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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재영 인터뷰

20세기 말 대중음악은 라틴 팝이 중심이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의 리키 마틴’이라는 홍경민과 백지영 등이 국내 흐름을 주도했으나, 그전에 이재영이 있었다. 

‘그대 떠나도’로 1989년 대학가요제 동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발을 들인 그는 1990년 1집 ‘유혹’으로 단숨에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뛰어난 가창력을 기반으로 ‘집시’, ‘대단한 너’ 등 후속 히트곡이 나왔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대중 음악계에서 자리를 옮겼다.

이재영을 발견한 곳은 뮤지컬이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등 이젠 뮤지컬 배우로 더 알려진 그가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은 SBS ‘불타는 청춘’. 근래 몇 년간 건강도 나빠지고, 2019년 부친상까지 당하며 고초를 겪었지만, 그는 지금 신작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며 완전히 새로운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좋은 음악이란 뭘까’를 항상 고민해왔다. 그리고, 이재영은 2021년 모든 것을 열어두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이재영을 만들고 있다.

오랜만에 뵙게 되어 정말 반갑다.  더 많이 환영받고, 더 많이 인기를 얻어야 할 인물인데 이상하게 운이 따르지 않아 영원히 방송에서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다시금 돌아온 배경은 무엇인가.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다. 사실은 아버지께선 내가 가수 활동하는 걸 제일 반대하신 분이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허락해주신 이후부터는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고, 네가 최고다.’라 말씀해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활동을 쉬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그 시기 혼자서 많이 애를 태우셨다고 한다.

왜 혼자서 애를 태우셨나?
활동을 통해 재능을 펼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게 아버지의 꿈이었고, 그렇게 하길 바라셨는데 내가 쉬고만 있으니 많이 답답하고 안타까워하셨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왜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직접 물어보셨다. 그럴 때마다 말다툼도 많이 했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딸이 음악을 하길 원해서 가수를 허락해 줬는데도 활동을 안 하니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신 거다. 

아버지의 병세는 어떠셨는지.
뇌경색으로 집에서 TV를 보실 일이 많았다. 옛날 나와 같이 활동했던 가수들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께서 딸 생각을 하신 것이다. ‘너도 저기 나와서 같이 활동을 하면 얼마나 좋겠냐…’라고 계속 그러셨는데 나는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러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나는 거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가수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열심히 안 하고 쉬고 있으니… 

갑자기 가요계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가 있다면. 
결국 우선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히트할 줄은 몰랐고, 그런 삶 가운데서 나만의 시간이 없다 보니 ‘부모님의 딸, 친구 이재영’은 사라지고 가수 이재영만 남게 되더라. 

두 번째로 제일 중요한 점은 팬들에게 나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음악만이 아닌 시대에 따라 자꾸 무언가를 보여주고,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한계를 느꼈다. ‘내가 지금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내 음악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진정성 있는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건가.’… 가수라면 한 번쯤 겪을 고민이다. 

그런 이재영이 2021년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 스타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떤 음악을 준비하고 있나?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뿌리는 라틴음악이라 생각한다. ‘대단한 너’ 도 그렇고 ‘유혹’ 도 그렇고… ‘어떤 길을 가야 내 색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것만이 아닌 다양성 시대에 맞춰 다양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재영의 방향이 아니라 이재영이 하지 않았던 음악에 도전하고 있다.

그럼 레코딩 중이라는건데, 작업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1990년대 초 열심히 활동할 때 현진영이 ‘누나 힙합 여전사로 만들어줄게!’라고 지나가며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 현진영은 정말 ‘힙합 문익점’ 아니었나 (웃음). 데뷔 초에 자기 하기도 바쁠 텐데 방송에 먼저 데뷔한 덕인지 내 활동도 모니터링해주고, 신경도 많이 써주면서 배려해주는 모습이 당시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0년 2월 KBS ‘불후의 명곡’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진영아, 너 누나 힙합 여전사 만들어준다고 했잖아. 약속 지켜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앨범 프로듀서로 현진영이 참여했다. ‘새로운 이재영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말했고, 나는 ‘네가 키를 잡고 움직이는 거에 따라 맞춰가겠다. 네가 나를 한번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코로나 19도 있고 개인 활동도 있다 보니 조금은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타이틀곡 이름은 무엇인가.
‘끗발’이라는 이름의 재즈 힙합이다. ‘누나 힙합 여전사 만들건대 재즈 힙합 하나 첨부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족도는 어떤가.
내 곡이라 그런지 몰라도 만족스럽다. 우선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좋지만… 사실 현진영과 작업하면서 많이 혼났다. 처음부터 박자도 다시 배웠고, 리듬 타는 법이나 가창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듬었다. 

최근 케이팝 시장 후배 가수 중 눈여겨 보고 있는 가수는?
어느 가수든 놀랍다. 우리 때와는 모든 게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부럽고 멋지다. 내가 선배지만 배울 점도 많다.

대선배로서 이재영이 후배 가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만의 개성은 무엇인가.
아이돌과 경쟁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이재영은 그냥 이재영이다. 각자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야 하는 거라 생각한다.

과거곡 중 ‘유혹’,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 ‘집시’, ‘대단한 너’, ‘이별없는 세상에서’ 이 곡 중 지금의 이재영이 다시 할 수 있는, 최근에도 다시 해보고픈 스타일이 있나.
‘대단한 너’가 내 목소리를 잘 표현해준 곡이라 생각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록 창법을 파워풀하게 담아낸 곡이다.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이재영은 록의 거친 소리를 동경해 자신의 미성이 싫었다고 고백했다. 판소리를 배우면 파워풀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1990년 대학가요제 참여 후 1년 정도 판소리에 입문하기도 했다는 후문.

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폭포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노력한 그의 감성은 ‘이별 없는 세상에서’에 그대로 녹아있다. 김명곤이 작곡한 이 대곡을 위해 이재영은 로라 브레니건의 ‘Power of love’를 한참 동안 듣고 연구했노라 밝혔다. 지금 들어도 20대 초반 나이에 불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이재영의 명곡이 바로 ‘이별 없는 세상에서’다.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께서 굉장히 엄하셨는데 그 답답했던 마음을 노래로 터트리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1993년 2집 < My Dream >에 ‘나의 꿈’이라는 노래가 나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은 너무 감사하지만, 나름대로 자유의 나래를 펴고 싶었다. 

아무도 없을 때 방에서 음악 틀어놓고 미친 듯이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게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메탈리카, 딥 퍼플 좋아했고…(웃음) 나도 소리를 질러야 하기 때문에… 그때 음악을 들으면 내 속도 시원하게 뻥 뚫렸고 나도 같이 질렀다.

기본적으로 록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현진영과의 재즈 힙합 작업은 어렵지 않은가.
다시 하는 입장에서 이번에는 나의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당시 TV에 나왔던 타이틀 곡은 ‘유혹’이었다. 당시 PD의 선택이 댄스곡이라 ‘유혹’을 밀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방송국 공개 전 일반인 모니터링을 했는데, 당시에는 댄스 발라드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라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와 ‘유혹’이 사전 조사에서 대중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를 밀고 ‘유혹’, 그다음 ‘이별 없는 세상에서’를 홍보하려 했었다. 그런데 방송국에 음반을 가져갔더니 모 피디님이 유혹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주셔서 유혹을 먼저 밀게 되었다.

당시 파격적인 안무로 화제를 모았다.
모든 억압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백업댄서들과 합을 맞추기보다 음악에 따라 내가 느낀 대로 상황과 느낌에 맞춰 춤을 췄다. 당시 방송국 무대를 보면 모든 춤사위가 다르다.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도 참 절묘한 곡이다.
미들 템포에 살짝 펑키한 요소들이 적재적소 세련되게 잘 들어간 곡이다. 그래도 타이틀이었던 ‘이별 없는 세상에서’가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유혹’은 물론 히트했지만 대중에 이재영의 이미지를 각인해버린 느낌도 있다. 그런 점에서 타이틀 선정이 아쉽기도 한데…
다섯손가락의 이두헌 선배님이 처음 곡을 써줬을 때 깜짝 놀랐다. 어떻게 보면 다섯손가락도 록 밴드인데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주실지 몰라서 놀라웠지만 놀라웠지만 마음에 들었다. 편곡은 김명곤 선생님이 하셨는데 이렇게 라틴으로 나올 줄 생각도 못 했다.

2집, 3집까지 총 세 장의 정규 앨범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노래를 꼽아본다면.
다 좋지만 역시 ‘이별 없는 세상에서’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이재영을 만든 인생의 노래가 궁금하다.
산타나의 ‘Smooth’,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 팻 베나타의 ‘Heartbreaker’,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마지막으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정리 : 임동엽
촬영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