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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울려 퍼진 ‘리스펙트’, 아레사 프랭클린의 명곡 16

과거나 지금이나 아레사 프랭클린을 수식하는 단어는 경이로움이다. 동시대를 빛낸 수많은 디바 가운데서 여왕의 칭호를 누린 것은 물론, 오늘날까지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꾸준히 호명되는 것은 그의 존재가 어느덧 시대의 ‘가치’를 초월한 불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독보적인 성량과 음역으로 장르의 부흥기를 견인하고 흑인과 여성의 존중을 주장하는 등 인권 운동의 선봉장으로도 활약한 그의 행보는 음악사를 통틀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9월 8일, 개봉을 앞둔 아레사 프랭클린의 전기 영화 < 리스펙트 >는 아레사 프랭클린이 반세기를 뛰어넘어 후세에 끼친, 그리고 앞으로 먼 미래까지도 끼칠 영향력에 대한 증거다. 스크린으로 접하기에 앞서 16곡으로 그의 거대한 역사를 되돌아보자. 1960년대 후반 가스펠과 소울에서 두각을 보이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아틀란틱(Atalntic) 레코드를 기점으로, 디스코나 뉴웨이브와 같은 주류와의 융합을 도모하여 젊음과 호흡했던 1980년대 아리스타(Arista) 소속 시절까지. 그 부드럽고도 장대한 융단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1967)
이렇다 할 성적표를 안겨주지 못한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아틀란틱 레코드사로 이적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새 레이블과 손을 잡은 후 발매한 <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에서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싱글 ‘Respect’가 등장하는데, 그 도화선이 바로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다. 선공개 트랙은 데뷔 이래로 처음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 안에 들었으며 레이디 소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동아줄이다.

<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는 흑인의 임파워링과 당대 여성이 가져야 할 미덕이라는 양극단을 지녔고, ‘Respect’와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가 각각을 대표한다. 거짓말쟁이에다 바람피우는 남자여도 사랑하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여인의 비애를 울부짖으나 마냥 슬프지 않다. 방아쇠와 같은 거대한 샤우팅으로 상대를 일갈하기도,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변검술 같은 보컬의 변화가 단 한 문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임선희)

Respect (1967)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 그간 흑인 여성으로서 받은 온갖 부조리한 대우로 분노 게이지는 임계점을 가리켰고 ‘Respect’는 모든 억눌린 감정을 분출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담았으니 어찌 속 시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존경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당신과 똑같은 인격체로 나를 존중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순서는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를 부른 천재적 소울 뮤지션 오티스 레딩이 1965년에 발표한 원곡이 먼저다. 허나 곡의 주인은 따로 있었고 레딩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프랭클린의 음성을 통해 곡의 진폭은 백배 천배 더욱 커졌다. 흑과 백에 남과 여의 이야기를 더해 주제를 확장했다.

흑인 여성이 부통령에 당선되고 흑인 스포츠 스타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시대지만 이면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희생자가 있다.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고 ‘Respect’는 여전히 시대와 공명한다. (염동교)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1967)
아틀란틱 레코드로 이적한 후 아레사 프랭클린은 ‘Respect’를 발매하며 ‘소울의 여왕’에 등극했으나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캐롤 킹과 제리 고핀에게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을 의뢰했다. 새로운 사랑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여성을 묘사한 곡은 빌보드 차트 8위에 오르며 아티스트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특히 아침의 피로를 표현하듯 나른한 도입부와 대비되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후렴구가 영적이고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 사람들을 매료했다.

제리 고핀이 쓴 가사는 단순히 남자에게 인정받는 여성을 표현한 것이 아닌 여성성을 축하하는 찬가로서 ‘흑인 여성 지우기’가 만연했던 1960년대에 여성의 존엄성과 평등을 상기시켰다. 덕분에 대중문화에서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은 여성이 변모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1995년 미국의 헤어 제품 브랜드 클레롤의 염색약 광고가 대표적이며, 2014년 미국 하이틴 드라마 < 글리 >에서 메르세데스가 재회한 연인 샘과의 관계에 확신을 갖기 위해 부른 장면도 인기를 끌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2015년 케네디 센터에서 캐롤 킹을 축하하기 위해 이 곡을 불러 큰 감동을 선사했다. 변치 않은 빛을 가진 자기 확신의 메시지는 발매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중을 감화하고 있다. (정수민)

Chain of fools (1967)
‘바보들의 사슬’이란 담백한 제목의 노래는 이름만큼이나 간결한 구조를 지닌다. ‘Chain’이 반복되는 오프닝을 지나 다층의 굵은 코러스가 쌓인 메인 멜로디에 안착한 뒤 다시 힘을 풀어 전자의 것으로 돌아간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 그럼에도 2010년 영국의 < 롤링스톤 >지는 이 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500중 252위(그의 노래 중 단 4개만이 차트에 올랐다)로 선정했다. 또한 곡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뺄 수 없는 대표곡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핵심은 단순함을 꽉 채운 아레사의 보컬 역량이다. 도입부, 곡의 트레이드 마크인 떨리는 기타 소리 이후 이렇다 할 사운드 소스가 없음에도 노래는 때론 강하고 때론 약하게 곡을 가지고 노는 그의 호흡과 만나 강렬한 에너지를 낸다. 이 완벽한 소화력은 어쩌면 사랑했던 사람의 변절을 담은 가사가 너무나도 그의 삶과 밀접히 닿아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고 그에게 그래미 베스트 여성 알앤비 보컬 퍼포먼스 수상의 영예를 안긴 곡. 지금도 국내외의 많은 뮤지션이 커버하며 무한히 생명력을 연장 중이다. (박수진)

Satisfaction (1967)
롤링 스톤스가 1965년 발표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그들을 커버 밴드에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으로 인양한 역작이다. 밴드에게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라는 성과를 안겨준 이 곡이 현재까지도 록 음악 계보에서 최고 반열에 위치한 까닭은 명확하다. 로큰롤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타 리프를 지녔기 때문. 좀처럼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 콤비의 강렬한 잔상에도 아레사 프랭클린의 목소리가 입혀진 ‘Satisfaction’은 전혀 다른 감상을 남긴다.

< Aretha Arrives >에 수록된 소울 레이디의 ‘Satisfaction’은 스윙으로 가득 채워졌다. 자유롭게 활보하는 피아노 선율이 곡을 주도하고 브라스, 퍼커션 사운드가 그 중심을 지탱한다. 그루브를 타기 위한 뼈대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아레사 프랭클린의 보컬이 곡을 휘젓고 다니는데 절정에 오른 강약 조절이 단연 압권이다. 소울의 귀재가 제시한 재해석 본은 블루스, 하드 록의 색채가 짙은 원곡에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김성욱)

Think (1968)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 때 시위대의 찬가 ‘Respect’가 미국 전역에 울려 퍼졌지만 인종 간의 갈등은 여전했다. 1968년 4월 4일엔 민권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며 사태가 악화되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아레사 프랭클린은 장례식에 참석해 넋을 기리고 집으로 돌아와 곧장 피아노를 두들겼다. ‘마침내 자유로워졌다(Free at last)’라는 민족 영웅의 전언을 받들어 작곡한 ‘Think’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담았다. 열성을 토하는 저항적인 가사는 유명 세션들의 연주와 어우러지며 소울 음악의 본질을 투영한다.

물론 시대적 상황과 별개로 본인의 경험이 녹아든 곡이기도 하다.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맞이했던 첫 결혼 생활, 전 남편이었던 테드 화이트의 상습적인 가정 폭력은 또 다른 억압이었다. 이때 목사의 죽음이 도화선에 불을 댕겼고 피부색은 물론 성별에 의한 차별까지 겪고 있던 그는 흑인을 멸시하던 백인과 여성을 홀대하던 남성을 향해 날 선 비판을 던졌다. 강자에겐 죄책감을 부추기고 약자에겐 자긍심을 고취했던 ‘Think’는 지금까지도 ‘Respect’와 함께 ‘소울 여왕’의 업적을 아로새기는 인류애의 산물이다. (정다열)

I say a little prayer (1968)
“이미 히트한 곡을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리메이크한다.” 만약 당신이 제작자라면 원전의 존재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러한 모험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나라면 과감히 승부수를 띄워볼 만도 할 것 같다. 대신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겠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내 레이블의 소속 가수라는 전제 말이다.

그는 디온 워윅이 1967년에 선보여 이미 빌보드 Hot 100 4위를 기록했던 노래를 불과 1년 만에 자신의 디스코그라피로 소환했다. 비록 앞선 업적을 넘어서지 못하고 10위에 머물렀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에 와 이 싱글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아레사 프랭클린이다. 아무래도 보컬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강조했던 오리지널이 여유와 박력을 동시에 갖춘 그의 가창력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 셈이다.

코러스를 전담해 가스펠의 기운을 불어넣은 스위트 인스피레이션(The Sweet Inspirations)의 전 멤버가 디온 워윅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더불어 작사가 할 데이비드(Hal David)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자를 걱정하는 여자를 모티브로 해 써 내려간 노래로, 나름의 시대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에게는 영화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에서 조지가 줄리안에게 부르던 뮤지컬 같은 장면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967년과 1968년 사이 그가 거머쥔 9개의 Top 10 히트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트랙. (황선업)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1)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1970년 발매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곡으로 더 유명하다. 1960년대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포크 듀오의 원곡은 발매 1년 만에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로 재탄생했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이끄는 찬송가 분위기에서 거센 물살처럼 용솟음치는 가창의 폭발력을 더한 소울 넘버로 변신했다. 원곡에서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보컬이 따뜻한 위로의 감성을 주었다면 희망찬 그루브가 이끄는 소울 여왕의 버전은 힘찬 에너지로 하여금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린다 클리포드, 메리 클레이턴 등 5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이 곡을 커버했지만 그 누구도 아레사만큼 영혼을 담아 재창조하지는 못했다. 가창자인 아트 가펑클은 아레사의 재해석을 원곡보다 높이 평가했으며 작곡자 폴 사이먼 또한 수십여 버전의 리메이크 중 제일로 꼽았다. 경건하게 울리는 피아노 연주의 간결함뿐이지만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파워풀한 성량과 광활한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보컬은 전율을 일으키기 충분했고 1972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김성엽)

Spanish harlem (1971)
대중에게 친숙한 곡을 커버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미국 가장 위대한 보물 목소리에 그런 걱정은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히트곡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 아니 완벽히 갈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 ‘Spanish harlem’은 기존 버전을 새까맣게 잊게 하는 철저한 자기화로 빌보드 소울 차트 정상과 싱글 차트 2위를 석권하며 원곡자 벤 이 킹의 기록을 앞질렀다.

벤 이 킹의 버전이 느긋한 룸바 리듬으로 서정적이었다면 무거운 베이스라인과 펑키한 기타, 닥터 존(Dr. John)의 피아노를 껴입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그것은 거친 할렘 거리의 후끈한 열기에 가까웠다. 예쁜 가사 ‘There is a rose in spanish harlem’을 ‘There’s a rose in black at spanish harlem’으로 각색한 노랫말은 흑인 공민권 시대 정서를 절묘하게 나타낸다. 20세기 소울 퀸은 리메이크에서도 이렇게나 치밀했다. (이홍현)

Rock steady (1971)
우리나라에서 지난 7월에 개봉한 레게 다큐멘터리영화 < 자메이카의 소울: 이나 데 야드 >에서 한 가수가 록스테디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스카는 연달아 춤추기 힘들었어요. 피곤하다고들 했죠. 그래서 더 느리게 춤추기 시작한 게 록스테디였어요.” 스카의 후임이자 레게의 이전 모델인 록스테디는 느린 템포가 특징이다. 록스테디의 명칭을 취한 ‘Rock steady’도 템포가 그리 빠르지 않다. 록스테디의 평균 BPM이 80에서 100이고, ‘Rock steady’의 BPM이 100을 조금 넘으니 록스테디의 속도까지 빌린 셈이다.

템포는 다소 느린 편이지만 분위기는 경쾌하다. 주제도 춤이다. 묵직한 베이스 연주와 가벼운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조화를 이루며 몸을 흔들기에 좋은 리듬감을 생성한다. 관악기 연주는 노래를 한층 밝게 꾸며 준다. 백업 싱어들과 말을 주고받는 방식의 보컬 또한 생동감을 생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코러스에서 외치는 “아~” 소리에는 약간의 울림 효과가 가해져서 노래가 신비로운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꾸준히 흔들어!”라는 문장은 파티나 춤을 즐기는 사람들의 잠언이 됐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록 스테디 크루라는 브레이크댄싱 팀이 생겼다. 지난달 29일 열린 브레이크댄싱 배틀 대회 < 의정부 브레이킹 게임즈 >에서는 음악을 담당한 브레이킹 심포닉이 오프닝 무대로 ‘Rock steady’를 연주하고 불렀다. 브레이킹 시합에서 ‘Rock steady’가 자주 흐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또한 수많은 힙합 노래에 차용되며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강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한동윤)

Until you come back to me (that’s what I’m gonna do) (1973)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과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의 명성을 이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표 발라드 넘버. 스티비 원더가 클라렌스 폴, 모리스 브로드낙스(Morris Broadnax)와 함께 쓰고 1967년 녹음까지 한 이 멋진 곡이 아레사를 통해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1973년 노래의 잠재력을 발견한 그는 자신의 버전으로 곡을 제작해 이듬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안착시켰다. 스티비 원더의 잔반을 커리어 최고의 싱글 중 하나로 맞바꾼 셈이다.

직접 연주한 낭만적인 피아노 전주와 조 파렐의 플루트가 산뜻한 재즈 감성을 제공하지만 곡 내용은 다소 등골 오싹하다. 자신을 차버린 전 애인을 찾아가 그의 집 현관문과 창문을 두드리는 스토커의 ‘집착’ 송! 굽이진 선율 곳곳을 매끄럽게 타고 흐르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황홀한 목소리는 스릴러 영화 같은 이런 으스스함마저 극도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힘이 있었다. (이홍현)

Jump to it (1982년)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펄펄 날던 ‘여왕’은 1974년부터 여러 문제에 휩쓸리면서 인기 전면에서 퇴각한다. 아레사란 이름은 오랫동안 차트와 매체에서 사라졌다. 1976년 ‘Jump’라는 곡을 발표해 간절히 ‘점프’를 원했지만 여의치 않았다(72위). 하지만 1982년 이 곡과 함께 제집처럼 드나들던 전미 차트 톱 40에 ‘6년 만에’ 마침내 ‘점프'(24위), 리즈시절 재(再)도래에 희망을 갖게 된다. 1985년 ‘Freeway of love’로 시작된 2차 전성기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은 물론 구원을 도모했다고 할까.

아레사는 갈망하던 히트 산출을 위한 기법을 당시 막 프로듀서, 작곡자, 가수로 떠오르던 루더 밴드로스에게 맡겼다. 그는 마커스 밀러와 공동으로 이 곡을 써, 아레사만이 구사하는 필살기, 그 펑키(Funky) 비트 지배력에 모든 것을 맡겼다. 서로를 향한 상호의탁과 신뢰가 낳은 결실! 환상적인 밀러의 베이스 연주 위에, 정말이지 비트를 쪼개가며 ‘노는’ 능란하고 찬란한 가창은 6년 뒤의

두에 중한 위치를 점하는 숨은 보석. 이 곡을 대야 아레사의 리얼 팬이다. (임진모)

Freeway of love (1985)
< Young, Gifted And Black > 이후 12년간의 부진을 끊어낸 것은 경쾌한 댄스 팝 ‘Freeway of love’였다. ‘사랑의 고속도로’라는 러브-코미디 드라마스러운 제목, 분홍 캐딜락의 들썩이는 승차감과 닮아 있는 퍼커션 리듬, 질주감을 자아내는 빠른 템포의 작풍. 곳곳에는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나 댄스 팝의 시류를 감지한 흔적이 선명하다. 변화의 필요를 체감한 결과였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에게 운전대를 맡긴 채 신시사이저가 활개 치던 1980년대 시대상으로 직접 돌파한 것이다.

이러한 협업 가운데 탄생한 이 가벼운 드라이빙 송은 발매 2개월 만에 빌보드 차트 3위에 오르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이후 그래미상 최우수 여성 R&B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도 수상을 안겨주는 등 과거 못지않은 영예를 선사하기에 이른다. 디스코와의 합일로 도약을 시도한 ‘Jump to it’과 더불어 아리스타 레코드에서 펼친 변혁적 행보를 대표하는 곡이 된 셈. 결국 ‘Freeway of love’의 사례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가리킨다. 대중을 사로잡는 보컬리스트의 진정한 덕목은 모든 배경적 요소를 뛰어넘는 독보적인 유연함에 있음을. (장준환)

Who’s zoomin’ who (1985)
1983년에 발표한 앨범 < Get It Right >의 실패는 충격이었다. 절치부심한 아레사 프랭클린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 나라다 마이클 월든의 조력을 받아 당시의 트렌드였던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대거 도입한 30번째 음반 < Who’s Zoomin’ Who >로 성공을 거뒀다. 기존의 ‘소울의 여왕’답지 않은 음반이지만 그해 < 타임 >지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도 천거되며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오랜 침체기를 끝낸 효자 앨범이다.

‘Freeway of love’에 이어 두 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에 오른 ‘신스팝 소울’ 넘버 ‘Who’s zoomin’ who’는 808 드럼머신을 적극 활용해 투명하고 선명한 비트를 강조했다. 상승한 리듬감과 여유로운 그루브로 채워진 이 곡은 미국 대중의 선택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히 배척당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볼륨감이 넘실거리는 명곡 ‘Who’s zoomin’ who’를 발표하고 2년 후에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부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로 국내에서 넓은 인지도를 쟁취했다. (소승근)

Jumpin’ jack flash (1986)
2차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 Who’s Zoomin’ Who > 직후 일 년여만인 1986년 발매한 31번째 스튜디오 앨범 < Aretha >의 수록곡이다. 그의 이름 ‘아레사’를 내세운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이는 곧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를 비롯해 ‘Jimmy Lee’, ‘Rock-a-lott’을 배출하며 대중적인 성공으로 향했다.

그 행렬의 선두는 ‘Jumpin’ jack flash’였다. 롤링 스톤스가 1968년 발표한 명곡은 밴드의 멤버 키스 리처드의 주도 아래 재해석되었고 우피 골드버그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 < Jumpin’ Jack Flash (위기의 암호명) >의 타이틀로 사용됐다. 록의 근원인 블루스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탄생한 원곡의 뿌리는 간직한 채 코러스 세션, 기타 솔로와 어우러지는 피아노 연주 등이 더해져 경쾌해진 ‘Jumpin’ jack flash’. 아레사 프랭클린의 짙은 목소리로 만개하며 빌보드 싱글차트 21위를 기록했다. (손기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With George Michael) (1986)
곡의 의의는 왬!의 조지 마이클이 아이돌 이미지에서 벗어나 음악 역량을 증명한 데 있지만, 그 성과만큼 아레사 프랭클린에게도 거대한 족적을 남긴다. 가장 큰 기록은 ‘Respect’에 이어 20년 만에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는 점이다. 덕분에 자서전 내용은 배로 늘었을 것이다. ‘너의 의미’로 아이유의 연락을 받은 김창완이 그러했을까, 신구 조합에도 눈이 간다. 장르 직속도 아닌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의 부탁에 흔쾌히 응한 그의 모습에서 멋진 선배의 미덕이 돋보인다. 올라간 조지 마이클의 위상만큼 아레사의 위용 또한 위대해진다.

소울의 여왕이란 왕좌는 넘버원을 달성하는 퀘스트를 깨면 받는 보상처럼 자동으로 오르는 자리가 아니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의 음악, 말 그대로 그가 대중을 위한 음악을 불렀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당도한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노래나 부르면서 방구석 뮤지션으로 실력을 쌓아간들 그냥 노래 잘 부르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준 데에 대해 팬들이 선사한 영원한 선물이자 최고의 존중이다. 누가 뭐래도 소울의 대명사는 아레사 프랭클린이다. (임동엽)


정리 :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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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한국 R&B/Soul 명곡 10 (2000년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도출한 한국어 랩의 가능성과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를 일대로 벌인 춤꾼들의 춤사위. 이는 나아갈 새천년의 국내 대중음악계 주류를 흑인 음악으로 맞바꾸어 놓은 초석과도 같았다. 그 후 21세기를 맞은 2000년대는 말하자면 한국이 흑인 음악에 열광, 열중하던 시기였다. 바다 건너 흑인들의 것인 줄만 알았던 ‘소울’을 한국화한 혼혈, 재미 교포 출신 가수들의 선구적인 활약과 그를 우리 정서에 맞게 녹여낸 ‘소몰이 창법’의 물결까지. 다양한 형태의 히트곡들이 줄을 이었다. 가창력의 척도가 스크리밍(Screaming) 등 록 기반의 고음에서 알앤비 특유의 정교한 기교, 꺾기로 변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알앤비/소울은 현대의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하다. 빌보드 차트에서 목도하듯 세계 음악 시장을 주름잡는 블랙 뮤직은 그 위세를 그칠 줄 모른다. 비대해진 힙합의 지분으로 이제는 랩과 노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싱잉 랩이 새 시대의 창법으로 성행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났지만, 2000년대 국내 대중음악계를 빛낸 알앤비/소울 명곡들의 보다 날 것의 감성을 들어보자. 지금의 국내 흑인 음악 트렌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추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 – 어제처럼 (2000)
재미교포 가수 제이의 시작이 댄스였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는 새삼 믿기 어렵다. 그를 기억하면 언제나 ‘어제처럼~’이 귓가에 맴돌기 때문이다. 1집의 존재감은 그만큼 미미했지만 소울로의 안정적인 노선 변경에 성공한 차기작은 그의 진가를 발휘한 튼실한 앨범이었다. ‘어제처럼’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감성을 제공한다. 알앤비하면 흔히 기교 섞인 목소리나 짙은 감정선을 연상하곤 하지만 ‘어제처럼’은 그와 사뭇 다른 부드럽고 담백한 멜로디와 여린 목소리로 유통기한이 긴 제이만의 소울을 잉태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은 노래는 2000년도 S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 등을 석권하며 그에게 꿈같은 한 해를 선물했다.

박화요비 – 그런 일은 (2000)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는 때로 놀라울 정도로 이른 때에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등장부터 숙성된 가창력을 자랑하며 박정현과 국내 알앤비 신을 양분한 화요비이지만 이 노래를 부를 당시 그의 나이 고작 19세. 머라이어 캐리의 발라드 ‘My all’에서 따온 앨범 제목이 만용으로 보이지 않는 진짜 ‘노래 잘하는 신인’의 출현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를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선명하게 들리는 숨소리의 호소력과 천부적인 완급 조절이 캐리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과의 유사성을 차치하고 그가 내뿜는 소리 자체에 귀 기울여 보자. 말할 때 육성에서 알 수 있는 낮은 톤, 여기에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허스키한 보이스가 실로 매력적이다. 성숙한 음성과 대비되는 여린 이별 가사가 더해져 더욱 가슴 아린 화요비표 알앤비 발라드.

박정현 – 꿈에 (2002)
솔리드의 김조한과 함께 국내 알앤비 보컬의 선두주자로 통하는 박정현이다. 여러 장르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을 알앤비 가수로 결정지어 결부하기를 거부하지만, 누가 뭐래도 당대 우리나라 알앤비 돌풍의 주역은 그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데뷔 이래 ‘P.S. I love you’,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 멋진 곡을 많이 들려줬다. 하지만 ‘꿈에’만큼 강렬한 곡은 그에게도, 다른 가수에게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많은 이들에게 안긴 극적인 구성의 놀라움이 지금도 유효하다. 공일오비 정석원이 편곡한 몽롱한 국악기 소금 반주를 시작으로 ‘꿈에서 만난 옛 연인’이라는 주제 아래 기쁨과 절망, 잠에서 깬 후의 아련한 감정을 차례대로 연결 짓는 노래는 ‘스토리텔링’의 정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박정현은 이 대담한 서사에 더욱 높은 수준의 입체감을 조각한다. ‘보컬 올림픽’이란 말도 나왔을 정도. 약간은 부정확한 발음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과 절마다 창법을 변조해나가는 완급 조절, 막힘 따위 모르는 막강 성량이 결합하여 폭발한다. 작곡가의 상상 그 이상을 실현하는 가수의 놀라운 역량이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Missing you (2003)
대중에게 익숙한 국내 알앤비 명곡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사실상의 알앤비 ‘발라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림과 애절함에 흔들리는 이 우리 정서는 이별 등 연모의 감정에 유독 취약하다. ‘Missing you’는 그 한국적 감수성의 표본이다. 대중의 보편적 가녀림을 파고드는 섬세하고 애절한 노랫말의 주제는 이별을 넘어 ‘사별(死別)’이다.

다양성과 장수의 목적 아래 SM이 내놓은 이들의 시작은 비주얼부터 화려한 아이돌이었지만 성숙한 느낌의 곡만큼은 어른 취향 가까워 심심할지라도 긴 수명을 보냈다. 만화 속 소울메이트처럼 외형적으로도 잘 어울리는 환희와 브라이언은 이 노래에서 각각 터프한 흉성과 맑은 미성의 매끈한 조화로 모범적인 듀오의 콤비 플레이를 전시했다.

휘성 – With me (2003)
휘성은 풋내가 없는 신인이었다. 서태지, 신승훈의 상찬을 등에 업고 등장한 괴물 신예에게 1집 발라드 ‘…안 되나요…’는 공전의 히트를 안겼지만 가수는 그 이상을 넘봤다. 차기작 < It’s Real >에서 마음껏 발산한 원숙미야말로 ‘진짜 자신’을 선언한 예술가적 발로였다. 이 중심에는 지금의 휘성을 있게 한 ‘With me’가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미디엄 템포 장르를 멋들어지게 구현했다. 전작에 비해 강해진 장르적 색채에도 리드미컬한 드럼 타격이 주도하는 어반한 분위기는 대중에 가닿기에 충분했다. 신선함을 익숙함으로 맞바꾸는 작곡가 김도훈의 완연한 멜로디 라인에 묵직한 톤으로 능란하게 박자를 타는 휘성의 자신감 넘치는 활약은 거부할 수 없는 성공 공식이었다. 음반 판매량 40만 장을 넘기는 가공할 만한 위세를 누렸다.

빅마마 – 체념 (2003)
여타 멤버의 가창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더라도 노래 잘하는 가수 한두 명만 중심을 잡아줘도 그 팀은 실력파 그룹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네 명이라면? 요즘 시쳇말로 ‘사기캐’다. YG 엔터테인먼트와 알앤비 전문 레이블 엠보트(M-Boat)의 의기투합이 발굴한 빅마마가 그렇다. 당시 가요계 립싱크 행태를 꼬집은 ‘Break away’ 뮤직비디오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등장은 비주얼 가수에게 응수하는 ‘가창력 그룹’의 도발적인 한 방이었다.

이영현이 홀로 작사, 작곡, 노래한 솔로곡 ‘체념’이 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오랜 시간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 이별 경험을 토대로 작사한 노랫말과 선 굵은 선율이 이영현 특유의 카랑한 고음을 타고 가슴 속에 아로새겨진다. 양현석과 엠보트 대표 박경진은 ’10년이 지나도 듣기 좋을 곡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팀을 꾸렸다던데, 이들을 한참이나 과소평가했다. 벌써 18년째 애청, 애창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소토 유니온 – Think about’ chu (2003)
짧아서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한 활약이었다. 국내 흑인 음악 신의 선구자이자 보석과도 같던 팀 아소토 유니온의 빛나는 합동은 아프리카 부족 제사 의식용 북 ‘아소토’를 발췌한 그룹명처럼 원시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연주를 들려줬다. 드렁큰 타이거가 주도하던 크루 무브먼트의 밴드로서 이들이 보여준 것은 흑인 음악 원류에 관한 치밀한 탐구. 포화 상태에 있던 유사 블랙 뮤직들 사이에서 진정한 ‘검은 맛’이 무엇인지 시범이라도 보이는 것 같았다.

연주곡과 영어 곡의 큰 비중 속 ‘Think about’ chu’의 우리말 가사가 빛난다. 짙은 호흡을 섞어 허스키한 톤을 구사하는 김반장의 보컬이 소울 본연의 필(Feel)을 적극 구현하면서도 그 중심에 또렷이 생동하는 노랫말은 소울과 한국어의 반가운 악수를 보는 듯하다. 귀에 착 감기는 베이스 그루브와 서정성을 가미한 전자피아노의 끈적거림을 매끈하게 마감질한 사운드는 리마스터의 필요성에 반기를 든다. 2003년도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가 나왔다.

나얼 – 귀로 (2005)
브라운 아이즈로 점화한 미디엄 템포 붐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 완성한 갈색 하모니의 정수. 결과물로 보여준 영향력도 지대하지만 이렇게 한 장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 아티스트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같은 우물을 파는 뚝심이야말로 나얼이 국내 알앤비/소울의 대명사가 된 원동력이다. 2005년 발매한 < Back To The Soul Flight >는 옛 명곡을 소울로 재해석한 소울에 바치는 그의 러브레터였다.

중독적이다 못해 최면적인 도입부 피아노 반주에 기절하고 나면 소울 도인(道人)의 경지를 탐하는 나얼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물을 머금은 듯 애잔하고, 탁월한 공명감의 두성이 아름답다. 흉내 의지를 꺾는 화려한 애드리브를 정밀하게 스케치해낼 때면 이게 우리나라 가수가 맞나 싶다. 심지어 이는 1989년 박선주의 원곡을 여자 키 그대로 부른 것이다. 나얼은 독보적인 노래꾼이다.

BMK – 꽃피는 봄이 오면 (2005)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등 1960년대 소울 거장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원시의 소울은 흑인의 민권 회복과 자긍심 표출을 위한 분출구와 같았으며 이들의 보컬은 필히 웅변적인 힘, 우렁찬 스태미너를 특징으로 한다. BMK의 스피커가 터질 듯 묵직하고 강력한 목소리와 비교해보자. 그들처럼 차별에 대한 격노나 한을 노래하지는 않아도, 무자비한 성량만큼은 그것의 전형과 쏙 빼닮았다. 과연 ‘소울 국모’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절절함도 여기서 온다. 산뜻한 봄날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쳐버린 감정의 파고를 노래하는 이 곡은 간주도 없이 빽빽하게 채운 보컬이 굵직한 멜로디를 뽑아내고 이내 극단의 감정을 토해내는 후렴부로 치닫는다. ‘찰나 같아 찬란했던 그 봄날’처럼 이별의 심정을 지독하리만치 아름답게 대변하는 노랫말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알고 있던 봄의 계절감을 잊게 할 만큼 애틋하다. 소개한 다른 가수들에 비해 히트곡이 많지 않은 그이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 하나만으로 계절만 되면 소환되는 스테디셀러의 주인공이 됐다.

윤미래 – What’s up! Mr. good stuff (2007)
전략은 중도, 무기는 실력. 윤미래는 날고 기는 신의 강자들 사이에서 잔학한 쌍칼 검법의 가능성을 창출한 독보적인 멀티 플레이어다. 대중과 장르 애호가를 모두 사로잡기 위한 랩, 노래의 현란한 휘날림과 속속 발매한 발라드 히트 넘버들로 양 분야 모두의 정상급 인정을 확보한 그였다. 그러한 완벽에 가까운 이도류의 특성을 압축하고 블랙 뮤직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위상을 철저하게 굳힌 작품이 < t 3 Yoonmirae >다.

수록곡 ‘What’s up! Mr. good stuff’는 리얼하다. 인트로의 거친 드럼에서 예고하듯 호쾌한 펑크(Funk) 그 팔딱거리는 참맛을 별다른 효과 없이 기타, 브라스 등 화끈한 세션의 합연만으로 전달한다. 역동적인 박수 소리와 브릿지 내레이션은 입체감 이상의 현장감을 부른다. 자유롭게 그루브를 타고 흐르는 윤미래의 보컬을 따라 춤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노래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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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CIRCLE’ (2021)

평가: 3.5/5

대중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피제이와 진보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덕분에 현재는 많은 뮤지션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뮤지션의 뮤지션’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 11년 전 첫 번째 앨범 <The Combination>으로 합을 맞춘 이들은 농익은 음악성으로 하고픈 걸 맘껏 펼쳐 보이면서 수준도 높은 앨범의 사례를 제시한다.

피제이가 창조하는 비트는 이미 궤도에 올라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균등하게 맛깔나다. 한 마디에 킥이 두 번 나오며 독특한 리듬을 형성하는 투스텝은 2000년대 초반에 크레이그 데이비드나 베이얼에 의해 유행한 스타일. ‘Waterfalls’는 투스텝 리듬으로 생경한 매력을 형성하고 트럼펫과 신스 베이스, 하우스와 힙합 리듬같이 다른 성질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엮은 두 주인공의 장기는 조화롭다.

퍼지 톤의 신시사이저 음색이 잔향을 남기는 네오 소울 곡 ‘Show me’는 변화가 많지 않은 비교적 선형적인 구조 안에서 감각적인 보컬과 대중적인 코드 진행으로 지루함을 상쇄한다. 드럼 앤 베이스가 연상되는 도입부의 ‘Swiss gold’는 힙합과 재즈가 결합해 1940년대의 스윙 시대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시간 여행하는 진귀한 경험을 제공한다. 힙합과 알앤비, 소울 등 흑인 음악의 우산 아래 다양한 스타일을 체득한 진보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노랫말에도 취향이 확고하다. ‘Singularity’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 특이점이 온다 >에서 따온  ‘Singularity is coming’을 주문 외듯 반복하고 삶의 다채로움과 행복을 담은 ‘Multiverse’의 라이브 결을 살린 드럼 연주와 기타 리프, 오토튠 조합은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을 무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중우주론과 닮았다. 앨범 전체의 소리를 경유하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조우는 어린 시절의 영향과 현재의 관심사, 미래의 예견을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타임라인을 생성한다.

15년 역사가 축적된 음악에 대한 신념과 서로를 향한 믿음은 11년 전 원의 중점에 함께 섰던 그들의 곡선과는 차이가 있지만 다시 한번 원을 그리며 사람들의 손을 맞잡는다.

– 수록곡 –
1. Singularity
2. Multiverse
3. Waterfalls
4. Can you understand
5. Interlude
6. Show me
7. Swiss gold
8. Purpl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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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도헌의 Twist And Shout

경이로운 ‘소울’의 음악세계

< 소울(Soul) >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작품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음악 영화임은 분명하다.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티나 페이 분)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 속 삶의 가치를 다시 묻고, 모든 것의 근원으로 거슬러올라가 세계 속 개인을 곱씹게 만든다. 그 핵심 가치의 은유 도구가 음악이다. 영화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해 영적인 즉흥을 거쳐,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는 황홀경을 향해 나아간다.

 < 인사이드 아웃 >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잡은 감독 피트 닥터는 유년기 음악을 가르쳤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더블 베이스를 연주한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이었다. 자연히 재즈의 팬으로 자란 그는 제작 회의 중 우연히 누군가가 언급한 허비 행콕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시청한 후 주인공 조의 직업을 결정했다. 영상 속에서 허비 행콕은 투어 중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합동 공연을 회상하는데, 워낙 큰 무대에 긴장한 나머지 연주 중 그만 음을 틀려버렸음에도 마일스가 곧바로 흐름을 이어 즉흥으로 연주를 진행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거장의 유연한 대처 일화는 삶의 지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 주제로 이어졌다. 조 가드너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를 동경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 집안의 반대와 경제적 사정에 부딪쳐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 학교 밴드 아이들과 씨름하면서도 조는 어린 시절 그를 매료시킨 클럽에서 밴드의 일원으로 공연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 가드너의 아이디어, 악기, 연주, 노래가 될 아티스트로 < 소울 > 제작진은 1986년생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Jon Batiste)를 낙점했다. 존은 젊은 나이에도 그래미 어워드 3회 노미네이트 된 실력자이며 현재 ‘더 애틀랜틱’과 뉴욕 할렘 재즈 박물관의 음악 디렉터, 미국 CBS의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쇼 음악 감독을 맡은 대세 뮤지션이다. “영적인 장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며 조화롭고 멜로디가 살아있는, 리듬감 있는 음악”을 생각하며 존은 재즈를 기반으로 한 알앤비, 소울, 클래식 사운드트랙을 자유로이 선보였다. 

고전과 현실을 오가는 활기찬 연주가 ‘누구도 걷다가 멈추지 않는 도시’ 뉴욕의 조 가드너를 숨 쉬게 한다. 극 초반부터 화려한 연주로 재즈 클럽에서의 오디션과 들뜬 마음을 표현하더니, 중후반부부터는 ‘뉴욕 영화’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도시의 소음과 일상의 사물과 함께 일상의 경이로움을 발굴하는 데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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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비 행콕부터 테리 린 캐링턴, 퀘스트러브 등 신을 이끄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자문을 더하며 고전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았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Blue rondo a la turk’, 월터 노리스의 ‘Space maker’, 듀크 피어슨의 ‘Cristo Redentor’ 등 과거의 명곡이 사운드트랙 곳곳에서 변주된다.

“우리 밴드의 음악 연령대는 95세부터 19세까지다!”. 존 바티스트의 자랑스러운 선언대로 < 소울 >의 음악은 세대 무관이다. 올드 재즈 팬부터 신세대 베드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까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아지경의 세계 속 자유로이 발걸음을 옮기는 연주의 즐거움과 쾌감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자연스레 옮기는 것은 덤.

1963년 커티스 메이필드가 작곡한 임프레션스의 고전 ‘It’s all right’ 역시 존의 손 끝에서 극의 마지막을 잔잔하게 빛낸다. 정말로 ‘손 끝’이다. 실제로 영화 속 조의 연주 장면은 존의 실황을 촬영해 모션 캡처로 옮긴 결과물이니까.

그토록 바라던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된 조. 벅찬 감정에 발 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다가 그만 하수구에 빠져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고 만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을 닮은 형이상학적 존재 ‘관리자’들과 무한한 영혼들이 신비로운 풍경을 이루는 이 곳에서 음악의 문법도 빠르게 전환된다. 리얼 세션 재즈에서 영롱하고 광활한 앰비언트가 장엄한 소리의 안개를 펼친다. 

이 세계의 설계자들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다. 음악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로 유명한 이름이다. 1994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인간의 음울과 고통을 절규하듯 토해내던 인더스트리얼 밴드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지 이들의 참여 소식은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정작 트렌트 레즈너는 “픽사만큼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곳은 없다”며 반가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21세기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보다 사운드트랙 작곡가로 더욱 유명하다. < 소셜 네트워크 >, < 나를 찾아줘 >, < 버드 박스 >, < 맹크 >까지 유수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담당했고 특히 2010년 < 소셜 네트워크 >로는 2010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검증된 아티스트다. 그럼에도 < 소울 >은 듀오의 첫 애니메이션 작업이고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과는 꽤 거리가 있는 전자 음악을 선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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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티스트가 즉흥의 붓질이라면 트렌트와 애티커스는 아티스트의 캔버스 같은 존재다. 장대한 가상공간 곳곳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듀오의 음악은 야심 가득하면서도 포근하며 천진한 디즈니의 성격에 정확히 부합한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부터 가상 악기, 사운드 합성을 통해 제작한 소리는 < 인사이드 아웃 >의 감정, < 토이 스토리 >의 포근한 무생물 세계와 닮았으면서도 분명히 구분된다. 사후세계 ‘머나먼 저 세상’부터 어린 영혼들을 교육하는 ‘유 세미나’까지 유연하게 찰랑이는 청각의 물결이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영화처럼 두 ‘음악 관리자’ 들의 연주도 자유로이 교차된다. 하이라이트는 가상 세계 관리자 테리(레이첼 하우스 분)가 존과 22를 뉴욕으로부터 가상 세계로 영혼을 데려갈 때다. 재즈 밴드 연주가 왜곡된 사운드 벽을 거쳐 긴박한 앰비언트 파편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긴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충돌의 순간을 그린다. 친절하게도 트렌트 레즈너는 곧이어 온화한 피아노 뉴에이지로 긴장을 낮추며, 존 바티스트가 바통을 이어 화려한 고전의 세계를 전개한다. 아름다운 앙상블, 화려한 하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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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사운드트랙 덕에 < 소울 > 은 한 편의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의 형태로 비유된 음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음악은 곧 삶과 동의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 거대한 ‘불꽃’ 같은 순간을 바라며 삶을 무의미하다 비관할 수 있지만, 관리자 제리(리처드 아이오아이 분)의 말처럼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리에게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드는 음악, 그 몰입의 과정 속 선물처럼 내려오는 아름다운 순간, 그것이 곧 삶일지니. 훌륭한 작품의 드넓은 저편에 경이로운 음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