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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EDM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

‘EDM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폭넓게 사랑받았던 2009년부터 2015년을 전후로 신과 밀접하게 닿아있던 디제이들 가운데, 적절한 난이도와 독자적인 개성으로 사람들의 열띤 환호를 받았고, 더 나아가 모든 ‘전자음악’ 자체에 본질적인 관심을 끌어낼 만한 아티스트 10인을 간추린다. 또한 이들의 무수히 많은 커리어에서 입문에 용이한 추천작을 성실히 골랐다.

5.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2011년, ‘Feels so close’가 처음 차트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이들은 스타의 탄생을 직감했다. 1980년대 디스코를 장난스럽게 복각한 < I Created Disco >(2007)로 음악계에 발을 내딛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괴짜 디제이, 캘빈 해리스는 복고 지향성을 잠시 접어두고 팝 시장을 향한 슬로건으로 ‘간결함’을 내걸었다. 가공을 거친 세련된 선율과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곡 전개는 마치 데이비드 게타의 형형색색 글리터와 아울 시티의 유려한 드림 팝을 더한 결과물과 같았다.

그에게 기폭제를 가져다준 결정적 기점은 리한나와 함께 작업한 ‘We found love’다. 사랑을 찾는다는 신묘한 캐치프레이즈 아래 정석적인 빌드업과 드롭 기법을 입힌 싱글컷은 무려 십 주 연속 빌보드 정상을 독점하며 ‘I gotta feeling’과 함께 역대 가장 성공한 EDM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캘빈 해리스는 다양한 보컬과의 협업을 펼쳤고, ‘Let’s go’, ‘Sweet nothig’, ‘I need your love’ 등 후속곡을 연타석 성공시키며 입지를 단단히 다져나간다.

18개월간의 발매곡을 모았다는 의미의 포트폴리오 < 18 Months >(2012)는 < Nothing But The Beat >의 맥을 잇는 옴니버스 구조의 매끈한 일렉트로닉 팝 앨범이다. 통통 튀는 질감의 ‘Bounce’부터 ‘Awooga’까지 이어지는 50분의 대장정이 유행 첨단에 위치한 팝 스타일을 집약한다. 다만 안정적인 타이틀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복고 돌입이라는 도전을 강행, 해리스는 그간의 경험과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완성도를 높인 < Funk Wav Bounces Vol.1 >(2017)으로 평단의 인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현존하는 유명 디제이 가운데 개성 넘치는 행보를 가졌지만 실력 면에서 별다른 굴곡이나 탈선 없는 안정적인 지표를 자랑한다. 리한나와의 재회 ‘This is what you came for'(2016)와 두아 리파의 감각적인 파형을 포착한 ‘One kiss'(2018) 등 캐치한 작업물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변화와 완성도에 의지를 보이면서도 동향 파악에 뒤쳐지지 않는 수집력이 장점인 아티스트다.

추천)
< 18 Months > (2012)
< Motion > (2014) 中 ‘Summer’
< Funk Wav Bounces Vol.1 > (2017) 中 ‘Slide’
‘This is what you came for'(2016) / ‘One kiss'(2018)

6.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는 스웨덴 출신 디제이 인그로소와, 악스웰, 안젤로로 이뤄진 3인조 프로듀싱 팀이다. EDM이 포털 사이트의 뜨거운 검색어로 등극한 해인 2010년에 혜성처럼 등장해 놀라운 속도로 세계를 제패하고, 모두의 환호 가운데 과감히 해체를 선언하며 깔끔하게 행보를 종결지었다. 박수칠 때 떠난 뮤지션은 무수히 많지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들만큼 강력한 상승세와 임팩트를 보인 팀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팀명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이들의 주무기는 정통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와 솔로 디제잉에서 느끼기 힘든 강력한 볼륨감이다. 간단한 리프로 시작해 점차 세력을 키우며 집단을 형성하는 ‘One (your name)’과 ‘오늘 밤 누가 세상을 구하지?’의 포효를 울부짖는 ‘Save the world’조차 일견 전자음악 신을 구원하기 위해 ‘마피아’가 직접 강림하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펜듈럼의 후예로 나타나 페스티벌 지분의 상위권을 다투던 나이프 파티와 펼친 이벤트 매치 ‘Antidote’는 당시 클럽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적은 작업량에 비해 높은 타율로 유명하다. 도입부 맛집이라 불리는 마틴 개릭스 ‘Animals’의 전신 격인 ‘Greyhound’나, 벅찬 감동과 고양을 강조한 최대 히트곡 ‘Don’t you worry child’ 등 개별 곡이 EDM의 기본 소양을 우수하게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활동곡을 전부 모은 일련의 셋리스트 < Until Now >(2012)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4위로 데뷔하며 미국의 철옹성을 관통하고,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댄스 음반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해체 이후에도 그 여파는 여실히 이어졌는데, 이들은 솔로 활동으로도 3인조 시절 못지 않은 화제와 인기를 누렸으며 악스웰과 인그로소는 새로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으로 또 한 번의 그래미 수상의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팬들의 지속적인 성원 끝에 2018년도 복귀를 선언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는 최근 위켄드, 스팅과의 작업물을 발표하며 재도약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

추천)
< Until Now > (2012)

7. 제드(Zedd)

불과 3년만에 EDM이 영감의 부재와 지독한 자가복제를 앓으며 ‘M(뮤직)’의 의의를 잃어가던 순간 좋은 음악으로 승부를 내건 아티스트가 있었다. 22살 나이의 어린 제드가 조심스레 매대에 올려 놓은 출사표, 청명한 사운드스케이프와 명료한 강약의 일렉트로 하우스 < Clarity >(2012)가 그렇다. 커버처럼 투명한 실이 신경망처럼 얽힌듯 복잡다단하지만 품위와 신념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작품은 완성형 신인에 목말라 있던 EDM 마니아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느 때보다 반향은 빠르게 나타났다. 시원한 보컬 소유자 폭시스와 찢어질 듯한 전자음, 그리고 가스펠스러운 코러스 샘플이 서로 묵직하게 충돌하는 동명의 싱글 ‘Clarity’의 대성공으로 제드는 일약 화두에 올랐고, 이듬해 제드는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댄스 레코딩 수상의 타이틀을 따내기에 이른다. 크게 참신한 구성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주인공으로 추대 받은 이유는 탄탄한 연출력과 다채로운 재질 응용 등 충실한 기본기가 핵심이었다.

특히 타인과의 협업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피처링으로 투입되어 아리아나 그란데와의 찬란한 조화를 이룬 ‘Break free'(2014)는 물론, 알레시아 카라가 참여한 ‘Stay'(2017)와 매런 모리스와의 ‘The middle'(2018) 세 곡 모두가 빌보드 10위권에 무사히 안착했다. 여전히 회자되는 1집의 수록곡 ‘Spectrum’은 말할 것도 없다. 중심이 되어야 하는 페스티벌 친화적 작법뿐 아니라 참여자의 역량을 끌어내는 프로듀서로서 거둔 가시적인 성과다.

단편적인 연출에 그친 후속작 < True Colors >(2015)는 비록 전작에서의 자신감과 기개를 고루 드러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Beautiful now’나 ‘Papercut’ 같은 분명한 킬링 트랙을 남기며 수확을 거두기도 했다. 자칫 평범할 수 있는 공식을 말끔히 흡수한 뒤 자신만의 도구로 귀에 걸리는 지점을 환산하는 능력이 특출난 디제이다. 여전히 여러 무대와 사람의 러브콜을 받으며 돌출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추천)
< Clarity > (2012)
< True Colors > (2015) 中’Beautiful now’ (2015)
‘Stay the night’ (2014)

8. 아비치(Avicii)

2013년 3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전자음악 축제 ‘울트라 페스티벌’. 번쩍이는 거대 LED 섬광이 켜지자 헤드 라이너로 초청된 아비치가 손을 번쩍 들고, 모여든 관객석에서 환호가 연신 터져 나온다. 허나 무대 가득 울려 퍼지는 것은 컨트리 음악이다. 더군다나 군중이 통기타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드는 다소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만약 비난과 야유가 존재하지 않는 평행 세계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자기타를 들고 나타난 밥 딜런을 마주한 듯한 광경과도 같았다.

스크릴렉스가 EDM의 판도를 바꾼 게임 체인저였다면, 스웨덴 출신의 아비치는 그 틀을 부신 룰 브레이커였다. 정돈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트랙 ‘Fade into darkness'(2011)로 자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간단하고도 중독적인 리프의 ‘Levels'(2011)로 당당히 빌보드의 발판을 밟으며 점차 인지도의 반경을 늘렸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비치의 출현은 단순히 하우스를 이을 후임 적격자가 아닌 비범한 개척자의 등장에 가까웠다.

일렉트로니카에 컨트리라는 조각을 조합한 퍼즐 < True >(2013)는 패러다임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본 이베어 같은 실험적인 아티스트가 주도할 법한 장르인 ‘포크트로니카’는 그의 손에서 완벽한 대중음악의 수단으로 부상하게 된다. 타이틀곡인 ‘Wake me up’은 10개국 메인 차트에서 정상을 거머쥠과 동시에 차트 4위라는 놀라운 순위를 갱신했으며, 이후 차례로 등장한 싱글컷 ‘You make me’와 ‘Hey brother’는 전자음악이 생소한 일반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비결은 스킬풀한 믹싱 능력과 탁월한 멜로디 창출이다. ‘Waiting for love’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일렉트로니카는 형식과 뼈대만 남겨둔 뒤 감각적인 컨트리 옷감을 주 소재로 덧입히고, 필요에 따라서 의복을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또한 선율의 부각은 과거 아바에서 로빈으로 내려오고, 에릭 프리즈와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로도 이어지는 명징한 ‘스웨디시 팝’ 사운드를 당당히 계승하며 스웨덴이 분명한 댄스음악 명가임을 입증한다.

주목도와 영향력, 그리고 성과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정점을 구가하며 최상의 인기를 누렸던 아비치지만,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투어에서 하차하는 등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보였고 2014년 결국 안타깝게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항간에는 “아비치의 죽음이 EDM의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이 문장이 우연의 일치인지, 혹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건 아마도, 그가 모든 음악을 동등하게 존중하며 자신의 팔레트를 순수하게 꾸려나간 박애주의자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
< True > (2013)
< Stories > (2015) 中 ‘Waiting for love’
‘Levels’ (2011) / ‘X you’ (2013) / ‘The nights’ (2014)

9. 디스클로저(Disclosure)

개러지라는 용어는 대중음악의 오랜 총아다. 비틀즈와 함께 영국의 록이 미국에 상륙한 1964년, 성공의 희망을 품은 젊은 밴드들이 ‘차고’에서 아마추어리즘과 DIY 정신으로 탄생시킨 개러지 록은 펑크의 전신을 이룩했고 십 년 단위로 리바이벌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977년 개장한 뉴욕의 클럽 ‘파라다이스 개러지’에서 유행한 전자음악의 분파 개러지 역시 동일한 이름만큼이나 시간이 지나도 다시금 회귀하려는 에토스를 공유하고 있다.

UK 개러지는 1990년대 말 유럽에서 부흥한 투-스텝 기반의 비교적 깔끔한 댄스 음악을 칭한다. 정글과 드럼 앤 베이스의 산하에서 태어났기에 밀고 당기는 기묘한 박자감을 특징으로 갖는다. 다소 생경스러운 디스클로저의 첫 정규작 < Settle >(2013)이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UK 개러지의 소환에 있었다. 정공법으로 차트를 추격한 제드나 공식의 변형으로 고정관념을 타파한 아비치의 동시대 성공 신화와는 달리, 디스클로저의 흥행 비결은 온고지신의 자세와 성공적인 각색이었다.

첨예한 비트가 목사의 열띤 설교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When a fire starts to burn’부터 결코 범상치 않다. 별다른 기폭 장치나 필터가 없을뿐더러 기존 EDM 문법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지만, 분명 춤추기 좋고, 감각적이며, 트렌디하다. 치밀한 박자 감각은 꿈틀대는 본능을 재건하고, 특유의 먹먹한 공간감과 방울처럼 응집된 신시사이저 소스는 몽롱한 환락 분위기를 창출하며 클럽 신의 경향성을 제시했다. 플룸의 획기적인 리믹스로 인기를 얻으며 ‘퓨처 베이스’ 시대의 개막을 연 ‘You & me (Flume remix)’도 이 음반에 속한다.

이들의 히트곡 ‘Latch’는 빌보드 7위에 오르며 당시 긴 무명 생활의 고초를 겪고 있던 샘 스미스를 단숨에 팝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공신의 역할을 했다. 또한 그들의 영향은 K팝에서도 간혹 나타나는데, 몽환적인 딥 하우스의 도입으로 화제를 이끈 에프엑스의 ‘4 walls’가 UK 개러지의 색채가 깊게 드러난 곡이다. 만약 느린 속도감과 실험 요소가 다분한 < Settle >이 다소 심심한 이들에게는 팝적 영합을 꿈꾼 무도회 < Caracal >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추천)
< Settle > (2013)
< Caracal > (2015) 中 ‘Omen’
< Energy > (2020) 中 ‘Tondo’, ‘Talk’
‘Ultimatum’ / ‘Moonlight’

10.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

메이저 레이저는 국내에서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프로듀서 디플로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한창 EDM이 세계 진출의 발판을 다질 무렵인 2009년, 당시에는 생소했던 레게톤 기반의 댄스 음악인 뭄바톤을 주무기로 밀어붙이며 유행 탑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캐릭터를 강조했다. 흥겨운 이국 리듬과 그르렁거리는 베이스 위로 수많은 자메이카 댄스홀 음악가를 초청한 첫 번째 작품 < Guns Don’t Kill People… Lazers Do >로 정체성과 방향키를 잡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뭄바톤이 국가를 불문하고 팝의 주류 기법으로 자리 잡는 데 이바지한 것은 아무래도 메이저 레이저의 공이 크다. 물론 그 배후에는 ‘Get low'(2014)를 흥행시킨 디제이 스네이크와 딜런 프랜시스의 공을 빼놓을 수 없지만, 메가 히트를 기록한 이들의 ‘Lean on'(2015)이 오늘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교과서로 군림하는 이유다. 커버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캐릭터 ‘레이저 소령’과 함께 끈기 있게 파고든 6년의 세월은 품에 다 안지 못할 만큼의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정수라 할 수 있는 3집 < Peace Is The Mission >(2015)이 지니는 가치는 다각적이다. 정형화된 EDM이 짧은 역사를 뒤로 한 채 저물기 시작할 무렵, 메이저 레이저는 디스클로저나 플룸과 같은 신선함으로 무장한 채 등장한 굵직한 게릴라 분파 중 뭄바톤의 각성을 전적으로 담당하여 향후 라틴 팝의 재유행과 K팝 전반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비교적 마이너 노선을 자청하던 이전작과 달리 키치함을 덜어내고 대중적인 지점을 마련하며 돌파구와 바이블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오늘날 뭄바톤은 이미 블랙핑크의 ‘불장난’과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로 익숙한 양식이 되었지만, 지금의 인식과 형태가 있기까지 나름의 오랜 변천사와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음악 역사를 통틀어도 외골수가 실패한 적은 없었듯이 메이저 레이저의 지고지순한 물방울이 세계의 돌을 뚫은 것은 이미 예견된 사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추천)
< Free The Universe > (2013) 中 ‘Get free’, ‘Watch out for this (bumaye)’
< Peace Is The Mission > (2015)
‘Cold wat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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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신시사이저의 보급화는 악기의 위상을 전복시켰다. 마찰과 진동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상상의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예술가들의 열망과 도전 정신을 주무르고 자극했다. 실험의 일환이었던 크라우트 록과 구체음악으로 구색을 갖추고, 조르지오 모로더와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선구자에 의해 팝의 영역으로 부상한 일렉트로니카는 이윽고 디스코, 하우스, 레이브 신을 거쳐 주류와의 영합을 점진적으로 시도해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뿌리로 각인되었다.

소위 EDM이라 불리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은 이 장대한 시간의 세례를 흡수하고 탄생한 결정체다. 본래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 전반을 포괄하여 부르기 위해 고안된 약칭이기에, 속성과 범위가 워낙 방대하고 특정 공통분모를 규정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철저히 현대의 용례인 ‘2010년대를 기점으로 차트에 등장한 댄스음악’에 집중한다.

미디 장비와 신시사이저를 주력으로 다루는 디제이가 중심이 되고, 클럽과 페스티벌 문화를 관통하며, 인공적인 사운드와 극적인 전개를 통해 고양감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설명하는 편이 이해가 쉽다.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된 다프트 펑크의 전설적인 라이브 공연 < Alive 2007 >이 세 가지 성질을 투영한 좋은 예다. 다만 소수만이 소비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가려는 팝 지향성은 EDM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다. 일렉트로니카 팬층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모든 이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성을 내비쳐야 한다.

그 영향력을 인정받아 2013년 빌보드에 ‘댄스/일렉트로닉 차트’ 항목을 개설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비대해진 상업성과 복제성을 지적받고 질 낮은 음악이라는 인식이 박히며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빠르게 덩치를 키우며 지분을 빼앗은 힙합 세력과 공연계를 전례 없는 침체기로 이끈 코로나도 하락세에 한몫 거들었다. 그럼에도 EDM은 굳건한 청취자층에 의해 꾸준히 소비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디제이들이 프로듀서라는 명함으로 각국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추세다. 체인스모커스, 갈란티스, 마시멜로우 등 실력 있는 신인들이 등장하며 자생의 발판을 다지는 중이다.

정녕 EDM은 클럽의 환락적 맥락만을 주장하고, 돈을 좇는 산업에 의해 맹목적으로 조종되는 저급한 음악인가? EDM을 통해 일순간 피가 끓어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졌던 경험은 정교하게 설계된 착각이었을까? 정해진 틀을 전전하고 유튜브 언저리를 떠돌며 값싼 유희만을 부각하는 양산형 음악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기는 힘들지만, 그 모래밭을 천천히 파헤쳐 보면 ‘열망과 도전 정신’이 드러난 보물을 발굴할 수 있다.

‘EDM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폭넓게 사랑받았던 2009년부터 2015년을 전후로 신과 밀접하게 닿아있던 디제이들 가운데, 적절한 난이도와 독자적인 개성으로 사람들의 열띤 관심을 받았고, 더 나아가 모든 ‘전자음악’ 자체에 본질적인 관심을 끌어낼 만한 아티스트 10인을 간추린다. 또한 이들의 무수히 많은 커리어에서 입문에 용이한 추천작을 성실히 골랐다.

1.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

데이비드 게타의 미국 진출은 EDM 세계화의 신호탄과 같았다. 베니 베나시 공전의 히트곡 ‘Satisfaction'(2003)이 일렉트로 하우스의 부흥을 가져왔다면 이를 연성화하여 2010년대 대중음악의 문법에 취입한 것이 그의 몫이다. 4/4의 정직한 박자 위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를 넣었고, 기존 디제이들이 리믹스 모음집이나 셋 리스트 정도로만 인식하던 앨범의 개념을 풀 렝스(full-length)로 확장하여 본격적인 팝 이식에 불을 지폈다.

프로듀서와 유명 퍼포머의 결합 체제를 적극 도입한 < One Love >(2009)가 그 해 52회 그래미 어워드의 ‘베스트 일렉트로닉/댄스 앨범’에 노미네이트되며 이름을 알린 것을 열풍의 시작으로 점친다. 이후 게타는 천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한 블랙 아이드 피스의 ‘I gotta feeling’ 프로듀서를 맡아 전무후무한 기록을 거두고, 대표작 < Nothing But The Beat >(2011)로 박차를 가하며 향후 팝을 지배할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크로스오버의 정석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플로 라이다, 크리스 브라운, 제시 제이 등 당대 잘나가던 가수들과 힙합 신의 릴 웨인, 니키 미나즈, 스눕독이 한 데 모여 리스트를 장식했다는 점은 당대에도 획기적 사안이었다. 아직도 길거리 매장과 플레이리스트를 바쁘게 오르내리는 ‘Where them girls at’과 ‘Turn me on’, 그리고 ‘Chandelier’가 흥행하기 전 시아라는 보컬리스트를 주목받게 한 명실상부한 댄스 넘버 ‘Titanium’이 여기 속한다.

독특한 점은 보컬과 연주 파트를 분리한 디스크 구성이다. 능숙한 퍼포먼스로 무대의 열기를 재현한 두 번째 디스크는 ‘The alphabeat’와 같은 순도 높은 일렉트로 하우스 트랙으로 가득 채워 앨범을 구매한 팝 청취자들의 입문을 유도했다.

칼 콕스, 다프트 펑크와 더불어 오랫동안 영향력을 끼친 디제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저명한 영국의 잡지 < 디제이 맥 >이 주관한 ‘DJ 탑 100’에서 무려 10년의 간격을 두고 1위로 선정된 이력은 게타가 유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능 프로그램 <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에 삽입되어 화제를 이끈 ‘Hey mama’를 비롯해 여러 히트곡을 산출하고 있는 데다 이제는 신흥 장르로 부각 받기 시작한 ‘퓨처 레이브’를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으니. 아직 현재진행형인 그의 커리어를 요약하기에는 조금 이를지도 모르겠다.

추천)
< One Love > (2009) 中 ‘When love takes over’, ‘Sexy bitch’, ‘Memories’
< Nothing But The Love > (2011)
< Listen > (2014) 中 ‘Hey mama’, ‘Bad’

2. 아민 반 뷰렌(Armin Van Buuren)

트랜스는 EDM의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분파 중 하나로, 간단한 멜로디를 계속 반복하는 테크노에서 뻗어 나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취합한 장르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라인을 거듭 주입하여 일종의 ‘무아지경(Trance)’ 상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러한 단어가 유래되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 중에서는 다루드의 ‘Sandstorm'(1999)이 대표적으로, 각종 인터넷 밈의 유행을 계기로 국내에 수입되기도 했다.

이 분야에서는 초기 성장에 크게 기여한 독일 출신의 ‘폴 반 다이크’와 ‘Adagio for strings’, ‘Elements of life’와 같은 여러 명곡을 남긴 황태자 ‘티에스토’ 등의 선구자가 존재하지만, 오래도록 사랑받은 인물은 단연 네덜란드 출신의 디제이 아민 반 뷰렌이다. < 디제이 맥 > ‘DJ 탑 100’의 최다 1위 주인공인 그는 오늘날까지 꾸준한 무대와 라디오 전파를 통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EDM 산업의 관점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철저히 트랜스를 주력으로 밀어붙인 < Imagine >(2008)이 자국에서의 성공을 거둠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으로 부드러운 클래식 악기와 보컬을 초빙한 변화구 < Mirage >(2010)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팝 지향성은 당시 클러버들에 의해 격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트랜스가 일반적인 대중에게도 통용될 감성적인 지점을 마련하고 프로그레시브 트랜스라는 진보적 흐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의의를 가져왔다. 장르의 변절이 아닌 진화의 단초였던 셈이다.

물론 장르 자체의 한계성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신진 장르의 침공으로 과거의 위상을 많이 소실한 트랜스지만, 그 영향력과 수요를 고려하면 분명히 놓쳐서는 안 될 EDM의 주요 줄기 중 하나다. 레이브 신의 과격한 쾌락주의에서 초월의 공감각을 꿈꾸며 뻗어 나온 트랜스. 역사의 일부로 기억하기에 앞서, 숱한 노력으로 교류를 펼치고 형상을 가꿔가며 맥박을 유지하게 한 정원사 아민 반 뷰렌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추천)
< Imagine > (2008) 中 ‘Imagine’,’In and out of love’
< Mirage > (2010)
< Intense > (2013) 中 ‘This is what it feels like’

3. 데드마우스(Deadmau5)

일렉트로니카에는 가면으로 유명한 세 아티스트가 있다. 은색과 금색 헬멧으로 무장한 다프트 펑크와 직관적인 하얀 원통의 마시멜로.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쥐의 탈을 쓴 캐나다의 디제이 데드마우스의 존재는 전자음악 신의 역사가 가면으로 매개되어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가 단단한 음악적 교두보를 담당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한 매체 인터뷰에서 마시멜로가 밝힌 “데드마우스는 틀림없는 EDM의 선구자이며, 나 역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언급이 이를 방증한다.

초기 다프트 펑크의 < Discovery >(2001)가 이끈 일렉트로 하우스 황금기는 곧이어 저스티스의 < Cross >(2007)와 디지털리즘의 < Idealism >(2007)으로 극단적인 장르 발현에 도달했다. 또 다른 갈래로 뻗어나가려는 습성을 지닌 일렉트로니카의 특성상 극점으로의 도달은 해당 분야의 종말과 새로운 전극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데드마우스의 등장부터 모든 행보는 트랜스와의 절묘한 결합을 거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생생한 진척도로 가늠할 수 있다.

데드마우스는 데이비드 게타가 마련한 토대와 아민 반 뷰렌이 구비한 진보적 물결을 등에 업고 EDM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개막했다. 그를 스타덤에 올린 곡은 드럼 앤 베이스 기반의 밴드인 펜듈럼의 보컬 롭 스와이어가 참여한 역동적인 일렉트로 팝 ‘Ghost’n’stuff’였지만,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영원한 바이블로 꼽히는 ‘Strobe’와 ‘I remember’를 같이 선보이며 마니아층의 우호까지 탄탄하게 사로잡았다. 이후 유행의 과즙을 여실히 담아낸 < 4×4=12 >(2010)을 통해 각종 페스티벌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며 승승장구를 걷게 된다.

몽환적인 도입부의 ‘Some chords’와 기묘한 박자감을 지닌 ‘Sofi needs a ladder’, 그리고 울프강 가트너와의 협업으로 차진 신시사이저 운용을 선보이고 귀를 잡아끄는 ‘Animal rights’가 대표적이다. 변화에도 민감했던 그는 ‘Raise your weapon’으로 당시 큰 돌풍을 몰던 덥스텝 색채를 선보였으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앰비언트를 시도한 감상용 음반 < While(1<2) >(2014)로 너른 스펙트럼을 증명하기도 했다. 대체로 육각형의 올라운더 디제이를 논할 때 먼저 꼽히는 베테랑이다.

추천)
< For Lack Of A Better Name > (2009) 中 ‘Ghost’n’stuff’, ‘Strobe’
< 4×4=12 > (2010)
< > Album Title Goes Here < > (2012) 中 ‘The veldt’, ‘Professional griefers’

4. 스크릴렉스(Skrillex)

데드마우스는 흐름을 바꿨다. 그리고 스크릴렉스는 세계를 바꿨다. 흔히 ‘덥스텝’으로 알려진 유행을 선도하여 당시 인터넷 문화 전반과 아티스트는 물론, 하물며 K팝 시장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전 세계적인 파급력을 발휘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스타일을 적극 수용한 현아의 ‘Bubble pop!’과 샤이니의 ‘Everybody’가 대표적이며, 포미닛은 그를 직접 프로듀서로 초청한 ‘싫어’를 발매하기도 했다.

날카롭게 깎아낸 사운드와 피치를 한껏 올린 보컬, 왜곡되고 뒤틀린 워블 베이스, 얼기설기 잘라낸 드롭의 향연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가 그 열풍의 시작이었다. 이 한 곡이 가져온 여파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때마침 소리 조각을 이어붙이는 전자악기 런치패드가 유행을 타면서 전방에는 그의 작법을 위시한 흐름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스크릴렉스는 <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와 < Bangarang >으로 2연속 ‘그래미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역사의 파피루스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컴플렉스트로라는 용어가 확립되지 않은 전파 단계에서 그의 음악을 지칭한 ‘덥스텝’이라는 표현이 기존 용어가 지칭하던 음악과 괴리가 컸기에 스크릴렉스는 지하실 순혈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또한 점차 EDM에 대한 반발감이 생겨날 즈음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음악 산업과 문화를 망친 장본인으로 낙인 되기도 했으며, 특유의 과격한 질감과 예측할 수 없는 산만한 전개가 중장년층의 반감을 사는 바람에 세일즈에 불리한 환경에 놓이기도 했다.

“You have technicians here, making noise. No one is a musician. They’re not artists because nobody can play the guitar.(여기에는 오직 소음투성이의 기술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뮤지션은 한 명도 없죠. 기타를 연주할 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과연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스크릴렉스는 디제이 공연을 시끄럽다며 비꼬는 한 영상을 샘플링한 ‘Rock’n’roll’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곡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세태를 꼬집으며 본인의 음악이 십 대 문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형식의 ‘로큰롤’임을 당당히 선고한 것이다. 디플로와 함께한 프로젝트성 그룹 잭 유(Jack Ü)와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콜라보에서는 대중적 짜임새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뤄내며 음악계가 탐내는 독보적인 멀티 플레이어로 등극하고 있다. 이제 그의 역량을 의심할 이는 없어 보인다.

추천)
<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 (2010)
< More Monsters And Sprites EP > (2011) 中 ‘First of the year (equinox)’
< Bangarang > (2011)
< Skrillex And Diplo Present Jack U > (2015) 中 ‘Where are u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