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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가수유랑단,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지난 5월 25일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의 막이 올랐다. 시작은 지난해 <서울 체크인>에서 던진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효리의 가벼운 제안이 현실이 됐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그리고 화사가 모였다. “우리가 바라던 무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목표로 이들이 한데 뭉쳐 전국을 돈다. 해군사관학교의 작은 강당, 3천여 명의 인파가 모여든 진해군항제 폐막식, 대학가 축제 현장. 이들의 유랑 길이 그 규모를 가리지 않고 펼쳐진다.

여자, 댄스, 가수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 댄스, 가수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그나마 시선이 나아졌지만 맏언니 김완선이 데뷔한 1980년대의 분위기는 달랐다. 몸을 흔드는 댄스. 육체에서 분리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지며 작은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게 되었을 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물론 1960년대 ‘키다리 미스터 김’으로 큰 인기를 끈 이금희가 댄스 음악의 원조라 불리기는 하지만, 오늘날 ‘댄스 가수’란 호칭을 굳힌 건 명백히 김완선이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독집 제1집>이란 음반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그가 내세운 건 ‘섹시한 분위기’였다. 트레이드 마크 격인 비음으로 “나 오늘 밤엔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노래를 부르고, 신체를 적극 활용한 과감한 율동을 선보였다.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댄스. 비슷한 시기 소방차, 박남정 등이 댄스 가수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김완선이 불어온 반향에 미치지는 못했다. 폐쇄적이고, 엄숙한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김완선은 은근히 섹슈얼한 면모를 어필하고 이를 압도적 카리스마로 표출하며 그 빈틈을 파고든다.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댄스 가수임에도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등 거물급 록, 포크 뮤지션에게 곡을 받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포용했고, 춤뿐만 아니라 노래 완성도에도 신경을 썼다.

섹시 가수 우상이 되다

1990년대 박진영이 남성 댄스 가수로 이름을 펼치기 전까지, 댄스 가수는 대부분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박진영 이후에도 댄스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장르의 대표성을 장악한 몇 안 되는 분야다.

엄정화표 댄스 음악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1993년 고 신해철이 써준 ‘눈동자’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데뷔 초 가수보단 배우로 더 조명을 받는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1997년 발매한 정규 3집 <후애>의 수록곡 ‘배반의 장미’부터였다. 노래 가사에 맞춰 특유의 표정 연기를 선보이고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부각한 의상 등은 대중에게 엄정화의 이름을 아로새긴다. Y2K 새천년의 시작과 종말을 앞둔 때에는 테크노 곡 ‘몰라’로 시대를 응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엄정화는 ‘Poison’, ‘초대’ 등의 곡을 통해 이별 후의 감정,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사랑의 과정 등을 노래하며 제 영역을 구축한다. 반면 이효리는 시작부터 강했다. 요정 콘셉트의 그룹 핑클에서 솔로로 재도약한 2003년부터 그가 내세운 건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며 당당한 여성상이었다. 10분 만에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노래하는 ’10 MINUTES’가 그 시작. 당시 유행한 힙합 사운드를 바탕으로 카고 바지에 크롭탑을 입고 무대를 활보하던 이효리의 모습은 뭇남성은 물론 여성의 마음까지 훔친다.

몇 차례 표절 관련 문제로 몸살을 앓긴 했지만 이효리는 그야말로 꾸준히 내 것을 하며 길을 개척했다. ‘섹시함’에 집중되어 있던 노래들이 외적 이미지에서 개인 서사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보다 친근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천하무적 이효리’, ‘이발소 집 딸’ 등의 노래가 꼭 그랬다.

인디 음악가와 협업하며 댄스에 로큰롤, 포크 등의 소스를 이식하고 가장 최근 발매한 정규 음반 < Black >(2017)에서는 일렉트로니카, 트립합을 끌어오기도 했다. 셀프 프로듀싱 및 작사 작곡 비중도 상당하다. 음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풀어나감에 있어, 대중과 호흡함에 있어 어떤 성숙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No.1’과 ‘Ending Credit’.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이러한 언니들이 ‘No.1’을 부르는 보아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특히 보아는 대형 레이블 소속으로 데뷔부터 ‘기획형 아이돌’이란 반발 아닌 반심 속 활동을 이어왔던 아티스트가 아니던가. 활동 시기는 이효리와 비슷하지만, 워낙 어린 13살에 데뷔한 덕에 풍파도 많았고 변신과 성장의 폭도 컸다. 지금이야 외국 현지 맞춤의 프로덕션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보아가 막 일본에 발을 들일 때는 그 어떤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01년 일본 데뷔 당시 부족한 라이브 실력을 지적받고 악착같이 연습을 이어 나갔다는 일화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 데뷔 초 립싱크를 하며 퍼포먼스 위주 공연을 선보이던 보아가 라이브, 댄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까지 흘린 땀방울은 쉽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Valenti’, ‘아틀란티스 소녀’, ‘Girls On Top’ 등 히트곡이 있었음에도 어느 정도 회사가 만든 메시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가 정규 7집 < Only One >(2012)을 기점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모습들은 아시아의 별 보아의 가치를 더욱 드높게 치켜세운다.

김완선으로 시작해, 엄정화, 이효리, 보아를 거쳐 2014년 그룹 마마무를 통해 데뷔한 화사가 힘을 합친 댄스가수 유랑단. 막내 화사가 대표하는 것은 앞선 언니들의 호흡에 맞닿은 ‘섹시함’과 주도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댄스’다. 몇 차례 화제를 일으킨 자유분방한 화사의 퍼포먼스는 앞선 언니들이 겪었듯 ‘논란’이란 꼬리표가 되어 잡음을 만들었다. 데뷔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은 화사였고 인기 반열에 오른 후에는 선정적인 옷차림, 댄스에 관심이 집중되며 화사를 막아서는 듯했지만, 솔로 곡 ‘멍청이’, ‘마리아’가 연이어 흥행하며 그는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됐다.

이 여성 댄스 가수들의 유랑이 반가운 건 이 같은 이들의 스토리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의 관심이 각 아티스트를 조명하든 조명하지 않든 이들이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내 음악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더 방송이 전하는 감동에 불을 지핀다.

이 대목에서 보아의 ‘No.1’과 사랑의 마지막, 혹은 인생의 크레딧이 올라간 후의 감정을 그린 엄정화의 ‘Ending Credit’를 소환하고자 한다. 언제고 넘버 원이기도 하며 또 언젠가 가수로서의 엔딩 크레딧을 조심스레 상상하는 댄스가수들의 유쾌한 공연 방랑기. 5명의 ‘여성’ ‘댄스’ ‘가수’가 모여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며 우리를 다시 춤추게 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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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힙합에서 살아남기’ 혹은 ‘힙합으로 살아남기’

여느 때와 같이 음악을 듣다간 깜짝 놀랄 가능성이 크다. 카디 비와 함께한 싱글 ‘WAP’으로 한 번, 비욘세가 리믹스로 참여해 힘을 실어준 ‘Savage Remix’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놓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곡 ‘Body’의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보자. 단박에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여성의 신음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정말 가득 채운다. 잠깐 잠깐의 효과음이 아니라 아예 신음이 사운드 소스가 되고 비트가 됐다. 적나라한 음성에 곡을 멀리하려 해도 이것 참 난감하리만큼 메인 멜로디가 선명하다. ‘하악 하악’하는 교성 위에 ‘Body’를 연음으로 연속해 뱉어 ‘바디야리야리야리’하는 후크 라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 청산별곡 >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버금가는 중독성이다.

이게 바로 숨어 듣는 명곡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짜릿한 해방감이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정숙한 여성 되기의 정반대 이미지를 끌어오다니. 시원하고 강렬한 전유이자 날카로운 전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이분화, 즉 ‘성녀’와 ‘성녀가 아닌 자’의 프레임을 벗어나 당당히 그 위에 섰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서.

여성은 언제나 잣대 위에 올랐다. 혹은 일종의 소재나 수단으로 자리했다. 남근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코닉한 로고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 중인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그들이 느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로커의 마초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소환됐고 때문에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처럼 노래하거나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무성(asexual)의 전략을 취했다. 남성을 흉내 내는 전자는 윌슨 자매가 만든 밴드 하트(Heart), 재니스 조플린이 있으며 후자는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등의 포크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중 힙합은 유달리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TLC, 니키 미나즈, 카디 비 등을 경유해 주체적 여성을 손에 쥐고 달린 음악가들의 궤가 있지만 그에 반하는 여성 대상화의 벽은 견고하다. 여전히 많은 래퍼가 ‘퍽(Fuck)’과 ‘비치(Bitch)’를 마침표처럼 사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다’를 넘어서 ‘진짜 나쁜 여자들을 나쁘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격론이 앞 다퉈 튀어나온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설사 그 본질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성 차별적이라면 변해야 한다.

힙합을 즐기려면 검열과 염려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시 내가 ‘비치’는 아닌지, 그들이 말하는 ‘퍽’이 혹시나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닐지. 노래 하나 듣는데 뭐 이렇게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꺼내오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언제고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힘주어 철창을 걸어 잠그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힙합의 ‘힙(hip)’함을 따라가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Body’는 그 장애물을 부수고 뒤집는다. 몸은 가장 먼저 사회에 귀속된다. 요새 회자하는 ‘말하는 몸’이라는 문장은 몸 안에 적힌 역사와 몸에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잣대를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스탈리온은 몸을 가져와 말한다.

“Body crazy, curvy, wavy, big titties, lil’ waist
미친 몸매, 매끈, 늘씬, 큰 가슴, 호리호리한 허리”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몸을 다져도 이를 부각해서는 안 되는 묘한 엄숙 문화를 뒤틀어 당당하게 자기 어필의 포인트로 삼았다. 힙합에서의 여성이 발화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존재였다면 노래 속 그는 다르다. 여성 스테레오타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감을 뽐낸다. 일면 무례하고 그래서 불경한 여성이 될 수 있겠지만 꼿꼿한 기지에서 힘 있는 균열이 뻗어 나온다.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관습적인 여성성의 덫을 피해 나가는 그의 서사에 호쾌한 자기다움이 묻어난다.

유로 댄스로 유럽과 미국을 이어낸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의 ‘Love to love you baby’에도 신음이 담겨있다. 이는 불세출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의 소리는 보컬 액슬 로즈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연기의 의도만은 다른 곡과 같다. 심지어 그들의 곡 ‘Rocket queen’은 성관계 중인 여성의 신음을 그대로 녹음해 사운드로 삼았다.

이렇듯 신음이 노래에 포함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음이 여성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다. ‘Body’의 함의는 이처럼 다채롭다. 그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신음을 앞세워 자신을 그린다. ‘힙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의 빗장을 걸어왔다면 그의 곡은 여성이 ‘힙합으로 살아남기’에 적합한 새 활로를 개척했다.

‘Body’에는 힘센 여성성의 발화가 있다. 그의 존재 앞에 성적 자유인가 혹은 남성의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따라붙을 것이며 나아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철옹성의 논박이 뒤이어 올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Body’를 풀어낼 맥락은 많다. 오랜 시간 괄호 치워지고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해체했다. 여성이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고 밝힐 수 있다. 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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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목소리 ‘We, Do It Together’

몇 달 전부터 SNS에 심심찮게 공유되는 포스트가 있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연대의 목소리가 그 키워드였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 We, Do It Together >.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앨범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이는 이들이 쏘아 올린 에너지만큼이나 금방 뭉쳐졌다. 진즉에 애초 목표 금액인 4백만 원을 달성했다. 지난 11월 16일, 이들의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216%인 8백 6십여 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만큼 많은 지지가 쏟아졌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12팀의 인디 뮤지션들이 만든 12곡은 록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음악가부터 활동 기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까지 고루 모였다.

인디 씬의 태동부터 선 굵은 이미지를 남긴 ‘황보령’, 국악인 이자람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비롯하여 지난해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한 ‘천미지’, 문소문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카코포니’, 다국적 밴드 ‘티어파크’ 등 다양한 색채의 뮤지션들이 한뜻 아래 손을 잡았다.

GIRLS INDIE] '홍대여신' 거부하는 12팀 록밴드 프로젝트가 온다 > 뉴스 | 라온미디어 - 인디음악 뉴스

시작은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이 가진 의문 덕이었다. ‘일본에는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은데 왜 국내에는 없을까?’ 작은 의문은 이내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들을 만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우후죽순 터진 인디 씬 내의 여러 성 관련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는 “홍대에 탈덕 유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를 더욱 널리 크게 알리자는 목표 또한 겸했다.

빌리 카터의 보컬 김지원을 동반자로, 일렉트릭 뮤직의 대표 김민규를 조력자로 얻었다. 이름하여 ‘WEWEWE 기획단’이 탄생했다. 2018년에는 여성 퀴어 음악가를 위한 기획 시리즈 공연을 두 차례 펼쳤고 2019년에는 여성 음악가, 창작자, 관객이 연대하는 ‘wewewe networking party’를 주관했다. 그렇게 2020년의 끝, 오랜 예열 끝에 < We, Do It Together >가 발매됐다. 앨범 발매 이후 11월 29일에는 ‘WeWeWe festa2020’을 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콘서트 현장에는 40여 명의 한정된 인원만 참석했지만 유튜브 생중계로 그 열기를 전했다. 작지만 강한 움직임이 실행됐고 실현된 순간이었다.

멜로디가 부각되는 이모 팝 밴드 아디오스 오디오의 ‘숨’은 ‘너와 나의 숨을 뱉어 / 두려워 하지마’ 노래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오묘하게 차올라 어딘지 시린 감정을 삼키게 하는 다브다의 곡 ‘무궁화’, ‘잘 했습니다 / 수고 많았습니다 / 괜찮았습니다’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는 ‘Good night’의 아마도 이자람 밴드 등 음반에는 즐길 노래들 또한 많다. 모두가 이 앨범을 위해 직접 노래를 썼다. 불협화음을 부딪치며 기이한 쾌감을 선사하는 티어파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술에 취했다는 변명 / 먹통의 부끄러움이 왜 우리의 몫인가’ 일갈하는 에고펑션에러의 외침은 전에 없이 시원한 사이다 같은 한방이다.

이유 있는 목소리가 모여 이유 있는 변화를 썼다. 이들 앞에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붙이는 것이 어쩐지 또 다른 무게를 지어주는 것만 같아 고려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멋지게 새-흐름을 시작했다. < We, Do It Together >. 작지만 강한 조류가 균열을 낸다. 주체성을 필두로 메시지를 전하는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있다. 이 음반은 묻게 한다.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그리고 이들은 듣게 한다. 이들이 설파하는 분노의 메시지와 품에 안은 연대의 마음을. 따뜻하고도 강렬한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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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P, 카디 비의 즐거운 역할 바꾸기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래는 래퍼 카디 비(Cardi B)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이 8월 7일 발표한 ‘WAP’다. 발매 첫 주만인 8월 18일, 총 9300만 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44번째 곡이 됐다. 종전 최고 기록인 아리아나 그란데 ‘7 rings’의 첫 주 총 8530만 회 스트리밍 기록을 가뿐히 제쳤다.

하지만 ‘WAP’는 다른 의미에서 훨씬 ‘뜨거운’ 곡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축축이 젖은 아랫도리(Wet-Ass Pussy)’다. 1990년대 DJ 프랭크 스키(Frank Ski)의 노래 일부분을 따온 샘플은 러닝타임 내내 ‘여기 창녀들이 있어(Whores in the house)’를 읊조린다. 제목, 가사, 뮤직비디오까지 파격적인 선정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이 노래는 가사 한 줄 해석하기도 곤란할 정도다. 쉽게 말해, 굉장히 야하다.

거리의 스트리퍼로 출발해 ‘Bodak Yellow’로 빌보드 정상에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카디 비, 올해 비욘세와 함께 ‘Savage’를 히트시킨 메간 더 스탈리온의 자신감이 곡 내내 구체적인 판타지와 성행위 묘사로 드러난다. 카디 비가 원기 왕성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앞세워 선언하면 메간은 기관총처럼 쏘아 붙는 랩으로 에너지를 더한다. 간결한 구성 위 오로지 힘, 권력, 에너지로만 곡 전체를 꽉 채운다. 

때문에 ‘WAP’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노래와 아무 상관없는 슈퍼스타 카일리 제너의 깜짝 출연도 논란이지만 가사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표현에 관대한 미국이라 해도 그 허용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노랫말과 뮤직비디오는 논란의 대상이다.

James Bradley | WAP | Know Your Meme

‘WAP’ 논란을 부채질한 것은 미국의 보수 측 인사들의 발언이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공화당 후보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는 트위터를 통해 ‘카디 비와 메간은 하나님 없이 자란, 강한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들의 전형’이라며 ‘WAP를 듣고 내 귀에 성수를 붓고 싶었다’는 혹평을 퍼부었다.

같은 주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최근 공화당 하원 경선에서 탈락한 디애나 로레인(Dianna Lorane) 역시 “역겨운 ‘WAP’가 여성 인권을 100년 정도 후퇴시켰다.”라 불평하며, 카디 비와 유세를 함께한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2020년 민주당 대선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지지자들을 ‘쓰레기’라 비난했다.

힙합을 ‘쓰레기 음악’이라 평한 바 있는 유명 우파 논객 벤 샤피로(Ben Shapiro)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결과”라며 비꼬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나 인권에 관심 없는 ‘젖은 엉덩이’에 불과하다. 이런 의견을 비판하면 바로 ‘미소지니(mysogyny : 여성 혐오)’로 찍히기 십상”이라 조롱했다. 과연 이들의 발언처럼 ‘WAP’는 그저 천박하고 음탕하게 색만 밝히는 노래인 걸까? 

카디 비의 ‘19금 발언’은 그리 낯설지 않다. ‘WAP’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SNS를 통해 ‘뜨악’할만한 발언, 혹은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 혹은 큰 웃음(?)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음담패설만은 아니었다. 힙합 그룹 미고스(Migos) 멤버이자 남편 오프셋(Offset)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오늘 X 좀 빨리고 싶나 본데?’라 능청스레 감탄하면서도, 신곡 발표 후 여성들에게 그들의 ‘WAP’를 유지하는 방법을 코믹하고 진지하게 설파할 때도 항상 대화 속 성적 주도권은 언제나 카디 비 본인, 즉 여성에게 있었다.

스트리퍼 출신임을 거리낌 없이 강조하는 카디 비는 언제나 과감하게 자신의 욕망과 성적 매력을 표현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첫 1위의 영예를 안긴 ‘Bodak yellow’부터 ‘I like it’까지 그의 서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직접 남자를 고르며 명품에 둘러싸여 있는 삶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진실하고 거리낌 없는 감정 표현이야말로 카디 비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로 만든 핵심 요소다. 

All the hot girl looks to copy in Cardi B and Megan Thee ...

’WAP’ 역시 숨김이 없다. 대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은 음탕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성이 여성을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삼고 성관계를 노래하면 ‘대범하고 멋진’ 것이 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의 욕망은 부정되기 일쑤다. 숱한 힙합 노래들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는 반면, 두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노래하는 ‘WAP’가 남성을 수단화하지 않음에도 몰매를 맞는 데서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17세기 노예 신분으로 미 대륙에 끌려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에 시달려왔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치세 하의 도덕적인 ‘집안의 천사’ 여성상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흑인 여들은 성적 능력이 특히 발달한 음탕한 존재라는 차별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블랙-피메일(Black-Female) 들은 숱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며 거의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으나 욕망의 주도권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Recognizing Racist Stereotypes in U.S. Media | by Suzane Jardim ...

‘WAP’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에서도 이세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래만큼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19금 노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WAP’만큼 화제와 논란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2013년 MTV 비디오 어워즈에서 로빈 시크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혀를 내밀 때도, 아리아나 그란데가 격렬한 하룻밤을 보내고 게다리 걸음을 걷는다는 ‘Side to side’를 부를 때도, 두아 리파가 ‘밤새 몸을 섞자’는 ‘Physical’을 노래할 때도 여론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WAP’를 불편히 여기는 시선에는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있고, 이는 성차별은 물론 인종차별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동시에 이들 대중은 ‘WAP’의 욕망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의 발화에는 무관심하다. 카디 비는 이를 꼬집어 “숱한 여성 래퍼들이 사회를 비판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관심도 없더니, ‘WAP’에는 모두가 떠들썩하다”는 의견을 SNS에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만 해도 랩소디(Rapsody), 노네임(Noname),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사회 및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주목받은 이는 슈퍼스타 비욘세 외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음악의 역사 속 블랙 커뮤니티에게 섹스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졌다. 로큰롤과 재즈부터가 섹스를 뜻하는 속어로부터 출발했다. 일찍이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그 자신을 ‘섹스 머신(Sex machine)’이라 칭한 이래로 수많은 펑크(Funk) 디스코 밴드들이, 프린스(Prince)와 1980년대 댄스 가수들이, 힙합과 알앤비 스타들이 소리 높여 ‘19금’ 노래를 불렀다. 이들에게 섹스는 외설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활력과 생기의 상징이었다. 

‘WAP’ 역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아티스트들의 맥락 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미니카 혈통의 카디 비와 아프로 아메리칸 메간 더 스탈리온은 미국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자랑스레 꺼내는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는 외설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발화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콤플렉스(Complex)>의 평가를 가져오자면 ‘WAP’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독립, 지배’를 노래하는 곡이며 ‘여성 임파워링의 상징’과 같은 곡이다. 미국 NBC 저널리스트 수잔 라미레즈가 ‘즐거운 역할 변경’이라 평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카디 비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과격한 일탈은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그 저의의 음란함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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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레디의 견고한 메시지, ‘I am strong, I am woman’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각자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안고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로 여행을 떠난다. 사만다는 갱년기에 접어들었고, 미란다는 가정을 위해 직업을 포기했으며, 캐리는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요구를 받았다. 샬롯은 고된 육아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쳐있다. 그런 그들은 여행지에서 헬렌 레디(Helen Reddy)의 ‘I am woman’을 열창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으며!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듯, ‘허스토리(Herstory)’를 이야기하려면 헬렌 레디를 빼놓을 수 없다. 이즘 ‘I am woman’ 코너명의 탄생 배경이 된 헬렌 레디의 일대기를 그려본다.

“한때 나는 바닥까지 내려갔었어요.
누구도 다시는 나를 바닥에 머물게 할 수는 없어요.”

어릴 적 헬렌 레디의 꿈은 가정주부였다. 영화배우였던 어머니, 배우 겸 감독이자 작곡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았고 실력도 출중했으나 가수의 길은 자의가 아닌 부모의 뜻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후 그는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 비슷한 시기 건강상의 이유로 음악을 그만둘 수밖에 없기도 했다.

헬렌은 스무 살이 되던 해 가정주부의 꿈을 이룬다. 10대 때부터 연애해 온 케네스 위트(Kenneth Weate)와 결혼한 뒤 딸 트레이시(Traci)를 낳았다. 그러나 3년 만에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고 어린 나이에 싱글맘이 된다. 1966년, 어린 딸과 함께 단돈 200달러를 들고 떠난 미국에서 그의 첫 거주지는 허름한 여관방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음악을 다시 택했다. 어린 딸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노래해야 하는 무명가수였다. ‘I am woman’의 노랫말 속 “I am strong, I am woman(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삶은 결코 강인함만으로 이기기에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I Am Woman” singer Helen Reddy performs in 1970.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계기 역시 제프 왈드(Jeff Wald)와의 결혼이었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폰타나 레코드(Fontana Records)에서 첫 싱글 ‘One way ticket’을 발매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지 2년만인 1968년이었다. 그러나 이후 제프와도 이혼하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봤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결심을
더 단단하게 하도록 도와줄 뿐이죠.”

데뷔 싱글로 성공하진 못했으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한 헬렌은 1971년 ‘I am woman’을 발표하며 페미니즘 제2의 물결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페미니즘 제1의 물결이 선거권 및 법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 미국의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은 편중된 가사 노동으로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가정 내에 국한되는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헬렌 레디 역시 주부들의 고충을 너무도 잘 알았다. ‘I am woman’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이야기와 함께 이를 강하게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노래한다.

“제때 딱 맞춰 왔어요. 여성운동에 관여하게 됐고, 약한 사람들, 고분고분한 사람들 그리고 약하고 우아한 모든 것들에 관한 노래도 라디오에 많이 나왔죠. 우리 가족 여자들은 전부 강했어요. 그들은 노동을 했고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직접 겪었죠. 난 결코 내가 고분고분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 2013년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 중

이후 헬렌 레디는 주체적인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주창한다. 척 베리(Chuck Berr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케이씨 앤드 더 선샤인 밴드(KC and the Sunshine Band), 비지스(Bee Gees)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한 심야 음악 버라이어티 쇼 < The Midnight Special >에서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고정 호스트를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1973년 < The Helen Reddy Show >와 1979년 < The Helen Reddy Special>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한다. 여성들이 직업을 갖지 못하고 가사 노동에 집중되어있던 시기였기에 더욱더 유의미했다.

“나는 현명해요. 그 지혜는 아픔에서 온 거죠.
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

헬렌 레디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페미니즘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투사임과 동시에 재능있는 뮤지션이었다. ‘I am woman’과 동일 앨범에 수록된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 뮤지컬 < Jesus Christ Superstar > OST 앨범에 수록되며 이름을 알리는 데 일조했고, 풍성한 코러스와 온화하고도 파워풀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Delta dawn’, 마이너한 편곡과 의미심장한 가사가 돋보이는 ‘Angie baby’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출연했다. < 에어포트 75 >,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에 출연했고, 그중에서도 < 피터의 용 >에서는 주연을 맡으며 OST인 ‘Condle on the water’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는 업적을 남겼다.

싱글맘으로의 삶, 세 번의 결혼을 겪은 헬렌 레디는 세상에 “See me standing toe to toe(정면으로 세상에 맞서는 날 봐).”라 선언했다. 그는 음악의 힘으로 나약한 현실을 강인함으로 승화했다.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에서 ‘I am woman’이 이토록 성공을 거둘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노래를 여성들의 연대를 이끈 결정적인 노래로 기억한다. “나는 현명해요. 그 지혜는 고통에서 온 거죠. 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 “ 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화두 되는 세상 속 ‘I am woman’의 메시지는 견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