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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재즈페스티벌 2023, 최고의 순간들

어느덧 15회를 맞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올림픽공원의 접근성 높은 위치와 팝과 장르 음악을 아우르는 라인업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가 되었다. 풍성한 시각적 요소와 활기 넘치는 브랜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MZ세대와 맞물려 파급력을 드러냈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폭우 속에서도 관중들은 아티스트들에게 열띤 환호를 보냈다. 팬데믹으로 쌓인 음악 갈증을 맘껏 푸는 시간이었다.

통통 튀는 팝으로 사랑받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미카와 ‘Mas que nada’의 브라질 음악 전설 세르지오 멘데스, ‘쌀 아저씨’의 애칭을 가진 ‘The blower’s daughter’의 데미안 라이스가 헤드라이너로 섰다. 에이제이알과 시그리드처럼 핫한 뮤지션들에 태양과 악동뮤지션의 대중성을 더했고, < 라라랜드 >의 음악 감독 저스틴 허위츠과 신동 조이 알렉산더의 참여로 재즈 팬들까지 만족시켰다. 다채로운 뮤지션들 가운데 이즘 에디터들이 꼽은 공연들로 서울재즈페스티벌 2023을 들여다본다.

그레고리 포터(금요일)
달빛 아래 야외 공연장을 채색하는 이색적인 그루브, 금요일 메이 포레스트(88 잔디마당)의 마무리는 푸근한 인상을 지닌 그레고리 포터 밴드의 웅대한 멜로디가 맡았다. 2017년 그래미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한 < Take Me To The Alley >의 타이틀 ‘Holding on’과 ‘Hey Laura’ 등의 히트곡이 그의 성대를 지나 한강 둔치를 따라 흘렀고, 관중들은 손뼉을 치고 흥얼거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의 첫날 밤을 만끽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볼까지 덮는 모자를 어김없이 걸친 포터가 자기 인생을 처연하게 노래하면서도 걸출한 무대 매너로 초저녁의 흥을 충분히 돋운 덕분이다. 어릴적 영향받은 냇 킹 콜, 마빈 게이, 그리고 최근 별세한 티나 터너를 향해 존경을 표한 구간은 상승기류의 절정이었고, 한 시간 넘는 공연이 지루하지 않도록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오르간, 트럼펫 각 세션도 맛깔난 즉흥 연주로 그를 뒷받침했다. 그레고리 포터의 풍부한 노래들로 페스티벌의 여흥과 재즈의 즉흥적인 낭만까지 듬뿍 챙겼다. (손민현)

로버트 글래스퍼(토요일)
재즈와 힙합, 네오소울을 믹스한 2012년 작 < Black Radio >는 로버트 글래스퍼를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의 대표주자로 올려놓았다. 이 음반의 제55회 그래미 최우수 알앤비 앨범 수상을 두고 크리스 브라운은 “대체 로버트 글래스퍼가 누구야?” 실언했지만 글래스퍼는 ‘Who The Fuck Is Rober Glasper?’ 문구가 적힌 티셔츠 제작으로 받아쳤다. 이 일화처럼 유연한 그의 음악엔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색채의 재즈 힙합과 하드 밥이 두루 녹아있고, 펜더 로즈와 목소리로 펼치는 블랙뮤직의 몽환계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도 잘 어울렸다. 2022년에 발매한 < Black Radio 3 > 수록곡 ‘Black superhero’와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로 발매한 ‘Find you’를 비롯해 너바나 ‘Smells like teen spirit’와 라디오헤드 ‘Packt like Sardines in a crushed tin box’, 버트 바카락의 명곡 ‘The look of love’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데릭 호지(베이스)와 마크 콜렌버그(드럼)의 기교 넘치는 연주도 경악스러웠다.(염동교)

바우터 하멜(토요일)
한국인만큼 한국을 잘 아는 밴드가 무대에 설 때의 즐거움. 제3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09로 첫 길을 튼 뒤 단독 콘서트와 각종 행사를 합해 합해 십여 년 동안 무려 스물네 번 한국을 방문했던 하멜이었다. 팬데믹이 아티스트와 한국 팬 사이의 오랜 연례행사를 지체시켰기에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페스티벌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재회였다. 곁을 떠난 사이 잠시 잊힌 재즈 뮤지션이란 정체성을 각인시키듯 느긋하고 묵직한 ‘In between’으로 공백을 깨더니 빈티지한 스윙 질감의 ‘Legendary’가 이어졌고 대표곡 ‘Breezy’는 즉흥적인 밴드 연주로 색다른 편곡을 선보였다. 공연의 달인답게 자유자재로 분위기를 교체하기도 했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Finally getting closer’나 추억의 첫 자작곡 ‘Nobody’s tune’, 공명의 신비로움을 활용한 신곡 ‘The spell’ 모두 적절하고 아름다운 쉼표였다. 까다로운 운반 문제로 근 몇 년간 지참하지 않았던 콘트라베이스를 가져올 정도로 하멜과 밴드 전부 애정과 성의를 갖고 찾아온 무대였다. 비록 페스티벌 테마곡 ‘Rosy day with SJF’가 ‘Rainy day’로 바뀐 궂은 날씨였지만 비 오는 날의 컴백 또한 무수히 많은 추억 중 소중한 하나가 되지 않을까.(박태임)

250(일요일)
일요일의 서울재즈페스티벌은 뽕으로 시작되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공연을 시작한 250의 모습과 레트로한 비디오 아트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그의 전신 영상이 대비되어 흥미를 더했다. 그는 시작부터 ’이창‘과 송대관의 ’네박자‘를 섞어 보였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워 보였던 사람들도 이내 트로트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으면서 비트는 점점 휴게소 뽕짝처럼 고조되었고, ‘내 나이가 어때서’가 공연의 정점을 찍었다. 마지막은 어김없이 그의 히트곡 ‘뱅버스’가 장식했다. 40여 분의 질주가 끝나자, 공연장 안의 모두가 그에게 박수와 탄성을 아낌없이 보냈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 온 뽕을 오랫동안 탐구한 그의 장인정신이 라이브에서도 빛나는 순간이었다.(김태훈)

에이제이알(일요일)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 데미안 라이스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이들은 세 명의 멧으로 이루어진 형제 밴드 에이제이알이었다. 최근 애플 광고음악과 다양한 스낵 콘텐츠에서 이들의 음악이 활용되며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만큼 늦은 시간에도 이들을 반기기 위한 인파가 올림픽체조경기장을 채웠다. ‘Burn the house down’이나 ‘World’s smallest violin’ 등으로 끝까지 페스티벌의 자리를 지킨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한 것은 물론 세트리스트의 마지막인 ‘Bang!’으로 마지막날의 하이라이트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나름의 스토리라인과 함께 시작한 무대는 이내 사람들의 환호와 떼창을 유도하며 쉽게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했다.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점이라면 태극기를 손수 준비해 온 정성. 노래하는 내내 무대 곳곳을 누비며 그날의 가장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들은 비 오는 날씨에 메인 스테이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이들을 달래기에 충분했다.(백종권)

정리: 염동교
취재: 김태훈, 박태임, 백종권, 염동교, 손민현
사진: 프라이빗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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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2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든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를 딛고 일어난 국내 문화계가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동시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되고 삶은 흘러가니까.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스플래시와 함께 2022년 가요계를 돌아본다.

배신 또는 오해, 표절 논란
시작은 유희열이었다. ‘생활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관련 의혹이 빠른 속도로 불거졌다. 그가 작곡한 성시경의 ‘Happy birthday to you’, < 무한도전 > 가요제 프로젝트 곡인 ‘Please don’t go my girl’ 등도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무진 등 여러 뮤지션에게 표절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2022년 상반기는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레퍼런스’나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반론도 곳곳에서 등장했고, 논란을 조회수 삼으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 다소 억지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도 나타났다. 예술의 특성상 문제를 깔끔하게 종결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표절’이라는 키워드가 모두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돌아온 페스티벌과 공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공연 문화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택트 공연 등 대체 수단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서울 재즈 페스티벌부터 인천 펜타포트, 부산 록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고, 빌리 아일리시와 잭 화이트를 비롯해 여러 굵직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졌다. 풀리지 않은 규제로 마스크의 답답함은 있었으나 열정과 사랑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예열과 시동 단계일 테지만, 억눌렀던 마음만큼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렌드의 중심이 된 1990년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19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펑크(Funk) 열풍은 2020년대 본격적인 폭발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팝 펑크(Pop Punk)다. 2021년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를 주축으로 영미권의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이끈 장르의 재부흥을 K팝 또한 재빠르게 수용했다.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와 최예나의 ‘Smiley’, 우즈(WOODZ)의 ‘난 너 없이’ 등이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이모(Emo) 감성을 일부 벤치마킹한 비주얼을 내세웠다. 정점은 단연 (여자)아이들의 ‘Tomboy’. 앨라니스 모리셋 등 록 여성 뮤지션의 정신을 받아들여 매혹적인 팝 선율, 거침없는 펑크(Punk)의 태도를 모두 끌어안았다. 음원에는 삭제된 욕설까지 함께 소리치던 대학 축제 풍경은 화끈함의 극치였다.

가지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나갔다. 아이브의 ‘After like’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 리듬을 기반 삼았고, 뉴진스의 ‘Attention’과 ‘Cookie’는 비슷한 시기의 힙합과 알앤비 장르를 채택했다. 큰 유행이 된 Y2K 콘셉트를 여러 팀이 전격 채택한 것은 덤. 윤하의 ‘사건이 지평선’이 역주행한 원인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2000년대 초 TV 만화 채널을 추억하는 젊은 층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1990년대생의 문화가 차츰 향수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는 현상을 음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인드 셋, 거장의 귀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음악에서는 그렇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돌아오면서 오랜 세월 쌓은 관록만큼이나 식지 않은 에너지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먼저 꾸준한 바이닐과 시티팝 유행에 힘입어 5월에는 빛과 소금이 2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 Here We Go >를 발표했다. ‘공유’의 시대를 거슬러 음악을 ‘소유’하려는 자연적인 수요와 맞닿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송골매 또한 ‘열망’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며 기성세대 못지않게 젊은 세대까지 관객석으로 초대했다. 7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인천 공연까지 성행하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업계에서도 컴백은 이어졌다. KBS의 < 불후의 명곡 >이 2012년 은퇴 선언을 했던 패티김을 초청해 3부에 걸쳐 특집을 꾸렸고, 그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 또한 TV조선의 러브콜을 받아 데뷔 63주년 기념 특별 공연을 개최했고, MBN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심수봉을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가왕’은 ‘가왕’. 조용필이 스무 번째 정규 앨범의 예고편으로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선보인 데에 이어 KSPO 돔에서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혀 늙지 않은 음악으로 돌아온 그, ‘영원한 오빠’ 수식어는 2020년대에도 공고했다. ‘물리적 나이보다 마인드 셋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느껴본다. 어찌 보면 키워드는 ‘귀환’이 아니라 ‘소통’이다.

여성 아이돌 르네상스
엠넷 < 프로듀스 > 시리즈의 성공 이후 여러 그룹이 팀 단위보다는 개별 멤버 위주의 팬덤 구축과 세계화에 힘을 서서히 쏟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세계관’과 가끔 난해하기도 한 콘셉트에 여성 아이돌이 예전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돌아온 2022년 걸그룹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Love dive’와 ‘After like’를 연속 히트시킨 아이브가 선두 주자로 올라선 가운데 같은 아이즈원 파생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초 여러 논란을 딛고 ‘Antifragile’을 흥행에 성공시키며 재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남다른 방식으로 첫선을 보인 뉴진스 또한 ‘Attention’과 ‘Hype boy’로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세 자리를 놓고 전투를 벌였다. 스테이씨의 ‘Run 2 u’, 있지의 ‘Sneakers’,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Nxde’ 등 신세대 걸그룹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바쁜 1년이었다.

선배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으로 클래식 샘플링 트렌드를 이끌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한편 블랙핑크는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모두 올라 글로벌 시장 점령을 이어 나갔다. 트와이스의 나연은 숏폼 플랫폼에서 안무 챌린지를 적극 활용해 첫 솔로 싱글 ‘Pop!’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Forever 1’으로 15주년을 풍성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와 7년 만에 다시 모인 카라까지, 신예들과 익숙한 이름의 공존에 2022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에 반해 타겟층이 일반 대중에서 구매력이 높은 팬덤으로 많이 기울어진 남성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싱글 차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소비자층이 세분화됨에 따라 ‘국민가수’나 ‘국민가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애초에 보이그룹의 목표가 공연이나 음반으로 옮겨간 지도 오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보이그룹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꺾이지 않는 장기 지배, 힙합 정권 40년
얼마 전, 요즘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한다면 남학생들은 지코의 ‘새삥’ 챌린지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힙합이 이제 하나의 별종이 아니라 굳건한 주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올해 무려 열한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 쇼미더머니 >와 여러 밴드가 나선 경연 프로그램 <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의 시청률 차이만 봐도 명확하다. 해외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도권은 힙합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타고 본격 유입을 겪은 힙합/알앤비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넓히며 세력을 키웠다. 비오의 ‘Love me’,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 그리고 크러쉬의 ‘Rush hour’ 등 차트에는 아직도 여러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록 페스티벌의 부활 사이 함께 돌아온 대구 힙합 페스티벌까지, 어느덧 익숙해진 힙합 강국의 면모다.

BTS 병역 논란
엄밀히 말하면 ‘가요’계 사건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가 올 한 해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다. 국위선양의 공로를 높게 사 병역 면제를 논하는 입장과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며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유승준과 MC몽 등 남성 뮤지션의 입대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른 문제였다.

사안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끝을 맺었다. 맏형인 진이 12월 13일 최전방인 연천 지역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 같은 날 솔로곡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던 멤버 슈가는 어깨 수술을 근거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멤버들의 계획은 아직 미정이나 그룹 활동의 중단 이후 여러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개인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른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와 엮이며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까지 나왔던 주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성별과 세대 갈등까지 연결되는 두 글자, ‘군대’. 그러나 병역이 아직까지 ‘의무’인 국가에서 이를 일종의 ‘형벌’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 100분 토론 >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에게서 기억되고,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특혜’ 아닐까.

사각지대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티스트 착취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뉴스에서 떠오른 헤드라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11인조 보이그룹 오메가엑스의 갑질 피해 소식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멤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이 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온갖 피해 내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코로나19 감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무대를 섰다는 사실, 온갖 폭언과 협박 내역이 밝혀졌다.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한때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승기 또한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에게서 음원 수익을 전혀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언론에 드러났다. ‘적자 가수’라는 비하 발언을 했던 대표는 현재 수익 횡령 의혹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창 여러 방송에서 활약 중인 가수 츄가 소속 그룹 이달의 소녀에서 강제로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중립적인 언어로 계약 해지 사실을 밝혔던 여러 선례에 비하면 ‘제명’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 블록베리 엔터테인먼트의 글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반박되며 나머지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계약 해지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퍼진 사이, 1월로 예정된 그룹의 컴백 소식이 갑작스레 공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

한때 범람했던 가요계 계약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음악과 뮤지션이 돈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착잡함을 안긴다. 정녕 음악이 순수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을까, 바란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조금 더 깨끗하고 공정한 음악 산업 소식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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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되찾은 서울의 열기, 제14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고, 그로 인한 공백은 ‘코로나 블루`라는 마음의 병을 낳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공연 업계가 입은 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코로나19는 라이브 음악과 관객을 철저히 멀어지게 했으며, 뮤직 페스티벌은 열두 번의 계절을 보낸 뒤에야 다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일상 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5월의 끝자락, 마침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음악 팬들을 맞이했다. 축제의 둘째 날인 28일, 3년 동안 비워뒀던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은 오랜 갈증을 풀기 위해 모여든 만여 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에도 저마다 돗자리를 펴 놓고 둘러앉아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한 관객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보다 웃음기가 가득했다.

느즈막이 도착한 88 잔디마당에선 악뮤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즈 선율을 느낄 수 있는 ‘200%’, ‘Re-bye’를 비롯해 다양한 히트곡이 울려 퍼졌고 남매를 향한 떼창과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페스티벌인데 굉장히 흥분되네요’라고 소감을 밝힌 이들은 공연 내내 노련한 팬 서비스로 공연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다음 순서는 단연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던 호세 제임스의 무대. 재즈 명가 블루노트의 간판 싱어인 그는 전설 빌 위더스의 명곡들을 커버한 트리뷰트 앨범 < Lean On Me >을 중심으로 셋리스트를 구성했다. ‘Ain’t no sunshine’, ‘Lovely day’, ‘Lean on me’ 등의 위대한 유산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선 연이어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연주였다. 재즈의 즉흥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합주를 선보인 밴드 멤버들은 앵콜곡 ‘Just the two of us’로 무대를 끝맺는 순간까지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저녁 8시를 넘은 시각, 어둑해진 밤하늘을 배경으로 헤드라이너 알렉 벤자민의 무대가 펼쳐졌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 그는 과거의 소년미를 벗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청량한 음색과 서정적인 감성의 팝이 선선한 저녁 공기와 어우러져 나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관객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일요일, 작열하는 태양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 건 다름 아닌 선우정아의 퍼포먼스였다. 유튜브 내 유행 중인 재즈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의 밈(Meme),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그는 명품 스캣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관록을 뽐낸 베테랑 재즈 보컬리스트의 공연이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무대는 4년 만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재방문한 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 펑크(Funk)와 재즈를 결합한 마성의 멜로디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들은 스탠딩 존으로 모여든 팬들에게 ‘오랜만입니다 서울, 감사합니다!’라고 익숙하게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관객들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낭만적인 시티팝 선율에 몸을 맡겼다. 밴드 특유의 여유 넘치는 그루브는 잠시였지만 88 잔디마당에 운집한 관객들을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변으로 옮겨놓았다.

페스티벌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은 올해도 엇갈렸다. 주최 측은 다양한 기호를 가진 음악 팬들의 만족도를 고려해 넓은 장르를 포용하며 대중성을 강화했다. 한국 팬들의 취향을 섬세하게 고려한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 타이틀에 걸맞은 라인업 구성이냐는 재즈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럼에도 올림픽 공원에 모인 만여 명의 관객들은 모처럼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 꿈같은 3일을 보냈다.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인원 제한, 한 개의 스테이지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 등 여러 악조건 속에 개최된 점을 참작했을 때 이만하면 성공적인 마무리다.

움츠렸던 음악 팬들의 연례행사가 다시금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단절과 소통의 과도기에서 만난 2022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규제들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내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그저 코로나 사태로 누적된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줄 뮤직 페스티벌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사진 제공 : 프라이빗 커브(Private Curve)