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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3. IZM 필자들이 뽑은 ‘역주행 되기를 바라는 곡’

‘역주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작년 5월 진행했던 차트 역주행 특집이 정확하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IZM 필진들의 사심이 가득 담긴 ‘제발 한 번쯤 역주행했으면 하는 곡’을 소개한다. 숨겨진 명곡, 아쉬운 매치업, 앞서간 작법, 혹은 발굴의 의미까지… 필자마다 천차만별인 기준 만큼이나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리스트가 탄생했다. 아직은 ‘희망 명단’에 불과하더라도, 언젠가 도약할 그날을 위해 같이 회고하는 것은 물론이요, 독자 역시 자신만의 선정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마이걸 ‘한 발짝 두 발짝’
설렘의 감정을 스트링 선율로 물들인 멜로디와 완성도 높은 멤버들의 하모니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속사 선배 B1A4 진영이 선물해준 이 곡은 발매 당시 큰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지만 점차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명 ‘갓 발짝 킹 발짝’의 칭호를 획득했다. 진가는 노랫말에 있다. 풋풋한듯 비장하게 건넨 ‘거리두기 완화 고백법’으로 가사의 미학과 시의성마저 겸비한 ‘한 발짝 두 발짝’은 지금 당장 컴백한다 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 2020년 전국에 물보라 주의보가 발령되기 4년 전부터 이미 오마이걸의 핑크빛 바다(Pink Ocean)는 일렁이고 있었다.

블로섬즈(Blossoms) ‘There’s a reason why (I never returned your calls)’
따스한 햇볕처럼 쏟아지는 신시사이저에 벚꽃 필 무렵의 1980년대가 아른거린다. 떠나간 연인을 향한 속앓이와 미련 섞인 투정은 사랑에 서툴렀던 모두의 지난날을 끄집어내 복잡한 감정을 안기다가도, 이 마성의 리프 앞에 곧장 추억으로 미화된다. 데뷔부터 노골적으로 과거 시제를 겨냥해온 블로섬즈의 집념이 끝내 열매를 맺은 것.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멜로디와 선배 그룹 스웨이드를 연상케 하는 톰 오그던의 고풍스러운 음색은 청취를 넘어 회상의 영역까지 안내한다. 향수, 계절성, 공감대, 그리고 뉴트로. 역주행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곡이다.

이박사 ‘몽키 매직-우주몽키(Feat. 윈디시티)’
어느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트로트라고 답하는 젊은이는 흔치 않다. 급격한 사회 변혁을 거치며 젊은 세대와 윗세대 사이에 취향의 장벽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트로트계의 이단아 이박사에게 세대 간의 담은 대수롭지 않다. 그는 특유의 독창적인 매력을 소통의 열쇠로 삼아 록 페스티벌의 관중을 당당하게 호령한다. 빠른 템포의 고속도로 사운드로 일관했던 이박사의 ‘몽키매직’을 사이키델릭한 편곡으로 풀어낸 윈디시티의 역량이 곡에 매력을 더한다. 트로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금 이박사와 윈디시티의 ‘몽키 매직-우주몽키’는 트로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할 수 있는 곡이다.

테빈 켐벨(Tevin Campbell) ‘Can we talk’
힙합과 알앤비가 손을 잡은 이래 서로의 장점을 한 음악에 녹여내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둘 중 어느 장르인지 구분이 모호한 곡도 많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와 탄탄한 실력의 보컬, 낭만적인 가사의 1990년대 알앤비가 그리운 이들에게 ‘Can we talk’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에 이미 히트했던 이 곡은 비트에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다면 분위기나 콘셉트에 경도된 음악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노래다. 지금의 경향이 좋아도 가끔은 알앤비는 알앤비대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기본에 충실한 노래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상은 ‘더딘 하루’
‘삶은 여행’, ‘언젠가는’ 등 따뜻한 온도의 곡과 동양적 색채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장르를 배합하는 < 공무도하가 > 스타일. 이 양단의 끝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뮤지션 이상은의 핵심이자 빼어난 강점이다. 인기의 정점을 누리던 중 돌연 활동 중단 및 유학을 선언한 뒤 1991년 발매한 동명 음반의 타이틀 ‘더딘 하루’는 그런 그의 과도기를 담고 있다. 잔잔하게 시작해 수직적 울부짖음으로 향하는 구성은 ‘담다디’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그 시절, 대중의 기대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만큼 폭발적이고 이만큼 반전의 충격을 안기는 곡은 잘 없다. 보시라, 들어 보시라. 어떤 식으로든 모창하거나 밈(meme)화 하게 될 것이니…

티건 앤 세라(Tegan and sara) ‘Make you mine this season’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가 시작부터 귓가를 사로잡는다. 뒤이어 울려 퍼지는 한마디, ‘Make you mine’.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이자 언젠가 아니, 언제고 듣고 싶은 마음 설레는 문장이 짧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간지럽고 좋다. 곡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의 수록곡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유쾌함과 달콤함을 응축해 영화의 맛도 살리고 노래의 맛도 살렸다. 그러나 진가는 영상을 통해 곡을 만났을 때 드러난다. 국내에는 잘 없는 밝은 퀴어 로맨스를 그린 영화에 톡 떨어지는 곡이 참 중독적이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마성의 노래.

이엑스아이디(EXID) ‘데려다줄래’
이엑스아이디에게 날개를 달아 준 신사동호랭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팀의 래퍼 엘이가 작사, 작곡하여 마련한 무대이다. ‘위아래’ 이후 역주행 신화를 잇기 위해 도발적인 모습을 앞세운 ‘아예’, ‘덜덜덜’ 등이 자기복제를 벗어나지 못했던 데에 비해 안정된 속도감이 이들의 실력을 조명한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에 속해 이미 검증된 바 있는 랩과 보컬트레이너로서의 경력이 있는 솔지의 목소리, 각자의 자리를 알고 움직이는 멤버들의 역량은 관능적인 춤이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짙은 색깔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은 그들을 ‘한 때 돌풍을 일으킨 섹시 심볼’로 보내주기 힘든 이유이다.

88라이징(88rising) ‘Midsummer madness’
아시아계 아티스트만을 영입하며 확고한 방향성을 정립한 88라이징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조지(Joji) 등 이미 검증된 이들을 등에 업고 꾸준히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레이블은 2018년 컴필레이션 앨범 < Head In The Cloud >를 발매하며 다음 단계를 도모했다. 곡의 도입부터 ‘떼창’을 유도하며 여름의 더위를 식혀 줄 명확한 의도를 가진 ‘Midsummer madness’의 중독성은 단연 돋보인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반복적인 구성 탓에 금세 감흥이 줄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쯤 남아 있는 아련한 오뉴월의 저녁을 떠오르게 만든다. 아카데미와 그래미로 영역을 넓히는 동양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할 집단의 한여름 열기는 아직 뜨겁다.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Learn to fly’
움츠러든 시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로 멀어지기를 명했던 세계가 집합하기 시작했고 이에 굳어있던 심장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이제 앞을 보고 뛸 일만 남았다. 너바나의 음울했던 그림자를 벗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누구보다 밝은 고유 형체를 갖게 된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는 그런 점에서 현세대에 필요한 최고의 음악적 격려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19위, 모던록 차트 1위 등 밴드에게 최초로 대중적 영예를 안긴 곡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노와 슬픈 감정 하나 없이 경쾌한 연주와 보컬로 전달하는 직선적 쾌감이 물들이는 희망은 분명 시제를 관통할 보편성을 지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 그들이 전파한 ‘힘’이 다시금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라붐 ‘아로아로’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으로 보여준 기적은 팬데믹 시대에 지친 대중을 위로했다. 우연히 마주한 희망에 모두는 자연스레 다음 페이지를 이어갈 타자를 기대했고 따스한 흐름 속 언급된 여러 후보 중 유력한 그룹은 단연코 라붐이었다. 데뷔 해였던 2014년부터 꾸준히 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력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있었다. 대표곡 ‘상상더하기’가 한차례 반등에 성공한 지금 그들의 세 번째 싱글이었던 ‘아로아로’는 라붐의 재각인을 도울 확실한 촉진제다.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 신스팝 장르의 경쾌한 편곡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후렴구의 ‘치키차’란 포인트 가사까지. 기분 좋게 갖춰진 중독성은 이미 역전 시나리오의 긍정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보이즈 라이크 걸즈(Boys Like Girls) ‘The great escape’
단번에 꽂히는 멜로디와 단순한 구성에 탄산음료 한 잔의 청량감이 담겨있다. 팝 펑크 특유의 경쾌함을 살린 ‘The great escape’는 국내에서 각종 게임 대회와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해 201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던져 버려, 어제는 잊고. 우리는 위대한 탈출을 감행할 거야!’라며 반항적으로 외치는 노랫말과 톡쏘는 절정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그들의 스트레스도 단숨에 해소해줄 만큼 여전히 강렬하고 통쾌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씁쓸한 말을 일삼던 시기에 브로콜리너마저는 방황하던 젊은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단출하고 편안한 기타 선율 위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읊조렸을 뿐이지만 흔하디 흔한 위로가 건넨 온기는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특히 후미에 등장한 계피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역주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추억 속 포크 음악이 주는 진솔한 감상을 잠시 음미하기조차 어려워진 오늘날, 각박한 현대사회를 다정하게 물들일 추억 속 책갈피를 펼쳐본다.

데프콘(Defconn) ‘길’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은 데프콘은 20세기에 첫 앨범 < Kapital G >를 발표할만큼 경력이 길다. 하드코어 랩 ‘독고다이’나 버벌진트와 함께한 ‘Sex drive pt.2’ 처럼 거친 초기작은 친근한 이미지로 희석되기 아쉽다. 거침과 부드러움을 배합한 2003년 작 정규 1집 < Lesson 4 The People >에서 ‘길’은 후자에 속했다. 초등학생 시절이 끝날무렵 접한 푸근한 멜로디와 쏙쏙 들리는 가사는 지오디의 동명의 히트곡과는 다른 매력이었고, ‘슈퍼스타’란 곡으로 잘 알려진 불독맨션의 이한철이 피처링을 맡아 밴드풍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삶의 기로에 놓인 무명 래퍼의 솔직담백한 곡이다.

팀발랜드(Timbaland) ‘Give it a go (feat: Veronica)’
팀발랜드는 2000년대 중후반 뮤지션과 프로듀서 등 다양한 직함을 내걸고 히트곡을 쏟아냈다. 휴 잭맨 주연의 영화 < 리얼 스틸 >에 수록된 ‘Give it a go’는 주인공 소년과 격투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흥겨움을 선사했다. 팀발랜드 특유의 전진하는 편곡에 배우 겸 가수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힘을 보탰다.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로 히트 공식도 성립하지만 비슷한 제목의 ‘Give it to me (Feat. Justin Timberlake, Nelly Furtado)’가 빌보드 1위까지 오른 것에 비해 싱글 커트 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가 나온 1979년작 < 챔프 >의 21세기 버전 같은 < 리얼 스틸 >의 사운드트랙엔 이 곡을 비롯해 푸 파이터스의 ‘Miss the misery’와 에미넴의 ”Till I collapse (Feat. Nate Dogg) 같은 강력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싸이 ‘비오니까’
우리의 ‘연예인’에서 모두의 ‘연예인’이 된 싸이는 댄스 가수다. ‘챔피언’, ‘연예인’, ‘Right now’, 그리고 ‘강남 스타일’까지 결정적인 대표곡들이 전부 신나는 춤곡인 탓에 바꿀 수 없는, 바꾸지 않을 선입견이 그에게 잡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선정적인, 성적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친구놈들아’, ‘아름다운 이별 2’, ‘예술이야’, 그리고 이 특집에 넣은 ‘비오니까’ 같은 작품을 더 자주 듣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광석 정도를 빼면 내가 노랫말을 유심히 보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비오니까/그러니까/그래서/그랬어요’. 운(韻)이 단순해서 좋다. 싸이를 발라드 가수로 만들자.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The middle’
약 10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록의 봄이 돌아오기를. 올리비아 로드리고, 머신 건 켈리, 태연, (여자)아이들 등 그 문법을 활용한 뮤지션이 활약하는 요즘 펑크(funk)와 디스코 이후 새 과거 유산을 찾듯 신복고 물결을 타고 고개를 내미는 록이 정말 반갑다. 걸걸한 기타 사운드로 가득한 나의 애청목록에 반해 국내 싱글 차트에서는 정제된 신시사이저만이 울리고 있어 쉬이 눈길이 가지 않아 이를 정화하고자 록 음악을 준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 있는 20세기 노래를 소개하기에는 역주행에 ‘역’자도 꺼내기 전에 실패할 것 같아 2001년 빌보드 HOT100 탑10에서 5위에 올라 딱 중간을 차지했던 팝 펑크의 정석 ‘The middle’을 추천하고 떠난다.

공원소녀 ‘Bazooka!’
좋은 음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빛을 본다는 운명론을 믿는 편이다. 공원소녀를 두고 ‘아직 발화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도약할 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일삼던 것 역시, 그들이 꾸준히 선보인 양질의 결과물에서 리스너의 확신을 도출했기 때문이었다. 현란한 멜로디와 모범적인 드롭 활용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계열의 K팝 사운드를 정립한 ‘밤의 공원’ 시리즈와 더불어 대중성까지 고루 버무린 웰메이드 트랙 ‘Bazooka!’를 그저 과거의 산물로 남겨두기에는 이제 아쉬움보다 죄책감이 앞설 정도다. 역주행 워너비의 영순위로 이 곡을 뽑은 이유는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그 누구에게 들려주더라도 단번에 사로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스카이 페레이라(Sky Ferreira) ‘Everything is embarrassing’
매체와 기기의 거듭된 발전으로 국가 간 장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이미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두아 리파와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이제는 마니아 감성의 찰리 XCX와 FKA 트위그스까지 국내에서 입지를 꽤나 얻은 상태다. 그렇기에 더더욱 짙은 스모키 화장과 공허한 삼백안의 뮤즈, 스카이 페레이라의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 비교적 주목은 덜하더라도 이들 못지않은 만능 플레이어기 때문. 대표곡 ‘Everything is embarrassing’을 보자. 자욱한 몽환경 속 덧없는 애가(哀歌)는 취향의 영역을 가혹하게 요구하지만, 기어코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진 매력을 지닌다. 게다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인 팝의 기본 질서를 탄탄하게 충족하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만약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새벽 시간의 퇴폐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앨범 < Night Time, My Time >까지도 필청을 권한다.

소나무 ‘넘나 좋은 것’
행사 공연 ‘직캠’ 하나로 메이저 반열에 올라선 이엑스아이디, 전국 곳곳의 군부대를 누비며 ‘젊은 장병들의 선택’을 받았던 브레이브걸스, 낙수 효과 덕분에 ‘좋은 음악’을 재조명 받을 수 있었던 라붐까지. 이들의 모든 역주행 공식을 따랐지만 걸그룹 소나무만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철 지난 속어 제목을 실패 이유로 들기엔 곡 구성과 멜로디가 결점을 완벽히 상쇄한다. 아카펠라로 출발해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을 비롯한 악기들이 펼치는 협연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감상을 이입하고, 끊임없는 변주의 끝엔 메인보컬 하이디의 환상적인 5단 고음이 펼쳐진다. 음원엔 이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전히 담기지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 늘 푸른 기운을 담은 라이브로 관객을 놀라게 할 2010년대 슈가맨.

탑독 ‘애니’
유독 남자 아이돌에겐 이 짜릿한 역행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 노래가 좋아도 팬덤 위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 널리 퍼지기 힘든 구조가 한몫한다. 13인조 보이그룹 탑독 역시 초기의 난감한 콘셉트가 꽤나 큰 진입장벽을 세워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 1주년이란 ‘기념일(Anniversary)’을 맞아 발표한 팬송만큼은 대중적으로 회자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1990년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래퍼 MC 해머와 바닐라 아이스를 모티브로 한 뉴 잭 스윙 장르의 댄스곡이라는 점부터 특색 있다. 세련된 기타 리프와 신나는 비트 사이에서 개성 넘치는 랩과 보컬이 쉴 틈 없이 호흡을 주고받고, 후렴구에선 LP를 들고 현란한 안무를 소화하며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청취를 막아서는 것은 멤버들을 다닥다닥 정렬해놓은 앨범 커버. 우연히 재소환 당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처럼 사진 교체가 시급하다.

씨아이엑스 (CIX) ‘Cinema’
워너원으로 활동했던 배진영 그룹이라는 별명보단 데뷔 무대가 기억에 남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야외무대에 선 신인 아이돌은 풋풋하고 열정적이었다. 소형 기획사지만 송 캠프 시스템을 도입하여 음악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주목했다. 데뷔 초의 무거운 콘셉트와 음악을 씻어내고 산뜻하게 다가온 ‘Cinema’는 팀의 잠재력을 확인한 결정적 순간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지만 선명하진 않다. 사이다처럼 톡 터지는 한 구절 대신 일정한 리듬과 편안한 멜로디로 상투적인 청량 K팝과 거리를 둔다. ‘Ready and action!’이라는 사인 뒤, 맥동하는 기타와 함께 시작하는 도입부와 코러스에서 쭉 뻗어 나가는 승훈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내 필름 위에 씨아이엑스를 선명히 각인한 테이크다.

코난 그레이 (Conan Gray) ‘Generation why’
‘Maniac’의 전세계적인 히트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코난 그레이의 매력은 순수한 미성으로 부르는 냉소적인 가사다. 아일랜드-일본 혼혈로서 시달린 선입견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12번 이사한 과거가 공허하고 우울한 음악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Z세대 팝스타로 떠오르기 이전에 발매한 ‘Generation why’는 더욱 몽환적이고 내밀하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소년은 ‘우린 무기력하고 이기적이고 유별난 데다가 모두 죽고 싶어 하는 밀레니엄 세대니까’라며 비꼬고 수백 번은 들었을 ‘너희 세대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라는 잔소리를 떨쳐내려 한다. 그 모습이 세대 갈등을 겪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어른들도 조금은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나인뮤지스 ‘Wild’
달샤벳, 레인보우와 함께 ‘나달렌’으로 묶이며 늘 더 뜨지 못해 안타깝다는 시선을 받았던 걸그룹 나인뮤지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아까운 건 역시 2013년에 발표한 ‘Wild’다. 차가운 건반 사운드와 화려한 전자음을 뚫고 나오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단번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자극적인 콘셉트에 가려진 사랑하는 이에게 외치는 가사 ‘늘 함께 함께 가야만 해’가 퍼뜨리는 울림 또한 폭발적이다. 분열로 가득한 지금 시대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지난해 SBS < 문명특급 >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특집의 무대 곡으로 가장 흥행했던 ‘Dolls’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학창시절 방송반 선곡표를 짜며 이 노래를 듣고 감탄에 빠졌던 나는 여전히 ‘Wild’와 함께 가고 있다.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Run away with me’
‘Call me maybe’의 돌풍 이후 가볍고 반복적인 훅을 내세운 ‘I really like you’는 복귀작 < Emotion >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앨범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거뒀다. 두 번째로 발표한 ‘Run away with me’ 또한 빌보드 차트에는 진입조차 못했으나 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에 어느덧 그의 상징적인 곡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도입부의 색소폰과 따스함을 머금은 멜로디,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 ‘나와 함께 달아나자!’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노래가 흥행하지 못한 것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풍 레트로 유행을 5년가량 앞섰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칼리 래 젭슨은 바쁜 틴 팝 스타를 벗어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탈한 뮤지션이 된 삶에 만족한다지만 적어도 이 노래 만큼은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정리 : 장준환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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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상은 인터뷰

누구에게나 내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위로는 쉽게 선을 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이상은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힐링과 치유를 노래했고 우리를 위로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곡들은 지금도 여기, 우리 곁에 살아있다.

‘담다디’의 시원하고 신선했던 등장, ‘언젠가는’으로 전했던 빛바랜 인생의 통찰, ‘삶은 여행’으로 가져온 따뜻한 온기를 거쳐 그는 < 더딘하루 >의 날 것의 로킹함, < 공무도하가 >의 독특한 동양 서사, < 외롭고 웃긴 가게 >의 서늘함을 종횡무진 오갔다. 화려했던 데뷔, 그만큼 치열했던 자기 고민의 시간 속에서 그는 솔직함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솔직함은 여전히 이상은의 위로가 유효할 수 있는 이유다. 5년 만에 6곡의 작은 음반으로 15.5집 < Flow >의 출발을 알린 그를 홍대 부근 빅퍼즐 사무실에서 만났다. 타이틀처럼 그가 흘려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는 이 궁금증을 중심으로 수록곡을 하나씩 조명하며 진행됐다.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 “삶 가까이 행복이 있잖아요, 그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죠”

이상은의 음악에는 늘 가사가 살아있다. 이번에는 뭐랄까? 완전히 자기 얘기 같기도 하고 또 타인에 대한 조언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공허한 메아리는 아니다.
데뷔 이후 이렇게 긴 시간 쉰 건 처음이다. 거의 5년 반 만의 신보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자, 타의로 휴식기를 가졌는데 나에게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부모님 댁과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을 오가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나 할까? (웃음)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자연하고 가까이 살면서 점점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더라. 진짜로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고, 눈치 안 봐도 되고. 내가 어려서부터 일만 해오지 않았나. 살면서 거의 처음 느낀 자유로움이었다.

그런 편안함 덕택인지 노래들이 쉽고 부드럽다.
5년간 멈춰 있으면서 그간 주장해왔던 것을 내려놓게 됐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도 일부러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대중성’이란 단어를 깊게 들여다봤다. ‘도구로 사용되는 대중성’ 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이것들을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고민한 거다. 그때 철학 하는 지인이 “내게 음악은 멀리 떨어진, 거기 있든 말든 상관없는 것” 이었는데 내 음악을 통해 노래가 “자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 이 말이 깊게 새겨졌다. 그동안 내가 종종 어떤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곡들을 만들지 않았나. (웃음)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하고 싶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을 꺼라 생각한다.

첫 곡 ‘Relax’는 그럼 부모님 댁에서 만들어진 건가?
아니다. 아주 먼 곳에서 만들어졌다. (웃음) 런던에 갔다가 지인이 오로라를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 말에 꽂혀 그대로 핀란드 북쪽인 로바니에미로 갔다. 푸른 하늘, 자연이 주는 영감을 기대하며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숙소도 허름하고 오로라는커녕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순록이 끄는 썰매 탔는데 웬걸. 바닥에 누워 타는 썰매에다 속도도 아주 느린 게 상상했던 거랑 정반대였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 순간 ‘뻥’하고 머릿속에 진공 상태가 왔다. 그간의 잡념과 고민이 싹 정리됐다고나 할까?

일상을 잡고 있던 긴장들을 확 풀어졌다고 느껴진다.
말 그대로 생각이 다 날라 갔다. 거기가 영하 20도에 춥기도 엄청 추웠고 가뜩이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다들 연인, 가족끼리 오는데 내가 혼자 달랑 배낭 하나 메고 가서 그런가? 어쨌든 방도 가장 구석에 작은 거로 주고 다들 나를 피하더라. 열 받아서 조식도 몰래 먹고 그랬다. (웃음) 그랬는데 그 고생과 허탈함이 순식간에 ‘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울림으로 다가온 거다. ‘Relax’의 가사에는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소박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는 내 경험이 녹아있다.

오로라를 잃고 순록과 경험을 얻은 셈이다.
제대로 깨달았다. 순록은 크지만 아주 느리다. 하하하.

반면 ‘일상 노마드’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곡 같다.
이번 음반은 개인적으로 내게 도전과도 같았다. 예전에는 작업을 좀 하다가 2주쯤 짬을 내서 일본도 가고 태국도 다녀왔는데 그사이 시대가 바뀌었더라. 빠르고 압축적이다. 오랜만의 컴백이니 욕심이 나기도 해서 몸을 안 아끼고 밤새워 가며 곡만 만들었다. 주구장창 떡볶이만 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쥐어 짜내다가 잠깐 마트나 나가볼까? 하고 집 앞 슈퍼에 갔다. 세상에나. 모든 게 다 너무 아름다웠다.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나. 그 여행지에서 느끼는 환기와 무엇이 다른 건가?
일상을 발견한 거다. 의욕이 없이 쓰러져 있더라도 태도만 긍정적이면, 동네 마실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난 하와이나 미국에 가면 꼭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에 간다. 여기에 가면 물건들이 깨끗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일본 로컬 문화 중에는 카페에서 벼룩시장을 여는 게 있는데 이렇게 동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왜 ‘텐바이텐'(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종합 문구 매장-편집자)에 가면 사람들이 일상을 이렇게 귀엽고 소중하게 꾸미려 하는구나 느껴지지 않나? 삶 가까이에 행복이 있다. 이런 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다. (웃음)

○음악을 통한 위로,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했거든요, 제게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돌려주는 거죠”

트레몰로(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것-편집자) 사운드가 인상적인 ‘가을 수채화’는 딱 이상은 표 노래다.
11집 < 신비체험 >의 ‘비밀의 화원’을 떠올리며 쓴 곡이다. 가사들로 연결 관계를 짓거나 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 했었다. 그 곡이 봄이라면 이건 가을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노래를 많이 들어오셨던 분들이라면 편하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곡이다.

반면, ‘넌 아름다워’는 기타 톤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참 좋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을 꼽자면 이 노래이지 않을까?
기타는 ‘언니네 이발관’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능룡이 연주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운드를 잘 잡아줬다. 다만 그런 것에 비해 뚜렷한 후크(멜로디 라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곡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내 노래들이 그렇다. 글자가 너무 많은 거지.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내 곡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런 메인 선율의 부재 때문일 거다.

이상은에게는 천진난만하지만 강한 목소리와 선명한 메시지가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 목소리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다. 악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목소리만으로 표현되는 ‘감성’ 또한 있다. 내가 어떻게 인식을 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들어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보이스칼라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처음이다. 설명을 조금만 더 해준다면?

한마디로 꾸밈없는 보컬이다. 힘을 풀고 고음을 지를 때 기존 음색과는 다른 지점들이 나타나는데 이게 쾌감을 준다. 나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개방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어떤 틀 지우기가 이상은의 노래를 일상 속으로 끌어당긴다.
(눈이 둥그레지며) 정말 좋은 칭찬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려서부터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 사람은(주인공) 할아버지와도 젊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문장이 너무 좋았다. 사람으로서 내게도 어떤 한계들이 늘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걸 넘어서고 싶었고, 또 넘어서 왔다. 음악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번 음반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곡은 무엇인가?
공교롭게도 방금 이야기 나눈 ‘넌 아름다워’다. 어릴 때는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고 그랬다.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온 거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보니까 기분 조절이 가능해지더라. (웃음) 반복적으로 괴롭다고만 말하면 정말 괴로워진다. 가사를 보면 ‘마음을 따라가 /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아’라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스스로의 기분은 본인이 만들 수 있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음반 명은 < Flow >인데 타이틀은 또 ‘넌 아름다워’다. 수록곡 ‘Flow’가 타이틀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건가?
다 만들고 보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 ‘넌 아름다워’와 ‘Flow’였다. 타이틀로 뽑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 개인적으로 이 곡은 내 상처와 관련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친구와 좋지 않게 끝을 맺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그러면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떠올랐다. 왜 사회는 잘 성장하고 있다는데 자살률 같은 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내 노래로 그것들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들었다.

이 곡에서 명대사가 나온다. ‘ 오늘 , 지금을 살면 잊혀져 ‘(‘Flow’ 가사 중 – 편집자 ) 풀이를 좀 더 부탁한다.
나는 내게 남겨진 상처를 늘 음악으로 치유해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이걸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을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다. 너무 많이 돌아보면 버겁고 불안해지지 않나. 지금을 사는 아이들처럼 다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분절로, “그래도 삶은 흐른다!”

그렇다면 이상은이 말하는 < Flow >는 무엇인가?
흐른다는 건 좋은 거다. 생각해보면 내가 막혀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늘 나를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줬다. 멈춰져 있고 막혀있는 입장에서 무언가가 흘러들어와 준다는 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굳어져 가는 걸 막을 수 있게 내가 그들(대중)에게 일종의 흐름을 전달해주고 싶다.

음반이 발매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상은의 의도대로 반응이 오고 있는지.
작가인 팬이 코멘트를 남겨줬다. ‘내가 겪어본 아픔과 치유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반응들이 내 음악의 힘이다. 한번은 실연을 당해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던 팬이 내 콘서트를 다녀간 후기를 읽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내 공연을 보고 다음 날 < 개그콘서트 >를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는 거다. 음악이 주는 힐링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지막 곡 ‘오아시스의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사들 중 가장 비유가 많은 것 같은데.
가끔은 세상과 분리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분리를 히브리어로 ‘카도시’ 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Holy’다. 즉, 속물 사회와 분리시키는 순간들이 ‘홀리’하다는 거지. (웃음)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오아시스는 무슨 뜻인가?
오아시스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때로는 내가 세상과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여기 있는데 분리되어 있는 건 뭐지? 그렇다면 이건 나쁜 건가, 좋은 건가? 그런 꼬리의 꼬리를 무는 고민을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가끔의 분절이 평범함과 비범한 순간의 경계를 준다는 거였다. 삶 자체가 사막이고 때로는 여기서 의도적으로 분리되어 오아시스를 만나보자. 그래도 괜찮다, ‘괜찮습니다’ 노래한 거다.

왜 사람들이 상은에게 기대는지 알겠다. 힘들어도 괜찮다는 메시지, 나 대신 세상에 맞서 싸워 주는 사람 같다.
하하하. 감사할 뿐이다. ‘담다디’로 한 번에 세상에 알려지고 이후 혼자서 길고 긴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나름의 질곡이 많았다. 이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가 나를 버티게 해준 음악을 이제 다른 사람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 잘 만들고 싶다. 염세주의로만 빠지지 말자. ‘세상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길을 갈 수 있게, 가끔은 예쁜 것도 보고 일상도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 흐른다!

끝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묻고 싶다. 이번 음반이 EP이니까 16집도 비슷한 연장선상으로 기대하면 될까?
(고개를 저으며) 완전 새로운 작품이 나올 거다. (웃음) 이건 내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는 신고식 같은 앨범이다. 오래 쉬었으니 싱글 작업도 하고 노래도 많이 만들어보려한다. 이건 비밀인데 조만간 가사 비디오도 나올거다. 반겨줘서 고맙다.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긴 이 시대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아보자.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손기호
사진 : 손기호
정리 :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