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솔로곡의 키워드는 ‘안정감’이다. 타이틀마다 고음 셔틀을 담당했던 그룹 활동과는 달리 ‘Glassy’의 조유리는 훨씬 탄탄하고 무게감 있는 보컬을 선보인다.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사운드의 변화를 최소한으로 두고 보컬 자체의 강약 조절에 더 중점을 찍었다. 높낮이가 드라마틱 하지 않기에 자칫 루즈할 수 있었으나, 후렴구의 ‘라 라 라’가 확실하게 각인이 될 법한 멜로디이며 숨을 고를 타이밍에 배치되어 있어 중요한 역할을 도맡는다. 위와 같은 영리한 움직임에서 조유리를 음악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닮아 깔끔한 첫 페이지다.
해산한 아이즈원의 멤버였던 권은비가 가장 먼저 솔로 활동을 개시했다. 같은 소속사 선배 인피니트의 성규와 우현, 러블리즈의 케이가 그린 궤적을 따라가려는 그의 의도는 음반의 기획부터 작사, 안무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데뷔앨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아이즈원 활동을 마무리하며 발표한 자작곡 ‘평행우주’의 작업에서 도움을 받았던 정호현 작곡가가 이 음반의 한 축을 맡았다. 이 능숙한 합은 프로듀싱 팀 모노트리의 수장 황현과 함께 만든 타이틀곡 ‘Door’에서 힘을 발휘한다. 스윙재즈의 브라스와 성장한 보컬이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선택한 권은비에게 노련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 극적인 음악에 < 시카고 >, < 버레스크 >, < 페임 > 같은 뮤지컬에서 가져온 화려한 안무를 더해 홀로 선 무대에 빈틈을 보이지 않도록 한 구성 역시 그의 결정이다.
아쉽게도 섹시한 매력을 드러내는 수록곡 ‘Amigo’는 러블리즈의 멤버 베이비 소울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뭄바톤의 에너지를 넘어서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여린 보컬은 직접 작사한 발라드 넘버 ‘비 오는 길’이나 어쿠스틱한 ‘Eternity’와 같이 차분한 트랙에서 호소력을 얻는다. 아이즈원의 활동으로 구축한 화려하고 고혹적인 이미지 대신 권은비가 구사하는 이런 감성은 신선하다.
정체성을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한 아이즈원의 ‘대장’ 권은비는 조심스런 변화를 꾀했다. 그룹 활동을 되새기는 트랙들 사이에서 타이틀곡과 내면을 잔잔하게 드러낸 노래들은 그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갑작스러운 변화 대신 중심축을 차근차근 옮기는 시도는 이 음반의 ‘주인공’에게 안정적인 전환점으로 정착한다.
– 수록곡 – 1. Open 2. Door 3. Amigo (feat. 베이비소울 of 러블리즈) 4. Blue eyes 5. 비 오는 길 6. Eternity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밀어붙이는 곡이다. 전주의 임팩트 있는 신시사이저 사운드도 그렇지만, 역동적인 리듬 구조와 선 굵은 보컬 파트가 러닝타임 전반에 걸쳐 몇 차례고 충돌하는 광경은 최근의 케이팝 문법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장면. 이 정도로 선율이 강조된 노래, 더불어 각 멤버들의 목소리가 곡을 지배하는 노래가 최근에 또 있었나 싶다.
특정 단어를 포인트로 두는 구성은 ‘비올레타’와 동일. 다만 ‘비올레타’라는 단어가 절정을 견인하는 역할이었다면, 이번의 ‘파노라마’는 절정에서 또 한번의 부스터를 터뜨리는 듯한 쾌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점이 차이. 같은 전법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최근 KPOP의 경향에서 살짝 이탈하는 느낌은 있지만, 그런 점이 있기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트랙.
도입부 이후 빨라지는 템포, 느슨해진 두 번째 벌스와 메인 보컬 조유리의 빌드업을 지나고 나면 화려한 전자음으로 점철된 드롭 구간이 ‘빵!’ 하고 터진다. 여기에 정직한 댄스 비트까지, ‘비올레타의 자가복제 그 자체다.
자가복제라는 말을 완전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비올레타’를 작곡한 최현준, 김승수가 다시 만나 전작과의 연속성을 가진, 상당히 세련된 일렉트로 팝을 만들어냈으니. 다만 축제를 알리듯 브라스 악기를 모방한 사운드만 빼면, ‘비올레타’의 잃어버린 쌍둥이를 찾은 것 마냥 둘의 유전자가 동일해 말 그대로 ‘차이’를 모르겠다는 뜻일 뿐이다.
활동곡 자체로만 보자면, 기존의 논란 자체를 깡그리 무시한 채 그대로 밀고 나간 것 같으나(심지어 노래 제목도 ‘피에스타’가 아닌가!), ‘Destiny’나 ‘You & I’처럼 기만적인 트랙이 수록되어 있는 걸 보면 ‘Fiesta’가 활동곡으로서는 최선이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힘을 달라는 ‘Dreamlike’가 지금 시점의 아이즈원에게 좀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아무런 힘없는 소녀들 뒤에서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파렴치한 어른들의 셈법 치고는 상당히 매력도가 떨어지는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