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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전찬일의 영화수다 – 왜 < 미나리 >인가!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윌 패튼 등 주·조연에 40대 초반의 재미교포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이 연출한 네 번째 장편극영화 < 미나리 >는, 오는 26일(한국시간 기준) 개최될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거머쥘까?

1980년대 초반, 희망·구원을 찾아 이민을 간 미국 캘리포니아를 10년 만에 떠나 시골 마을 아칸소로 막 이주한 한국 가족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가족 드라마. 한국적 정서·감성 가득한 이 미국 영화는 총 6개 부문에 후보 지명돼 있다. 영예의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이다. 노미네이션으로만 치자면 봉준호의 < 기생충 >을 압도한다. 그 역사적 걸작은 미술상, 편집상까지 역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쥐었으나, 연기상으로는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여정의 수상 및 노미네이션 퍼레이드는 특히 눈이 부실 정도다. 그 여걸은 11일(현지 시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상 여우조연상을 안으며 37번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로써 오스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후보만으로도 역사적 쾌거였는데, 이제는 상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이변’으로 회자될 상황이다. 7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미국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대세 배우’가 된 것. 당사자도 말했듯,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대체 왜 < 미나리 >일까?

곧 유튜브에 업로드돼 첫 방송될 ‘전찬일 이덕일의 종횡무진: 영화와 역사를 탐하다’ 등에서도 적시했듯, < 미나리 >의 주목할 만한 덕목‧화제성은 크게 서너 가지다. 우선은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안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연출력으로 자유롭게 극화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적 사건을 이민 가족으로 으레 겪을 수밖에 없을, 인종차별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가족 내 캐릭터―다름 아닌 윤여정이 분한 극 중 할머니 순자다!―의 불가항력적 선의의 실수로 구현‧처리한 선택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영화의 으뜸 미덕이다. 어느 모로는 의외이면서도 영화에 남다른 신선함‧수준을 안겨주기 모자람 없다고 할까.

정이삭 감독은 사실, 첫 장편 < 문유랑가보 >로 단연 주목할 만한 데뷔전을 치른 바 있다.  비록 수상은 못 했어도, 서른을 바라보던 지난 2007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 공식 섹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고, 데뷔작인지라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 상 후보에 올라 일찌감치 큰 화제 몰이를 했던 것. 당시 칸을 찾았던 필자는, 영화의 화제성도 그렇거니와 그 속내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전 와중에 있던 아프리카 르완다 두 소년의 이야기를 르완다인들의 협조를 받아 가며 르완다 어로 찍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성취는 사상 최초였다. 두 영화 사이에는 13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놓여있긴 해도, < 미나리 >의 ‘영광’은 그때 이미 예고됐던 셈이다. 다소 성급한 진단일 수도 있어도, 그에게서 ‘포스트-봉준호’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다.

두 번째 화제성은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연기에서 연유한다. 윤여정을 필두로, 봉준호의 < 옥자 >(2017)와 이창동의 < 버닝 >(2018) 등을 통해 그 연기력을 공인받은 스티븐 연, 오스카 후보지명엔 실패했어도 인생 일대의 연기를 선보인 한예리,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건만 우리말 연기도 곧잘 해낸 앨런 김과 노엘 조 등이 구현한 앙상블 연기는 < 기생충 >에 비견되기 부족함 없다.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국배우조합(SAG)상에서는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아론 소킨)에 영화 부문 앙상블상이 안기긴 했어도….

< 미나리 >가 누리고 있는 작금의 연기를 향한 상찬들은 물론, 연기도 연기거니와 성격화(Characterization)에 기인한다. 당장 할머니이면서도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쳐 함께 치고, 상소리들이 두루 섞인 거친 입담을 과시하며,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못한다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엉뚱(?)하게 미나리의 질긴 근성을 설파하는 등의 순자부터가 얼마나 ‘별난’ 캐릭터인가. 그야말로 역대급 캐릭터의 완승이다.

흥미로운 점은 < 미나리 >가 자신의 연기 최고작이 아니라는 것을 윤여정 본인이 잊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녀는 영화 데뷔작 < 화녀 >(김기영, 1971)―그 ‘청불 영화’를 필자는 초등학교 4년 적 청량리에 있었던 동일 극장에서 관람했다!―에서부터 이미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으며, < 꽃피는 봄이 오면 >(유장하, 2004),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등을 통해 최상의 연기력을 선보인 ‘연기의 달인’ 아닌가. 그럴 법한데도 전혀 우쭐대지 않고 늘 겸허한 수상 소감을 피력하는 윤여정의 모습이야말로, 연기를 넘어 후배 배우들이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할 진정한 그 무엇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상기 덕목들보다 더 아름다운 < 미나리 >의 (영화) 역사적 의의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압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네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현실, 다시 말해 무려 750만에 달한다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는 데서 나는 찾고 있다. 영화적 수준에서는 다소 못 미칠지언정, < 미나리 >의 영화사적 의미가 < 기생충 >을 능가한다고 평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일전에 다른 지면에서 밝혔던 내 진단을 여기에 옮기며, 이 글을 마치련다.

“나는 < 미나리 >의 가장 큰 의의를 다른 지점에서 찾는다. 영화는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문제를 전격적으로 소환·환기·각인시키는데 전환점(Turning Point)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위성에서는 그래선 안 되나, 조국 대한민국조차도 거의 잊다시피 주변부화시켜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주요 현실 중 하나….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배창호와 이장호, 김호선, 조정래 등이 각각 < 깊고 푸른 밤 >(1985)과 < 명자 아끼꼬 쏘냐 >(1992), < 애니깽 >(Henequen; 1996), < 귀향 >(2016) 등을 통해 일찍이 다룬 바 있는 주요 이슈다.

< 미나리 >는 문화예술과 오락이 얼마나 밀접하게 (현실) 정치와 연관돼 있는가를, 영화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문화 콘텐츠·스토리텔링으로 극화시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를 새삼 증거한다. < 기생충 >이 가족 희비극을 통해 이 세상의 비정한 신자유주의를 향해 통렬한 화살을 날렸듯. 그럼으로써 < 미나리 >는, 비평가로서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온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 얼마나 위대한 성취들인가!”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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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도헌의 Twist And Shout

경이로운 ‘소울’의 음악세계

< 소울(Soul) >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작품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음악 영화임은 분명하다.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티나 페이 분)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 속 삶의 가치를 다시 묻고, 모든 것의 근원으로 거슬러올라가 세계 속 개인을 곱씹게 만든다. 그 핵심 가치의 은유 도구가 음악이다. 영화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해 영적인 즉흥을 거쳐,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는 황홀경을 향해 나아간다.

 < 인사이드 아웃 >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잡은 감독 피트 닥터는 유년기 음악을 가르쳤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더블 베이스를 연주한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이었다. 자연히 재즈의 팬으로 자란 그는 제작 회의 중 우연히 누군가가 언급한 허비 행콕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시청한 후 주인공 조의 직업을 결정했다. 영상 속에서 허비 행콕은 투어 중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합동 공연을 회상하는데, 워낙 큰 무대에 긴장한 나머지 연주 중 그만 음을 틀려버렸음에도 마일스가 곧바로 흐름을 이어 즉흥으로 연주를 진행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거장의 유연한 대처 일화는 삶의 지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 주제로 이어졌다. 조 가드너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를 동경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 집안의 반대와 경제적 사정에 부딪쳐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 학교 밴드 아이들과 씨름하면서도 조는 어린 시절 그를 매료시킨 클럽에서 밴드의 일원으로 공연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 가드너의 아이디어, 악기, 연주, 노래가 될 아티스트로 < 소울 > 제작진은 1986년생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Jon Batiste)를 낙점했다. 존은 젊은 나이에도 그래미 어워드 3회 노미네이트 된 실력자이며 현재 ‘더 애틀랜틱’과 뉴욕 할렘 재즈 박물관의 음악 디렉터, 미국 CBS의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쇼 음악 감독을 맡은 대세 뮤지션이다. “영적인 장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며 조화롭고 멜로디가 살아있는, 리듬감 있는 음악”을 생각하며 존은 재즈를 기반으로 한 알앤비, 소울, 클래식 사운드트랙을 자유로이 선보였다. 

고전과 현실을 오가는 활기찬 연주가 ‘누구도 걷다가 멈추지 않는 도시’ 뉴욕의 조 가드너를 숨 쉬게 한다. 극 초반부터 화려한 연주로 재즈 클럽에서의 오디션과 들뜬 마음을 표현하더니, 중후반부부터는 ‘뉴욕 영화’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도시의 소음과 일상의 사물과 함께 일상의 경이로움을 발굴하는 데 앞장선다.

pixar soul 이미지 검색결과

허비 행콕부터 테리 린 캐링턴, 퀘스트러브 등 신을 이끄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자문을 더하며 고전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았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Blue rondo a la turk’, 월터 노리스의 ‘Space maker’, 듀크 피어슨의 ‘Cristo Redentor’ 등 과거의 명곡이 사운드트랙 곳곳에서 변주된다.

“우리 밴드의 음악 연령대는 95세부터 19세까지다!”. 존 바티스트의 자랑스러운 선언대로 < 소울 >의 음악은 세대 무관이다. 올드 재즈 팬부터 신세대 베드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까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아지경의 세계 속 자유로이 발걸음을 옮기는 연주의 즐거움과 쾌감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자연스레 옮기는 것은 덤.

1963년 커티스 메이필드가 작곡한 임프레션스의 고전 ‘It’s all right’ 역시 존의 손 끝에서 극의 마지막을 잔잔하게 빛낸다. 정말로 ‘손 끝’이다. 실제로 영화 속 조의 연주 장면은 존의 실황을 촬영해 모션 캡처로 옮긴 결과물이니까.

그토록 바라던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된 조. 벅찬 감정에 발 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다가 그만 하수구에 빠져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고 만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을 닮은 형이상학적 존재 ‘관리자’들과 무한한 영혼들이 신비로운 풍경을 이루는 이 곳에서 음악의 문법도 빠르게 전환된다. 리얼 세션 재즈에서 영롱하고 광활한 앰비언트가 장엄한 소리의 안개를 펼친다. 

이 세계의 설계자들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다. 음악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로 유명한 이름이다. 1994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인간의 음울과 고통을 절규하듯 토해내던 인더스트리얼 밴드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지 이들의 참여 소식은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정작 트렌트 레즈너는 “픽사만큼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곳은 없다”며 반가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21세기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보다 사운드트랙 작곡가로 더욱 유명하다. < 소셜 네트워크 >, < 나를 찾아줘 >, < 버드 박스 >, < 맹크 >까지 유수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담당했고 특히 2010년 < 소셜 네트워크 >로는 2010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검증된 아티스트다. 그럼에도 < 소울 >은 듀오의 첫 애니메이션 작업이고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과는 꽤 거리가 있는 전자 음악을 선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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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티스트가 즉흥의 붓질이라면 트렌트와 애티커스는 아티스트의 캔버스 같은 존재다. 장대한 가상공간 곳곳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듀오의 음악은 야심 가득하면서도 포근하며 천진한 디즈니의 성격에 정확히 부합한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부터 가상 악기, 사운드 합성을 통해 제작한 소리는 < 인사이드 아웃 >의 감정, < 토이 스토리 >의 포근한 무생물 세계와 닮았으면서도 분명히 구분된다. 사후세계 ‘머나먼 저 세상’부터 어린 영혼들을 교육하는 ‘유 세미나’까지 유연하게 찰랑이는 청각의 물결이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영화처럼 두 ‘음악 관리자’ 들의 연주도 자유로이 교차된다. 하이라이트는 가상 세계 관리자 테리(레이첼 하우스 분)가 존과 22를 뉴욕으로부터 가상 세계로 영혼을 데려갈 때다. 재즈 밴드 연주가 왜곡된 사운드 벽을 거쳐 긴박한 앰비언트 파편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긴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충돌의 순간을 그린다. 친절하게도 트렌트 레즈너는 곧이어 온화한 피아노 뉴에이지로 긴장을 낮추며, 존 바티스트가 바통을 이어 화려한 고전의 세계를 전개한다. 아름다운 앙상블, 화려한 하모니다.

trent reznor soul 이미지 검색결과

근사한 사운드트랙 덕에 < 소울 > 은 한 편의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의 형태로 비유된 음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음악은 곧 삶과 동의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 거대한 ‘불꽃’ 같은 순간을 바라며 삶을 무의미하다 비관할 수 있지만, 관리자 제리(리처드 아이오아이 분)의 말처럼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리에게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드는 음악, 그 몰입의 과정 속 선물처럼 내려오는 아름다운 순간, 그것이 곧 삶일지니. 훌륭한 작품의 드넓은 저편에 경이로운 음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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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진성의 영화음악 – #2 접속(The Contact, 1997)

이즘은 개설 20주년을 맞아 특집 가운데 하나로 < 김진성의 영화음악(Historical Cinema Music) >을 연재합니다. 영화 역사를 수놓은 작품들 중에서 영화 자체는 물론 특히 영화음악으로 역사와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30개의 작품을 골라 음악을 집중 분석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두 번째 편은 < 접속 >입니다.

1997년 9월13일 추석시즌부터 겨울 12월까지 장기상영에 들어가 서울에서만 67만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노래와 연주곡을 묶어낸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앨범이 80만장 이상 판매되며 영화의 흥행기록에 버금가는 명성을 획득했다. 그야말로 쌍끌이 히트, 겹경사였다. 한석규와 전도연, 두 남녀주연배우의 호연이 물론 영화의 흥행에 중대한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영화음악의 영향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화제의 명화.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와 PC통신을 주요 소품으로 활용해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 <접속>은 동시대의 낭만적 사랑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극에서 차지하는 음악의 지분도 마찬가지, 로맨틱한 무드로 사랑의 감정을 불러내는 노래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었다. 그렇게 영화의 장면에 유효 적절히 조응하도록 삽입된 노래들은 연이어 인기를 누리면서 영화팬과 음악애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X세대 남녀의 러브스토리에 음악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충만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구관이 명관임을 다시금 인지하게 만든 셈.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과 테크노(Techno) 음악이 최신 유행하던 1990년대 후반, CD가 음반시장을 재편하던 그 대세 안에서 “길보드” 차트를 점령할 만큼 그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사라 본(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는 그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곡으로, 이후 라디오 신청곡으로도 꾸준히 애청되면서, 영화의 주제가처럼 각인되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서의 종영장면과 함께 울려 퍼진 ‘연인들의 협주곡’과 카페에서 읊조리듯 흘러나온 ‘연푸른 눈동자’는 우리에게 그렇게 영화음악으로 기억에 새겨졌다.

영화는 한석규가 출연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PD 동현과 전도연이 분한 홈쇼핑 콜센터 상담사 수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동현과 친구의 애인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수현은 각각 “해피엔드”와 “여인 2”라는 대화명으로 인터넷 PC통신에서 만나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사랑의 아픔을 지닌 둘은 모두 상실과 외로움 속에 사이버 채팅을 통해 마음 속 비밀까지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음악은 두 남과 여의 관계에서 중요한 매개역할로 작용한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속 깊은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큼 인터넷에서 둘은 자유롭게 대화하지만, 실상 현실에서는 모순되게도 서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고, 둘의 엇갈림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연출되는 장소가 레코드가게 좁은 계단이라는 점도 음악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대목. 신인 감독 장윤현의 섬세한 연출력과 더불어, 영화 장면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접속해 공감할 수 있게 한 선곡이 특출하다. 우선 영화에 주제곡처럼 쓰였을 뿐만 아니라, 동현과 수현의 만남을 가능케 했던 곡이 바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다.

동현의 옛 연인 영혜가 즐겨듣던 이 곡을 수현이 방송에서 우연히 듣게 되고, 다음날 “여인 2”라는 아이디로 이 곡을 신청하면서 동현과의 연인이 시작된다. 루 리드(Lou Reed)가 소곤거리듯 낮게 읊조리는 가창이 조용히 가슴에 와 닿는 이 곡은 한석규의 동현을 위한 곡이다. 이 노래로 관객은 떠나간 옛 사랑에 대한 동현의 그리움과 다가오는 새로운 연인을 향한 기다림의 정서를 미리 짐작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인물설정 상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PD인 남자주인공의 이 곡에 대한 애정은 진정한 애호가가 아니면 잘 몰랐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대중적으로 알렸다는데 의미가 남다르다.

PC통신으로만 얘기를 나누던 남여주인공이 서로 만나게 되는 엔딩장면에 쓰인 곡은 1966년 재즈 가수 사라 본(Sarah Vaughan)이 다시 불러 히트한 재즈 풍의 노래, 원래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작곡한 춤곡(Minuet)을 1965년 흑인 여성 3인조 그룹 토이즈(The Toys)가 노래해 빌보드 핫100차트 2위까지 올려놓은 ‘A lover‘s concerto'(연인들의 협주곡)다. 밝고 경쾌하게 박진하는 리듬과 호소력 짙은 그녀의 보컬은 행복한 결말과 함께 빛나면서 이 곡을 최고의 라디오 애청곡 목록에 올려놓았다.

“저는 눈물이 안나요… 정말 바보 같죠.”란 독백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수현의 아픔을 온유하게 보듬어 주는 곡은 ‘The look of love’(사랑의 모습),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울 여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가 라틴 룸바 리듬을 실은 재즈 반주에 맞춰 불렀다. 작곡가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과 작사가 할 데이비드(Hall David) 명콤비가 공작해낸 사랑의 발라드로, 이 노래 역시 많은 팝송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애청되었다.

이외에도 탐 웨이츠(Tom Waits)의 작별과 회한을 노래한 ‘Yesterday is here'(어제는 여기에)와 록 밴드인 트록스(Troggs)의 1966년 발표 히트곡 ‘With a girl like you'(당신 같은 여인과 함께)까지, 다양한 팝의 클래식들이 수현과 동현의 내면을 대변하는 한편, 송지예와 방대식이 두 남녀주인공이 되어 대화하듯 부른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는 ‘The look of love’와 유사한 라틴 재즈풍의 곡으로 영화에 일관된 기조의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별도의 사운드트랙앨범으로 발매된 음반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 영화 <접속>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음악은 재즈, 엄밀히 퓨전 재즈적 감성으로 충만하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드럼과 베이스를 기본 악기구성으로 ‘연인들의 협주곡(A lover’s concerto)’과 바흐의 클래식원곡의 느낌을 함유한 연주곡 ‘사랑의 송가’는 그 대표적 증거. 이 곡을 필두로 ‘거리에서’, ‘해피엔드&여인 2’, ‘방황’로 이어지는 Cucina Acoustica(쿠치나 어쿠스티카)의 연주가 때론 밝게 때론 차분한 사색조로 화면을 채워준다. 이들 곡에서 느껴지는 감성적 터치는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나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의 음악처럼 영화에 대한 시각적 인상을 도회적 세련미로 물들이는 한편, 극적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로맨스 스토리를 관통한다.

사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실린 스무드 재즈(Smooth Jazz) 스타일의 반주와 숨은 명곡들을 선정해 결합해낸 음악감독 조영욱의 뛰어난 감각과 노고가 아니었다면 영화 <접속>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색깔에 어울리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개인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을 고른 것이 젊은 관객들의 감성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성공의 반은 국내최초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공인된 조영욱의 공이 컸다.

추억에 매달리는 주인공들의 인물됨과 취향에 맞춰 옛 노래이면서도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새롭게 가닿을 수 있는 노래를 주로 선택한 사운드트랙 구성이 주효했던 것이다. 또한 노래에 대한 ‘저작인접권’이나 원곡 작곡가가 지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 빈약한 영화음악예산으로 영화의 질과 음악의 상업성을 모두 만족시키려한 노고의 결실이었다. 그렇게 영화 <접속>은 만인들의 마음에 음악으로 접속했다.

– 수록곡 –
01. Prologue
02. Cucina Acoustica – 사랑의 송가
03. 수현의 독백
04. Dusty Springfield – The Look of Love
05. Cucina Acoustica – 거리에서
06. Cucina Acoustica – 해피엔드 & 여인2
07. 폴라로이드
08. The Troggs – With A Girl Like You
09. 운명의 반전
10. The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11. Tom Waits – Yesterday is Here
12. 손지예, 방대식 –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13. Cucina Acoustica – 방황
14. 수현의 전화
15. Sarah Vaughan – A Lover’s Concerto6.
16. J.S.Bach – 2 Minuet G Major & g minor BWV 114 & BWV 115
17. Cucina Acoustica – 방황(Take 2)
18. Title (Instrum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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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진성의 영화음악 – #1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 1939)

이즘은 개설 20주년을 맞아 특집 가운데 하나로 < 김진성의 영화음악(Historical Cinema Music) >을 연재합니다. 영화 역사를 수놓은 작품들 중에서 영화 자체는 물론 특히 영화음악으로 역사와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30개의 작품을 골라 음악을 집중 분석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첫 편은 < 오즈의 마법사 >입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가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MGM 스튜디오 임원인 루이스 메이어(Louis Mayer)는 그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엘.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소설<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에 대한 판권을 사들였다. 노엘 랭리, 플로렌스 라이어슨(Noel Langley, Florence Ryerson)과 에드가 앨런 울프(Edgar Allan Woolf)가 각본을 쓰고, 베테랑 감독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이 연출을 맡았다.

이제 전설이 된 출연배우에는 도로시(Dorothy) 역에 주디 갈란드(Judy Garland)를 비롯해, 마블 교수 마블/오즈의 마법사 역에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허수아비 역에 레이 볼거(Ray Bolger), 양철 나무꾼(Hickory/Tin Man) 역에 잭 헤일리(Jack Haley), 겁쟁이 사자(Zeke/Cowardly Lion) 역에 버트 라(Bert Lahr),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Glinda) 역에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서쪽의 사악한 마녀 알미라 걸치 역에 마가렛 해밀턴(Margaret Hamilton)이 캐스팅되었다.

배역을 정한 영화는 그런데 원작 소설에서 바움이 실제 장소로 구상한 오즈를 꿈의 풍경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상호 거리감이 있었다. 각색된 꿈의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토네이도를 타고 캔자스 집에서 놀라운 오즈 왕국으로 이송된 어린 소녀와 강아지의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모험극으로 그려진다. 시골의 현실에서 오즈라는 판타지의 세계로 장소를 옮긴 소녀 도로시는 북부의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을 받아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충견 토토와 함께 에메랄드 도시에 사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 집으로 되돌아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두뇌를 찾는 허수아비, 마음을 찾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찾는 비겁한 사자를 만나 친구가 된다.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가 도로시의 소원성취를 방해하지만, 도로시와 친구들은 뜨거운 우정과 눈부신 협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간다. 절박한 공존의 필요성 속에서 믿음과 진심으로 각자의 콤플렉스를 극복해내는 주인공들. 여러 모험을 겪은 끝에 마침내 도로시는 신고 있던 루비 구두를 이용해 가족이 있는 캔자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개봉당시보다 이후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최다 상영과 최다관객동원이라는 기념비적 기록을 세웠고, 영화 예술의 걸작으로 칭송받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대중의 반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는 무엇보다 최우수 음악(Best Music)상 2개 부문 트로피를 모두 석권했다는데 의미가 깊다. “스코어(Original Score)”와 “원곡/주제가(Original Song)”, 두 부분을 공히 수상함으로써 명실공이 뮤지컬영화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특히 ‘Over the rainbow’의 주제가상 수상은 이 영화에 상징적 가치를 더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 길이 빛날 시대의 명화가 될 신호탄임을 확증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뮤지컬이 될 것이라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많은 노래를 작곡하기 위해 작곡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과 작사가 입 하부르크(Yip Harburg)로 구성된 신뢰할 수 있는 팀이 고용되었다. 작곡가 허버트 스토다트(Herbert Stothart)는 자신이 쓴 스코어의 패턴 내에서 노래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배경에 맞춰 다양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f)의 연주곡을 단편적으로 사용해 극의 장면전개를 보강하는 한편, 작곡가 스토다트는 유명한 고전음악을 발췌해 넣기도 하고, 알려진 대중음악도 사용했다.

슈만(Schumann)의 ‘The Happy Farmer'(행복한 농부)에서 발췌한 부분을 영화의 초반 몇몇 장면에 사용했는데, 도로시와 토토가 걸치 여사를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오프닝 장면과 토토가 그녀에게서 탈출 할 때, 그리고 집이 토네이도를 타고 날아갈 때 삽입되었고, 토토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했을 때는 멘델스존(Mendelssohn)의 ‘Opus 16, #2’에서 발췌한 곡의 일부가 들어갔다. 또한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비겁한 사자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하려 할 때는 무소르그스키(Mussorgsky)의 ‘Night on bald mountain'(민둥산의 밤)에서 발췌한 주요 악절을 지시악곡에 결합해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Waltz of flowers'(꽃의 왈츠)가 도로시,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비겁한 사자 토토가 양귀비 밭에서 잠들 때 사용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의인화 된 사과나무를 발견할 때 ‘In the shade of the old apple tree'(오래된 사과나무의 그늘에서), 마법사가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상을 수여할 때 학생찬가로 유명한 ‘Gaudeamus Igitur'(가우데아무스 이기투어), 캔자스에 있는 도로시의 집에서 폐막하는 장면의 일부에 ‘즐거운 나의 집’으로 매우 친숙한 ‘Home! Sweet Home!’이 기성고전가요로 차용되었다.

알다시피 뮤지컬로 제작된 영화는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 주제에 얽힌 노래가 풍부하다. 북방의 선한 마녀로서 천상의 특성으로 그녀의 페르소나를 강조하는 글린다(Glinda)의 테마를 위시해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Gulch)의 테마, 장난꾸러기 강아지 ‘토토의 테마’, ‘마블 교수(Professor Marvel)의 테마’, 그리고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등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각자에게 특징 있는 주제적 악상을 주고, 그 주제곡들을 변주해 영화 전반에 골고루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인테마 ‘Over The Rainbow‘는 갈란드(Garland)가 1막에서 부른 노래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영화의 스코어 역사상 가장 숭고한 가사와 멜로디의 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도로시의 테마 역할을 하고, 작곡가 스토다트는 “꿈은 실현된다.”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오케스트라로 반주된다.

이 주제곡은 영화의 개막을 알리는 ‘메인타이틀'(Main Title)에서도 연달아 이어지는 여러 테마들과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의 가창과 더불어 관객들은 목가적인 것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듣고, 영화 내러티브의 정서적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 도로시 역의 갈란드가 하늘을 향해 노래할 때 그녀의 뛰어난 보컬은 완벽한 영화의 순간을 만든다.

「무지개 너머 높은 곳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한 번 들었던 땅이 있습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은 파랗고
감히 꾸는 꿈들이
정말로 이루어집니다.

언젠가 별을 향해 소원을 빌 겁니다.
그리고 저 너머 구름에서 깰 거예요.
걱정이 레몬 방울처럼 녹아버리고
굴뚝 꼭대기 저 위에
당신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죠.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가 날고,
새들이 무지개 너머로 날아갑니다.
왜 그때, 오, 나는 날아가지 못하는 걸까요?
행복한 작은 파랑새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오, 왜 난 못하는 거죠?」
 -“Over the rainbow”노랫말 중-

입 하부르크(Yip Harburg)의 가사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의 작곡이 탄생시킨 주제가 ‘Over the Rainbow’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까지 대중들의 기억에 각인되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영화에서 주제가가 주는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영화가 전하고자하는 함의를 오롯이 내포한 이 노래는 ‘AFI(American Film Institute)’의 100년… 100곡과 미국 음반 산업 협회의 “세기의 365곡”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3월, 주디 갈란드가 부른 ‘Over the Rainbow’는 “문화적,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음악으로 선정돼 국회도서관의 “내셔널 레코딩 레지스트리(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다.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노래 곡명 –
1.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도로시 게일(Dorothy Gale)
2. ‘Come Out…'(나와…) – 빌리 버크(Billie Burke), 길린다(Glinda)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3. ‘It Really Was No Miracle'(정말 기적이 아니었어)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빌리 블레처(Billy Bletcher) 그리고 먼치킨스(the Munchkins)
4. ‘We Thank You Very Sweetly'(매우 감사합니다) – 프랭크 쿡시(Frank Cucksey)와 요셉 코지엘(Joseph Koziel)
5. ‘Ding-Dong! The Witch Is Dead'(딩-동! 마녀는 죽었다) –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6. ‘As Mayor of the Munchkin City'(먼치킨 시의 시장으로서)
7. ‘As Coroner, I Must Aver'(검시관으로서 나는 주장해야한다)
8. ‘Ding-Dong! The Witch Is Dead'(Reprise) – 먼치킨스(The Munchkins)
9. ‘The Lullaby League'(자장가 리그)
10. ‘The Lollipop Guild'(롤리팝 길드)
11. ‘We Welcome You to Munchkinland'(먼치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먼치킨스(The Munchkins)
12. ‘Follow the Yellow Brick Road/You’re Off to See the Wizard'(노란 벽돌 길을 따라서/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13. ‘If I Only Had a Brain'(내가 뇌가 있다면) – 허수아비 레이 볼거(Ray Bolger)와 도로시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14. ‘We’re Off to See the Wizard'(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 주디 갈란드와 레이 볼거
15. ‘If I Only Had a Heart'(내게 심장만 있다면) – 양철 나무꾼(the Tin Man) 잭 헤일리(Jack Haley)
16. ‘We’re Off to See the Wizard'(Reprise 1) –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원래 양철 나무꾼 버디 엡슨(Buddy Ebsen)
17. ‘If I Only Had the Nerve'(내가 신경만 가졌다면) – 겁쟁이 사자 버트 라(Bert Lahr), 양철 나무꾼 잭 헤일리, 허수아비 레이 볼거, 그리고 주디 갈란드
18. ‘We’re Off to See the Wizard'(Reprise 2) –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버디 엡슨, 버트 라.
19. ‘Optimistic Voices'(낙관적 음성) – 엠지엠 스튜디오 합창단(MGM Studio Chorus)
20. ‘The Merry Old Land of Oz'(오즈의 즐거운 옛 땅) – 마차 기사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잭 헤일리, 버트 라, 그리고 에메랄드 도시 주민들(the Emerald City townspeople
)
21. ‘If I Were King of the Forest'(내가 숲의 왕이었다면) – 버트 라,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잭 헤일리
22. ‘The Jitterbug'(지르박)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삭제된 노래지만, 일부 확장판 편집 CD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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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Tenet)

평가: 4.5/5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opher Nolan)은 자신의 영화에 현실을 배경으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복합적으로 설계해내는데 전문가이다. 학문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해 관객들이 복잡다단한 스토리의 얼개를 풀어내게 만든다. 가히 군계일학,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선두주자다. 지난 2000년 그 시발점이 된 작품 <메멘토>(Memento)는 본질적으로 영화를 역순으로 실행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삶을 탐구했다. 이후 <프리스티지>(The Prestige)를 포함해 <인셉션>(Inception), <인터스텔라>(Interstellar)와 같은 영화에서 연달아 보여준 독보적 시각은 대부분은 꿈속에서 더 깊은 꿈으로, 그리고 블랙홀을 통한 행성 간 여행 중 발생하는 시간적 특성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주제에 대한 변형을 다루었다.

그의 최근작 <덩케르크>(Dunkirk)마저도 2차 세계대전 중 1940년 프랑스의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40만 명의 연합군을 탈출시키는 사상 최대의 작전을 세 가지 관점에서 보여주면서 시간적 전개의 순서를 모두 흩어 재편성했다. 모두 다른 시간적 관점에서 사건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테넷>(Tenet)에 이르러 놀란 감독은 이전의 그 어떤 작품보다 시간과 현실이라는 이중적 개념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영화 <테넷>은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턴(John David Washington)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발진시킨다.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감행한 후 “테넷”이라는 극비 스파이 조직에 채용된 익명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그는 “007 제임스 본드”와도 같은 비밀 첩보요원으로 활약한다. 전직 CIA요원이었던 그는 “테넷”이 근본적으로 제3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극비조직의 리더들은 총알, 차량, 심지어 사람과 같은 물리적 물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도 또는 반전'(Inversion)라는 기술의 존재를 발견한 상황.

이 기술은 러시아 무기상이자 과두군주 안드레이 사토르(Andrei Sator)의 손에 넘어간 상태다. 사토르 역은 영화감독이자 배우로 유명한 케네스 브레너(Kenneth Branagh)가 연기했다. 극비첩보조직 테넷은 사트로가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밀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극의 주역은 “테넷”의 해결사인 닐(로버트 패틴슨 분)과 짝을 이뤄 사토르의 계획을 무산시킬 작전을 펼친다.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가진 갑부권력자에게서 지구를 구할 구원자로서 둘의 협공은 영화에서 스펙터클한 장관과 함께 하는 관건.

Tenet Actor Calls Christopher Nolan 'Mad Genius' in Method | Den of Geek

한편 사토르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 분)과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주인공을 둘러싼 극의 구성은 다소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긴장감 넘치는 강력한 액션과 팽팽한 극적 긴박감을 견제할 장치로 감정에 호소하는 인간적 관계에 또 다른 방점을 찍으면서 양동작전을 펼친 셈. 놀란이 디자인한 이 모든 극적 구성은 매우 매력적이고 잠재적으로 흥미진진한 상상력을 불러낸다.

거기엔 실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장면전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술적 관점에서 “테넷”은 그야말로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압도적이다. 프로덕션 디자인, 영화 촬영 및 편집 모두 최고 수준의 경지를 자랑한다. 전투 액션 시퀀스는 물론 스턴트 작업이 투입된 대규모의 시각충격은 대단하고, 특수효과는 놀랍다. 특히 전투병력, 헬리콥터, 차량, 폭발물 및 총알로 점철된 소대 전체가 시간에 따라 앞뒤로 동시에 달리는 최종 시퀀스에서 극에 달한다.

문제는 그런데, 이 모든 경이로움이 거의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급한 놀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복잡다단한 각본을 제공해 관객들의 뇌리를 온통 휘젓는다.

순차와 역순, 역전과 역전되지 않은 장면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전방으로 후방으로 그리고 다시 비순차적으로 보는 이의 기억을 밀었다 당겼다 뒤집었다 엎었다 갈팡질팡 중심을 못 잡게 유도한다. ‘테넷’ 소속 병사 편대가 총을 쏘고, 기갑차를 운전하고, 폭발물을 터뜨리는 장면의 연속적 전개, 소련의 ‘폐쇄된 폐허도시’에서의 전투에서 놀란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특히 압권이다. 기술과 과학에 대한 초 집착과 밀도를 헤아릴 수 없는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놀란 감독의 장인정신은 뭐라 단언해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만 같다.

How Ludwig Goransson Became Directors' Secret Musical Weapon - The New York  Times

놀란이 빚어낸 이 모든 혼란의 마지막 요소는 결국 영화의 사운드 믹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난다. 그간 압도적인 사운드 믹스를 영화에서 들려줬던 놀란은 이번 <테넷>에서 그 강도를 더욱 증폭시켰다. 효과음향과 음악이 뒤섞인 소리의 융합은 대사와 배경을 아우른 다양한 소리의 조합이자 영상에 맞게 재단된 사운드디자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자음이 회전하듯 순회하며 관객의 후두부를 강타하게 설계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각과 달리 주위는 산만해지기 마련. 스웨덴 출신 제작자 겸 작곡가 루드비히 괴란손(Ludwig Göransson)의 오리지널스코어는 시각적 절망에 덧붙여 청각적으로 못지않은 충격을 가한다. 엄청난 수의 데시벨에 합쳐진 난폭함과 함께 쿵쾅거리며 위압하는 소리의 융단폭격이라 할 만하다.

괴란손은 놀란과 정기적으로 협업해온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의 최신작 <듄>(Dune)에 전념하게 되면서, 대신에 <테넷>에 합류했다. 마블 코믹스 시리즈 블랙 팬서(Black Panther)로 오스카상을 수상하고, 별칭 차일디시 갬비노(Childish Gambino) 도널그 글로버와 같은 아티스트와의 공작(Collaboration)을 통해 영화와 대중음악계의 주요 연주자로 터를 잡은 괴란손은 현재 이 마당에서 가장 핫한 유망주라는 점. 짐머의 대를 잇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재능의 소유자다.

놀란은 자신의 영화에 매우 구체적인 음악적 요구를 하는 걸로 유명한 제작자로서 짐머가 가장 확실한 단짝이라고 할 수 있지만, <테넷>은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와 <다크 나이트> 삼부작과 연계해 음악적인 면에서 그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시야를 조금 더 넓혀 보면 요한 요한손(Jóhann Jóhannsson)의 두 작품 <컨택트>(Arrival)와 <시카리오>(Sicario), 힐두르 구르나도티르(Hildur Guðnadóttir)의 <조커>(Joker)와 같은 일련의 명작들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

선율 즉 멜로디가 가벼운 한편 분위기가 무겁고, 주제가 되는 악상 즉 테마가 있고 이를 변주해내는 방식보다는 리듬에 집중하는 편이며, 소리의 크기 즉 볼륨과 저음 측면에서 수치를 강화하는 식이다. 주로 현악기와 금관악기, 타악기를 편성한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악 즉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이종 교배한 하이브리드 악보를 써냈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제작 후반에 키보드로 작업한 대량의 음향 조작이 최종적으로 가미되어 나온 결과물은 시각과 함께 소리의 충격으로 멍하게 마취되게 만드는 매력 포인트.

Listen to Ludwig Göransson's Full Score for Tenet

더욱 흥미로운 것은 괴란손이 영화의 전반적인 시간 개념과 조작을 어떻게 파악하고 음악적으로 접근했느냐 일 것이다. 이는 악보에서 음악이 역방향으로 재생되게 물리적 특성을 가하는 연주로 나타나고, 다방면에서 실험적이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때론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주되다가 반전된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음악이 잘못된 방식으로 녹음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의 이야기 전개방식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한편 처음부터 음을 거꾸로 연주하게 한 것처럼 들리는 것은 나중에 반대로 되돌릴 때 올바른 순서로 연주한 것으로 들리면서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음질로 다가온다. 음의 동적인 방향을 왜곡하기도 하고,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괴란손은 때로 이 두 가지 유형의 조작된 음표를 서로 대위적으로 활용했다. 앞뒤로, 뒤에서 앞으로, 번갈아 교차해 쓰는 이러한 방식은 특히 ‘Rainy Night in Tallinn’, ‘Trucks in Place’, ‘The Algorithm’, ‘Inversion’과 같은 지시 악곡에서 두드러진다.

과거와 미래, 두 개의 서로 다르게 병존하는 주인공 주도자가 과거와 미래에서 자신과 싸울 때, 연속된 장면에 사용된 음악으로 인해 관객은 서로 다른 듯 같은 두 개의 시공간을 순간 이동하는 절묘한 경험을 음악과 음향의 총화인 괴란손의 사운드스코어를 통해 공유하게 된다.

괴란손은 또한 영화의 중요한 열쇠인 고대의 회문 사토르 광장(Sator Square)에 근거해 음악적 회문을 만들었다. ‘사토르'(sator), ‘아레포'(arepo), ‘테넷'(Tenet), 그리고 ‘오페라'(opera)와 ‘로타스'(rotas)가 바로 그것. 이 다섯 개의 라틴어는 사각형 대칭모양 내에서 2차원 회문으로 배열되는데, 이 다섯 단어는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토르’는 캐네스 브레너의 캐릭터, ‘아레포’는 두 개의 고야 그림을 모사한 스페인 위조 화가의 이름, ‘테넷’은 영화의 핵심 조직, 오페라는 오프닝 장면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로타스’는 영화의 주요 액션 시퀀스 중 두 가지가 발생하는 저장 장치를 운영하는 노르웨이 회사의 이름이다.

이러한 영화의 극적 구성에 기반, 괴란손은 본질적으로 원형이고 대칭적인 음악을 매우 섬세하게 직조했다. 미세한 음악의 세포들은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고 끝나고, 크레셴도(crescendo)의 양 정점에서 같은 음표를 사용하여 같은 방식으로 상승 및 하강한 다음 반복하여 최면 리듬 펄스를 만들어낸다. 그의 악보에 대한 사고 과정은 이처럼 매혹적이고 탁월하고 지능적으로 작용하지만, 영화의 문맥에서 이 모든 것이 사운드 믹스로 인해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전자악기로 다양하게 조작해낸 음악은 명백히 들린다. 괴란손이 악기로 괴이한 소리를 만들어낸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소리의 섬세함과 복잡성은 겹겹이 세워진 사운드의 벽에서 완전히 길을 잃는다. 폭발, 총알, 헬리콥터 블레이드, 트럭 엔진 등, 놀란의 시나리오 내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볼륨과 주변 배경소음이 화면을 지배하는 가운데 괴란손의 음악은 타악기의 강력한 리듬과 맥동하는 전자음이 영상을 반주한다. 실로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사운드트랙에 실린 괴란손의 음악은 영화의 장면전개와 함께 기억의 파편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2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 준해 1시간 반 동안 음악과 음향의 소리매김이 공존한다. 생생하게 혼합된 전자음, 멜로디를 희생하며 끊임없이 강타하는 타악기 리듬이 음악적 추상화를 그리고, 때로는 위압적인 소리의 크기로 다가온다.

음악의 대부분은 액션에 지배적으로 조응한다. 오페라 공연장에서 전개되는 도입부 장면을 반주하는 지시곡인 ‘Rainy Night in Tallinn’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가 오케스트라의 악기조율 소리로 시작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뒤틀리고 반전되어 자체적으로 붕괴되기 전에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다.

괴란손의 액션음악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무겁고 공격적이며, 엄청난 사운드의 폭발에 의존하고, 강력한 타악기 리듬, 순환하는 전자음 텍스처, 현악기와 금관악기, 강렬하게 반복하는 전기기타 연주 및 키보드 사운드를 겹겹이 결합한 일종의 사운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나 <덩케르크>(Dunkirk)와 같은 스코어와 비견해도 좋을 만큼 흥미진진한 박진감을 동일하게 전해준다.

이 악상은 이어서 장면을 지시하는 곡에서 계속된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일어나는 장면을 강조하는 ‘Freeport’와 ‘Inversion’은 공히 긴장과 기대감을 준다. 독특하게 윙윙거리는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산만하게 반복되는 전자음의 융화와 육중한 베이스음이 주도하는 한편 드라마틱한 현의 울림이 주제악상을 되새긴다. ‘747’의 전반부 대부분은 영화 <인셉션>(Inception)의 ‘Dream is Collapsing’을 명확하게 리모델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두운 호른의 반주가 그러한데, 후반부는 매우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Foils’는 이중 선체 쌍동선이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는 바다 장면을 강조하는 음악이다. 율동적으로 반복하는 전자음과 함께 건반의 극적인 선율이 전개되는 곡의 구성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의 영화음악을 연상케 하는 대목. 에스토니아의 도로에서 쫓고 쫓기는 서사적 차량 추격전을 강조하는 ‘Trucks in Place’는 긴박하게 반복하는 리듬과 신디사이저에 의해 생성된 전자음, 보코더에 의해 최면 처리된 가창, 전기기타에 의한 굉음이 순차적으로 혼융돼 매우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장면연출을 뒤받친다.

모든 액션장면의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대규모 사운드스코어링은 피아노와 스트링 협연이 극의 감성적인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Windmills’, 윙윙거리는 전자음으로 강약을 반복해 들려주는 ‘Meeting Neil’, ‘Priya’과 ‘Betrayal’과 같이 더 조용한 자기성찰의 순간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 느리고 방황하듯 떠도는 화음과 더 미묘한 리듬 톤을 사용한 이상의 네 곡은 조용한 불확실성의 분위기를 창출한다. 톤의 변화와 약간의 맥동하는 리듬이 혼재할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른 상황에서 가차 없이 잠시 중단된다. 아마도 가장 좋은 예는 ‘뭄바이에서 아말피까지’일 것이다. 등장인물 캣이 처한 상황과 그녀의 내면을 반영하듯 혼란스럽고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아들과의 격리, 사토르와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불행, 그리고 주인공 주도자가 제공하는 평화와 자유의 잠재력이 괴란손이 쓴 매우 차분하고 뉴 에이지(New Age)적인 사운드로 표출된다.

영화를 위한 악보에서 가장 불안한 악상은 케네스 브레너의 사토르 캐릭터와 관련해 나타난다. ‘Sator’와 ‘Red Room Blue Room’, 그리고 ‘747’과 같은 지시적 악곡에서 괴란손은 놀란 감독이 마이크에 대고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소리 샘플을 가져와 쌕쌕거리는 목소리로 조작해냈다. 이는 개념적으로 한스 짐머가 놀란의 할아버지 회중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샘플링해 <덩케르크>의 스코어에 활용한 것과 유사하다.

숨 쉬는 소리는 브레너의 캐릭터가 어떤 형태로든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나타나는데, 거꾸로 된 사람들은 정상적인 공기를 폐로 흡수 할 수 없고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해야한다는 영화의 개념과 직접 연관된다. 사토르의 성격과 관련하여 사용하면 그가 더 무섭고 더 위협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요점이었을 것이고, 그 쓰임은 절묘하게 작동한다. 스코어의 나머지는 대부분 낮은 음조(key)로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조성하고, 비명을 지르는 전자 사운드가 산재해 있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영화의 피날레와 스코어는 오래된 방사성 광산 위의 사용되지 않은 구 소련의 ‘폐쇄 된 도시’에서 진행된다. 사토르는 전도(Inversion)를 가능케 할 주요장치를 배치하고 여차하면 폭발시켜 세계를 파괴할 수 있게 했다. 주도자, 닐과 함께 수백 명의 군 병력이 역전 및 비 역전을 통해 지상공격을 감행하고 사토르의 계획을 방해한다.

극의 마무리를 구성하는 네 가지 악상은 ‘Retrieving the Case’, 더 고전적인 느낌의 ‘The Algorithm’, ‘Posterity’, ‘The Protagonist’이며, 대부분 그 이전에 기세 등등 거센 음악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음악은 한스 짐머의 <인셉션>에 사용된 사운드트랙 ‘Time’의 서사적인 품질을 원하지만 그 경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종영인물자막(End Credit)과 함께 대미를 장식한 사운드트랙은 트레비스 스콧(Travis Scott)으로 유명한 힙합가수 자크 웹스터(Jacques Webster), 완다걸(Ebony Oshunrinde)과 함께 괴란손이 공동으로 작곡하고 웹스터가 노래한 ‘The Plan’이다. ‘Rainy Night in Tallinn’의 강렬한 천둥 같은 베이스라인과 ‘Trucks in Place’에서 보코더로 처리된 보컬 악상을 포함해 괴란손이 쓴 악보의 샘플을 사용해 뛰어난 효과를 낸다. 영화의 주제를 담은 테마음악에 근거해 제작된 노래는 별도가 아닌 필수요소. 스콧의 보컬이 내는 강렬한 분위기는 괴란손의 몽환적인 사운드질감과 조화를 이루며 매력을 품어낸다.

Tenet' Review: Christopher Nolan's Time-Bending Take on James Bond - The  New York Times

<테넷>의 음악은 테마와 멜로디보다 소리의 질감, 리듬, 볼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셉션>, <덩케르크>, <컨택트>와 공통점이 많다. 윙윙거리며 선회하는 드론 사운드와 전자악기에 의해 조작 및 왜곡되고 샘플링된 사운드를 하이브리드적 관점에서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이종 교배한 사운드스코어이다. 영화의 텍스트 내에서 반응정도는 관객들이 느끼는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음악만 독립적으로 들을수록 상당히 다르고, 꽤 흥미롭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전자악기 조작, 선율 반전 및 회문에 의거한 작곡은 영화가 탐구하는 개념과 직접 관련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최소한 괴란손의 악보를 사용하면 뮤지컬 커튼 뒤를 들여다보고 그 뒤에 숨은 뉘앙스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 사운드트랙에 실린 곡 목록
    01.Rainy Night in Tallinn(탈린의 비오는 밤)(8:01)
    02.Windmills(풍차)(5:16)
    03.Meeting Neil(닐과의 만남)(2:16)
    04.Priya(프리야)(3:24)
    05.Betrayal(배신)(3:56)
    06.Freeport(프리포트)(3:39)
    07.747(7:05)
    08.From Mumbai to Amalfi(뭄바이에서 아말피까지)(4:26)
    09.Foil(포일/뒤엎다, 저지하다)(3:11)
    10.Sator(사토르)(2:51)
    11.Trucks in Place(제자리에 있는 트럭)(5:32)
    12.Red Room, Blue Room(빨간 방, 파란 방)(3:29)
    13.Inversion(도치, 반전, 역위)(3:32)
    14.Retrieving the Case(가방을 되찾다)(3:20)
    15.The Algorithm(알고리즘)(5:58)
    16.Posterity(후세)(12:42)
    17.The Protagonist(주인공, 주역, 주도자)(4:48)
    18.The Plan(계획)(3:05)

글 : 김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