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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재즈페스티벌 2023, 최고의 순간들

어느덧 15회를 맞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올림픽공원의 접근성 높은 위치와 팝과 장르 음악을 아우르는 라인업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가 되었다. 풍성한 시각적 요소와 활기 넘치는 브랜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MZ세대와 맞물려 파급력을 드러냈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폭우 속에서도 관중들은 아티스트들에게 열띤 환호를 보냈다. 팬데믹으로 쌓인 음악 갈증을 맘껏 푸는 시간이었다.

통통 튀는 팝으로 사랑받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미카와 ‘Mas que nada’의 브라질 음악 전설 세르지오 멘데스, ‘쌀 아저씨’의 애칭을 가진 ‘The blower’s daughter’의 데미안 라이스가 헤드라이너로 섰다. 에이제이알과 시그리드처럼 핫한 뮤지션들에 태양과 악동뮤지션의 대중성을 더했고, < 라라랜드 >의 음악 감독 저스틴 허위츠과 신동 조이 알렉산더의 참여로 재즈 팬들까지 만족시켰다. 다채로운 뮤지션들 가운데 이즘 에디터들이 꼽은 공연들로 서울재즈페스티벌 2023을 들여다본다.

그레고리 포터(금요일)
달빛 아래 야외 공연장을 채색하는 이색적인 그루브, 금요일 메이 포레스트(88 잔디마당)의 마무리는 푸근한 인상을 지닌 그레고리 포터 밴드의 웅대한 멜로디가 맡았다. 2017년 그래미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한 < Take Me To The Alley >의 타이틀 ‘Holding on’과 ‘Hey Laura’ 등의 히트곡이 그의 성대를 지나 한강 둔치를 따라 흘렀고, 관중들은 손뼉을 치고 흥얼거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의 첫날 밤을 만끽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볼까지 덮는 모자를 어김없이 걸친 포터가 자기 인생을 처연하게 노래하면서도 걸출한 무대 매너로 초저녁의 흥을 충분히 돋운 덕분이다. 어릴적 영향받은 냇 킹 콜, 마빈 게이, 그리고 최근 별세한 티나 터너를 향해 존경을 표한 구간은 상승기류의 절정이었고, 한 시간 넘는 공연이 지루하지 않도록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오르간, 트럼펫 각 세션도 맛깔난 즉흥 연주로 그를 뒷받침했다. 그레고리 포터의 풍부한 노래들로 페스티벌의 여흥과 재즈의 즉흥적인 낭만까지 듬뿍 챙겼다. (손민현)

로버트 글래스퍼(토요일)
재즈와 힙합, 네오소울을 믹스한 2012년 작 < Black Radio >는 로버트 글래스퍼를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의 대표주자로 올려놓았다. 이 음반의 제55회 그래미 최우수 알앤비 앨범 수상을 두고 크리스 브라운은 “대체 로버트 글래스퍼가 누구야?” 실언했지만 글래스퍼는 ‘Who The Fuck Is Rober Glasper?’ 문구가 적힌 티셔츠 제작으로 받아쳤다. 이 일화처럼 유연한 그의 음악엔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색채의 재즈 힙합과 하드 밥이 두루 녹아있고, 펜더 로즈와 목소리로 펼치는 블랙뮤직의 몽환계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도 잘 어울렸다. 2022년에 발매한 < Black Radio 3 > 수록곡 ‘Black superhero’와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로 발매한 ‘Find you’를 비롯해 너바나 ‘Smells like teen spirit’와 라디오헤드 ‘Packt like Sardines in a crushed tin box’, 버트 바카락의 명곡 ‘The look of love’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데릭 호지(베이스)와 마크 콜렌버그(드럼)의 기교 넘치는 연주도 경악스러웠다.(염동교)

바우터 하멜(토요일)
한국인만큼 한국을 잘 아는 밴드가 무대에 설 때의 즐거움. 제3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09로 첫 길을 튼 뒤 단독 콘서트와 각종 행사를 합해 합해 십여 년 동안 무려 스물네 번 한국을 방문했던 하멜이었다. 팬데믹이 아티스트와 한국 팬 사이의 오랜 연례행사를 지체시켰기에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페스티벌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재회였다. 곁을 떠난 사이 잠시 잊힌 재즈 뮤지션이란 정체성을 각인시키듯 느긋하고 묵직한 ‘In between’으로 공백을 깨더니 빈티지한 스윙 질감의 ‘Legendary’가 이어졌고 대표곡 ‘Breezy’는 즉흥적인 밴드 연주로 색다른 편곡을 선보였다. 공연의 달인답게 자유자재로 분위기를 교체하기도 했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Finally getting closer’나 추억의 첫 자작곡 ‘Nobody’s tune’, 공명의 신비로움을 활용한 신곡 ‘The spell’ 모두 적절하고 아름다운 쉼표였다. 까다로운 운반 문제로 근 몇 년간 지참하지 않았던 콘트라베이스를 가져올 정도로 하멜과 밴드 전부 애정과 성의를 갖고 찾아온 무대였다. 비록 페스티벌 테마곡 ‘Rosy day with SJF’가 ‘Rainy day’로 바뀐 궂은 날씨였지만 비 오는 날의 컴백 또한 무수히 많은 추억 중 소중한 하나가 되지 않을까.(박태임)

250(일요일)
일요일의 서울재즈페스티벌은 뽕으로 시작되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공연을 시작한 250의 모습과 레트로한 비디오 아트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그의 전신 영상이 대비되어 흥미를 더했다. 그는 시작부터 ’이창‘과 송대관의 ’네박자‘를 섞어 보였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워 보였던 사람들도 이내 트로트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으면서 비트는 점점 휴게소 뽕짝처럼 고조되었고, ‘내 나이가 어때서’가 공연의 정점을 찍었다. 마지막은 어김없이 그의 히트곡 ‘뱅버스’가 장식했다. 40여 분의 질주가 끝나자, 공연장 안의 모두가 그에게 박수와 탄성을 아낌없이 보냈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 온 뽕을 오랫동안 탐구한 그의 장인정신이 라이브에서도 빛나는 순간이었다.(김태훈)

에이제이알(일요일)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 데미안 라이스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이들은 세 명의 멧으로 이루어진 형제 밴드 에이제이알이었다. 최근 애플 광고음악과 다양한 스낵 콘텐츠에서 이들의 음악이 활용되며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만큼 늦은 시간에도 이들을 반기기 위한 인파가 올림픽체조경기장을 채웠다. ‘Burn the house down’이나 ‘World’s smallest violin’ 등으로 끝까지 페스티벌의 자리를 지킨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한 것은 물론 세트리스트의 마지막인 ‘Bang!’으로 마지막날의 하이라이트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나름의 스토리라인과 함께 시작한 무대는 이내 사람들의 환호와 떼창을 유도하며 쉽게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했다.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점이라면 태극기를 손수 준비해 온 정성. 노래하는 내내 무대 곳곳을 누비며 그날의 가장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들은 비 오는 날씨에 메인 스테이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이들을 달래기에 충분했다.(백종권)

정리: 염동교
취재: 김태훈, 박태임, 백종권, 염동교, 손민현
사진: 프라이빗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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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되찾은 서울의 열기, 제14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고, 그로 인한 공백은 ‘코로나 블루`라는 마음의 병을 낳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공연 업계가 입은 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코로나19는 라이브 음악과 관객을 철저히 멀어지게 했으며, 뮤직 페스티벌은 열두 번의 계절을 보낸 뒤에야 다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일상 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5월의 끝자락, 마침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음악 팬들을 맞이했다. 축제의 둘째 날인 28일, 3년 동안 비워뒀던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은 오랜 갈증을 풀기 위해 모여든 만여 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에도 저마다 돗자리를 펴 놓고 둘러앉아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한 관객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보다 웃음기가 가득했다.

느즈막이 도착한 88 잔디마당에선 악뮤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즈 선율을 느낄 수 있는 ‘200%’, ‘Re-bye’를 비롯해 다양한 히트곡이 울려 퍼졌고 남매를 향한 떼창과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페스티벌인데 굉장히 흥분되네요’라고 소감을 밝힌 이들은 공연 내내 노련한 팬 서비스로 공연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다음 순서는 단연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던 호세 제임스의 무대. 재즈 명가 블루노트의 간판 싱어인 그는 전설 빌 위더스의 명곡들을 커버한 트리뷰트 앨범 < Lean On Me >을 중심으로 셋리스트를 구성했다. ‘Ain’t no sunshine’, ‘Lovely day’, ‘Lean on me’ 등의 위대한 유산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선 연이어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연주였다. 재즈의 즉흥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합주를 선보인 밴드 멤버들은 앵콜곡 ‘Just the two of us’로 무대를 끝맺는 순간까지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저녁 8시를 넘은 시각, 어둑해진 밤하늘을 배경으로 헤드라이너 알렉 벤자민의 무대가 펼쳐졌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 그는 과거의 소년미를 벗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청량한 음색과 서정적인 감성의 팝이 선선한 저녁 공기와 어우러져 나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관객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일요일, 작열하는 태양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 건 다름 아닌 선우정아의 퍼포먼스였다. 유튜브 내 유행 중인 재즈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의 밈(Meme),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그는 명품 스캣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관록을 뽐낸 베테랑 재즈 보컬리스트의 공연이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무대는 4년 만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재방문한 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 펑크(Funk)와 재즈를 결합한 마성의 멜로디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들은 스탠딩 존으로 모여든 팬들에게 ‘오랜만입니다 서울, 감사합니다!’라고 익숙하게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관객들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낭만적인 시티팝 선율에 몸을 맡겼다. 밴드 특유의 여유 넘치는 그루브는 잠시였지만 88 잔디마당에 운집한 관객들을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변으로 옮겨놓았다.

페스티벌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은 올해도 엇갈렸다. 주최 측은 다양한 기호를 가진 음악 팬들의 만족도를 고려해 넓은 장르를 포용하며 대중성을 강화했다. 한국 팬들의 취향을 섬세하게 고려한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 타이틀에 걸맞은 라인업 구성이냐는 재즈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럼에도 올림픽 공원에 모인 만여 명의 관객들은 모처럼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 꿈같은 3일을 보냈다.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인원 제한, 한 개의 스테이지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 등 여러 악조건 속에 개최된 점을 참작했을 때 이만하면 성공적인 마무리다.

움츠렸던 음악 팬들의 연례행사가 다시금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단절과 소통의 과도기에서 만난 2022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규제들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내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그저 코로나 사태로 누적된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줄 뮤직 페스티벌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사진 제공 : 프라이빗 커브(Private Cur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