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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Happier Than Ever’ (2021)

평가: 3.5/5

자기혐오와 정신 건강에 대한 진솔한 탐구는 빌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10대로 만들었다. 소름 끼치는 상상에 기반한 첫 정규 앨범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는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며 단숨에 디지털 세대의 마음을 훔쳤고 그 파급력을 증명하듯 그래미 어워드 본상까지 쓸어 담았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어둠의 정체는 스스로를 옭아매던 ‘침대 밑의 괴물’이 아닌 ‘실존하는 낯선 이들’이다.

주변을 배회하는 스토커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또한 인터넷 너머 익명의 누군가는 빌리의 헐거운 옷차림에 대해 갖은 악평을 날렸다. 그는 2020년 투어에서 선보인 뮤직비디오이자 이번 음반에도 수록된 곡 ‘Not my responsibility’로 응답했다. 속옷만 남긴 채 깊은 늪에 빠져드는 퍼포먼스는 자신을 규정하려 하는 세상에 대해 ‘당신이 날 알아?’라며 일갈한다. 연이어 양산된 여러 평가와 잣대에 ‘과열(Overheated)’된 팝 스타는 정면돌파를 택한 것이다.

자전적 서사를 보다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체 구성을 간소화했다. 전작에서 의도적으로 높였던 저역대의 데시벨을 낮추고 잔잔한 사운드를 배치해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은은한 전자음이 깔리는 오프닝 ‘Getting older’는 작품 전반에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My future’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줄리 런던과 페기 리의 재즈를 공유하며 포근한 공기를 형성한다. 옛 거장의 영감을 빌려 마련한 순간은 낙관적인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면서도 성숙도를 높인다.

물론 베이지색 앨범 커버처럼 음악이 포근하지만은 않다. 선공개 하지 않고 숨겨둔 비장의 무기들은 두터운 베이스를 활용해 익숙한 빌리를 소환한다. 사랑의 호르몬으로 주문을 거는 ‘Oxytocin’은 강렬한 비트 드롭을 통해 쾌락의 잠식을 시도하며 히트곡 ‘Bad guy’의 잔상을 이어간다. 다소 외설스러운 장면 직후의 ‘Goldwing’도 인상적이다. 힌두교의 한 구절을 노래한 찬송가는 둔탁한 드럼과 함께 잘게 쪼개지며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이 공존하는 고딕풍의 하모니를 선사한다.

유명인이란 이유로 참아야 했던 삶에 대한 불만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안부 인사 ‘Happier than ever’로 절정에 달한다. 트라우마를 되뇌는 우쿨렐레의 독백만 들으면 덤덤히 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일렉트릭 기타가 거칠게 질주하는 순간 작별을 고하는 대상은 전 연인에서 그동안 빌리를 괴롭혔던 모두로 확대된다. 떨림이 있지만 희망을 응축한 비명을 통해 묵혔던 감정을 시원하게 해소한다.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완성한 카타르시스는 내면의 불안을 음악으로 도출하는 빌리의 목소리와 친오빠 피니어스의 감각적인 프로듀싱 역량을 다시 한번 돋보이게 한다.

한순간에 쌓아 올린 명성과 그에 뒤따르는 희생을 언급한 것이 빌리가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시대를 노래하는 팝 그 자체다. 어른들도 기겁할 만한 상상을 펼쳤던 소녀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예술가의 암울한 현실을 투영한다. 성장 드라마의 끝이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타성에 젖지 않는 젊은 성인은 언제든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 웃는 얼굴로 돌아올 것이다.

– 수록곡 –
1. Getting older
2. I didn’t change my number
3. Billie bossa nova
4. My future
5. Oxytocin
6. Goldwing
7. Lost cause
8. Halley’s comet
9. Not my responsibility
10. Overheated
11. Everybody dies
12. Your power
13. Nda
14. Therefore I am
15. Happier than ever
16. Male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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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 ‘공감’ (2021)

평가: 3/5

부드러운 음색과 뛰어난 리듬감으로 엑소에서 보컬의 중요한 한 축을 도맡았던 디오가 첸, 백현 등 다른 멤버들의 뒤를 이어 그룹의 솔로 활동 대열에 합류했다. 개인 활동을 통해서는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비추었지만 군 입대 직전에 발매한 어쿠스틱 알앤비 장르의 ‘괜찮아도 괜찮아’가 음원차트에서 성공을 거두며 일찍이 솔로 가수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첫 솔로 앨범 < 공감 >은 작사와 콘셉트 기획을 비롯한 앨범의 전반적인 제작 과정에 참여한 그가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져 나가는 산뜻한 출발점이다.

디오의 보컬이 가진 감미로운 중저음의 음색과 안정적인 테크닉을 극대화하기보다는 편안한 목소리로 따뜻한 음악들을 담는다. 경쾌한 포크 기타 선율이 이끄는 타이틀곡 ‘Rose’는 디오의 강점을 부각할 수 있는 곡은 아니지만 제이슨 므라즈를 떠올리게 하는 담백한 보컬로 상쾌한 분위기가 깃든 풋풋한 프러포즈 송을 완성시킨다. 연인과의 로맨틱한 저녁 산책을 시적인 가사로 노래한 ‘My love’는 서정적인 건반 연주와 포근한 가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앨범을 관통하는 부드럽고 편안한 사운드 내에서도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다. 원슈타인의 싱잉 랩이 더해진 트렌디한 알앤비 곡 ‘I’m gonna love you’는 디오 특유의 소울풀한 음색과 그루브가 돋보이며 라틴의 향기를 더한 어쿠스틱 발라드 ‘다시, 사랑이야’는 단단한 중저음의 음색, 브리지 구간의 화려한 기교, 그리고 은은한 허밍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보컬의 특성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화려했던 아이돌로서의 자아를 벗어나 디오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Rose’의 수줍은 사랑 고백 이야기나 먹먹한 감성으로 아버지께 바치는 ‘나의 아버지’ 같은 곡들은 숫기 없고 내성적이지만 섬세한 감성을 지닌 디오의 모습과 닮아 있다. ‘광야’로 향한 SM엔터테인먼트의 기획력에 영향을 받은 앨범이 아닌 가수 본연의 색깔을 능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앨범은 ‘공감’의 힘을 발현한다.

– 수록곡 –
1. Rose
2. I’m gonna love you(Feat. 원슈타인)
3. My love
4. 다시, 사랑이야(It’s love)
5. 나의 아버지(Dad)
6. I’m fine
7. Rose(English ver.)
8. Si fueras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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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Butterfly 3000’ (2021)

평가: 4/5

전형적이지 않은 악곡 전개와 정신 착란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사이보그와 괴물이 등장하는 ‘Gizzverse’라는 세계관까지 컬트적 요소를 두루 갖춘 호주 출신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는 지난 10년 동안 무려 18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다. 사이키델릭 록과 재즈 퓨전, 헤비메탈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앨범을 만들어온 이들은 전작 < L.W. >가 나온 지 불과 4달 만에 19번째 정규 앨범 < Butterfly 3000 >을 내놓았다. 넘치는 개성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은 이 괴짜 밴드는 이번엔 여름에 잘 어울리는 산뜻한 신스 팝을 선사한다.

난해한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 Polygondwanaland >와 과격한 스래시 메탈 < Infest The Rats’ Nest >처럼 대중성과 거리가 먼 음악을 펼쳐온 이들은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이번 신작에서는 선율을 강조한 신스 팝을 내세워 감상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췄다. 덕분에 그들의 경력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듣기 쉬운 음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10곡에 걸쳐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루프는 잊히지 않는 잔상을 남기며 앨범에 일관성을 부여했다. 앨범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받는 이유지만 소리의 실험자답게 신시사이저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악기를 배합해 곡의 개별성을 확보했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기타가 상쾌한 ‘Interior people’과 월리처 피아노에 멜로트론을 더해 풍성한 소리를 구현한 ‘Blue morpho’가 대표적이다. 가창보다 기악에 방점을 찍는 모습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소속했던 일본의 신스 팝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와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을 구사했던 영국 밴드 아트 오브 노이즈가 떠오르는 지점.

만화경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의 경력은 다양한 음악에 목마른 마니아들의 갈증을 해소해왔다. 3~4분의 러닝 타임 안에서 익숙하고 비슷한 것들이 펼쳐지는 팝에서 벗어나 안전장치를 풀어버린 이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높은 이번 앨범에서도 유지됐다. 취향이 확고한 팬들과 일반 대중을 동시에 포용할 가능성을 모두 포획한 독특한 앨범이다.

– 수록곡 –
1. Yours
2. Shanghai
3. Dreams
4. Blue morpho
5. Interior people
6. Catching smoke
7. 2.2 killer year
8. Black hot soup
9. Ya love
10. Butterfly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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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미츠(HeMeets) ‘화성침공’ (2021)

평가: 3.5/5

‘그는 만난다(HeMeets)’. 특별히 목적어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시도를 해보겠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트로트 가수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던 오샘이 주축인 히미츠는 처음에 어쿠스틱 듀오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4인조 팝 밴드로 개편해 활동하고 있다. 포크 위주를 벗어난 시점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 화성침공 >은 다채로운 이력만큼 폭넓은 스펙트럼을 펼치며 체제 전환의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다.

신비로운 사운드로 시작하는 ‘복수초’부터 음악적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통기타 하나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정식으로 세션을 갖춘 밴드는 미디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팀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한다. 2017년에 발매했던 후크송 ‘믹스커피’도 편곡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인스턴트 트랙으로 변모한다. 느끼한 발성의 원곡보다 담백하게 보컬을 취하고 절과 절 사이에 신시사이저 연주를 곁들이며 중독성 짙은 일렉트로닉으로 재탄생했다.

한층 두터워진 단조 위주의 멜로디와 더불어 주목할 점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다. 단순한 사랑 얘기나 감정 공유하기가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인 ‘화성침공’ 속 유일한 희망인 주인공은 외계인과 소통을 거부하며 무기력함을 내비치고 핼러윈을 맞아 세상 밖으로 나온 ‘드라큘라’는 정열적인 탱고 리듬과 인간의 피 냄새에 취해 밤거리를 떠돈다. 허구에나 존재하던 독특한 소재들을 차용한 노랫말은 뻔하지 않은 전개와 각색을 통해 유쾌한 매력을 발산한다.

앨범 타이틀에 걸맞게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자주 나타나지만 실존하는 장소가 등장해 현실감을 더하기도 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듯한 완급 조절의 ‘런드리’는 신촌 거리의 풍경을 소환하여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정리하고 현재는 재개발을 거쳐 아파트가 자리한 ‘홍은동 334-10’은 젊은 시절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평범한 자전적 이야기로 여길 수 있으나 가사 전달력이 뛰어난 보컬과 합을 이뤄 충분한 공감대를 만든다.

히미츠는 일본어로 ‘비밀’이라는 뜻도 있다. 히미츠만의 내밀한 언어로 꾀어낸 단편집은 전자음의 도입으로 기존과는 또 다른 세계관을 정립했고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인디 아티스트의 음악적 자립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신기루를 좇던 방구석 뮤지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눈앞에 아른거리기만 했던 환상은 실재했고 점점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수록곡 –
1. 복수초 
2. 화성침공
3. 작업의 정석
4. 러브 리볼버
5. 신기루 
6. 미셸
7. 왜 눈물
8. 드라큘라
9. 홍은동 334-10
10. 런드리 
11. 달나라 전주곡
 
12. 믹스커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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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박 ‘Outbox’ (2021)

평가: 3/5

앨범 작업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존박은 꾸준히 음악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김동률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났던 데뷔작 < Knock >(2012)을 시작으로 꾸준한 싱글 발매를 통해 발라드, 록, 디스코,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해왔다. 정규 1집 < Inner Child >(2013) 이후 8년 만에 발매한 EP < Outbox >는 묵직하지만 담백한 형태의 알앤비를 택하며 음성의 미세한 떨림을 조율하고 어스름한 새벽 감성을 전하는데 방향을 둔다.

이전부터 존박과 인연을 함께해 온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눈길을 끈다. 최근 발매한 싱글 ‘3월 같은 너’와 ‘Daydreamer’를 함께한 작곡팀 모노트리(MonoTree)의 지들로(GDLO)가 수록곡 대다수에 참여했으며 ‘Night running’에서 피처링으로 호흡을 맞추었던 유라, 그리고 절친한 뮤지션 곽진언까지 가세했다. 특히 곽진언 특유의 서정적인 노랫말이 돋보이는 ‘그래왔던 것처럼’은 속삭이는 듯한 존박의 나른한 보컬이 블루지한 리듬을 유랑한다.

존박이 가진 목소리의 강점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중저음의 깊이 있는 음색과 유연한 그루브로 완성한 타이틀곡 ‘Now, us, here’는 은은한 신시사이저 연주와 함께 칠(Chill)한 라운지 바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직 띄워 보내지 못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의미의 앨범 제목 < Outbox >와 맥락을 같이 하는 ‘임시보관함’은 존박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의 재지한 멜로디에 아련한 팔세토 화음이 무덤덤하게 깔리며 여운을 남긴다.

임팩트 있는 곡의 잔상보다는 앨범의 중심을 잡고 있는 보컬의 묵직한 힘과 한층 성장한 아티스트의 역량이 핵심이다. 키보드, 베이스, 드럼 등 세션에 다방면으로 참여한 존박은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들 중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발휘한다. 비중이 커진 만큼 음악 색깔 또한 뚜렷하게 드러나며 느린 템포로 걸어온 성장의 흐름에 가속을 더한다.

– 수록곡 –
1. 그래왔던 것처럼
2. Now, us, here
3. Strangers (feat. 유라 (youra))
4. 임시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