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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늑대가 나타났다'(2021)

평가: 4/5

뜨겁고도 차가운 맑은 것들의 힘

이 음반은 많은 것을 묻게 한다. 무엇 때문에 앨범의 지휘자 이랑은 이런 이야기들을 담게 되었는가. 2012년 첫 정규 < 욘욘슨 >,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수상을 안긴 소포모어 < 신의 놀이 >(2016)에 이어 5년 만에 발매된 세 번째 풀 랭스는 전례 없이 강하고, 세고 어둡다. 늘 그가 손에 쥐고 사용하던 작법들,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를 중심으로 곡을 쌓고 서로 다른 가사를 한 곡에 동시에 넣는 등의 구성은 비슷하지만 그 안에 적힌 메시지의 촉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나’를 뚫고 지나 ‘사회’에 닿으려는 듯 갖은 비유를 넣어 목소리를 낸다.

이는 작품과 동명의 타이틀 ‘늑대가 나타났다’부터 선명히 드러난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는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 노래는 합창단의 웅장한 코러스와 만나며 어떤 뜨거움을 전한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여기에는 명백히 개인을 넘어 세상을 향한 소리침이 담겨있다. 쿵쿵 울리는 드럼과 거기에 맞춘 여러 사람의 호흡은 힘을 주어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요’라며 분노를 토한다.

좁게 자신 주변의 것들을 다뤘던 데뷔작을 지나 < 신의 놀이 >가 적나라하게 가족과 죽음 등을 소재로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그 자체로 사회를 본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앨범에는 솔직한 분노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울분이 가득하다. ‘환란의 세대’는 지금껏 발표한 곡 중 가장 굵고 거친 이랑의 보컬이 담겨있다. ‘목도 안 메도 되고, 불에 안 타도 되고,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란 가사가 연이어 펼쳐지는 와중 몇몇 사람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애써 고개 돌린 누군가의 삶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 곡은 코러스 버전으로도 실렸는데 노래의 끝, 두텁게 중첩된 기괴한 합창단의 울림이 마치 인생의 고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 하나 돋보이는 변화는 독백의 적극 활용.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등에 사용된 감정 없이 내뱉는 독백들은 음반에 가득 채워진 ‘말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전하고자 하는 욕망’들과 다름없다. 그만큼 앨범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적확하게 우리에게 온다. 영화감독으로, 에세이 작가로, 또 음악인으로 존재하며 그가 풀어낸 ‘내 얘기’들은 산재한다. 누구든 그를 볼 수 있다. 아니 누구든 그를 ‘온전히’ 볼 수 있다. 이랑의 서사는 언제나 티끌 없이 맑고, 거짓 없이 온전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앨범의, 나아가 ‘이랑’이란 아티스트의 핵심이다. 끊임없이 토해내는 그의 이야기들은 솔직함을 타고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하게 다가온다. 삶에 밀착해 회고하는 친구, 가족, 죽음, 가난, 사랑, 일 따위의 것들이 이랑을 통해 순수하게 투영된다. 끝없이 그의 음악이 환호받는 것은 이 정제되지 않은 고백에서 시작될 것이다. 하나하나 곡이 쓰인 배경을 묻고, 듣고 싶게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래서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음반. 착실하게 두 땅에 발을 붙여 올곧게 ‘나’를 외쳤고 되돌아 울려 퍼지는 메아리는 그렇게 ‘우리의 것’이 된다.

  • – 수록곡 –
    1. 늑대가 나타났다 
    2. 대화
    3. 잘 듣고 있어요
    4. 환란의 세대
    5. 빵을 먹었어
    6.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 
    7. 그 아무런 길
    8. 박강아름
    9.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10. 환란의 세대(Choir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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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성 ‘수몰’ (2021)

평가: 3.5/5

덥고 습하고 동시에 건조하다. 그 이질적인 온도와 습도만큼이나 음반이 주는 잔상은 묘하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건드리는 것 같으면서도 또 때로는 곁에 두면 마음을 저릿하게 찌르는 순간들을 소환한다. 각 수록곡이 제시하는 풍경과 시대 역시 서로 다르다. 천용성이 만들어낸 노래 속 주체는 사는 게 조금 무력해진 듯 보이는 중학생, 눈 오는 새벽 당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어린아이를 거침없이 오고 간다. 그리하여 앨범은 지금의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노래한다. “분하고 더럽”지만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삶을 말이다.

2019년 < 김일성이 죽던 해 >란 독특한 제목의 첫 정규 앨범을 선보인 천용성은 시작부터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일상의 언어로 나지막이 써 내려간 그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포근한 선율과 만나 앙상블을 이뤘다. 이듬해 그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과 노래 부문에서 수상하며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세간의 기대만큼 들뜨지는 않았다. 여러 인터뷰와 음반 제작기를 담은 < 내역서Ⅱ >에서 고백했듯 쏟아지는 관심과 별개로 음악을 통해 얻은 수익은 적었다. 아니 부족했다. 그는 데뷔작의 성공을 두고 말한다. “우리끼리의 성공”이라고.

쉽게 조급해지지 않고 진중하게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심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음악 역시 그와 닮았다. < 수몰 >. 과거에는 누군가가 살았을 터전에 인위적으로 물을 채운다. 끝과 시작을 동시에 담고 있는, 그래서 어쩐지 마냥 명쾌하지만은 않은 단어를 주제로 삶을 그렸다. 어쿠스틱 기타,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 등 전작보다 확장된 악기들이 음반의 서정을 적절히 뒤받친다. 사랑하는 우리가 여기 있었음을 술회하는 ‘있다’, 먼저 간 친구 몫까지 살아내고 싶다 다짐하는 ‘거북이’ 등이 대표적인 트랙. 또 한편 맑은 음색을 가진 뮤지션 이설아와 함께한 타이틀 ‘수몰’은 재즈적인 터치로 밝지만 마음 한편의 쓸쓸한 감정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포착해냈다.

천용성의 음악이 특별한 건 바로 이 양면성에서 나온다. 밝음과 어둠이, 행복과 불안이 공존한다. 음악을 만드는 걸 두고 그는 ‘자아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그가 파괴한 것은 나를 요동치게 만든 어떤 감정의 장막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리차’가 빨리 식는 계절이 건네주는 시원함과 엄마의 자잘한 넋두리를 풀어낸 ‘설’날의 풍경이 제시하는 평범함. 그리고 죽음 이후 하늘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냐는 불안함을 담은 ‘어떡해’를 오가는 와중 어디에도 거칠 거나 강한 제시는 없다. 다만 거리를 두고 잔잔하게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삶을 또 저러한 삶을. 그를 거쳐 나온 음악에는 세상이 있고, 삶이 있고 우리가 있다.

– 수록곡 –
1.(feat. 시옷과 바람)
2. 거북이
3. 수몰(feat. 이설아)
4. 보리차(feat. 강말금)
5. 어떡해
6. 중학생(feat. 임주연)
7. 붉은 밤
8. 식물원(feat. 시옷과 바람)
9. 싶어요
10. 설
11. 반셔터(feat.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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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형 ‘사치'(2020)

평가: 4/5

탈맥락 · 탈시대, 그리하여 김제형

지난 10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김제형의 첫 정규 음반이 발매됐다. 소리, 소문이랄 것도 없는 조용한 등장이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음악 플랫폼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결과는 요원했다. 2017년 첫 EP < 곡예 >를 내놓고 올해 첫 정규를 냈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다.

뚜껑을 열고 음악을 만나보자. 이것 참 여러 가지 이유에서의 걸작이다. 우선 지난 EP가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의 감성을 노래했다면 이 작품은 장르 소환에 거침이 없다. ‘노래의 의미’는 레이 찰스의 명곡 ‘Hit the road jack’ 풍의 스윙으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위트. ‘음악의 쓸모없음(그럼에도 노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을 독특한 내레이션으로 고백한다. 친숙한 ‘고양이 춤’의 멜로디를 묘하게 비틀어 곡의 끝을 맺는 구성 또한 매력적이다.

이렇듯 큰 악기들을 활용해 사운드를 풍부하게 채운 노래들이 많다. 뮤지컬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나 편애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는 마음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애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뿅뿅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키치한 복고 감성을 내뱉는 ‘인정투쟁’ 역시 쉬이 넘길 수 없는 킬링 트랙. 기교 없이 굵고 정직한 목소리로 ‘어어’ 추임새를 넣는 센스 앞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킬 도리가 없다. ‘체 킷 아웃(Check it out)’하며 곡을 즐길 수밖에.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존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과 위트를 결합했다는 측면에서 얼마 전 < 청파소나타 >로 돌아온 정밀아가 떠오르고 그 이외에도 김목인, 김정균(김거지), 권나무 등이 그와 교집합을 가진다. 김제형이 새로울 수 있는 건 단박에 집중 조명을 쏘아도 문제없을 음악성에서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왈츠 리듬으로 기본을 잡고 바이올린이 탄탄히 곡을 견인하는 ‘농담에게’, 셔플 리듬의 진득한 일렉트릭 기타가 근사한 ‘아엠 새드’ 등 노래는 단단하다. ‘참을 수가 없어요 / 친구가 울었던 날 / 애인이 다쳤던 날’의 쉬운 가사와 명료하고 확실히 와 닿는 멜로디 사이 선연히 김제형의 존재가 빛난다.

어디선가 뚝 던져진 듯 등장해 바람처럼 좋은 음반을 내놓고 사라졌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이 음반은 세상의 어둠과는 별개의 유쾌함을 담았다. ‘실패담’, ‘남겨진 감정’과 같은 익숙한 발라드 구성이 간혹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앨범 안에서 노래들을 만났을 때 곡의 진부함은 오히려 익숙함과 친숙함으로 그리하여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뉴 잭 스윙,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소스를 맛있게 우려냈다. 김제형, 그는 누구인가!

– 수록곡 –
1. 노래의 의미
2. 실패담
3. 남겨진 감정
4.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
5. 넌 진실인 것처럼 굴었지
6. 인정투쟁
7. 일과 자신과 나
8. 농담에게
9. 아엠 새드
10. 편애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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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무엘(Samuel Seo) ‘UNITY II(2020)’

평가: 3.5/5

정규 음반 < The Misfit >(2019)의 발매 이후 한 장의 짧은 EP < DIAL >(2020)을 내놨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올해 발매한 2번째 미니 앨범이다. 작업량이 많고 빠르다. 음악적 욕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 중요한 건 빠르고 많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디스코그래피 < FRAMEWORK >(2015)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소포모어 < Ego Expand(100%) >(2016)에 선연히 새겨있듯 그의 시선은 늘 ‘나’에게 찍혀왔다. 치열한 고민과 서늘하게 외로운 감정들을 글감 삼아 노래를 뽑아내던 서사무엘. 이 풀-랭스는 그의 음악적 에너지가 여전히 생생함을 증명한다.

꼭꼭 씹어 자아를 탐닉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내뱉던 과거와는 다르다. 근래의 그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음악을 통해 ‘현재’, ‘지금’의 머릿속을 투영하듯 자유롭고 편안하게 곡을 쓴다. 지난 2018년 내놓은 < UNITY >의 후속작인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짧게 짧게 털어낸 노래들은 무겁게 상념에 젖은 주제를 읊지 않는다. 다만 순간의, 오늘날의 무언가를 풀어낼 뿐이다. 때로 그것은 ‘손에 손잡고 빙글빙글 둘러앉아(‘원’)’ 있던 모습으로 소환되고 또 때로 그것은 파란색의 이미지를 통해(‘청’) 그리움, 고독의 순간을 낚아챈다.

일정 부분 이 음악을 통한 스케치 즉, 빠르게 완성되는 곡들 사이 중심 구조가 겹치기도 한다. 단어를 툭툭 던지듯 노래하는 창법은 분명 서사무엘의 트레이드마크이나 그가 핵심 배경으로 삼는 음악적 장르는 몇몇 음반에서 분명 응집력을 흐렸다. 지난 정규 3집 < The Misfit >에 수록된 18개의 곡은 충분히 생생하지 못했다. 음악적 트레이드마크인 네오 소울을 근간으로 곡조나 배합이 뭉쳐지기보단 퍼졌고 이게 도리어 음반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혹은 앨범이 플레이리스트를 가볍게 스쳐 가도록 했다.

8개의 곡만을 지닌 이번 음반은 그래서 더 깔끔하다. 늘 그랬듯 재즈의 요소를 가져와 자유로움을 담았고 선율이나 중심 멜로디도 다부지다. 이중 돋보이는 것은 보컬 오버 더빙의 활용이다. 미끈하게 미끄러지는 일렉트릭 기타 슬라이딩이 매력적인 ‘굴레’,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사운드를 채운 ‘때’, 색소폰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타악기를 함께 섞은 ‘운’ 등 많은 노래에 보컬 오버 더빙이 등장.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등장 이후부터 그를 한결같이 대변하는 것은 성실함과 솔직함이다. 한 때 ‘왜 난 안될까 걱정 안 했으면 해(‘Y’)’ 노래하던 그는 지금도 ‘나만 제자리에 있는 그 느낌이 들 때(‘때’)’를 두려워하고 ‘결국 어떻게든 굴러갈 테니까(‘굴레’)’ 하며 의지를 다잡는다. 불안한 성장통과 함께 이를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이 꾸준함이 반갑다. 통합이란 제목의 이번 앨범은 그렇게 대중에게 가닿는다. 어떤 식으로든 뻗어 나가는 서사무엘의 의미 있는 생존작.

– 수록곡 –
1. 원
2. 이음
3. 청
4. 다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5. 굴레
6. 시선
7. 때
8.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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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늘 ‘연가'(2020)

평가: 3.5/5

잔잔한 물결이 조용히 밀려오듯 낮고 깊은 파고를 지녔다. 엄격히 수록곡들의 면면을 살피자면 자연스레 많은 음악가가 연상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그들의 명반 < Dreamtalk >(2012) 등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의 음악화. 즉, 가사를 통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어떤 순간을 곡으로 포착해냈던 공감각적 심상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 김일성이 죽던 해 >를 통해 자전적 스토리를 녹여낸 천용성, 파라솔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들려줬던 위트와 상상을 겸비한 노랫말. 사운드적으로는 신해경, 실리카겔이 선보인 몽환적 분위기가 음반의 전반을 감싼다.

기타 다양한 음악 동료들과의 교차점을 교류하지만 이 작품은 그 에센스를 끌어모아 지극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연가’는 ‘이 바람 속에 파란 싹은 뭘까 / 맞대진 사랑 속에 포근한 덩굴인가’라는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글로 문을 연다. 이어 레게리듬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보컬을 뿌리로 삼아 빳빳한 신시사이저를 밀어붙인다. 그룹의 작법은 이 세 개의 튼튼한 꼭짓점을 바탕으로 한다. 은유와 비유에 푹 젖은 말들, 곡에 슬며시 빠져들게 하는 불순물 없는 보컬, 이 모든 요소의 색감을 한층 살리는 건반. 굳이 하나의 특징을 더 꼽자면 공중그늘의 합은 아주 훌륭하다. 각 악기가 힘을 겨루지 않고 어우러지는 덕에 안개 같은 부유함이 부담스럽지 않다. 노래가 쉽고 그래서 잘 와 닿는다.

‘공중그늘’은 그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의 이름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공중캠프’, ‘나무그늘 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2016년 밴드를 결성, 2년 후인 2018년 첫 싱글 ‘파수꾼’을 발매했다. 이 세월과 같이 꾸린 추억은 그대로 그룹의 정수가 된다. 리드미컬한 신시사이저가 돋보이는 ‘타임머신’, ‘소꿉장난 같은 세상 속에서 / 내겐 돌아갈 곳이 없어’ 노래하는 ‘모래’, 장난스런 선율 사이 씁쓸함을 녹여낸 ‘비옷’ 등 대다수의 곡은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을 노래 안으로 소환한다. 향수 어린 회고는 일면 지독한 독백이 되기 십상. 허나 이들은 그 개인성을 보편적 익숙함으로 돌려내며 보다듬을 전한다. 호소력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분명 밴드에게는 허술한 겉멋이나 허세가 없다.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선명한 인상을 남길 튼튼한 곡들이 가득 차 있다.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보이스 장필순이 보컬로 참여한 ‘연가 2’가 결코 앨범에서 튀지 않을 만큼 이 5명의 루키들은 완숙된 역량을 펼쳐낸다. 아스라이 묻어 나오는 그리움, 쓸쓸한 사랑, 텁텁한 순간들을 옅은 회색빛 어조로 노래하지만 그 편린이 싫지만은 않다. 밝고 강한 에너지가 아닌 조금은 어둡고 강한 이들의 노스탤지어. 서정적인 ‘연가’가 찬 바람 부는 가을날 더없이 좋은 음악적 환유를 불러온다.

– 수록곡 –
1. 새출발
2. 계절
3. 연가
4. 타임머신
5. 모래
6. 그사이
7. 비옷
8. 보보
9. 역
10. 숲
11. 연가 2(Feat. 장필순)
12.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