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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걸(OH MY GIRL) ‘Dear Ohmygirl’ (2021)

평가: 3/5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차트를 지키고 있는 히트곡 ‘Dolphin’과 ‘살짝 설렜어’로 7인조 걸그룹 오마이걸은 대세의 반열에 올랐다. 그만큼 팬덤 위주의 케이팝 시장에서 < Nonstop >이 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톡톡 튀는 발랄함과 밤하늘을 유영하는 서정적인 이야기로 기반을 다져온 팀에게 전작은 분명 평범한 편이었지만 인지도 상승을 위해 이만한 묘수도 없었다. < Dear Ohmygirl >은 다시 한번 익숙한 장르를 앞세워 입지 굳히기에 나선다.

흥겨운 선율의 타이틀 ‘Dun dun dance’는 세계적인 디스코 유행에 뒤늦게 탑승한 만큼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복고풍 악기 연주 사이의 트랩 비트는 단조로울 수 있는 진행에 반전을 주며 무한 재생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리드미컬한 후렴구와 끝을 올리는 밴딩 처리는 각자의 특색을 도드라지게 하며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청량하다.

펑키(Funky)한 리듬 이후엔 기존 정서를 담아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잡는다. 부제에 걸맞게 꿈에서 뛰어노는 듯한 ‘나의 인형’은 순수한 어린 시절을 그리는 노랫말과 음향 왜곡 효과가 환상 동화 한 편을 들려준다. 허스키한 음색이 어우러진 보사노바 느낌의 ‘초대장’도 팬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본인들을 미지 행성의 외계인에 비유하며 특유의 캐주얼한 면모를 뽐낸다.

전곡에 걸친 라이언 전의 프로듀싱은 ‘Dolphin’의 흥행 공식을 답습한다. 앞선 작품의 게임 세계관을 이어간 ‘Quest’는 8비트 사운드를 중심으로 단순한 짜임새를 보인다. 간소한 구성과 차분한 보컬이 성숙해진 감성을 조명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나른함을 안기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흐름 때문에 비바람을 뚫고 온 백조들의 피날레 ‘Swan’이 드라마틱한 전개에 비해 짧은 여운만 남기고 금세 머릿속을 떠난다.

활기차면서도 신비로웠던 가요계 새싹들이 뿌리를 내린 지 어느덧 6년.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트렌드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며 끝내 울창한 숲을 이뤄냈다. 신록의 계절을 맞이한 음악엔 산들바람 같은 선선함이 감돈다.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자라날 오마이걸의 그늘로 더 많은 지구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 수록곡 –
1. Dun dun dance
2. Dear you (나의 봄에게)
3. 나의 인형 (안녕, 꿈에서 놀아)
4. Quest
5. 초대장
6.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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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싱글

전대미문의 ‘거리두기’ 현실에서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는 가운데 가요계도 잠시 숨을 고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코 멈추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대중가요는 삶을 위로하고 웃음을 선사하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오마이걸(OH MY GIRL) ‘Dolphin’

식상한 패턴을 비켜가면서도 트렌드를 붙잡으려 애쓴 음악적 성의가 끝내 형통했다. 댄스 퍼포먼스 혹은 비주얼의 개가, 화제성의 산물, 마케팅의 성과 등등을 들먹이기 전에 음악 정확히는 곡의 승리였다. 듣기에 따라 건조할 수도 있고 습할 수도 있는, 조금은 우기듯 기분 좋게 반복하는 ‘다 다 다..’ 리듬에 바로 이어지는 ‘또 물보라를 일으켜’까지의 대목은 2020년 가장 중독화에 성공한, 나른하지만 무감각을 찍어 누르는 매혹의 코러스다. 

짧지만 돌아가면서 부르는 멤버 모두의 수준급 보컬도 승리를 거들었다. 이 때문에 로맨틱한 가사가 살고 실종된 청순과 설렘이 복권된다. 노래에서 화자가 좋아하는 하트 상대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오마이걸 자신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돌핀으로 팬들 마음에 새겨진다. 여성 팬이 찾고, 어른도 반응하고, 놀랍게도 헤비메탈 광이 호감을 내비친다. 고질적 성, 세대, 장르 분리의 유쾌한 은폐. 오마이걸에게 ‘걸 그룹의 걸 그룹’이란 수식을 제공해준 2020년의 러브 송! (임진모)


이날치 ‘범 내려온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영상이 시작이었다. 간결한 베이스가 도입부를 알리자 한복과 정장을 장착한 춤꾼들이 리듬에 맞춰 조금씩 전진하고, 그 위로 구수한 판소리가 힘차게 탑승한다. 다들 태연하게 제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분명 동서양의 문화가 한 데 뒤엉키는 혼란스러운 상황.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협업으로 탄생한 기상천외한 공존, ‘범 내려온다’ 속에는 조선시대 놀이판의 오색찬란한 광경이 다시금 호출되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혹은 퓨전 국악을 지향한 씽씽과 불교음악을 다룬 대형 연주단 비빙과 같이, 이날치 역시 수많은 분야를 탐험해온 장영규의 잠시 스쳐 가는 연장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곡이 지닌 기세 속에는 최근 국악계의 진보적 흐름에 단순 동참하는 의의를 넘어, 도리어 앞장설 수 있을 만큼의 우수한 포용성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역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원재료를 가지고도 젊은 세대를 스스로 들썩이게 만들지 않았는가. (장준환)


조정석 ‘아로하’ 

가수의 조건 중에서 사람들은 가창력에 비해 발성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곡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감정전달도 애를 먹는다. 또 작사가에게도 미안하고. 배우 조정석은 초등학생이 듣고 받아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발음과 뚜렷한 발성을 구사한다. 이것만으로도 조정석의 ‘아로하’는 2020년에 가장 평가받아야 할 노래 중 하나다. 

가창력도 기대 이상이다. 이재훈과 유리가 부른 쿨의 원곡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부른 조정석은 남자와 여자의 키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또박또박한 가사를 통해 사랑스런 노랫말을 더욱 아름답게 격상시킨다. 배우로서 발음이 좋은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조정석은 ‘슬기롭게’ 잘 불렀고 듣는 사람들은 그 점을 충분히 ‘납득’한다. (소승근)


창모 ‘Meteor’

올해를 대표하는 가요 싱글들을 보고 한 해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면 ‘Meteor’를 빼놓고 2020년을 논할 수 없다. 힙합이 팝이 된 시대에, 특히 ‘그’ 오디션에서가 아닌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노래하는 이 래퍼에게 세상은 손을 들어줬다. 피아노 연주부터 비트 메이킹, 프로듀싱, 랩 스킬까지 탄탄한 실력을 겸비한 음악가에게 무시 못 할 히트곡까지 터졌으니 그 누가 의심하랴.

2019년 12월 하늘에서 떨어진 ‘Meteor’로 ‘마에스트로 (Maestro)’를 밀어내며 대표곡 자리를 갈아엎은 그는 피아노 치는 래퍼 대신 카니예 웨스트식 작법과 자전적 가사, 그리고 보컬 이펙트의 이상적인 조합으로 익숙한 새 개성을 손에 넣었다. ‘덕소의 아들’에서 ‘랩스타’로 떠올랐던 그는 덕분에 한 단계 발전해 ‘팝스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위치까지 올랐다. (임동엽)


아이유(IU) ‘에잇 (Prod. & Feat. SUGA of BTS)’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개성이 뚜렷한 두 명의 28살이 만났는데, 각자의 질감을 유지하다가 융합하기도 하면서 또 서로에게 새로운 시도였을 장르를 말끔히 소화한다. 거기에 여러 차례 곱씹게 되는 언어의 힘까지. 시원하게 뻗어 나아가 카타르시스에 닿는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와 달리 오직 기억 속에 머물러있는 노랫말은 너무나도 시리기에, 어느새 우리도 ‘한 뼘짜리 추억’을 함께 거닐고 있다.     

지극히 본인의 이야기임에도 저마다 가슴 깊이 눌러 담았던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을 떠오르게 한다. 들춰내는 것도 아니고 헤집어 놓는 것도 아닌, 슬그머니 ‘서로를 베고 누워’ 그리움을 어루만진다. 아이유는 스물여덟의 반복되는 무력감과 무기력함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 보다 힘겨웠던 2020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그야말로 ‘올해의 힐링 곡’. (임선희)    


가호 ‘시작’ 

긍정적인 힘이 필요한 한해였다. 코로나 19시대에 갇혀 움츠러든 대중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시작이란 단어는 잊혀가는 일상 중 하나였다. < 이태원 클라쓰 >로 발현된 화제성이지만, 올해 2월 발매된 가호의 ‘시작’이 드라마가 종영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 곁에 머물며 시대와 호흡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희망을 원했고, 그곳에서 위로를 찾았다.

무엇보다 순수하다. 밝은 내일이라는 목표가 직선적인 록 사운드로 표현된 곡은 ‘워’와 같은 추임새 등 영상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살리며 새 출발의 설렘을 담아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청자에 다가선다. 사람의 체온과 닮은 ‘시작’의 온도에 무명 가수의 목소리는 서서히 퍼져나가며 멜론 차트 1위, 소리바다 어워즈 OST 부문 수상 등 확실한 기록 또한 남겼다. 특정한 지지층 없이 음악으로만 이뤄낸 의미 있는 결과다. 너무 뜨겁지 않게. 하지만 따뜻하게 2020년을 감싸 안았다. (손기호)


DAY6(데이식스) ‘Zombie’

반복되는 일상 속 무력해진 자신을 ‘머리와 심장이 텅 빈’ 좀비에 빗댄다. 괜찮다는 위로나, 애써 고통의 실타래를 벗어나라는 긍정의 메시지도 없다. 데이식스의 여섯 번째 미니 앨범 < The Book of Us : The Demon >의 타이틀곡 ‘Zombie’는 밴드의 작품 중 가장 어둡고 비관적이다. 벌스(Verse)와 후렴의 멜로디를 일치시킨 간소한 구성이 자연스럽게 보컬에 귀 기울이게 하고, 영케이와 원필이 직접 쓴 노랫말의 음울한 정서를 격정적으로 토해내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마음을 찢어놓는다.

뒤숭숭한 한 해였다. 세계적 전염병의 창궐에 사람들은 고립됐고, 설상가상으로 국내에는 태풍의 악재까지 겹치며 일상을 빼앗겼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들을 흘려보내며 몸도 마음도 지쳐간 이들이 많았을 터. 이 노래가 그 시대성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Zombie’는 묘하게 그런 시대의 모습과 맞아떨어지며 어두운 시기를 걷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나은 일상이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이홍현)


지코 ‘아무노래’ 

이 노래의 히트는, 이미 영미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챌린지’ 프로모션이 국내에도 정착했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초반 30초에 모든 곡의 매력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따라 하기 쉬운 안무를 장착. 다양한 분야의 셀럽을 참여 시켜 진행한 SNS 홍보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트렌드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체화한 지코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그루브한 싱잉-랩, 비트 위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보사노바의 기운, 구성을 완벽히 다르게 가져가며 곡에 몰입을 유도하는 인트로와 아웃트로 등. 남들이 조금씩 흉내만 낼 때, 그는 본인의 음악적 매력을 적확하게 녹여내며 승기를 잡았다. 트렌드에 대한 이해와 음악적 역량이 빚어낸 전략이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하느냐에 대한 그 예제, 지코가 확실히 보여준 셈. (황선업)


조광일 ‘곡예사’ 

이해되는 광기, 소화되는 분노다. 빽빽하다 못해 뾰족하게 쏟아지는 속사포 래핑과 열에 받쳐 토해내는 서사들은 흐트러짐이 없다. 더하여 확실하게 들리는 발음은 더욱 강한 주목 및 집중을 끌어낸다. 2019년의 끝에 발매한 싱글 ‘Grow back’을 출발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조광일은 올해 이 노래를 통해 확실한 자국을 남겼다.

자신을 줄을 타는 곡예사에 비유한다. 아니 그보단 아찔한 줄타기처럼 짜릿한 랩을 탄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시작과 동시에 정신을 쏙 빼놓는 그의 소리침은 어디서도 뒤지지 않을 자신감과 거친 포부로 읽힌다. 랩 스킬, 데뷔를 각인시킬 가사, 호흡. 무엇하나 빠짐없이 날카롭다. 튕기듯 쏘아내는 랩과 그 안에 담긴 생생한 래퍼로서의 자신감. 돋보이는 신예다. (박수진)  


블랙핑크(BLACKPINK) ‘Lovesick Girls’ 

블랙핑크는 케이팝 스타에서 팝 스타가 되어가는 올바른 선례를 보여줬다.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3위에 데뷔했고, 세계적인 팝 스타 레이디 가가(Lady Gaga), 카디 비(Cardi B)와의 작업으로 팝 시장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단계를 거듭하는 전술 끝에 < The Album >이 빌보드 앨범차트 2위의 쾌거를 이루며 인기의 정점을 증명했다.

‘Lovesick girls’는 팝스타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케이팝의 보존을 꾀하기에 더욱 의미 있다. 2000년대 미국의 틴 팝(teen pop)을 떠오르게 하는 에너제틱한 청량함과, 블랙핑크 특유의 마이너한 색깔을 적절히 배합한다. 여기에 케이팝의 성질을 주조하는 직관적인 신시사이저 리프와 촘촘하게 짜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짜릿한 쾌감의 원천! 비로소 국내외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이유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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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2020 올해의 팝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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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오마이걸) ‘Bon Voyage’ (2020)

평가: 3.5/5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갈망. < Bon Voyage >는 이 같은 작금의 절망에 대한 돌파구로 원시성을 제시한다. 숲, 자유, 하늘, 달 등 각종 자연물을 대변하는 키워드가 가득한 앨범은 인간 사회, 정확히 말하자면 바벨탑을 쌓은 오만한 인간 사회를 경계하는 듯하다.

대자연을 기리듯 월드 뮤직의 요소로 무장한 ‘숲의 아이’는 도시의 유아가 열망하는 세계를 그린다. 노래에 울려 퍼지는 풀피리 소리와 아프리칸 부족의 가창을 따온 백 코러스가 자연의 이미지를 환기하는데, 이는 도시에서의 삶을 대표하는 디스코 트랙 ‘Diver’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1970년대의 도시 음악에 기반해 일렉 기타 스트로크로부터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의 록킹한 속성까지 가져간 ‘Diver’는 비지스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며 장르적 오마주를 꾀한다. 여기에 딥 하우스 장르의 ‘자각몽 (Abracadabra)’까지 이어지는 신스 베이스는 인위와 자연이 보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앨범에 이처럼 뚜렷한 서사가 담길 수 있었던 건 유아의 영민한 콘셉트 해석력 덕분이다. ‘Far’와 ‘Diver’, ‘자각몽’에서 도시의 이방인을 자처한 그는 성숙한 보컬로 완급조절을 해가며 소위 ‘요즈음’의 노래를 부른다. 반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숲을 가로 지를 때(‘숲의 아이’)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할 때(‘End Of Story’) 유아는 기교를 덜어내고 곧게 뻗어 나가는 맑은 목소리로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특히 ‘숲의 아이’의 백 코러스를 지휘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모종의 힘까지 느껴지며 아레나 팝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훌륭한 콘셉트 앨범이다. 문화 전유 논란에서 자유롭진 않으나, 작품 자체의 짜임새는 견고하다.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트렌드, 작금의 세태를 고려한 앨범 기획과 제작 단계부터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실현한 실행 단계까지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는 말이다. 케이팝의 종합 예술적 성격을 고려하면 < Bon Voyage >는 장르가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결과다.

– 수록곡 –
1. 숲의 아이 (Bon voyage)
2. 날 찾아서 (Far)
3. Diver
4. 자각몽 (Abracadabra)
5. End of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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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걸(OH MY GIRL) ‘NONSTOP'(2020)

평가: 3/5

개운치 않은 성공

사실 ‘살짝 설렜어’를 처음 들었을 땐 다른 걸그룹의 앨범을 잘못 플레이한 줄 알았다. 선율 중심의 팝송을 추구하던 그들이, 갑작스레 무난한 트로피컬 하우스라니. 나름의 의욕적인 시도였겠지만, 개인적인 실망감은 감출 수 없었다. ‘Windy day’에 혹하고 ‘비밀정원’에 빠져든 후 ‘다섯 번째 계절(SSFWL)’에 감동했던 입장에서, 그간 착실하게 쌓아온 그룹의 캐릭터를 한순간에 뒤집어버리는 듯한, 스스로 너무 평범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활동이 종료되고 이 곡이 커리어의 최고 성과를 거둔 지금에도, 이들이 보여준 타이틀곡 중 가장 매력이 덜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명확히 말해 이 노래는 오마이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 퀸덤 >을 통한 새로운 팬덤의 유입과 더불어, 이 노래의 형식이 KPOP하면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표준모델에 가까워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퀸덤 > 이후 달라진 상황에서 A&R은 많은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고, 기존의 지지층과 새로운 팬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올린 것이 ‘살짝 설렜어’와 같은 스탠다드를 활용하는 전략이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도 수록곡들은 충실히 제 몫들을 해내고 있다. 특히 ‘Dolphin’의 만듦새는 놀랍다. 아이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언급된 것이 화제의 시초이긴 했지만, 장기간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전적으로 노래의 힘이다. 가사에 담긴 독특한 발상, 이를 음악으로 이미지화하는 미니멀한 프로그래밍이 일반적인 프로듀싱과 명확히 선을 긋는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듯한 멤버들의 곡 이해도 및 표현력 또한 완성도의 한 축으로 작용한다. ‘da da da da da’라는 단순한 가사가 이렇게 맛깔나게 담겨 있는 노래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 그야말로 트렌드를 통한 진화의 이상향을 보여주며, 타이틀로 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머지 세 곡은 ‘내가 알던 오마이걸’에 가깝다. ‘꽃차’는 노랫말에 맞는 따스한 가창과 재즈의 문법을 도입한 반주가 좋은 합을 보여주는 발라드. 8비트 퍼커션과 빈티지한 신시사이저가 발랄한 레트로 팝을 표방하는 ‘Ne♡n’은 그룹 특유의 대중성이 담겨있는 트랙으로, 풍성한 화음이 장식하는 후렴구가 귀에 꽂힌다. 더불어 1세대 케이팝 팬들이라면 왠지 모르게 익숙할, 세기말의 아련함을 극대화한 ‘Krystal’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트랙들이 앨범의 완성도에 일조하고 있다.

타이틀곡의 아쉬움을 수록곡들이 메워주는, 새로운 지향점과 기존의 정체성이 알차게 담겨 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룹이나 소속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질 앨범이기도 하다. 고유의 색을 덜어낸 ‘살짝 설렜어’가 최대 히트곡이 된 시점에서, 과연 ‘번지’나 ‘다섯 번째 계절(SSFWL)’, ‘불꽃놀이’와 같은 팝 노선으로 다시금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성공이 대중의 니즈임을 인식하고 ‘살짝 설렜어’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 성공의 달콤함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부딪힌 과제에 고민이 많을 법하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를 풀어낼 실마리와 가능성이 이 앨범에 충분히 담겨있으니까.

– 수록곡 –
1. 살짝 설렜어(Nonstop)
2. Dolphin 
3. 꽃차(Flower Tea)
4. Ne♡n
5. Kry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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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걸(OH MY GIRL) ‘THE FIFTH SEASON’ (2019)

평가: 3/5

가끔 ‘Liar liar’, ‘Coloring book’처럼 말괄량이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오마이걸은 아련한 사랑을 노래하는 순수 소녀들이었다. 타이틀곡 ‘다섯 번째 계절(SSFWL)’은 이 정체성의 선명한 각인이다. 북유럽풍의 간결하고 절제된 멜로디 라인과 단편 동화집을 연상케 하는 서사 구조, 그리고 걸크러쉬 유행에도 굴하지 않고 수줍게 내민 순백의 이미지가 있다.

사랑을 확신하는 순간을 ‘다섯 번째 계절’에 비유한 서지음의 서정적인 가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오케스트라 세션, 신비로운 여림과 후렴부 화사한 발산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보컬 배치가 돋보인다. 이는 ‘Closer‘, ‘Windy day‘, ‘비밀정원‘으로부터 이어져 온 핵심 전개다. 어느 정도의 기시감은 있으나 정규 앨범의 첫 타이틀로 무난한 표준형을 제시하며 외도보다는 정도(正道)를 택한다.

앨범도 타이틀의 기조를 이어 콘셉트를 공고히 한다. 신혁, 스티븐 리(Steven Lee), 션 알렉산더(Sean Alexander), 그리고 캐롤라인 구스타프슨(Caroline Gustavsson) 등 오마이걸의 이미지를 형성한 작곡가들을 한데 모았다. 그들의 시너지는 화려함 대신 우아함으로 수렴한다. 타이틀 ‘불꽃놀이‘처럼 튀어 올랐던 전작 < Remember Me >에 비해 힘을 뺀 모습은 뚜렷한 원색보다 은은하게 묻어나는 그러데이션에 가깝다. ‘비밀정원‘의 속편으로 봐도 무방한 ‘소나기’가 앨범의 방향을 이어가고, ‘Perfect day’의 록적인 터치를 피아노로 대체한 ‘Tic toc’ 또한 발랄하지만 사운드 핵심은 겸손이다.

욕심 없는 전개는 안정을 가져다 주나 튀는 시도를 가로막기도 한다. ‘미제 (Case No.L5VE)’의 뚜렷한 기승전결과 중반부 ‘홀린 듯 홀린 듯 그렇게 / 살며시 다시 널 그리네’의 몽롱한 보컬은 오밀조밀한 구성의 승리다. 반면 긴박한 트랜스 인트로와 반전되는 메시지의 ‘Crime scene’, 브라스 세션과 뭄바톤을 혼합한 ‘Checkmate’는 화려하게 터지는 듯하다 앞서 형성한 이미지에 개성이 눌리는 모습이다. 멤버들의 차분한 보컬과 대비되는 공격적인 사운드의 미묘한 부조화는 덤이다.

오마이걸은 느닷없는 인도풍 멜로디의 ‘Windy day‘와 사운드 과부하의 ‘Coloring book’, 그리고 유아적 콘셉트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라는 오답 노트를 갖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그들의 첫 정규작 < The Fifth Season >은 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만을 담는 데 집중한다. 지속적인 정체성 탐구와 숱한 자기 견제가 만들어낸, 안정적인 프로토타입이다.

– 수록곡 –
1. 다섯 번째 계절 (SSFWL)
2. 소나기
3. 미제 (Case. No.L5VE)
4. Tic toc
5. 유성 (Gravity)
6. Crime scene
7. 심해 (마음이라는 바다)
8. Vogue
9. Checkmate
10. 다섯 번째 계절 (SSFWL) (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