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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Chat-Shire'(2015)

평가: 3.5/5

뒤죽박죽이기에 더욱 찬란한 나이, 스물셋


작품의 전권을 아티스트에게 넘겼다는 사실은, 지금은 뭘 해도 되는 시기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음악적 재능에 대한 믿음 또한 굳건해졌음을 반증한다. 그렇게 부여받은 프로듀서의 권한을 그녀는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대규모 스케일로 대변되는 히트곡 공식 대신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비교적 소소하게 꾸민 방 안에 세를 놓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다. 주로 디렉터가 만든 큰 틀에서 ‘연기’를 해왔던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결의 결과물인 탓에, ‘전작보다 좋은가?’와 같은 단순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노랫말들이 담고 있는 심상은 여느 두꺼운 수필집마냥 풍부하고, 그 또한 순식간에 번져나가길 원하는 강렬한 감정들이다. 방송활동 대신 콘서트 중심의 프로모션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프라이빗한 속성으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듣거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들려주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직접 써내려간 이야기들엔, 이십대 초반의 그 자신이 가감 없이 담겨있다. 그 속엔 일관성도 없고, 때론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있으며 반대로 다신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그렇게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트랙들을 하나 둘 따라가다 보면, 종잡을 수 없는 아이유라는 생각지도의 완성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첫번째 주자로서 길잡이 역할을 자처하는 필리 소울 스타일의 ‘새 신발’, 사랑하는 이를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의 제제에 비유해 표현한 둔탁한 비트의 ‘Zeze’부터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임을 명확히 암시한다. 이어 여러 음색의 다채로운 활용이 돋보이는 타이틀 ‘스물셋’은 인간 아이유와 연예인 아이유 사이에 생겨나는 혼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전부터 < Modern Times >(2013)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와 해당 곡에도 참여한 바 있는 가인의 ‘진실 혹은 대담’을 통해 슬쩍 내비쳐왔던 이슈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는 그 여자’를 모티브로 한 ‘Red queen’과 ‘안경’에서도 이 기조는 이어진다. 판단하는 자와 판단 당하는 자,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자는 레트로 풍의 리드미컬한 사운드, 후자는 보컬이 주는 무심함과 시니컬함의 대비를 통해 주제의 무거움을 상쇄시킨다. 여기에 ‘Rain drop’처럼 비오는 거리가 연상되는 풋풋한 사랑의 노래 ‘푸르던’과 가장 에두름 없이 그리움을 써내려간 ‘무릎’, 그리고 두 개의 보너스 트랙까지. 자신의 무기라고 할 만한 어쿠스틱 트랙들이 더해지며 스물 세 걸음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마을의 유랑기가 완성된다. 자신의 의지를 담아 야무지게 꾹꾹 걸어낸 한걸음 한걸음이기에, 가창자의 흔적이 여느 때보다도 짙게 남아있다.

사실 음악만으로 보자면, 블록버스터를 지향했던 정규작에 비해 심심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단출하면서도 담백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자작곡이 늘어나며 감지되는 송라이팅 능력의 한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빈 부분을 메우는 것이 바로 가사다. 음악에 있어 노랫말의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는 적확한 언어로 자아를 작품에 투영해 내며 음악을 듣는 이들의 공감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그녀의 프로듀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만의 감성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있도록 풀어낼 줄 아는 이야기꾼이며, 동시에 그것을 적합한 선율에 태워 퍼뜨리는 능력 또한 탁월함을 이 앨범을 통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트렌드에 맞춘 소모적 작업이 아닌, 사진을 찍듯 지금의 자아를 새겨둔 작업. 그렇기에 더 긴 생명력을 갖게 될 곡들. 전작의 평가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다른 갈래의 수준급 작품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겨난다.

생각해 보면 스물셋은 자기 자신을 알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이다. 더군다나 항상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연기해야 하는 이들은 오죽할까. 세간의 비난을 일축하는 ‘어느 쪽이 진짜게’라는 질문은, 즉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타인이 판단하는 내 모습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어차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아니 한 시간 전 다르고 한 시간 후 다른 것이 지금의 나인데. 이처럼 순간순간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꼼꼼히 기록한 이 자기고백은 이전의 디스코그래피와 또 다른 의미 있는 흐름을 개척해 나간다. 아마 시간이 지나 그의 노래가 듣고 싶을 때보다는 그의 이십대 초반은 어땠는지 궁금할 때 다시금 꺼내 들을 앨범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알게 되겠지. 이지은이라는 아이의 스물셋은, 이토록 뒤죽박죽하기에 더욱 찬란했노라고.

– 수록곡 –
1. 새 신발 
2. Zeze
3. 스물셋 
4. 푸르던 
5. Red Queen (Feat. Zion. T)
6. 무릎 
7. 안경
8. 마음 (CD Only)
9. Twenty three (C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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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Modern Times'(2013)

평가: 3.5/5

세간의 반응이란 참 얄궂다. 사건 사고와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연예계라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한순간에 아이유에게서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박탈해버렸다. 드라마 출연 등 다른 방송 활동마저도 외도로 비추어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순하지만은 않았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졌음을 의식한 탓일까 신보 이미지 컷이나 티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담고 있었다. 정도는 달랐겠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나름대로 예상했을 것이고 각각 그에 대해 씁쓸함을 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미지를 실추했기 때문에 콘셉트변화를 감행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연예인의 개인사와 작품이 꼭 일치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이미지를 꾸준히 유지하더라도 국민 여동생이라는 외피는 언젠가 버려질 것이다. 그저 그 시기가 지금일뿐이고 일전의 사건과 지금의 변화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이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은 그런 식의 해석으로 얻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일전의 사건을 덮어두고 뻔뻔하게 여동생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그를 호되게 비판하길 원했거나 아니면 그 사건을 계기로 한 파격적 변신을 원했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새로운 작품을 잘 만드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었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음반은 좋다. 모든 고민과 고뇌를 영악하게 극복할 만한 수준이다. 기능적인 의미나 지금껏 걸어온 경로를 모두 잊은 채 들어도 훌륭한 트랙들이 즐비하다. 스윙에서 재즈. 보사노바. 빅밴드의 사운드 등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다. 하나같이 < Modern Times >라는 이름에 맞게 1930년대와 관련된 고전적 감성들을 소환하는 장치들이다.

첫 곡부터 낯설다. ‘을의 연애’는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탄탄한 연주를 바탕으로 퉁명스러운 감정을 담았다. 이전과 사뭇 다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과 호흡을 맞춰 라틴 재즈를 선보인다. 느릿하고 끈적이는 마이너 선율을 담은 ‘입술 사이(50cm)’는 요염하기까지 하다. 타이틀 곡 ‘분홍신’은 이전 대표곡들이었던 ‘좋은 날’, ‘너랑 나’와 궤를 같이한다. 극적인 전개 속에 빅밴드 사운드가 특히 흥미롭다. 후반부에는 템포 변화까지 주며 능란하게 곡의 절정을 유도한다. 이전에 콘서트를 통해 공개된 적이 있던 ‘싫은 날’이나 샤이니 종현과 같이 힘을 합친 ‘우울시계’와 같은 어쿠스틱 곡도 실렸다.

곡이 주는 심상의 변화를 찬찬히 살펴보면 자연스레 가사에도 귀가 간다. 이전에도 줄곧 그래왔지만 10~20대 여성의 감성을 나타내는 데 이번 수록곡들만큼 적확한 사례가 없다. 식어버린 연애를 두고 유통기한에 비유하는 재치를 그려낸 ‘을의 연애’나 우울해하다가도 라면은 왜 먹었지 살찌겠네라면서 자조하는 모습의 ‘우울시계’ 등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간의 작품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선보여왔지만 점차 그 표현들이 섬세해져 간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기다려’나 좋아하는 상대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Voice mail’은 그 내러티브부터가 신선하다.

가사가 전달되는 힘에는 전적으로 보컬의 공이 컸다. 이전에 없던 장르들을 시도하면서 음색에도 많은 고민을 했을 터인데 ‘입술 사이(50cm)’에서 라르고 아다지오를 나긋하게 읊조리다가도 절묘하게 폭발하는 순간에는 그 목소리가 애처롭게까지 들린다. ‘Obliviate’의 보사노바 리듬을 받쳐주는 목소리도 인상적이다. ‘Voice mail’의 너가 아니면 뭐 아닌 거지 뭐하며 내뱉는 한숨 섞인 목소리에서 심상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아는 영리함도 느낄 수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선배 가수 양희은 최백호와 합을 맞춘 두 곡에 있다. 아이유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활동하던 가수들과 곡을 작업하면서 높은 연령대의 청자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설득하고 있으며 이는 이 앨범의 주된 소비 연령인 젊은 세대들에게도 긍정적인 선전이 될 것이다. 어린 가수가 택하기 힘든 고전적인 장르 속으로 신구의 조화를 주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아이유의 음악적인 욕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아이야 같이 가자’는 처연한 분위기가 곡 전체를 관통하면서 앨범 전체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한 가지 묘한 점이 있다면 음악의 가사가 은연중에 아이유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 혹은 소회로 들리고, ‘싫은 날’을 통해 지친 감정과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듯하다. ‘기다려’의 짧은 가사마저 자기 자신에게 거는 암시 혹은 주문으로 들린다.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든 계속 그 배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장점과 무관하게 아쉬운 점도 보인다. 아직까지는 기획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이돌의 모습이다. 타이틀 곡 ‘분홍신’은 여태까지 아이유를 이끌어주었던 작곡가 이민수와 작사가 김이나 콤비의 협업이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감각 있는 음악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날’이나 ‘너랑 나’에 비해선 싱겁다. 앨범의 완급 조절을 위해 삽입된 ‘Havana’의 경우 너무 심심한 나머지 다소 무기력하게 들리기도 한다. 자작곡인 ‘싫은 날’이나 ‘Voice mail’은 특유의 어쿠스틱한 감성이 묻어나지만 이마저도 앨범에 맞게 편곡과정을 거쳐 재단된 곡들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 Modern Times >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다. 가수로서의 성장만이 아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아직은 어쿠스틱 쪽에 한정된 아이유의 작곡가적인 기질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해프닝으로 휘청할 줄 알았건만 가수로서의 아이유는 그 내공이 생각보다 더 견고했다.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굳건히 선 그가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 이렇게 음악 하는 가수를 눈앞에 두고 나니 그 뒷얘기들이야 아무려면 뭐 어떤가 싶다. 곡이 말해주듯이 누구나 비밀은 있다지 않은가. 얄궂은 우리는 어쨌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아이유는 그 기대에 맞추어 보고 싶은 걸 보게 해주고 듣고 싶은 걸 듣게 해준 것이다.

– 수록곡 –
1. 을의 연애 (With 박주원) 
2. 누구나 비밀은 있다 (Feat. 가인 of Brown Eyed Girls)
3. 입술 사이(50cm) 
4. 분홍신
5. Modern times
6. 싫은 날 
7. Obliviate
8. 아이야 나랑 걷자 (Feat. 최백호) 
9. Havana
10. 우울시계 (Feat. 종현 of SHINee) 
11. 한낮의 꿈 (Feat. 양희은)
12. 기다려
13. (Bonus track) Voice mail (Korean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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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Last Fantasy'(2011)

평가: 3.5/5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은 이럴 때 하는 말 아닐까. 또래답지 않은 음악성과 ‘좋은 날’의 대히트를 통해 단숨에 ‘대세’로 떠오른 소녀의 십대 시절 마지막 페이지는 초호화 뮤지션들의 참여로 21세기형 블록버스터를 예고한 상태였다. 그로 인해 생겨난 대중들의 기대감은 올해 컴백한 여느 가수들과는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을 실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이들은 이 소포모어 작의 결과물이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는 날카로운 잣대를 겨눴고, 아주 잘하지 않고서야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우려 역시 고개를 들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곡진의 면모가 공개됨과 동시에 두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하나는 정규작만이 가지는 일관성 있는 콘셉트적 재미, 또 하나는 그녀 자신이 프로듀싱에 대한 얼마간의 전권을 쥘 것이라는 예상(사실 나조차도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을 너무 과하게 바란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었다. 이처럼 결국 전문가들에 의해 무대가 마련되었다면, 결국 흐름에 상관없이 각 트랙에 있어서 작곡가들이 얼마나 아이유의 능력을 잘 이끌어냈느냐, 그리고 아이유 자신은 맡겨진 임무를 잘 이행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성에 차기엔 약간은 부족한 기운이 감지된다. 크레디트를 보고 입이 쩍 벌어진 이들이 다수 있었겠지만 좋은 스태프가 있다고 명반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무수히 확인해왔다. 기대한 것에서 한 발짝 뒤쳐진 듯한 인상은 무엇보다도 작곡가들의 욕심이 컸음을 반증한다. 아이유와 같은 캐릭터의 가수와 작업한 일이 드문 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는 의욕이 과잉이 되어 나타난 탓이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어수선함’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달랐기에 일어난 반작용현상이다.

가장 잘 타협을 본 것은 역시 정석원과 김광진, 라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전형적인 정석원 스타일의 대곡 지향 발라드 ‘비밀’은 김이나가 쓴 섬세한 가사, 적재적소에 파고드는 웅장한 코러스 워크가 ‘소녀의 짝사랑’이라는 테마를 극대화시키며 최고의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별을 찾는 아이’에서는 기교를 뺀 자연스러운 보컬에 서정적인 선율이 더해지며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또한 그 내츄럴함을 어쿠스틱 사운드에 얹은 ‘Teacher’는 오히려 작곡가의 색깔이 약했기에 빛을 본 트랙이다. ‘미운 오리’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았던 만큼 이런 스타일의 곡에서 확실히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해 후반부 트랙인 ‘4AM’이나 ‘라망(L’amant)’은 확실히 무리수처럼 보인다. 코린 베일리 래의 감성을 표현하기엔 아직 부족한 탓인지 그저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의 목소리로 들리는 전자나, 정재형만의 작법을 더욱 무겁게 가져가려다 오히려 주인공의 자리를 지워버린 아전인수격인 후자나 모두 이상적인 협연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그 밖에도 6분이라는 시간을 디즈니 식 오케스트라로 덩치만 불린 ‘Last fantasy’, 트렌드를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좋은 날’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너랑 나’ 등 지적대상 포인트도 상당수 존재한다.

잠깐, 여기까지는 ‘기대했던 만큼 해냈을까’라는 관점이었다. 그렇다면 잠시 힘을 빼고 여러 메인스트림의 결과물들과 나란히 놓고 본다면 어떨까. 재미있게도 ‘좋은 앨범’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앞에서 지적한 곡들도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이지 일정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딱히 모난 부분을 찾기 힘들다. ‘Last fantasy’도 멜로디는 확실히 살아 있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도 편곡을 조금도 고급스럽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 원곡에 비해 표현력만큼은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올해 들어 이렇게 곡간의 간격이 없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귀를 자극하는 모음집을 주류의 최전방에서 만나본 적이 있나 싶다. 잘 짜여진 스토리북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한곡한곡이 들을만한 ‘싱글 콜렉션’을 제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듯 실망을 느끼거나 불만을 토로할 법도 한 것이 사실이다. 호화진이 참석했음에도 이렇게 밖에 뽑아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능력 있는 프로듀서를 기용해 좀 더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겠냐고.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기도 하다. 수많은 리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에 조영철 프로듀서는 단기간 내에 기세를 이어갈 EP를 내는 대신 그 열기가 식더라도 1년을 걸려 유수의 음악가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이를 단순히 ‘안정을 위한 전략’으로만 볼 수 없는 요인이 여기에 있다.

즉,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나아가려는 중간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획이었고, 아이유 자신도 색깔을 잃지 않고 1990년대의 향수를 상당부분 살려 내며 가수로서의 능력도 욕먹지 않을 정도로 발휘해냈다는 것에서 이 소포모어 작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더욱이 다른 아이돌 가수와는 다르게 또래 아이들은 이름도 모르는 생소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고, 그들을 잊지 않고 한데 불러 모았다는 점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섭외에 공들인 것에 비해 녹음 자체에 기울인 시간이 짧아 보컬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많은 이들의 지원은 그녀의 잠재력을 확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음원 순위와 음반 판매량이 말해주듯 ‘완성도 있는 작품’에 귀착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수 본인에게 좋은 수업이 되었으리라는 점까지 포함하면 득이면 득이지 잃을 것은 없던 시도였다.

말 많았던 이 한 장의 시디에 붙인 < Last Fantasy >라는 문구를 보고 이보다 더 적합한 타이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두 단어가 아이유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가 그려내는 틴에이지 시절의 이야기를 넘어, 그녀의 존재 자체로 이 의미는 이어진다. 아이돌과 같은 스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친숙함을 지니며, 싱어송라이터인 동시에 가창력도 좋은 가수의 출현, 그것은 유명 뮤지션들조차도 앞 다투어 곡을 써주고 싶은, 한마디로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판타지’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꽤 수준급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부정하며 “더 좋았어야해!” 라고 질타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그 생각이 대중들에게까지 미쳐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13곡에 담겨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해야 할 때다. 아이돌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음악을 하고자 1990년대의 영웅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는 공로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고 그로 인해 결코 생명력이 짧지 않은 곡들이 탄생했음을 인정함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과대평가와 거품을 걷어낼 시기인 것이다. 이 한 장을 마지막으로 ‘마지막 판타지’라는 짐과 아이돌 스타라는 허물을 벗고, 멀지 않은 미래에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하는 20대의 아이유와 다시금 재회하기 위해서.

– 수록곡 –
1. 비밀 
2. 잠자는 숲 속의 왕자 (Feat. 윤상)
3. 별을 찾는 아이(Feat. 김광진) 
4. 너랑 나 
5. 벽지무늬 
6. 삼촌 (Feat. 이적)
7. 사랑니 
8. Everything’s alright (Feat. 김현철)
9. Last fantasy
10. Teacher (Feat. Ra.D) 
11. 길 잃은 강아지 
12. 4AM
13. 라망(L’am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