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작품 ‘Trip’ 속 이야기처럼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에도 릴러말즈의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2017년 정규 < Y > 이래 특유의 다작으로 힙합 뮤지션 중에서도 돋보이는 결과물을 꾸준히 제출해온 그가 여름을 맞이해 비를 소재로 한 신곡 ‘비 내리면’으로 대중과 깊은 소통을 시도한다. 그간 발표한 ‘방에 혼자 있을 때’, ‘Gone’ 등 싱잉 랩의 기조를 이어가며, 지루한 장마철을 닮아 먹먹하다.
프로듀서 보이콜드가 깔아놓은 빗길 위로 릴러말즈와 소금이 천천히 목소리를 내디딘다. 짙은 애수를 머금은 기타 리프와 느린 박자를 대변하듯 메트로놈처럼 작동하는 퍼커션을 의도적으로 비껴가는 느슨한 창법이 여운을 퍼뜨린다. 불분명하게 전달되는 가사가 진지한 감상의 목적보단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가깝기에 끈적한 위로를 담은 사운드가 편안히 청자에게 다가선다. 수많은 계절 노래 사이 뚜렷하진 않지만, 문득 떠오를 감성.
‘내 입맛’부터 소금이 지속적으로 전해온 메시지는 ‘악플 금지’다. 평범한 한 인간임을 호소하며 그간 받아온 상처를 풀어놓았던 그의 솔직한 가사는 ‘야유회’에서 제법 위트 있는 코러스로 바뀌었다.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라니. 일차원적이나 매우 효과적인 마법의 문장이다.
부모님 소환으로 모든 걸 일축해버린 단순한 가사는 낯섦으로 가득한 음악에 고명 같은 존재다. 월드 뮤직처럼 생경한 1, 2절의 퍼커션과 프리 코러스를 이끄는 날 선 양철 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심도 있는 표현과 어려운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기 힘들었을 테다. 사이키델릭한 후반부까지 생각해보면 압축적인 가사는 신의 한 수인 셈이다.
그렇다고 요즈음의 음악과 동떨어진 괴상한 음악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당장 카페, 편집숍에서 흘러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로파이한 사운드와 펑키한 기타 리프가 귀를 거스르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한다. 여기에 나른함의 대명사 소금과 오혁이 만났으니 ‘야유회’의 분위기는 안 봐도 비디오다. 좋은 멜로디는 좋은 노래의 필요조건이므로 이하 생략.
사운드클라우드로부터 목소리를 정제해온 소금은 서울의 여러 젊은 아티스트들과 호흡해왔다. 코나(Kona), 글램 굴드(Glam Gould), 말립(Maalib)과 WRKMS 같은 디제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었고, 펀치넬로와 히피는 집시였다, 기린의 음악에 위화감 없이 새로운 감각을 더했다. AOMG의 서바이벌 TV 프로그램 < 사인히어 >와 프로듀서 드레스(dress)와의 합작 앨범 < Not my fault >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소금의 과제는 음악 신의 조미료 역할을 넘어 독립 메뉴로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 Sobrightttttttt >의 세계가 흥미로운 건 그런 목표를 크게 의식하지 않은 듯 깊게 출렁이고 있어서다. 크루 바밍 타이거의 동료 원진(wnjn)은 앨범 커버 속 푸른 바다처럼 재즈와 힙합, 네오 소울의 장르 위 독특한 소리의 물길을 겹겹이 쌓아두고, 소금은 그 와중 수면 위로 얼굴을 살짝 내미는 것처럼 선명해졌다 흐릿해졌다를 반복한다. 물에 뜨려는 부단한 노력보다 이리저리 부유하고 또 헤엄치며 느긋하게 자유로운 아티스트의 모습이 들린다.
그 바탕엔 부정확한 발음과 명확하게 끝마치는 법이 없는, 허스키하고 독특한 목소리가 있다. 소금은 ‘Kill me’에서 생기 없이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가라앉다가도 곧바로 ‘Dance!’에서 재기 발랄함을 뽐내다, 몽환적인 ‘Badbadbad’로 아련한 감각을 만들어나간다. ‘Kimchisoup´에서 랩과 보컬의 경계를 허물다가도 선명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 위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나’를 또렷이 노래한다. ‘나 홀로 집에’와 ‘Take a waltz’에선 비트 위 목소리를 평행히 배치하여 독자적인 그루브를 진행하기도 한다.
< Not my fault >가 폭넓은 소리 운용과 다채로운 참여진으로 소금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했다면, < Sobrightttttttt >은 아티스트의 생각과 느낌,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흐릿해지기를 택한 작품이다. 소금이 어떤 뮤지션인지 알리는 데는 적합하다. 다만 감각과 느낌만 남아 흐릿하게 스치고 각인되지 못하기에 인상적이지는 않다. 단독으로 집어먹기엔 아직 그 맛이 좀, 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