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싱글 ‘Don’t kill my vibe’로 받았던 기대에 부응하듯 데뷔 앨범 < Sucker Punch >를 준수한 결과물로 완성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어 발매한 두 번째 음반 < How To Let Go > 역시 기존 에 즐겨 사용하던 팝 음악에 서정적인 무드를 더해 기존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켰다. ‘The hype’의 사운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지만 일련의 과정과 거치며 느낀 압박감을 한 곡에 응축한다.
제목부터 자신이 받는 기대감을 ‘Hype'(과장)이라고 표현하며 데뷔 후 약 6년 만에 쌓아 올린 인지도와 성취를 회의한다. 이러한 감정은 음악적으로도 드러난다. 2집에서의 서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웅장한 사운드 이용하여 노래 전반적으로 극적으로 연출을 시도한다. 그의 고민이 드러나는 한편 시그리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고민의 이유도 명확하다. 다만 진심이 담긴 습작의 결과 끝에는 도약이 있다는 긍정을 남기는 싱글이다.
아하(A-ha)와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시그리드가 1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전자음악 기반의 선 굵은 멜로디로 2019년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첫 정규 앨범 < Sucker Punch >의 강점은 살리면서도 적당히 펑키한 리듬과 ‘Dynamite’에서 발휘한 소울 보컬에 힘을 줘 다채로운 느낌을 살렸다. 1970~1980년대 펑크(Funk), 디스코 다음으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여전한 복고 유행에서 그는 전자를 길을 걷고 있다.
아바(ABBA)의 ‘Mamma mia’와 ‘Dancing queen’처럼 시그리드의 노래 제목은 대부분 반복하는 절 속에서 선율을 강화한다(참고로 아바는 스웨덴 가수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의 우울한 이들을 달래기라도 하듯 노랫말은 ‘거울’ 속의 너, 즉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로 자존감을 높이는 내용이다. 복잡하지 않고 뚜렷한 후렴과 위로형 가사에서 확고한 대중 친화적 노선이 드러난다. 빌리 아일리시에 이어 방탄소년단과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미국을 점령하는 사이 시그리드는 그들과 별개로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세우고 있다.
완벽한 ‘팝’ 앨범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1996년생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Sigrid)는 멜로디가 사라진 메인스트림 시장에 단비와도 같은 작품을 내놓았다. 직관적인 멜로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 그럼에도 질리지 않는 노래의 구조적 서사성, 장르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일렉트로닉 사운드. 대중음악의 요소를 모두 갖춘 정규 1집 < Sucker Punch >는 배경음악으로 전락해버린 팝 시장에 그야말로 ‘일격’을 날린다.
< Sucker Punch >는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댄스 팝 음반이다. 그렇다고 신의 유사한 아티스트 뫼(MØ)나 엘리 굴딩(Ellie Goulding)처럼 굉음의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주로 다루지는 않는다. 로빈(Robyn), 칼리 레이 젭슨 식의 복고풍 신스팝 ‘Never mine’을 제외하면 듣기 편안하게 정제된 전자음과 리얼 세션, 오케스트레이션이 반주를 주도한다. 솔로 앨범 < Go >에서 화려한 스트링 사운드로 팝 멜로디를 구사한 욘시(Jonsi) 스타일의 ‘Sight of you’나, 2017년 발표한 데뷔곡 ‘Don’t kill my vibe’에는 대형 경기장에서 울려 퍼질법한 아레나 록의 공간감 또한 존재한다.
훅(Hook)으로 점철되어있거나 예측가능한 후렴으로 금세 신선함을 잃어버리는 대다수의 일렉트로닉 댄스 팝과는 달리, 22세의 젊은 아티스트는 지루함을 상쇄할 다양한 장치들을 준비했다. 1절에 이어 바로 후렴으로 넘어가지 않고 프리 코러스(본격적인 클라이맥스로 진입하기 전 절과 후렴 사이를 연결해주는 구간)를 배치해 감칠맛을 더하거나 사운드를 쌓아가며 마지막 후렴에 결정타를 날린다. 확실한 기승전결 구조는 노래가 진행될수록 감동이 더해지는 법이다. 피아노 독주와 아델 스타일의 소울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시그리드의 탁월한 완급조절 자체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Dynamite’ 외에도 ‘Stranger’, ‘In vain’처럼 끝이 아름다운 노래들이 앨범 전체를 채우고 있으니 몇 번을 반복해도 새롭다.
앨범은 쉽게 절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주와 변형을 거쳐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Stranger’의 경우 주 멜로디를 피아노 연주에서 신시사이저로 대체하면서 약간의 변주가 일어난다. 과한 전조(轉調)나 아예 노래의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실험적인 형식 파괴가 아닌 납득할만한 변화다. ‘Don’t feel like crying’에서는 보컬이 나와야 할 구간에서 랩이 등장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변조하거나 뽀글거리는 효과음과 리코더 음을 사용해 재치있게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Business dinners’).
캐치한 선율과 반복되는 가사로 영미 음악 시장을 정복한 스웨디시 팝의 전설 아바처럼, 대부분의 노래 제목은 가사에 그대로 등장한다. 연달아 싱글로 발매된 ‘Sucker punch’와 ‘Don’t feel like crying’의 희망적이고 재치있는 표현, 복고풍 멜로디의 신스팝 ‘Never mine’, 특히 화려한 건반과 여성 코러스가 아바를 꼭 닮은 ‘Mine right now’ 등 음반은 마지막 트랙까지 싱어롱(Sing-along)을 유도하며 듣는 이가 감상에만 머물도록 두지 않는다.
시그리드는 그만의 밝은 에너지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놓는다. 영블러드(Yungblud),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세상을 떠난) 텐타시온(XXX Tentacion) 등 팝 신의 떠오르는 주류 아티스트들이 자기 파괴적인 음악으로 감정에 매몰된 개인을 드러냈다면, 북유럽 출신의 유쾌한 신인은 말 그대로 기쁨과 슬픔 모두 정면 돌파한다. 순간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를 따라 오랜만에 가슴이 뛰니, 이것이 진정한 대중가요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훌륭한 데뷔작이다.
-수록곡- 1. Sucker punch 2. Mine right now 3. Basic 4. Strangers 5. Don’t feel like crying 6. Level up 7. Sight of you 8. In vain 9. Don’t kill my vibe 10. Business dinners 11. Never mine 12. Dynam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