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2 한재희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두 번째 순서는 MBC 라디오 한재희 프로듀서입니다.

여기 있는 노래들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 10곡은 아니다. 좋아했던 곡들을 스무곡 남짓 추려내고 난 다음부터는 더 이상 순위를 매기는 게 불가능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내가 생각한 단어는 ‘인연’이었다. 음악과 내가 만난 인연. 그때의 나와 그때의 음악이 만나서 내 안에 뭔가 벌어진 이야기.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설픈 감상문을 쓰지 않아도 되고 라디오 사연같은 느낌도 날 것 같았다. 음악사이트 피치포크(pitchfolk)에 ‘The music that made her/him’이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있다. 뮤지션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인생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티클이다. 음악이 누군가를 ‘만들’ 수 있을까? 음악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렇다 할 음악방송 PD도 아니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그런 것도 같다.

프린스(Prince) ‘Little red corvette’
프린스는 나의 첫번째 스타이다. 열두 살 때 AFKN의 쇼 프로그램 < 솔리드 골드 >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TV채널을 2번에 맞추면 미군 방송이 희미하게 수신되던 시절이었다. 바닥에 연기가 퍼지면서 등장했다는 것,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강했다는 인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가장 뚜렷이 기억나는 건 객석의 비명소리이다. 그의 몸짓이 바뀔 때마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Little red corvette’이라는 곡명은 알아보지 못하고 프린스라는 이름만 기억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라디오에서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듬해 < Purple Rain >이 나왔고 그는 미국에서 슈퍼스타가 되었으며 나는 그의 평생 팬이 되었다. 노래마다 괴성을 지르고 외설적인 이미지에 금지곡도 많은 흑인가수의 팬은 자랑질도 쉽지 않았다. 평소 가장 보고 싶은 공연이 프린스였지만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세상에 없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음악이 아니라 활자가 먼저였다. < 음악세계 > 잡지에 평론가 이백천씨가 쓴 리뷰가 멋있었다. “이 정도면 굳이 외국 음악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문장을 읽고 동네 음악사로 갔다. 태어나서 처음 산 가요 테이프가 들국화 1집이었다. 전인권의 목소리가 에어로스미스 같았고 기타 솔로도 길고 화음도 멋있고, 여하튼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매일 테이프를 듣고 라디오 채널을 돌려가며 혹시 들국화 안 나올까 마음 졸이기도 했다. 내가 본 첫번째 콘서트도 들국화였다. 잠실실내체육관이었는데 하얀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깡마른 전인권 아저씨가 목을 길게 빼고 노래를 하면 온 공연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젊은 전인권의 라이브를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면서, 열네 살 나이에도 ‘나의 노래’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 대신 노래해주고 나 대신 소리질러주는 것 같았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들국화 팬은 제법 있었다. 이렇게 처연한 노래를, 그 시대의 소년들은 왜 좋아했을까.

메탈리카(Metallica) ‘Fade to black’
메탈리카와의 인연에는 온갖 불법(?)적인 것들이 연루되어 있다. 일단 집에 전축이 있는 친구를 꼬셔 방배동 음반가게에 데려가 1,2집 불법복제판(빽판)을 산 다음 테이프에 녹음해 달라고 했다. (돈은 그 친구가 냈다.) 이선희를 좋아하던 친구는 ‘무서워서 못 듣겠다’고 투덜댔다. 다음에는 반포 어딘가로 가서 ‘Cliff’em all’ 비디오를 불법 복사해 돌려보았다. (메탈리카의 초기 라이브 영상을 모아 놓은 비디오인데 객석에서 홈카메라로 불법 촬영한 클립들이 가득하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대학로 MTV라는 어두컴컴한 곳에 가서 헤비메탈 비디오를 두 세 시간씩 봤다. 흑맥주를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녀석들 사이에서 난 콜라만 홀짝거렸다.

‘Fade to black’은 이 모든 불량 행위가 시작되기 전 심야 라디오에서 처음 접한 곡이다. 그래미상에 호출되기 전까지 메탈리카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컬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헤비메탈의 과잉이 지겨워 졌지만 젊은 날의 메탈리카는 지금 봐도 쌈박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feat. 이언 앤더슨) ‘Elegy’
10대 시절 거의 모든 음악은 라디오에서 만났다. 열여덟 열아홉 우울한 시절엔 새벽 1시만 기다리며 하루를 버티다시피 했다. 전영혁 아저씨, 가끔은 정혜정 아나운서의 프로그램까지 듣고 나면 순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Elegy는 < 25시의 데이트 > (나중에 < 전영혁의 음악세계 >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엔딩 타이틀곡이었다. 전영혁 DJ는 이 곡을 깔고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하면서 기형도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정혜정 아나운서가 BGM으로 사용했던 리 오스카의 ‘My road’나 팻 메스니 ‘If I could’ 같은 곡들도, 생각하면 마음이 울렁거리는 음악들이다.

이 때 들었던 라디오의 의미는 내겐 정말로 각별하다. 방송이 청취자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가, 이런 건 수치로 집계되지 않는다. 지금도 청취율 제로의 심야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당신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비틀스 ‘Happiness is a warm gun’
일요일이면 국기원 옆 시립도서관에 가방을 던져 놓고 무작정 돌아다니곤 했다. 강남역 근처 레코드점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과 비틀스의 < White Album >이 나란히 걸려있는 걸 발견했다. 하얀 색, 수입원반에 더블음반. 참 예뻤고 참 비쌌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라만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비틀스 라이선스 LP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정식 라이선스를 가진 계몽사는 음반 표지에 줄무늬를 덧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화이트 앨범만은 그 조악한 무늬를 참을 수 없어 CD로 구했다.

화이트 앨범은 아마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반 중 하나일 것이다. 비틀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다채롭게 담겨 있어서 30곡을 다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좋아하는 곡이 많지만 첫 인상이 워낙 강했던 ‘Happiness is a warm gun’을 리스트에 올렸다.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는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농담 같기도 하고 진지한 것도 같고, 수수께끼 같은 곡이다.

닉 드레이크(Nick Drake) ‘Time has told me’
군대 전역 후 취직을 하기까지 몇 년간은 고3때보다도 막막한 시기였다. 음악 한 곡, 영화 한 편, 아니면 책 한 쪽이라도, 무언가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마음이 고달플 때면 신촌이나 홍대 근처를 돌아 다녔다. 레코드숍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다 딱 한 장만 고르고는 서점에서 책 한 권 사 들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음반 속지를 꺼내 읽자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닉 드레이크는 신촌 향음악사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이미지는 내겐 초록색이다. 연녹색 플라스틱 CD케이스, 1집 자켓의 초록색 배경, 푸른 잔디가 덮여있는 묘지 사진 같은 것들. 이십대에는 1집을 좋아했고 나이가 들수록 3집에 마음이 간다. 

닉 드레이크의 목소리는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들으면 더 좋다. 듣고 있다 보면 시선이 점점 마음 속으로 향한다. 이 곡을 고른 건 노랫말 때문이다. 좋아하는 구절이 많아서 한 동안 SNS 프로필에 올려 놓기도 했다. 스물한 살에 쓴 가사라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곱씹어 보게 된다.

‘time has told me, not to ask for more, for someday our ocean will find its shore’

장필순 ‘첫사랑’
5집 음반 이전까지는 장필순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자주 들리던 ‘어느 새’도, 오장박의 노래도 그땐 심드렁했다. 이 음반도 홍보용 비매품으로 돌린 수많은 CD들 사이에 섞여 들어왔다. 모던 록에 관심이 많을 때라 처음엔 ‘스파이더 맨’ 같은 곡이 귀에 들어왔지만, 계속 반복해서 들은 노래는 1번 곡 ‘첫 사랑’이었다. 

무반주로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 노래가 시작되면, 마치 옆에서 누가 가만히 이야기를 건네 오는 것 같았다. 한 소절 한 소절 소리가 눈송이처럼 포개지면 마음은 점점 따뜻하게 풀려 나갔다. 옆에 누군가 앉아서 조용히 내 푸념이라도 들어준 기분이었다. 조동익과 장필순이 만드는 아련한 소리의 질감을 이때부터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20년 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던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잘 안 되어서 마음이 많이 힘들 때였다. 지금은 5집에서 ‘풍선’을 더 즐겨 듣는다. ‘풍선’이 마음에 들어 온 데에는 또 지금 내 나름의 사정이 아마 작용했을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
이소라 씨와 밤 프로그램을 할 때 코너지기로 이석원 씨를 섭외했다. 나는 2시간 메인 프로그램을 처음 맡은 초짜 PD였고 석원씨도 방송3사 고정출연이 처음이었다. 코너지기에게 선곡과 이야기 테마를 모두 맡겨버리는 컨셉이었는데, 미리 짜맞추는 구성이 음악 프로그램에 안 맞는다고 생각한 초짜 PD 나름의 패기였다. 

작가였던 이병률 시인의 아이디어로 ‘이발관 옆 음반가게’라는 코너명이 나왔고 2집의 ‘어떤 날’을 코드 음악으로 정했다. 이런 컨셉이 가능했던 이유는 뮤지션으로서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했고 리스너로서 이석원 씨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 간 방송은 잘 됐지만 정작 나는 그와 별다른 친분을 맺지 못했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표현도 잘 못했던 것 같다. 제일 좋아했던 노래가 2집의 이 곡인데, 당시 3집 활동 중이라 방송에서 자주 틀지도 못했다.

몇 해 전 마지막 음반을 들을 때는 마음이 좀 무거웠다. 노래를 만들어내는 고통이 음악 속에서 전달되는 것 같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석원 씨는 글도 선곡도 좋고 라디오에 어울리는 사람인데 방송과 인연을 맺을 방법은 더 없을까 가끔 생각한다.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 ‘Papa was a rodeo’
2005년에 새벽 프로그램을 할 때 알게 된 노래이다. 같이 일했던 생선이라는 친구 덕에 미국 인디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없어진 후 생선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 66번국도(Route 66)를 횡단하더니 베스트셀러 여행작가가 되었다. < 69 Love Songs 라는, 69가지 사랑 노래를 담은 단편소설집 같은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길 위에서 눈을 뜨고 길 위에서 밤을 맞는 쓸쓸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는 로데오 선수였고 엄마는 로큰롤밴드 멤버였어. 난 걸어다니기 전부터 기타를 쳤고 로프를 묶었대. 디젤차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 집이었고 사랑이란 건 트럭 노동자들의 손길에서 배웠지. 이제 아침이 밝으면 이곳을 떠나서 내년까지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러니 나에게 키스하려는 그 입술은 그냥 맥주병에 꽂아 두는 게 낫겠어.’

라디오 PD에게 주어지는 선곡의 자유는 밖에서 짐작하는 것 보다 훨씬 인색하다. 새벽 3시. 청취율은 제로였지만 자유로웠고 마음이 젊었다. 이 노래는 시간을 그때로 돌려주는 신호 같은 곡이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이 좋은 PD이다.

베리얼(Burial) ‘Come down to us’
음원앱의 알고리즘이 아니었으면 이 음악은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내 취향을 잡아낸 건지 신기했다. 길이도 길고 상당히 특이해서 쉽게 누구에게 권할 만한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고른 이유는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1년 전 여름 처음 이 음악을 들었다. 지직거리는 잡음으로 시작해서, 서늘한 바람소리, 불꽃타는 소리, 빗소리, 멀리 천둥소리, 알 수 없는 공간음, 노래라고 할 만한 무엇, 속삭임 같은 것들이 띄엄띄엄 전자음 위에 흘러 다녔다. excuse me, I’m lost… who are you… come down to us… 이따금씩 이런 말들이 들렸고,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음악이 다 끝났을 때는 마음이 평온해져 있었다. 나보다 훨씬 아프고 힘겨운 사람들이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 이 음악에는 소수자들을 격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들어보면 불편하거나 꺼림칙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이 음악을 처음 들은 장소와 날짜와 시간대를 나는 기억한다. 괴로운 일이 생겨서 많이 힘들 때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내 마음이 밝고 가벼웠다면, 흐린 날 저녁이 아니라 햇빛 쏟아지는 대낮이었다면, 나 역시 이 음악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음악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음악이 되고, 같은 사람에게도 언제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여기 올린 음악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듯, 누군가는 또 자신만의 음악들로 위안받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음악 나쁜 음악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 한재희 PD
1997년 12월 MBC 라디오국 입사
< 음악도시 >, < 푸른 밤 >, < 굿모닝FM >, < 배철수의 음악캠프 >, < 여성시대 >등 연출.
현재 < 김종배의 시선집중 > 연출

Categories
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1 김우석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한 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우석 프로듀서입니다.

KBS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처음 단독으로 맡은 프로그램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던 < 세계의 유행음악 >이었다.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남미, 아프리카, 중국 등 아시아 음악까지, 영어로 부르지 않은 해외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과거의 명곡들보다는 당시 현지에서 인기 순위에 오르고 있던 음악들을 빠르게 입수하여 소개하곤 했는데, 유럽 음악계의 계보를 익히는 등 음악적 안목을 키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평생의 배필을 만나 해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내 인생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내 인생 음악 10곡은 이 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했던 음악들로 채워보기로 했다. 선택의 기준은 당시 음악 경향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성과 지금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만한 대중성이다. 선곡을 하다 보니 마치 1시간 동안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되도록 소개 글을 읽으신 후, 해당 곡을 들어보시고 다음 소개 글로 넘어가시기 바란다. 만일 시간 여유가 있으셔서 소개 글 속에 언급된 모든 곡들을 찾아 들어보시면 전체적 흐름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오프닝 시그널 : New Trolls ‘Concerto Grosso (Anna Oxa – Live con I New Trolls)’(1990)

1989년, 아트록 그룹 뉴 트롤즈(New Trolls)는 이탈리아 가수 안나 옥사(Anna Oxa)와 라이브 공연을 하며 그녀의 히트 곡들을 멋지게 반주해줬다. 물론 그들 자신의 곡들도 연주했는데, 그 유명한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 1번(per 1)과 2번(per 2)의 알레그로와 비바체 등 빠른 테마들만 4분 정도로 압축해서 메들리로 들려준다. 각각 다른 음반에 수록된 원곡들을 모두 감상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 라이브 버전은 이런 시간적 제약을 간단하게 극복해 준다. 진정한 팬서비스란 이런 거다.

프랑스와즈 아르디(Françoise Hardy) ‘Message personnel’(1973)

우리나라에 ‘Comment te dire adieu’(어떻게 안녕이라고 말할까)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프랑스와즈 아르디는 이미 1960년대부터 스타덤에 올라 있었는데, 1970년대에 미셸 베르제(Michel Berger)라는 젊은 작곡가를 만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특이하게도 이 노래의 주인공은 가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반주 음악이다. 

불안함에 떨며 사랑을 고백하는 주인공의 메시지를 가수는 낭송과 노래로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는 반면, 화자의 감정선은 배후의 악기들이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문장을 맺지 못하고 목소리마저 끊어진 후, 격렬한 드럼 연주가 감정의 폭발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 갈(France Gall) ‘La declaration d’amour’(1974)

프랑스 갈은 샹송계의 엘리트였다. 1965년, 만17세에 불과한 그녀는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꿈꾸는 샹송 인형)이라는 노래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아르디의 성공을 지켜보던 프랑스 갈은 미셸 베르제에게 자신에게도 노래를 써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1974년, 베르제는 프랑스 갈과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두 사람의 결합은 음악적 성과를 넘어서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2년 베르제는 심장마비로 향년 44세의 삶을 마감한다. 이후 프랑스 갈도 암 투병을 하는 와중에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등 불행을 겪다가 지난 2018년에 세상을 등졌다. 샹송 인형이여, 하늘나라에서 동갑내기 남편과 다시 만나 부디 행복하시길……

장 자크 골드만과 시리마(Jean-Jacques Goldman and Sirima) ‘La-bas’(1987)

장 자크 골드만은 록(Rock)적인 경향이 매우 강한 가수 겸 송라이터이다. 1987년에 듀엣 곡을 하나 써 놓았는데 같이 부를 여가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 시내의 지하철역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던 시리마(Sirima)를 전격적으로 발탁하여 ‘La-bas’(그곳에)라는 노래를 녹음한다. 스리랑카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시리마는 매우 청아하고 아련한 목소리로 노래에 기여했고, 이 싱글은 전 세계적으로 50만장 이상 팔린 히트곡이 된다.

하지만 완벽해 보였던 신데렐라 스토리는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1989년 시리마는 자신이 직접 쓴 곡들로 채워진 솔로 앨범을 내놓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녀의 성공을 질투한 애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25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이로 인해 주인 없는 앨범은 표류하고 시리마의 목소리는 이 노래에 전설처럼 남아있게 된다. 이후 골드만은 셀린 디온을 비롯한 유수의 가수들과 이 노래를 불렀는데, 내 의견으로는 누구도 시리마의 보컬을 넘어서지 못했다. ‘La-bas’는 특이하게도 모든 악기의 소리가 사라진 후 드럼만 홀로 남아 곡을 마무리하는데, 마치 힘차게 뛰던 심장이 갑자기 멎는 것 같은 쓸쓸한 느낌을 준다.

로랑 불지(Laurent Voulzy) ‘My song of you’(1987)

로랑 불지 역시 미국 팝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티스트지만, 이 사람은 앞서 소개한 작곡가들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작풍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제목이 영어이고 노래 중간에 영어 가사가 약간 나와서 이 리스트에서는 반칙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전통적인 샹송에 가까운 노래이다. 

로랑 불지의 최대 히트곡은 1984년에 발표한 ‘Belle-Île-en-Mer, Marie Galante’(아름다운 섬, 마리 갈랑트)인데 우리나라 광고에 쓰여서 멜로디를 기억할 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 선택은 프랑스에서도 별로 히트하지 못한 곡 ‘My song of you’이다. 로랑 불지는 아름다운 곡조를 잘 만들고 몽환적인 편곡을 즐기는 송라이터인데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발표한 작품 수가 좀 적어서 아쉽다. 하지만 이런 음악이 시대를 넘어 살아남기엔 유리한가 보다. 1948년생인데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삼판(Sampan) 프로젝트 ‘Dernier matin d’Asie’(1987)

1984년 영국의 밴드 에이드 프로젝트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1985년에 이어진 유에스에이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 그리고 같은 해에 열린 영국-미국 합동 공연인 라이브 에이드까지, 1980년대 중반은 전 세계의 팝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소명을 요구하는 시기였다. 프랑스 아티스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1985년 < Chanteurs sans frontières >(국경 없는 가수들)이라는 프로젝트를 발족하여 ‘Éthiopie’라는 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7년,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를 탈출한 보트피플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프랑스의 가수들은 다시 한 번 자선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작은 배를 의미하는 삼판(Sampan)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이 발표한 노래는 ‘Dernier matin d’Asie’(아시아의 마지막 아침)이라는 제목이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 입장에서 아시아란 과거 식민지를 구축했던 인도차이나반도가 전부였던 모양이다. 다소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지만 그래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만든 노래이니 한 번 들어보자. 이 프로젝트에는 당시 신인 급의 젊은 아티스트들도 대거 참여했는데, 특이하게도 노장급에 속하는 제인 버킨(Jane Birkin)이 첫 번째 마디를 불렀고, 장 자크 골드만이 간주에서 기타 솔로를 연주해 줬다. 프로젝트 성격상 애잔함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프랑스판 위 아 더 월드’라고 할 만하다.

리카르도 폴리(Riccardo Fogli) ‘Storie di tutti i giorni’(1982)

이제 이탈리아로 넘어가 보자. 이탈리아에서는 산 레모 가요제가 매년 열리는데, 이탈리아의 대중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로서 예전에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가요제였다. 1950년대엔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가 부른 ‘Nel blu dipinto di blu’가 볼라레(Volare)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1960년대엔 질리올라 칭케티(Gigliola Cinquetti)의 ‘Non ho l’età’, 1970년대에는 나다(Nada)가 부른 ‘Il cuore è uno zingaro’(국내에서 ‘마음은 집시’로 번안한 그 노래)가 크게 히트한 바 있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산 레모 가요제에 출품되는 노래들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데, 전통적인 칸소네의 성격보다는 팝록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1982년 가요제에서 ‘Storie di tutti i giorni’(모든 날들의 이야기)로 우승한 리카르도 폴리는 유명한 그룹 이 푸(I Pooh)의 창단멤버였다. 그룹의 전성기였던 1973년에 이미 솔로로 전향한 폴리는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았고, 이 노래는 그의 가장 큰 히트곡 중의 하나이다. 우아하고 화사한 멜로디를 록적인 비트가 감싸고 있는 세련된 편곡은 이후 등장하는 이탈리아 대중음악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

파우스토 레알리(Fausto Leali) ‘Io amo’(1987)

이탈리아 칸소네를 듣다보면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남자 가수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성악의 나라 이탈리아 남자들의 목소리가 이토록 탁하다니!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던 중에 파우스토 레알리라는 가수의 이력을 알게 되면서 비밀이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비틀스 등 유명한 팝음악을 번안해 부르면서 음악계에 데뷔한 레알리는 자신의 탁성을 소울 충만한 목소리로 승화시키면서 평단으로부터 일 네그로 비앙코(Il negro bianco, 검은 목소리의 백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는 그가 발표한 1968년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했다.

이 걸걸한 목소리의 사나이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으니, 이탈리아에 일단의 유사한 흐름이 생겨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파우스토 레알리는 1989년에 Ti lascerò(그대를 떠나려오)라는 노래를 대형 여가수 안나 옥사(Anna Oxa)와 듀엣으로 불러 산 레모 가요제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Io amo’(사랑합니다) 역시 1987년 가요제 출전곡인데 4위에 그쳤다. 어딘가 모르게 클래시컬한 분위기의 이 곡을 들으면 바흐가 연상된다. 필자 맘대로 부제를 붙인다면 ‘허스키 보이스를 위한 아리아’ 정도 될까?

마르코 마시니(Marco Masini) ‘Perché lo fai’(1991)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파우스토 레알리가 허스키 보이스의 끝판왕인줄 알았다. 이탈리안 허스키의 최강자 마르코 마시니는 1991년 ‘Perché lo fai’(왜 그러셨나요)로 스타덤에 오른다. 필자가 프로그램을 제작할 당시에는 막 데뷔한 신인이었는데, 벌써 30주년 기념 앨범이 나온 중견 가수가 되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비 오는 날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면 이 노래를 추천한다. 임재범의 ‘고해’와 비교 감상해도 좋을 듯하다.

알레안드로 발디, 프란체스카 알로타(Aleandro Baldi, Francesca Alotta) ‘Non amarmi’(1992

산 레모 가요제는 기성부문과 신인부문을 분리해서 경연을 펼치고 시상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매년 가요제에서는 기성 부문 우승자와 신인 부문 우승자를 따로 뽑게 되는데, 별도의 언급 없이 우승이라 하면 기성 부문을 의미한다. ‘Non amarmi’(나를 사랑하지 마세요)는 1992년 신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이다. 알레안드로 발디라는 시각장애인 가수가 곡을 써서 여가수 프란체스카 알로타와 듀엣으로 부른 곡이다. 이 두 사람은 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가창력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신인은 가요제의 첫 출전을 의미하는 것이지 음악 경력 자체가 전무한 신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노래는 1999년에 미국 라틴팝 가수인 제니퍼 로페스와 마크 앤서니가 ‘No me ames’라는 제목으로 스페인어 버전을 다시 불러, 빌보드 라틴 음악 차트에서 빅 히트를 기록했다. 알레안드로 발디는 2년 뒤인 1994년에 ‘Passerà’(지나가리라)라는 곡으로 기성 부문에 출전해서 우승을 차지한다. 바로 그 해에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가 신인 부문에서 우승하며 혜성같이 등장하는데, 그때 보첼리가 부른 곡은 ‘Il mare calmo della sera’(고요한 저녁 바다)였다. 지금 들어도 모두 영롱하게 빛나는 곡들이다.

에도아르도 벤나토, 지안나 난니니(Edoardo Bennato, Gianna Nannini) ‘Un’estate italiana’(1990)

아카데미 주제가상 3관왕에 빛나는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를 작곡했다. 코리아나가 부른 이 노래는 대중적인 멜로디에 웅장한 편곡으로 커다란 행사에 최적화된 멋진 곡이었지만 당시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필자에게는 너무 격식을 차린 편곡이어서 자유분방한 맛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식에서 조르지오 모로더는 또 한 곡의 스포츠 행사를 위한 곡을 내놓는데 ‘Un’estate italiana’(이탈리아의 여름)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손에 손잡고’와 유사한 멜로디를 사용하면서도 축구라는 스포츠의 역동성과 열기를 잘 표현한 하드 록 성격이 강한 곡이었다.

개막식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노래하던 두 로커의 모습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각 경기를 중계하기 전과 하이라이트 방송 전에 반드시 이 곡을 틀어줬기 때문에, 필자는 이 노래를 듣기위해 거의 모든 경기를 시청했고, 월드컵이 끝날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노티 마지케(Notti magiche)’라는 가사를 따라 부를 정도였다. 음악 때문에 새벽 시간까지 축구 경기를 기다려 본 것은 처음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마법 같은 밤들’이었다.

엔딩 시그널 : Giorgio Moroder ‘Hello Mr. W.A.M. (Finale)’(1980)

엔딩 시그널 곡 역시 조르지오 모로더에게 맡겼다. 모로더는 모두 3개의 아카데미 영화상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데, 1978년 Midnight Express의 오리지널 스코어와 1983년 영화 Flashdance 주제곡 Flashdance…What a Feeling, 그리고 1986년 영화 Top Gun 주제곡 Take my breath away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필자가 뽑은 모로더 최고의 영화음악은 리차드 기어 주연의 American Gigolo이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Blondie의 Call me인데, 짧게 편집된 싱글 버전과는 달리 앨범에 수록된 노래의 길이는 무려 8분이다. 게다가 Call me의 테마를 변주해서 연주곡으로 만든 Night drive라는 곡도 수록돼 있어서 감상의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 역시 연주곡인데 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편곡했다. 처음엔 모차르트 원곡의 템포와 유사하게 시작한다. 테마가 한 순배(?) 돈 이후에 템포는 Call me와 Night drive처럼 긴박하게 바뀐다. 음악은 한 번의 브레이크를 밟은 후에 다시 디스코 리듬으로 바뀐 뒤, 군더더기 없는 엔딩으로 끝난다. 이 얼마나 우아하고 멋진 편곡인가!

* 김우석 PD (marshall@kbs.co.kr)

1991년 KBS 입사, < 세계의 유행음악 >, < 김광한의 팝스다이얼891 >, < 손범수의 팝스팝스 >, < 조규찬의 팝스팝스 >, < 윤상의 0시의 스튜디오 >, < 최은경의 FM대행진 >, < 성세정의 0시의 스튜디오 >, < 이무영의 팝스월드 >, < 유열의 음악앨범 >, < 탁재훈의 뮤직쇼 >, < 김장훈의 뮤직쇼 >, < 진양혜의 음악공감 >, < 0시의 음악여행 박철입니다 >, < 매일 그대와 주병진입니다 > 등 제작. 현재는 KBS3라디오에서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 <출발! 멋진 인생, 이지연입니다> 제작 중.

Categories
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0 주승규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 번째 순서는 MBC 라디오 주승규 프로듀서입니다.

김정호 ‘하얀 나비’

–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한다는 것
여인의 아버지가 젊은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내 딸이 어디가 그리 좋은가?
볼이 불그스레해진 젊은이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입을 뗀다. 그냥…그냥 다 좋습니다.

1970년대 초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가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매료되었고 어린 나도 그의 팬이 되었다. 아끼고 아껴 몇 달 치의 용돈을 모아 드디어 그의 음반을 질렀고 그것은 내 생에 첫 LP가 되었다.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유 없이 좋은 것, 그냥 좋아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음악이든 간에 말이다.

애니멀스(Animals) ‘The house of the rising sun’

– 통기타와 팝송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서도 통기타가 붐이었다. 당시 조금 ‘논다’ 하는 젊은이라면 통기타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했기에 공부는 뒷전이요 통기타에 심취한 자녀들 때문에 각 가정마다 분노의 아버지들의 ‘통기타 파손 사건’이 줄을 이었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그 와중에 살아남은 한 대의 기타가 있었고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숨죽여 연습했던 곡이 바로 우리말 제목으로 ‘해 뜨는 집’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이었다. 코드도 비교적 평이했고 주법도 단순하여 초보자들의 연습용으로는 안성맞춤이었던 까닭이다. 나에게 기타라는 악기를 알게 해준 곡이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Black dog’

– 제목이 무슨 상관이랴
1970년대의 팝송 이야기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백판’ (해적음반) 이야기다. 불법 음반인데다 음질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흡족치는 않았으나 팝송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는 그나마도 아쉬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집에도 형이 애지중지하던 백판이 몇 장 있었는데 요즘으로 말하자면 편집음반인 셈이다. 딥 퍼플(Deep Purple)의 ‘Highway star’,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Superstition’, 산타나(Santana)의 ‘Black magic woman’ 등등 기라성 같은 곡들이 담겨있었는데 그중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곡이 하나 있었다. 음반 편집자의 섬세함이라고 할까 그 자상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사연인즉 이렇다.

팝송의 원제목 옆에는 친절하게도 한자로 된 번안 제목이 이렇게 별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LED ZEPPELIN, BLACK DOG (黑犬)

존 덴버(John Denver) ‘Annie’s song’

– 인수봉에서 만난 한 줄기 바람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이라도 특별한 상황에서 만나게 될 때 전혀 다른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북한산 인수봉을 등반하다 보면 암벽 곳곳에 꽃다운 나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 클라이머들을 위한 추모 동판을 만나게 된다. 아마 나의 첫 번째 산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까스로 오른 정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맞은편 백운대를 바라보는데 아들을 잃었을 법 한 어머니가 향을 피우며 두 손을 모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 졌다. 그때 산 정상을 가득 메운 한 곡의 음악, 그리고 그때 산 정상 한줄기 맑은 바람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글스(Eagles) ‘Hotel California’

– 무스탕 라디오의 추억
믿기 어렵겠지만 어제 라디오 인기 팝송 프로그램을 듣지 않았다면 친구들 사이 이야기에 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제 무슨 프로그램에서 무슨 음악을 들었다는 것이 주요 화제일 정도로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세계에선 팝음악, 팝음악 프로그램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를 듣기 위한 FM라디오가 인기였는데 학생들 사이에선 나만의 FM라디오 갖기가 하나의 로망이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온 종로를 뒤져 마침내 최신형 “무스탕 라디오”를 손에 넣게 된 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검은 색 무전기 스타일 포스 가득한 무스탕 라디오의 스위치를 켠 순간 거기서 퍼져 나온 그 음악이란…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Sultans of swing’

– 라디오에 신청곡 보내 보셨나요?
요즘이야 그렇지 않지만 엽서가 라디오 청취자들의 주된 프로그램 참여방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고 신청곡이 방송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경우 즐겨하던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고 어느 때처럼 라디오에 귀 기울이다가 나의 이름이, 나의 사연이, 나의 신청곡이 방송되던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순간의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음악을 스스로 찾아 듣는 것과 방송으로 신청하여 듣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이라 믿는다. 혹 아직도 경험해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한번쯤 시도해 보시기를 권한다.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 ‘Thanksgiving’

케니 로긴스(Kenny Loggins) ‘The more we try’

– 나의 라디오PD의 절반은 여기에서 배웠다입사 후 맡았던 첫 단독 프로그램은 당시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 이수만의 팝스투나잇 >이었다. 1년 남짓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라디오 방송 사상 최초의, 그러나 이제는 식상해져 버릴 정도로 전형이 되어버린 타이틀 멘트를 생략한 오프닝, 당시로선 파격적인 디지털 음원의 도입, 그리고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럽고 새로운 진행방식으로 이른바 DJ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바꾼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DJ의 음악에 대한 선구안도 탁월해서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게 된 음악들도 여럿 있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음악을 꼽는다면 프로그램 클로징 음악으로 사용했던 것이 위 두 곡이다. 나의 라디오PD의 절반은 여기에서 배웠다.

모차르트, 교향곡 제25번 (영화 아마데우스)

– 음악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오프닝 장면에 절묘하게 사용된 교향곡 25번을 비롯하여, 영화 곳곳에서 기존의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함에도 마치 이 장면을 위하여 만든 음악인 듯 정교한 방식의 연출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음악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영화, 그리고 음악…

영화 < 정복자 펠레 >의 테마

–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늑한 앞날이 보장될 수도 있을 농장의 수습감독 직을 마다하고 가난과 부조리의 땅을 떠나기로 결심한 소년, 그는 눈 덮인 벌판에서 늙은 아버지와 포옹하며 작별 한다. 농장으로 되돌아가던 아버지는 아쉬운 듯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그 사이 소년의 눈 덮인 덮인 대지 위, 작은 점이 되어 조그맣게 멀어져 간다. 그리고 화면을 가득 메우는 영화의 엔딩음악

삶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영화를 꺼내 본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특히 그의 표현 중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 의미를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가끔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그럴 땐 이 영화를 떠올려 보곤 한다.

우리는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연출
MBC < 이수만의 팝스 투나잇 >, <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 < 영시의 데이트 >, < 별이 빛나는 밤에 >, < 정오의 희망곡 >, < FM 모닝쇼 >, < 배철수의 음악캠프 >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