾌감을 선사하는 티어파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술에 취했다는 변명 / 먹통의 부끄러움이 왜 우리의 몫인가’ 일갈하는 에고펑션에러의 외침은 전에 없이 시원한 사이다 같은 한방이다.

이유 있는 목소리가 모여 이유 있는 변화를 썼다. 이들 앞에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붙이는 것이 어쩐지 또 다른 무게를 지어주는 것만 같아 고려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멋지게 새-흐름을 시작했다. < We, Do It Together >. 작지만 강한 조류가 균열을 낸다. 주체성을 필두로 메시지를 전하는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있다. 이 음반은 묻게 한다.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그리고 이들은 듣게 한다. 이들이 설파하는 분노의 메시지와 품에 안은 연대의 마음을. 따뜻하고도 강렬한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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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김제형 ‘사치'(2020)

평가: 4/5

탈맥락 · 탈시대, 그리하여 김제형

지난 10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김제형의 첫 정규 음반이 발매됐다. 소리, 소문이랄 것도 없는 조용한 등장이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음악 플랫폼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결과는 요원했다. 2017년 첫 EP < 곡예 >를 내놓고 올해 첫 정규를 냈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다.

뚜껑을 열고 음악을 만나보자. 이것 참 여러 가지 이유에서의 걸작이다. 우선 지난 EP가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의 감성을 노래했다면 이 작품은 장르 소환에 거침이 없다. ‘노래의 의미’는 레이 찰스의 명곡 ‘Hit the road jack’ 풍의 스윙으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위트. ‘음악의 쓸모없음(그럼에도 노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을 독특한 내레이션으로 고백한다. 친숙한 ‘고양이 춤’의 멜로디를 묘하게 비틀어 곡의 끝을 맺는 구성 또한 매력적이다.

이렇듯 큰 악기들을 활용해 사운드를 풍부하게 채운 노래들이 많다. 뮤지컬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나 편애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는 마음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애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뿅뿅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키치한 복고 감성을 내뱉는 ‘인정투쟁’ 역시 쉬이 넘길 수 없는 킬링 트랙. 기교 없이 굵고 정직한 목소리로 ‘어어’ 추임새를 넣는 센스 앞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킬 도리가 없다. ‘체 킷 아웃(Check it out)’하며 곡을 즐길 수밖에.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존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과 위트를 결합했다는 측면에서 얼마 전 < 청파소나타 >로 돌아온 정밀아가 떠오르고 그 이외에도 김목인, 김정균(김거지), 권나무 등이 그와 교집합을 가진다. 김제형이 새로울 수 있는 건 단박에 집중 조명을 쏘아도 문제없을 음악성에서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왈츠 리듬으로 기본을 잡고 바이올린이 탄탄히 곡을 견인하는 ‘농담에게’, 셔플 리듬의 진득한 일렉트릭 기타가 근사한 ‘아엠 새드’ 등 노래는 단단하다. ‘참을 수가 없어요 / 친구가 울었던 날 / 애인이 다쳤던 날’의 쉬운 가사와 명료하고 확실히 와 닿는 멜로디 사이 선연히 김제형의 존재가 빛난다.

어디선가 뚝 던져진 듯 등장해 바람처럼 좋은 음반을 내놓고 사라졌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이 음반은 세상의 어둠과는 별개의 유쾌함을 담았다. ‘실패담’, ‘남겨진 감정’과 같은 익숙한 발라드 구성이 간혹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앨범 안에서 노래들을 만났을 때 곡의 진부함은 오히려 익숙함과 친숙함으로 그리하여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뉴 잭 스윙,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소스를 맛있게 우려냈다. 김제형, 그는 누구인가!

– 수록곡 –
1. 노래의 의미
2. 실패담
3. 남겨진 감정
4.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
5. 넌 진실인 것처럼 굴었지
6. 인정투쟁
7. 일과 자신과 나
8. 농담에게
9. 아엠 새드
10. 편애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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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서사무엘(Samuel Seo) ‘UNITY II(2020)’

평가: 3.5/5

정규 음반 < The Misfit >(2019)의 발매 이후 한 장의 짧은 EP < DIAL >(2020)을 내놨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올해 발매한 2번째 미니 앨범이다. 작업량이 많고 빠르다. 음악적 욕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 중요한 건 빠르고 많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디스코그래피 < FRAMEWORK >(2015)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소포모어 < Ego Expand(100%) >(2016)에 선연히 새겨있듯 그의 시선은 늘 ‘나’에게 찍혀왔다. 치열한 고민과 서늘하게 외로운 감정들을 글감 삼아 노래를 뽑아내던 서사무엘. 이 풀-랭스는 그의 음악적 에너지가 여전히 생생함을 증명한다.

꼭꼭 씹어 자아를 탐닉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내뱉던 과거와는 다르다. 근래의 그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음악을 통해 ‘현재’, ‘지금’의 머릿속을 투영하듯 자유롭고 편안하게 곡을 쓴다. 지난 2018년 내놓은 < UNITY >의 후속작인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짧게 짧게 털어낸 노래들은 무겁게 상념에 젖은 주제를 읊지 않는다. 다만 순간의, 오늘날의 무언가를 풀어낼 뿐이다. 때로 그것은 ‘손에 손잡고 빙글빙글 둘러앉아(‘원’)’ 있던 모습으로 소환되고 또 때로 그것은 파란색의 이미지를 통해(‘청’) 그리움, 고독의 순간을 낚아챈다.

일정 부분 이 음악을 통한 스케치 즉, 빠르게 완성되는 곡들 사이 중심 구조가 겹치기도 한다. 단어를 툭툭 던지듯 노래하는 창법은 분명 서사무엘의 트레이드마크이나 그가 핵심 배경으로 삼는 음악적 장르는 몇몇 음반에서 분명 응집력을 흐렸다. 지난 정규 3집 < The Misfit >에 수록된 18개의 곡은 충분히 생생하지 못했다. 음악적 트레이드마크인 네오 소울을 근간으로 곡조나 배합이 뭉쳐지기보단 퍼졌고 이게 도리어 음반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혹은 앨범이 플레이리스트를 가볍게 스쳐 가도록 했다.

8개의 곡만을 지닌 이번 음반은 그래서 더 깔끔하다. 늘 그랬듯 재즈의 요소를 가져와 자유로움을 담았고 선율이나 중심 멜로디도 다부지다. 이중 돋보이는 것은 보컬 오버 더빙의 활용이다. 미끈하게 미끄러지는 일렉트릭 기타 슬라이딩이 매력적인 ‘굴레’,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사운드를 채운 ‘때’, 색소폰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타악기를 함께 섞은 ‘운’ 등 많은 노래에 보컬 오버 더빙이 등장.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등장 이후부터 그를 한결같이 대변하는 것은 성실함과 솔직함이다. 한 때 ‘왜 난 안될까 걱정 안 했으면 해(‘Y’)’ 노래하던 그는 지금도 ‘나만 제자리에 있는 그 느낌이 들 때(‘때’)’를 두려워하고 ‘결국 어떻게든 굴러갈 테니까(‘굴레’)’ 하며 의지를 다잡는다. 불안한 성장통과 함께 이를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이 꾸준함이 반갑다. 통합이란 제목의 이번 앨범은 그렇게 대중에게 가닿는다. 어떤 식으로든 뻗어 나가는 서사무엘의 의미 있는 생존작.

– 수록곡 –
1. 원
2. 이음
3. 청
4. 다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5. 굴레
6. 시선
7. 때
8.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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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공중그늘 ‘연가'(2020)

평가: 3.5/5

잔잔한 물결이 조용히 밀려오듯 낮고 깊은 파고를 지녔다. 엄격히 수록곡들의 면면을 살피자면 자연스레 많은 음악가가 연상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그들의 명반 < Dreamtalk >(2012) 등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의 음악화. 즉, 가사를 통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어떤 순간을 곡으로 포착해냈던 공감각적 심상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 김일성이 죽던 해 >를 통해 자전적 스토리를 녹여낸 천용성, 파라솔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들려줬던 위트와 상상을 겸비한 노랫말. 사운드적으로는 신해경, 실리카겔이 선보인 몽환적 분위기가 음반의 전반을 감싼다.

기타 다양한 음악 동료들과의 교차점을 교류하지만 이 작품은 그 에센스를 끌어모아 지극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연가’는 ‘이 바람 속에 파란 싹은 뭘까 / 맞대진 사랑 속에 포근한 덩굴인가’라는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글로 문을 연다. 이어 레게리듬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보컬을 뿌리로 삼아 빳빳한 신시사이저를 밀어붙인다. 그룹의 작법은 이 세 개의 튼튼한 꼭짓점을 바탕으로 한다. 은유와 비유에 푹 젖은 말들, 곡에 슬며시 빠져들게 하는 불순물 없는 보컬, 이 모든 요소의 색감을 한층 살리는 건반. 굳이 하나의 특징을 더 꼽자면 공중그늘의 합은 아주 훌륭하다. 각 악기가 힘을 겨루지 않고 어우러지는 덕에 안개 같은 부유함이 부담스럽지 않다. 노래가 쉽고 그래서 잘 와 닿는다.

‘공중그늘’은 그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의 이름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공중캠프’, ‘나무그늘 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2016년 밴드를 결성, 2년 후인 2018년 첫 싱글 ‘파수꾼’을 발매했다. 이 세월과 같이 꾸린 추억은 그대로 그룹의 정수가 된다. 리드미컬한 신시사이저가 돋보이는 ‘타임머신’, ‘소꿉장난 같은 세상 속에서 / 내겐 돌아갈 곳이 없어’ 노래하는 ‘모래’, 장난스런 선율 사이 씁쓸함을 녹여낸 ‘비옷’ 등 대다수의 곡은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노래 안으로 소환한다. 향수 어린 회고는 일면 지독한 독백이 되기 십상. 허나 이들은 그 개인성을 보편적 익숙함으로 돌려내며 보다듬을 전한다. 호소력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분명 밴드에게는 허술한 겉멋이나 허세가 없다.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선명한 인상을 남길 튼튼한 곡들이 가득 차 있다.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보이스 장필순이 보컬로 참여한 ‘연가 2’가 결코 앨범에서 튀지 않을 만큼 이 5명의 루키들은 완숙된 역량을 펼쳐낸다. 아스라이 묻어 나오는 그리움, 쓸쓸한 사랑, 텁텁한 순간들을 옅은 회색빛 어조로 노래하지만 그 편린이 싫지만은 않다. 밝고 강한 에너지가 아닌 조금은 어둡고 강한 이들의 노스탤지어. 서정적인 ‘연가’가 찬 바람 부는 가을날 더없이 좋은 음악적 환유를 불러온다.

– 수록곡 –
1. 새출발
2. 계절
3. 연가
4. 타임머신
5. 모래
6. 그사이
7. 비옷
8. 보보
9. 역
10. 숲
11. 연가 2(Feat. 장필순)
12.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