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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릭 ‘다들 웃고 싶어 하지 (Feat. YIMNAO)’(2021)

평가: 3/5

슬릭은 작년 엠넷의 여성 래퍼 경연 프로그램 < 굿 걸 >에 출연하며 페미니스트, 비건이라는 정체성으로 주목받았다. 신인은 아니지만 2016년 데뷔 앨범 < Colossus > 발매 후 힙합계의 성차별적인 분위기를 꼬집으며 주류와 멀어졌기에 이 프로그램으로 그를 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자의 위치에서 아무도 해치지 않는 음악을 가치로 내세우는 뚝심도 있다.

배타적인 현대 사회와 대조적인 그의 지향점과 달리 가사는 우리의 삶 한 가운데를 포착한다. 특별한 기술을 뽐내려 하지 않는 래핑은 ‘유튜브’, ‘강아지’ 등 남들이 보증한 웃음만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꼬집는다. 또한 적절히 더해진 전자음악 뮤지션 임나오의 색채는 밋밋한 곡의 특성을 부각하고 목소리를 여러 번 중첩한 보컬은 딱딱한 질감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다. 어느 한 쪽 덜어내거나 더할 것 없는 두 사람의 화합은 슬릭의 길에 이정표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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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위안부 문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노래한 여성 음악가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살아가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가 있다.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적으로 탄압받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슬프게도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심지어 1월 23일,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열아홉 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시간은 치명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고 감각은 무뎌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잔혹한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이미 태동하고 있었다. 2012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송은지의 제안으로 태어난 프로젝트 ‘이야기해주세요’가 그 중심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헌정 음악을 제작한다는 이 발상은 실로 놀라운 결과를 낳았는데, 정민아, 오지은, 무키무키만만수, 트램폴린 등 당시 홍대 인디 신을 주름잡던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데 모인 것이다.

이후 2013년도 발매한 후속작 < 이야기해주세요 : 두 번째 이야기 >를 거쳐, ‘사랑과 평화의 편지’라는 부제와 함께 작년 발매된 <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이야기 >까지. 7년간 이어져 온 이들의 행보는 약 50명의 아티스트가 자취를 거치며 세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남겼다. 작품은 친절하게, 혹은 무섭게 다가온다.

친절한 방식으로 대중들의 쉬운 접근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과감한 방식으로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관통하는 주제에 맞춰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그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우수하게 살려 진심을 전달하기도, 좋은 곡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길이길이 기억되는 방향을 택하기도 한다.

‘들판의 풀처럼 작고 작게 / 노래 부르며 살고 싶었지 / 작고 작게’ – 정민아 ‘작고 작게’ 中

싱어송라이터와 가야금 연주자를 동시에 겸하는 정민아의 ‘작고 작게’는 치유와 공감을 보편적으로 유도하는 그 좋은 예시다. 가야금 특유의 절제된 가벼움과 동양적인 선율이 청자의 마음을 거부감 없이 두드린다.

어쿠스틱 신스팝을 지향하는 루싸이드 토끼의 ‘돌을 없애는 방법’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스타K >에 출연한 적 있는 포크 가수 이정아의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 또한 그렇다. 부드러운 기타 사운드와 소박하고도 서정적인 가사가 남기는 깊은 인상으로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할머니들의 소망을 노래로써 실현한다.

‘내 머릿속에 든 뭐든 그걸 기억하는 것 / 더는 새기고 싶지 않아서 잊어가는 것 / 잊는다고 다 없던 날이 된다면 / 제일 앞서 전부 다 잊고 /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갈 거야’- 슬릭 ‘살아가고 싶어’ 中

반면 데이즈얼라이브 소속의 래퍼 슬릭은 특유의 가감 없는 진솔함으로 사회가 지녀야 할 경각심을 예리하게 직시한다. 그의 래핑은 차분하고 덤덤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적나라하게 내뱉는다. 가사에 적힌 대로 우리는 앞으로 ‘내 머릿속에 든 뭐든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것. 이에 소월의 보컬이 합쳐지니 놀라운 흡입력을 뿜어낸다. 이는 여러 분야에 포진된 각 아티스트가 자신의 방식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대로 숨이 멎을 듯이 힘들다 해도 / 잊지 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 김완선 ‘Here I am’ 中

무엇보다 대중들의 이목을 끌며 앨범의 이름을 알린 일등공신은 가요계 유명 스타들의 합류다. 이상은의 ‘성녀’와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 < 눈길 >의 OST로 삽입되기도 한 이효리의 ‘날 잊지 말아요’, 그리고 김완선의 ‘Here i am’이 그렇다. 이들은 명료하고 감동적인 가사와 완성도 높은 곡, 그리고 높은 네임밸류로 일반인의 관심을 유도하며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우리도 ‘당신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할머니들의 부담을 덜어 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힘찬 연대의 선언인 셈이다.

특히 ‘성녀’의 ‘그저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 / 그녈 안아줬음 좋겠어 부서지지 않도록’ 이라는 대목이 뇌리에 남는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그저 조용히 곁에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일본놈들이 오면 나는 일본에서 한 일을 고대로 다 말해 / 역사를 역사같이 말해야지 / 저네가 한 일을 저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 신현필 & 이봉근 ‘흩어지는 기억’ 中

앞서 언급한 곡들이 조금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면, 몇몇의 곡들은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각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얇은 어조로 가사를 읊조리며 위태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오지은의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와 처절한 내레이션으로 몰입을 자아내는 신현필과 이봉근이 참여한 ‘흩어지는 기억’이 그렇다. 이들은 적나라한 가사로 반성과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회에 변화를 촉구한다. 저 너머 가려진 참혹한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작비 문제로 위기를 겪은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는 텀블벅 후원과 전작의 수익금으로 6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황보령, 악단광칠, 9와 숫자들, 레인보우 99, 호란 등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아티스트와 남성 음악가들이 동행에 합류하며 힘을 보탰다. 물론 수많은 대중들 또한 기부와 지지를 통해 도움의 손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값진 버팀목이다.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있고, 저마다의 작은 사랑들이 모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듯, ‘이야기해주세요’는 혼자가 아닌 모두의 의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던 프로젝트다. 음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통은 음악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용기 있는 그들의 발걸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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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그들과 우리의 목소리 : 여성, 그 다양한 감정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여성의 노래를 꺼낸다. 그리고 듣는다. 이 과정을 조금만 주목해보면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가요 속 발화가 그리 다채롭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는 굴레에서 몇 가지 감정은 지워지고, 몇 가지 감정은 순화된다.

비단 사랑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가요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외하고서도 여성의 마이크를 통해 불려 져온 곡조는 적극적일 때 보다 꾸며질 때가 많았다. 사회의 입맛에 맞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다.

수동성을 지운, 오롯이 내면의 얽히고설킴을 직선적인 노랫말로 다룬 4장의 음반과 4명의 음악가를 소개한다. 다양한 사랑의 단면, 다양한 감정의 단면을 제약 없이 표출하는 그들의 음악은 그간 숱하게 지나쳐온 어떤 마음들을 건드린다. 사회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 또한 굽히지 않는 그들을 소개한다.

1. 오지은 < 지은 > (2007)

오지은은 로커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위주의 가벼운 사운드로 구성을 잡았지만, 그의 첫 번째 정규 음반 < 지은 >의 곳곳을 수놓는 건 록의 ‘거침’을 구현하는 그의 목소리다. 지금처럼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7년, 그는 이 앨범을 크라우드 펀딩의 형식을 빌려 발매했다. 몇몇 곡을 먼저 들려준 뒤 선입금, 선주문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했던 것인데 그의 예상보다 뜨거운 협조로 후에 이 음반은 정식 유통 과정을 밟게 된다.

낮고, 강하고, 어둡다. 때론 ‘널 보고 있으면 / 널 갈아먹고 싶어'(‘화’) 성토하다가도 ‘오늘 하늘에 별이 참 많구나 /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이상하지'(‘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노래하며 외로움을 꺼내 놓는다.

여기에는 솔직한 일기장 같은 독백이 녹아있다. 또한 과감하게 내지르는 보컬의 솟아남이 있다. 불안정한 사랑에 대한 성토, 삶의 고독, 고통, 씁쓸함이 짙은 회색의 공간으로 묻어난다. 연약함을 드러내 역으로 강해졌다고나 할까.

이후 전작과 동명의 소포모어 < 지은 >과 < 3 >을 오랜 시간을 거쳐 발매했으며 ‘오지은과 늑대들’, ‘오지은서영호’와 같은 프로젝트 그룹을 통해 다채로운 음악을 전달하고 있다. 데뷔부터 덧붙여진 ‘홍대 마녀’란 프레임을 재고하게 하는 소소한 움직임을 이끌기도 했다. 최근에는 글로 내면을 확대하며 여전히 높낮이를 품은 감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섬세하게 포착 중이다.

2. 슬릭 < Colossus > (2016)

슬릭은 주저 않고 앞에 선다. 논란이 되는 사건에 의견을 남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며, 연대의 힘을 믿고, 이를 연결할 줄 아는 영리함 또한 지녔다. 2017년 발매한 싱글 ‘Ma girl’이 그 대표곡. ‘나는 너의 용기야 / 더는 두려워 않아도 돼’. 노래에는 누군가가 절실히 듣고 싶었을 그 다독임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 그의 첫 정규작 < Colossus >는 세상의 기준으로 분류될 수 없는 존재인 Colossus를 전면에 내세운다. 범주화를 거부하는 이 발화자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고(‘공연장 맨 앞줄에’), 랩에 대한 강한 자신감(‘Rap tight’)을 뽐내는 와중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내가 아니지만 / 내가 아닌 나도 내가 아니지'(‘Liquor’) 외치며 사회와 존재 사이의 고민을 이어나간다.

기준, 규율, 시선. 나와 너를 둘러싼 어우러짐 등 이 음반을 통해 슬릭은 지나온 상념의 흔적을 타이트하게 내뱉는다. 에둘러 비판을 미화하지 않고 애써 흔들림을 포장하지 않으며 묵직하게 고수하는 신념들은 그 자체로 올곧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바닥에 제대로 된 여자 래퍼’란 캐치프레이즈를 꿋꿋이 지켜나가며 오늘도 목소리가 필요한 많은 무대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3. 김사월 < 로맨스 > (2018)

요즘 인디신에서 가장 바쁜 뮤지션을 꼽자면 김사월이 아닐까? 동료 음악가들의 공연에 자주 힘을 보태고, 낭독 및 강연 무대에 서고, 얼마 뒤 발매될 첫 에세이집과 얼마 전 성황리에 끝마친 단독 공연까지. 분명 김사월의 세력은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비단 활동성뿐만 아니다. 팬덤의 우열 순위를 가려봐도 그의 이름은 꽤나 상위권에 안착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어쿠스틱 기타로 건조한 포크를 유영한다. 이때 까슬까슬한 그의 음색은 음악에 시린 바람을 불러온다. 나는 이 찬 공기가 김사월의 노래를, 그의 족적을 계속 따르게 하는 일종의 자극제라고 생각한다. 끓어오르는 감정보다 어쩐지 관조적으로 읊어내는 이야기가 때로는 문학적으로 또 때로는 적당한 거리 두기로 마음을 울린다.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우리의 일상은 어떤가. 안쓰럽고 서글프고 그래서 헛헛하다.

2014년 김해원과 함께한 EP < 비밀 >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2015년 솔로 음반 < 수잔 >에 이어 한 장의 라이브 음반 < 7102 >, 또 한 장의 정규작인 < 로맨스 >를 발매했다. < 로맨스 >에는 실패한 사랑의 조각이 담겨있다.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 노래하는 ‘프라하’, ‘누군가에게’, ‘세상에게’와 나에 대한 사랑의 실패를 적고 있는 ‘죽어’ 등 그가 전하는 사랑의 온도는 유난스럽지 않게 우리를 파고든다.

4. 천미지 < Mother And Lover > (2019)

2014년부터 홍대 일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천미지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일전에 전국 각지를 돌며 풍경이 주는 영감을 음악으로 포착해온 레인보우99의 음반 < Alphaville >을 함께 작업하긴 했지만 단독으로 주도권을 꾸린 건 이 앨범이 처음이다.

그는 여기서 여성, 엄마, 그리고 사랑을 논한다. 그것도 아주 거칠고 폭발적으로. 지금은 대중의 호응에서 조금 멀어진 개러지, 펑크, 포크를 적극 차용해 서사를 꾸리는데 그 접근법에 브레이크란 없다. 엄마의 고통을 어렴풋이 담은 ‘Satisfiable baby’, 엄마와의 불화를 가상의 상상을 통해 품어낸 ‘I want to be your mother’, 사랑의 황량함을 난폭하게 다룬 ‘Searching for lover’ 지나 유일한 모국어인 끝 곡 ‘도피’로 문을 닫는다.

지금껏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전면으로 부각한 적 없던 소재들은 이 앨범의 곳곳에 주요 동력이 된다. 대다수의 곡이 영어로 적힌 탓에 해석상의 난점은 있지만 적어도 그 어려움이 이 음반의 방향성까지 해치지는 못한다. 알싸하고 투박한 음폭이 만들어낸 선율이 모두에게 선호될 멜로디는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정확히 기억할 울림이 있다. 귀 기울여야 할 여성의 성애, 여성의 삶과 관계가 녹아 있는 음반. 그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