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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of the Year 2022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든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를 딛고 일어난 국내 문화계가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동시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되고 삶은 흘러가니까.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스플래시와 함께 2022년 가요계를 돌아본다.

배신 또는 오해, 표절 논란
시작은 유희열이었다. ‘생활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관련 의혹이 빠른 속도로 불거졌다. 그가 작곡한 성시경의 ‘Happy birthday to you’, < 무한도전 > 가요제 프로젝트 곡인 ‘Please don’t go my girl’ 등도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무진 등 여러 뮤지션에게 표절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2022년 상반기는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레퍼런스’나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반론도 곳곳에서 등장했고, 논란을 조회수 삼으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 다소 억지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도 나타났다. 예술의 특성상 문제를 깔끔하게 종결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표절’이라는 키워드가 모두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돌아온 페스티벌과 공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공연 문화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택트 공연 등 대체 수단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서울 재즈 페스티벌부터 인천 펜타포트, 부산 록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고, 빌리 아일리시와 잭 화이트를 비롯해 여러 굵직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졌다. 풀리지 않은 규제로 마스크의 답답함은 있었으나 열정과 사랑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예열과 시동 단계일 테지만, 억눌렀던 마음만큼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렌드의 중심이 된 1990년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19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펑크(Funk) 열풍은 2020년대 본격적인 폭발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팝 펑크(Pop Punk)다. 2021년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를 주축으로 영미권의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이끈 장르의 재부흥을 K팝 또한 재빠르게 수용했다.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와 최예나의 ‘Smiley’, 우즈(WOODZ)의 ‘난 너 없이’ 등이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이모(Emo) 감성을 일부 벤치마킹한 비주얼을 내세웠다. 정점은 단연 (여자)아이들의 ‘Tomboy’. 앨라니스 모리셋 등 록 여성 뮤지션의 정신을 받아들여 매혹적인 팝 선율, 거침없는 펑크(Punk)의 태도를 모두 끌어안았다. 음원에는 삭제된 욕설까지 함께 소리치던 대학 축제 풍경은 화끈함의 극치였다.

가지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나갔다. 아이브의 ‘After like’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 리듬을 기반 삼았고, 뉴진스의 ‘Attention’과 ‘Cookie’는 비슷한 시기의 힙합과 알앤비 장르를 채택했다. 큰 유행이 된 Y2K 콘셉트를 여러 팀이 전격 채택한 것은 덤. 윤하의 ‘사건이 지평선’이 역주행한 원인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2000년대 초 TV 만화 채널을 추억하는 젊은 층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1990년대생의 문화가 차츰 향수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는 현상을 음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인드 셋, 거장의 귀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음악에서는 그렇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돌아오면서 오랜 세월 쌓은 관록만큼이나 식지 않은 에너지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먼저 꾸준한 바이닐과 시티팝 유행에 힘입어 5월에는 빛과 소금이 2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 Here We Go >를 발표했다. ‘공유’의 시대를 거슬러 음악을 ‘소유’하려는 자연적인 수요와 맞닿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송골매 또한 ‘열망’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며 기성세대 못지않게 젊은 세대까지 관객석으로 초대했다. 7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인천 공연까지 성행하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업계에서도 컴백은 이어졌다. KBS의 < 불후의 명곡 >이 2012년 은퇴 선언을 했던 패티김을 초청해 3부에 걸쳐 특집을 꾸렸고, 그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 또한 TV조선의 러브콜을 받아 데뷔 63주년 기념 특별 공연을 개최했고, MBN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심수봉을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가왕’은 ‘가왕’. 조용필이 스무 번째 정규 앨범의 예고편으로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선보인 데에 이어 KSPO 돔에서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혀 늙지 않은 음악으로 돌아온 그, ‘영원한 오빠’ 수식어는 2020년대에도 공고했다. ‘물리적 나이보다 마인드 셋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느껴본다. 어찌 보면 키워드는 ‘귀환’이 아니라 ‘소통’이다.

여성 아이돌 르네상스
엠넷 < 프로듀스 > 시리즈의 성공 이후 여러 그룹이 팀 단위보다는 개별 멤버 위주의 팬덤 구축과 세계화에 힘을 서서히 쏟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세계관’과 가끔 난해하기도 한 콘셉트에 여성 아이돌이 예전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돌아온 2022년 걸그룹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Love dive’와 ‘After like’를 연속 히트시킨 아이브가 선두 주자로 올라선 가운데 같은 아이즈원 파생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초 여러 논란을 딛고 ‘Antifragile’을 흥행에 성공시키며 재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남다른 방식으로 첫선을 보인 뉴진스 또한 ‘Attention’과 ‘Hype boy’로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세 자리를 놓고 전투를 벌였다. 스테이씨의 ‘Run 2 u’, 있지의 ‘Sneakers’,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Nxde’ 등 신세대 걸그룹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바쁜 1년이었다.

선배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으로 클래식 샘플링 트렌드를 이끌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한편 블랙핑크는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모두 올라 글로벌 시장 점령을 이어 나갔다. 트와이스의 나연은 숏폼 플랫폼에서 안무 챌린지를 적극 활용해 첫 솔로 싱글 ‘Pop!’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Forever 1’으로 15주년을 풍성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와 7년 만에 다시 모인 카라까지, 신예들과 익숙한 이름의 공존에 2022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에 반해 타겟층이 일반 대중에서 구매력이 높은 팬덤으로 많이 기울어진 남성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싱글 차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소비자층이 세분화됨에 따라 ‘국민가수’나 ‘국민가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애초에 보이그룹의 목표가 공연이나 음반으로 옮겨간 지도 오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보이그룹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꺾이지 않는 장기 지배, 힙합 정권 40년
얼마 전, 요즘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한다면 남학생들은 지코의 ‘새삥’ 챌린지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힙합이 이제 하나의 별종이 아니라 굳건한 주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올해 무려 열한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 쇼미더머니 >와 여러 밴드가 나선 경연 프로그램 <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의 시청률 차이만 봐도 명확하다. 해외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도권은 힙합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타고 본격 유입을 겪은 힙합/알앤비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넓히며 세력을 키웠다. 비오의 ‘Love me’,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 그리고 크러쉬의 ‘Rush hour’ 등 차트에는 아직도 여러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록 페스티벌의 부활 사이 함께 돌아온 대구 힙합 페스티벌까지, 어느덧 익숙해진 힙합 강국의 면모다.

BTS 병역 논란
엄밀히 말하면 ‘가요’계 사건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가 올 한 해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다. 국위선양의 공로를 높게 사 병역 면제를 논하는 입장과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며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유승준과 MC몽 등 남성 뮤지션의 입대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른 문제였다.

사안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끝을 맺었다. 맏형인 진이 12월 13일 최전방인 연천 지역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 같은 날 솔로곡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던 멤버 슈가는 어깨 수술을 근거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멤버들의 계획은 아직 미정이나 그룹 활동의 중단 이후 여러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개인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른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와 엮이며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까지 나왔던 주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성별과 세대 갈등까지 연결되는 두 글자, ‘군대’. 그러나 병역이 아직까지 ‘의무’인 국가에서 이를 일종의 ‘형벌’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 100분 토론 >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에게서 기억되고,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특혜’ 아닐까.

사각지대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티스트 착취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뉴스에서 떠오른 헤드라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11인조 보이그룹 오메가엑스의 갑질 피해 소식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멤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이 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온갖 피해 내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코로나19 감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무대를 섰다는 사실, 온갖 폭언과 협박 내역이 밝혀졌다.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한때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승기 또한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에게서 음원 수익을 전혀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언론에 드러났다. ‘적자 가수’라는 비하 발언을 했던 대표는 현재 수익 횡령 의혹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창 여러 방송에서 활약 중인 가수 츄가 소속 그룹 이달의 소녀에서 강제로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중립적인 언어로 계약 해지 사실을 밝혔던 여러 선례에 비하면 ‘제명’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 블록베리 엔터테인먼트의 글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반박되며 나머지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계약 해지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퍼진 사이, 1월로 예정된 그룹의 컴백 소식이 갑작스레 공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

한때 범람했던 가요계 계약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음악과 뮤지션이 돈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착잡함을 안긴다. 정녕 음악이 순수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을까, 바란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조금 더 깨끗하고 공정한 음악 산업 소식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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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의 실감, 절감, 공감] 유희열 표절 의혹, 신뢰를 회복하려면

1971년 2월 10일, 세 번째 정규 앨범 < All Things Must Pass >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며 비틀즈 해체 후 솔로 아티스트로 입지를 굳히던 조지 해리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브라이트 튠스 뮤직 코퍼레이션(Bright Tunes Music Corporation)이 앨범의 빌보드 HOT 100 4주 연속 1위 곡 ‘My sweet lord’에 대해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원고 측은 조지 해리슨이 로니 맥이 작곡하고 걸그룹 더 쉬퐁스(The Chiffons)가 불러 1963년 빌보드 HOT 100 차트 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He’s so fine’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조지 해리슨은 노래를 듣자마자 도입부 멜로디 유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표절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판장에 기타를 들고 입장한 조지 해리슨은 ‘My sweet lord’ 작곡 당시 ‘He’s so fine’을 모르고 있었으며, 저명한 찬송가 ‘Oh happy day’를 목표로 삼고 만든 노래라는 주장으로 결백을 호소했다. 결과는 조지 해리슨의 패배였다. 뉴욕 남부 지방 판사 리처드 오웬은 조지 해리슨이 고의로 ‘He’s so fine’을 베낀 것은 아니지만, 법률상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했다. 조지 해리슨은 58만 7천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했다. ‘무의식적 표절’의 개념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고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희열 표절 논란이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희열의 생활음악’ 피아노 소품 프로젝트 중 두 번째 곡 ‘아주 사적인 밤’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를 베꼈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6월 14일 유희열은 안테나뮤직 의견문을 통해 ‘아주 사적인 밤’ 관련 입장을 표했다.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작곡이 진행되었음을 인정하며 < 생활음악 > LP 발매 연기와 사카모토 류이치와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6월 20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의견문이 발표됐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Aqua’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라며 법적 절차와 저작권 문제를 생략하고 바다 건너 음악 후배에게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과거 유희열이 발표한 다수의 노래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희열은 < 생활음악 > LP와 음원 발매를 취소했지만, 그 외 의혹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며, ‘유희열의 스케치북’ 및 방송 출연을 강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작자가 표절이 아니라고 선언했으니 사태가 일단락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위대한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관용은 분명 빛났다. 그러나 사카모토 역시 의견문에서 ‘아주 사적인 밤’과 ‘Aqua’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는 점에서 지난 30년간 한국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활동해온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용서가 유희열의 책임과 합의의 필요를 덜어주었을지언정 그 혐의까지 무마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지 해리슨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전 세계에 남긴 교훈, ‘무의식적 표절’이다.

대중이 유희열에 실망한 이유는 그의 대응 방식에 있다. ‘아주 사적인 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시인 도희서에 의하면,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안테나뮤직에 연락을 취했으나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먼저 답변을 보내온 곳은 올해 1월 5일 ‘두 곡의 파트가 유사함에 동의하지만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 밝힌 사카모토 류이치 측이었다. 이후 5개월 반 동안 침묵하던 도희서 씨는 < 생활음악 >의 발매소식을 접한 후 6월 14일, ‘아주 사적인 밤’이 ‘아쿠아’를 표절했음을 공론화했다.

익명의 제보자가 없었다면 유희열의 < 생활음악 >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바이닐 발매되었을 것이고, ‘아주 사적인 밤’, ‘내가 켜지는 시간’의 저작자 이름에는 사카모토 류이치 대신 유희열의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거장의 자애롭고 신중한 대답이 없었다면 유희열은 어떤 입장을 내놓았을까.

하물며 유희열은 ‘아주 사적인 밤’ 외에도 해명할 곡이 많다. ‘Please don’t go my girl’, ‘안녕 나의 사랑’, ‘Happy birthday to you’ 등 과거 작품에 대한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유희열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표절곡이 아니라는 적극적인 해명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인정도 들리지 않는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활동한 뮤지션이라면 ‘최근 불거진 논란을 보면서 여전히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갑니다’는 레토릭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의혹에 대한 정확한 설명, 음악 팬에 대한 사과, 그리고 책임의 자세가 필요하다.

완벽한 창작은 없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처럼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원작자의 포용으로 ‘아주 사적인 밤’은 표절의 멍에를 벗었다. 그럼에도 유희열은 신뢰를 잃었다. 대중은 긴 시간 정상급 뮤지션으로 군림해온 그의 창작 세계를 의심하고 있다. 유사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유희열이 계속 안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다. 물론 유희열의 음악 세계 전체를 매도하고 인격을 비난하는 일은 곤란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희열의 창작물을 사랑한 대중이 실망감을 표하고 그의 음악을 예전과 같이 들을 수 없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설사 ‘아주 사적인 밤’이 표절 판결을 받았더라도 명확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했더라면 지금처럼 반응이 싸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희열은 표절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논란이 불거진 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입장에 힘입어 뒤늦게 바이닐 발매를 취소했으며, 여전히 음악가로의 지위로 다수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지금은 의견문 내용처럼 ‘창작 과정에서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면밀히 살’펴야 할 시간이다. 향후 활동으로 유희열이 다시금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회복할 것인지는 창작가의 양심에 달려있다. 표절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