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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다가오는 무더위, 케이팝 10곡으로 여름 나기

올 여름에도 여행은 힘들 것 같다. 학생이건 회사원이건 꿀 같은 여름방학과 휴가를 이용해 잠시나마 무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여행을 빼앗아갔고 이번 여름도 어김없이 방구석 에어컨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여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해줄 가장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매년 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시원하게 녹여주었던 아이돌의 신나는 여름 노래에 그대로 몸을 맡기는 것. 이들의 청량한 사운드로 우리들의 마음만큼은 시원한 해변으로, 휴양지 야자수 밑으로 단번에 보내줄 수 있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꿈같은 여름날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이번 여름, 우리들의 심적 휴양을 책임져 줄 아이돌 가수들의 대표 여름 노래 10곡을 선정했다.

에프엑스 ‘Hot summer’ (2011)

에프엑스의 여름은 뻔하게 한가로운 휴양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교실, 사무실, 방구석에서 갇혀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며 뜨거운 여름 그 자체를 노래한다. 수십 번 반복되는 가사 ‘Hot summer’는 듣는 이에게 시원함을 선사해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이열치열의 에너지로 무더위에 정면으로 맞선다. 보통의 여름 노래는 청량한 사운드의 시원함을 느끼기 위해 듣는다면 ‘Hot summer’는 견디기 힘든 폭염 탓에 정신이 살짝 혼미한 상태에서 듣기 제격이다.

‘Hot summer’의 매력 포인트는 10년이 지나도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가사에 있다. 특히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라는 구절은 당시 가사의 논란이 발생했을 정도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알쏭달쏭한 가사가 귓가에 자꾸만 맴도는 중독성을 만들며 유일무이한 시즌송을 만드는데 한몫 했다. 십 년이 지났음에도 무더위에 미쳐버린 여름의 순간들을 이보다 화끈하게 표현한 아이돌 여름 노래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씨스타 ‘Loving u’ (2012)

쿨 이후로 등장한 2010년대 여름의 절대강자. 수 년에 걸쳐 한 계절을 점령해 버린 아이돌은 씨스타가 최초였다. 다른 걸그룹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건강미와 섹시함, 그리고 메인보컬 효린의 시원한 가창력으로 탄생한 이들의 여름 노래는 계절을 청각화 하는데 탁월했다. ‘Loving u’로 시작된 씨스타의 썸머송 연대기는 ‘Touch my body’, ‘Shake it’로 정점의 궤도에 올라서며 해체하는 순간까지 여름의 왕좌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다.

씨스타와 여름의 상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Loving u’는 사랑에 빠진 풋풋한 감정을 짧지만 낭만적인 여름의 순간으로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여름을 연상시키는 단어 없이 소유의 살랑거리는 목소리와 탄산 음료 같은 효린의 고음, 도입부부터 바다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브라스 사운드의 설렘만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썸머송! 해체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름만 되면 여전히 씨스타의 노래를 찾게 될 정도로 이들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샤이니 ‘View’ (2015)

샤이니의 상징색 펄 아쿠아 그린으로 수놓은 여름의 뷰. 뜨겁게 정열적이지도, 특별하게 시원하지도 않은 이들의 여름 노래에는 은은한 청량감이 감돈다. 당시로서는 케이팝에서 생소했던 딥 하우스 장르로 간결함을 추구하며 신나고 경쾌해야 한다는 여름 노래만의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곡의 구성은 자칫 심심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공감각의 축제를 그린 종현의 언어유희, 감각적인 선율과 공간감을 채우는 멤버들의 보컬로 샤이니만의 개성이 담긴 여름 노래를 완성했다.

‘View’의 뮤직비디오에는 청춘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여름 향기가 모조리 담겨 있다. 칠(Chill)한 여름의 푸른빛 색감,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올드스쿨 패션, 휴양지에서 친구들과 만끽하는 풀 파티까지. 이들의 청춘 로드 무비는 사운드에 몽환적으로 스며들어 물속에서 숨 쉬며 헤엄치듯 환상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수많은 여름 노래들이 있지만 ‘View’가 가장 세련된 아이돌 여름 노래이자 샤이니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이유.

태연 ‘Why’ (2016)
태연에게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곡이 하나씩 있다. 봄의 ‘사계’, 가을의 ’11:11’, 겨울의 ‘This Christmas’, 그리고 여름의 ‘Why’. 통쾌함이 감도는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청량한 트로피컬 리듬으로 표현한 ‘Why’의 여름은 불쾌지수 높은 계절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준다. 국내에서 트로피컬 장르가 유행하기 이전에 발매된 탓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후발주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완성도 높은 여름 노래로서 평가 측면의 역주행이 예상된다.

‘Why’는 서사를 투영한 여름 노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단순히 상쾌한 여름날의 휴가를 노래한 곡이 아니다. 도입부의 차분한 어쿠스틱 선율에서 후렴의 청량한 비트로 전환하는 구성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그린다. 이때 ‘Why’라고 끝없이 반문하는 태연의 목소리는 일상 탈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떠나도 좋다는 용기를 심어준다. 올여름도 어디든 멀리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을 부풀게 하는 노래.

여자친구 ‘너 그리고 나’ (2016)

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이 처음으로 맞은 자유분방한 여름.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로 이어져 온 ‘파워 청순’ 콘셉트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지만 강렬한 록 사운드와 박력 있는 기타 연주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듯한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멤버들의 티 없이 맑고 담백한 음색은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가사에 청량한 여름의 향기를 한 스푼 더해준다.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학교를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풀 빌라로 여행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들과 서정성을 갖춘 여름 노래의 만남은 익숙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여름 방학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약간의 긴장 그리고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설렘이 함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계절. ‘너 그리고 나’에 깃든 시원한 에너지는 수줍은 소년소녀가 이번 여름에 앞을 향해 힘껏 내달릴 수 있는 동력을 실어준다.

레드벨벳 ‘빨간 맛’ (2017)

2017년 이후 여름 노래의 ‘국룰’은 ‘빨간 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만 되면 TV 프로그램에서는 ‘빨간 맛’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1020 세대에게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여름 노래일 정도로 상징성이 짙다. 레드벨벳은 씨스타 이후 계보가 끊겼던 썸머퀸의 바통을 이어 받으며 ‘빨간 맛’을 시작으로 ‘Power up’, ‘음파음파’까지 여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룹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빨간 맛’이 그린 여름의 기승전결은 완벽하다. 야자수 아래 달콤한 과일 주스를 마시며 뛰어노는 한낮부터 금세 노을이 진 해변의 저녁까지. 빠른 후렴구부터 느린 템포로 여운을 주는 엔딩의 구성은 어느 여름날의 하루를 다채로운 맛으로 담는다. 여름의 질감을 가진 통통 튀는 가사로 표현한 시원하고 짜릿한 음악은 그 해 여름을 상큼하게 보내기 위해 꼭 들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다. 누군가 여름이 어떤 맛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빨간 맛’이라고 답할 것이다. 제목과 함께 흘러나오는 멜로디만으로 여름이라는 계절을 설명하기 충분한 강력한 썸머송!

위너 ‘Island’ (2017)

여름 노래의 진가는 당장의 뙤약볕 밑에서 들어도 눈앞에 하와이 해변에서 휴양을 만끽하는 장면을 그려줄 때 나타난다. 위너의 청량함을 대표하는 ‘Island’는 시원한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으로 듣는 이들의 방구석 휴양지 여행을 가능케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지금, 이보다 여행을 꿈꾸는 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곡이 또 있을까.

‘Really really’부터 위너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조합이 된 트로피컬 장르는 ‘비행기 모드’, ‘무인도’, ‘보물섬’과 같은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와 함께 여름 휴가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플럭 사운드는 내적 댄스와 함께 흥을 유도하며 강승윤의 여유로운 보컬과 이승훈의 자유로운 래핑은 트로피컬 분위기에 한껏 취하게 한다. ‘Island’와 함께 도로 위를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 휴양지에서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만끽할 수 있다.

트와이스 ‘Dance the night away’ (2018)

트와이스의 상큼함과 청량한 썸머송의 멜로디는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한 여름밤 해변가에서 신나게 댄스 축제를 벌이는 모습으로 담은 트와이스의 여름은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휴양지의 에스닉한 의상, 맨발로 모래사장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듯한 역동적인 안무, 멤버들의 맑고 시원한 보컬로 초대하는 여름 파티의 현장!

흥겨운 브라스 사운드가 이끄는 후렴구의 단순한 반복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여름 노래의 공식을 따르며 강한 중독성을 유발한다. ‘바다야 우리와 같이 놀아 / 바람아 너도 이쪽으로 와’처럼 자연의 요소를 품은 휘성의 독특한 노랫말도 곡의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여름을 접수했던 ‘Dance the night away’는 여름마다 차트 역주행으로 소환되며 매년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왔음을 알린다.

세븐틴 ‘어쩌나’ (2018)

2세대 보이그룹을 대표하는 ‘청량돌’이 샤이니라면 3세대에는 세븐틴이 있다. 시원한 여름 분위기의 노래를 소화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이들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다. ‘어쩌나’는 데뷔 초 ‘아낀다’, ‘만세’, ‘예쁘다’로 이어져 온 세븐틴의 청량 콘셉트를 이어가며 무더위를 산뜻하게 녹여주었던 썸머송이다. 이전의 곡들은 소년미를 부각하는데 집중했지만 ‘어쩌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스윙 리듬과 신시사이저로 차분하게 여름의 분위기를 담았음에도 세븐틴의 유쾌한 에너지는 그대로 다. 13명이라는 다인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현란한 안무, 뮤지컬 같은 다채로운 구성의 음악,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풋풋한 감성에는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가사 속 ‘찌더움이 없는 Summer’를 맞이하게 해 줄, 선선한 공기를 품은 파스텔 톤의 노래.

오마이걸 ‘Dolphin’ (2020)

발매 시기는 봄이지만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것은 여름이었다. 앨범 수록곡에 불과했던 ‘Dolphin’은 은은하게 스며드는 가사 ‘da da da da da’의 나른한 음성으로 여름 바다의 물보라와 같은 파동을 일으켰다. 직접적으로 계절을 겨냥한 노래는 아니다. 사계절을 지나 일 년이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곡이지만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연상되는 시원한 멜로디와 멤버들의 청아한 음색은 무더운 여름에 듣기 최적화된 세트다.

빠른 템포, 꽉 찬 사운드,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대표되는 썸머송의 흥행 공식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하지만 강력한 중독성 한 방으로 여름 노래들의 모든 인기 요인을 압도한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안무 또한 너도 나도 ‘Dolphin’의 리듬에 몸을 맡기도록 만든다.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을 마성의 여름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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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回 : Walpurgis Night’ (2020)

평가: 3/5

그룹의 모기업화

이 앨범으로 명확해졌다. 올 초부터 시작된 < 回 : 트릴로지 >는, 모기업이 된 빅히트의 A&R을 그룹에게 적용하는 실험의 장이었다는 것을. 앞선 두 장의 EP가 ‘Labyrinth’나 ‘Apple’와 같은 곡으로 조심스러운 개입을 보여주었다면, < 回 : Walpurgis Night >에선 보다 과감히 그 피를 수혈한다. 크레딧엔 빅히트 소속 뮤지션들의 이름이 늘어났고, 다수에 의한 분업체제 비중이 커졌다. 현악세션이나 드라마틱한 구성은 들어낸, ‘열심히’가 아닌 ‘쿨’하고 ‘칠’한 여자친구의 낯선 모습. < 回 : Labyrinth >를 듣고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구나 생각했던 본인에겐 속았다 싶은 내용물이다.

여기에 방대한 설정 및 스토리텔링이 더해졌다는 건 그야말로 확인사살이다. 상당부분 소속사의 개국공신인 BTS와 그 동생그룹인 TXT의 공식을 이어받은 셈.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면서도 팀의 구심점인 좋은 멜로디는 무사히 계승. 뭔가 살짝 위화감은 드나, 듣는 재미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준수한 결과물로 자리하고 있다.

‘MAGO’는 핵심을 함축하는 키 트랙. 요즘 빅히트가 한참 몰두하고 있는 디스코 장르의 곡이나, 현대적인 재해석 대신 과거의 감수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쪽에 가깝다. 여기에 트레이드 마크였던 클래식한 가요의 작법은 남겨 설득력 있는 변화를 꾀한 셈. 거친 디스토션의 어프로치가 가해진 ‘Love Spell’에서의 리듬감 역시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필리 소울 기반의 시티팝 ‘Three Of Cups’는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 코러스와 신시사이저가 기분 좋게 교차하고, 베이스와 브라스의 격돌은 의외의 낭만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가사 속 멤버들의 일상성과 생동감이 플러스 요인. 다소 과도했던 서두의 콘셉트를 중화해주는 중간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결은 다르나 특유의 파워풀함을 담아내고 있는 ‘GRWM’ 역시 우리가 알던 익숙한 그들에 더욱 가까운 노래.

유닛 곡들은 노래 본연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대목이다. 심플한 악기소리 위를 코러스를 동반해 유려하게 타고 넘는 가창의 ‘Secret Diary’, 굴곡진 비트와 날카로운 음색이 맞물려 라틴 팝의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Better Me’, 두 사람의 화음이 제목처럼 꿈결 같은 무드를 자아내는 ‘Night Drive’까지.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파장이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어 재수록된 ‘Apple’과 ‘교차로’, ‘Labyrinth’를 지나 자신들의 각오를 재차 다지는 ‘앞면의 뒷면의 뒷면’을 마지막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던 새로운 3부작은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작품을 들으며 두 번의 반갑지 않은 충돌을 느꼈다. ‘Mago’와 ‘Apple’, ‘Labyrinth’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 가는 메타포와 그 외 수록곡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성의 충돌이 첫번째. 변화된 음악성을 보이는 수록곡들과, < 回 : Labyrinth >에선 주축 트랙이었으나 이 작품의 러닝타임에서 만큼은 이질성을 띄는 ‘교차로’와의 충돌이 두번째다. 여기서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빅히트는 합병을 통해 합류한 레이블 소속 팀들에게 그 로고를 이토록 선명하게 찍을 것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여자친구는 팀명에서도 알 수 있듯, 거대한 은유나 장대한 세계관이 부재했기에 오히려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 속’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빅히트의 실책은, 이들이 착실하게 쌓아온 그 정체성의 무게를 비교적 가볍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멤버들의 역량을 동원해 좋은 팝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다. 다만,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태우려는 시도와 기존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하지 않은 듯한 무리한 개입이 이 앨범 그리고 금번의 트릴로지 안에서 가볍지 않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 분명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다.

변화라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아이돌, 나아가 모든 아티스트의 전략 중 하나다. 그럼에도, 좀 더 최적화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더군다나 확실한 개성을 가진 그룹인만큼, 좀 더 조심스럽고 영리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빅히트식 기획이 빚어낸 언밸런스함은, 향후 이들이 자신의 산하에 들어오게 될 아티스트들의 A&R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숙제를 남긴다. 콘셉트의 위화감이 듣기 좋게 마감질 된 작품의 접근성을 위협하는 ‘回 Trilogy’의 엔딩. 이번 기획으로 얻은 데이터가 부디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되길.

– 수록곡 –
1. MAGO
2. Love Spell
3. Three Of Cups
4. GRWM
5. Secret Diary
6. Better Me
7. Night Drive
8. Apple
9. 교차로(Crossroads)
10. Labyrinth
11. 앞면의 뒷면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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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GFriend) ‘Apple’ (2020)

평가: 2.5/5

음악에 있어 변화의 논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변화 뒤에도 아티스트만의 존재감이 잘 보존되어 있는지,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러한 변화가 납득 가는지다. 우선 < 回:Song of the Sirens >의 타이틀곡 ‘Apple’는 완성도 자체만 봤을 때 상당히 수려하다. 트렌디하게 짜인 훅과 그루브는 데뷔 5년 차의 능란한 안무와 어우러져 색다른 신비로움을 창출하고, 청순의 고속도로를 세차게 질주하던 과거는 어느덧 기교와 세련미가 가득한 미래에 도달한다.

다만 곡이 끝나고 난 뒤 과연 ‘Apple’이 여자친구의 곡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갸웃거리게 된다. 새 소속사에서 새 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과거 공식을 대입하는 것은 여러모로 참견일 테지만, 학교 시리즈 이후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뚜렷한 구심점이나 그렇다 할 정착지를 찾았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Apple’은 그룹이 상징하던 ‘청순 콘셉트’와는 거리가 멀고, 바로 전작인 ‘교차로’와도 연결고리가 없어 변신을 택한 ‘당위성’ 또한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가치는 분명하다. 시선을 조금 달리하면, 여자친구는 준수한 퀄리티의 곡으로 변화의 개념을 아득히 벗어난 완전한 틀의 전복, 아예 새로운 세계관에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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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GFriend) ‘回:Labyrinth’(2020)

★★★☆
데뷔로부터 5년, 꿋꿋하게 그 행보를 이어온 결과 여느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러닝타임을 선사하며, 해오던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균형감 또한 뛰어나기에 그렇다.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던 ‘일관성’은 이제, 언제든지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평가: 3.5/5

케이팝 불감증을 치료해 줄 케이팝 앨범

케이팝은 어느덧 영미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소화하는 카테고리가 되었다. 현지의 유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아이돌 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송캠프 시스템을 통한 외국 작곡가들의 기용은 이런 경향을 부채질했고, 세계 진출에 박차를 가할 트렌디한 사운드를 원하는 기획사의 니즈와도 맞아 떨어졌다. BTS의 성공이나 각국에서 환호를 받는 팀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벤치마킹은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다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특정 곡에 대한 과도한 레퍼런스나 어느 그룹이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은 트랙의 몰개성 등, 듣는 입장에서는 듣는 재미가 상당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 팀은 주된 흐름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있었던 편이다. 국내 뮤지션들을 메인으로 기용해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가는 경향이 그렇다. 초기에는 이기와 용배, 지금은 노주환과 이원종이라는 송라이터 팀의 색깔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1세대 아이돌인 신화와 유영진의 케미를 보는 듯한, 지금의 케이팝에선 찾기 힘든 단일 작곡가/스탭과의 서사를 엿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러블리즈 – 원피스/스페이스 카우보이 체제와 함께 이러한 흐름을 리드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이와 같은 꾸준한 방향성은 충실한 음악적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섬세한 감각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의존하기 보단, 드라마틱한 구성과 좋은 멜로디에 중점을 둔다. 일순간의 화려함으로 눈을 속이는 대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해내는 그룹의 캐릭터와 맞물려 차별화가 성립되는 지점이다. 사실 ‘열대야’는 이런 흐름에 반하는 곡이었고, 그런 탓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옷이기도 했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는 ‘교차로’. ‘밤’과 ‘해야’를 잇는 현악 세션 중심의 비장한 댄스튠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BGM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일부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행히 ‘교차로’는 그런 불평을 들을 정도의 어설픈 곡이 아니다. 소리의 공백과 폭격이 긴장감 있게 교차하고, 통렬한 선율은 뛰어난 가창력을 타고 퍼져 나간다. 규정 지어진 자신들의 캐릭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최대치를 해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애잔한 감성이 공간감 있게 펼쳐지는 ‘Here we are’와 이색적인 톤의 신스 사운드가 어두운 밤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Dreamcatcher’는 잔꾀 없이 ‘좋은 노래’의 공식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트랙들이다.

꽤나 과감한 시도도 있다. EDM과 록의 조합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Labyrinth’가 대표적. 케야키자카46의 ‘不協和音(불협화음)’이 연상되는 건 다소 아쉬우나, 기타의 디스토션으로 역동성을 더해 부족함 없는 리드곡을 완성했다. 생소한 악기들을 활용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역시 탱고의 이국적인 느낌을 팝의 테두리로 안에서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잔잔한 어쿠스틱 위 멤버의 목소리가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From me’의 진솔함 역시 그룹만의 것. 어느 한 곳 집중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러닝타임이 마무리된다.

국경 밖의 음악과 뮤지션에 집중하고 있는 주된 흐름에서 한 발 떨어져, 클래식한 가요의 작법을 유지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특별하다. 사실 활동 초기엔 이러한 직관성의 유지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데뷔로부터 5년, 꿋꿋하게 그 행보를 이어온 결과 여느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음악적 내실이 충실한 앨범으로 자리한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러닝타임을 선사하며, 해오던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균형감 또한 뛰어나기에 그렇다.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던 ‘일관성’은 이제, 언제든지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 수록곡 –
1. Labyrinth
2. 교차로(Crossroads)
3. Here we are
4. 지금 만나러 갑니다(Eclipse)
5. Dreamcatcher
6. From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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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Gfriend) ‘교차로'(2020)

평가: 3/5

데뷔 5년차를 넘긴 여자친구에겐 시그니쳐 사운드가 있다. 곡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현악기와 겹겹이 쌓아올린 보컬 화음은 격렬한 안무를 뒷받침하는 강한 리듬감과 어우러져 아련함을 노래하는 가사와 대비를 이룬다. ‘교차로’도 구조상 이 큰 뼈대를 벗어나지 않고, 그 탓에 얼핏 듣고선 다른 곡들과 구분하기 어려워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곡을 여는 피아노 선율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은 브릿지와 마지막 코러스까지 연결되며 드라마틱함을 부여하고,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하는 가사를 관통하는건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한 주체적인 태도다.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연상케하는 재료들이 비로소 완성됐다. 여자친구의 기존 소속사 쏘스뮤직을 인수한 빅 히트의 선택은 5년간 쌓아온 익숙함과 매니악한 취향의 ‘교차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