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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3. IZM 필자들이 뽑은 ‘역주행 되기를 바라는 곡’

‘역주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작년 5월 진행했던 차트 역주행 특집이 정확하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IZM 필진들의 사심이 가득 담긴 ‘제발 한 번쯤 역주행했으면 하는 곡’을 소개한다. 숨겨진 명곡, 아쉬운 매치업, 앞서간 작법, 혹은 발굴의 의미까지… 필자마다 천차만별인 기준 만큼이나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리스트가 탄생했다. 아직은 ‘희망 명단’에 불과하더라도, 언젠가 도약할 그날을 위해 같이 회고하는 것은 물론이요, 독자 역시 자신만의 선정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마이걸 ‘한 발짝 두 발짝’
설렘의 감정을 스트링 선율로 물들인 멜로디와 완성도 높은 멤버들의 하모니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속사 선배 B1A4 진영이 선물해준 이 곡은 발매 당시 큰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지만 점차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명 ‘갓 발짝 킹 발짝’의 칭호를 획득했다. 진가는 노랫말에 있다. 풋풋한듯 비장하게 건넨 ‘거리두기 완화 고백법’으로 가사의 미학과 시의성마저 겸비한 ‘한 발짝 두 발짝’은 지금 당장 컴백한다 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 2020년 전국에 물보라 주의보가 발령되기 4년 전부터 이미 오마이걸의 핑크빛 바다(Pink Ocean)는 일렁이고 있었다.

블로섬즈(Blossoms) ‘There’s a reason why (I never returned your calls)’
따스한 햇볕처럼 쏟아지는 신시사이저에 벚꽃 필 무렵의 1980년대가 아른거린다. 떠나간 연인을 향한 속앓이와 미련 섞인 투정은 사랑에 서툴렀던 모두의 지난날을 끄집어내 복잡한 감정을 안기다가도, 이 마성의 리프 앞에 곧장 추억으로 미화된다. 데뷔부터 노골적으로 과거 시제를 겨냥해온 블로섬즈의 집념이 끝내 열매를 맺은 것.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멜로디와 선배 그룹 스웨이드를 연상케 하는 톰 오그던의 고풍스러운 음색은 청취를 넘어 회상의 영역까지 안내한다. 향수, 계절성, 공감대, 그리고 뉴트로. 역주행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곡이다.

이박사 ‘몽키 매직-우주몽키(Feat. 윈디시티)’
어느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트로트라고 답하는 젊은이는 흔치 않다. 급격한 사회 변혁을 거치며 젊은 세대와 윗세대 사이에 취향의 장벽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트로트계의 이단아 이박사에게 세대 간의 담은 대수롭지 않다. 그는 특유의 독창적인 매력을 소통의 열쇠로 삼아 록 페스티벌의 관중을 당당하게 호령한다. 빠른 템포의 고속도로 사운드로 일관했던 이박사의 ‘몽키매직’을 사이키델릭한 편곡으로 풀어낸 윈디시티의 역량이 곡에 매력을 더한다. 트로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금 이박사와 윈디시티의 ‘몽키 매직-우주몽키’는 트로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할 수 있는 곡이다.

테빈 켐벨(Tevin Campbell) ‘Can we talk’
힙합과 알앤비가 손을 잡은 이래 서로의 장점을 한 음악에 녹여내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둘 중 어느 장르인지 구분이 모호한 곡도 많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와 탄탄한 실력의 보컬, 낭만적인 가사의 1990년대 알앤비가 그리운 이들에게 ‘Can we talk’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에 이미 히트했던 이 곡은 비트에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다면 분위기나 콘셉트에 경도된 음악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노래다. 지금의 경향이 좋아도 가끔은 알앤비는 알앤비대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기본에 충실한 노래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상은 ‘더딘 하루’
‘삶은 여행’, ‘언젠가는’ 등 따뜻한 온도의 곡과 동양적 색채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장르를 배합하는 < 공무도하가 > 스타일. 이 양단의 끝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뮤지션 이상은의 핵심이자 빼어난 강점이다. 인기의 정점을 누리던 중 돌연 활동 중단 및 유학을 선언한 뒤 1991년 발매한 동명 음반의 타이틀 ‘더딘 하루’는 그런 그의 과도기를 담고 있다. 잔잔하게 시작해 수직적 울부짖음으로 향하는 구성은 ‘담다디’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그 시절, 대중의 기대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만큼 폭발적이고 이만큼 반전의 충격을 안기는 곡은 잘 없다. 보시라, 들어 보시라. 어떤 식으로든 모창하거나 밈(meme)화 하게 될 것이니…

티건 앤 세라(Tegan and sara) ‘Make you mine this season’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가 시작부터 귓가를 사로잡는다. 뒤이어 울려 퍼지는 한마디, ‘Make you mine’.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이자 언젠가 아니, 언제고 듣고 싶은 마음 설레는 문장이 짧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간지럽고 좋다. 곡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의 수록곡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유쾌함과 달콤함을 응축해 영화의 맛도 살리고 노래의 맛도 살렸다. 그러나 진가는 영상을 통해 곡을 만났을 때 드러난다. 국내에는 잘 없는 밝은 퀴어 로맨스를 그린 영화에 톡 떨어지는 곡이 참 중독적이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마성의 노래.

이엑스아이디(EXID) ‘데려다줄래’
이엑스아이디에게 날개를 달아 준 신사동호랭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팀의 래퍼 엘이가 작사, 작곡하여 마련한 무대이다. ‘위아래’ 이후 역주행 신화를 잇기 위해 도발적인 모습을 앞세운 ‘아예’, ‘덜덜덜’ 등이 자기복제를 벗어나지 못했던 데에 비해 안정된 속도감이 이들의 실력을 조명한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에 속해 이미 검증된 바 있는 랩과 보컬트레이너로서의 경력이 있는 솔지의 목소리, 각자의 자리를 알고 움직이는 멤버들의 역량은 관능적인 춤이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짙은 색깔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은 그들을 ‘한 때 돌풍을 일으킨 섹시 심볼’로 보내주기 힘든 이유이다.

88라이징(88rising) ‘Midsummer madness’
아시아계 아티스트만을 영입하며 확고한 방향성을 정립한 88라이징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조지(Joji) 등 이미 검증된 이들을 등에 업고 꾸준히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레이블은 2018년 컴필레이션 앨범 < Head In The Cloud >를 발매하며 다음 단계를 도모했다. 곡의 도입부터 ‘떼창’을 유도하며 여름의 더위를 식혀 줄 명확한 의도를 가진 ‘Midsummer madness’의 중독성은 단연 돋보인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반복적인 구성 탓에 금세 감흥이 줄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쯤 남아 있는 아련한 오뉴월의 저녁을 떠오르게 만든다. 아카데미와 그래미로 영역을 넓히는 동양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할 집단의 한여름 열기는 아직 뜨겁다.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Learn to fly’
움츠러든 시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로 멀어지기를 명했던 세계가 집합하기 시작했고 이에 굳어있던 심장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이제 앞을 보고 뛸 일만 남았다. 너바나의 음울했던 그림자를 벗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누구보다 밝은 고유 형체를 갖게 된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는 그런 점에서 현세대에 필요한 최고의 음악적 격려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19위, 모던록 차트 1위 등 밴드에게 최초로 대중적 영예를 안긴 곡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노와 슬픈 감정 하나 없이 경쾌한 연주와 보컬로 전달하는 직선적 쾌감이 물들이는 희망은 분명 시제를 관통할 보편성을 지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 그들이 전파한 ‘힘’이 다시금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라붐 ‘아로아로’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으로 보여준 기적은 팬데믹 시대에 지친 대중을 위로했다. 우연히 마주한 희망에 모두는 자연스레 다음 페이지를 이어갈 타자를 기대했고 따스한 흐름 속 언급된 여러 후보 중 유력한 그룹은 단연코 라붐이었다. 데뷔 해였던 2014년부터 꾸준히 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력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있었다. 대표곡 ‘상상더하기’가 한차례 반등에 성공한 지금 그들의 세 번째 싱글이었던 ‘아로아로’는 라붐의 재각인을 도울 확실한 촉진제다.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 신스팝 장르의 경쾌한 편곡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후렴구의 ‘치키차’란 포인트 가사까지. 기분 좋게 갖춰진 중독성은 이미 역전 시나리오의 긍정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보이즈 라이크 걸즈(Boys Like Girls) ‘The great escape’
단번에 꽂히는 멜로디와 단순한 구성에 탄산음료 한 잔의 청량감이 담겨있다. 팝 펑크 특유의 경쾌함을 살린 ‘The great escape’는 국내에서 각종 게임 대회와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해 201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던져 버려, 어제는 잊고. 우리는 위대한 탈출을 감행할 거야!’라며 반항적으로 외치는 노랫말과 톡쏘는 절정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그들의 스트레스도 단숨에 해소해줄 만큼 여전히 강렬하고 통쾌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씁쓸한 말을 일삼던 시기에 브로콜리너마저는 방황하던 젊은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단출하고 편안한 기타 선율 위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읊조렸을 뿐이지만 흔하디 흔한 위로가 건넨 온기는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특히 후미에 등장한 계피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역주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추억 속 포크 음악이 주는 진솔한 감상을 잠시 음미하기조차 어려워진 오늘날, 각박한 현대사회를 다정하게 물들일 추억 속 책갈피를 펼쳐본다.

데프콘(Defconn) ‘길’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은 데프콘은 20세기에 첫 앨범 < Kapital G >를 발표할만큼 경력이 길다. 하드코어 랩 ‘독고다이’나 버벌진트와 함께한 ‘Sex drive pt.2’ 처럼 거친 초기작은 친근한 이미지로 희석되기 아쉽다. 거침과 부드러움을 배합한 2003년 작 정규 1집 < Lesson 4 The People >에서 ‘길’은 후자에 속했다. 초등학생 시절이 끝날무렵 접한 푸근한 멜로디와 쏙쏙 들리는 가사는 지오디의 동명의 히트곡과는 다른 매력이었고, ‘슈퍼스타’란 곡으로 잘 알려진 불독맨션의 이한철이 피처링을 맡아 밴드풍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삶의 기로에 놓인 무명 래퍼의 솔직담백한 곡이다.

팀발랜드(Timbaland) ‘Give it a go (feat: Veronica)’
팀발랜드는 2000년대 중후반 뮤지션과 프로듀서 등 다양한 직함을 내걸고 히트곡을 쏟아냈다. 휴 잭맨 주연의 영화 < 리얼 스틸 >에 수록된 ‘Give it a go’는 주인공 소년과 격투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흥겨움을 선사했다. 팀발랜드 특유의 전진하는 편곡에 배우 겸 가수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힘을 보탰다.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로 히트 공식도 성립하지만 비슷한 제목의 ‘Give it to me (Feat. Justin Timberlake, Nelly Furtado)’가 빌보드 1위까지 오른 것에 비해 싱글 커트 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가 나온 1979년작 < 챔프 >의 21세기 버전 같은 < 리얼 스틸 >의 사운드트랙엔 이 곡을 비롯해 푸 파이터스의 ‘Miss the misery’와 에미넴의 ”Till I collapse (Feat. Nate Dogg) 같은 강력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싸이 ‘비오니까’
우리의 ‘연예인’에서 모두의 ‘연예인’이 된 싸이는 댄스 가수다. ‘챔피언’, ‘연예인’, ‘Right now’, 그리고 ‘강남 스타일’까지 결정적인 대표곡들이 전부 신나는 춤곡인 탓에 바꿀 수 없는, 바꾸지 않을 선입견이 그에게 잡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선정적인, 성적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친구놈들아’, ‘아름다운 이별 2’, ‘예술이야’, 그리고 이 특집에 넣은 ‘비오니까’ 같은 작품을 더 자주 듣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광석 정도를 빼면 내가 노랫말을 유심히 보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비오니까/그러니까/그래서/그랬어요’. 운(韻)이 단순해서 좋다. 싸이를 발라드 가수로 만들자.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The middle’
약 10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록의 봄이 돌아오기를. 올리비아 로드리고, 머신 건 켈리, 태연, (여자)아이들 등 그 문법을 활용한 뮤지션이 활약하는 요즘 펑크(funk)와 디스코 이후 새 과거 유산을 찾듯 신복고 물결을 타고 고개를 내미는 록이 정말 반갑다. 걸걸한 기타 사운드로 가득한 나의 애청목록에 반해 국내 싱글 차트에서는 정제된 신시사이저만이 울리고 있어 쉬이 눈길이 가지 않아 이를 정화하고자 록 음악을 준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 있는 20세기 노래를 소개하기에는 역주행에 ‘역’자도 꺼내기 전에 실패할 것 같아 2001년 빌보드 HOT100 탑10에서 5위에 올라 딱 중간을 차지했던 팝 펑크의 정석 ‘The middle’을 추천하고 떠난다.

공원소녀 ‘Bazooka!’
좋은 음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빛을 본다는 운명론을 믿는 편이다. 공원소녀를 두고 ‘아직 발화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도약할 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일삼던 것 역시, 그들이 꾸준히 선보인 양질의 결과물에서 리스너의 확신을 도출했기 때문이었다. 현란한 멜로디와 모범적인 드롭 활용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계열의 K팝 사운드를 정립한 ‘밤의 공원’ 시리즈와 더불어 대중성까지 고루 버무린 웰메이드 트랙 ‘Bazooka!’를 그저 과거의 산물로 남겨두기에는 이제 아쉬움보다 죄책감이 앞설 정도다. 역주행 워너비의 영순위로 이 곡을 뽑은 이유는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그 누구에게 들려주더라도 단번에 사로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스카이 페레이라(Sky Ferreira) ‘Everything is embarrassing’
매체와 기기의 거듭된 발전으로 국가 간 장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이미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두아 리파와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이제는 마니아 감성의 찰리 XCX와 FKA 트위그스까지 국내에서 입지를 꽤나 얻은 상태다. 그렇기에 더더욱 짙은 스모키 화장과 공허한 삼백안의 뮤즈, 스카이 페레이라의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 비교적 주목은 덜하더라도 이들 못지않은 만능 플레이어기 때문. 대표곡 ‘Everything is embarrassing’을 보자. 자욱한 몽환경 속 덧없는 애가(哀歌)는 취향의 영역을 가혹하게 요구하지만, 기어코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진 매력을 지닌다. 게다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인 팝의 기본 질서를 탄탄하게 충족하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만약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새벽 시간의 퇴폐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앨범 < Night Time, My Time >까지도 필청을 권한다.

소나무 ‘넘나 좋은 것’
행사 공연 ‘직캠’ 하나로 메이저 반열에 올라선 이엑스아이디, 전국 곳곳의 군부대를 누비며 ‘젊은 장병들의 선택’을 받았던 브레이브걸스, 낙수 효과 덕분에 ‘좋은 음악’을 재조명 받을 수 있었던 라붐까지. 이들의 모든 역주행 공식을 따랐지만 걸그룹 소나무만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철 지난 속어 제목을 실패 이유로 들기엔 곡 구성과 멜로디가 결점을 완벽히 상쇄한다. 아카펠라로 출발해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을 비롯한 악기들이 펼치는 협연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감상을 이입하고, 끊임없는 변주의 끝엔 메인보컬 하이디의 환상적인 5단 고음이 펼쳐진다. 음원엔 이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전히 담기지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 늘 푸른 기운을 담은 라이브로 관객을 놀라게 할 2010년대 슈가맨.

탑독 ‘애니’
유독 남자 아이돌에겐 이 짜릿한 역행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 노래가 좋아도 팬덤 위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 널리 퍼지기 힘든 구조가 한몫한다. 13인조 보이그룹 탑독 역시 초기의 난감한 콘셉트가 꽤나 큰 진입장벽을 세워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 1주년이란 ‘기념일(Anniversary)’을 맞아 발표한 팬송만큼은 대중적으로 회자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1990년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래퍼 MC 해머와 바닐라 아이스를 모티브로 한 뉴 잭 스윙 장르의 댄스곡이라는 점부터 특색 있다. 세련된 기타 리프와 신나는 비트 사이에서 개성 넘치는 랩과 보컬이 쉴 틈 없이 호흡을 주고받고, 후렴구에선 LP를 들고 현란한 안무를 소화하며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청취를 막아서는 것은 멤버들을 다닥다닥 정렬해놓은 앨범 커버. 우연히 재소환 당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처럼 사진 교체가 시급하다.

씨아이엑스 (CIX) ‘Cinema’
워너원으로 활동했던 배진영 그룹이라는 별명보단 데뷔 무대가 기억에 남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야외무대에 선 신인 아이돌은 풋풋하고 열정적이었다. 소형 기획사지만 송 캠프 시스템을 도입하여 음악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주목했다. 데뷔 초의 무거운 콘셉트와 음악을 씻어내고 산뜻하게 다가온 ‘Cinema’는 팀의 잠재력을 확인한 결정적 순간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지만 선명하진 않다. 사이다처럼 톡 터지는 한 구절 대신 일정한 리듬과 편안한 멜로디로 상투적인 청량 K팝과 거리를 둔다. ‘Ready and action!’이라는 사인 뒤, 맥동하는 기타와 함께 시작하는 도입부와 코러스에서 쭉 뻗어 나가는 승훈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내 필름 위에 씨아이엑스를 선명히 각인한 테이크다.

코난 그레이 (Conan Gray) ‘Generation why’
‘Maniac’의 전세계적인 히트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코난 그레이의 매력은 순수한 미성으로 부르는 냉소적인 가사다. 아일랜드-일본 혼혈로서 시달린 선입견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12번 이사한 과거가 공허하고 우울한 음악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Z세대 팝스타로 떠오르기 이전에 발매한 ‘Generation why’는 더욱 몽환적이고 내밀하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소년은 ‘우린 무기력하고 이기적이고 유별난 데다가 모두 죽고 싶어 하는 밀레니엄 세대니까’라며 비꼬고 수백 번은 들었을 ‘너희 세대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라는 잔소리를 떨쳐내려 한다. 그 모습이 세대 갈등을 겪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어른들도 조금은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나인뮤지스 ‘Wild’
달샤벳, 레인보우와 함께 ‘나달렌’으로 묶이며 늘 더 뜨지 못해 안타깝다는 시선을 받았던 걸그룹 나인뮤지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아까운 건 역시 2013년에 발표한 ‘Wild’다. 차가운 건반 사운드와 화려한 전자음을 뚫고 나오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단번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자극적인 콘셉트에 가려진 사랑하는 이에게 외치는 가사 ‘늘 함께 함께 가야만 해’가 퍼뜨리는 울림 또한 폭발적이다. 분열로 가득한 지금 시대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지난해 SBS < 문명특급 >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특집의 무대 곡으로 가장 흥행했던 ‘Dolls’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학창시절 방송반 선곡표를 짜며 이 노래를 듣고 감탄에 빠졌던 나는 여전히 ‘Wild’와 함께 가고 있다.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Run away with me’
‘Call me maybe’의 돌풍 이후 가볍고 반복적인 훅을 내세운 ‘I really like you’는 복귀작 < Emotion >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앨범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거뒀다. 두 번째로 발표한 ‘Run away with me’ 또한 빌보드 차트에는 진입조차 못했으나 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에 어느덧 그의 상징적인 곡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도입부의 색소폰과 따스함을 머금은 멜로디,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 ‘나와 함께 달아나자!’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노래가 흥행하지 못한 것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풍 레트로 유행을 5년가량 앞섰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칼리 래 젭슨은 바쁜 틴 팝 스타를 벗어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탈한 뮤지션이 된 삶에 만족한다지만 적어도 이 노래 만큼은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정리 : 장준환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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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of the Year 2021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스플래시가 벌써 9회차를 맞이했다. 1년은 과연 그간의 일들을 톺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우리의 스플래시에 어떤 경향성을 띤 시선이 자리하지는 않았을까? 돌아보며 올해는 조금 색다른 스플래시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 ‘더불어올해 역시음악계에 벌어진 사건을 뽑아 그것의 내면을 한 번 더 찔렀다. 사건의 전시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시하려 했달까. 음악. 어떻게 들었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함께 얘기 나누고자 한다.

1. 오디션 프로그램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라고 했지만 어디에도 패자는 없었다. 올해를 반추할 때 < 스트릿 우먼 파이터 >, 일명 ‘스우파’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맨 앞에 선다. 2009년 엠넷의 < 슈퍼스타K > 이후 오랜 시간 대중의 곁을 ‘스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적나라한 수법에 지쳐버린 지금. 기 센 언니들의 “자존심을 건 생존경쟁”은 전례 없이 화끈했다. 거침없는 직언, 거리낌 없는 춤사위, 여기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숨겨졌던) 서사까지. 열광, 열풍을 만들 요소가 넘쳤다.

여성이 전면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지만 스우파가 견인한 ‘댄스’ 열풍은 대단했다. 각종 숏폼 플랫폼에는 2차 계급 미션 때 췄던 ‘Hey mama’를 패러디한 영상들이 넘쳤다. 또한 서브컬쳐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왁킹과 보깅.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비보잉(브레이킹) 혹은 (걸스) 힙합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모두 여성들의 손길을 거쳤다. 특히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질 스콧의 ‘Womanifesto’를 차용해 섹스(Sex) 아닌 젠더(Gender)를, 성 너머 개인의 가치를 다룬 것은 단연 올해의 베스트 모먼트.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야

라고 < 쇼미더머니10 >에 출연한 악뮤(AKMU) 찬혁은 노래했다. 몇 마디 앞서 뱉은 “이건 하나의 유행 혹은 TV 쇼”라는 가사 역시 그저 실소에 그칠 비유가 아니다. 2012년 출발한 ‘쇼미’는 이후 < 고등래퍼 >, < 언프리티 랩스타 > 등으로 가지 쳐졌다. 오늘날 은 그리고 힙합은 그야말로 2010년대를 강타한 선 굵은 유행이며 십 대와 이십 대의 감수성을 품고, 푸는 핵심 장르. 날 서고 거친 정서를 대변하고 때론 아픈 상처에 연고를 발라버리며 스웨그(SWAG)까지 챙긴다. 어느덧 10년을 맞이한 ‘쇼미’의 인기로 미뤄볼 때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어떤 지점에서) 뭉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트로트와 케이팝

힙합 댄스 락 발라드도 좋지만 슬플 땐 what?”

2019년 TV조선에서 방영한 < 내일은 미스트롯 >에 이어 2020년 < 내일은 미스터트롯 >의 대흥행은 2000년대 초 장윤정, 박현빈 이후 모처럼 트로트의 재림을 이끌었다. 이찬원, 영탁, 정동원 그리고 임영웅 등 ‘트로트계의 아이돌’들이 중장년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 9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 사랑의 콜센타 >가 이들의 인기를 대변했고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음에도 < 미스터트롯 >발 콘서트가 전국을 누볐다. 12월의 끝 ‘테스형’ 나훈아, 심수봉에 이어 임영웅이 공중파에서 단독 콘서트를 선보인다는 점 역시 트로트의 열기를 가늠케 한다.

“I’m on the next level”

K팝, K팝, K팝! 힘차게 외연을 확장 중인 오늘날의 K팝은 비단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가능성을 잇는 창문. 올해에도 방탄소년단은 한국 너머 전 세계를 순항했다. 수많은 효자곡이 있었지만 가장 큰 성과를 안긴 건 ‘Butter’. 자그마치 빌보드 싱글차트 10주간 1위를 거머쥐며 역사를 썼다. 뒤이어 ‘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 함께한 ‘My universe’가 정상에 올랐고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의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수상 역시 BTS의 것이었다.

선배 그룹의 성장에 힘입어 4세대 아이돌로 칭해지는 ‘뉴’ 세대의 성장도 돋보였다. 그중 ‘가상의 아바타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독보적인 콘셉트로 활동한 에스파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블랙맘바(Blackmamba)를 찾으러 광야로 떠난다’는 설정의 싱글 ‘Next level’이 다소 난해한 설정과 별개로 세상을 달궜다. ‘디귿댄스’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었다. 뒤이어 발매한 첫 번째 EP < Savage >의 성공은 에스파식 21세기형 혼종성의 확실한 한방.

특히 Savage 즉, 맹렬한 혹은 ‘쎈’의 뜻을 가진 단어는 에스파와 같은 4세대 걸그룹의 핵심이다. 블랙핑크의 ‘Pretty Savage’, 있지(ITZY)의 ‘달라달라’, 이외에도 (여자) 아이들, 전소미 등 여성 아이돌의 방향성은 확연히 과거와 다르다. 그것이 시대상을 반영한 속셈 있는 처세술일 지어도 이 변화는 분명 어렴풋하게나마 ‘넥스트 레벨’로의 도약을 그린다.

3. 역주행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 그대여 내게 말해줘 사랑한다고

올해도 꿋꿋이 역주행이 찾아왔다. 4년 만에 빛을 본 브레이브걸스 ‘Rollin’’ 앞에 불순물은 감히 엉겨 붙지 못한다. 군통령. 오랜 무명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찾아간 군대 위문공연이 브레이브걸스에게 드디어 형형 빛깔 색을 입혔다. 특별한 홍보는 없었지만 한 유튜버가 올린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역주행의 불을 지폈다. 기다리고 있었단 듯 롤린롤린롤린, ‘Rollin’’이, ‘운전만 해’가 역주행했고 이후 발매한 ‘치맛바람’이 정주행에 성공, ‘브걸’은 대세 가수가 됐다.

유튜브란 뉴미디어가 만든 역주행도 있었지만 작년과 같이 올드미디어의 대표 격인 TV 방송이 만든 역주행도 있었다. < 놀면 뭐하니? >가 놀지 않고 성실히 만든 ‘부캐’ MSG 워너비 TOP8이 부른 바로 그 노래. 라붐의 ‘상상더하기’가 차트를 뒤집었다. 2016년에서 2021년으로. 발매 5년 만에 음원 순위 상위권 진입이란 상상은 현실이 됐다.

4. 코로나

그리고 코로나. 벌써 횟수로 3년째 전 세계를 굳게 만든 코로나가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 신을 옭아맸다.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한 ‘온택트(Ontact) 콘서트’가 성행했다. 대면 콘서트에서는 함성 대신 박수로, 혹은 소리 나는 인형 등을 통해 마스크에 갇힌 흥겨움을 토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11월경 규제가 완화되며 공연계가 활기를 되찾는가 했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무대의 열기는 짧게 오르고 빠르게 식었다.

활동이 제한되며 시선은 메타버스, NFT(대체 부가능한 토큰)으로 이동했다. 현실보단 가상이, 온라인상의 저작권이 화두가 됐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방탄소년단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NFT 또한 음악 산업의 자본가들을 움직였다. JYP, 빅히트, YG 등의 거대 기획사가 NFT로 눈을 돌렸고 며칠 전 브레이브걸스의 NFT 상품 400개가 1분이 채 안 돼 완판된다.

그리하여 결론. 숏폼 플랫폼, 유튜브, 뉴미디어, 메타버스, NFT. 음악은 이제 단순히 귀로 듣는 차원을 넘어 숏폼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뽐내고, 유튜브, 뉴미디어 등으로 재밌게 즐길 거리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메타버스, NFT 등의 거대 자본, 새로운 기술은 이 음악들의 산업적 가치를 튼튼하게 지탱, 우리 음악의 세계화에 발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에 우리의 취향은 얼마나 반영될 수 있는가. 결국은 모두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들리는 대로 듣게 된 음악’. 혹은 ‘들렸기에 즐기게 된 음악’인 것은 아닐까? 이 사이 힘을 잃는 건 어쩌면 자신의 음악을 독립적으로 쓰고 있는 많은 인디 뮤지션이 될 것이다.

비슷하게 십 대, 이십 대가 열렬히 힙합을 따라부를 때 최신 취향과 멀어진 중장년층이 트로트에 몰두하는 세대 간의 격차, 음악 청취 층의 이분화 속 ‘음악의 다양함’, ‘음악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들’, ‘음악이 묘사하는 여러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 알고리즘의 시대. 음악으로 표현되고, 표출될 수 있는 문화가 더 자주 그리고 더 쉽게 세상에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 스플래시에는 보다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더 뾰족하게 담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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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2. 팝 9곡

역주행은 차량이 달리는 방향과 반대로 달리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음악에서 역주행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가수나 노래가 뒤늦게 인기를 얻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음악계의 역주행은 기분 좋고 안전하다. 그런데 이런 은혜로운 상황이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도 꽤 많은 노래들이 다행히 부활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역주행 리스트의 기준은 처음 발표했을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노래이기 때문에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나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Unchained melody’, 로이 오비슨의 ‘Oh! pretty woman’처럼 처음 공개했을 때 더 높은 인기를 누렸던 곡들은 과감하게 제외했다.

홀 앤 오츠(Hall And Oates) ‘She’s gone'(1973)
1980년대에 ‘Kiss on my list’, ‘Maneater’, ‘Private eyes’, ‘I can’t got for that’ 같은 명곡을 배출한 대릴 홀과 존 오츠의 첫 번째 히트 싱글이다. 백인임에도 묵직한 소울 발라드를 구사한 이 듀엣은 1973년 말에 ‘She’s gone’을 발표해서 이듬해에 빌보드 싱글차트 60위를 기록했다.

이후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RCA로 이적한 홀 & 오츠가 발표한 ‘Sara smile’이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오르자 배가 아팠던 애틀랜틱은 ‘She’s gone’을 다시 싱글로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7위 곡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재활용의 좋은 예. 이후 ‘Rich girl’로 빌보드 정상을 밟은 홀 & 오츠는 그 여세를 몰아 19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듀오로 입지를 다졌다. 이 모든 성공의 출발점은 바로 ‘She’s gone’이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 ‘Dream on'(1973)
1973년에 공개한 데뷔앨범의 첫 싱글로 당시에는 빌보드 싱글차트 59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향인 보스턴의 지역 라디오는 ‘Dream on’을 줄기차게 틀어댔다. 덕분에 에어로스미스는 고향 보스턴과 매사추세츠 주에서만큼은 ‘떠오르는 스타’가 아니라 이미 ‘떠오른 스타’였다.

2년 후인 1975년에 공개한 3집 < Toys In The Attic >은 모든 걸 바꿨다. 이 앨범에서 ‘Walk this way’와 ‘Sweet emotion’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음반사인 컬럼비아 레코드는 재빨리 데뷔곡 ‘Dream on’을 다시 싱글로 발매해 빌보드 싱글차트 6위를 기록했다. 이후 보컬리스트 스티븐 타일러와 기타리스트 조 페리의 불화로 부대낌을 겪은 에어로스미스는 1987년에 발표한 < Permanent Vacation >으로 부활해 현재까지 아메리칸 록을 상징하는 밴드로 생존해 있다. 심지어 에미넴이 ‘Sing for a moment’에서 ‘Dream on’을 샘플링하기도 했으니까.

샬린(Charlene) ‘I’ve never been to me'(1977)
이 곡도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처럼 라디오의 지원사격을 받아 역주행에 성공했다. 1977년에 빌보드 97위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곧바로 사라진 ‘I’ve never been to me’를 좋아했던 전직 모타운 직원 출신으로 지역 방송국 디제이였던 스코트 섀넌은 샬린이 모타운과 재계약을 하도록 도움을 줬고 이 곡은 1982년에 재발매 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3위까지 진격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곡 분위기와 달리 노래 내용은 한때 화려하고 허세에 찌든 삶을 살았던 중년의 여자가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닮은 여인에게 충고해 주는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다.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 ‘Solitary man'(1966)
자기 얼굴을 앨범커버로 대문짝만하게 내건 대표적인 가수는 필 콜린스와 닐 다이아몬드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외모. 1970년대 가장 성공한 싱어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를 상징하는 ‘Solitary man’은 196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55위를 기록한 그의 첫 번째 차트 진입곡이다.

당시엔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이후 ‘Cherry cherry’, ‘Girl you’ll be a woman soon’, ‘Holly holy’, ‘Sweet Caroline’이 성공을 거두자 음반사는 1970년에 ‘Solitary man’을 다시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21위까지 올랐다. 이후 이 노래는 히트곡이 많은 닐 다이아몬드의 시그니처 송으로 영국 박제됐다.

포인터 시스터스(Pointer Sisters) ‘I’m so excited'(1982)
영국 걸그룹 걸스 얼라우드가 리메이크 했던 ‘Jump (For my love)’의 주인공인 친자매 트리오 포인터 시스터스가 1982년에 발표한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30위를 찍고 하락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4년에 ‘Jump (For my love)’와 은지원이 커버했던 ‘Automatic’이 연속으로 히트하자 아쉬움이 남았던 ‘I’m so excited’를 살짝 리믹스해서 부활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상승해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룬 ‘I’m so excited’는 ‘Jump’, ‘Automatic’과 함께 그해 그래미에서 포인터 시스터스에게 최우수 팝 보컬 그룹 트로피를 수상하는데 힘을 보탰다.

빌리 베라 & 더 비터스(Billy Vera & The Beaters) ‘At this moment'(1981)
1987년 초에 음악 관계자들에게도 낮선 가수의 노래가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것도 라이브 실황이. 어리둥절했지만 그 의문은 곧바로 해소됐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마이클 제이 폭스가 출연하던 시트콤 < 패밀리 타이즈 >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이었던 1962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한 빌리 베라는 1981년에 ‘At this moment’를 발표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79위를 정점으로 금방 하락했다. 컨트리 팝과 뉴웨이브가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던 1980년대 초반에 약간은 청승맞은 알앤비와 재즈, 카바레 음악 스타일이 혼용된 ‘At this moment’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비좁았다. 결국 시트콤의 지원사격으로 발표 6년 만에 빌보드 넘버원을 찍었지만 더 이상의 후속곡이 없는 빌리 베라 & 더 비터스는 원히트원더 가수로 남았다.

제임스 인그램 & 패티 오스틴(James Ingram & Patti Austin) ‘Baby come to me'(1981)
알앤비 가수 패티 오스틴이 1981년에 발표한 앨범 < Every Home Should Have One > 수록곡으로 1982년 4월에 싱글로 커트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7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묻힐 수 있었던 이 곡 역시 텔레비전 드라마 < 제네럴 호스피털 >에 등장하면서 역류를 시작해 1983년 2월에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랐다.

영국의 펑크(Funk) 밴드 히트웨이브의 리더 출신으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Off the wall’, ‘Rock with you’, 조지 벤슨의 ‘Give me the night’ 같은 명곡을 작곡한 로드 템퍼튼이 만든 ‘Baby come to me’는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를 반영한 어반 알앤비를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로 다양한 가수들이 커버해 곡의 완성도를 인정하고 추앙했다. 이 중에는 박진영도 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What a wonderful world'(1967)
1967년에 녹음한 ‘What a wonderful world’는 영국 차트 정상을 포함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싱글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미국에서 잊혀질 뻔한 이 노래를 살린 인물은 영화감독 배리 레빈슨. 그가 1987년에 만든 영화 < 굿모닝 베트남 >에 ‘What a wonderful world’를 삽입하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방송국에서 일하던 디제이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린 이 작품은 주연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었고 16년 전인 1971년에 세상을 떠난 ‘사치모(루이 암스트롱의 별명)’를 소환했다. 전장의 비극을 묘사한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거장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찬가는 극명하게 대비되며 짙은 인상을 남겼다. 어찌나 강렬했는지 몇 년 후 우리나라 맥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루이 암스트롱의 대표곡으로 안착했다.

퀸(Queen) ‘Bohemian rhapsody'(1975)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노래다. 1975년에 발표돼서 빌보드 싱글차트 8위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1990년대 초반에 그 족쇄에서 풀렸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Bohemian rhapsody’는 금단(禁斷)의 노래였다.

1991년 11월 24일에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고 미국에서는 1992년에 다나 카비와 마이크 마이어스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 < 웨인스 월드 >에 ‘Bohemian rhapsody’가 삽입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영화 < 웨인스 월드 >에서 얼간이 5명이 자동차 안에서 헤드뱅잉을 하는 그 유명한 장면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소재로 활용됐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설득했던 음반사 사장 역을 맡은 배우가 마이크 마이어스가 이런 대사를 읊는다. “차 안에서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면서 머리를 흔드는 사람은 없어!”.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의 성공으로 이 노래는 2018년에 세 번째로 빌보드 싱글차트에 올라 33위를 기록했다. ‘Bohemian rhapsody’는 불멸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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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1. 가요 10곡

역주행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방송, SNS 등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밈(Meme), 추억, 감성 등 그 의미 또한 가지각색인 이 현상에 음원 시장과 유행이 급변한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가 과거만 맴돌며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씁쓸한 실정이지만, 기억 속으로 사라질 뮤지션에게 생명을 불어넣거나 몰랐던 노래의 진가를 발견한다는 장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옛 노래가 굽이치는 물결을 타고 지금 우리의 곁으로 몰려온다. < 슈퍼스타 K >, < 나는 가수다 >, < 복면 가왕 >,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찾아서 >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음악과 추억을 되새김질했지만,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돌아온 곡은 인터넷을 떠도는 ‘작은 영상 하나’에서 비롯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MZ세대가 만든 디지털 문화가 그 중심에 있음을 뜻한다.

2021년 상반기만 해도 벌써 브레이브 걸스와 SG워너비 두 팀이 어떤 연어보다 힘차게 차트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왔다. 매년 찾아오는 연금과 시즌 송처럼 연례행사에 가까운 이 현상을 이즘에서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차선을 반대로 달리는 노래가 다시 나오기 전에 이즘 필자들이 대표곡 10개를 선정했다.

EXID ‘위아래'(2014)
아이돌 역주행의 역사를 새로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등장하기 이전, 전국을 위아래로 들썩이게 했던 원조 역주행 걸그룹이 있다. 팬 한 명이 촬영한 직캠의 파급력은 놀라웠다. ‘위아래’는 2년의 공백을 가진 무명 걸그룹이 존폐를 논의하던 시점에 사활을 내걸었던 곡이다. 활동 당시의 반응은 미진했으나 발매 3개월이 지난 후 SNS를 통해 멤버 하니의 안무 직캠이 입소문을 타면서 뒤늦게 대중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의 역주행 열차는 쾌속으로 질주하며 그해 연말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연히 영상 하나에서 시작된 이 드라마는 해체 위기의 걸그룹을 완연한 대세로 탈바꿈해 주었다.

포화한 아이돌 시장에서 대중에게 각인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일찍이 기회를 잡지 못한 팀들에게 성공의 벽은 높기만 하다. 3년이 꼬박 걸렸던 EXID의 역전은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들의 역주행 공식에는 방송 출연도, 유명인의 홍보도 없다. 오로지 팬이 만든 2차 창작물의 힘으로 일어섰다. 이는 아이돌 그룹이 주목받을 수 있는 제 3의 경로가 되었으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후배 그룹들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아이돌 최초의 역주행을 이뤄낸 EXID의 발자취는 새로운 역주행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닿고 있다. (김성엽)

볼빨간사춘기 ‘우주를 줄게'(2016)
‘하늘만큼 땅만큼’은 사랑의 척도에서 가장 유구한 관용어지만 볼빨간사춘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우주를 안겨줬다. ‘난 그대 품에 별빛을 쏟아 내리고 / 은하수를 만들어 어디든 날아가게 할 거야’라는 귀여운 고백은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고막 여친’ 안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대학 축제를 비롯한 많은 공연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출연을 계기로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1개월 만에 10위권에 진입한 ‘우주를 줄게’ 뿐만 아니라 이 곡이 수록된 < Red Planet >의 전곡이 한 해 동안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사춘기의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면에 주목한 ‘나만 안되는 연애’나 ‘X Song’은 폭넓은 감정선을 드러냈다. 볼빨간사춘기는 역주행의 수혜를 받은 원 히트 원더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썸 탈꺼야’, ‘여행’으로 20대 청춘의 찰나를 포착하고 있다. (정수민)

신현희와김루트 ‘오빠야'(2015)
시작은 인터넷 방송가다. ‘오빠야’를 배경음으로 차용한 한 리액션 영상이 우연히 화제를 끌어 각종 SNS의 파고에 탑승하고, 이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젊은 층을 상대로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이 열풍의 시초다. 전파 과정만 본다면 다른 이유가 컸을지 모르지만 영상에 대한 관심은 곧 음악으로 이어지기 마련. 결국 그 기세는 영상의 업로드 일자 기준 16일 만에 차트 정상이라는 가시적인 기록으로 환산되었다.

반등의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찾아오지만 정작 제대로 거머쥐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야’의 성공 요인은 단박에 꽂히는 강렬한 인트로다. 한번 들으면 도통 잊기 힘든 신현희의 이 한 마디는 영상 너머 노래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고, 뒤이어 등장하는 ‘썸’의 관계를 재치 있는 랩으로 풀어낸 코러스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노래방 애창곡 파트로 부상하며 상승 곡선에 박차를 가했다. ‘오빠야’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까지 걸린 시간, 인트로의 첫 2초였다. (장준환)

마크툽, 구윤회 ‘Marry me'(2014)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차 안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바로 옆에서 불러 주는 듯 가공하지 않은 음원, 이게 승부수였다. 이 영상이 페이스북의 인기 페이지 <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에 올라왔고 일명 ‘신호대기남’이 큰 관심을 일으키며 영상 속의 곡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노래의 인기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은 결혼식장 안이었다. 음원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을 당시 예식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곡 가수의 음원보다 말 그대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축가 타이밍엔 어김없이 ‘Marry me’가 흘러나왔고 한동근의 ‘그대라는 사치’와 함께 결혼식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프러포즈 대표곡으로 안착한 노래는 역주행시점 음원 시장에서 일위를 달성한 베스트셀러였고 결혼 시장에서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그때나 지금에나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김도연)

김연자 ‘아모르 파티'(2013)
수 없이 겪어낸 고난에도 김연자는 제 운명을 사랑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재조명된 윤일상표 EDM으로 기존의 트로트 작법을 과감히 탈피한 이 ‘인생 찬가’는 실로 위력적이었다. ‘연애는 필수 / 결혼은 선택’이 형성한 공감의 힘은 가벼운 세대 통합을 일궈냈고 대학가 축제에 출연한 최초의 트로트 가수라는 이변을 낳았다. BTS, 엑소, 트와이스 등 최정상 위치의 글로벌 케이팝 스타들이 백댄서를 자처한 2018년 KBS가요대축제 엔딩 무대는 이 곡의 위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젊은 감성과 화려한 후렴구 멜로디는 역주행의 존재감을 높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진가는 시대를 꿰뚫은 노랫말에 담겨있다. ‘작사의 신’ 이건우의 역작으로 가사 한 줄, 한 마디가 우리의 근원적 스트레스에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 모든 걸 잘할 순 없어’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나이는 숫자 / 마음이 진짜 /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는 용기를 북돋으며 스스로 실현한 김연자식 명언에 방점을 찍는다. 찰나의 반짝임으로 끝나지 않을 주옥같은 격언들이 시대를 대변한다. 어쩌면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은 당연한 절차였다.(김성욱)

윤종신 ‘좋니'(2017)
역주행 신화를 쓰기 가장 유리한 장르는 역시 발라드일 것이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범대중적인 장르인 데다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좋으며, SNS에 올라오는 보컬 실력자들의 커버 영상을 통해서도 인기가 쉽게 번지기 때문이다. 2017년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음악 플랫폼 ‘리슨'(LISTEN)을 통해 발매된 ‘좋니’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부를 노래가 없다’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공략한 아티스트는 유튜브 음악채널 ‘딩고 뮤직’의 ‘세로라이브’로 신세대와 교류를 형성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라이브 영상이 성공을 판가름하며 노래는 가장 많이 들리고,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이 됐다. ‘애청’과 ‘애창’의 동시 포획이었다.

차이는 ‘깊이’였다. 꼭 모은 두 손,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열창하는 베테랑 가수의 라이브는 대중의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고, 이별한 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현실적인 노랫말은 결정적이었다. 원곡을 리메이크한 민서의 ‘좋아’로 차트 정상을 다시 꿰차며 발라드계 ‘답가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음악인으로서 그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각인한 제2의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이홍현)

비 ‘깡 (GANG)'(2017)
허세와 거리가 멀다면서도 ‘백 달러 지폐(Hundred dollar bills)’, ’30 sexy 오빠’를 흥얼대며 여전히 9년 전 ‘레이니즘(Rainism)’에 도취되어 있었다. 향수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2000년대 슈퍼스타는 이후 영화 < 자전차왕 엄복동 >까지 혹평을 받으며 ‘비’급 연예인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미지 타격에 쐐기를 박았던 이 실패작이 컬트적인 역행을 일으킨 ‘나.비 효과’였다.

작품이 별로일 수 있다는 주연의 취중진담과 그를 뒷받침하는 누적 관객 수. 성적은 처참했지만 놀림거리로 이만한 흥행도 없었다. 망작에서 비롯한 각종 패러디는 과거를 들추기에 이르렀고 발매 당시에도 잡음이 많았던 ‘깡’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비록 조롱이 만들어낸 관심이지만 본인도 밈의 인기를 즐겼고 오히려 광대를 자처하며 열풍에 불을 지폈다. 비주류의 인터넷 유행을 대중의 영역으로 견인한 40대 꾸러기의 깡다구는 급변한 콘텐츠 시장을 대변하는 희귀한 역주행 사례다. (정다열)

블루 ‘Downtown baby'(2017)
음과 음 사이의 작은 낙차로 덤덤하게 흐르다가도 ‘너는 나의 다운타운 베이비야’란 훅을 던지는 모습은 과장보다 쿨함을 견지하는 Z세대의 사랑법과 닮아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감미로운 소리는 연인과의 추억을 환기하고 ‘너의 눈은 밤하늘에 별이야’란 구절은 라라랜드(로스앤젤레스)의 푸른 밤을 형상화하며 낭만성을 확보한다.

린다G(이효리)가 < 놀면 뭐하니? >에서 불러 스트리밍 차트 정상까지 도달한 ‘다운타운 베이비’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래퍼 블루가 2017년 말에 발매한 곡으로 2년 6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효리의 허스키한 저음은 멜로디의 좁은 폭을 구원하고 기교보다 감각으로 노래하는 가창이 곡에 잘 달라붙는다. “결국 뜰 곡은 뜬다.”는 운명론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실은 대중을 아는 이효리의 감과 공중파 프로그램의 위력이 작용한 결과다. (염동교)

브레이브걸스 ‘롤린 (Rollin’)'(2017)
역주행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 곡. 수익이 거의 없음에도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군부대 공연을 보낸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부터 “음악을 떠나 평범하게 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던 유정의 인터뷰처럼 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멤버들까지 해체를 앞두고 터진 대박 뒤에는 감동 실화가 숨어있다. 2021년을 뒤집은 이 흥행의 시작은 유튜브 알고리즘이었지만, 실질적 원인은 전심으로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며 군통령, 군인픽, 밀보드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군인들’에게 있었다. 힘든 군 생활 중의 위문에 대한 보답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이들의 성공 형태에서는 특이하게도 영상을 통한 현시대의 홍보 방식과 소자본 인디 뮤지션의 활동 양식이 함께 보인다. 무명의 독립 뮤지션이 길거리와 홍대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하는 모습이 군부대를 도는 브레이브 걸스의 모습과 닮았다. 이는 대형 미디어도, 유명인의 언급도 없이 멤버들 스스로가 일궈낸 노력의 결과임을 증명한다. 이엑스아이디가 팬들에 의한 2차 창작물의 중요성을 알렸다면 브레이브 걸스는 무대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일깨운, 사실상 역주행이 아닌 ‘정주행’인 셈이다. (임동엽)

SG워너비 ‘Timeless'(2004)
역시 < 놀면 뭐하니? >는 강력했다. 프로그램에서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또 다수 음원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SG워너비가 출연한 이번 방송은 영향력이 더 셌다. ‘Timeless’, ‘내사람: Partner for life’, ‘라라라’, ‘살다가’ 등 여러 곡이 동시에 차트를 휩쓸었다. 톱스타 아이유, 대세 걸 그룹으로 등극한 브레이브걸스도 MBC 예능 < 놀면 뭐하니? >의 정기를 받은 노래들 앞에서 추풍낙엽이 됐다. 특히 ‘Timeless’는 SBS < 인기가요 > 1위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 놀면 뭐하니? >는 십수 년 전 나온 노래에 새 생명을 안겨 줬다.

전적으로 방송에 의해 다시 히트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차트에 들어선 노래들은 모두 발매 당시에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를 경험하고,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로서는 SG워너비와 그들의 노래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보컬 그룹이 요즘 얼마 없는 현실도 SG워너비를 돋보이게끔 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맞춰 가며 하모니를 만드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근사하고 살갑게 다가갔다. 인기 미디어, 과거를 향한 대중의 향수, 희소한 체제, 번듯한 가창이 합쳐진 힘이 ‘Timeless’를 비롯한 노래들을 한 번 더 유행의 궤도에 들여놨다. (한동윤)

정리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