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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클레프(Jclef) ‘O, Pruned’ (2023)

평가: 2.5/5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는 음악들과 못내 악보를 접는 아티스트들에 비하면 제이클레프의 기다림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싱글 ‘multiply’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한 믹스테잎 < Canyon >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정규 1집 < Flaw, Flaw >를 그 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완성하며 공고한 팬층을 쌓아 올렸다. 

앨범 단위의 작업은 약 5년 만이다. 염세적인 태도로 세상의 흠집을 흥얼거렸던 지난 음반에 비해 < O, Pruned >는 가까운 것들이 남기고 떠난 온기에 집중한다. 연인이나 친구 혹은 신을 떠난 동료 뮤지션, 과거의 자신 등을 대상으로 한 노랫말은 어느 쪽으로 읽어도 지나친 현학없이 울림을 전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변화는 노랫말에 힘을 싣는다. 얼터너티브 사운드로 트렌드의 발을 맞췄던 전작과 달리 잔잔한 기타 선율로만 곡을 전개하는 ‘Jonn’s guitar (take1)’ 등의 트랙은 앨범의  명확한 지향을 드러낸다. 덕분에 앨범은 일체감을 형성하며 약 20분간의 러닝타임동안 옆자리에 앉아 직접 연주를 듣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콘셉트와 구성이 잘 맞아떨어져 분명히 매력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미처 지우지 못한 레퍼런스의 향기가 짙게 남아 감흥을 줄인다. 담백한 제이클레프의 목소리 덕에 흐릿하게나마 개성을 유지하지만 소리의 질감을 의도적으로 뭉개는 피비 알앤비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 운용방식마저 프랭크 오션 < Blonde >와의 무시하기 힘든 교집합으로 독창성을 떨어뜨린다.

긴 시간만의 복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수의 이름을 가져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박수가 멈칫거린다. 단순한 비교를 피하기 위해선 참조 영역에 정당한 설명을 덧붙여야 하지만 프랭크 오션 음악에 비해 조금 더 따뜻함이 묻어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차별성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쉽지만 5년 전 충격적인 등장에 비하면 설익은 복귀이다. 

– 수록곡 –
1. O, pruned
2. O, pruned, part ii (Feat. Hoody)
3. Johnny’s sofa
4. Jonny’s guitar (take 1)
5 Derbyshire
6.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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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Daddy’s Home’ (2021)

평가: 4/5

미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세인트 빈센트가 저변을 넓혀가고 있던 2010년 무렵 아버지 리차드 클라크는 주식 조작 등의 혐의로 입건되며 2019년 말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3집 < Strange Mercy >에서 이 내력을 가볍게 다루긴 했지만 그때는 넋두리에 불과했다. 허나 복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가장을 마주한 딸은 더 이상 부끄러운 가정사를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면회실과 죄수 번호 같은 직접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며 그날의 솔직한 감정들을 털어놓는다.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상 수상에 빛나는 < St. Vincent >가 미래적인 소리와 격렬한 연주를 들려줬다면 < Daddy’s Home >은 1970년대 미국의 음악, 즉 아버지 세대의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다. 복고적인 스타일과 차분한 전개는 여성 데이비드 보위의 혁신적인 모습을 지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디 밴드 펀의 기타리스트이자 전작 < Masseduction >의 조력자인 잭 안토노프와의 협력으로 개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문법을 정립한다.

자유자재로 톤을 바꾸는 ‘Pay your way in pain’과 툭툭 끊기는 신시사이저로 상승하는 ‘Down’의 그루브 넘치는 진행도 흥미롭지만 신보는 노랫말이 전하는 울림에 집중한다. 숨 막히는 발라드 ‘Live in the dream’은 사이키델릭 특유의 몽롱한 음색에 기대다가 기타 솔로로 극적인 마무리를 찍는다. 잔잔한 컨트리 트랙 ‘Somebody like me’ 역시 목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단순한 구조를 취하며 서정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앨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친숙한 질감은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지점을 마련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여가수 시나 이스턴의 대표곡 ‘Morning train (9 to 5)’의 보컬 멜로디를 인용한 ‘My baby wants a baby’는 원곡과 상반된 매력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민권운동을 펼쳤던 최고의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이 가사에 등장하는 ‘The melting of the sun’은 고난과 맞서 싸웠던 여성 뮤지션들을 향한 존경이면서도 약물을 사용하는 스스로에 대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끈끈한 유대를 다져온 부친의 징역살이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지나간 과거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나아가 음악적 성찰을 위한 자극제로 사용한다. 팽팽하기만 했던 세인트 빈센트의 기타줄은 느슨해졌으나 전위적 아티스트의 용감한 고전 참조는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과 함께 소용돌이치며 교훈 섞인 가족극 한 편을 완성한다.

– 수록곡 –
1. Pay your way in pain
2. Down and out downtown
3. Daddy’s home
4. Live in the dream
5. The melting of the sun
6. Humming (Interlude 1)
7. The laughing man
8. Down
9. Humming (Interlude 2)
10. Somebody like me
11. My baby wants a baby
12. …At the holiday party
13. Candy darling
14. Humming (Interlude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