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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LILAC'(2021)

평가: 4/5

스스로 만들어 낸 기적에 대한 이야기

이 ‘소리로 만든 꽃’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가수로서의 10년을 담아낸 이 앨범이 나의 10년 또한 되돌아보게 만드는 탓이다. 이번까지 그의 작품을 글로 남기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 선율로 수놓은 언어들에 대한 답장을 꽤나 꾸준히 써내려 온 셈이다. 그리고 한 챕터를 정리하는 소회를 마주하니, 이제서야 그의 노래들이 결코 적지 않은 삶의 실마리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 나만이 느끼는 감상은 아닐 것이다. 환호의 데시벨은 달랐더라도, 그의 음악이 새겨져 있는 인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티스트 본인이 언급하듯, 신작은 그야말로 ’20대를 닫는’ 앨범이다. 흔히 가장 찬란하다고 여겨지는 연령대를 거치며 느낀 사랑과 삶의 태도, 이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다짐을 빼곡히 채워 놓았다. 자신의 메시지나 의도를 강하게 심어 놓는 음악적 지향점도 여전. 감상이 반복될수록 듣는 이의 자아에 개입되며 여러 갈래의 공감 및 해석을 낳게 하는 속성은 이전과 일맥상통하다.

그렇다고 표현방식까지 반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부 인재 중심의 작업방식에서 탈피, 외부스탭을 대거 영입해 다채로움을 더했다는 점이 포인트. 특히 아이돌 그룹에서 흔히 쓰는 다인 협업 기반의 트렌디한 사운드 이식이 가장 큰 변화라 할 만하다. 이는 선공개곡 ‘Celebrity’를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되기도 했던 내용. ‘화려함’을 더하고 싶었다는 말처럼, 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사운드 메이킹이 우선적으로 캐치되는 부분이다.

부족하다 싶을 정도의 미니멀한 비트와 호흡을 적절히 활용한 보컬 간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색적인 ‘Flu’, 두아 리파의 ‘Don’t start now’가 떠오르는 밴드 편성의 그루브한 디스코 넘버 ‘Coin’ 등은 그런 절치부심이 꼼꼼하게 구현된 트랙들. 더불어 발음이나 억양에 강조점을 둔 보컬 운용 또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케이팝 프로덕션의 스탠다드를 자신에게 맞는 옷으로 재단하기 위해, 가창의 주안점을 가사 전달보다는 곡 무드와의 조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초면에는 굳이 아이유까지 이러한 작업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끝끝내 인정할 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역량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두번째 챕터는 바로 동료 뮤지션과의 협업. 이번에 호흡을 맞춘 파트너들의 면면을 보자면, 확실히 블랙뮤직에 포커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빈티지한 키보드 루프로 현실감 있는 연출의 연인관계를 투사하는 ‘돌림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얼의 취향이 전면에 드러나는 ‘봄 안녕 봄’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고전적인 악기 구성과 중저음 위주의 단단한 목소리로 완성한 레트로 소울 발라드가 큰 여운을 남기는 덕분이다. 인트로를 듣자면 휘트니 휴스턴의 여느 넘버가 생각날 법도. 이처럼 리듬이 부각되는 결과물의 비중을 높여 생생하고 역동적인 음악상을 그려내고자 했으며, 듣는 입장에서는 전작 < Love Poem >과의 구분점으로도 인식이 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역시나 그가 남기는 메시지들이다. 특히 전하고자 하는 심상과 이를 보조하는 음악과의 호흡은 놀라울 만큼 정교히 들어맞는다. ‘LILAC’은 펑키한 곡조로 빚어낸 화사한 분위기 아래 열렬히 사랑했던 20대와 작별하는 ‘환희’를, ‘어푸’는 오마이걸이 부른 ‘Dolphin’의 답가 마냥 음절 반복을 통한 프레이즈로 현 시점에서의 ‘의연함’을 이야기한다. 모두 과거의 경험으로 성장한 지금의 자신이 반영된 자화상 같은 노래들.

그 서사의 절정을 상징하는 ‘아이와 나의 바다’의 드라마틱함은 가장 큰 소구력을 갖춘 지점이기도 하다. 장엄한 스케일 속 망망대해로 뻗어 나가는 울림이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된 지난 10년의 여정과 맞물려 큰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함께 해 온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에필로그’라는 이름의 엔딩 크레딧까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듣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하는 대중적 감각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양한 것들을 큰 계산 없이 수록한 느낌이라 다소 어수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커리어 기반의 스토리텔링이 부여하는 통일성과 몰입감이다. 많은 것을 이뤄온 10년. 누군가는 지금의 성과가 있었기에 ‘미련없이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해주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쉬는 시간 없이 부딪힌 자기주도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꾸준히 쌓아 올려 구축한 ‘리얼리티’야 말로 이 작품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싶다.

흔들리더라도 결국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뚜렷한 자기주관. 안정을 피해 반보 정도 앞서 듣는 이들을 이끄는 파격. 이 두 축이 일궈낸 20대의 마지막. 일견 화려하게만 보이는 작품의 이면에는, 과거의 혼란을 딛고 기어이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 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피어난, 그리고 지금의 커리어를 다시금 갱신해 낼 인간 이지은의 실루엣이 투영되어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났던 기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노력으로 일궈낸 필연이었다는 것처럼.

– 수록곡 –
1. 라일락
2. Flu 
3. Coin
4. 봄 안녕 봄
5. Celebrity
6. 돌림노래 (Feat. DEAN)
7. 빈 컵(Empty Cup)
8. 아이와 나와 바다
9. 어푸(Ah puh)
10.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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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Celebrity’(2021)

평가: 3.5/5

체인스모커스의 ‘Roses’와 ‘Closer’, 핑크의 ‘Just give me a reason’의 선율을 닮은 곡 자체는 무난하다. “You’re my celebrity” 훅이 전반에 반복되며 캐치한 멜로디를 갖춘 선공개곡은 향후 공개될 5번째 정규 앨범에 대한 스케치를 그려보게끔 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하지만 이런 예고편 격의 노래조차도 아이유의 손 끝에서 쓰인 ‘사랑 시’와 함께라면 더없이 소중해진다.

‘별난 사람’들을 격려하는 마음으로부터 추출한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의 가사 한 줄만으로도 특별하다. “골칫거리 아웃사이더”도, “상상력, 아이덴티티까지 모두 다이어트”하는 이들도 점선을 따라 하나로 이어 “발자국마다 이어진 별자리”로 그려낸다. 모든 부분에서 최정상의 아티스트가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칭호를 어둠 속 마이너리티들에게 양보하며 격려와 동행을 노래하는 모습이다.

동시에 ‘Celebrity’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뮤직비디오 속 숱한 제약 속 슈퍼스타로 살았던 “기묘했던 아이”(‘너랑 나’)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팔레트’)이라는 깨달음의 시간을 거쳐, “백만 송이 장미꽃을 나와 피워볼래(‘Blueming’)”라 만개한 후 마침내 불특정 다수를 격려하고 끌어안는 서사다. 아이유 아래 자아를 고민해온 인간 이지은의 경험이 더해지며, 노래 속 응원은 가장 깊은 곳 억눌린 자아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깊게 확장된다.

작곡가 라이언 전과 클로이 라티머의 소프트 EDM도 최신의 문법이 아니지만 좋은 수로 결론지어진다. 간결한 구성과 익숙한 장르로 접근성을 넓히고 몰입도를 높인다. 평범도 비범하게 만드는 아티스트의 티저로 적절한 선택. 신세대의 감각과 현시대가 원하는 보편적 위로의 감성을 양 손에 쥔 아이유는 ‘왼손으로 그린 별’들을 모아, 소외된 이 없이 모두 함께 빛날 수 있는 차가운 우주 속 따스한 은하수를 펼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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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싱글

전대미문의 ‘거리두기’ 현실에서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는 가운데 가요계도 잠시 숨을 고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코 멈추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대중가요는 삶을 위로하고 웃음을 선사하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오마이걸(OH MY GIRL) ‘Dolphin’

식상한 패턴을 비켜가면서도 트렌드를 붙잡으려 애쓴 음악적 성의가 끝내 형통했다. 댄스 퍼포먼스 혹은 비주얼의 개가, 화제성의 산물, 마케팅의 성과 등등을 들먹이기 전에 음악 정확히는 곡의 승리였다. 듣기에 따라 건조할 수도 있고 습할 수도 있는, 조금은 우기듯 기분 좋게 반복하는 ‘다 다 다..’ 리듬에 바로 이어지는 ‘또 물보라를 일으켜’까지의 대목은 2020년 가장 중독화에 성공한, 나른하지만 무감각을 찍어 누르는 매혹의 코러스다. 

짧지만 돌아가면서 부르는 멤버 모두의 수준급 보컬도 승리를 거들었다. 이 때문에 로맨틱한 가사가 살고 실종된 청순과 설렘이 복권된다. 노래에서 화자가 좋아하는 하트 상대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오마이걸 자신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돌핀으로 팬들 마음에 새겨진다. 여성 팬이 찾고, 어른도 반응하고, 놀랍게도 헤비메탈 광이 호감을 내비친다. 고질적 성, 세대, 장르 분리의 유쾌한 은폐. 오마이걸에게 ‘걸 그룹의 걸 그룹’이란 수식을 제공해준 2020년의 러브 송! (임진모)


이날치 ‘범 내려온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영상이 시작이었다. 간결한 베이스가 도입부를 알리자 한복과 정장을 장착한 춤꾼들이 리듬에 맞춰 조금씩 전진하고, 그 위로 구수한 판소리가 힘차게 탑승한다. 다들 태연하게 제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분명 동서양의 문화가 한 데 뒤엉키는 혼란스러운 상황.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협업으로 탄생한 기상천외한 공존, ‘범 내려온다’ 속에는 조선시대 놀이판의 오색찬란한 광경이 다시금 호출되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혹은 퓨전 국악을 지향한 씽씽과 불교음악을 다룬 대형 연주단 비빙과 같이, 이날치 역시 수많은 분야를 탐험해온 장영규의 잠시 스쳐 가는 연장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곡이 지닌 기세 속에는 최근 국악계의 진보적 흐름에 단순 동참하는 의의를 넘어, 도리어 앞장설 수 있을 만큼의 우수한 포용성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역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원재료를 가지고도 젊은 세대를 스스로 들썩이게 만들지 않았는가. (장준환)


조정석 ‘아로하’ 

가수의 조건 중에서 사람들은 가창력에 비해 발성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곡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감정전달도 애를 먹는다. 또 작사가에게도 미안하고. 배우 조정석은 초등학생이 듣고 받아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발음과 뚜렷한 발성을 구사한다. 이것만으로도 조정석의 ‘아로하’는 2020년에 가장 평가받아야 할 노래 중 하나다. 

가창력도 기대 이상이다. 이재훈과 유리가 부른 쿨의 원곡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부른 조정석은 남자와 여자의 키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또박또박한 가사를 통해 사랑스런 노랫말을 더욱 아름답게 격상시킨다. 배우로서 발음이 좋은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조정석은 ‘슬기롭게’ 잘 불렀고 듣는 사람들은 그 점을 충분히 ‘납득’한다. (소승근)


창모 ‘Meteor’

올해를 대표하는 가요 싱글들을 보고 한 해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면 ‘Meteor’를 빼놓고 2020년을 논할 수 없다. 힙합이 팝이 된 시대에, 특히 ‘그’ 오디션에서가 아닌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노래하는 이 래퍼에게 세상은 손을 들어줬다. 피아노 연주부터 비트 메이킹, 프로듀싱, 랩 스킬까지 탄탄한 실력을 겸비한 음악가에게 무시 못 할 히트곡까지 터졌으니 그 누가 의심하랴.

2019년 12월 하늘에서 떨어진 ‘Meteor’로 ‘마에스트로 (Maestro)’를 밀어내며 대표곡 자리를 갈아엎은 그는 피아노 치는 래퍼 대신 카니예 웨스트식 작법과 자전적 가사, 그리고 보컬 이펙트의 이상적인 조합으로 익숙한 새 개성을 손에 넣었다. ‘덕소의 아들’에서 ‘랩스타’로 떠올랐던 그는 덕분에 한 단계 발전해 ‘팝스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위치까지 올랐다. (임동엽)


아이유(IU) ‘에잇 (Prod. & Feat. SUGA of BTS)’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개성이 뚜렷한 두 명의 28살이 만났는데, 각자의 질감을 유지하다가 융합하기도 하면서 또 서로에게 새로운 시도였을 장르를 말끔히 소화한다. 거기에 여러 차례 곱씹게 되는 언어의 힘까지. 시원하게 뻗어 나아가 카타르시스에 닿는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와 달리 오직 기억 속에 머물러있는 노랫말은 너무나도 시리기에, 어느새 우리도 ‘한 뼘짜리 추억’을 함께 거닐고 있다.     

지극히 본인의 이야기임에도 저마다 가슴 깊이 눌러 담았던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을 떠오르게 한다. 들춰내는 것도 아니고 헤집어 놓는 것도 아닌, 슬그머니 ‘서로를 베고 누워’ 그리움을 어루만진다. 아이유는 스물여덟의 반복되는 무력감과 무기력함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 보다 힘겨웠던 2020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그야말로 ‘올해의 힐링 곡’. (임선희)    


가호 ‘시작’ 

긍정적인 힘이 필요한 한해였다. 코로나 19시대에 갇혀 움츠러든 대중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시작이란 단어는 잊혀가는 일상 중 하나였다. < 이태원 클라쓰 >로 발현된 화제성이지만, 올해 2월 발매된 가호의 ‘시작’이 드라마가 종영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 곁에 머물며 시대와 호흡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희망을 원했고, 그곳에서 위로를 찾았다.

무엇보다 순수하다. 밝은 내일이라는 목표가 직선적인 록 사운드로 표현된 곡은 ‘워’와 같은 추임새 등 영상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살리며 새 출발의 설렘을 담아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청자에 다가선다. 사람의 체온과 닮은 ‘시작’의 온도에 무명 가수의 목소리는 서서히 퍼져나가며 멜론 차트 1위, 소리바다 어워즈 OST 부문 수상 등 확실한 기록 또한 남겼다. 특정한 지지층 없이 음악으로만 이뤄낸 의미 있는 결과다. 너무 뜨겁지 않게. 하지만 따뜻하게 2020년을 감싸 안았다. (손기호)


DAY6(데이식스) ‘Zombie’

반복되는 일상 속 무력해진 자신을 ‘머리와 심장이 텅 빈’ 좀비에 빗댄다. 괜찮다는 위로나, 애써 고통의 실타래를 벗어나라는 긍정의 메시지도 없다. 데이식스의 여섯 번째 미니 앨범 < The Book of Us : The Demon >의 타이틀곡 ‘Zombie’는 밴드의 작품 중 가장 어둡고 비관적이다. 벌스(Verse)와 후렴의 멜로디를 일치시킨 간소한 구성이 자연스럽게 보컬에 귀 기울이게 하고, 영케이와 원필이 직접 쓴 노랫말의 음울한 정서를 격정적으로 토해내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마음을 찢어놓는다.

뒤숭숭한 한 해였다. 세계적 전염병의 창궐에 사람들은 고립됐고, 설상가상으로 국내에는 태풍의 악재까지 겹치며 일상을 빼앗겼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들을 흘려보내며 몸도 마음도 지쳐간 이들이 많았을 터. 이 노래가 그 시대성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Zombie’는 묘하게 그런 시대의 모습과 맞아떨어지며 어두운 시기를 걷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나은 일상이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이홍현)


지코 ‘아무노래’ 

이 노래의 히트는, 이미 영미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챌린지’ 프로모션이 국내에도 정착했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초반 30초에 모든 곡의 매력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따라 하기 쉬운 안무를 장착. 다양한 분야의 셀럽을 참여 시켜 진행한 SNS 홍보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트렌드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체화한 지코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그루브한 싱잉-랩, 비트 위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보사노바의 기운, 구성을 완벽히 다르게 가져가며 곡에 몰입을 유도하는 인트로와 아웃트로 등. 남들이 조금씩 흉내만 낼 때, 그는 본인의 음악적 매력을 적확하게 녹여내며 승기를 잡았다. 트렌드에 대한 이해와 음악적 역량이 빚어낸 전략이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하느냐에 대한 그 예제, 지코가 확실히 보여준 셈. (황선업)


조광일 ‘곡예사’ 

이해되는 광기, 소화되는 분노다. 빽빽하다 못해 뾰족하게 쏟아지는 속사포 래핑과 열에 받쳐 토해내는 서사들은 흐트러짐이 없다. 더하여 확실하게 들리는 발음은 더욱 강한 주목 및 집중을 끌어낸다. 2019년의 끝에 발매한 싱글 ‘Grow back’을 출발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조광일은 올해 이 노래를 통해 확실한 자국을 남겼다.

자신을 줄을 타는 곡예사에 비유한다. 아니 그보단 아찔한 줄타기처럼 짜릿한 랩을 탄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시작과 동시에 정신을 쏙 빼놓는 그의 소리침은 어디서도 뒤지지 않을 자신감과 거친 포부로 읽힌다. 랩 스킬, 데뷔를 각인시킬 가사, 호흡. 무엇하나 빠짐없이 날카롭다. 튕기듯 쏘아내는 랩과 그 안에 담긴 생생한 래퍼로서의 자신감. 돋보이는 신예다. (박수진)  


블랙핑크(BLACKPINK) ‘Lovesick Girls’ 

블랙핑크는 케이팝 스타에서 팝 스타가 되어가는 올바른 선례를 보여줬다.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3위에 데뷔했고, 세계적인 팝 스타 레이디 가가(Lady Gaga), 카디 비(Cardi B)와의 작업으로 팝 시장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단계를 거듭하는 전술 끝에 < The Album >이 빌보드 앨범차트 2위의 쾌거를 이루며 인기의 정점을 증명했다.

‘Lovesick girls’는 팝스타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케이팝의 보존을 꾀하기에 더욱 의미 있다. 2000년대 미국의 틴 팝(teen pop)을 떠오르게 하는 에너제틱한 청량함과, 블랙핑크 특유의 마이너한 색깔을 적절히 배합한다. 여기에 케이팝의 성질을 주조하는 직관적인 신시사이저 리프와 촘촘하게 짜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짜릿한 쾌감의 원천! 비로소 국내외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이유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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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2020 올해의 팝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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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소로우(Sweet Sorrow) ‘작은 방 (Feat. 아이유)’ (2020)

평가: 3.5/5

‘작은 방’의 절반은 오롯이 목소리로만 채워진다. 촘촘하게 쌓은 화음과 소리의 부피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셈여림의 조절, 묵직한 베이스와 안개처럼 감싸는 고음역대의 아카펠라. 이들의 목소리는 어떤 악기보다 풍성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간주에서 아카펠라 위에 얹어지는 스캣은 누군가의 고립된 작은 방에 건네는 위로다. 사람의 목소리는 가장 좋은 악기이자 가장 진실한 메시지임을 보여주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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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에잇 (Prod. & Feat. SUGA of BTS)'(2020)

평가: 3.5/5

< Love Poem >의 주골격을 이루고 있던 리얼세션, 어느덧 세계의 기준이 된 역동적인 글로벌 팝. 이 거대한 합작은 가장 최신의 상대방을 마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곡 전반을 지배하는 아티스트 특유의 감성은 여전하나, 어쿠스틱한 록 사운드에 트렌디한 EDM 사운드를 가미한 음악은 이전의 나이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준다. 마치 아비치의 ‘Wake me up’과 제드와 알레시아 카라가 함께한 ‘Stay’를 합쳐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각자가 홀로 작업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이 긍정적인 시너지가 콜라보레이션을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

어느 때보다도 깊고 간결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가사 역시 곡의 중요한 부분이나, 일부러 이에 집중하지 말라는 듯 가창 자체는 딜리버리보다는 리듬을 타는데 더욱 주력하고 있다. 그저 음악의 일부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듯, 하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반드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다는 듯. 그렇게 그의 나이는 사라지지 않을 또 하나의 노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