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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33 이박사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서른 세 번째 주인공은 테크노와 뽕짝을 한국적인 맛으로 버무린 가수 이박사다.

유교 문화의 영향 때문일까, 우리는 신나고 재밌는 음악을 한껏 즐기다가도 한편으로는 경박하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친다. 이박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비슷했다. ‘몽키매직’을 비롯한 그의 유쾌함을 사랑하는 이들 맞은편에서는 ‘B급 정서’라며 독특한 캐릭터를 폄하하는 시선이 공존했다. 그러나 이박사는 온갖 코멘트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이어왔고, 이를 따라 이제는 그의 음악도 서서히 재발굴되고 있다.

한낮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번쩍거리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이즘을 만나준 이박사의 아우라는 스타 그 자체였다. 그에게는 모든 곳이 무대였다. 삶과 음악을 묻는 질문에 툭툭 명언을 남기며 시원시원한 말투로 인터뷰를 휘어잡은 거장과의 대화를 공개한다.

1973년도부터 음악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거의 50년 째다. 여태까지의 음악 생활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이 궁금하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일기예보”다. 짜여진 것이 아니라 갑자기 변하곤 하니까. 임기응변이나 기동력, 순발력이 필요하고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예술을 했다. 원래 내 직업은 디자이너로, 결혼식 신랑 예복을 재단하고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체형에 맞추고 내 기술도 개발하다 보니 음악도 자연스럽게 공연마다 나를 새롭게 맞췄다.

여태까지 가졌던 직업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관광 가이드다. 단풍이 나는 가을 아침 5시에 출발하고 새벽 1시에 돌아온다. 갔다 온 후에도 청소하고 버스에서 자면서 다음날 멘트를 외웠다. 몸도 피곤한데다 짖궃은 손님들도 많아 그런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저녁에 서울로 돌아올 때 버스에서 불 끈 채로 나이트 클럽처럼 노래 부르는 재미는 있었다.

당시 관광버스마다 있는 ‘메아리 전자’ 같은 음악 기기가 있었다. 코드만 누르면 그에 맞춰 남성은 마이너, 여성은 메이저 식으로 조성도 자동으로 나오는 형식이었다. 즉 이름만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테크노가 그때도 존재한 것이다. 이 리듬에 맞춰 내가 멜로디와 추임새를 만들어 넣었다. 같은 메이저 노래끼리 메들리로 엮어 150곡 정도 만들어 부르니 반응이 매우 좋았다.

그때의 경험이 본격적인 테크노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1989년에 메들리 음반 녹음 당시에 청주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150곡을 모조리 녹음했다. 내 관광 가이드 모습을 본 음반 제작자의 요청에 하루에 10만원을 받고 작업했다. 160 BPM 이상으로 속도도 빠른 곡을 그렇게 빨리 완성하니 엔지니어도 놀랐다.

이박사 하면 떠오르게 되는 독창적인 추임새는 어떻게 체득한 것인가?
그냥 반주만 재생해서는 관광버스에서 재미가 없다. 내가 원체 끼가 있다 보니 음악만 듣고서도 입으로 자동으로 그런 추임새가 흘러나왔다. 이를 듣고 열광한 관광객들이 당시 이름을 붙여줬는데, 그게 바로 ‘신나는 이군’이었다.

가수 생활 초창기 이야기가 궁금하다.
1973년도 5월 KBS < 민속 백일장 >에 나갔다. 경기민요 부문에 출전했지만 우승자로 제주도에서 올라온 피리 연주자 등 다른 쟁쟁한 악기 연주자들에 밀려 그때는 아쉽게 떨어졌다. 그 이후 ‘배뱅이굿’의 대가 이은관 선생을 찾아갔으나 당시 공연으로 바쁘셨던 때라 만나 뵙지는 못했다. 대신 이창배 선생에게 향해 디자이너 생활로 바쁜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국악을 배웠다. 그러다 디자이너 생활에 싫증이 나 밤무대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민요를 위해서는 옆에 코러스가 필요했다. 그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가요를 배워야겠다 싶어 이번에는 가수 나훈아의 음악을 제작한 임종수 선생을 찾아갔다.

종로에서 학원을 하시는 그분과 만나게 되면서 덩달아 한복남 선생님과 가수 방주연, 통기타 혼성듀오 ‘라나 에 로스포’의 한민 등과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섯 달 동안 악보 공부를 하고 다시 밤무대로 향해 한 달에 30만원 정도의 수입을 벌었다. 이때 내 소문이 퍼져 찾아온 연예부장이 여러 곳에 꽂아줘 하루에 많게는 열한 곳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 이후의 행보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신바람 이박사’라는 이름으로 방송국에 찾아가 활동을 하려 했지만 메들리 음악이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좌절을 겪었지만 이기범 악단의 도움을 받아 MBC < 내고향 좋을씨고 >에 출연하게 되었다. 90년도부터는 아예 전속으로 활동하며 노래를 받았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심의에서 떨어졌다.

그 다음에 간 TBS의 < 9595쇼 >에서 당시 MC였던 허참, 박세민의 옆에서 5~6개월 간 보조 진행자로 활동했다. 나중에는 허참의 뒤를 이어 MC를 맡을 뻔했으나 윗선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 한동안 주춤하다 1995년도 일본 소니를 통해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몽키매직’도 일본 곡으로 알고 있다.
원래 제목은 ‘원숭이 나무에 올라’였다. 95년도 공연 무대를 위해 일본에 갔을 당시 레퍼토리로 받은 150곡 중 하나였다. 그 많은 곡을 일주일만에 다 외워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 한국어 가사를 내가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직접 작사 제안을 했고, 그러면서 ‘몽키매직’이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판권은 일본에 있다.

일본 노래 중에서는 ‘몽키매직’의 인기가 가장 높지만 코로나19 발발 전에 ‘야야야’라는 곡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백댄서 없이 혼자 무대를 하다 보니 그런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즉흥적으로 만든 코러스였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중년 여성들의 품바나 난타 강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당시 인기가 꽤 많았다. 그런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인기가 꽤 많았던 수준이 아니라 최고였다. 더군다나 일본은 음반 로열티가 높게 나오고 CD 구매도 활성화된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다. 그리고 활동이 바쁜 탓에 그 많은 돈을 쓸 시간도 없었다.

일본 음악 특유의 느낌과 다르게 당기는 테크노 리듬으로 빠르게 간 것이 차별화 지점이 되어 인기를 끈 것 같다. 일본 측에서는 풀 밴드 구성을 선호했으나 나는 거부하고 그 대신 오르간 연주자와 함께 듀오를 이뤘다. 한국에서의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고 이목을 나에게 집중시키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이것이 잘 맞아 떨어져 소위 ‘대박’이 났다.

그쪽에서 빨간색으로 의상도 정해줬는데, 디자이너 출신이었던 나는 이것도 내 고집으로 양복을 입고 무대에 섰다. 멜로디는 일본 관객들에게 익숙했지만 박자도 빠르고, 가사도 내가 아는 한국어로 바꿨다. 맘에 들지 않는다면 전속 계약을 관두겠다 하니 결국 일본 측에서 논의를 하다, 그래도 익숙한 멜로디 때문에 충분히 먹힐 것이라며 내 손을 들어줬다.

익숙한 멜로디와 경쾌한 리듬의 적절한 조화가 성공을 이룬 것 같다. ‘재미의 전형’이다.
거기에 입으로 넣는 추임새까지 넣어 무대를 꾸리니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당시 1,500명 정도 되는 젊은 관객들이 비록 가사는 한국말이었어도 자신들이 아는 멜로디를 하니 신나서 꽹과리도 치고 엄청난 호응을 보여줬다. 원래 두 시간 공연을 앵콜 요청 때문에 두 시간 더 해 총 네 시간 동안 할 정도였다.

끝나고 내게 사인을 받으려는 줄도 길게 서있었다. 관객들 대부분은 여자였는데, 그 중에서도 또 절반은 음악을 하는 이들이었다. 내 독창성에 매료된 셈이다. 이후 함께 작업을 하자는 제의도 들어왔지만 언어의 차이도 있는데다, 내지르는 한국 스타일과 달리 맛있고 아기자기하게 부르는 일본 스타일이 맞지 않아 혼자 하겠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생소함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어 ‘한국적 테크노’라며 존경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언론에서는 ‘B급 문화’ 혹은 ‘엽기’라면서 깎아내리기도 했다.
관광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이미 많이 겪었던 일이었다. 손님들이 수고비도 주지 않으면서 부려먹는 경험도 종종 있었다. 이를 통해 내가 철칙을 하나 얻었다. ‘칭찬을 욕으로 듣고, 욕을 칭찬으로 듣는다.’

인천과의 연관점도 듣고 싶다.
어린 시절 취미가 있어 < TV쇼 진품명품 >에도 나오셨던 ‘장석’ 구서칠 선생님께 간석동에서 서예를 배운 적이 있다. 그렇게 인천에 한번 발을 들이니 장학회도 다니다가 나이트클럽에도 가게 되고 했다.

인천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
최고다. 인천에서는 나쁜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박사는 열심히 사는 사람’, ‘부지런하다’ 같은 좋은 얘기만 들었다. 내가 실제로 남에게 피해주거나 하는 일도 없었지만. 그리고 공연 문화에서도 인천은 다르다. 타 지역에 비해 사람들이 흥이 많아 점잖지 않고 적극적이다. 즉 노는 문화가 강하다.

부평구문화재단과 함께 일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나.
홍보대사가 하고 싶지만 인천 사람이 아니라 좀 곤란하니, 역시 공연을 하고 싶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경기 민요부터 해서 정통 오리지널 뽕짝까지. 임창정과 했던 ‘임박사와 함께 춤을’ 처럼 젊은 뮤지션들이 피쳐링하는 그런 그림도 좋다.

국내 후배 중에서 유심히 보는 가수가 있나 궁금하다.
김호중 노래가 좋다. 소위 ‘쇳소리’가 들어간다. 딱 찔러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한국 취향에 맞게 김호중의 그 유리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는 카리스마가 있다. 누군가는 약간 답답하게 느낄지 몰라도, 원래 완벽한 느낌 보다는 인간적인 느낌이 사람을 안달나게 하는 법이다.

여러 무대를 서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은 어디라 생각하는가.
나이트 클럽에 가면 그곳에 맞게, 칠순 잔치 가면 다 특성에 맞게 다 나를 맞춘다. 다른 사람들과 겹치지 않는 개성, 나만의 것을 그때그때 보여준다. 며칠 전 안산 공연에서도 짧은 무대였지만 즉흥적으로 가사를 보여주니 관객들이 놀라더라.

그동안의 음악 작업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결과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경기민요’다. 1989년 메들리 음반 1, 2, 3집 중에서 2집을 경기 민요에 디스코를 섞어 만들었다.

여태까지 온갖 추임새를 다 했다. 그 중에서 최고의 추임새를 선정한다면 어떤 것일까.
“좋아 좋아.” 내가 좋다 하니 보는 사람들도 다 좋아한다. “고래?” 하는 것도 다 내 입에서 나온 추임새다. “앗싸” 등도 반응이 좋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음악가는 누구인지.
딥 퍼플이다. 어릴 때 팝송을 들으면서 ‘Highway star’, ‘Black night’ 등을 많이 접했다. 이외에도 산타나의 ‘Black magic woman’이나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도 빼놓을 수가 없다. 대체로 솔로보다는 밴드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이라는 존재를 이박사 자신에게 있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예술은 나의 취미요, 음악은 나의 친구요, 노래는 나의 동반자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행 : 임진모, 임동엽, 정다열, 한성현
정리 : 한성현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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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3. IZM 필자들이 뽑은 ‘역주행 되기를 바라는 곡’

‘역주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작년 5월 진행했던 차트 역주행 특집이 정확하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IZM 필진들의 사심이 가득 담긴 ‘제발 한 번쯤 역주행했으면 하는 곡’을 소개한다. 숨겨진 명곡, 아쉬운 매치업, 앞서간 작법, 혹은 발굴의 의미까지… 필자마다 천차만별인 기준 만큼이나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리스트가 탄생했다. 아직은 ‘희망 명단’에 불과하더라도, 언젠가 도약할 그날을 위해 같이 회고하는 것은 물론이요, 독자 역시 자신만의 선정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마이걸 ‘한 발짝 두 발짝’
설렘의 감정을 스트링 선율로 물들인 멜로디와 완성도 높은 멤버들의 하모니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속사 선배 B1A4 진영이 선물해준 이 곡은 발매 당시 큰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지만 점차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명 ‘갓 발짝 킹 발짝’의 칭호를 획득했다. 진가는 노랫말에 있다. 풋풋한듯 비장하게 건넨 ‘거리두기 완화 고백법’으로 가사의 미학과 시의성마저 겸비한 ‘한 발짝 두 발짝’은 지금 당장 컴백한다 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 2020년 전국에 물보라 주의보가 발령되기 4년 전부터 이미 오마이걸의 핑크빛 바다(Pink Ocean)는 일렁이고 있었다.

블로섬즈(Blossoms) ‘There’s a reason why (I never returned your calls)’
따스한 햇볕처럼 쏟아지는 신시사이저에 벚꽃 필 무렵의 1980년대가 아른거린다. 떠나간 연인을 향한 속앓이와 미련 섞인 투정은 사랑에 서툴렀던 모두의 지난날을 끄집어내 복잡한 감정을 안기다가도, 이 마성의 리프 앞에 곧장 추억으로 미화된다. 데뷔부터 노골적으로 과거 시제를 겨냥해온 블로섬즈의 집념이 끝내 열매를 맺은 것.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멜로디와 선배 그룹 스웨이드를 연상케 하는 톰 오그던의 고풍스러운 음색은 청취를 넘어 회상의 영역까지 안내한다. 향수, 계절성, 공감대, 그리고 뉴트로. 역주행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곡이다.

이박사 ‘몽키 매직-우주몽키(Feat. 윈디시티)’
어느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트로트라고 답하는 젊은이는 흔치 않다. 급격한 사회 변혁을 거치며 젊은 세대와 윗세대 사이에 취향의 장벽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트로트계의 이단아 이박사에게 세대 간의 담은 대수롭지 않다. 그는 특유의 독창적인 매력을 소통의 열쇠로 삼아 록 페스티벌의 관중을 당당하게 호령한다. 빠른 템포의 고속도로 사운드로 일관했던 이박사의 ‘몽키매직’을 사이키델릭한 편곡으로 풀어낸 윈디시티의 역량이 곡에 매력을 더한다. 트로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금 이박사와 윈디시티의 ‘몽키 매직-우주몽키’는 트로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할 수 있는 곡이다.

테빈 켐벨(Tevin Campbell) ‘Can we talk’
힙합과 알앤비가 손을 잡은 이래 서로의 장점을 한 음악에 녹여내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둘 중 어느 장르인지 구분이 모호한 곡도 많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와 탄탄한 실력의 보컬, 낭만적인 가사의 1990년대 알앤비가 그리운 이들에게 ‘Can we talk’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에 이미 히트했던 이 곡은 비트에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다면 분위기나 콘셉트에 경도된 음악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노래다. 지금의 경향이 좋아도 가끔은 알앤비는 알앤비대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기본에 충실한 노래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상은 ‘더딘 하루’
‘삶은 여행’, ‘언젠가는’ 등 따뜻한 온도의 곡과 동양적 색채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장르를 배합하는 < 공무도하가 > 스타일. 이 양단의 끝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뮤지션 이상은의 핵심이자 빼어난 강점이다. 인기의 정점을 누리던 중 돌연 활동 중단 및 유학을 선언한 뒤 1991년 발매한 동명 음반의 타이틀 ‘더딘 하루’는 그런 그의 과도기를 담고 있다. 잔잔하게 시작해 수직적 울부짖음으로 향하는 구성은 ‘담다디’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그 시절, 대중의 기대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만큼 폭발적이고 이만큼 반전의 충격을 안기는 곡은 잘 없다. 보시라, 들어 보시라. 어떤 식으로든 모창하거나 밈(meme)화 하게 될 것이니…

티건 앤 세라(Tegan and sara) ‘Make you mine this season’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가 시작부터 귓가를 사로잡는다. 뒤이어 울려 퍼지는 한마디, ‘Make you mine’.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이자 언젠가 아니, 언제고 듣고 싶은 마음 설레는 문장이 짧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간지럽고 좋다. 곡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의 수록곡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유쾌함과 달콤함을 응축해 영화의 맛도 살리고 노래의 맛도 살렸다. 그러나 진가는 영상을 통해 곡을 만났을 때 드러난다. 국내에는 잘 없는 밝은 퀴어 로맨스를 그린 영화에 톡 떨어지는 곡이 참 중독적이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마성의 노래.

이엑스아이디(EXID) ‘데려다줄래’
이엑스아이디에게 날개를 달아 준 신사동호랭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팀의 래퍼 엘이가 작사, 작곡하여 마련한 무대이다. ‘위아래’ 이후 역주행 신화를 잇기 위해 도발적인 모습을 앞세운 ‘아예’, ‘덜덜덜’ 등이 자기복제를 벗어나지 못했던 데에 비해 안정된 속도감이 이들의 실력을 조명한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에 속해 이미 검증된 바 있는 랩과 보컬트레이너로서의 경력이 있는 솔지의 목소리, 각자의 자리를 알고 움직이는 멤버들의 역량은 관능적인 춤이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짙은 색깔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은 그들을 ‘한 때 돌풍을 일으킨 섹시 심볼’로 보내주기 힘든 이유이다.

88라이징(88rising) ‘Midsummer madness’
아시아계 아티스트만을 영입하며 확고한 방향성을 정립한 88라이징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조지(Joji) 등 이미 검증된 이들을 등에 업고 꾸준히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레이블은 2018년 컴필레이션 앨범 < Head In The Cloud >를 발매하며 다음 단계를 도모했다. 곡의 도입부터 ‘떼창’을 유도하며 여름의 더위를 식혀 줄 명확한 의도를 가진 ‘Midsummer madness’의 중독성은 단연 돋보인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반복적인 구성 탓에 금세 감흥이 줄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쯤 남아 있는 아련한 오뉴월의 저녁을 떠오르게 만든다. 아카데미와 그래미로 영역을 넓히는 동양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할 집단의 한여름 열기는 아직 뜨겁다.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Learn to fly’
움츠러든 시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로 멀어지기를 명했던 세계가 집합하기 시작했고 이에 굳어있던 심장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이제 앞을 보고 뛸 일만 남았다. 너바나의 음울했던 그림자를 벗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누구보다 밝은 고유 형체를 갖게 된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는 그런 점에서 현세대에 필요한 최고의 음악적 격려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19위, 모던록 차트 1위 등 밴드에게 최초로 대중적 영예를 안긴 곡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노와 슬픈 감정 하나 없이 경쾌한 연주와 보컬로 전달하는 직선적 쾌감이 물들이는 희망은 분명 시제를 관통할 보편성을 지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 그들이 전파한 ‘힘’이 다시금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라붐 ‘아로아로’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으로 보여준 기적은 팬데믹 시대에 지친 대중을 위로했다. 우연히 마주한 희망에 모두는 자연스레 다음 페이지를 이어갈 타자를 기대했고 따스한 흐름 속 언급된 여러 후보 중 유력한 그룹은 단연코 라붐이었다. 데뷔 해였던 2014년부터 꾸준히 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력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있었다. 대표곡 ‘상상더하기’가 한차례 반등에 성공한 지금 그들의 세 번째 싱글이었던 ‘아로아로’는 라붐의 재각인을 도울 확실한 촉진제다.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 신스팝 장르의 경쾌한 편곡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후렴구의 ‘치키차’란 포인트 가사까지. 기분 좋게 갖춰진 중독성은 이미 역전 시나리오의 긍정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보이즈 라이크 걸즈(Boys Like Girls) ‘The great escape’
단번에 꽂히는 멜로디와 단순한 구성에 탄산음료 한 잔의 청량감이 담겨있다. 팝 펑크 특유의 경쾌함을 살린 ‘The great escape’는 국내에서 각종 게임 대회와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해 201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던져 버려, 어제는 잊고. 우리는 위대한 탈출을 감행할 거야!’라며 반항적으로 외치는 노랫말과 톡쏘는 절정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그들의 스트레스도 단숨에 해소해줄 만큼 여전히 강렬하고 통쾌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씁쓸한 말을 일삼던 시기에 브로콜리너마저는 방황하던 젊은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단출하고 편안한 기타 선율 위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읊조렸을 뿐이지만 흔하디 흔한 위로가 건넨 온기는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특히 후미에 등장한 계피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역주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추억 속 포크 음악이 주는 진솔한 감상을 잠시 음미하기조차 어려워진 오늘날, 각박한 현대사회를 다정하게 물들일 추억 속 책갈피를 펼쳐본다.

데프콘(Defconn) ‘길’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은 데프콘은 20세기에 첫 앨범 < Kapital G >를 발표할만큼 경력이 길다. 하드코어 랩 ‘독고다이’나 버벌진트와 함께한 ‘Sex drive pt.2’ 처럼 거친 초기작은 친근한 이미지로 희석되기 아쉽다. 거침과 부드러움을 배합한 2003년 작 정규 1집 < Lesson 4 The People >에서 ‘길’은 후자에 속했다. 초등학생 시절이 끝날무렵 접한 푸근한 멜로디와 쏙쏙 들리는 가사는 지오디의 동명의 히트곡과는 다른 매력이었고, ‘슈퍼스타’란 곡으로 잘 알려진 불독맨션의 이한철이 피처링을 맡아 밴드풍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삶의 기로에 놓인 무명 래퍼의 솔직담백한 곡이다.

팀발랜드(Timbaland) ‘Give it a go (feat: Veronica)’
팀발랜드는 2000년대 중후반 뮤지션과 프로듀서 등 다양한 직함을 내걸고 히트곡을 쏟아냈다. 휴 잭맨 주연의 영화 < 리얼 스틸 >에 수록된 ‘Give it a go’는 주인공 소년과 격투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흥겨움을 선사했다. 팀발랜드 특유의 전진하는 편곡에 배우 겸 가수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힘을 보탰다.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로 히트 공식도 성립하지만 비슷한 제목의 ‘Give it to me (Feat. Justin Timberlake, Nelly Furtado)’가 빌보드 1위까지 오른 것에 비해 싱글 커트 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가 나온 1979년작 < 챔프 >의 21세기 버전 같은 < 리얼 스틸 >의 사운드트랙엔 이 곡을 비롯해 푸 파이터스의 ‘Miss the misery’와 에미넴의 ”Till I collapse (Feat. Nate Dogg) 같은 강력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싸이 ‘비오니까’
우리의 ‘연예인’에서 모두의 ‘연예인’이 된 싸이는 댄스 가수다. ‘챔피언’, ‘연예인’, ‘Right now’, 그리고 ‘강남 스타일’까지 결정적인 대표곡들이 전부 신나는 춤곡인 탓에 바꿀 수 없는, 바꾸지 않을 선입견이 그에게 잡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선정적인, 성적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친구놈들아’, ‘아름다운 이별 2’, ‘예술이야’, 그리고 이 특집에 넣은 ‘비오니까’ 같은 작품을 더 자주 듣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광석 정도를 빼면 내가 노랫말을 유심히 보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비오니까/그러니까/그래서/그랬어요’. 운(韻)이 단순해서 좋다. 싸이를 발라드 가수로 만들자.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The middle’
약 10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록의 봄이 돌아오기를. 올리비아 로드리고, 머신 건 켈리, 태연, (여자)아이들 등 그 문법을 활용한 뮤지션이 활약하는 요즘 펑크(funk)와 디스코 이후 새 과거 유산을 찾듯 신복고 물결을 타고 고개를 내미는 록이 정말 반갑다. 걸걸한 기타 사운드로 가득한 나의 애청목록에 반해 국내 싱글 차트에서는 정제된 신시사이저만이 울리고 있어 쉬이 눈길이 가지 않아 이를 정화하고자 록 음악을 준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 있는 20세기 노래를 소개하기에는 역주행에 ‘역’자도 꺼내기 전에 실패할 것 같아 2001년 빌보드 HOT100 탑10에서 5위에 올라 딱 중간을 차지했던 팝 펑크의 정석 ‘The middle’을 추천하고 떠난다.

공원소녀 ‘Bazooka!’
좋은 음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빛을 본다는 운명론을 믿는 편이다. 공원소녀를 두고 ‘아직 발화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도약할 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일삼던 것 역시, 그들이 꾸준히 선보인 양질의 결과물에서 리스너의 확신을 도출했기 때문이었다. 현란한 멜로디와 모범적인 드롭 활용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계열의 K팝 사운드를 정립한 ‘밤의 공원’ 시리즈와 더불어 대중성까지 고루 버무린 웰메이드 트랙 ‘Bazooka!’를 그저 과거의 산물로 남겨두기에는 이제 아쉬움보다 죄책감이 앞설 정도다. 역주행 워너비의 영순위로 이 곡을 뽑은 이유는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그 누구에게 들려주더라도 단번에 사로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스카이 페레이라(Sky Ferreira) ‘Everything is embarrassing’
매체와 기기의 거듭된 발전으로 국가 간 장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이미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두아 리파와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이제는 마니아 감성의 찰리 XCX와 FKA 트위그스까지 국내에서 입지를 꽤나 얻은 상태다. 그렇기에 더더욱 짙은 스모키 화장과 공허한 삼백안의 뮤즈, 스카이 페레이라의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 비교적 주목은 덜하더라도 이들 못지않은 만능 플레이어기 때문. 대표곡 ‘Everything is embarrassing’을 보자. 자욱한 몽환경 속 덧없는 애가(哀歌)는 취향의 영역을 가혹하게 요구하지만, 기어코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진 매력을 지닌다. 게다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인 팝의 기본 질서를 탄탄하게 충족하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만약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새벽 시간의 퇴폐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앨범 < Night Time, My Time >까지도 필청을 권한다.

소나무 ‘넘나 좋은 것’
행사 공연 ‘직캠’ 하나로 메이저 반열에 올라선 이엑스아이디, 전국 곳곳의 군부대를 누비며 ‘젊은 장병들의 선택’을 받았던 브레이브걸스, 낙수 효과 덕분에 ‘좋은 음악’을 재조명 받을 수 있었던 라붐까지. 이들의 모든 역주행 공식을 따랐지만 걸그룹 소나무만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철 지난 속어 제목을 실패 이유로 들기엔 곡 구성과 멜로디가 결점을 완벽히 상쇄한다. 아카펠라로 출발해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을 비롯한 악기들이 펼치는 협연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감상을 이입하고, 끊임없는 변주의 끝엔 메인보컬 하이디의 환상적인 5단 고음이 펼쳐진다. 음원엔 이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전히 담기지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 늘 푸른 기운을 담은 라이브로 관객을 놀라게 할 2010년대 슈가맨.

탑독 ‘애니’
유독 남자 아이돌에겐 이 짜릿한 역행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 노래가 좋아도 팬덤 위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 널리 퍼지기 힘든 구조가 한몫한다. 13인조 보이그룹 탑독 역시 초기의 난감한 콘셉트가 꽤나 큰 진입장벽을 세워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 1주년이란 ‘기념일(Anniversary)’을 맞아 발표한 팬송만큼은 대중적으로 회자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1990년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래퍼 MC 해머와 바닐라 아이스를 모티브로 한 뉴 잭 스윙 장르의 댄스곡이라는 점부터 특색 있다. 세련된 기타 리프와 신나는 비트 사이에서 개성 넘치는 랩과 보컬이 쉴 틈 없이 호흡을 주고받고, 후렴구에선 LP를 들고 현란한 안무를 소화하며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청취를 막아서는 것은 멤버들을 다닥다닥 정렬해놓은 앨범 커버. 우연히 재소환 당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처럼 사진 교체가 시급하다.

씨아이엑스 (CIX) ‘Cinema’
워너원으로 활동했던 배진영 그룹이라는 별명보단 데뷔 무대가 기억에 남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야외무대에 선 신인 아이돌은 풋풋하고 열정적이었다. 소형 기획사지만 송 캠프 시스템을 도입하여 음악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주목했다. 데뷔 초의 무거운 콘셉트와 음악을 씻어내고 산뜻하게 다가온 ‘Cinema’는 팀의 잠재력을 확인한 결정적 순간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지만 선명하진 않다. 사이다처럼 톡 터지는 한 구절 대신 일정한 리듬과 편안한 멜로디로 상투적인 청량 K팝과 거리를 둔다. ‘Ready and action!’이라는 사인 뒤, 맥동하는 기타와 함께 시작하는 도입부와 코러스에서 쭉 뻗어 나가는 승훈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내 필름 위에 씨아이엑스를 선명히 각인한 테이크다.

코난 그레이 (Conan Gray) ‘Generation why’
‘Maniac’의 전세계적인 히트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코난 그레이의 매력은 순수한 미성으로 부르는 냉소적인 가사다. 아일랜드-일본 혼혈로서 시달린 선입견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12번 이사한 과거가 공허하고 우울한 음악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Z세대 팝스타로 떠오르기 이전에 발매한 ‘Generation why’는 더욱 몽환적이고 내밀하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소년은 ‘우린 무기력하고 이기적이고 유별난 데다가 모두 죽고 싶어 하는 밀레니엄 세대니까’라며 비꼬고 수백 번은 들었을 ‘너희 세대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라는 잔소리를 떨쳐내려 한다. 그 모습이 세대 갈등을 겪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어른들도 조금은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나인뮤지스 ‘Wild’
달샤벳, 레인보우와 함께 ‘나달렌’으로 묶이며 늘 더 뜨지 못해 안타깝다는 시선을 받았던 걸그룹 나인뮤지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아까운 건 역시 2013년에 발표한 ‘Wild’다. 차가운 건반 사운드와 화려한 전자음을 뚫고 나오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단번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자극적인 콘셉트에 가려진 사랑하는 이에게 외치는 가사 ‘늘 함께 함께 가야만 해’가 퍼뜨리는 울림 또한 폭발적이다. 분열로 가득한 지금 시대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지난해 SBS < 문명특급 >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특집의 무대 곡으로 가장 흥행했던 ‘Dolls’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학창시절 방송반 선곡표를 짜며 이 노래를 듣고 감탄에 빠졌던 나는 여전히 ‘Wild’와 함께 가고 있다.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Run away with me’
‘Call me maybe’의 돌풍 이후 가볍고 반복적인 훅을 내세운 ‘I really like you’는 복귀작 < Emotion >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앨범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거뒀다. 두 번째로 발표한 ‘Run away with me’ 또한 빌보드 차트에는 진입조차 못했으나 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에 어느덧 그의 상징적인 곡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도입부의 색소폰과 따스함을 머금은 멜로디,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 ‘나와 함께 달아나자!’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노래가 흥행하지 못한 것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풍 레트로 유행을 5년가량 앞섰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칼리 래 젭슨은 바쁜 틴 팝 스타를 벗어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탈한 뮤지션이 된 삶에 만족한다지만 적어도 이 노래 만큼은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정리 : 장준환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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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50(이오공) 인터뷰

뽕,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한 글자에 대한 탐구는 몇 년 전만 해도 분명 유행에 반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 미지의 기운은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에서 틈틈이 한자리씩 차지하며 시대 전체를 관통했다. 뽕짝 또는 트로트라는 이름만으로, 통속적인 멜로디나 구성진 창법이란 특징만으로 ‘뽕’을 정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돌고 돌아 뽕은 무엇인가? 2017년 돌연 뽕을 찾아 떠나겠다고 선언한 댄스 음악 프로듀서 250(이오공) 역시 그에 대한 해답을 바로 내리지 못했다. 물론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이박사를 비롯한 뽕짝 음악의 전설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특유의 분위기를 체화했고 지난 3월 드디어 세상을 향해 문제작 < 뽕 >을 내던졌다. 기나긴 고민과 노력 끝에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5년, 그간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며 한국적인 사운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눴다.

생소할 법한 ‘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예전부터 전형적인 EDM 공식에 맞춘 음악들을 즐겨 들었고 그런 사운드를 만들고 싶어 했다. 특히 직접 녹음한 목소리보다 전혀 관계없는 장르의 기존 보컬 소스들을 미디 프로그램으로 편집해서 만드는 샘플링 방식이 멋있어 보였다. 그러던 중에 어디에서 소재를 가져올지 찾아보게 되었고 탐색 끝에 내린 결론이 ‘뽕짝’이었다. 뽕짝을 원재료로 한 노래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아카이브 자체가 무궁무진해서 그야말로 노다지에 가까운 분야였다.

가끔씩이라도 듣던 음악이긴 했는지.

일부러 찾아 들은 적은 없었다. 작업을 위해 고른 뽕짝이 막상 음악적으로 어떤 요소가 있는지 하나도 몰라서 한 2년 정도는 진지하게 뽕짝만 들으면서 지냈다. 그래서 당시에 사운드클라우드도 완전히 끊었다. 플랫폼을 사용하다 보면 실시간으로 최신 노래들이 뜨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것들에 쫓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은 세련되고 멋있는 소리지만 한편으로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스타일일 수 있다. 유행어처럼 짧게 소비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 견뎠다.

음악을 제대로 시작한 이후부터 스티비 원더나 마이클 잭슨처럼 의식적으로 찾아 들어야 하는 음악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정립한 나만의 기준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전부 걷어내고 그 이전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뽕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뽕 >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일단 회사 사람들 외에는 음악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고 회사도 그걸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 믹스셋을 틀었을 때는 반응이 달랐다. 전에 클럽 케이크샵에서 요즘 떠오르는 힙합 뮤지션들을 모아서 하는 힙합 파티가 있었다. 내가 선곡한 음악들이 행사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힙합만 틀기는 싫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뽕짝으로만 1시간을 채웠다. 웬만하면 나를 앞으로 이런 애매한 환경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다. 그때 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어서 영상에 담기지 않았지만 관객들이 한 명도 안 빠지고 다 나갔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단어 자체가 주는 은근한 반감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앨범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섭외에 응해주지 않은 분도 계셨다. 꼭 해주셨으면 하는 분이었어서 편지를 써서 설득해 보려 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까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어떤 의미에서 < 뽕 >이라는 제목을 싫어하는지 알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하려는 뽕은 그렇게 뻔하고 통속적인 뽕짝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아쉽지만 어설프게 설명하려다 앞뒤가 안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뽕이라고 하는 단어에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까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앨범을 제작하면서 참고한 작품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앨범 전체의 레퍼런스 같은 곡이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레코딩된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 분석하면서 들었을 때 시대와 관계없이 너무 완벽한 노래다. 진보적이면서도 세련된 사운드, 애절함이 느껴지는 가사, 중간에 기술적인 부분을 과시할 수 있는 구간까지 모든 요소가 적절히 녹아 있는 곡이라서 그 노래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은 게 내 바람이었다.

레퍼런스가 뽕짝이 아니라는 점은 의외다.

이은하 씨가 원래 절창인데다가 꼬아가면서 부르는 편인데 그 곡에선 확 튀는 순간 없이 차분하게 눌러서 절제한다. 알고 보니 이 곡의 작곡 겸 프로듀싱을 맡은 장덕 씨가 주문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노래를 잘하는 것과 별개로 오히려 참고 부르면 더 슬프게 들릴 거라고 디렉팅을 해서 그런 노래가 나왔다고 한다. 항상 능력을 최대치로 쏟아내는 게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만 그 감정을 정제해서 표현하는 느낌, 이런 부분이 여러모로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뽕짝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음악적 요소는 무엇인지.

반주의 메커니즘 자체가 매우 개인적이다. 연주자 한 명이 키보드 한 대로 모든 걸 해결한다. 자동 반주 기능을 켜고 왼손으로 베이스, 오른손으로 코드를 연주하면서 바탕을 먼저 쌓아두고 후에 여기저기서 리드 악기를 덧붙이며 멜로디를 쌓아가는 방식이다. ‘사랑 이야기’만 봐도 이박사님이 불렀던 멜로디를 찢어지는 신스 사운드로 바꾸고 거기에 모듈레이션을 걸었다. 뽕짝 연주자들이 현장에서 손으로 직접 하는 걸 나는 마우스로 하나하나 조절했다. 절대 밴드 음악은 아니다.

실제로 사운드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현존하는 뽕짝 음악 중에서는 최고의 소리를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적으로 촌스러워자는 건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질료를 들여와 만든 작업물인 만큼 기본적으로 사운드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감정적인 공감으로 호평을 듣는 것도 좋겠지만 나에겐 사운드가 좋다는 말만 한 칭찬이 없는 것 같다.

음원 사이트에는 다프트 펑크 앨범 작업을 맡았던 프랑스의 CHAB가, 한정반으로 발매한 CD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와 협업했던 코테츠 토루가 마스터링에 참여했다. 두 가지 버전으로 공개한 이유는.

둘 중에 어느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각각의 개성도 느껴졌고 차이도 컸다. 아마 들어보면 확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마스터링 때문에 스피커를 하나 새로 장만했다. (웃음)

앨범에 실린 11개의 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 뽕 >의 전반적인 흐름을 고려했을 땐 ‘모든 것이 꿈이었네’다. 이박사님과 함께 김수일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불러주신 곡 중 하나인데 당시 현장에 있던 모두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바로 투트랙으로 반주랑 가창을 녹음 받아서 어떻게 활용할지 많이 고민했었는데 그 순간의 감동을 담는 게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어 처음 부른 파일 그대로 실었다.

앨범을 완성하고 1~2달 정도 안 듣고 있다가 마스터도 맡기고 믹스도 최종 수정을 해야 해서 ‘모든 것이 꿈이었네’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덜컥 내가 죽기 전까지 이거보다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박사와 김수일, 두 콤비와의 작업기는 다큐멘터리 < 뽕을 찾아서 >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된 영상 콘텐츠인지.

온전히 회사의 아이디어다. 나는 그냥 앨범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회사에서 먼저 앨범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보자고 제안을 했다.

사실 비트메이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뒤에서 어떤 면으로는 아티스트보다 더 큰 존재로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에 매체에 내 얼굴을 드러낸다는 그림이 없었다. 단지 내 음악을 듣고 누가 만든 건지 찾아봐주고 알아줄 때, 프로듀서와 리스너 사이에 이상적인 관계가 성립된다고 생각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을 통해 그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앞서 언급했던 두 분과의 만남 당시 직접 사용하시는 악기도 보여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쭤봤고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그때 들고 나오신 악기는 평생 사용하신 장비였는데 플로피 디스크를 꽂아서 저장해 둔 데이터를 로딩하는 방식이었다. 그 속엔 ‘YMCA’나 ‘몽키 매직’ 같은 옛날 노래들이 원본으로 담겨 있었고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키보드 자체에서 소리가 웅장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들이 내 눈앞에 있는 악기, 연주자, 즉석 시퀀싱에 의해 물리적으로 실존할 수 있다는 걸 느꼈고 음악을 듣는다는 기준 개념 자체가 흔들렸다. 음악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임팩트가 센 순간이었다. 어차피 혼자 집에서 마우스로 비트를 만들던 사람이니까 다큐멘터리를 찍는 게 큰 의미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서울로 돌아올 때 내가 찍는 영상이 어쩌면 의미가 있는 기록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뱅버스’의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많이 됐다.

뮤직비디오 역시 아이디어를 제공해 줬을 때 가볍게 의견 정도만 첨언하는 식이고 크게 물어보지 않는다. 기왕이면 나도 완성본이 떴을 때 직접 클릭해서 보고 싶다. 결과물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스태프분께서 현장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난데없이 모텔 벽에 어떤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스파이더맨 촬영장을 보는 것 같았다. 뽕에서 시작했는데 긴 와이어를 달고 액션을 펼치는 스턴트맨이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사진 보고 엄청 웃었다.

근 5년이란 작업 기간을 가졌다. 앨범 공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코로나 때문에 1년 정도 지연된 것도 있지만 그 사이에 ‘휘날레’와 ‘춤을 추어요’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밀렸다기보단 앨범이 완성되지 않았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애초에 이런 결과물을 만드는 데 이 정도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긴 시간 끝에 체득한 ‘뽕’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군가는 뽕짝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트로트를 떠올린다. 누구나 자조적인 해석으로 한 마디씩 거들 수 있는 건 맞지만 ‘뽕’이라는 한 글자에 기본적으로 ‘촌스러움’이란 공통분모가 내재되어 있다. 나는 그걸 인정하고 시작했다. “나는 촌스러워. 난 촌스러운 게 좋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음악을 만들면서 너무 올드한 감성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는데 세련돼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 꾸며대는 것이야말로 제일 촌스러운 행동 같았다. 차라리 이 촌스러움을 정말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는 이유 있는 촌스러움, 즉 나의 온전한 취향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트랙 ‘휘날레’가 유독 튀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지.

그렇다. 사운드 자체만 볼 때 뽕짝이라고 할 이유는 없지만 나를 슬프게 만들고 향수를 자극하는 소리야말로 나에겐 뽕이었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만화 주제가는 나에게 노스탤지어 그 자체였다. 특히 < 아기공룡 둘리 >는 엄마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아이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유독 아련하게 남아있다. 계속 슬프게 기억되는 어린 시절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앨범 마지막에 ‘휘날레’라는 곡을 넣게 되었고 이왕이면 원곡을 부른 오승원 씨가 서사를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유튜브에서 오승원 씨가 비교적 최근에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신 영상을 봤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음색엔 변함이 없었고 동심으로 돌아간 관객들은 모두 탄성을 자아내며 무대에 깊이 빠져 있었다. 댓글들도 다 똑같은 얘기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 사이에 흘러버린 시간을 체감하면서 복잡함 감정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음원 사이트에서는 누락된 ‘춤을 추어요’는 어떤 곡인가.

원곡 자체는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지만 사실 故 신해철의 기일에 맞춰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려고 했던 일종의 헌정곡이다. 앞부분에 나오는 드럼은 넥스트 ‘인형의 기사 Part Ⅱ’에 나오는 드럼을 샘플링했고 중간중간 허밍이나 보컬 소스들도 조금씩 넣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매한 앨범이 신해철 2집인 만큼 신해철은 나에게 각별한 뮤지션이다. 여러 이유로 앨범에 실리진 못했다.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만든 앨범은 아니지만 듣는 입장에선 이날치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를 이식하는 작업으로 느껴져 의미 부여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분명 있었어야 하는 시도인 건 맞지만 < 뽕 > 은 어디까지나 나 250의 사운드를 담은 작품일 뿐이다. 나는 태어나서 외국을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평생을 한국에서 먹고 자며 자랐기 때문에 뭘 해도 난 결국 한국인이다. 애초에 정체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한국인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DNA를 고민해 본다면 그 답이 결코 국악이 될 수는 없었다. ‘국악’이라고 하면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민요 공연이나 국립국악원 정도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내 삶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사운드 자체에서 뭔가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에 비해 뽕짝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고 서글프다. 다들 뽕짝 음악을 어디서 맨 처음으로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어렸을 때 고속도로 위를 운전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화장실 가려고 잠깐 들린 휴게소에서 우연히 듣게 된 소리, 언제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음악이다. 의식하고 들은 것이 아니라 살아가다 보니 우리 삶의 배경 속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있던 음악이었고 내 음악에도 이런 정체성을 억지로 어필하기 보다 자연스럽게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다.

해외 매체에서도 이런 한국적인 질감에 신선함을 느껴 주목하는 분위기다.

뽕이라는 화두가 있어서 다뤄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외국인들에게도 전혀 진입 장벽이 없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사운드로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맥락으로 밀어붙일 생각인지.

무슨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처럼 그다음에 뭔가를 하려는 것도 좀 그렇고, 이미 한 번 했다고 똑같은 거 두 번 안 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 같다. 이번 앨범을 만들 때도 전부 내 마음대로 했듯이 그때그때의 내 감정에 충실하면서 적당한 그릇에 담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당장은 큰 변화 없이 똑같이 가려고 하고 있다.

힙합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제작할 계획은 없는지.

사실 힙합 앨범도 생각은 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좋아했던 음악 중 하나인데 그걸 한 번도 안 하는 것도 이상하고 맨날 노스탤지어만 뒤지고 다니면서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언젠가는 꼭 만들 생각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 힙합을 한다고 하면 어떤 사운드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 같아 구체화된 건 없다.

향후 공연 계획도 궁금하다.

최대한 많은 곳에서 이 곡들을 라이브로 들려드릴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다. 일반 힙합 클럽에서 공연하기 위해서 다른 음악들과 뽕짝 음악의 접점을 찾아야 하고, 어떤 식으로 섞어서 틀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단계다.

답사 차원으로 다녀온 콜라텍 같은 무대에서 공연할 생각도 있는지.

물론이다. 콜라텍이 생각보다 놀기 좋은 공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는 클럽들이랑 차원이 다르다. 사운드도 빵빵하고 반짝이 같은 조명도 막상 켜놓으면 은은하게 분위기가 산다. 술 마시고 춤추면서 논다고 볼 때 웬만한 클럽보다 쾌적함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진행: 장준환, 임동엽, 정다열
사진: BANA 제공
정리: 정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