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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13 곽경묵 인터뷰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홍이삭, 김구라와 아들 그리, 백영규, 박기영, 리듬파워, 이자람 등이 자리해 그들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열세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밴드 소울 트레인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곽경묵이다.

이름에서부터 소울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느껴진다. < 소울 트레인(Soul Train) >은 1971년 첫 방영된 미국의 유명 TV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소울 음악을 필두로 R&B, 디스코, 펑크(Funk), 가스펠, 힙합 등 소위 흑인 음악으로 대변되는 아티스트들의 라이브를 35년간 일반 대중에게 전했던 전설적인 음악 방송이다. 이 쇼 프로는 ‘블랙 뮤직 파티’ 그 자체였다. 밴드 소울 트레인은 이 이름을 그대로 따온 한국의 소울 밴드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기본 밴드 구성에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으로 이루어진 금관악기 멤버들과 코러스, 보컬리스트까지 가세해 10인조의 대규모 그룹의 편성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가족적인 팀워크가 이들의 특장점이 되었다. 현란한 기교보다는 멤버의 조율과 조화를 중시하며 고전 음악 포맷이 최적의 합을 맞춰왔다. 단순하게 옛 음악을 현재로 가져왔다고만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하모니가 밴드 소울 트레인에 새겨져 있다. 현재 개인 건강상의 이유로 리더 곽경묵과는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쾌유를 빌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밴드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2008년에 처음 결성된 소울 트레인이다. 우리 밴드는 소울 음악을 하는 팀이다.

한국에서 정통 소울 밴드라고 하니 많은 대중에게는 낯설 것 같다. 밴드 소울 트레인은 어떤 팀인가?
같이 뮤지컬에서 연주하던 몇몇 브라스 멤버들과 뜻이 맞아 대학로의 작은 클럽에서 같이 연주를 해왔다. 처음에는 10인조로 출발한 대규모 밴드였다.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멤버 변화가 다소 있었고, 때때로 객원 멤버와도 함께 연주하고 있다. 현재에는 7인조로 남아 있다. 멤버는 내가 세션 연주를 하던 시절부터 합을 맞춰온 드러머 이정학, 뮤지컬 작품을 하며 만난 키보드 윤희나, 대학로 클럽에서 연주하며 지금까지 계속 함께 해온 노래하는 임윤정, 작년에 새로 들어온 듬직한 베이스 김광훈. 그리고 뮤지컬을 하면서 만나 소울 트레인을 함께 만든 색소폰 조성현, 트롬본 김신. 그리고 기타 치는 나. 이렇게 7명이다.

음악적인 지향점은 처음부터 60~70년대 유행했던, 거칠지만 따뜻한 소울 음악을 연주하는 거였다. 지금도 그렇다. 프로필에는 ‘한국형 소울’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웃음) 한국 사람이 하면 그냥 한국형이라고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구성원도 많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다. 어떤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라이브에서나 음원으로도 가족적 팀워크 강한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모임이나 마찬 가지겠지만 두 명 이상이면 힘든 건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래도 나름 리더의 결정에 잘 따라준다. 또 알아서들 형, 누나, 아우들 잘 챙기는 인성 좋은 친구들이라 편하고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점들이 연주 하거나 공연할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서로 연주도 배려하면서 한다고 할까.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 서로를 배 려하는 분위기가 밴드 소울 트레인에는 늘 있다. 속된 말로 나대는 사람이 없다. 그 장점이 단점일 때도 있다. 누군가 확 앞으로 치고 나가줬으면 할 때도 너무들 참아준다. (웃음)

그 외에 멤버가 많아 힘들 때는 아무래도 사람이 많으니 돈이 많이 든다. 이동 비용이 가장 힘든 문제다. 다 돈이다. 또, 밥 한 끼를 먹어도 다른 밴드의 두 배는 기본이니까 말이다. (웃음)

결성 이후에 프로젝트 성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김추자 트리뷰트 밴드 ‘춤추자’ 밴드에 관해서도 궁 금하다.
2010년 < 지산 록 페스티벌 > 때 트리뷰트 밴드들이 꾸미는 무대가 있었다. 함께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이런 저런 의견들을 모으다가, 때마침 당시에 앨범 준비하면서 많이 듣고 있던 김추자 선생님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윤정이의 제의로 진행하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던 프로젝트였다. 45분짜리 메들리를 만들어 쉼 없이 연주하고 끝냈다. 관객분들과 지산 록페 측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도 한 번 더 참여하게 됐다. 두 번 모두 열심히 준비했고 좋은 기억이 많았던 공연이다. 특히 호응이 좋아서 더 즐거웠다. 덕분에 1집에도 몇 곡이 수록되었다. 그 콘셉트로 팀의 합도 좋아 공연도 몇 번 했다. 언젠가는 다시 연주하고 싶은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첫 솔로 앨범 < 49…Again >(2017)은 어떤 앨범인가?
50을 앞두고 뭔가 소울 트레인이 아닌 내가 좋아하던 스타일들의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 오랜 인연이 있는 사토 유키에(Sato Yukie) 형의 ‘곱창전골’이라는 밴드가 있다.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한국 음악을 하는 재미있는 록밴드다. < 49…Again >(2017)은 곱창전골의 베이시스트 아카이 코지로(Akai Kojiro)와 드러머 이토 코키(Ito Koki)라는 두 일본 친구와 함께 만든 앨범이다. 이 멤버와 크고 작은 공연을 많이 해왔었다. 언젠가는 꼭 프로젝트로 함께 연주하고 싶은 아티스트들이었다. 그래서 솔로 앨범이지만 ‘MOOK & JAKO PROJECT’라는 팀 이름으로 발매했다. 여기에서 ‘MOOK’은 일본 친구들이 부르는 내 이름이고, ‘JAKO’는 별 뜻 없이 JAPAN KOREA의 합쳐진 말이다. 이름 배열의 순서는 손님 먼저다.

기타리스트 무크(Mook)는 상상밴드 활동으로 많은 이들이게 알려진 편이다. 지금의 커리어와는 사실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상상밴드 시절의 연주와 추억 같은 것이 있다면?
상상밴드는 당시 회사에서 관리해주던 밴드여서 편하긴 했다. 사실 내 음악이라기보다는 리더였던 쇼기와 노래하는 베니의 음악이었다. 그래도 나름 팀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더 많이 참여하고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그때 멤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음악적으로 안 맞 았다는 이유보다는 그 당시 음악인으로 게을렀다는 생각이다. 열정적으로 음악 활동과 연주를 열심히 하지 못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10월 공개 예정이라고 하는 ‘사랑한다면’은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다. 참여했던 ‘사랑한다면’에 대한 편곡이나 녹음을 하면서 중점을 두려고 했던 부분이 있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들이 여러 가지 국가 지원 사업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보량이 부족해서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한 통로로 모아서 오픈해준다면 이런저런 사업들에 쉽게 참여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제안해준 데블스의‘사랑한다면’은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 조금 더 대중적으로 만들자는 관점으로 작업했다. 그래서 후주 부분에 뭔가 다른 임팩트를 주고 싶었다.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데블스의 故 김명길 선생님과 작업 예정이었지만, 프로젝트 준비 기간 동안 안타깝게 암으로 별세하시게 되었다.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기억이 있나? 어떤 뮤지션이었나?
20여 년 전에 야간업소에서 일할 때 다른 밴드의 리더로 활동하셨다. 대기실 등에서 거의 6개월 이상을 매일 뵙던 분이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시면서 편하게 해주셨다. 정말 인자하시고 기타도 편하게 연주하시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에게 아드님의 기타 레슨을 부탁하기도 하셨다. 내가 “형님 아드님이 나이가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여쭤봤더니 이제 군대 막 제대했으니 24살이라고, 난 당시 27살이었는데 말이다. (웃음) 그 이후로 < 고고70 >(2008)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하면서 이름을 다시 듣게 돼서 반가웠다. 이번 프로젝트에도 함께 하신다기에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뵙지 못하게 되어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인천-부평과의 인연이나 기억나는 추억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인천-부평에 대한 생각과 감정)
어릴 때 함께 연주했던 선배들이 인천, 부평 분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많이 놀러 가서 술도 마시고 음악 얘기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인천에는 80년대 말에 헤비메탈 밴드들도 많았다. 지금도 나에게는 인천. 부평하면 ‘록의 도시’라는 생각부터 든다.

코로나19로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뀐 것 같다. 소울 트레인은 공연으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솔로나 밴드 활동, 이후 공연 계획이 있나?
대부분의 뮤지션이 그럴 테지만, 사실 활동을 거의 못 하는 상황이다. 밴드의 3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집중이 잘 안 돼서 지지부진하다. 개인적으로 건강 상태도 많이 안 좋아지고. 그래도 조금씩 힘을 내서 올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소울 트레인 3집 앨범의 준비를 마칠 계획이다. 공연은 사회적인 분위기나 건강 상태로 조금은 미뤄두고 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기타 연주를 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이 방을 쓰던 6살 차이 나는 친형 덕에 팝이나 록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기타보다 노래 때문이었다. 밥 딜런(Bob Dylan)이나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로니 반 잔트(Ronnie Van Zant), 킹 크림슨(King Crimson),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그렉 레이크(Greg Lake), 킹 크림슨(King Crimson), 록시 뮤직(Roxy Music), 유라이어 힙(Uriah Heep) 활동을 했던 존 웨튼(John Wetto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두 거목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와 같은 거장들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타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노래하면서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져서 기타 연습을 시작했다. 근데 아무리 해도 노래에는 너무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많아져서 누구라고 딱히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고등학교 때 티비에서 생방으로 밤을 새워 보았던 <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인생의 앨범과 아티스를 꼽는다면?
너무 많지만, 굳이 뽑자면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데뷔작 < Pronounced ‘Lĕh-‘nérd ‘Skin-‘nérd >(1973)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 The Final Cut >(1983)이다. 아티스트는 단연 핑크 플로이드다.

기타리스트 곽경묵은 어떤 연주자로,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은가?
따뜻하고 인간적인 느낌의 연주를 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

인터뷰 :신현태
사진 :정종민
정리 :신현태
기획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