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스타먼트 – First strike is deadly / The Legacy(1987)
1983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조직된 테스타먼트는 40년간 메탈월드를 종횡무진 누빈 메탈계 큰형님이다. 괴물 보컬 척 빌리(Chuck Billy)와 전 드림 시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와 함께 메탈 공동체 메탈 얼라이언스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 등 실력파로 구성된 테스타먼트는 ‘성서’란 그룹명만큼 진중하고 깊은 음악성을 펼쳐냈다.
데뷔 앨범 < The Legacy >(1987)는 이듬해 나온 2집 < The New Order >와 함께 테스타먼트의 가장 우수한 음반으로 꼽힌다. 원래 밴드명도 더 레거시였으나 앨범 녹음 전 테스타먼트로 바뀌었고 보컬 스티브 소우자가 엑소더스로 떠났다. ‘The haunting’과 ‘Burnt offerings’같은 대표곡이 수록된 < The Legacy >는 소우자 특유의 강렬하고 무거운 가사가 돋보이니 떠나기 전 큰 선물을 남긴 셈이다. 균형감 있는 수록곡 사이에서 국내 팬들에겐 ‘First strike is deadly’가 선명할 수밖에 없다. 기타리스트 이태섭이 서태지 ‘하여가’에서 ‘First strike is deadly’의 기타 간주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애니힐레이터 – Alison hell / Alice In Hell(1989)
‘소멸자’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애니힐레이터는 보이보이드, 레이저, 새크리파이스와 더불어 캐나다 스래시 메탈의 사천왕으로 군림했다. 1984년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결성된 이래 40년 가까이 활동 중인 애니힐레이터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를 방불케하는 이합집산에도 리드 기타리스트 제프 워터스(Jeff Waters)가 굳건히 중심을 지켰다.
메탈 명가 로드러너에서 발매된 < Alice In Hell >(1989)는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다. 워해머로 퉁퉁 내리치는 듯한 기타 리프의 ‘W.t.y.d’와 꿈틀거리는 리듬의 ‘Schizo’ 등 다채로운 곡들엔 워터스와 밴드의 또 다른 창립자 빅 존 베이츠(Big John Bates)의 역량이 빛을 발했다. 워터스는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를 역임하기도 했다. 짧은 인스트루멘탈 ‘Crystal Ann’에서 ‘Alison hell’로 이어지는 구성은 초반부터 밀어붙이겠다는 공포문과도 같아 아찔하다. 부기맨에 대한 소녀 앨리스의 공포감을 담은 ‘Alison hell’은 잔혹동화스런 분위기와 물 흐르는 듯한 구성을 지닌 애니힐레이터의 역작이다.

세풀투라 – Arise / Arise(1991)
브라질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 벨루오리존치에서 결성된 세풀투라는 브라질 헤비메탈의 뿌리 격인 밴드 스트레스와 파워 메탈의 최강자 앙그라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브라질 메탈 밴드로 인정받는다. 메탈 팬들에게 그루브 메탈의 명작 < Roots >(1996)과 빌보드 200 32위까지 오른 < Chaos A.D. >(1993)가 익숙하나 1984년부터 오랜 공력을 쌓아온 팀이다. 1986년 블랙 메탈과 데스 메탈을 섞은 듯한 데뷔작 < Morvid Visions >로 출사표를 끊은 세풀투라는 로드러너에서 발매한 1991년 작 < Arise >로 남미 스래시 메탈의 최고봉에 올랐다.
라틴 리듬에 거친 펑크적 특성을 부여한 < Arise >는 3분대의 짧은 곡들과 리드 기타리스트 안드레아스 키써(Andreas Kisser)가 쓴 ‘Desperate cry’와 ‘Altered state’ 같은 6분대 대곡들이 균형을 맞췄다. 황야에서의 합주를 담은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인 ‘Dead embryonic cells’과 더불어 싱글로 발매된 ‘Arise’는 시종일관 내달리는 브라질 종마 같은 에너자이저다. ‘Territory’, ‘Roots bloody roots’과 더불어 세풀투라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크리에이터 – Extreme Aggresion / Extreme Aggresion (1989)
독일은 록 음악 강국이다. 크라프트베르크와 캔을 위시한 크라우트 록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스콜피온스, 멜로딕 스피드 메틀의 대표주자 헬로윈과 ‘Du hast’의 람슈타인 모두 독일 출신이다. 스래시 메탈 방면에서도 ‘저먼 스래시 메탈’의 분파가 생길 정도로 입지가 확고하다. 소돔과 탱커드, 디스트럭션과 함께 저먼 스래시 메탈의 판타스틱 포를 구축한 크리에이터는 1982년 결성된 이후 40년 현역을 이어가고 있다.
스피드 메탈과 인더스트리얼 등 시대에 조응하는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역시 스래시 메탈에 중심을 두었다. 스래시 메탈 클래식 < Pleasure To Kill >(1986)로 일찌감치 입지를 확고히 한 이들은 < Terrible Certainty >(1988)와 < Extreme Aggresion >(1989)로 기세를 이어간다. 기타리스트 요르그 트리에비아토프스키(Jörg Trzebiatowski)와 드러머 벤토(Ventor)의 기량을 고스란히 반영한 < Extreme Aggresion >은 명료한 편곡과 연주로 성숙기를 나타냈다. 미국에서 사랑받았던 ‘Betrayer’와 더불어 타이틀 곡 ‘Extreme aggression’은 기승전결이 또렷한 곡 전개와 밀레 페트로자(Mille Petrozza )의 고음 보컬로 크리에이터의 전성기를 압축했다.

디스트럭션 – Curse the gods / Eternal Devastation (1986)
독일 소도시 바일 암 라인에서 1982년 결성된 디스트럭션은 2022년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 Diabolical >을 발표할 만큼 정력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초기엔 기타 트레몰로 피킹과 스크리밍, 조악한 음질 등을 특질로 하는 메탈의 하위 장르 블랙 메탈의 성향도 드러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내놓은 일련의 음반들로 독일 스래시 메탈의 선봉에 섰다. 멤버 교체가 잦았으나 밴드의 중심축은 베이시스트 겸 보컬리스트 마르셀 시머(Marcel Schimer)와 기타리스트 마이크 시프링거(Mike Sifringer)였다.
비교적 낮은 완성도의 데뷔작 < Infernal Overkill >(1985)을 무색하게 할 만큼 2집 < Eternal Devastation >과 3집 < Release From Agony >의 위용은 대단하다. ‘Confound games’와 ‘Life without sense’등 대표곡이 몰려 있는 < Eternal Devastation >은 드러머 토마스 샌드만(Thomas Sandmann)의 마지막 참여작으로 원년 멤버 간의 화양연화를 남겼다. “신을 저주한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Curse the gods’는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개가 일품이며 결코 화려한 연주라고 할 순 없지만 시머의 고음 보컬과 중독적인 기타 리프가 곡의 레벨을 한 층 끌어올렸다.

소돔 – Agent orange / Agent Orange (1989)
독일 제조업 중심지 겔젠키르헨에서 결성된 소돔은 기독교 역사에 근거한 죄악의 도시라는 팀명처럼 강렬한 음악을 뿜었다. 원년 멤버로 끝까지 밴드를 지키고 있는 보컬 겸 베이시스트 탐 엔젤리퍼(Tom Angelripper)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한 소돔은 특유의 음산하고 악마적인 기운으로 독일 블랙 메탈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2020년 열일곱번째 정규 음반 < Genesis XIX >로 스태미나를 과시한 소돔은 자국 후배들에 존경을 사는 독일 메탈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1989년 작 < Agent Orange >는 1987년 발매한 < Persecution Mania >와 함께 소돔의 양대 명작으로 통한다. 후자가 블랙메탈에서 스래시로 이동하는 과도기였다면 전자는 스래시 메탈을 파고들었다. 개틀링 건이 그려진 앨범 재킷은 전쟁 사상자의 추모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고 소돔은 어느 때보다 광포한 연주로 주제의식을 부각했다. 베트남전에 사용된 주홍색 고엽제에서 착상한 타이틀 곡 ‘Agent orange’는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와 변화무쌍 전개로 곡의 서사를 구축했다. 크리스 위치헌터(Chris Witchhunter)의 드럼 속주와 안젤리퍼의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보컬이 극적 효과를 연출했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