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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절망의 끝에 선 희망 : 주디 갈란드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인적 드문 극장가에 지난 3월 25일 영화 한 편이 조용히 개봉했다. 우리에게 ‘Over the rainbow’라는 명곡으로 친숙한 주디 갈란드, 그의 일대기를 담은 < 주디 >다. 외롭게 분투하지만 항해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주디 갈란드의 생애 마지막 투어 콘서트를 그린 극이 관객들의 잇단 호응을 불러내고 있다. 이에 맞춰 그의 삶의 궤적을 좇아본다.

성공과 불행의 시작 < 오즈의 마법사 >(1939)
배우 겸 가수인 주디 갈란드의 성공 스토리는 < 오즈의 마법사 >에서 시작된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의 나라로 날아가게 된 소녀 도로시의 여행담을 담은 극은 뮤지컬 형식과 상상력 풍부한 서사로 당시 큰 사랑을 받는다. 작품의 전면에 섰던 주인공 주디 갈란드의 인기 역시 엄청났는데 영화의 중심 곡 ‘Over the rainbow’로 그해 아카데미 베스트 오리지널 송 부문에서 수상하는가 하면 이후 15년간 24개 이상의 영화를 찍으며 대중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그의 나이 17살 때의 일이다. 성공의 단맛은 불행의 씨앗을 낳았다. 작품의 반응이 뜨거워질수록 소속사 MGM의 핍박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서서히 자리 잡고 있던 할리우드 시스템 아래 몇몇 아역 배우들이 그와 함께 세상에 나왔고 그들에 비해 통통하고 그들의 미적 기준에 (상대적으로) 미치지 못했던 주디 갈란드는 MGM에 의해 수면제와 각성제를 번갈아 복용하게 된다. < 주디 >에서 그려지듯 엄격한 식단 관리가 뒤따랐으며 식욕 억제를 위해 어린 그에게 하루 담배 80개피를 강요한 사실은 그의 회고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위태롭지만 강한 홀로 서기 < 스타 탄생 >(1954)
1935년 시작된 MGM과의 계약은 1950년이 되서야 끝이 난다. 제작사가 그를 놓아준 건 그가 극심한 약물 중독과 불면증, 외모 콤플렉스 등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후의 일이었다. 잠시 할리우드를 떠나있던 그는 1954년 얼마 전 레이디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열연한 < 스타 이즈 본 >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 스타 탄생 >으로 복귀한다. 1937년 원작을 다듬은 극을 통해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성과를 얻어낸 그는 그간의 우려를 씻고 다시금 자신의 스타성을 공고히 다진다.

상승세는 1961년 카네기홀을 꽉 채운 공연으로 이어진다. 이때 공연 실황을 < Judy at Carnegie hall >이란 라이브 음반으로 묶어 발표했고 실력을 또 한 차례 인정받았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래미 어워드의 중요 본상 중 하나인 ‘올해의 앨범상’ 또한 거머쥔다. 여성 최초 수상이었다.

연이은 호재 속 주디 갈란드의 삶은 더욱 망가져갔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많은 빚을 졌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한 5번의 결혼이 끝내 그에게 남긴 건 4번의 이혼뿐이었다. 그의 자살 시도는 잊힐만하면 매스컴을 달구는 토픽이 되어간다.

다시 영화로 < 주디 >(2019)
그런 그의 일대기가 2019년 영화 < 주디 >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개봉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는 2019년 빛을 발한 이 영화는 나름의 역사적 함의를 지닌다. 2019년은 주디 갈란드의 사망 50주기가 되는 해이고 동시에 그를 바깥으로 쏘아올린 영화 < 오즈의 마법사 > 개봉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이 극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화는 찬란하게 빛나는 무대 위의 주디 갈란드에 주목한다. 제도권의 폐단, 사회의 억압된 굴레에 삶의 많은 것을 짓눌린 채 끝내 그 무게를 짊어지고 위태롭게 살아간 한 여성의 고된 일대기가 아니다. 작품은 그럼에도 그가 피어낸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여오고 그가 맞서 싸운 작지만 강한 흔적들을 꺼내 그의 삶에 새로운 항력을 끌어온다.

늘 무대를 두려워했지만 그곳에 오르면 언제나 대중을 휘어잡던 한 여성 뮤지션의 이야기. 불안하게 걷고 도망치기만 하던 그가 처음, 스스로 무대 위에 올랐을 때 그는 희망에 관한 곡이라며 ‘Over the rainbow’를 열창한다. 이를 지켜보던 관계자는 여기서 주디 갈란드의 주체할 수 없는 노래를 향한 열망을 본다.

절망 끝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뮤지션 주디 갈란드. 47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그는 끝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노래했다. 그의 삶을 다시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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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man’이 들여온 메시지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지난 2월 27일 공개된 미국의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싱글 ‘The man’ 뮤직비디오가 화제다. 맨(man)이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이 곡과 영상은 남자를 주제로 삼는다. ‘내가 남자였다면 / 영웅이 될 수 있을 테니까 / 난 영웅이 될 꺼야’라 노래하는 와중 가사보다 더 다층적 메시지를 품은 뮤직비디오가 눈에 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않은 남성, 아무데서나 방뇨하는 남성, 폭력을 리더십으로 활용하는 남성 등 이 작품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간 여성에게 제한적이고 남성에게 관대했던 여러 프레임의 전복을 시도한다. 

이외에도 재작년 소속사 이전 과정에서 불거진 스쿠터 브라운(한 때 테일러 스위프트를 희롱한 문제로 여러 차례 설전을 벌였다. 현재 테일러 스위프트의 초창기 저작권 상당수가 스쿠터 브라운 소유다)과의 마찰도 뮤직비디오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이처럼 오늘 날의 그는 여성으로서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소리 내기에 주저함이 없다.

taylor swift fearless 이미지 검색결과

2006년 16살의 나이로 데뷔한 그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자국의 전통성을 가진 ‘컨트리’를 주무기로 삼았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무엇보다 적당히 조명주기 좋은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에도 반항은 없었다. 초기 커리어의 인기곡 ‘White horse’, ‘Love story’, ‘Fearless’ 같은 곡이 그 증명이다. 건조한 컨트리를 질료 삼아 적재적소에 가미한 록, 팝적 요소가 음악의 접근성을 높였고 풋풋한 사랑을 담은 가사가 컨트리에 거리를 둔 십대의 취향까지 사로잡았다. 

2008년 2번째 정규 음반 < Fearless >로 그래미 어워드의 본상 중 하나인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다. 그의 나이 18살의 일이다. 승승장구하던 행보는 2009년 래퍼 카니예 웨스트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MTV 뮤직 어워드 ‘올해의 여성’ 부문 수상자로 무대로 오른 테일러 스위프트의 소감이 카니예 웨스트의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아야 했다”는 망언으로 얼룩졌기 때문. 그의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악재는 계속 됐다. 2012년에는 임신설에 휘말렸고 2013년에는 라디오 진행자 데이비드 뮐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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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깨달음이 됐다. 테일러의 앞장서기는 2014년 즈음 서서히 기지개를 편다. 변화의 시작은 정규 5집 < 1989 >(2014)의 수록곡 ‘Welcome to New York’에서 드러난다. 컨트리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팝’으로 노선 변경을 시도한 음반의 첫 곡으로 흥겨운 신시사이저 멜로디에 맞춰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뉴욕에 온 걸 환영해 / 너는 네가 원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어 / 남자든 여자든’. 그의 두 번째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곡인 ‘Shake it off’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떻든 ‘흔들자’ 말하는 이 노래는 막힌 청춘의 고민을 뚫어주는 시원한 ‘치얼 업 송’이자 더 이상 웅크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실제로 그는 거침없이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갔다. 앞서 언급한 라디오 DJ 뮐러는 2013년 테일러 스위프트를 자신의 부당한 해고에 일조했다는 명목으로 3백만 달러에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며 고소한다. 이에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2015년 그를 맞고소하는데 요구한 배상금은 단 1달러뿐이었다. 돈이 아닌 여성 인권의 가치를 주목시키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 뮐러는 패소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를 기념하며 한 자선단체에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큰돈을 기부한다. 

그는 점점 더 강해졌다. 2017년 ‘올드 테일러는 죽었어’ 선포하며 돌아온 정규 6집 < Reputation >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적극 가미해 이미지 변신을 하는가 하면 타이틀 ‘Look what you make me do’에선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인물들과 정면 대결을 신청한다.

사전 동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또 한 차례 ‘Famous’란 곡으로 그를 성적 대상화한 카니예 웨스트가 그 목록에 올랐으며 네티즌 역시 그의 화살을 빗겨가지 못했다.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SNS상에서 뱀의 이미지로 폄하되던 자신의 아이콘을 역으로 끌어와 스스로 뱀이 되어 타올랐다. 도를 넘은 비난이 도리어 성장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렇게 2019년 발매한 정규 7집 < Lover >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현재이자 데뷔 초와는 상상할 수도 없게 진화한 당당한 여성의 자화상이다. 밀어두었던 컨트리를 다시 가져와 성숙한 사랑을 노래하고 LGBTQ, 여성, 인권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함의 중요성에 대해 소리 높인다. 2018년에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정치색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The man’의 뮤직비디오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세상에 날린 묵직한 ‘한 방’이다. 착한 여성은 없다. 날선 비유로 성 고정관념을 개조하는 그의 행보가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생생한 경종을 울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목소리. 테일러 스위프트의 귀환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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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완성한 ‘황홀한 해방’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여성에,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슈퍼히어로 영화. 2월 5일 개봉한 영화 <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은 여성의 시선으로 보고, 여성의 시선으로 노래 부르며, 여성의 힘으로 싸운다. 배트맨, 슈퍼맨, 조커, 원더우먼을 보유하고도 마블 코믹스에 밀려 연전연패하던 DC 코믹스는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스크린에 데뷔한 ‘광인’ 할리 퀸을 앞세워 그들의 새로운 여성 서사를 선보였다.

< 버즈 오브 프레이 >는 DC 코믹스의 여성 슈퍼히어로 자경단 ‘버즈 오브 프레이’를 실사화한 작품이다. 악당 조커의 여자 친구 할리 퀸은 원래 이 팀의 멤버가 아니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DC 필름스는 양갈래 머리와 독특한 패션, 종잡을 수 없는 말괄량이 캐릭터로 대중에 각인된 할리 퀸에게 극을 이끄는 역할을 맡겼다. 고담 시 최악의 악당 조커와 결별한 할리 퀸은 이별의 아픔에 맞서, 무방비의 그를 노리는 악당들에 맞서 의도치 않게 여성들과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 수어사이드 스쿼드 >에 이어 할리 퀸을 연기한 마고 로비는 < 버즈 오브 프레이 >를 촬영하며 “여배우들로만 이뤄진 캐스팅이 독특한 연대감을 형성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주연 마고 로비를 비롯해 < 버즈 오브 프레이 >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로지 페레즈, 엘라 제이 바스코 등 다양한 인종의 여배우들이 열연을 펼쳤고, 중국 출신 신예 감독 캐시 얀이 메가폰을 잡았다.

캐스팅, 시놉시스와 더불어 < 버즈 오브 프레이 >의 여성 서사를 완성하는 것은 적재적소에 활용된 음악이다. 작년 개봉한 < 캡틴 마블 >이 1990년대 여성 로커들의 노래를 적극 활용하여 걸-파워(Girl-Power)를 강조한 것처럼, 해맑은 미소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적의 관절을 꺾는 할리 퀸과 친구들 역시 음악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확장한다.

< 버즈 오브 프레이 >의 음악 활용 폭은 < 캡틴 마블 >보다 넓다. DC 시네마는 영화 개봉과 동시에 발표한 < Birds of Prey : The Album > 사운드트랙 앨범에 음악 신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나갈 신예 여성 아티스트들을 대거 기용했다. 이들의 신곡은 패기 넘치는 액션 씬부터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까지, 영화 곳곳에 적재적소 활용되며 할리 퀸과 여성 히어로들에게로의 몰입을 돕는다.  

남아공 혈통의 래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도자 캣(Doja Cat), ‘타임(Time)’지가 선정한 차세대 100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메간 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 세 장의 정규 앨범을 히트시키며 현재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는 할시(Halsey)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걸그룹 피프스 하모니 출신으로 인상적인 솔로 활동을 펼치는 노르마니(Normani)와 로렌 하우레기(Lauren Jauregui), 지난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첫 주 13만 4천 장 판매고로 여성 아티스트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운 서머 워커(Summer Walker)도 목소리를 보탰다.

작품 속 아티스트들은 적극적으로 남성의 질서를 허물고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마릴린 먼로가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핑크 드레스를 입고 정장 남성들에게 둘러싸인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의 명장면을 재해석하는 ‘Diamonds’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다이아몬드는 영화 속 마고 로비가 마릴린 먼로를 오마주 할 정도로 극의 핵심 장치다. 이에 대해 메간 디 스탈리온과 노르마니는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가는 친구지 / 남자는 필요 없어 / 난 흘러 넘 칠 만큼 많은 보석을 갖고 있거든”이라 노래한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부(富)와 재화를 여성에게로 가져와 목소리에 힘을 더하는 래퍼 카디 비(Cardi B)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서사를 계승한 재해석이다.

음악의 고전을 가져온 부분도 인상적이다. < 버즈 오브 프레이 > 멤버 블랙 카나리 역을 맡은 배우 저니 스몰렛벨이 악당 블랙 마스크(이완 맥그리거 분)의 클럽에서 노래하는 곡은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1966년 곡 ‘It’s a man’s man’s man’s world’다. “이 세상은 온통 남자들의 것이지만 / 여자가 없다면 / 아무 소용없어”라는, 시대를 앞선 노래를 효과적으로 가져왔다.

1970년대를 풍미한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노골적인 러브송으로 1973년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I’m gonna love you just a little more’를 원곡에 가깝게 로맨틱한 풍으로 다시 부른 것과 달리 1980년대 대표적인 여성 록 보컬로 인기를 누린 팻 베네타의 ‘Hit me with your best shot’은 오리지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다시 만들어 비장함을 더했다. 고전의 입체적인 해석을 통해 할리 퀸과 그의 동료들에게 고유의 서사를 확립하고자 한 노력이다.

이외에도 < 버즈 오브 프레이 >에는 < 캡틴 마블 >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여성 로커들의 곡이 대거 삽입되어 극의 흥을 끌어올린다. 극 초반 할리 퀸이 헤어진 남자 친구 조커를 회상하는 장면에선 1988년 조안 제트(Joan Jett)의 히트곡 ‘I hate myself for loving you’가 절묘하게 흘러나오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규모 전투 씬에는 하트(Heart)의 1977년 대표곡 ‘Barracuda’의 긴박한 기타 연주가 등장한다.

개봉 전 해외 시사회와 매체들로부터 준수한 평가를 받았던 < 버즈 오브 프레이 >에 대한 논의는 개봉 후 불거진 페미니즘 논쟁으로 인해 영화 자체보다 진영 대결과 다툼으로 점철되는 모습이다. 개연성 없는 서사와 원작 캐릭터 파괴 등 높은 완성도의 작품은 아니지만, 화려한 미술로 이제껏 없었던 ‘여성 슈퍼히어로들의 연대’를 즐겁게 풀어냈다는 점은 호평할 요소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장치는 음악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음악이 살린 영화’다. < 버즈 오브 프레이 >의 영리하고도 명확한 노선의 사운드트랙과 삽입곡은 영화 속 여성 히어로들의 서사를 튼튼히 뒷받침하고 있다. 할리 퀸과 버즈 오브 프레이 멤버들의 ‘해방’은 음악이 없었다면 ‘황홀’ 하지 않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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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노래한 여성 음악가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살아가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가 있다.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적으로 탄압받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슬프게도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심지어 1월 23일,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열아홉 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시간은 치명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고 감각은 무뎌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잔혹한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이미 태동하고 있었다. 2012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송은지의 제안으로 태어난 프로젝트 ‘이야기해주세요’가 그 중심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헌정 음악을 제작한다는 이 발상은 실로 놀라운 결과를 낳았는데, 정민아, 오지은, 무키무키만만수, 트램폴린 등 당시 홍대 인디 신을 주름잡던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데 모인 것이다.

이후 2013년도 발매한 후속작 < 이야기해주세요 : 두 번째 이야기 >를 거쳐, ‘사랑과 평화의 편지’라는 부제와 함께 작년 발매된 <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이야기 >까지. 7년간 이어져 온 이들의 행보는 약 50명의 아티스트가 자취를 거치며 세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남겼다. 작품은 친절하게, 혹은 무섭게 다가온다.

친절한 방식으로 대중들의 쉬운 접근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과감한 방식으로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관통하는 주제에 맞춰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그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우수하게 살려 진심을 전달하기도, 좋은 곡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길이길이 기억되는 방향을 택하기도 한다.

‘들판의 풀처럼 작고 작게 / 노래 부르며 살고 싶었지 / 작고 작게’ – 정민아 ‘작고 작게’ 中

싱어송라이터와 가야금 연주자를 동시에 겸하는 정민아의 ‘작고 작게’는 치유와 공감을 보편적으로 유도하는 그 좋은 예시다. 가야금 특유의 절제된 가벼움과 동양적인 선율이 청자의 마음을 거부감 없이 두드린다.

어쿠스틱 신스팝을 지향하는 루싸이드 토끼의 ‘돌을 없애는 방법’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스타K >에 출연한 적 있는 포크 가수 이정아의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 또한 그렇다. 부드러운 기타 사운드와 소박하고도 서정적인 가사가 남기는 깊은 인상으로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할머니들의 소망을 노래로써 실현한다.

‘내 머릿속에 든 뭐든 그걸 기억하는 것 / 더는 새기고 싶지 않아서 잊어가는 것 / 잊는다고 다 없던 날이 된다면 / 제일 앞서 전부 다 잊고 /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갈 거야’- 슬릭 ‘살아가고 싶어’ 中

반면 데이즈얼라이브 소속의 래퍼 슬릭은 특유의 가감 없는 진솔함으로 사회가 지녀야 할 경각심을 예리하게 직시한다. 그의 래핑은 차분하고 덤덤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적나라하게 내뱉는다. 가사에 적힌 대로 우리는 앞으로 ‘내 머릿속에 든 뭐든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것. 이에 소월의 보컬이 합쳐지니 놀라운 흡입력을 뿜어낸다. 이는 여러 분야에 포진된 각 아티스트가 자신의 방식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대로 숨이 멎을 듯이 힘들다 해도 / 잊지 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 김완선 ‘Here I am’ 中

무엇보다 대중들의 이목을 끌며 앨범의 이름을 알린 일등공신은 가요계 유명 스타들의 합류다. 이상은의 ‘성녀’와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 < 눈길 >의 OST로 삽입되기도 한 이효리의 ‘날 잊지 말아요’, 그리고 김완선의 ‘Here i am’이 그렇다. 이들은 명료하고 감동적인 가사와 완성도 높은 곡, 그리고 높은 네임밸류로 일반인의 관심을 유도하며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우리도 ‘당신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할머니들의 부담을 덜어 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힘찬 연대의 선언인 셈이다.

특히 ‘성녀’의 ‘그저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 / 그녈 안아줬음 좋겠어 부서지지 않도록’ 이라는 대목이 뇌리에 남는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그저 조용히 곁에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일본놈들이 오면 나는 일본에서 한 일을 고대로 다 말해 / 역사를 역사같이 말해야지 / 저네가 한 일을 저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 신현필 & 이봉근 ‘흩어지는 기억’ 中

앞서 언급한 곡들이 조금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면, 몇몇의 곡들은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각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얇은 어조로 가사를 읊조리며 위태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오지은의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와 처절한 내레이션으로 몰입을 자아내는 신현필과 이봉근이 참여한 ‘흩어지는 기억’이 그렇다. 이들은 적나라한 가사로 반성과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회에 변화를 촉구한다. 저 너머 가려진 참혹한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작비 문제로 위기를 겪은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는 텀블벅 후원과 전작의 수익금으로 6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황보령, 악단광칠, 9와 숫자들, 레인보우 99, 호란 등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아티스트와 남성 음악가들이 동행에 합류하며 힘을 보탰다. 물론 수많은 대중들 또한 기부와 지지를 통해 도움의 손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값진 버팀목이다.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있고, 저마다의 작은 사랑들이 모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듯, ‘이야기해주세요’는 혼자가 아닌 모두의 의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던 프로젝트다. 음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통은 음악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용기 있는 그들의 발걸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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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우리의 목소리 : 여성, 그 다양한 감정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여성의 노래를 꺼낸다. 그리고 듣는다. 이 과정을 조금만 주목해보면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가요 속 발화가 그리 다채롭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는 굴레에서 몇 가지 감정은 지워지고, 몇 가지 감정은 순화된다.

비단 사랑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가요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외하고서도 여성의 마이크를 통해 불려 져온 곡조는 적극적일 때 보다 꾸며질 때가 많았다. 사회의 입맛에 맞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다.

수동성을 지운, 오롯이 내면의 얽히고설킴을 직선적인 노랫말로 다룬 4장의 음반과 4명의 음악가를 소개한다. 다양한 사랑의 단면, 다양한 감정의 단면을 제약 없이 표출하는 그들의 음악은 그간 숱하게 지나쳐온 어떤 마음들을 건드린다. 사회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 또한 굽히지 않는 그들을 소개한다.

1. 오지은 < 지은 > (2007)

오지은은 로커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위주의 가벼운 사운드로 구성을 잡았지만, 그의 첫 번째 정규 음반 < 지은 >의 곳곳을 수놓는 건 록의 ‘거침’을 구현하는 그의 목소리다. 지금처럼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7년, 그는 이 앨범을 크라우드 펀딩의 형식을 빌려 발매했다. 몇몇 곡을 먼저 들려준 뒤 선입금, 선주문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했던 것인데 그의 예상보다 뜨거운 협조로 후에 이 음반은 정식 유통 과정을 밟게 된다.

낮고, 강하고, 어둡다. 때론 ‘널 보고 있으면 / 널 갈아먹고 싶어'(‘화’) 성토하다가도 ‘오늘 하늘에 별이 참 많구나 /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이상하지'(‘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노래하며 외로움을 꺼내 놓는다.

여기에는 솔직한 일기장 같은 독백이 녹아있다. 또한 과감하게 내지르는 보컬의 솟아남이 있다. 불안정한 사랑에 대한 성토, 삶의 고독, 고통, 씁쓸함이 짙은 회색의 공간으로 묻어난다. 연약함을 드러내 역으로 강해졌다고나 할까.

이후 전작과 동명의 소포모어 < 지은 >과 < 3 >을 오랜 시간을 거쳐 발매했으며 ‘오지은과 늑대들’, ‘오지은서영호’와 같은 프로젝트 그룹을 통해 다채로운 음악을 전달하고 있다. 데뷔부터 덧붙여진 ‘홍대 마녀’란 프레임을 재고하게 하는 소소한 움직임을 이끌기도 했다. 최근에는 글로 내면을 확대하며 여전히 높낮이를 품은 감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섬세하게 포착 중이다.

2. 슬릭 < Colossus > (2016)

슬릭은 주저 않고 앞에 선다. 논란이 되는 사건에 의견을 남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며, 연대의 힘을 믿고, 이를 연결할 줄 아는 영리함 또한 지녔다. 2017년 발매한 싱글 ‘Ma girl’이 그 대표곡. ‘나는 너의 용기야 / 더는 두려워 않아도 돼’. 노래에는 누군가가 절실히 듣고 싶었을 그 다독임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 그의 첫 정규작 < Colossus >는 세상의 기준으로 분류될 수 없는 존재인 Colossus를 전면에 내세운다. 범주화를 거부하는 이 발화자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고(‘공연장 맨 앞줄에’), 랩에 대한 강한 자신감(‘Rap tight’)을 뽐내는 와중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내가 아니지만 / 내가 아닌 나도 내가 아니지'(‘Liquor’) 외치며 사회와 존재 사이의 고민을 이어나간다.

기준, 규율, 시선. 나와 너를 둘러싼 어우러짐 등 이 음반을 통해 슬릭은 지나온 상념의 흔적을 타이트하게 내뱉는다. 에둘러 비판을 미화하지 않고 애써 흔들림을 포장하지 않으며 묵직하게 고수하는 신념들은 그 자체로 올곧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바닥에 제대로 된 여자 래퍼’란 캐치프레이즈를 꿋꿋이 지켜나가며 오늘도 목소리가 필요한 많은 무대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3. 김사월 < 로맨스 > (2018)

요즘 인디신에서 가장 바쁜 뮤지션을 꼽자면 김사월이 아닐까? 동료 음악가들의 공연에 자주 힘을 보태고, 낭독 및 강연 무대에 서고, 얼마 뒤 발매될 첫 에세이집과 얼마 전 성황리에 끝마친 단독 공연까지. 분명 김사월의 세력은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비단 활동성뿐만 아니다. 팬덤의 우열 순위를 가려봐도 그의 이름은 꽤나 상위권에 안착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어쿠스틱 기타로 건조한 포크를 유영한다. 이때 까슬까슬한 그의 음색은 음악에 시린 바람을 불러온다. 나는 이 찬 공기가 김사월의 노래를, 그의 족적을 계속 따르게 하는 일종의 자극제라고 생각한다. 끓어오르는 감정보다 어쩐지 관조적으로 읊어내는 이야기가 때로는 문학적으로 또 때로는 적당한 거리 두기로 마음을 울린다.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우리의 일상은 어떤가. 안쓰럽고 서글프고 그래서 헛헛하다.

2014년 김해원과 함께한 EP < 비밀 >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2015년 솔로 음반 < 수잔 >에 이어 한 장의 라이브 음반 < 7102 >, 또 한 장의 정규작인 < 로맨스 >를 발매했다. < 로맨스 >에는 실패한 사랑의 조각이 담겨있다.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 노래하는 ‘프라하’, ‘누군가에게’, ‘세상에게’와 나에 대한 사랑의 실패를 적고 있는 ‘죽어’ 등 그가 전하는 사랑의 온도는 유난스럽지 않게 우리를 파고든다.

4. 천미지 < Mother And Lover > (2019)

2014년부터 홍대 일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천미지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일전에 전국 각지를 돌며 풍경이 주는 영감을 음악으로 포착해온 레인보우99의 음반 < Alphaville >을 함께 작업하긴 했지만 단독으로 주도권을 꾸린 건 이 앨범이 처음이다.

그는 여기서 여성, 엄마, 그리고 사랑을 논한다. 그것도 아주 거칠고 폭발적으로. 지금은 대중의 호응에서 조금 멀어진 개러지, 펑크, 포크를 적극 차용해 서사를 꾸리는데 그 접근법에 브레이크란 없다. 엄마의 고통을 어렴풋이 담은 ‘Satisfiable baby’, 엄마와의 불화를 가상의 상상을 통해 품어낸 ‘I want to be your mother’, 사랑의 황량함을 난폭하게 다룬 ‘Searching for lover’ 지나 유일한 모국어인 끝 곡 ‘도피’로 문을 닫는다.

지금껏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전면으로 부각한 적 없던 소재들은 이 앨범의 곳곳에 주요 동력이 된다. 대다수의 곡이 영어로 적힌 탓에 해석상의 난점은 있지만 적어도 그 어려움이 이 음반의 방향성까지 해치지는 못한다. 알싸하고 투박한 음폭이 만들어낸 선율이 모두에게 선호될 멜로디는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정확히 기억할 울림이 있다. 귀 기울여야 할 여성의 성애, 여성의 삶과 관계가 녹아 있는 음반. 그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