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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 인터뷰

독특한 마케팅 요소로 눈길을 끈다 해도 좋은 음악만 한 정공법이 없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신인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운 < The Fifty >를 시작으로 K팝 팬들은 물론 국내외 평단의 호평을 이끌며 그 불변의 진리를 몸소 증명해 내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과하게 반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파고들 수 있는 방도를 깊이 모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색깔’이란 단어가 이들의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아우를 수 있는 컬러를 찾기 위해 네 명의 소녀는 여전히 활동의 주체가 되어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도회적인 디스코 트랙 ‘Cupid’로 좋은 음악을 갈망하는 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화살을 겨눈 지금, 당차고 싱그러운 에너지로 더욱 짙어진 피프티 피프티만의 색채를 확인해 보라.

▶ 좌측부터 아란, 시오, 새나, 키나

최근 ‘Cupid’가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에서 주간 8위를 기록했고 뮤직비디오엔 유튜브 공식 계정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새나 : 내가 아는 그 빌보드, 유튜브가 맞나 하고 두 눈을 의심했다.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당장의 지표보다 팬들이 피프티 피프티의 음악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이렇게 주목해 주는 순간에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마인드를 되새겼다.

세계적으로 관심받을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데뷔 EP < The Fifty >의 공이 크다. 앨범에 수록된 4곡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새나 : 호응에 대한 본능적인 확신이 있었다. 비슷한 질감의 트랙 ‘Tell me’, ‘Lovin’ me’, ‘Higher’와 완전 반전 이미지를 갖고 있는 ‘Log in’만으로도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스타일을 상당 부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키나 : 소위 말하는 ‘걸크러시’ 음악이 최근에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유행과 결을 달리하는 콘셉트로 우리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갔다.

앞서 언급한 ‘Log in’은 다른 세 곡에 비해 동시대 걸그룹들의 음악과 큰 차이가 있진 않다.

새나 : 사실 ‘Log in’과 ‘Higher’를 두고 어떤 곡을 메인 타이틀로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처음엔 아무래도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Log in’ 쪽으로 의견이 몰렸지만 두 곡을 계속 듣다 보니 ‘Higher’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 회사와 긴 상의 끝에 ‘Higher’가 메인 타이틀이 될 수 있었다.

‘Higher’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

새나 : 구름 같은 매력이지 않을까. 몽글몽글한 멜로디가 잔향이 오래 드리우는 향수처럼 은은하게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2곡에 대한 첫인상도 궁금하다.

아란 : ‘Tell me’는 가장 발랄한 느낌의 시티팝이다. 그런데 디렉팅 때는 마냥 발랄하지 않게 불러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행복한 건 아니니까 그런 역경까지 이겨내면서 나는 너를 계속 알아가고 싶다는 내용을 노래하는 트랙이었고, 그 주체가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멤버 모두의 생각을 고루 녹여냈다.

시오 : ‘Lovin’ me’의 경우 데모 버전과 가사가 달라졌다. 회사 측에서 우리 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다고 먼저 의견을 주셨고 기존 노랫말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단어들이 어우러지면서 ‘Lovin’ me’가 완성됐다. 그리고 노래 자체도 ‘Higher’, ‘Tell me’와는 다르게 EDM 사운드를 강조해서 색다른 감상을 선사했다.

▶ 아란(리드보컬, 리드래퍼), 시오(메인보컬, 리드댄서)

신곡 ‘Cupid’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만 이전에 비해 힘을 좀 뺐다는 느낌이 든다.

아란 :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부드러워졌다. 큐피드가 쏜 화살 덕분에 사랑을 비롯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겠지만 우리 모두 그런 도움 없이도 충분히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Cupid’ 트윈 버전에선 랩이 아예 빠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키나 : 애초에 원곡 자체가 편안한 감상을 노린 만큼 전략적으로 랩을 완전히 제거한 트윈 버전도 수록하게 됐다. 오리지널 버전은 방송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적인 부분도 고려해서 4명의 다채로움을 담는데 집중했다면 트윈 버전은 좋은 멜로디와 비트를 더욱 앞세워 차별점을 두었다.

그런 면에서 멤버 모두 보컬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한 것 같다.

시오 : 자신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않을까. (웃음) 보컬이야말로 우리가 당차게 내세울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다. 물론 앞으로도 발전해 나갈 길이 멀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나다기 보다 우리만의 색깔이 뚜렷하다는 쪽으로 해석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아란 :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무조건 나의 색깔을 잡아둔다. 그전에 끝마치지 못한다면 결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서 항상 심도 있게 시간을 두고 고민하는 편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 노래에서만큼은 우리라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자부한다.

닮고 싶은 보컬이 있다면.

아란 : 딘과 크러쉬는 확실히 다르다. 딘은 사용하는 패턴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송폼이 다채롭고, 크러쉬는 타고난 리듬감 덕분에 귀로 음악을 듣는데 마치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어넣는다. 똑같이 하려고 해봐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노래도 마냥 부른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닫고 내 색깔로 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연구 중이다.

시오 : 보컬만 따진다면 팝 가수 예바(YEBBA)를 뽑고 싶다.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릭(Lick, 짧은 음계 간 연결) 노트를 정말 특이하게 사용한다.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기 때문에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그의 탁월한 능력을 많이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새나 : 젊은 한국 가수 중에서 이하이처럼 깊은 소울을 품고 있는 뮤지션은 흔치 않다. 툭툭 내뱉는 노랫말에 특색 있는 애절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 역시 확실하다. 나도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키나 : 비비를 굉장히 존경한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 들 때 목소리 톤에 변화를 주거나 랩, 보컬을 섞어서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새나(리더, 메인댄서, 서브래퍼), 키나(메인래퍼, 서브보컬)

매체에서는 보컬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아란과 시오를 많이 언급하지만 새나와 키나 역시 수준급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키나는 과거 드라마 < 달리는 조사관 > OST에 참여해 ‘Take back my life’라는 곡으로 수준급의 가창력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둘의 보컬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키나 : 아무래도 아직은 아란이와 시오가 보컬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고 판단해서 지금처럼 파트 배분이 이뤄졌다. 물론 나와 새나 만의 색깔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음색에 어울리는 곡을 받았을 때 언제든 참여할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들려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룹의 합을 보여주기 바쁜 데뷔 초반임에도 둘이서 부른 곡이 많다. 노래에 참여하는 멤버는 어떤 식으로 정해진 건지 궁금하다.

키나 : 녹음할 때마다 멤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불러보고 감성이 가장 잘 맞아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멤버에게 그 파트 혹은 트랙을 맡겨 주신다. ‘Lovin’ me’는 새나와 시오가 좀 더 잘 표현을 했었고 ‘Tell me’처럼 아련함이 돋보이는 목소리는 아란이가 정말 잘 뽐낼 수 있었다. 나는 작사에 참여해서 랩을 비롯한 노랫말들을 조금 더 내 포인트에 맞게 조절하면서도 멤버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랩을 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래퍼는 누구인가.

키나 : 해외 아티스트 중에선 도자 캣. 랩은 물론 보컬까지 통합하며 본인의 색깔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본받고 싶다. 국내에선 김하온과 저스디스를 많이 찾아 듣는다. 특히 비방어 하나 없이 본인의 느낌으로 풀어내는 김하온을 리스펙한다.

멤버들의 참여도가 상당해 보인다. 본인들이 작업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키나 : 아직은 30% 정도 같다. 당장엔 나만 작사에 참여했지만 멤버들도 작사, 작곡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 커서 점점 참여도가 올라갈 것이다.

새나 : 40~50%라고 생각하는데 신인에겐 이 정도도 아주 큰 기회라고 본다. 덕분에 우리 색깔이 많이 반영되었고 결과적으로 좋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채워나갈 스펙트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좌측부터 키나, 아란, 새나, 시오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키나 : 어릴 때 우연히 에이핑크의 콘서트 영상을 접했었다. 무대 위에서 본인 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팬분들과 공감하는 모습이 크게 와닿았고 나도 그런 가수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변심 없이 오로지 가수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시오 : 원래 명확한 진로 없이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아이였다. 노래, 그림, 춤과 같은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깊었고 그중에서도 음악, 특히 팝을 좋아해서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때 샘 스미스, 라우브, 트로이 시반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아란 : 4~5살 즈음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나왔는데 거실에 있던 컴퓨터로 하루 종일 그 노래만 틀어 뒀던 기억이 난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들었던 걸 보면 그때가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새나 : 10살쯤에 베스티의 무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춤을 따라췄던 적이 있다. 그때 아이돌에 눈을 뜨게 되면서 나도 저런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엄마께서도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드셨다고 말씀해주셨다.

새나는 데뷔 전에 댄서를 꿈꿨다고 들었다.

새나 : 본격적으로 아이돌을 준비를 하던 중에 춤에 완전히 빠져버린 케이스다. 전문 댄서가 되기 위해 몇 년 동안 무대에 많이 올라보고 대회도 부지런히 참가하며 경력을 쌓았는데, 아이돌의 꿈을 차마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번번이 고배를 마신 탓에 마지막 기회란 생각으로 지금 회사에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해서 데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떨어졌다면 댄서로 활동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발매한 5곡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안무가 있다면.

새나 : 퍼포먼스적으로 보면 ‘Log in’의 기승전결이 깔끔하다. 하지만 보기에 부담 없고 4명의 색깔이 확실하게 묻어 나오는 건 ‘Cupid’라고 본다. 아무리 구성이 뛰어나도 우리가 그 순간을 더욱 즐기며 표현해야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각자 파트를 어떻게 살릴지 깊게 고민하고 춤에 반영했다.

▶ 좌측부터 아란, 새나, 시오, 키나

데뷔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아 본다면.

키나 : 아무래도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 출연했을 때가 아닐까. TV에서만 보던 무대에 내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새나 : 이번 ‘Cupid’ 활동 때 객석에 몇몇 팬분들이 계셨는데, 무대를 하는 중에 인이어 사이로 우리를 응원해 주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아주 큰 힘이 되었다. 피프티 피프티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시오 : 모든 곡을 통틀어서 ‘Lovin’ me’는 가장 먼저 우리 이름으로 받았던 곡이다. 그래서 딱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드디어 연습생을 넘어 프로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뭉클했다.

아란 : 최종 녹음본이 나올 때마다 항상 짜릿하다. 특히 타이틀곡인 ‘Higher’는 의도한 바대로 나온 부분도 있고 다르게 들어간 부분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결국엔 조화롭게 들려서 더 크게 와닿았다. 내가 부른 노래가 음원으로 세상에 공개되고 앞으로 내가 이 노래를 가지고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딱 그때인 것 같다.

멤버들이 정의하는 피프티 피프티의 음악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새나 : 순수함이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먼저 입히려 하지 않고 기본적인 것들을 챙기면서 그 위에 다른 색채를 가볍게 덧대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 대중음악, 그리고 K팝 신에서 어떤 팀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시오 :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 그리고 음악이 좋은 그룹으로 남는 게 우리의 목표다.

아란 : 피프티 피프티라는 장르로 남고 싶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이건 완전 피프티 피프티 음악이네’라고 하며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새나 : 무대 자체를 즐기는 그룹으로 기억되고 싶다. 막연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게 아니라 음악에 몰입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보는 사람들도 무대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키나 : 다 중요하지만 오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장수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

진행: 임진모, 소승근, 장준환, 임동엽, 정다열
정리: 정다열
사진: 임동엽, ATTRA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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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 인터뷰

누구에게나 처음은 떨리는 순간이다. 하지만 열아홉 소녀의 시작엔 현재에 대한 걱정보다 미래를 향한 기대만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 듣던 노래에 이끌려 가수의 꿈을 키워온 규리는 2022년 11월 첫 EP < Open The Door >를 발표하며 어엿한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해 나갈 것을 알렸다. 조심스레 음악계의 문을 열어젖힌 만큼 앳된 느낌이 묻어나는 소곡집이지만 그간의 이력과 구석구석 닿아있는 노력의 흔적을 보고 그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신인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23년이 코앞에 다가왔던 12월의 어느 밤, 한창 10대를 마무리하느라 바쁠 규리가 이즘과의 인터뷰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대화 속에서도 수줍게 머금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는 아직은 그저 배우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며 내면의 순수한 열정을 차분히 내비쳤다. 새로운 나이대를 앞둔 음악 새내기의 당찬 포부를 공개한다.

첫 미니앨범 < Open The Door >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 Open The Door >, ‘내 음악의 첫 문을 연다’는 콘셉트로 그간 만들어둔 노래들 중에서 풋풋함이 묻어나는 곡 위주로 구성한 앨범이다. 지금만 남길 수 있는 기록을 온전히 내 힘으로 완성하고 싶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해내고자 했다. 나중에 더 커서 19살 규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한 노래가 많지 않음에도 곡마다 다채로운 음색이 흐르고 있다.
타이틀곡 ‘Open the door’는 조심스럽고 설레는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박자감을 살려 노래했고, 반면 ‘고양이’의 경우엔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귀엽고 상큼하게 불러 보려고 노력했다. 내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곡은 이번 앨범에 실리진 않았지만 기타 하나에 의지해 써 내려간 ‘사막’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사막’이란 곡으로 < 제3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어린 소녀가 노래하는 ‘사막’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사막’은 2021년에 기타 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쓴 노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던 2020년부터 코로나가 퍼져서 축제나 체험학습처럼 소중한 추억들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막막한 현실을 사막에 빗대었고 바다를 향해 가겠다는 이야기로 풀어내 지금보다는 나아질 상황 속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겠다는 의지를 가사에 녹여냈다.

보통 기획사 오디션이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계에 데뷔하는 편인데, 규리는 그 첫걸음으로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유재하라는 가수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경연에 참가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내가 만들었던 노래들을 들어보시고 나가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신 덕분에 경험 삼아 참가하게 됐다. 전년도에도 출전해서 예선 탈락을 했었던 탓에 큰 기대는 없었는데 2022년엔 생각지도 못한 값진 성과를 거두게 되어 그야말로 감사할 따름이다.

2015년 12살의 나이에 대선배인 양희은과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 적이 있다. 어떤 계기로 연이 닿은 건가.
사실 아버지께서도 음악계에 몸담고 계시다. 안치환 선생님의 ‘내가 만일’을 작사, 작곡하셨고, 양희은 선생님과도 몇십 년간 친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며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비롯한 많은 곡들을 함께 작업하셨다. (김영국, 과거 활동명 김범수) 두 분께서 워낙 친분이 두터우시다 보니 나도 유년 시절부터 자연스레 양희은 선생님과 사석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가 딸에게’는 아버지께서 프로듀싱을 맡은 양희은 선생님의 싱글 프로젝트 < 뜻밖의 만남 >을 통해 참여하게 된 곡이다. 당시에 어린아이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한번 녹음을 했었는데 선생님께서도 내 목소리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해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최근까지도 선생님 콘서트에 따라다니면서 ‘엄마가 딸에게’를 함께 부르곤 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양희은 선배에게 들었던 조언이나 배운 점이 있다면.
공연이 끝난 후에 가끔씩 손 편지를 써 주시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번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 본선 직전에도 기회가 생겨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대기실에서 즉석으로 ‘사막’을 들려드렸다. 내가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걸 선생님도 처음 보셨는데 기타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악기들이 좋으니 하모니카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들도 다양하게 배워보라고 알려주셨다. 최근에 있었던 12월 공연에도 찾아와주셨는데 무대 매너를 비롯한 현실적인 부분들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다.

음악에 흥미를 붙이게 만들어 준 가수나 노래가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테일러 스위프트의 4집 < Red >에 수록된 ’22’라는 곡을 처음 들었는데 막연하게 밝고 신나는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반복하며 따라 부르곤 했었다. 그렇게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직접 작곡한 노래에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가수였고 혼자서도 무대 위를 꽉 채우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게 되었다. 훗날 한국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되고 싶고 그렇게 유명해진다면 꼭 듀엣을 해보고 싶다.

테일러 스위프트 말고도 즐겨 듣는 아티스트가 있는지.
특별히 가리지 않고 넓게 접하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팝을 많이 듣는다. 혼네(HONNE)는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만들어서 들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고 비슷한 나이 또래인 빌리 아일리시도 자기만의 색깔이 확고해서 자주 찾게 된다.

국내에서는 악뮤를 좋아한다. 특히 < 항해 >라는 앨범을 자주 듣는데 가사나 스토리 라인이 잘 짜여 있어서 그런지 둘의 하모니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리고 작사, 작곡, 편곡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팀의 모든 노래를 책임지고 있는 이찬혁처럼 멋진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

크레디트 곳곳에 이름을 올린 것만 봐도 이미 다재다능한 것 같다. 이른 나이부터 음악 제작에 뜻이 있었는지.
어릴 땐 피아노랑 드럼을 배웠었고 중3 때는 미디까지 익히면서 직접 내 노래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전문적으로 장기간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작곡할 때 기타 코드를 모르는 게 아님에도 특별히 코드를 인지하지 않고 귀로 들었을 때 좋은 쪽을 찾아가는 편이다. 예전부터 계속 음악을 즐겨 들었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부모님께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항상 내 선택을 존중해 주면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직접 곡을 쓰다 보면 분명 창작의 고통을 느낄 텐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의외로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이 음악 작업이었다. 그래서 뭔가 힘들다는 인식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 앞으로 더 깊이 배워가면서 난관을 마주칠 수 있겠지만 되도록 즐긴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다.

음악으로 입시에 대한 압박을 덜어낸 덕일까 스페인어 과로 대학 진학을 한다고 전해 들었다. 음악이 아닌 쪽으로 전공을 택한 이유는.
그동안 음악을 좋아하긴 했는데 실용음악과를 간다거나 학업을 중단하고 음악에 매진하겠다는 생각까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하던 공부에 집중하여 일반 학과로 진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통해 더 많은 걸 다양한 시각으로 듣고 배우고 싶다.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나중에 라틴 음악을 비롯한 남미 지역의 문화까지도 잘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여러모로 기대가 된다.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음악 스타일이 있다면.
알앤비, 발라드, 록으로 나눌 것 없이 장르를 특정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이것저것 도전해 볼 생각이다. 당장엔 규리만의 스타일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면 언젠가 나만의 색깔을 확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2023년 드디어 20대를 맞이하게 됐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어떤 내용으로 써 내려갈 예정인지.
아직 특별히 정해둔 건 없지만 일단 스무 살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벅차다. 그저 멋지게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첫 번째 작품에선 마냥 맑고 명랑한 느낌이 강했다면 앞으로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질적으로 성숙한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고자 한다.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갈 작은 기록들에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다.

가요계에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과거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에게 별빛이고 싶다. 낮에는 밝아서 안 보일 뿐이지 별은 언제나 하늘 위에 떠 있다. 내 음악도 항상 사람들 곁에 머무르면서 그들이 지쳐 어두워졌을 때 옆에서 위로와 용기의 빛을 밝혀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고 싶다.

끝으로 규리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음악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막연한 글이 아니라 멜로디와 노랫말이 어우러진 내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아직은 들어주시는 분이 많이 없겠지만 나중에 더 알려졌을 때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다.

진행: 소승근, 장준환, 임동엽, 정다열
사진: 임동엽
정리: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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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IZM 뮤직 아카데미] Back To The 80’s

강의소개
이즘이 새로운 음악 강좌 [Back To The 80’s]를 시작합니다. 최근 대중음악의 키워드는 복고, 레트로입니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 음악이 그 중심이죠. 이번 강의는 가장 화려했던 1980년대 팝 음악을 조명합니다. 큰 스피커로 함께 모여 제대로 음악을 듣고,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문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의 번호로 연락 주세요.

* 일시: 2023년 2월 23일 ~ 3월 9일 (매주 목요일, 3주 과정) 저녁 6:30 ~ 8:30
* 장소: 빅퍼즐 문화연구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70-26, 2층)
* 강사: 이즘 대표 겸 라디오 작가 소승근 (한동준의 FM POPS 작가로 활동 중)
* 수강료: 10만원 (개별 강좌 신청 가능 / 강의 1회 당 4만원)
* 수강신청 기간: 2023년 1월 6일 ~

* 문의: 010-2784-9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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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
1. 1980년대의 역주행
2. 1980년대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3.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M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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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조금이나마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왔듯 음악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희로애락으로 가득 찼던 2022년, 이즘 에디터의 일상을 파고든 노래는 무엇일까. 각자 취향을 녹여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소소한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정다열’s Choice

릴 나스 엑스(Lil Nas X) ‘Star walkin”
깜빡일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별들의 서사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50(이오공) ‘춤을 추어요’
세월에 익어 물든 기타 연주와 목소리를 벗 삼아.

언텔(Untell) < Human, The Album >
인간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근본적인 물음에 날을 부딪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향연.

신해경 ‘리얼러브 (Feat. 청하)’
양극단의 아티스트를 이어준 오작교 위의 황홀경.

그웬노(Gwenno) < Tresor >
익숙한 듯 낯선 미지 세계 속 보물. 위로라는 감정에 언어 장벽이 무슨 소용인가.

장준환’s Choice

MJ 렌더맨(MJ Lenderman) < Boat Songs >
마이크(The Microphones)를 든 채 인도(Pavement) 위 나타난 현대판 ‘마티 맥플라이’.

길라 밴드(Gilla Band) ‘Post Ryan’
어느 날 자택으로 배달된 택배. 그리고 이 불길한 난수 암호에 빠져들게 된 당신.

선과영 < 밤과낮 >
실이 바쁘게 오가듯, 미소가 배시시 오가듯. 그 소박함이 넘실넘실.

펜타곤 ‘관람차 (Sparkling Night)’
빠져들기까지 10초, 벗어나기까지 10개월. 키노 감성의 무서운 마력이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 Chloë And The Next 20th Century >
세기를 연결하는 낭만의 무도회장. 미스터 틸먼, 나와 함께 춤을 추겠어?

염동교’s Choice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 Ice, Death, Planets, Lungs, Mushrooms And Lava >
1970년대의 잼(Jam)이 그립다면.

톰 제(Tom Zé) < Língua Brasileira >
MPB와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의 거목, 건재함을 과시하다.

FKA 트위그스(FKA Twigs) < Caprisongs >
스멀스멀 중독성 있는 앨범. 자꾸 손이 간다.

메가데스(Megadeth) <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 >
역시 메탈리카보다는 메가데스! 여전히 날카롭고 신랄하다.

뷰 파르카 투레, 크루앙빈(Vieux Farka Touré, Khruangbin) < Ali >
나른한 아프로 사이키(Psyche). 결은 다르지만 진저 베이커와 펠라 쿠티의 협연이 떠오른다.

김성욱’s Choice

프로미스나인(fromis_9) ‘Dm’
머리 아픈 콘셉트들 사이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눈을 못 피하게, 말도 못 돌리게’ 만들었다.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 Memphis Special One Take Live >
멤피스가 주목한 ‘우리들의 블루스’. 2022 올해의 발견.

야드 액트(Yard Act) < The Overload >
갱 오브 포와 카이저 치프스 그사이 어딘가. 신랄하고 유쾌한 브렉시트 시대의 포스트 펑크.

비치 하우스(Beach House) < Once Twice Melody >
비치 하우스의 모든 앨범을 사랑한다. 이 앨범도 그렇다.

씨에이치에스(CHS) ‘Highway’
‘여름’하면 떠오를 노래가 하나 추가됐다. 8월 휴가철, 꽉 막힌 서울양양고속도로 위에서 들어보자.

임동엽’s Choice

텐투포(10 to 4) < 말하기 듣기 쓰기 >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 < Hypnosis Therapy >
정말로 최면에 걸린 줄 알았다.

이권형 < 창작자의 방 >
그저 음악을 할 뿐.

Various Artists < Elvi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위대한 유산.

원슈타인 ‘존재만으로’
막힘없이 편안하다.

김호현’s Choice

해파 < 죽은 척하기 >
불안은 이렇게 사랑을 끌어안고 기어이 잠깐의 휴식을 만들어 낸다.

이수정 & 강재훈 < Stellive Vol.56 | Duology: Live At Stellive >
한국 재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의 근사한 조합.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 ‘Never gonna be alone (Feat. Lizzy McAlpine, John Mayer)’
천재 마케팅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 Black Radio III >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최첨단 흑인음악 실험실.

도미 앤 제이디 백(DOMi & JD BECK) < Not Tight >
재즈 역사를 이끈 거인들의 어깨 위에 새로운 세대가 올라서다.

손민현’s Choice

글렌체크(Glen Check) < Bleach >
아직 어른이 되긴 이르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이찬혁 < Error >
어떤 예술가의 기행은 시대를 여유롭게 스쳐가기도 한다, 파노라마처럼.

9와 숫자들 < 토털리 블루 >
코로나에 무뎌진 현대인들을 위한, 시기적절한 푸른 위로 한 가닥.

에이비티비(ABTB) < ⅲ >
더 거세게, 더 열정적으로, 더 록스럽게! 새 연료를 주입한 ABTB의 질주.

키스 에이프(Keith Ape) < Ape Into Space >
해묵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Mull’.

한성현’s Choice

자브 이스…(JARV IS…) < This Is Going To Hurt (Original Soundtrack) >
자비스 코커만의 방식으로 보듬는 ‘따끔’한 세상살이.

1975(The 1975) <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 >
괜히 머리 싸매지 말고 쉽게 쉽게 삽시다.

미츠키(Mitski) ‘Glide (cover)’
인간과 로봇,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기억. 에테르는 실존할지도 몰라.

트리플에스(tripleS) ‘Generation’
유닛 시스템, Z세대의 시대정신? 다 떠나서 그냥 즐겁게 랄랄라.

유아 ‘Lay low’
유혹 대신 냉소를 품은 세이렌의 노래지만 홀리는 건 마찬가지.

백종권’s Choice

일삼공공(1300) ‘Rocksta’
시드니에서도 한국 힙합. 음악으로 맺은 FTA.

잭슨(Jackson Wang) < Magic Man >
꾸준한 탈피의 결과물. 장난기 넘치던 악동이 제대로 마이크를 쥐었을 때.

엑스지(XG) ‘Tippy toes’
한국식 제조 과정으로 구현한 미국의 맛. – (Made in Japan)

버둥 < 너에게만 보여 >
올 한 해 발버둥이 석연치 않았다 해도. 나, 너, 우리를 위한 ‘응원’ 소곡집.

사커 마미(Soccer Mommy) < Sometimes, Forever >
웰메이드 얼터너티브 록이 선사하는 평온한 꿈의 체험. 옥에 티는 풋볼 마미가 아니라는 점.

소승근’s Choice

우아!(woo!ah!) ‘별 따러 가자’
이 노래는 우아!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가설을 확인시켜준다.

우연, 민서 ‘Make u move’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 이후 최고의 시티팝.

트라이비(TRI.BE) ‘In the air (777)’
말이 필요 없다. 이게 대중음악이다. 최고의 야구 응원가.

뉴진스(NewJeans) ‘Hype boy’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요 멜로디와 쉬운 안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채연 < Hush Rush >
수록곡이 적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정리 및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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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팝 싱글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