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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특집 VOL. 1 :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먼저 박수진 필자가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란 제목으로 복고(레트로)와 뉴트로의 정의를 알리고 오늘날 뉴트로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정리한다. 이 흐름 안에서 짚고 가면 좋을 국내외 대표 아티스트도 함께 언급했다고 하니 복고 열풍을 이해하는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특집들은 한 주의 차를 두고 공개된다.

복고가 대중음악의 트렌드로 자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07년, 1970년대 디스코를 복각한 원더걸스의 ‘Tell me’가 전국에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다음 해인 2008년, 그들은 1960년대 흑인 보컬 그룹 슈프림스의 콘셉트를 ‘재연’한 ‘Nobody’로 인기를 이어가는데 이는 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진출 이상의 성과는 없었지만 당시 시야를 해외로 옮길 만큼 원더걸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복고와 함께한 성공이었다.

근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복고는 음악 곁에 있다. 지역이나 문화권을 뛰어넘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해외 음악 시장을 보자. 데뷔 초 ‘Marry me’, ‘Just the way you are’ 등 달콤한 팝을 하던 브루노 마스가 ‘Treasure’, ‘Uptown funk’, ’24K magic’ 등의 펑크(Funk)를 주력으로 삼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도자 캣의 긴 무명 시절을 끝내 준 효자곡 ‘Say so’ 역시 디스코, 펑크를 근간으로 하고 게일을 한순간에 스타로 만든 ‘abcdefu’ 또한 2000년대 초반 팝펑크를 여기로 이식한다. 신시사이저를 근사하게 채색한 해리 스타일스의 신곡 ‘As it was’는 현재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순항 중이다.

복고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성을 느낀다. 복고, 즉 레트로(retro)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retrospect’로부터 파생했다. 과거의 ‘재현’을 통해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를 듣고 그때 그 시절 떠올리는 (아마도) 중장년층에게 이 곡은 레트로다. 반면 추억이 없는 1020세대에게 이 곡이 지닌 복고적인 특성은 ‘색다름’이며 ‘새로움’이다. 이때는 ‘뉴트로’다. ‘새롭다’라는 뜻의 new와 ‘복고’의 retro가 합쳐진 신조어 ‘뉴트로’는 이렇게 레트로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를 가진다.

레트로와 뉴트로를 굳이 나누는 것은 한국 한정 현상이다. 책 < 트렌드 코리아 2019 >에서 뉴트로를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으로 꼽으며 대중화됐다. 레트로 콘셉트의 음악에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복고가 계속해서 큰 관심을 끄는 것이 키워드화 될 정도로 붐인 것이다. 도대체 왜. 다수의 전문가는 해답을 디지털 매체의 발달에서 찾는다.

2017년 익명의 ‘유튜브’ 계정에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 ‘Plastic love’가 업로드됐다. 2022년 현재 5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발매된 지 30년도 더 된 이 곡이 별다른 맥락 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위 영상의 댓글 창을 보자) 소환되고 회자했다. 그렇게 불어온 시티팝 열풍이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을 타고 국내까지 번졌다.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 젊은이들의 귓가를 쓰다듬었고, 김현철은 10년 만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다. 백예린, 아이유, 태연, 브레이브 걸스 등이 시티팝 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다.

나아가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되며 뉴트로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2020년 한 틱톡커(Tiktoker)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를 따라 부르는 영상을 올린다. 이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1977년에 발표한 곡이 40여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21위에 재진입했다. 최근 국내의 각종 숏폼 플랫폼에서는 이럽션의 ‘Oneway ticket’이 활약 중이다. 1980년 방미가 ‘나를 보러와요’로 번안하며 인기를 끈 이 노래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곡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다. 곡이 가진 ‘뽕끼’와 촌스러운 익살스러움이 젊은 층에게 개성과 재미로 먹혀들었기 때문.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회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고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된 오늘날 우리가 찾는 새로움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더욱 쏠려 있다는 것은 복고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언의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막 30대 초입에 들어선 필자는 그 답을 현실의 퍽퍽함에서 찾고자 한다. 기술 매체의 발달이 되려 팽팽한 긴장감으로 치환되는 지금 우리네 사회는 앞을 내다볼 여유가 없다.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 레트로 마니아 >라는 책에서 레트로 문화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는 “문화에서 레트로 마니아는 이제 지배적 우상을 넘어 임계점에 다다른 느낌”이라 말하며 “문화가 노스탤지어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문화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정적이고 역동적이던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덧붙인다. 일면 타당한 시선이다. 재창조가 받침 되지 않는 복고는 완벽한 재현(혹은 재연) 이상의 함의를 띄지 못한다.

그렇기에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는 과거의 다양한 유산들은 자칫 그것이 음악의 전부가 될 경우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글에서 복고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며 현실의 바로미터를 파악했다. 이어질 특집을 통해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를 듣기 좋게 재창조한 곡들을 소개한다. 대중문화를 사로잡은 ‘과거 앓이’가 자기복제 이상의 가치 창출로 뻗어나가길 바라며, 다음 특집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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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HA:TFELT) ‘1719’(2020)

평가: 2.5/5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먼저 눈길을 끈다. 원더걸스 예은의 정체성을 탈피하고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로 데뷔한 2017년 이후, ‘새 신발’, ‘위로가 돼요’, ‘나란 책’ 등의 싱글로 조각조각 자아를 제시해온 시간을 다소 어둡게 명명한 것이다. 아티스트로서의 출사표, 아이돌 활동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욕망, 자신의 희망과 두려움을 담담하게 풀어내던 곡 내용을 생각하면 이 포장은 신선하다. 깊이 있고 입체적인 개인의 초상을 기대해봄직하고, 실제 앨범 설명과 관련 활동도 이를 암시하지만, 막상 그 내용이 부실해 당황스럽다.

‘잠겨 있던 시간들’ 속 노래들을 확장하는 대신 성급하게 깊이를 추가한 듯 구성이 미숙하다. ‘새 신발’에서 개코에게 존재감을 내주던 약한 정체성은 최자가 피처링한 ‘3분만’ 같은 곡에서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솔직하고 능글맞게 감정을 표현하다가 난데없이 ‘위로가 돼요’를 덧붙이는 작위적인 가사 전개는 거울 속 수척한 자기 모습을 연민하다가 개연성 없이 행복을 묘사하는 트로피컬 하우스곡 ‘Sweet sensation’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Bluebird’의 고조되는 반주와 상반되는 팔세토 가창은 피로하고, ‘Life sucks’의 보컬 역시 가사의 처절한 감정을 전달하기엔 무게감이 부족하다. ‘Solitude’나 ‘Make love’의 날 선 목소리와 상반된다. 본인에게 초점을 맞춰 앨범을 전개하다가 갑자기 청춘에게 위로를 건네는 ‘Satellite’에서도 어색한 주제와 별개로 신스 반주와 자리싸움을 하는 목소리가 미약하다. 앨범 줄기를 따라가기 전에 일단 듣는 데서부터 가로막힌다.

엉성한 구성을 걷어내고 주제 의식을 조립해보면 마음의 짐을 덜고 온전한 인간으로 사랑받기 위한 여정이 보인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내내 공허하다. 외로움을 못 견뎌 자신을 향해 부르는 ‘Solitude’, 소울풀한 발라드로 애정 결핍을 노래하는 ‘Make love’, 떠나간 애인에게 애원하는 ‘3분만’은 모두 연애에 집착한다. ‘Life sucks’는 가족애, ‘Bluebird’는 자기애를 찾지만 앨범을 마무리하는 ‘How to love’는 이렇게 제시된 감정들을 제대로 마주 보지 않고 고린도서를 읊으며 상투적으로 덮어버린다. 사랑에 대한 고찰이라기엔 오직 받는, 혹은 받지 못한 사랑만을 노래하기에 평면적이고 수동적이다.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행위는 주체적이나 작품의 내용이 그러지 못하다.

어쩌면 음반과 함께 발매한 동명의 책 < 1719 >를 읽어야만 음원의 허술함이 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내용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함께 시작하는 이 해설집 역시 단 1,719권만 제작됐다. 애초에 불특정 다수의 이해나 공감을 배제한 듯한 인상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더라도 아티스트는 우선 이를 정제해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핫펠트는 본인과 그 주위의 시야만을 갖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수록곡 –
1. Life sucks
2. 피어싱 (Feat. THAMA)
3. 새 신발 (Feat. 개코)
4. 위로가 돼요
5. 나란 책 (Guitar Ver.)
6. Cigar
7. Make love
8. Satellite (Feat. ASH ISLAND)
9. Sweet sensation (Feat. SOLE)
10. Solitude
11. 3분만 (Feat. 최자)
12. Bluebird
13. Sky gray
14. How to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