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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김새녘 ‘새빛깔'(2022)

평가: 3.5/5

김새녘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은 나른한 기타 톤과 빼곡히 써 내려간 가사, 그리고 목소리다. 써놓고 보니 훌륭한 음악이 공통으로 지닌 요소들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첫 번째 음반 < 새빛깔 >은 자꾸만 묻고 싶은 것들을 만든다. 음악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새벽’과 활동명 ‘새녘’ 사이 의도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지. 기쁜 사랑보다는 슬픈 사랑을 풀어가는 각 수록곡은 어떤 상황에서 쓰인 것인지 등등. ‘새’로운 ‘빛깔’, 아니 ‘새’녘의 ‘빛’나는 색’깔’을 담은 작품은 이처럼 듣는 쪽에서 질문을 쏟아내게 할 만큼, 좋다.

‘좋다’는 감상은 새로움 속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독특하거나 새롭지 않다. 이를테면 ‘가느다란 사랑 하자며 / 나를 쫓아 따라오지 말아요 /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 같은 생각 나눌 수도 없어요’ 인상적인 노랫말로 문을 여는 ‘싫증’은 밴드 쏜애플의 멜랑꼴리함을 닮았고, 힘없는 보컬과 탱탱한 일렉트릭 기타 선율로 곡 흐름의 강약을 조절하는 끝 곡 ‘알람’은 신해경, 검정치마 음악과 같은 선로를 달리는 식이다. 새로움은 없지만 분명 ‘내 것’인 덕에 익숙함과 편안함이란 강점을 가졌다. 또한, 조급함 없이 ‘내 이야기’를 풀어낸 점 역시 완성도를 높인다.

6개의 트랙은 흥분하지 않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부유하는 일렉트릭 기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드럼 비트로 골격을 다진 비슷한 구성 사이 매 곡이 선명한 힘을 가진다. 특별히 색 강한 사운드 소스를 쓰지 않아 호흡이 늘어질 수도 있었지만, 앨범은 그 인과관계에서 벗어난다. 힘 있는 메시지와 완급조절의 맛이 살아있다. 김새녘표 사이키델릭. 지는 계절 속 슬픈 나를 회상하는 ‘Floor Flower’,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너의 이기심이야’ 비난하는 ‘갈증’ 등 앨범에는 꾹꾹 눌러 쓴 기억, 추억, 시간, 순간의 편린이 살아 숨 쉰다.

그를 ‘무드 메이커’라고 칭하고 싶다. < 새빛깔 >은 저마다의 감정 속으로 듣는 이를 떨어뜨린다. 혹자는 그 이유를 음악 앞에 ‘드림팝’이란 수식을 붙여 설명하려 들겠지만, 장르의 구분을 떠나 그저 쉽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작품이다. ‘나는 / 이런 / 오직 / 이런 / 다툼 / 그만 / 너와 / 하고 싶어’ 노래하는 ‘고집’과 ‘날 버리기 전에 다시금 떠올려봐요’ 붙잡는 ‘의심’ 사이 누군가는 또 어떤 기억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24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쓰거나 달지 않게 되묻는 사랑 노래가 흐르고 때에 맞춰 각자의 (히)스토리가 퍼져나간다.

– 수록곡 –
1. 고집
2. 싫증 
3. 의심
4. Floor Flower
5. 갈증 
6. 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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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버둥 인터뷰

질긴 가사는 벅벅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다. 연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버둥을 만난 뒤 적은 글귀다. 작은 체구에 연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있는 이 작은 아티스트는 도대체 어떤 생각과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인정했듯 그의 많은 고민의 결들은 작고 잘게 뭉쳐져 버둥 음악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한때 아주 많이 날카로웠고 때때로 분노에 차 있었다.

그 시기를 거쳐 얼마 전 정규 1집 <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를 발매했다. 한결 가벼워진 시선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는 이번 음반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했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쓴 버둥.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눈길이 이동하는 동안 어떤 것을 잃고 얻으며 무엇을 읽어 냈을까. 모든 답은 음악 속에 있다. 버둥이 말하는 ‘지지 않는 곳’의 첫 막이 이제 막 먼지를 털고 마이크의 볼륨을 키웠다.

#1. 우리 함께 ‘지지’ 않는 곳으로.

첫 정규 음반 <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의 발매를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가?
앨범 작업을 할 때마다 이번에 내야겠다는 확실한 ‘계기’가 있다. 계기가 있다는 건 발매할 이유도 확실해진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먹었다고 작품을 완성하는 건 아니니까 뜻했던 시기에 음반을 묶을 수 있어 감사하다. 아직 음반 활동이 마무리된 게 아니기 때문에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알리고 기다려준 팬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확실한 ‘계기’가 있다고?
어느 순간 늘 이어오던 고민의 답이 찾아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고민들이 이 결론을 위한 것이구나 싶다고나 할까? 나는 음악 활동을 시작한 18살 때보다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럼 뭘 고쳐야 할까?’ 늘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완벽하지 않아도 내 모습을 누군가 좋아하고 믿어주면 그걸 기반으로 나아갈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고민을 맺을 수 있는 답을 찾았고 그게 이번 정규 음반의 ‘계기’가 됐다.

지난 EP < 조용한 폭력 속에서 >(2018), < 잡아봐! >(2020)가 개인적이고 날카로웠다면 이번 음반은 훨씬 대중적이다.
이전 EP는 나를 돌아보며 내 고민과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작업을 많이 했다. 반면 이번 정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그들로 인해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들로 인해 내가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를 썼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걸 담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되도록 맞추려고 했다. 많이 듣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는 버둥을 담은 핑크빛 음반 커버도 강렬하다.
커버를 두 번 갈아엎었다. 먼저 컨택 했던 분이 있었는데 편곡을 진행할수록 사진과 내 작품의 색이 점점 달라졌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수가 없어 직접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금 커버를 찍어준 김무무 님의 사진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무무님을 만나 내가 작업한 커버를 보여드렸는데 표정에 걱정이 가득하셨다. (웃음) 무무님이 자신이 찍은 사진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해줬다.

무무의 사진이 이번 작품의 메시지를 잘 담고 있던 건가?
그것보단 무무 작가님이 나를 많이 아껴준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 보는 시선을 쓰고 싶었다. 그가 보기에 가장 버둥 같고, 담고 싶던 버둥의 모습을 찍어준 거니까. 그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선이면 음악과도 당연히 연결되지 않을까?

붉은빛, 핑크빛이 도는 사진을 선택한 건 여러 색을 시도해봤지만 이 색이 나와 제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예술도 비슷할 것이라고 보는데 의도를 가지고 모든 걸 다 끼워 맞추기보다는 어떤 우연성을 믿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악을 듣고 붉은빛의 커버를 보면서 의미를 각자가 유추하고 찾게 되는 식으로.

눈에 띄는 버둥의 강점이 있다. 바로 작명 센스. 캐치한 제목을 정말 잘 뽑는다. 그중 ‘씬이 버린 아이들’이란 곡명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나는 이러다가 신에서 진짜 버려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제목이 자극적이기까지 하니까… (웃음) 근데 그게 내가 활동하면서 실제로 느낀 감정이다. 어딘가에 선택받지 않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심지어 불합격은 연락도 잘 받을 수 없지 않나. 어느 순간 그게 내가 더 잘나고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1년 전에는 쳐다도 안 보던 작업물을 다시 갖다줬을 때 너무 좋다고 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처럼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분명 이런 상황을 종종 겪을 거다. 그럴 때 힘들어하기보다는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의 자세를 갖자고 말하고 싶었다. 곡을 쓰고 공연하면서 내가 갖는 마인드다. 아이러니하고 웃긴 상황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으니 유쾌하게 돌파하자.

그래서일까? 음반 타이틀이 <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인 것이 버려지지 말고 차라리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는 일종의 선언처럼 읽힌다.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참 많다. 이 순간이 계속 지속 됐으면 좋겠다. 내가 더 많이 알려지면 그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게 될 거다. 친구들 또한 몇몇이 이사라도 가면 현재처럼 가까이 지낼 수 없을 거고. 그걸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순간이 계속 지속되길 바랐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해서라도.

소설 < 어린 왕자 >를 보면 어린 왕자가 행성에서 노을을 보려 의자를 당기는 신이 있다. 그걸 읽으며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라는 타이틀을 떠올렸다. 그러다 우리가 실제로 버려지고, 지더라도 서로 얘기 나눴을 때 그걸 그냥 재밌게 넘길 수도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남들은 다 졌다고 하지만 우리끼리는 이겼다고 하는 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곳으로 함께 가자. 하며 중의적인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

얼마 전 목표 금액의 5배를 웃돌며 실물 앨범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다. 앨범을 에세이집 형태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인쇄비 정도만 모으려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했고 또 당황했다. 기대하시는 만큼의 퀄리티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교정을 네 번 이상 보며 최선을 다했다. (웃음)

처음 작업을 할 때 뭘 먼저 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운이 좋아 시행착오를 적게 겪었다. 이때 선배들의 짤막한 작업기를 보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마찬가지로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분들 중 내 작업방식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프로세스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또 내가 워낙 한 노래에 많은 의미를 담는 편이라 팬분들에게 그 내막을 설명해주고도 싶었고.

#2. ‘버둥을 읽는 방법

기사를 찾아 읽으며 버둥이 늘 ‘여성’에 방점 찍혀 다뤄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2~3시간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결국 누군가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많을 걸 꺼내놔도 꽂히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게 크게 확대된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시선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오려 노력하지만 여젼히 실패할 때가 많다.

< 싱어게인 >을 하면서 특히 그랬다. 그때 머리가 지금보다 짧았는데 댓글이 참 재밌었다. ‘머리 짧으니까 페미 아니냐’, ‘페미 아니면 응원한다’ 등등. (웃음) 내가 어떻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그렇게만 본다면 아예 모호하게 해볼까 싶기도 했다. 안 듣고 싶은데 계속 입으로 따라 부르게 되는 중독적인 선율로. 또 뭉뚱그린 가사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니까 그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하하하.

이전 싱글 ‘How much’, ‘칼’ 등에서 이번 음반의 ‘00’, ‘연애’ 등으로 글감이 바뀐 것도 비슷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분노가 컸다. 다수의 여성이 그렇겠지만 내가 겪는 어떤 신체적, 외모적 차별들이 모두 내 탓인 줄 알고 자랐다. ‘내가 뚱뚱하니까…’ 하는 식의 것들이 있지 않나. 그게 잘못됐던 것임을 알게 되면서 내가 나를 가둔 시기에 대한 분노와 보상심리가 생겼다. 이전 작품이 날카롭다고 느낀다면 내가 그 분노들에 주목했기 때문일 거다.

분노가 지나가면 슬프다. 또 외롭기도 하고. 이제 나는 모든 게 반드시 내 잘못은 아니지만 또 어느 측면에서는 분명 내 잘못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2장의 EP에서 그런 감정을 어떻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렸다. 전작들을 통해 해소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질문들이 찾아왔다. 앞서 말했듯 그걸 이번 정규를 통해 풀었다.

뮤지션 ‘버둥’ 이전의 한 개인으로서 성장 서사가 있다.
점점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아진다. 그들을 보며 내가 어떤 걸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음반의 ‘공주이야기’는 아이돌을 보면서 쓴 얘기다. 실제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릴 때가 있다. 어른들이나 대중들이 그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거니까 실제 그 파도 위에 있는 어린 여성은 어떤 마음일까 상상하며 썼다.

중요한 건 시점이 달라졌다는 거다. 예전에는 ‘그 어린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지금은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는 사람’의 시선에서 가사를 쓴다. 그렇다 보니 우스깡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게 된다.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별로야, 우스워하는 뉘앙스가 묻어난달까?

더 다양한 면을 비추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나. 내가 더 많은 작품을 쓰면 지금과는 다른 상징이 생길 수도 있다. 예전엔 내게 붙는 수식어들에 대해 고민했다. 근데 사회가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 않더라. 조금 더 똑똑하게 ‘내가 그걸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그냥 다 보고 있다. 누가 내 노래를 이렇게 저렇게 듣고 얘기하는구나 하면서.

그런 마인드를 가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늘 내게 부족한 면만 봐 왔다.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이만큼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회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마케팅이나 비주얼 라이징을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인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버둥은 회사 필요 없잖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버둥을 볼 때 고집이 있고 잘하니까 ‘회사가 하자는 쪽으로 안 하겠지’ 지레짐작하는 것 같다. 물론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라고는 하지 않지만 ‘왜 이렇게 해야 하죠?’ 질문했을 때 납득 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다면 나는 늘 시도 하는 편이다. 믿는 사람이 조언하면 설사 그게 손해가 될지라도 일단 한번 해본 뒤에 돌아본다. 충분히 얘기 나누면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버둥이 생각하는 뮤지션 버둥은 어떤 존재인가.
이번 정규를 만들면서 내가 결국 작업을 오래 할 사람이구나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안 찾아줘도 뮤지션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가 끊기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난 할 이야기들이 많다. 또 나는 고민이 많다. 그리고 그걸 글, 영상, 말 등을 통해서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제 그걸 인정하고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든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할 사람. 느리더라도 계속 이 일을 할 버둥. 확신이 생겨 요새는 마음이 좀 느긋하다. (웃음)

< 싱어게인 >, < 슈퍼스타 K7 >, ‘밴드 디스커버리’, ‘오월 창작 가요제’ 등 버둥이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 손의 손가락을 다 접어도 부족하다. 그 싫어하는 경쟁에 직접 참여한 건 그만큼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 실제로 버둥은 나를 알리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엔 각양각색의 버둥을 만날 수 있는 ‘Q&A’, ‘브이로그’, ‘라이브 스트리밍’ 콘텐츠가 가득하다. 현재 5천여 명의 구독자와 소통 중. 음악 외의 영상, 사진 작업 또한 찰떡같이 제 색을 찾아 잡는다. 다재다능과 선명한 욕심, 그리고 열심을 기반으로 버둥은 부단히 길을 닦고 있었다.

#3. 슈퍼스타가 된 버둥. 전국투어, 노들섬 그리고 고척돔!

고민 많은 버둥. 요즘 삶은 어떤가?
과분한 관심에 감사해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어떻게 하면 지금 버둥 정도로 자리를 잡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근데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다. 나는 EBS ‘헬로루키’를 비롯한 경연 덕을 많이 봤다. 지금은 코로나로 경연, 오디션 자체가 줄어 들었으니… 나 또한 1년만 늦었으면 누렸던 많은 기회를 놓쳤을 거다.

정규를 내면서 솔직히 업무량이 꽤 많아졌다. 이걸 내가 다 혼자 처리하면 음악 활동만으로 생활이 가능하지만 노래를 연습하고 창작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진다. 같이 일해줄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속사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한 해 한 해 나이가 차니까 조급해지는….

정규 1집 발매 전후로 체감되는 외부의 반응 차이가 있는지.
차이라기에 예전에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웃음) 과거엔 그냥 버둥이라는 애가 있더라 정도였다. 정규 1집을 내면서부터 내 음악에 대한 깊은 평가나 이야기들이 생겼고.

반면 버둥의 ‘찐팬’은 활동 초창기부터 있더라.
너무 감사하다. 나를 오랜 시간 좋아해 주는 것을 보면 또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걸 봐도 버둥이 해석하는 틀이 있고 거기에 디테일한 관점을 더하는 편이다. 이런 관점에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내 음악을 사랑해주는 것 같다. 팬들을 통해 내 시선을 의심하지 않아도 됨을 느낀다.

자신의 아픈 서사를 드러내고 이를 좋은 선율과 시선으로 녹여내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첫 곡 ‘처음’. 모르는 걸 물어봤을 때 잘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말을 섞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조금 구분할 수 있게 됐지만 첫 EP를 낼 때만 해도 정말 힘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아는 척 해야 하고, 모르는 걸 언제까지 숨겨야 하는지. 얼마나 웃어야, 얼마나 울어야 하는지… 그런 마음들을 가사와 멜로디로 잘 정리한 것 같다.

EP 2개와 이번 정규 음반까지 모두 밴드 줄리아드림의 박준형 PD님과 작업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준형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웃음) 이번 작품이 보다 대중적이어 진 데는 준형의 의견이 한몫했다. 슈퍼스타가 된 버둥. 준형의 이번 프로듀싱 키워드였다. 녹음 디렉팅을 줄 때 여기가 고척돔이고 4만 명이 있다고 생각하라고 하더라. 상상은 잘 안 됐지만… 하하하.

고척돔? 물론 가능이다. 가사도 너무 좋고, 기획도 너무 잘하고, 음악도 끝내주니까!
1월 말에 노들섬에서 크게 쇼케이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지방 전국 투어도 준비 중이고. 표를 다 팔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장에서 앞서 제작한 에세이집을 판매할 예정이니까 아직 구매하지 못한 분들은 참고해달라. 투어 일정은 조만간 공개하겠다. (웃음)

버둥을 위로해주고 지탱하게 한 작품이나 뮤지션이 있다면?
이번 앨범에 관련해서 말하자면 이랑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이다. 관계에 있어 늘 자책했다면 이 음악을 통해 여유를 많이 얻었다. 내 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게 내 탓만은 아니다 하는 깨달음. 많은 위로가 됐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들로 인해, 그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데에 랑의 노래가 큰 역할을 했다.

음악 일을 멈출 수 없는 동기 중 하나 역시 이런 뮤지션들 때문이다. 멀리서 즐겨듣던 음악가 곁에 가볼 수 있고 그들의 음악을 때로 ‘미리’, ‘먼저’ 들어볼 수 있는 것은 이 일이 주는 큰 매력이다. 이번 에세이집 아이디어도 랑의 < 신의 놀이 >를 통해 얻었다. 나 역시 꾸준히 다양한 시도를 하며 언젠가 직접 회사도 운영해보고 싶다. (웃음)

하나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비하인드 가득한 대화였다. 벽장 아래 살며 자신의 가치를 모르던 한 캐릭터처럼 버둥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석인양 빛났다. 자신을 잘 알았고 그걸 잘 꺼낼 줄 알았으며 적절하게 포장까지 할 줄 아는 영리한 아티스트. 지지 않는 곳으로 부단히 발걸음을 옮기는 버둥. 그의 여정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인터뷰: 박수진, 정다열, 정수민
정리: 박수진
촬영: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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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둥 ‘지지않는 곳으로 가자’ (2021)

평가: 3.5/5

우리는 모두 자주 버둥거린다.
애써도 애쓴 만큼 결과물이 따라주지 않는, 날들의 연속. 우연히 버둥의 음악을 만났다. 선홍색의 불빛이 짧은 머리의 웅크리고 있는 여성을 비춘 커버. 어딘가 외롭고 쉽게 그 의중을 찾아낼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첫 곡 ‘처음’을 재생. 이내 자세를 고쳐 앉고 음반 전체를 꼼꼼히 받아 적었다.

버둥. 나름 열심히 음악을 따라 듣고 있지만 그리 익숙지 않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완숙한 멜로디가 돋보였다. ‘00’, ‘Muse’ 등의 신시사이저로 문을 열고 잘 들리는 선율로 무장한 곡들이 있었고 가사 또한 특별했다. ‘00’은 ‘영영’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곧 ‘1과 2가 지켜보길 / 3과 4가 지나가길’하는 식으로 숫자를 이용해 서사의 흐름을 살렸다. ‘연애’는 ‘날 네 것으로 널 내 것으로 / 만들지는 않을 거야’ 노래하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표현한다.

쉽게 말해 직접 쓴 노랫말은 음악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명하게 내뱉고 있었다. 음악적 시선이 뚜렷한 곡. 난해하고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뭉뚱그리지 않고 시적이되 사고를 명징하게 풀어낸 작품은 뮤지션 ‘버둥’을 한정하기보다 오히려 확대했다. 마치 이쪽에서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왔나요?’ 묻게 하고 더불어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하게 한달까.

그렇게 2018년에 첫 EP < 조용한 폭력 속에서 >를, 2019년에 < 잡아봐! >를 발매했음을 알게 됐다. 두 개의 짧은 음반과 몇 개의 싱글을 거쳐 당도한 이번 정규 앨범은 오랜 시간 버둥거리며 부단히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 우선 대중을 놓치지 않는다. 선율이 전작에 비해 확실히 매끄럽다. 타이틀 ‘씬이 버린 아이들’을 들어보자. 그간의 싱글 중 가장 밝은 기조를 띈 이 노래는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리듬을 타게 하는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지며 매력적인 후렴을 만든다.

또한 더 풍성해졌다. 신시사이저의 활용이 단정하고 깔끔하게 적소에서 터진다. ‘공주이야기’와 같은 노래에선 오르간, 브라스 세션 등을 활용해 전에 없던 터치를 담았다. 즉 이 음반은 인디 뮤지션으로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오던 그가 ‘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버둥을 주목해야 함을 증명한다. 제 색을 찾으며 발전한 흔적이 여기 있는 것이다.

버둥거리다. 힘에 겨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다. 버둥이 쓰는 음악은 어떤 순간들을 지나치고 또 어떤 기억들을 묻기 위한 삽처럼 느껴진다. 완전한 것을 노래하지 않고 조금은 불편하고 아프고 답답한 것들을 써 내린 음반. 자주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기 충분하다. 버둥, 버둥. 그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다.

– 수록곡 –
1. 처음
2. 00
3. 나의 모든 슬픔이
4. 그림
5. 공주이야기
6. Muse
7. 씬이 버린 아이들
8. 파아란
9. 연애
10.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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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랑 인터뷰

이랑은 어디에나 있다. 인터넷상에는 그가 쓴 많은 글이 넘실거리고 그를 주목한 기사도 한가득하다. 심심찮게 이랑이 그린 그림과 그가 작업한 영상 작업물을 만나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나왔다고 해도 다 몰라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라는 그의 말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랑은 때때로 쉽게 가려진다. 솔직한 그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궁금한 것을 거침없이 질문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가감 없이 목청을 높인다. 동시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두려움, 공포, 부담감을 숨기지 않는다. 다수가 마침표를 찍고 그저 멈춰 있을 때 그는 그 위에 갈고리를 걸어 물음표를 만든다. 정규 3집 < 늑대가 나타났다 >에는 그런 그가 사회를 향해 던진 커다란 의문 부호들이 가득하다. 본명이자 외자인 ‘이랑’ 대신 더 다정하게 ‘랑’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그를 만났다. 10월 중순 치른 수술 이후 별다른 휴식 없이 연일 일정을 소화했다는 랑에게서 투명한 피로가 스쳐 갔다.

랑이가 나타났다!”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쉴 겨를 없이 복귀한 거 같은데.
이미 10월 일정이 다 차 있는 상태에서 수술할 날짜를 어렵게 뺐다. 소화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계속 메일이 온다. SNS 같은 데를 보면 ‘바쁘다고 하더니 다 하네’ 싶기도 할 거다. 그래서인지 연락이 계속 오고 있다. 난감하다.

거절을 잘 못 하는 걸까?
거절도 많이 하는 편이다. 거절한 메일을 따로 모아두는 메일함 폴더가 있을 정도다.

거절의 기준이 있을지.
기준이 있어도 거절을 할 수 있게 된 건 얼마 안 됐다. 나를 알리는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무조건 많이 했다. 길에서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무료로 자주 하고. 지금은 경력이 쌓였으니까 이래저래 해서 못하겠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래도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거절이 굉장히 두렵다. 거절하는 순간 다시는 내게 일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달까.

랑의 음악이 가진 메시지가 때로는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일 등 해석하기에 따라 제도권에 반하는 길을 가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트로피 사건’ 이후로 지금도 욕 댓글이 달린다. 제일 재미있었던 댓글은 ‘이번만 듣고 다시는 안 듣겠다’는 글이다. 싫어하기로 마음을 다잡는 건데 솔직히 좀 귀여웠다. (웃음)

악플에 의연해 보인다.
당연히 상처 입는다. 다만, 익명성을 가지고 공격은 쉽게 하는데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지지하는 게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어떤 논란으로 인해 공격을 받고 있으면 실명을 드러낸 분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준다. 문화가 그렇다. 나를 직접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상황이 있어도 믿고 지지해준다. ‘프라우드(자긍심)’를 갖게 된다. 특히 트로피 때는 욕을 많이 먹었는데 예정된 일이 하나도 끊기지 않았다. 신뢰를 주고 있음을 느낀다.

앞에서 어떤 목소리를 시원하게 내기도 하고 동시에 내면의 힘듦, 불안함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인간이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매체에 노출이 되면 쉽게 ‘캐릭터’가 생긴다. 그걸 유지하기 위한 강박에 시달린다. 나아가 캐릭터가 밈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면 그 외의 수많은 면을 눈치껏 숨기고 자기 조절을 해야 한다.

내 캐릭터는 좀 시끄럽고, 그러니까 말을 자꾸 하고 의견을 내는 사람일 거다. ‘세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말을 하고 싶을 때 할 뿐이다. 그로 인해서 공격받으면 슬프고 무섭고 그런 걸 동시에 다 느낀다. ‘저 사람은 강하고 세니까 상처를 안 받겠지’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설리가 죽은 게 큰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부여한 캐릭터 때문에 특히 ‘노브라’를 가지고 정말 많은 얘기가 오갔고 그걸로 그를 괴롭혔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그가 얼마나 다양한 면을 혼자 끙끙대면서 감추고 외로웠을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랑이를 너머 사회로, 그러니까 이랑

정규 3집 < 늑대가 나타났다 >는 유독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소리친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1집 < 욘욘슨 >(2012)는 기존에 써뒀던 노래가 나왔던 거라 가수라는 직업의식도 없었다. 1집을 만들 때 20여 곡이 있었는데 실물 앨범에 12곡만 담겼다. ‘그냥 있는 노래를 다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였다.

1집에 안 넣은 곡들과 새로 쓴 노래를 집합해 2집 < 신의 놀이 >(2016)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실물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그런 식으로 경험들이 쌓이고 또 누군가 듣고 반응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책임 의식이 생겼다. 가장 듣는 사람을 고려하며 쓴 게 < 늑대가 나타났다 >다. 아티스트로서의 책임 의식, 프라이드를 반영했다.

영상감독, 작가, 만화가 외에 ‘가수’라는 직업 정체성도 받아드린 걸까?
딱 부여받은 정체성만 보여주소서 하는 분위기를 못 참는다. 공연할 때도 ‘지금 무섭다’, ‘객석이 안 보여서 무섭다’라고 자주 말한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서 찬양받는 존재가 되는 걸 못 참는다. 객석에 불을 밝혀서 어떤 사람들이랑 만나고 있는지 알고 들어가면 좀 편안한데 쥐 죽은 듯 고요하고 껌껌한 곳에서 다수가 나만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무섭다.

이유는?
실수했을 때 돌이킬 수 없지 않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부담이 제일 크다.

지난 2집 < 신의 놀이 >와 달리 이번 음반은 실물 CD를 제작했다.
사실 한국판은 CD 없이 (지난 음반처럼) 다운로드 코드만 있어도 된다. 일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문화적 차이를 생각했다. 일본은 아직 아날로그를 지향하기 때문에 CD가 없으면 안 사려고 한다. 다운로드 코드만 있는 앨범을 낯설어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노래마다 곡이 쓰인 배경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2집처럼 에세이를 포함한 앨범을 기대했고.
따로 책 계약을 해놨다. (웃음)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이랑의 가사-말’과 새로 쓴 분량을 합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언제 발매되느냐 물으니) 내년에 내야 하는데 아직 원고를.. 다음 달에 책이 나올 게 있고, 그다음에 또 나올 게 있고 막 이래서…

바쁘다, 쉬고 싶다, 너무 바쁘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올해 이미 5권의 책을 계약했다. 코로나 19란 상상 불가의 팬데믹이 불어 닥치며 일감이 줄어든 탓이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올라 그는 “1월 수입이 42만 원”이었음을 밝히며 트로피를 즉석에서 팔았다. 한 달 치 월세였던 50만 원을 벌었, 아니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랑의 활동은 계속됐다. 나름 이름도 알렸다.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타이틀 ‘늑대가 나타났다’의 한 가사가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듣고 나누며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전작보다 목소리를 긁고 강하게 표현하는 식의 창법 변화도 느껴졌다.
목소리가 어떤지에 대한 생각은 안 했었다. 어떻게 부르겠다 의도하지 않았으니까 듣는이가 동요 같이 부른다, 담백하게 부른다고 얘기 해주면 그냥 그렇구나 했다. 점점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고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멜로디에 얹어서 부르는 정도였는데… 목소리를 진짜 악기처럼 생각하고 작업하는 분들을 보니까 완전히 접근 방식이 달랐다. 나는 가사가 제일 중요한데 이들은 소리가 가장 중요하고. 아직은 어떻게 접근해야 목소리를 악기로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기서는 좀 더 크게 부르고, 더 긁으며 부르고 이런 것을 조금씩 시도 중이다.

음반의 시선이 나에게서 사회로보다 넓어졌지만 음악을 채우는 핵심 질료들은 전과 같다. 첼로의 혜지, 코러스의 혜미 등이 특히 각별할 것 같다.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하는 내게 늘 힘을 주는 조력자들이다. 대학생 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를 불렀다. 학교 게시판에 음악 할 사람을 찾는 글을 올렸는데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훌륭히 활동하고 있는 이길보라 감독만 답을 줬다. 둘이 한참 공연을 하다가 우연히 혜미가 내 공연을 보러 왔다. 이길보라가 떠났던 차여서 혜미를 막 꼬셨다. 코러스라도 해달라고.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을 하면서 드러머를 만났고 혜지를 만났고 프로듀서인 대봉이도 만났다. 그렇게 꾸려졌다.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에 힘을 보탠 합창단 ‘아는 언니들’은 어떤가?
음악을 가르치면서 다 같이 노래하고 소리 지르는 일들이 많았다. 항상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언젠가 이런 합창팀을 꾸리는 게 나의 원대한 목표였다. 그러다 우연히 아는 언니들 쪽에서 워크숍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랑스러움이 넘쳤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어서 더 매력적이기도 했고. 앨범 작업에 참여해달라고 먼저 제안했다.

합창단을 꿈꿨다고?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때 합창대회에 딱 한 번 나가 봤다. 가난한 축에 속했던 우리 학교만 빼고 모든 팀이 다 옷을 맞춰서, 그것도 화려한 성가대복 같은 가운을 입고 나왔더라. 우리는 각자 알아서 흰색 상의에 빨간 하의를 맞춰 입고 오는 거였다. 진빨강, 핑크에 가까운 빨강, 쿨톤, 웜톤 등 온갖 색이 다 섞인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느낀 어떤 부끄러운 감정이 생생하다. 이런 팀이 1등 하면 진짜 멋있는 건데. 우리가 노래를 잘 못 불렀나?

합창대회가 다양성을 포용할 줄 몰랐나 보다.
그래서 이번 ‘뮤즈스(MUZES)’ 영상을 찍을 때 까만색 졸업가운 제일 싼 거를 빌려서 다 같이 입었다. 한 벌에 5천 원 정도 줬다. (기분이 어땠냐 물으니) 하하하. 예전에 옷을 맞추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웃음)

방금의 일화처럼 아픔을 끌어다가 작품을 만든다. 이런 식의 창작이 자신을 소모하게 하진 않는지.
전혀.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은 내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뿐이다. 할 얘기가 너무 많고 살면 살수록 많은 걸 배우고 알게 되니까 어떻게 작품으로 낼지 정리가 안 될 정도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 내 이야기를 더 안 듣고 싶어 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를 느낀다. 어릴 때부터 내가 있는 곳에 누군가가 얘기하러, 얘기 들으러 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넓은 작업실을 쓰는 것 역시 지금처럼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뮤지션 이랑으로 활동한 지 이제 10년 정도 됐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늑대가 나타났다’를 만들게 된 계기를 꼽고 싶다. 강남역 살인 사건 관련한 여성 집회에 초대돼서 노래를 부르게 됐다. 공연 의뢰가 왔을 때 엄청 겁이 났다. 집회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당시 개인적인 일로 인해 일절 밖으로 나오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대에 올라 다수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면 나중에 나를 도와줄 몇백 명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겠구나. 그날 기억이 좀 강렬하다. ‘신의 놀이’를 부르러 간 거였는데 그 곡을 따라 부르기 어려우니까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노래가 주는 연대의 힘을 느낀 것 같다.
자기 노래를 가지고 어떤 시위나, 집회 혹은 행사에 나와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한테는 ‘신의 놀이’ 정도가 전부였을 땐데 그 곡은 한번 듣고 기억하기 어려우니까. 모두 싶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를 써야겠다 한 거지. 후렴 정도는 따라부를 수 있으니 내게는 큰 성취다. (웃음)

랑은 어디서 쉼과 위로를 얻는지.
나는 쉴 줄 모른다. 그걸 못 배우고 못 해본 사람인 거다. 쉬는 날도 일정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미리 약속을 잡아 둔다. 조금만 시간이 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는 성격이다. 영원히 못 할 것 같은 게 명상일 정도로. 말없이 조용히 생각을 비우고 이런 건 너무 괴롭다. 소용돌이치는 이야기 속에서 그냥, 살고 있다.

힘을 한 번에 모아 태우는 별똥별이 떠오른다.
언니가 맨날 ‘너 일찍 죽을 거 같다’고 한다. (웃음) 내일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자살은 최대한 참으면서… 후회 없이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싶은데 또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니까. 이를테면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펴야 하니까 피고…

인터뷰 후 곧장 최소한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그러니 (거절해도) 양해를 부탁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니나 달라, 며칠 뒤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신을 태우고 스스로 타고 있는 건 아닐지 흠칫 손끝이 저릿했다. 랑이 만들고 나아가는 길에 사랑과 따뜻함만 놓여있기를 바란다. 상처를 덮고 하하하하 웃으며 해해해해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미룰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별똥별 말고 계속 반짝이는 별이 되기를. 그가 써내는 작품들처럼 랑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신의 놀이를 이어가기를 염원한다.

인터뷰: 박수진, 장준환, 정다열
정리: 박수진
사진: 정멜멜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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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룬디마틴 인터뷰

울산 밴드 룬디마틴. 굳이 앞에 지역 명을 붙인 것은 이들의 정체성에 ‘울산’이 큰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모든 멤버가 울산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으며 그 기억을 음악에 실어 나른다. 지역의 음악 씬을 넓히기 위해 보컬 민경은 직접 민간 공연장 ‘플러그인’을 만들고 운영 중이라고 했다. “울산의 예술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계속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우리들끼리 연대가 되어야 한다.” 울산을 향한 태생적 발전적 애정이다.

유독 파란 하늘이 짙게 펼쳐진 10월 ‘플러그인’에서 이들과 만났다. 아쉽게도 베이스의 승언은 개인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경쾌한 에너지와 열정을 기반으로 울산 이곳저곳을 누비는 룬디마틴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기타·보컬의 민경, 건반의 현규, 드럼의 한결은 결코 작지 않은 울산 인디 음악 씬에 관한 양질의 답변을 이어갔다. 음악에 닻을 둔 울산 예술가들의 꿈, 끈기, 갈등 그리고 자생에 대한 긍지…

▶좌측부터 한결(드럼), 민경(기타·보컬), 현규(건반)

룬디마틴는 무슨 뜻인가?
민경 : 불어로 ‘월요일 아침’이라는 뜻이다. 월요일 아침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간일 수도 있지만 팀이 가진 밝고 희망찬 에너지로 응원하고 싶었다. 우리 노래를 들으면 ‘월요병’도 좀 늦게 올 수 있다는 의미랄까? (웃음)

룬디마틴만의 강점.
한결 : 에너지. 민경이 프런트로서 아주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넘치고 밝고,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우리 노래의 색을 잘 살려준다. 특히 무대에서의 활기가 정말 크레이지 하다. (웃음) 울산을 대표하는 팀이란 자긍심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 공연의 제약이 있었겠다.
민경 : 새어보니까 연에 80회 정도 공연을 해왔다. 근데 작년에는 온라인 포함해서 6차례 정도 무대에 섰더라. 대면은 한, 두 번 정도 했었다. 나머지는 다 비대면이었다. 대신 자체 기획으로 < 여행스케치 in 울산 >을 발매했다. 울산 명소를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얽힌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찍었다.

인터뷰를 하는 공연장 ‘플러그인’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민경 : 내가 운영하고 있다. 나는 원래 서양학과, 즉 미술을 전공했다. 그러다 음악으로 전향한 거다. 울산에 연습실이 없어서 연습실을 찾다가 월세가 조금 싼 지하 공간을 발견했다. 합판을 잘라서 울산대학교 앞의 첫 번째 공간인 공연장 ‘언플러그드 하우스’를 무작정 만들었다. 10년 정도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다가 작년, 이곳 성남동 문화의 거리로 공연장을 옮겨 왔다. 더 많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룬디마틴 같은 경우 이곳을 연습실로도 사용하고 회의도 이곳에서 한다.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인다는 생각에 번 돈을 공연장에 다 쏟아 부었다!!”

월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민경 : 다른 거로 일해서 버는 돈을 공연장에 다 투자했었다.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이다. 울산 내에 이런 민간 소공연장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걸 지켜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다 쏟아 부었다. 이제는 지원 사업이라든지, 국가 보조금들을 알게 되어 전보다는 수월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공연이 많이 있었나?
민경 : 이전 공간에서 2015년경부터 1년 반 정도 매주 화요일만 쉬고 기획 공연을 매일 돌렸었다. 미술 작가로서 삶을 아예 포기하고 음악으로 왔을 때 대중적인 것과 행정적인 것을 동시에 챙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재정적인 부분이 힘들긴 했다. 다행인 건 울산에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포지션이 많이 없어서인지 룬디마틴 공연 외에도 내 개인으로 하는 공연이나 활동들이 많이 들어왔다.

대구의 ‘클럽 헤비’처럼 울산 음악의 중심지가 있다면?
민경 : 22~3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로얄 앵커’다. 원래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가는 펍(Pub)이었다. 2015년 즈음부터 그곳에 그냥 놓여 있든 허름한 장비를 그냥 썩힐 바에 버스킹을 하자하며 조금씩 버스킹 문화가 형성됐다. 2014, 5년에는 그 금방이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기도 했다.

로얄 앵커와 플러그인. 타지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민경 : 문화의 거리에 미술, 문학, 음악 등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로양 앵커와 플러그인 역시 이곳의 한 축이고. 두 공연장이 함께 ‘클럽 데이’도 열었다. 울산의 연주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계속 공연할 수 있게 자체적으로 티켓을 팔고 공연을 기획했다. 코로나로 잠시 쉬고 있지만 상황이 괜찮아 지면 다시 진행할 생각이다.

“여기서 살았으니까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생각으로 노래한다!”

< 여행스케치 in 울산 >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민경 : 우리 멤버 전원이 울산 출신이다 보니 추억이 많다. 엄마 손 잡고 태화강 변을 걸을 때도 있었고 내가 어릴 때는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어서 거기서 자주 놀았다. 꽃밭도 아주 잘 돼 있고.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곳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여기서 살았으니까 우리만 만들 수 있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했나?
민경 : 감사하게도 2020년 울산문화재단의 ‘열린 콘텐츠 지원 사업’의 덕을 봤다.

선정된 이유가 뭘까?
민경 : 우리밖에 할 수 없는 거였다. 울산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음악가들이 울산을 노래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흔히 울산을 ‘노잼 도시’라고들 한다. 그런데 최근 JTBC 예능프로인 <캠핑클럽>에 울산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울산에 대한 관심이 조금 늘었다. 특히 울산12경과 같이 자연경관이 좋은 데도 많다. 울산의 아름다운 곳을 세 군데 선정해 그곳을 중심으로 다뤘다.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일지.
민경 : 태화강, 간절곶, 그리고 함월로. 룬디마틴과 남성 듀오 JU와 함께 했다. JU가 함월로를 중심으로, 우리가 태화강을 중심으로 노래를 만들었고 간절곶은 두 팀이 같이 힘을 합쳐 작업했다. 울산의 예술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계속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우리들끼리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울산을 활동 기반으로 삼은 예술가들이 많은가?
민경 : 재작년에 ‘울산 음악창작소’가 개소했다. 거기서 신인 음악가를 발굴해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60여 개 팀이 지원했다. 아쉽게 룬디마틴은 선정되지 못했다. 선정팀들을 보니 우리가 알지 못하던 다른 뮤지션들이 많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울산의 음악적 수준이 어떤 거 같은가?
민경 : 문화적인 부분과 실력 부분을 나눠서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실력은 울산에 실용음악 학교는 많은데 실용음악과(대학)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 고등학생 때 열심히 음악적 기량을 쌓아도 결국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문화적인 건 우리 밴드를 통해 잘 설명할 수 있다. 룬디마틴은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게 어디서 오냐면 나는 울산이란 지역 문화적 배경에서 온다고 본다. 물론 내가 서울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서울에는 굉장히 치열하고 어쩌면 개인주의적인 게 이곳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분위기가 울산 음악의 문화적인 걸 만들어주지 않을까?

“울산의 뮤지션들은 서로 구사하는 장르가 달라도 교류를 하면서 시너지를 낸다!!”

다른 멤버들의 생각은.
현규 : 동의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잘 섞인다. 울산이 타 지역과 다른 것은 장르 간의 교류가 생기며 시너지가 난다는 거다. 씬 내의 우애가 좋다.

민경 : 나랑 베이스 오빠도 그렇고 우리 팀 모두가 객원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국악 쪽이랑 콜라보가 특히 많다. 그래서 퓨전 국악팀도 하고, 클래식 팀, 힙합 팀 등 여러 분야에서 다 교류가 많다.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 가면 재즈 하는 사람은 재즈 하는 사람들끼리 알고 인디 음악 하는 사람은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지는데 우린 예술가 수 자체가 많지 않아서 인지 서로 교류가 많다.

울산 음악의 특징이 ‘퓨전’일 수도 있겠다.
민경 : 울산은 공업 도시이기 때문에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다 일자리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람들은 울산을 정말 잘 알고, 이곳을 더 알리려고 하는 울산 태생인 분들이 많다. 울산이 아무래도 무역 도시이다 보니까 염포, 방어진 등 항구를 기점으로 제주도, 일본 등지와 왕래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DNA 적으로 울산 사람들이 조금 더 개방적인 게 있고 그게 음악 교류가 활발한 것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다.

지방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활동의 원동력이 있다면.
민경 : 멤버들. 우리는 급할 게 없고 그냥 이렇게 쭉 가면 된다. 밴드 운영비는 돈을 잘 벌어서, 공연이 많아서라기보다 그냥 그런 체제(자급자족하는)를 멤버 전원이 다 인정해서라고 본다. 1집을 제작할 때도, 쇼 케이스를 진행할 때도 무조건 공연비를 다 모아서 진행했다. CD를 찍을 때 현규 작업실을 썼는데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멈췄다가 녹음하기를 반복했다. 그런 걸 거친 사람과 거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우리 넷은 동시에 그것을 느꼈기에 함께 끈끈하게 갈 수 있다.

발매된 노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한결 : 1집 < Rundi Rise >(2019)의 타이틀 ‘히하’. 그룹에 들어온 지 5~6년쯤 됐다. 관객으로 룬디마틴을 처음 봤을 때 들은 곡이 ‘히하’였다. 밴드를 처음 만나게 했던 곡인데 지금은 내가 연주를 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민경 : 현규랑 한결이가 직장인이다. 그중 한결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5분만’을 뽑겠다. 딱 5분만 더 자고 싶은데 출근을 해야 하니까 잘 수 없는 일상생활의 애환이 담겨 있다. 멤버 4명이 함께 쓰기도 했고 거의 2, 30분 만에 만족스러운 노래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울산 사람들, 울산 청년들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룬디마틴을 게속 얘기하다보면 지구 반대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민경 : 울산에는 고복수, 윤수일 선생님이 있다. 11월 4일부터 열리는 울산 나들이 축제에서 ‘룬디마틴이 울산을 노래하다’라는 콘셉트로 무대에 선다. 우리식으로 고복수의 ‘타향살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해석했다. 또 우리의 시각으로 본 울산의 풍경에 대한 노래도 준비했다. 울산의 사람들, 울산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룬디마틴을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각오와 다짐이 있다.

울산 뮤지션들을 소개해준다면?
한결 : 온라인으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대보름밴드’와 ‘내드름연희단’을 추천한다. 퓨전 국악을 하는 팀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확실한 다이내믹이 느껴져서 좋다.

민경 : 내가 생각하는 울산의 약점은 밴드 자작곡이 많지 않다는 거다. 자체적으로 싱어송라이터 스터디를 하면서 일반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는데 거기서 ‘브루니 센티’를 알게 됐다. 본인은 노래를 잘못한다고 취미로 유튜브를 하고 음악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으로 끌어낼 게 많다. 이외에도 밴드 ‘더 블랭캣’과 가사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훌륭한 ‘피에스(P.S)’를 뽑고 싶다.

현규 : ‘뮤직 팩토리 딜라잇’. 브라질 타악기인 바투카다를 연주하는 그룹인데 경남, 경북을 통틀어서 가장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끝으로 목표.
현규 : 어쿠스틱 팝의 선입견을 깨고 싶다. 원래 룬디마틴은 피아노 사운드를 기반으로 멜로디나 화성이 돋보이는 팀이었다. 4년 전 내가 합류하고 나서는 사운드를 더 풍부하게 채우려고 했다. 피아노 말고 신시사이저 소스를 쓰거나 추가로 스트링을 넣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피아노를 빼기도 하고 사운드를 뭉개기도 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겠다. 그렇게 나아갈 거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정리 : 박수진
사진 : 박수진, 룬디마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