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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언(eAeon) ‘Fragile’ (2021)

평가: 3.5/5

이이언은 시간의 흐름에 솔직했다. 밴드 못(Mot)의 8년 공백을 깬 복귀작 < 재의 기술 >이 5인 체제의 확장된 편성으로 새로운 단상을 기획했듯, 그리고 < Guilt-Free >와 < Realize >가 각각 차가운 일렉트로닉과 따뜻한 어쿠스틱의 온도차를 가져왔듯 맹목적인 스타일 고수보다는 시대에 적격인 방식으로 여유롭게 형상을 바꿔오곤 했다. 물론 용기(容器)가 다르다고 본질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 Non-Linear >에서 정교하게 제시한 우울과 공허의 세계관은 앨범과 앨범 사이를 잇는 주축을 수행하며 오늘날까지도 정체성의 기반으로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9년 만의 솔로 앨범인 정규 2집 < Fragile > 역시 이전과 동일하게 ‘죄책감’을 다룬 1집에 이어 비슷한 인간의 고질적 약점인 ‘연약함’을 소환하고 특유의 부연 잔향으로 분절된 악기 사이의 여백을 채운다. 다만 차이 면에서는 긴 공백만큼이나 간극이 드러난다. 우선 주된 어법은 트렌드를 적극 위시한 대중적 터치다. 이러한 선택은 최근 여러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의 세례를 받은 언니네이발관 출신 이능룡과의 2인조 그룹 나이트오프 활동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모던 록이나 트립 합, 일렉트로니카 등 당시 관심사에 따라 여러 작법을 오가던 유동적인 행보를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참여한 첫 트랙 ‘그러지 마’는 그 양상을 집약한다. 무한히 늘어지는 전자음과 보컬 아래 격한 몰입을 유도하던 ‘Bulletproof’와는 달리 일반적인 팝의 문법이라 보아도 손색없는 보편적인 멜로디와 느릿하고도 익숙한 트랩 리듬, 그리고 한결 담백해진 창법이 자리를 대체한다. 음산한 피아노 도입부의 ‘Null’과 동화 속 기괴한 판타지아를 호출하는 ‘Mad tea party’는 비주류적 요소를 피력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 취하던 섬뜩한 전달법에 비하면 충분히 용인될 수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성공적인 편입이다. 타 아티스트와 활발한 교류를 거친 이 세 곡은 우수한 합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앞으로의 시장 가능성을 해금한다는 의의를 가져온다.

다만 사운드 샘플 자체의 강도를 낮추고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대중성 지향의 일환 가운데 그를 상징하던 자기 침잠의 정서는 그저 나른한 무게감 정도로 순화된다. 여기서 장단점이 극명히 나뉜다. 최면을 거는 듯한 몽롱한 신시사이저 중심의 ‘어쩌면’과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는 기존 팬층이 환호하던 모던 록 특유의 키치하고도 암울한 감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유약한 보컬과의 탁월한 시너지로 드림 팝의 푹신한 심상을 제공한다. 간단한 스타카토 발성의 ‘그냥’과 ‘세상이 끝나려고해’의 훅을 오마주한 간결한 라임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바이바이 나의 아이’는 독특한 박자감의 ‘5 in 4’나 ’11 over 8’에서 나타나던 실험적 태도와 거리가 멀지만 복잡한 카타르시스보다 쉽고 캐치한 각인을 유도한다.

점층적 멜로디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변칙성이 낳는 쾌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 Guilt-Free >에 비해 < Fragile >에 사용된 탐구 정신은 분명 덜하다. 다만 개개 트랙이 지닌 수려한 완성도는 물론, 사운드스케이프와 소재의 안락한 일체감은 비록 정체성 약화라는 명확한 핸디캡을 수반하더라도 팝적 작법을 택한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앨범은 지금껏 다져온 세계관이 또 한 번 현 시류의 알고리즘과 영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이자 대답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이언은 그저 솔직하다는 것이다.

– 수록곡 –
1. 그러지 마(Feat. RM)
2. 그냥 
3. 바이바이 나의 아이
4. Null (Feat. Jclef) 
5. 많은 밤을 지나
6. 어쩌면
7. Btfl mind
8. 왜일까
9. Mad tea party (Feat. Swervy) 
10.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11. 언제까지나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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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스월비 인터뷰

힙합 신은 늘 역동적인 루키의 등장을 원동력 삼아 변화의 탈피를 거쳐 왔다. 그중에서도 2020년을 빛낸 신인을 거론할 때 스월비(Swervy)는 더더욱 빠질 수 없는 아티스트다.

잔혹한 상상과 순수함이 총명하게 반짝이는 < Undercover Angel >은 기존에 없던 독특한 캐릭터성과 화법을 등장시키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사운드클라우드를 거점으로 몽롱한 형태만을 갖춘 채 부풀어 오른 십 대 문화를 본인만의 뚜렷한 색감으로 시각화하며 새로운 양분을 제시한다.

한파가 잠시 그친 틈을 타, 첫 정규작으로 리스너들의 뇌리에 이름을 아로새긴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2001년생 막내 래퍼 스월비를 만나 그의 앨범만큼이나 독특한 음악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21년 새해를 맞이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
작년 말부터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 < 500000 >을 발매한 레디와 총괄 프로듀서 요시(Yosi), 그리고 < Undercover Angel >를 만든 나와 수이(SUI). 이렇게 넷이서 시작한 ‘하트코어’라는 무브먼트 겸 전자음악 기반의 앨범이다. 플레이어로 나와 있는 레디(Reddy)와 나, 둘 다 패션과 쇼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벌레스크(Burlesque) 한 감성을 EDM에 녹여보자는 상상을 했고, 이를 소리로 구현해 줄 프로듀서 둘과 함께 열심히 해보는 중이다.

이번 ‘하트코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도 레디와 함께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의 ‘금요 힙합’에 출연한 적이 있다. 특별히 같이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ART GANG MONEY’라는 싱글이 있다. 스콜록트(SKOLOCT)라는 일본 패션 브랜드의 트리뷰트 같은 곡이다. 당시 레디와 딱히 친하지는 않았는데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봤다. 워낙 멋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까 속된 말로 같이 소비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유튜브 채널에 같이 출연했을 때는 콘텐츠가 배포될 즈음 둘 다 앨범을 앞두고 있었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레코딩이 끝났다니 질문을 여쭙자면, 네 명의 호흡은 어땠나.
예상치 못하게 좋아서 깜짝 놀랐다. 나는 수이가 아닌 다른 프로듀서와 작업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과거 팀 야야(TEAM YAYA) 활동보다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 달라진 것도 있지만, ‘원 플레이어 원 프로듀서’라는 작업 환경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던 셈이다. 그래서 마찰이 생기면 힘들 것 같다는 걱정이 늘 있었다. 당시 레디는 영감을 밖에서 많이 가져오려 했고, 나는 아이디어를 계속 내고 있었으니까. 근데 브레인스토밍 때 내가 아이디어를 내면 요시와 레디가 그거에 관해 현실성을 잘 따지면서 조율해 주니까, 뭔가 딱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것 같다.

프로듀서 수이가 있기에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서로가 좋은 호흡이 되어준 것 같다.
그렇다. 환경 자체는 매우 편안했지만, 새로운 면도 있어서 말 그대로 차기작을 작업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레코딩만 끝난 단계지만, 오로지 트랙과 비주얼적인 것만 내기보다는 다른 것도 준비해보고 싶어 계속 구상 중이다. 재밌게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첫 정규 앨범 홍보나 공연 등이 어려웠을 텐데 아쉽지 않았는가.
홍보나 공연에서 아쉬움은 당연히 있는 것 같다. 사실 < Undercover Angel >을 작업하고 있을 때는 이 코로나19라는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이었고, 이런저런 일정을 병행하면서 작업을 했었다. 그래도 정해진 기한 안에 트랙을 완성시키고 믹스를 확인하고 미팅을 나가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거나 자아를 확립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공백이 생긴 덕에 차기작을 빠르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좋게 생각하면 그렇다. (웃음)

<Undercover Angel> 앨범이 지난해 많은 사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이즘에서는 올해의 가요 앨범으로 뽑히기도 했다. 작금의 반응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지.
예전 내 별명이 ‘릴 낙담’이다. 완전 낙담이 습관인 사람. 지금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매일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정도였다.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다기보다는 뭔가 타의적인 일들로 집안에 고립되어 있던 상황이었기에 별의별 고민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에서 같이 견뎌주겠다고는 했지만, 좋은 반응을 떠나 애초에 내가 이 앨범을 공개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앨범을 내려고 마음먹은 것도 안 내면 억울할 것 같은 마음에서다. 가사의 주된 정서는 표현하고 싶은 바가 모호하지만 막 화를 내는 느낌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재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불안이 더 커서 그걸 못 느끼고 있던 것 같다.

그런 불안감이 혹시 작품에 대한 자신감에도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나.
불안과는 완전 별개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늘 있다. 나는 나와 내 작품을 아예 따로 놓고 본다. 내가 아무리 음악을 만들지언정 음악으로만 나라는 사람이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나라는 사람과 음악을 동일시하게 되면 내가 싫다는 이유로 음악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거고, 또 내가 좋다는 이유로 호평을 받을 수도 있지 않나.

전체적으로 앨범에서 부정적인 바이브가 감지되는 것 같고, 불안한 시기를 겪었다고 말했다. 그런 감정을 어떻게 작중에 풀어내려 했는지.
< Undercover Angel >은 처음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거의 그 순서대로 작업을 했고, 그래서 순간순간의 감정이 잘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나는 곡의 무드에 녹아 있지 않으면 가사를 쓸 수 없는 편이라, 감정을 푸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신 그날의 감정이 확실한지에 대한 불안으로 수정을 거듭하느라 힘들었다. 여담으로, 나는 이 작품이 정규가 될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작업 중반까지도 EP라 떠들고 다녔다. 나중에 이게 정규라는 말을 듣고 나서 가사와 편곡 방향을 미친 듯이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래퍼는 자기 얘기를 많이 할 수 없고, 기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 번 이상 자기 이야기를 하면 뻔해진다는 평을 듣는 것 같더라. 그래서 첫 정규작이라 말할 작업물에서는 인생 전기를 전혀 담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결정 같다. 엄연히 첫 작품인 만큼 개인적인 서사를 풀어내고 싶었을 텐데.
‘스월비는 사건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 얘기를 꺼낼 거다’라는 편견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대신 내 감정만 보여줄 테니 알아서 추론해 보시라’ 같은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다.

<Undercover Angel>의 제목은 메레디스 브룩스(Meredith Brooks)의 ‘Bitch’라는 곡으로부터 따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스월비의 음악 세계는 힙합이라는 장르보다는 록, 트랩, 라틴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팝 혹은 대중음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랐는지 궁금하다.
아주 어릴 때는 록을 훨씬 좋아했던 것 같다. 특히 그린데이(Green Day)를 진짜 좋아한다. 테이프 온리 앨범 < 1,039/Smoothed Out Slappy Hours >을 듣고 싶어서 온라인 매장을 다 뒤져 본적도 있다. 캣 파워(Cat Power), 에잇 밀리미터(8mm), 고릴라즈(Gorillaz) 같은 펑크를 기반으로 한 얼터너티브 록도 진짜 좋아한다. 물론 지금은 힙합에 대한 사랑도 충분하다.

‘파랑’의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캡틴락의 협업 계기도 궁금하다. 2019년, 복합문화공간 에무(EMU)에서의 ‘종로콜링’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인연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작업은 어땠나.
나름 특이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홍대에 스트릿 건즈(Street Guns)의 타이거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락샵’에 줄곧 다녔는데, 어느 날 친구와 만든 작업물을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거기 사장님이 캡틴락님과 함께 보시면서 나를 섭외하고 싶어하셨고, 그렇게 연이 닿게 되었다. 공연 이후 따로 약속을 잡아 ‘파랑’의 데모 버전을 들려드리면서 기타를 부탁드렸다. 캡틴락님은 자신이 베이시스트라며 당황하셨지만, 나는 중요치 않게 꾸리고 싶고, 마음에 드실 때까지 저희가 시간을 끌 테니 1년이 걸려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후에 공을 많이 들여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앞서 감정을 어떻게 풀어냈는지에 대해 말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Alibi’는 어떻게 보면 분노를 담는 것만이 아닌 해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Alibi’에 정확히 무엇을 담고 싶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훅에는 처절함이 담겨있고, 첫 번째 벌스는 최대한 직관적으로 비주얼라이징을 할 수 있도록 제삼자처럼 꾸몄는데, 두 번째 벌스는 엄청 부글부글한 화를 참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불안과 분노 같은 수많은 감정의 총 집합체 같아서, 정확히 하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 Undercover Angel >을 관통하는 정서는 최근 고민을 좀 해봤는데 ‘복수심’인 것 같다. 왜 지금까지 행동하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자신을 향한 복수심. 나는 ‘ART GANG MONEY’를 내기 전까지 내가 제대로 된 음악적 성취를 낼 수 있을 거라 단 한 번도 생각을 못 했다. 그냥 스킬풀한 랩이 하고 싶었고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이제 < Undercover Angel >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타임라인을 짜고, 구두로라도 프로듀싱에 참여해보고 콘티를 짜면서 그런 것에 대한 해소가 미친 듯이 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함께 활동해온 수이와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수이는 학자 같은 욕구가 많다. 보통 나는 비주얼로 먼저 설명을 하는데, 예를 들면 ‘왜, 밤에 아리랑 치기 당할 것 같은 골목에서 담벼락 돌로 긁을 때 나는 소리 있잖아’ 이런 식으로 말하면 그걸 글로 적어가며 공부를 하고,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배우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모노로도 틀어보고, 스테레오도 들어보고, 자기가 확실히 이해했다 싶으면 그제야 트랙을 만드는 거다.
어떻게 보면 수이도 < Undercover Angel >을 만들면서 나를 비롯해 같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처음으로 ‘어떤 랩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어’가 아니라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라 말했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다.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결국 목표는 좋은 작업물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니까 그걸 다 참작할 만큼 들떠 있었다.

구성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다. ‘천수경’ 다음 이어지는 ‘Mama lisa’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곡이다.
바로 전 트랙 ‘천수경’은 실제 엄마의 기도를 담은 스킷(Skit)이다. 기도라는 행위는 어쨌든 정말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이라 생각하는데, 내가 그 기도에 맞게 행동하고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분노랄까.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젊을 적에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아니까, 거기에 부합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헌정곡임에도 불구하고 상스러운 비속어도 들어가 있고, 그저 호강시켜주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엄마가 가르친 대로 일단 행동하겠다는 마음이 주체가 된 것 같다.

사실 어머니를 위한 노래라고 하면 텍스트 자체가 고정될 수밖에 없는데 틀을 깬 곡인 것 같다. 실제로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받은 건가.
맞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냥 엄마라서 좋은 게 아니라, 전기를 보면 따르고 싶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근데 엄마는 이 곡을 별로 안 좋아하셨다. 나중에는 좋아해 주셨는데, 처음에는 미쳤냐고. (웃음) 오늘도 옷 이렇게 입고 나온다고 해서 혼났다.

하이라이트 레코즈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내는 정규다. 소속사에 영향을 많이 받았나.
잘 모르겠는데, 팔로알토의 랩은 특유의 칼같이 끝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한 마디마다 온점 찍혀서 빡 빡 꽂히는 느낌. 거기서 많은 걸 배웠고, 또 새로운 의미의 사랑과 가족을 많이 알았다.

말 나온 김에, 막내가 생각하는 하이라이트 멤버의 한줄평을 부탁해도될까.
우선 허클베리 피(Huckleberry P)는 가사가 너무 좋다. ‘Cooler than the cool’은 듣고 울기도 했다. 영원히 헉피였으면 좋겠다. 레디는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다. ‘ART GANG MONEY’에 ‘스월비가 30대가 됐을 때는 레디처럼 살고 싶대’라는 라인이 있는데, 내가 맨날 ‘저는 그런 적 없는데요’라며 장난치곤 했다. 지금은 진심으로 그런 태도로 살고 싶다. 스웨이디(Sway D), 석현이는 이름이 대명사다. 과거의 한 3~4년 전에 트랩 신에 석현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레거시가 영원하게.

저드(jerd)는 약간 클리셰 한 말처럼 보일 수 있는데 스펀지 같다.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팬으로, 혹은 동료 입장으로 봤을 때도 말이다. 수비(Soovi)는 반대로 자기가 어쨌든 흡수될 수 있는 액체 같은 물질 같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장르를 해도 늘 수비 언니일 것 같은. 오웰(Owell Mood)은 위닝 좀 이기고, 맨날 진다. 조원우랑 윤비(YunB)는 살아있으면 연락 좀 해달라. (웃음) 요시도 살아있음 연락 좀 해달라. 음악 너무 잘하는데,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Did it like I did’의 경우 원곡과 리믹스 버전이 둘 다 존재하고, 심지어 후자를 타이틀로 선정했다.
‘Did it like I did’는 라틴풍의 트랩이 가미된 말 그대로 팝의 정수다. 타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곡을 만들었을 때 담고자 했던 정서는 소수자에 대한 내 애정과 존중이다. 같이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죽고 싶다 해서 세상이 죽고 싶은 건 아니니까 같이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뭔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살아보자고 했던 친구들이 공교롭게도 소수자가 많았다.

디제이 리믹스를 만든 것도 애초부터 생각이 있었다. 결과물은 너무 좋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비해서 소프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아무리 그런 정서를 담아 녹음을 했다 한들 결과물을 만들 때는 수많은 플러그인이 걸리고 트랙에 맞게끔 믹스가 되는 거니까. 뭔가 내가 살리고 싶던 게 많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과가 나오자마자 수이한테 훨씬 더 리드미컬한 EDM 리믹스를 부탁했다. 살짝 짜증 섞인 ‘내가 알아서 할게요’ 부분은 녹음실에서 즉석으로 튀어나온 말인데 메시지를 위해 살렸다.

당시 ‘Did it like I did (Remix)’는 뮤직비디오도 굉장히 화제가 되었다. 더불어 팔로알토가 피처링을 맡은 ‘왜 이래’와 ‘파랑’까지 총 세 편을 촬영했는데, 만약 다른 뮤직비디오도 찍어보고 싶다면 어떤 트랙이 떠오르나.
당연히 ‘Mama lisa’. 애초에 찍기로 되어 있었고 아이디어도 되게 많았는데 ‘왜 이래’의 뮤직비디오 제작에 매료되면서 시간과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빠지게 된 비운의 트랙이다. 다행히 ‘랩하우스’와 ‘온스테이지’에서 해소가 됐다.

‘Yaya2’에서는 프로듀서 수이가, ‘Trapped in the drum’에서는 저스디스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Yaya2’에서는 랩에 중점을 뒀다기보다는 오래 나를 봐준 사람들을 위한 이스터에그 같은 거였다. ‘Yaya’라는 오리지널 트랙은 거의 소음이다. 중2병의 총집합이라 해야 하나. 여튼 우리가 살아남았고 그동안 정말 고마우니까 선물로 드린다는 느낌. 근데 수이가 랩 못한다고 욕먹어서 뭔가 좀 짠하면서 웃겼다.

저스디스와의 작업은 어땠나.
너무 깔끔하게 진행됐다. 어느 날 팔로알토에게 ‘Trapped in the drum’ 곡을 들려드리면서 이 곡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은데 처음부터 저스디스를 피처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주제가 저스디스의 최근 고민과 일치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고 하더니, 한 이틀도 안 돼서 바로 연락이 왔고 정말 순식간에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미담이 있는데, 이 곡의 저스디스 파트가 드럼이 안 깔린 상태에서 작업을 한 뒤 후에 드럼을 깔았다는 말이 있다. 원래 따로 프로듀싱을 하니까 좀 더 편하게 보라고 드럼이 있고 없는 버전을 같이 드리려 했는데, 실수로 드럼 비트가 없는 버전만 준 거다. 근데 우리에게 잘못 온 것 같다는 말도 없이 흔쾌히 해줬다. 아마도 슬래밍을 부탁한 줄 알았던 거다.

후반부 타이틀곡 ‘파랑’에 이르러는 앞서 나타난 다양한 감정들이 해소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파랑’은 사실 이렇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실지 몰랐다. 물론 중요한 역할을 부여해서 마지막에 넣어둔 트랙이지만, 사실상 마음속 서사에서 타이틀은 ‘Trapped in the drum’이다. 드럼은 어느 문화권에 가도 원통 모양이다. 원통에 갇히면 이리저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예 사람으로서 형태를 못 갖추게 된다.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수많은 문화가 파생되면서 래퍼들이 원치 않는 기믹에 갇히고, 이질감 드는 행동과 가사를 뱉는다든지.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고, 드럼에 갇힌 느낌이었다.

‘파랑’은 내 친구들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물론 이 트랙이 다른 강하고 자극적인 사운드를 상쇄시켜주는 역할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타이틀로 택한 것도 있지만, 영상을 오랫동안 친했던 절친들로 구성을 한 것도, 그리고 베이시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존경이 끓어오르던 캡틴락님께 피처링을 부탁드린 것도, 나 혼자 알 법한 중2병 다운 선택이었다. 정말 사실 오로지 작업물만 생각했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놀라움이 많은 트랙이다.

음악을 언제부터 좋아했나.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
음악은 부모님 덕분에 태어난 순간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혼자 3살 때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의 음악을 CD 플레이어에 틀어놓고 춤추는 영상도 있다. 랩을 통해서 커리어를 쌓아야겠다 생각한 건 아마 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그리고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은 좀 말장난스럽기는 하지만, ‘ART GANG MONEY’를 기점으로 오로지 스킬풀한 랩만 해야겠다는 틀에서 벗어났을 때다.

앞으로 음악에서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
2집도 차츰차츰 준비 중이다. 아까 래퍼는 자기 얘기를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내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감정과 정서는 사이드 디시로 녹이고, 메인으로 스월비라는 사람이 누구고 신유빈은 누구인가에 대해 호기심을 많이 풀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직 궁금한 사운드가 너무 많다. 많이 듣고 많이 배워서 녹이고 싶다.

음악 외에도 패션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인다. 실제로 가사에서도 많은 브랜드를 언급하는데.
옷을 좋아하고 욕심을 가진 것도 열두 살 즈음인 것 같다. 근데 욕심 때문에 지출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건 열아홉. 그전까지는 가진 돈도 없었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보려고도 해서 크게 부담이 안됐다 치면, 열아홉부터는 이러다가 굶어 죽겠다 싶었다.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이 음악에 영향을 끼친 사례가 있을까.
별로 좋아하는 영감은 아니지만, 은근히 가게에서 옷을 입어보고 사기 직전에 ‘아, 이 옷 입고 이런 얘기 하면 진짜 멋있겠는데’에서 비롯된 트랙은 많다. ‘Trapped in the drum’가 그런 경우다. 언더커버(Undercover) 브랜드의 2003년 스캡 컬렉션을 보고 친구가 멋있는 미래 사냥꾼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머릿속에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막 들리기 시작하더라.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9년~2020년 힘든 시기를 해소하는 <Undercover Angel>로 새로운 커리어 전기를 열었다고 평가된다. 앨범을 통해 스월비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메레디스 브룩스(Meredith Brooks)의 ‘Bitch’의 후반부 가사인 ‘I’m your angel undercover’를 인용해서 이름을 정했지만, 그게 사실 누군가가 위장한 천사가 되어줘서 위로받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위장한 천사가 됨으로써 위로받는 것도 아니다. 뭔가 천사라는 존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신화의 헤르메스같이 하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 않나. 사실 처음에는 ‘Undercover Hermes’라고 하려 했는데, 그러면 그냥 옷 얘기만 늘어놓은 트랩 앨범처럼 보일까 봐 바꿨다. 그리고 사라 맥라클란(Sarah MacLachlan)의 ‘Angel’도 있으니까.

처음에는 ‘나는 위장해 있지만 너희한테 알려줄 거다. 사람들에게 나는 내 뜻을 전할 거고, 대한민국에 이런 음악을 하는 루키가 있다.’ 이런 의미가 강했다. 지금은 처절함이라는 정서가 핵심이다. 이렇게 우울하고 죽고 싶고 처절해도 괜찮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있으면 ‘파랑’처럼 파랗고, ‘Yaya2’처럼 별이 빛난다고 말하고, 마지막 ‘Did it like I did (Remix)’에서 가장 완벽하고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가듯 말이다.

인터뷰 : 김도헌, 김성엽, 김성욱, 임동엽, 장준환
정리 : 장준환
촬영 : 임동엽
편집 : 김성엽, 김성욱, 정다열,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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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사라지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여느 해보다 많은 앨범 단위 결과물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쏟아지는 작품 속에는 치열한 젊음의 고민과 베테랑의 조용한 귀환, 글로벌 단위의 논의가 돋보인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 < Tailor >

미디어의 도움 없이 음악 자체로 자생하기 힘든 시기에 만능 뮤지션 윤석철은 좋은 대중가요를 고민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 없이도, 굵직한 퍼포먼스 없이도,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오래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의 팝을 지향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더 블랭크 숍이라는 새 페르소나를 만들어 좋은 가요 프로듀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급 맞춤 정장처럼 참여 가수들에게 딱 들어맞는 < Tailor >는 만능의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블루스, 록, 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치밀한 재봉술을 거쳐 금방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뽑혀 나온다. 일상 속 단편을 흥미롭게 관찰하여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기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산업과 기술의 시선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우리는 엔터테이너보다 이런 외골수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도헌)


추다혜차지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신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신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며, 산 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도 망자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무속음악 무가(巫樂). 굿판에서 벌어지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 담겼음에도 참으로 기괴하고 소름 돋는다. 적어도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기 전까지는. 굿판을 벌이는 장소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한 ‘당산나무’ 아래서 무가는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놀랍게도 재료는 펑크(Funk)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가 오히려 반(反)대중적이라 느껴질 만큼 국악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가히 2020년 음악계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릴 만 한다. 국악, 그것도 무속음악을 들으면서 ‘얼씨구‘와 같은 몸짓이 아닌 힙합에서 나올 법한 그루브를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감상의 끝에 남는 건 애절한 꺾기의 향연,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한국의 정서다.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양적이며, 동시에 철저히 한국적이다. 앨범 전반을 매끄럽게 주도하는 파격적인 장르의 혼합, 무가의 재해석. 국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조지현)


진보(Jinbo) < Don’t Think Too Much >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킹한 기타와 현란한 드럼, 그리고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가 그루비한 작법 아래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진다. 풍부한 성분과 영양을 갖춘 사운드 위로는 화려한 피처링진이 각자의 감칠맛을 발휘하며 곡에 녹아든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활짝 열린 귀 뿐, 이후로는 그저 트랙에 몸을 맡기면 된다.

탄력적인 프로듀싱의 < Afterwork >와 자기만의 색채로 히트곡을 버무린 선집 < KRNB >, 그리고 몽롱한 사랑의 언어 < Fantasy >의 걸출한 커리어를 거쳐, 진보(Jinbo)는 또 한 번 아이디어의 창고 아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발전한 < Don’t Think Too Much >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이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고막 위 펼쳐지는 힙합 퍼레이드. 음악계 풍운아가 만든 감각의 제국.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 MAP OF THE SOUL : 7 >

케이팝 보이 밴드가 아닌, 팝 뮤지션이자 BTS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가 담겼다. 일곱 명의 7년이 담긴 < MAP OF THE SOUL : 7 >은 멤버 개개인의 자아를 녹여내면서도 그룹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내 대중음악의 틀을 바꾸고, 세계 팝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로 이어지는 서사적 앨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의 밝음과 ‘Black swan’의 어둠이 상반된 힘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Respect’처럼 힙합을 보여주다가도 ‘Filter’처럼 라틴을 내비친다. 자신들에게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며 다양함으로 거대해지는 사운드가 BTS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한다. 음악부터 비즈니스까지 이젠 그들이 기준이고, 케이팝이다. (임동엽)


NCT < NCT Resonance Pt.1 >

< NCT Resonance Pt. 1 >은 새 시대를 여는 SM의 야심이다. 개방과 확장이라는 두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회전해온 NCT는 두 새 멤버가 더해진 23인의 NCT 2020으로 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감행했다. 기존 그룹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 면모를 한데 모으되 그것을 더욱 성장한 음악으로 재편한 음반은 팀의 색채를 짙게 하는 랩 트랙과 광폭한 전자음의 댄스,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린 곡과 다국적의 특색을 살린 언어 혼용까지 가공할만한 완성도로 담아냈다. 단연 올해 가장 빛나는 아이돌 앨범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팀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같은 이 스케일에서 SM이 제시한 신개념 플랫폼의 긍정성을 봤다. 문법 선택이 자유롭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이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음악 역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기획에 발맞추어 하나의 콘셉트를 수행하는 가수의 활약, 특히 랩 멤버의 강한 에너지로 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은 덤이다. 그들이 꿈꿔온 이상에 비로소 한 발 더 다가서는 걸음이었다. (이홍현)


정밀아 < 청파소나타 >

포크 씬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잔잔한 일상, 곁을 풀어낸 음반들이 유난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정밀아의 < 청파소나타 >는 그중에서도 우뚝 선다. ‘그럼으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다’(‘서시’) 나긋하게 선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에서 출발’에는 위트 있게 현재와 과거를 돌아본다.

잘 닦은 10개의 돌멩이가 반짝이듯, 매끈한 수록곡들을 지녔다. 도시에서의 삶을 겪으며 느낀 텁텁함과 답답함부터 언젠가 그리워질 시절을 아름다운 단어로 그린 음반은 지독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이다. 일상의 언어로 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작은 기타 반주를 넘어서 울리는 또렷한 오늘의 목소리. 웃고 우는 희로애락이 여기에 담겨있다. (박수진)


딥플로우(Deepflow) < FOUNDER >

한 래퍼의 커리어가 파노라마로 흐른다. 딥플로우는 < FOUNDER >에서 힙합에 빠지고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레이블 대표로서 고군분투하던 모습,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간 때 등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각 상황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나타낸 가사로 노래들은 한껏 사실감을 뽐낸다. 딥플로우가 설립한 레이블에 속한 래퍼들의 찬조도 앨범이 현실성을 또렷하게 발하는 데 힘을 싣는다.

볼품없었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래퍼로 성장한 모습을 알차게 담은 사항 때문에 앨범은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1970년대에 나왔을 법한 투박한 솔뮤직, 펑크 반주는 딥플로우의 역정을 한층 묵직하게 가공해 준다. 또한 일련의 음악적 보조를 통해 < FOUNDER >는 음반 커버로 암시하듯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향을 진하게 풍긴다. 내용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이룬 근사한 작품이다. (한동윤)


쿤디판다(Khundi Panda) < 가로사옥 >

밑그림을 펼쳐 놓은 < 쾌락설계도 >와 뼈대를 조립하는 과정의 < 재건축 > 속 자재가 이뤄낸 것은 < 가로사옥 >이다. 완공의 결과는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일련의 직선 형태로, 깊숙한 공간 안에 나열된 화자의 스토리텔링이다. 그 안에 침투한 질투(‘자벌레’), 자격지심(‘네버코마니’)과 회피(‘겟어웨어’)같이 진솔함을 넘어 독살스럽기까지한 감정의 파편들은 꽤 빽빽하고 날카롭다.

그럼에도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고 점차 파고 들게 만드는 것은 종횡무진 달리는 래핑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휘두르는 듯 더 치밀하고 더 악독하게 랩 퍼포먼스를 채워 넣었고, 피로감을 덜어낸 사운드로 친절함을 살짝 내비치곤 한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 가로사옥 >이 방대한 결말이 아닌 ‘그저 그의 여정 안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쿤디판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임선희)


김석준 < 20세기 소년 >

수려한 디자인과 포장, 마케팅, 시대 감수성, 상품 가치, 언론의 선동적 개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이라는 말에 어른거리는 윽박지름과 현재적 ‘힙’이 요구하는 초조함이 없다. 압박도 느끼지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타협도 없다. 타협한 게 있다면 그의 취향이 머물고 있는 20세기 음악뿐이다. 1993년 유재하가요제의 금상 수상 경력,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선사한 음원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 김석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제’ 정리에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앨범을 내는 지각 행위는 필시 과거에 얽매일 소지가 높다는 선입견에 웃으며 맞서려면 반드시 현재적 감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직접 노래한 다섯 곡 수록 앨범 < 나의 이름은 >에 이어 곧바로 내놓은 < 20세기 소년 >은 게스트 보컬과 밴드의 협조하에 작곡자로서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고 고저, 장단, 강약을 넘나드는 반(反) 고집의 실천이다. ‘나는 나일 뿐’, ‘버퍼링’, ‘함경도 혜숙이’는 이 판에서 ‘특히 근래’ 듣기 어려운 무적, 무소속 음악이다. 메시지가 있다면 결국 휴머니즘이다. 소박, 순결, 진심이 주는 공감이 따로 없다. 20세기 소년은 이런 사소 하나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담아 21세를 포옹한다. ‘난 달라질 거야/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아야지..’ 김석준은 기본의 우대가 뉴 노멀(음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임진모)


스월비(Swervy) < Undercover Angel >

익지 않은 슬픔을 저며낸 젊은 아티스트의 자화상. 대중이 보내는 관심의 뒷면엔 가혹한 잣대와 시선이 숨어 있었고 날카롭게 가공된 언어의 칼날이 되어 그를 해체했다. 태양에 다가간 대가로 추락하게 된 스월비는 온갖 상처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쩌면 감추고 싶던 일면이 흐트러진 바닥 위.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희미한 사랑을 발견했고, 보답이란 투박한 이유로 붉게 물든 날개를 감싸 안고 지상에 머물길 선택한다.

자기 고백이란 주제 아래 늘어놓은 일지(日誌)가 어둡고 차갑다. 낮게 깔린 비트를 기반으로 읊조리는 랩은 마주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기에 감정선은 높낮이를 그리지 않고 일정하다. 철저한 사실주의. 낡은 VHS 위로 덮어진 다양한 형태의 스월비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아티스트의 성장기에 대중은 분명한 감응을 느꼈다. 이제 첫 정규 앨범. 결국 자유를 찾아 희망으로 귀결된 < Undercover Angel >의 서사처럼 모든 걸 딛고 일어선 스월비의 자리가 이곳에 굳게 새겨졌다. (손기호)


2020 올해의 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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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월비(Swervy) ‘Undercover Angel’ (2020)

평가: 3.5/5

누군가의 사적인 일기를 엿본 듯하다. ‘위장한 천사’라는 명명처럼, 사회가 구축한 시스템의 성역에서 벗어나 한껏 꾸며진 가식의 날개를 벗어던지고 인간계에 스며든 < Undercover Angel >은 내면에 끓어오르는 쾌락주의의 단면을 가감 없이 휘갈긴다. 위험천만한 상상조차 손글씨의 형상으로 실현되는 곳. 2001년생 십 대 래퍼의 다이어리에는 덕지덕지 붙은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 그리고 선혈이 낭자한 잔혹동화가 가득하다.

하이라이트 입단 후 발매한 2019년 싱글 ‘Art gang money’는 기성 질서에 대항하는 요소를 역동적으로 콜라주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청년 문화’를 총집합한 인상을 남긴 곡이었다. 본 앨범은 이러한 분열적인 캐릭터성을 주축으로, 흐트러뜨린 조각을 작품 단위로 확장하고 갈무리한다. 포문을 여는 첫 트랙 ‘Alibi’는 그 계획을 암시하는 완벽한 소개문이다.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또박또박 진행되는 박자, 포스터 더 피플(Foster the People)의 ‘Pumped up kicks’가 연상되는 의미심장한 가사는 입체적인 구조를 통해 청자에게 적극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합을 맞춰온 프로듀서 수이(SUI)가 전 트랙을 맡은 덕에, 마치 한 아티스트가 작업한 듯한 조화로움을 보인다. 한영을 능란하게 오가며 순도 높은 적의를 분출하는 ‘Did it like I did’와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인 ‘Mama lisa’가 그 예시로, 비교적 차분해진 기조 가운데 웅얼거리는 발성은 고딕풍의 신비주의로 둔갑하고, 완급에 따라 쉬운 선율과 실험적인 면이 매끄럽게 오가는 프로듀싱 역시 몰입을 강조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사무치는 기타 사운드가 점차 뒤틀리는 ‘Trappend in the drum’, 위화감을 부여하는 신시사이저 사이로 통렬한 래핑을 펼치는 ‘Gomp’, 반대로 순수한 동화세계가 떠오르는 ‘Yaya2’가 이어진다. 스월비는 그를 형성하는 다형의 밝고 어두운 인격체를 등장시키며 감정을 구석까지 전부 쏟아붓는다. 본작을 일기에 비유한 것도, 이 작품이 지닌 자극적인 변덕과 갈망 역시 ‘해소’의 인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치기 어린 성장통과 갈등을 토해낸 스월비는 캡틴락의 능란한 기타 연주를 덧댄 쾌청한 록 넘버 ‘파랑’에 도달하는데, 로킹한 무드 아래 파멸적으로 폭발하는 곡은 여운 있는 마무리로 이 작품이 스월비 본인의 명확한 성장 징표임을 증명한다.

개성파를 표방하는 많은 래퍼가 난잡한 패션과 온갖 기믹, 콘셉트를 도구로 일차원적 브라가도시오(Braggadocio)를 남용하는 시대다. 초창기 < Yaya Tape > 시절의 스월비는 이러한 몰개성의 바다에 잠식한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탁월한 랩 스킬과 넘치는 상상력의 초점을 온전히 자신의 테두리로 겨냥한 < Undercover Angel >을 통해 독자적인 구심점을 구축하고, 동시에 ‘쇼미더머니’ 편집의 희생양으로 국한될 위치의 래퍼가 아님을 증명한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 오묘한 경계성을 걸친 앨범이 힙합 신의 새로운 물꼬를 틀 것만 같다.

– 수록곡 –
1. Alibi 
2. Did it like I did
3. 천수경 (Skit)
4. Mama lisa 
5. 왜 이래 (Feat. Paloalto)
6. Trapped in the Drum (Feat. JUSTHIS)
7. Funs & money
8. Gomp
9. Yaya2 (Feat. SUI)
10. 파랑 (Feat. 캡틴락 of 크라잉넛) 
11. Did it like i did (Rem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